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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1초들 - 곽재구 산문집
곽재구 지음 / 톨 / 2011년 7월
평점 :
요즘은 시인이 낸 산문집, 에세이가 대세인가? ^^
우연하지 않게, 짧은 기간에 비슷한 류의 책을 읽게 되었다. 둘 다 시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선우 시인이 오로빌에 다녀와서 <어디 아픈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라는 책을 냈다면,
곽재구 시인은 인도의 유명한 시인 타고르의 고향, 산티니케탄 에서 일년 넘게 지내며 이 책을 냈다.
젊은 시절에 타고르의 시를 접하고 그의 고향을 방문하고픈 생각이 있었는데, 그 꿈이 이번에 현실로 이루어졌다. 산티니케탄 방문 목적은 타고르 시인의 모국어인 뱅골어를 직접 배워서 저자의 힘으로 그의 시를 읽고, 이해하고, 한글로 옮기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한다. 이 책에는 실제로 그가 번역한 8편 가량의 타고르의 시가 들어있기도 하다.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듯 보인다. ^^
하나의 목표를 위해 여행길에 올랐지만, 목표한 그 이상을 채우고 돌아왔다.
그가 만난 순진하고 순수한 사람들, 자연이 주는 신비한 경험과 체험, 지독한 폭염을 지낸 후의 신의 선물같은 시원한 바람... 시인은 덤으로 산티니케탄 마을과 사람들에 흠뻑 빠져서 돌아왔다.
크게 4개의 장으로 나뉘어 짧은 산문이 이어진다. 그 중에 3번째 장은 마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마시는 식모나 파출부 정도로 여길 수 있는데, '미나'와 '소루밀라' 라는 이름을 가진 두명을 고용했었다. 우리가 아는 개념과 조금 다른데 우리처럼 파출부 한 명이 온 집안일을 하는게 아니라, 역할별로 각각 구별이 되어있다. 청소/빨래 담당 마시, 요리/주방 담당 마시. 작은 단위 단위로 업무 분담이 되어 있다.
작은 단위의 업무 분담은 인도라는 나라의 특성이기도 한데 우리 관점으로 이해 안되는 부분도 있다. 본인이 맡은 일이 아닌 경우엔 주인이나 사용자가 시켜도 듣질 않는 경우가 그것이다. 남이 내 일을 해주는 것도 싫어라 한다. 내 일을 뺏아 간다고 여긴다. 인구가 많아서 그렇게 역할분담이 명확해야만이 살아 남을 수 있고, 많은 이들이 함께 생존하는 길인 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 길들여온 그들만의 지혜로운 법칙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선 속이 터진다. 본인 일 하면서 사소한 일을 부탁해도 자기 일이 아니어서 못하겠다고 하면... 참 난감해 진다. 멀쩡하던 뒷골이 땡긴다.
우리에 비해 턱없이 작은 월급으로 사람을 부리려니 저자의 마음이 영 편치 않다. 미안한 마음에 최대한 마시들을 배려해서 편의를 봐주지만, 어떨땐 고마워 하기는 커녕 오히려 악용하는 것 처럼 보이고, 눈에 뻔한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저자가 보인 성의를 다시 거둬들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책임감이 부족한 모습이 느껴져 사람에 실망하고, 속을 끓이며, 한국에선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을 한다. 말이라도 통하면 속 감정을 내보이며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얘기하겠지만, 언어를 배우고 있는 그에겐 그것도 여의치 않다. 마시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는 등 기분좋은 일도 있지만, 마시들 때문에 이러저러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한다. 그런 고뇌와 일상이 내 일처럼 느껴져서 재밌었다.
또 산티니케탄에는 총 1그루만 존재하며, 1년에 한번만 피는 꽃이 있는데, 7월에 도착한 그는 그 다음해에 5월까지 그 꽃을 보려고 1년 가까운 기다림을 하기도 한다. "조전건다" 라는 이름을 가진 꽃이다. 그 꽃에서는 달빛 냄새가 난다는데...그 냄새가 어떤건지 감이 오질 않는다. 긴 기다림 끝에 그 꽃의 향기를 맡는 저자의 감흥이 글에서도 느껴져 읽으면서 함께 두근두근 하며 설레던 기억이 난다. 아~ 이런 행복을 느꼈겠구나! 이해가 가기도 한다.
예쁜 꽃과 나무를 보고 느끼는 행복, 화려한 사리를 입은 인도 아가씨들, 10루피로(우리돈 250원) 누릴 수 있는 여러가지 호사들, 야외에서 수업하는 학생들의 똘망한 눈빛들, 릭샤왈라(인력거) 들과 나누는 대화들... 낯선 이방인에게도 미소가 인색하지 않은 그들을 보면서 저자가 느꼈을 포근함과 기분좋음이 그를 폭염속에서도,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그를 살게 한 에너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