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반장님. 하루 종일 어딜 그렇게 다니세요. 위에서 찾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조형사의 잔소리 소리가 핸드폰 밖에까지 들린다. TV 소리에 다른 손님들 웅성대는 소리까지 더해지자 그가 핸드폰을 들고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정민은 조용히 술잔만 기울인다.
“경기도 마두동에 위치한 탤런트 한석민씨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한씨는 해외 출장 중이어서 화를 면했지만 한씨가 기르던 애완견은 11층 아파트에서 덜어진 채 발견돼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사고현장에 이형중기자 연결합니다. 이기자.”
“네, 바로 이곳이 한석민씨의 애완견이 발견 된 장소인데요. 보시다시피 아직도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밤늦은 시간인데도 단지 앞은 소식을 듣고 달려 온 한 씨의 팬클럽 회원들과 주민들로 발 딛을 틈이 없습니다.”
이어서 개를 발견했다는 경비원과 주민들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어떻게 살아 있는 개를 창 박으로 던질 수가 있어요. 바리가 너무 불쌍하고요 오빠가 놀랄 걸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파요.”
화면은 잠시 강이지를 데리고 노는 한 청년의 모습에서 다시 기자로 넘어간다.
“경찰은 먼저 한씨의 소속사에게로 사건 발생을 알렸으며 한씨가 부재중인 관계로 현장은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한씨의 애완견은 발견 후 근처의 동물병원으로 옮겨졌으며 현재는 모 대학동물병원에서 치료중이나 중태입니다. 이상, 현장에서 이기자입니다.”
“경찰은 특히 애완견을 떨어뜨린 사실에 초점을 두고 한씨의 원한 관계에 수사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애완견 바리는 유기견을 구출해서 연예인들에게 분양해주는 모 프로그램을 통해 한씨에게 입양되었으며 그동안 성장과정이 모두 방영되는 등 시청자들의 높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서 더 큰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소속사는 촬영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여 한석민씨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며 한씨는 이틀 후에 귀국할 예정입니다. 다음 소식은…….”
잠시 조용했던 술 집안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사람들 목소리에 아까보다도 한층 더 시끄러워진다.
“참 살다 살다 별 꼴을 다 보네 그려. 마, 이제 개새끼 죽은 것까지 뉴스에 나온다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아저씨 하나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연신 혀를 차며 마주 앉은 동행이 따라 주는 술잔을 한 번에 들이킨다.
“자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다. 요새 비싼 개는 값이 몇 천은 된다하지 않나. 유명한 탤런트가 기르는 갠가 본데 오죽하겠나.”
“그래? 거참, 저 개 팔자가 나보다 낫네, 그려. 나 보다 나아.”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정민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봐요, 아저씨. 뉴스 잘 못 들었어요? 아니면 유기견이라는 말을 몰라요? 몇 천만 원은 무슨……. 버려진 개라고. 버려진 개. 길거리에 내다 버린 개요.”
정민이 비틀거리면서 일어나자 상대방도 지지 않는다.
“아니 이 양반이 미칬나? 마, 내가 버렸냐? 내가 버렸냐고?”
옆에 있던 다른 아저씨가 일행을 말린다.
“무하러 같이 일라나. 마, 그냥 술이나 들자.”
마침 바깥에서 있던 고반장이 들어온다.
“야, 정민아. 임마, 왜 이래.”
고반장이 정민을 막아선다.
“아, 이거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많이 취했나 봅니다.”
고반장이 억지로 정민을 앉히려고 애를 쓰지만 정민은 아직 할 얘기가 남은 듯 옆 테이블로 가려고 기를 쓴다.
“아저씨, 저 개가 아저씨 보다 뭐가 나은지 말 좀 해봐요? 네, 뭐가 났냐고요? 버려진 거요? 아니면 11층에서 떨어진 거요? 어느 쪽이 아저씨 보다 나은데요, 네?”
“정민아!”
고반장이 정민의 재킷 깃을 잡는다.
“젠장,”
정민이 기어이 빈 의자 하나를 차버리고 잡고 있던 고반장의 손을 뿌리치고는 밖으로 나가 버린다.
“저런, 젊은 놈이 어디서? 어미아비도 없나?”
“아이고, 손님. 제가 오늘 드신 거 안 받을게요. 그냥 이거마저 드시고 기분 좋게 집에 들 들어가세요. 네?”
정민과 싸움이 붙은 아저씨를 말리며 주인 집 아주머니가 소주 한 병을 더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굴러다니던 붉은 색 플라스틱의자를 다시 세운다.
“무슨 일이 길래 생전 안하던 짓을 다 하네.”
주인집 아주머니가 고반장에게 와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저 녀석이나 저나 오늘 좀 힘이 드네요. 이거 죄송해서 어쩌죠.”
고반장이 선채로 잔을 마저 비우고는 머리를 긁적인다.
“됐어요. 그냥 조용히 가요. 더 커지면 큰일 나. 계산은 내 달아 둘 테니 나중에 하고.”
아주머니가 내쫓듯 고반장을 문 밖으로 민다. 사람 좋은 고반장이 옆 테이블에 미안하다고 한마디 더 할만도 하건만 그냥 모른 척 나온다.
정민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녀석, 성질하고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고반장은 내심 다행스럽다.
‘어미아비도 없는…….’
사람들은 가끔 너무 슬픈 이야기를 들먹이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 사실 부모가 없다는 거나 두 분 중 어느 한 쪽이 안 계신 것만큼 마음 아픈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그런 얘기가 시비가 붙는 자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다니…….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상한 건 자신 하나로 족했다. 고반장은 어떤 날보다도 무겁게 느껴지는 발을 끌고서 집으로 향한다.
“이제 오시나?”
조심스럽게 문을 닫는 고반장의 등위로 노모의 목소리가 들린다.
“주무시지, 여태 뭐 하세요.”
일흔이 넘은 노모는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에도 잠자리에 들지 않고 자식을 기다리고 이었다. 흔히 말하는 월급쟁이라면 그래도 조금은 마음 편히 기다릴 수 도 있으련만 아들은 25년이 넘게 사람 찾고 잡는 일만 하는지라 그마저도 편치 않다.
“밥은 먹었는가?”
아들은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다.
“네.”
“은아 방에 좀 들어가 보소. 아까까지 울다 방금 잠들었소.”
“네, 그만 들어가서 주무세요.”
노모가 방으로 들어가자 고반장이 은의 방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간다.
은은 보기에도 많이 운 듯 눈이 뻘겋게 부어있다. 고반장은 은이 깰까 싶어 만지지도 못하고 그냥 가만히 보기만 한다. 자는 얼굴이 꼭 엄마를 닮았다.
고반장이 은이 엄마를 만난 건 4년 전이다. 어린 은을 데리고 시장에서 생선을 팔던 은의 엄마를 소개시켜 줬던 사람은 매일같이 장을 보던 노모였다. 나이 들어 무슨 결혼인가 싶었지만 지금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1년이 넘게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던 아내가 펴주는 따뜻한 잠자기도 좋았고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예쁜 딸아이가 내민 카네이션도 눈물이 나게 고마웠다. 어쩌다 시간이 나서 식구들끼리 밖에서 고기라도 한 젓가락씩 먹을 때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언제부턴가 은이 고반장을 서슴없이 아빠라고 부르고 아내와도 다정히 눈 마주치며 잠이 든 게 3년이 되자 그는 노모와 단 둘이 살았던 때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런 날이 계속될 것만 같았는데…….
‘은이 하나로도 됐다. 그래, 애 하나로도 고맙다.’
언제 깼는지 청이가 와서 고반장 옆에 배를 보이며 눕는다. 잠이 덜 깼는지라 눈은 뜨지도 못한다.
“녀석.”
고반장이 잠결이라도 식구를 아는 체 하는 청이가 기특해 배를 쓸어준다.
몇 달 전, 청이를 산 날이 죽은 아내의 소상이었다. 그날따라 고반장은 산을 내려오면서 울음을 참으려고 애를 쓰는 은이 더 안쓰러웠다. 원래 밝은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활발해지고 있었는데 엄마를 잃은 후로는 얌전하던 아이가 더 얌전해졌다. 그런 은이 잠깐 시선을 주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청이였다. 고반장은 두 번 생각 할 것도 없이 청이를 샀다.
“아빠랑 할머니 말씀 잘 듣고. 그리고 울지 말고 알았지? 은아?”
아내가 은에게 같은 말을 하길 몇 번.
“미안해요, 당신. 정말 미안해요. 죄송해요, 어머니. 이럴 줄 알았으며…….정말 이럴 줄 알았으면…….”
죄송하다는 말이 다시 몇 번. 아내는 어린 자식을 두고 편히 가지도 못 했다.
“거, 사람. 뭐가 그렇게 불안해서…….”
고반장은 아내의 마지막 모습이 생각나 숨을 삼킨다.
3년뿐이었다. 고반장이 아애와 산 건 3년뿐이었는데도 그 3년은 고반장이 아내와 살 지 않았던 40년보다도 더 깊게 새겨져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나 지워 지지가 않는다.
고반장이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려 입술을 물어보지만 청이의 배를 쓰다듬는 그의 손 위로 이내 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