내가 사는 빌라에는 모두 여덟 가구가 산다. 집마다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주로 혼자 살거나 많아야 둘이 산다. 둘이 함께 산다고
해도 결혼한 커플이 사는 것 같지는 않기 때문에 이 빌라에는 아기 울음소리라든가 아이들 뛰어다니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신축
건물인 이 빌라에는 내가 두 번째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그때 계약서상에 우리집 때문에 추가된 문구가 하나 있다. 반려 동물은
고양이‘만’ 된다는 조항이었다.
애초에 이 건물 주인은 임대, 그것도 전세로만 세입자를 구했고 신축 건물이다 보니
조심해서 사용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다 보니 반려 동물은 당연히 꺼려지는 대상이었다. 이 집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도 그 때문에
매우 고민을 했고, 어쩔 수 없이 사정을 설명했더니, 집주인은 고양이'만' 된다는 조항을 넣었다. 고양이가 개처럼 짖지 않는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을 한 것 같았다. 실제로 이사 온 뒤 한동안은 새 건물이다 보니 직접 사람이 살면서 생기는 소소한 건물 내
문제들을 해결하러 관리인이 우리집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고양이가 대체 어디 있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녀석들이 워낙 낯선 사람을 가리는
터라 알아서 숨어버린 것이다.
아무튼 이 조항 때문에 우리집 다음으로 이사 온 나머지 가구는 이 계약서를
받아들고서는 반려 동물은 고양이만 된다는 문구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 했을 수도 있고, 흥미롭게 여겨서 질문을 던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어느 집에선가 고양이를 키운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리라. 뭐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 옆집은 이사 오고
나서 한동안 바뀐 환경에 적응을 못한 첫째 냥이가 새벽마다 울어대는 바람에 그 조항을 보지 못했어도 자연스레 아, 새로 이사 온 집에
고양이가 있구나 알아차렸을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살다 보니 이웃끼리 최대한 부딪히지 않으려고 서로 조심하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오가는 사이에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그래서 대충 알게 된 사실인데 이 건물에는 30~40대 혼자 사는
여자들이 많으며, 남자는 딱 한 가구이다.
우리집은 가장 높은층이기 때문에 올라오다 보면 집 앞마다 놓인 택배
상자를 종종 보게 된다. 보통은 쿠팡에서 오는 2리터짜리 생수가 가장 빈번하게 배달되어 온다. 302호는 온라인으로 옷을 자주
주문하는데, 직접 받아보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지 반품하느라 다음 날 문 앞에 다시 나와 있는 일이 잦다. 내가 가장 궁금한 상자는
알라딘이나 예스24 택배 상자이다. 이런 상자를 다른 층에서 발견하기란 매우 드물다. 우리 집은 뭐..... 알라딘 당일 배송
아저씨가 이제 내 얼굴을 알 정도이다. 심지어 이 아저씨는 예스24, 인터파크 도서 배송까지 같이 하시는데 내가 알라딘,
예스24, 인터파크에서 책을 살 때마다 계속 오셔서 한 달에 대여섯 번 본 적도 있다. -_-;;;
그에 비해 다른
층에서는 책과 관련한 택배 상자를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어느 날! 301호 집 앞에 놓인 예스24 상자를 보고는 정말
깜짝 놀랐다. 아니, 책을! 무슨 책을? 무슨 책을 샀을까? 몹시 궁금해서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하하하하 박스 바깥에 붙은
스티커를 보고야 말았다. 그랬는데 특별한 게 아니라서 좀 실망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오는데, 도서 택배 상자보다도 내 마음을 뛰게 한 택배 상자를 보고야 말았다. 순간 동공지진. 그것은!
'Pet' 어쩌고 적힌 상자였다. 강아지나라 고양이천국 뭐 이런 택배 상자였다. 201호였다. 그 상자를 보는 순간 나는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강아지일까? 고양이일까? 그런데 결정적으로 그 택배 상자 위에는 포장이 따로 되어 있지만 집사의 예리한 눈에는
당연히 ‘그것’으로 유추 가능한 물건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하하하하! 나는 그걸 발견하고는 왠지 모르게 뛸 듯이 기뻤다.
그것은 바로.....

바로 이렇게 생긴 고양이 스크래쳐-
201호 사람이 고양이를 키우게 됐구나! ‘고양이만 가능하다’는 계약 조항을 보고 드디어 집사의 세계로 들어온
것이로구나! 동지를 만난 기분이었다. 길냥이를 데려온 것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아기냥일까? 아그그 귀엽겠다. 암컷일까 수컷일까?
어떻게 생겼을까? 아주 조용한 걸 보니 아기냥이가 틀림없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난리도 아니었다. 우리집 고양이한테 “야, 여기
아래층에 애기 고양이 있어. 알아? 소리 들려?” 하기도 했다. 고양이가 생긴 뒤로 201호 사람은 늘 집에 불을 켜두고 외출을
하는 것 같다. 집에 불이 켜져 있는데도 집 앞에 택배 상자가 그대로 놓여 있는 일이 자주 있기 때문이다. 혹시
새끼 강아지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어느 날 완전히 해소되었다. 201호 사람이 이제 본격적으로 고양이 쇼핑몰을 알았는지,
‘OOOOOO’이라고 쓰인 택배 상자를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추리(?)가 정확히 맞아 떨어진 것을 보고 씩 웃었다.
그리고 이 빌라에 우리 말고도 누군가가 고양이를 키운다는 사실이, 여덟 가구 가운데 두 가구는 고양이를 모시는 집사 가구라는
점에 왠지 흐뭇해졌다.
OOOOOO 은?!

고양이대통령! ㅋㅋㅋㅋ 빼박 증거-
그리고 며칠 전, 집에 올라오는데, 드디어 마침내! 냐옹~ 우는 201호 녀석의 울음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그
사이 자랐는지 이제는 제법 운다. 그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는 알지 못한다. 길에서 고생하던 녀석인데 201호 사람이 냥줍해서
키우는 것이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낚시터에서 박수홍을 만나 길냥이 신분에서 전국민(?) 사랑을 받고 있는 다홍이처럼, 또는 히끄처럼 복터지는 냥이가 되면 좋겠다. “얘들아, 우리 집 아래에 고양이 있어. 궁금하지? 나도 궁금해.” 201호 고양이를
생각하면 어쩐지 기분이 좋아져서 비실비실 웃고 만다.
그나저나 요즘 알라딘에서 고양이 관련 책 사면 고양이 스크래쳐 박스 준다...; 작년에도 받았는데 또 주네.... 또 받아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