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은 분명 비어있다. 그런데도 정민은 이상하게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그는 그곳에 고반장과 자신 둘 뿐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누군가가 자신을 보는듯한 느낌을 떨쳐버리기가 힘들다. 딱히 어느 한 방향에서만 느껴지는 시선이 아니다.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는 십자가에서부터 양 옆으로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에 이르기까지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곳에서부터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또각또각.
정적을 깨고 들려오는 구두소리에 두 사람의 고개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모아진다. 한 여자와 사제복을 입은 남자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럼,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네.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남자가 여자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이고는 여자가 떠나자 바로 두 사람에게로 몸을 돌려 온다.
“안녕하십니까? 마틴 신부입니다.”
신부가 손을 내민다. 고반장이 마틴 신부가 내민 손을 먼저 잡는다.
“네, 안녕하십니까, 신부님.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레지나 수녀님을 엄청나게 바쁘게 만드신 분들이죠. 덕분에 이제 막 푼 짐을 다시 싸게 생겼습니다. 하하하.”
내용은 그리 웃을만한 내용이 아닌듯한데 그는 정말 즐거운 듯이 웃는다.
“리디아를 만나러 오신 거라면 지금 여기 없습니다. 학교에 갔으니까요.”
그가 여전히 웃는 낯으로 두 사람에게 먼저 채희 얘기를 한다.
“학교에서 오려면 아직…….”
“저, 그게 채희가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고반장이 마틴 신부의 말을 끊는다.
“그것 때문에 레지나 수녀님을 보러 온 겁니다. 지금 …….”
“리디아, 어디 있습니까?”
잔득 가라앉은 목소리. 순식간에 굳어진 그의 얼굴이 아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 같이 변한다.
“채희는 괜찮습니다. 어디 다치거나 그런 게 아니라…그게…….”
고반장은 말을 다 하기가 어렵다. 도대체 이 신부가 채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또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를 그로서는 알 수가 없으니 어디까지 말해야 한단 말인가.
“병원에 갔군요, 리디아가. 그 강아지를 보러……. 맞습니까?”
신부도 알고 있다. 고반장과 정민을 혼란스럽다. 도대체 누가 얼마나 알고 있다는 말인가?
“알아야겠습니다.”
정민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정민은 정말 알고 싶다. 채희가 누구인지, 왜 집이 아닌 성당에 있는지, 어제 만난 수녀와 지금 눈앞에 있는 신부가 아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전부 다 알고 싶었다.
“레지나 수녀님은 지금 여기 없습니다. 곧 오시겠지만, 먼저 자리를 옮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가 고반장과 정민을 안내하며 성당 지하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을 내려가는 세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성당 안을 맴돌더니 곧 사라진다.
“무엇을 알고 싶다는 말씀이십니까?”
의자에 앉은 두 사람에게 녹차 티백이 담긴 종이컵을 내밀며 마틴 신부가 묻는다.
“물으시는 분은 얼마나 알고 계신지를 먼저 묻고 싶군요.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정민이 반문한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분위기에 고반장이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
“신부님, 혹시 오해를 하실 것 같아서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나 이 친구나 지금 저희가 맡고 있는 사건에 채희를 끌어들일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건 그냥 채희, 채희 자체입니다.”
고반장이 부드럽게 말한다.
“알고 싶은 게 그거라면 그거야 말로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전 리디아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으니까요.”
마틴 신부는 어느 새 두 사람을 처음 만났던 그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언론에 공개할 수도 있습니다.”
소파 뒤로 몸을 기대며 정민이 마틴 신부를 향해 미소를 짓는다. 정민이 웃는다. 고반장은 오히려 그게 더 위험 신호라는 걸 알고 있다.
“아까 저희 때문에 수녀님이 바빠지셨다고 말씀하셨죠?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짐을 쌓으셔야 된다고요. 그 얘기는 천주교 주교회에서도 채희를 알고 있다는 말씀, 아닙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거처를 그렇게 쉽게 옮기실 수는 없지요.”
정민이 마틴 신부를 향해 더 크게 웃어 보인다.
“언론에서 아주 좋아할 겁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신비로운 소녀를 천주교 측에서 아무도 모르게 몰래 보호하고 있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이만한 얘깃거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언론뿐이겠습니까? 사실로만 확인된다면야 정부 측에서도 관심이 없지 않을 겁니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 대통령들도조차 휴가 때 자신들의 애견만은 꼭 끼고 다니는 세상인데, 채희에게 대통령 품에 안긴 개 사진 하나만 보여준다면야 누가 알겠습니까? 대통령이 애견을 쓰다듬으며 서슴없이 자신의 측근들이나 각국정상들에게 애기한 대화 내용을 모두 알 수 있을지. 뭐, 사실 여부야 이미 알고 계신 그대로고요, 안 그렇습니까?”
고반장도 짐작 못 했던 부분은 아니지만 막상 정민의 입에서 말로 들으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심각해 진 건 고방장 뿐이 아니다. 정민의 말을 들은 마틴 신부의 얼굴에는 고뇌하는 빛이 역력하다.
“리디아를 생각하시는 분들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제 그냥 돌아가신 거라고요. 제가 틀린 겁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게 리디아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 될지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까?”
“알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성당에서 채희를 데리고 있는 이유가 제가 상상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면 ……. 채희를 데려가겠습니다.”
쉬지 않고 이어가던 두 사람의 대화가 갑자기 뚝 끊긴다. 정민의 마지막 말에 겉으로는 고반장이 놀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말을 한 당사자가가 더 놀라고 있었다.
“정민아.”
고반장이 정민을 부르는 것과 비슷하게 마틴 신부도 입을 연다.
“보호자가 있는 아이를 어떻게 데려가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마틴 신부의 말에 고반장과 정민 모두가 또 한 번 놀란다.
“채희에게 보호자가 있습니까?”
“어딥니까?”
고반장과 정민이 각각 다른 걸 동시에 묻는다.
“휴.~~~”
마틴 신부가 긴 한숨을 내뺏는다.
“다들 좀 진정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가 눈을 감고는 깊게 숨을 몇 번 들이킨다. 가빠진 호흡을 가라앉히는 게 쉽지 않은 듯하다. 눈을 뜨고서도 한참을 망설이는 듯 여러 번 숨을 들이 마시던 그가 결심이 선 듯 두 사람을 똑바로 마주 본다.
“알겠습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만 그 전에 약속해주십시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리디아를 보호해 주신다고. 이건 언론이나 교구나 어디 한 군데를 지정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모든 것에서 부터입니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건 그것뿐입니다.”
마틴 신부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그가 교구를 언급한 것이 뭔가 석연치 않았지만 채희를 보호한다는 것이야 말로 두 사람이 원하던 바이므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리디아에 대해서 모른다는 말씀은 거짓이 아닙니다. 제가 알고 있는 건 리디아의 극히 일부분입니다. 리디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본인 말고는 아무도 모를 겁니다.”
말을 꺼내는 그의 모습에서 리디아를 향한 연민의 마음이 느껴진다.
“한 시골 마을이 있습니다. 세상과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잘 가꾸어진 땅은 매해 풍성한 곡식을 만들고 마을 사람들끼리는 서로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가까우니 세상 일 좀 모르는 게 무슨 대수겠습니까. 혹시 농사가 잘 안 돼도 딱히 걱정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을 땅의 대부분은 그 마을에서도 제일 좋은 산 중턱에 살고 있는 한 홀아비 농부의 소유인데 땅을 워낙 싼 값에 빌려주는데다가 흉년이 든 해에는 그도 안 되는 값을 받으니 그것만으로도 땅을 빌린 사람들에게는 큰 짐을 더는 샘이었죠. 그런데 아들 하나와 내내 혼자 살던 그 양반이 아들이 다 커서 대학에 들어가자 재혼을 했습니다. 그쪽에는 고등학교 다니는 남자아이 한명과 여자 아이 한명을 데려왔는데 둘 뿐이던 집에 식구가 금방 다섯이 되었지요. 그리고 대학에 다니던 아들은 졸업하자마자 같은 동네에서 자란 아가씨와 결혼하고 곧 아이도 낳았습니다. 그때까지는 아무 일 없이 그 집도 그 마을도 평안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첫 여름방학이 되기도 전에 아들과 며느리가 그만 교통사고로……. 모두들 충격이 컸습니다. 마을 사람들까지, 전부. 다 한 가족같이 지냈으니까요. 아들을 잃은 노인은 그나마 남아 있는 손녀 때문인지 처음에는 기운을 좀 차리는 듯 했다가 두 달도 체 못가서 그만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린 손녀가 동네에 이상한 말을 하고 다녔습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먹는 밥에 이상한 약을 탄다고 할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면서 동네를 돌아다녔죠.”
“이럴 수가…….”
고반장은 기가 막혔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두 분이 보시기에 마을 사람들이 아이의 말을 믿었을 것 같습니까?”
고반장과 정민은 마틴 신부가 묻는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두 분이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아이의 말을 믿었습니다. 워낙 영리한데다가 어렸을 때부터 남들이 모르는 일을 족집게처럼 알아맞히곤 했으니까요. 그리고 할머니도 마을 사람들이 아이의 말을 믿어 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죠. 그리곤 아이가 학교 간 사이에 아픈 남편의 병문안을 핑계 삼아 방문한 친척들을 대접한다며 음식을 먹을 자리를 제공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는 아기가 태어 날 때부터 그 집에 있었던 개 한마리가 이미 목에 줄이 감긴 채로 나무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오히려 그 때를 맞춘 거죠.”
“어떻게 그런 일이…….”
고방장은 믿을 수가 없었다.
“아이의 비명소리에 마을 사람들이 달려 왔을 때는 이미 상황을 돌릴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마을 사람들이 아이를 그 집에서 데리고 나온 그날 노인은 숨을 거뒀습니다. 미망인은 서둘러 장례를 치루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남은 재산을 정리해서 마을을 떠났고요. 땅을 잃은 사람들도 곧 마을을 떠났죠. 무얼 할 수 있었겠습니까? 오히려 그 미망인이 아이를 찾으러 온다면 법적으로 당연히 보호자니 내주어야 할 판인데…….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아이의 고모가 아이를 찾으러 마을로 왔습니다.”
“레지나 수녀군요. 채희를 찾아 갔다는 고모.”
정민이 고개를 숙인 채 묻는다.
“채희의 말을 믿지만 채희가 힘들어지니 사실을 밝힐 수도 없고 설사 밝힐 수 있더라도 자신의 친어머니니 쉽지가 않았겠군요. 그쪽에서 채희를 버리지 않는 이유는 채희가 아무 상관없게 되면 그야말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니 그건 절대로 안 될 일이고 혹시 채희에게 남은 재산이 있다면……. 그도 포기할 수는 없었겠지요.”
정민이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짐작되는 나머지 일들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테이블 위로 꼭 쥐고 있는 그의 손이 가늘게 떨린다.
“아니면 둘 다이거나.”
꽉 다문 입술 사이로 힘겹게 말들을 쏟아내던 정민이 고개를 들어 마틴 신부를 본다.
“처음 사람들이 리디아를 봤을 때 사람들은 모두 아이가 피를 흘리는 줄 알고 기절할 만큼 놀랬다고 하더군요. 피 흘리며 죽은 개에게서 역시나 피범벅이 된 아이를 떼어 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고……. 그날 아이가 지른 비명소리가 온 산을 울리고도 마을 사람들 귀에서 며칠을 맴돌았다고요. 레지나 수녀님과 제가 리디아를 찾아 갔을 때 리디아는 꼭 짐승 같았습니다. 옷도 그 때 입었던 옷, 그대로 입고 있었죠. 먹지도 않고 씻지도 않고 정신을 잃었다가 일어나면 머리를 벽에 찧고 손가락부터 어깨까지 물어뜯어서 양 팔은 다 상처투성이였습니다. 하지만 리디아를 데리고 계셨던 노부부도 리디아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리디아를 건드릴 수조차 없었으니까요. 그런 리디아를 다시 밖으로 내놓은 건 레지나 수녀님입니다. 지금 리디아의 몸에는 상처 자국이 거의 없지만 레지나 수녀님 몸에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많습니다. 리디아가 회복 된지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변명처럼 들리는군요.”
“변명이 아닙니다. 레지나는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리디아를 보호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거기다 자신의 어머니에게서까지. 레지나가 집을 비운 건 1년도 체 안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만하세요, 마틴 신부님.”
세 사람의 고개가 소리가 난 문 쪽을 향해 일제히 돌아간다.
“리디아 어디 있습니까?”
고반장이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선다.
“S동물병원에 있습니다. 바리를 보고는 움직이질 않아서…….”
그녀가 고반장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몸을 돌려 뛰기 시작한다.
“레지나 수녀님.”
마틴 신부가 그녀를 부르며 계단을 뛰어 오르고 그런 그의 뒤를 고반장과 정민이 뒤따른다.
“잠시 기다리세요. 차 갖고 오겠습니다. 같이 가셔야지요. 혼자서는 못 가십니다.”
막 성당 문을 나가 계단을 내려가는 레지나 수녀를 마틴 신부가 잡고는 돌려 세운다.
“마틴 신부님의 말을 듣는 게 아니었습니다. 어제 밤에 떠났어야 했던 것을…….”
“그랬다면 당신 어머님의 일도 아무도 몰랐겠지요? 어제 밤에 떠나야 했었다고요? 어제 밤일이라면 오히려 제가 더 아쉽습니다.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결코 채희를 데려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보호자는 접니다.”
“아니, 당신 어머니겠지. 그리고 세상에서 그 사람만큼 채희에게 위험한 사람이 또 있습니까?”
“정민아.”
고반장이 정민을 말린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레지나 수녀를 마틴 신부가 잡고 있다.
“정민아. 그만 해라. 채희한테 가는 게 먼저다.”
고반장이 혹시 정민이 더 뭐라고 할세라 그의 팔뚝을 잡고 먼저 계단을 내려가는데 그의 잠바 주머니에서 요란한 진동이 느껴진다.
“네. 일산 경찰서……. 뭐라고?”
그가 계단을 다 내려가지 않고 중간에 서서는 전화기를 반대편 귀로 고쳐 받는다.
“정말이야? 알겠어. 알겠다고.”
그가 알겠다는 말만으로 전화를 끊고는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레지나 수녀와 마틴 신부를 향해 몇 계단을 거슬러 올라간다.
“죄송하지만 병원은 두 분이서 먼저 가셔야겠습니다.”
고반장의 말을 들은 정민이 급히 계단을 뛰어 오른다.
“무슨 일이야?”
정민이 묻는다.
“CCTV를 알아 본 사람이 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