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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그리움을 켜다> 

                  -최반-

 

 

 

 

다른 마음 

 

그럴때가 있어.

나는 버스 창문을 열고 싶은데

옆자리 승객은 닫았으면 할때

 

사는 게

사랑하는 게

곳곳에 나랑은

다른 마음이 있어.

 

그런 줄 알면서도

 

네 마음 나와 달랐다고

네 마음 변했다고

사람들은 오랫동안 억울해 하지

오래오래 원망하며 지쳐가지.

 

              <여행, 그리움을 켜다> -최반-

 

 

머리로는 이해하는 것들이 마음에서 통과하지 못할때가 있다.

머리가 지시를 내려도 마음이 듣고 싶지 않을때, 지시를 이행하고 싶지 않을때가 있다.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라면 이런것들의 경우수가 더 많아지는 것 같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하림의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라는 노랫말이 떠오른다.

♪♬♪ (...) 가끔 서운하니, 예전 그 마음 사라졌단 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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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다른 어떤 누군가가 당신을

괜찮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 자신만은

스스로 괜찮게 생각할 수 있다. 나는 당신이

당신 자신을 괜찮게 생각하고 남이 아닌

당신의 기준으로 살기 바란다. 이것은

또한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박대령의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관계맺기의 심리학> 중에서-

 

 

이 책은 직접 읽은 책은 아니지만, 읽고 싶어 찜 해 놓은 책이다.

 

책 제목이나 내용을 보면서 세상엔 생각보다 소심하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다행이다(!) 하는 생각을 했다.

 

대범하고 강한 사람들,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사람들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상처받는 게 싫어서 강한 척 하고, 쎈 척 하는 듯 보였다.

먼저 先 공격으로 기선을 제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끔 위축되고, 심리적인 열등감이 느껴질 때마다

마음속으로, 정신적으로 '코팅' 역할을 해줄 글이라 담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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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100미터 전.
하느님이 날 밀어내신다. 나를 긴장시키려고 그러시나?

10미터 전. 
계속 밀어내신다. 이제 곧 그만두시겠지.

1미터 전.
더 나아갈 데가 없는데 설마 더 미시진 않겠지?

벼랑 끝.
아니야, 하느님이 날 벼랑 아래로 떨어뜨릴 리가 없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너무나 잘 아실테니까.

그러나, 하느님은
벼랑 끝자락에 간신히 서 있는 나를 아래로 밀어내셨다.

......

그때야 알았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 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 중에서 -

 

 

 

읽고 있는 글에서 '하느님'이니 '예수님'이니 하는 단어가 들어 있으면

알레르기처럼 거부반응을 일으키곤 하는데, 이 글은 마음에 들어왔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코너에 몰리고, 벼랑 끝에 다다랐을때,

'이제 끝인가?',  '이게 끝이구나!'  싶을때

어쩌면 그 시점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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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무겁고 고통스러워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비겁지만 아무도 찾지 못할 동굴에 들어가,

고요해지고 잠잠해질때까지 눈 감고 잠들어 있고 싶다.  

깨어 일어나 현실로 돌아왔을때는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없어진 상황에

아무렇지 않게 다시 시작하는 생을 살고 싶을때가 있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서툰 법이다.

조금 익숙해질 나이가 됐다고 느끼지만 여전히 어렵다.

한번 뿐인 인생을 사는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봐줄 만도 한데,

실수를 애교로 넘어가 줄 만도 한데...

세상은 호락호락 하지가 않다.

세상은, 사회는 나에게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가 되길 바란다. 완벽하게 해내기를 기대한다.

 

내게 거는 기대치와 내가 해낼 수 있는 실체 사이의 Gap이 클 수록 고통과 스트레스는 커져 간다.

But,  Never give up!!  

Fighting!!!  

 

그.래.도

최선을 다 해 보자고 오늘도 나를 응원한다.

누가 이기나 해 보자! 까짓 것!  

적응하고 견디는 일... 내가 잘 하는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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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

철없는 어린 아들과 고기를 먹는다.
아니, 고기를 굽고 자르기를 한다.
나는 고기를 굽는 사람.
나는 고기를 자르는 사람.
아들이 고기를 먹는 내내
나는 고기를 굽고 자르기에 여념이 없다.

아들이 고기를 먹어보라고 재촉하면
잠시 굽고 자르기를 멈추고, 가끔 아주 가끔
기름이 대부분이거나 타버린 고기를 먹는다.

갑자기 울컥하는 이유는 
내 아버지도 그랬을 것이다,
내 어머니도 그랬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고기를 굽는 사람.
나는 고기를 자르는 사람.

자자손손 대대로 이어온 직업.

                                      - 박광수의 <앗싸라비아> 중에서 -


딸부잣집인 내 어린 시절에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그럴거라고 추정되는 기억이다.
밥에 김치뿐이지만 여덟이나 되는 많은 자식들 입에, 끼니를 거르지 않기 위해 외벌이로 홀로 힘겨운 돈벌이를 하던 아버지.  

가끔 아주 가끔 고기반찬이 올라올 때가 있었다.  만만한 돼지 삼겹이나 닭고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삼겹살을 먹을 때 우리 형제들은 살코기만 골라 먹고, 물렁하고 하얀 비곗덩어리가 많은 부위는 떼어서 한쪽에 몰아놓는다.  그럼, 그걸 드시던 아버지.  삼겹살은 살코기와 비계의 비율로 먹어야 제맛일텐데, 살코기와 비계를 분리해서 따로 먹었다.  비계는 늘 아버지 차지였다. 

살갑거나 정이 많은 편은 아니셨다.  정이 있다 하더라도 표현에 무척 인색하셨던 아버지인데 간혹 생각이 난다. 
내 아버지도 어린 자식들을 위해 기름덩이를 일부러 드신건 아니었을까.  
내 자식 입에 들어가는게 내가 먹은것 보다 배부르고 뿌듯한 경험을 한 나는 이제서야 어렴풋이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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