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와~~~ 그런데도 가?"가 아니면 "돈 아깝게 그런 데를 왜 가?"
솔직히 나도 몇 년 전까지는 후자였다.
도통 잘 알지도 못하는 그림 앞에 서 있는 것이 바보같이 보이기도 하고 아니면 모르면서도 아는 체 하는 것 같기도해서 미술관보다는 항상 동물원을 택했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림도 단순히 보는 것에서 발전해 읽고 느낄 수 있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굳이 '인상파'나 '야수파'같은 부류나 이론을 자세히 다 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냥 보고 그 때 그때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그것도 힘들 것 같다면 그림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정보를 갖고 가거나 책을 읽고 가는 것도 좋은 방법 중에 하나다. 아쉽게도 이번 관람은 너무 갑작스러워서 미처 정보를 얻지 못하고 가서 처음에 좀 당황했지만 다행히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서 그나마 도움이 됐다. 만약 둘이서 가는 관람이라면 오디오 가이드 하나로 이어폰을 하나씩 나누어 들으면 금상첨화다.
몇 가지 유명한 작품들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난 밀레의 <만종>이 제법 크기가 큰 작품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작품의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갖고 있는 은은한 노을 빛과 농부 부부에게서 나오는 경검함은 결코 작지 않다.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은 거의 실사 크기로 큰 캔버스에 비해 입체감이 없어서 보고 있으면 배경과 소년이 따로 노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 고흐의 <고흐의 방>은 구도 자체부터가 정상적이지 않게 기울어져있고 쏠려있어서 마치 4차원 세계의 방 같고 고갱의 그림은 자세히 보면 자화상의 얼굴표정과 <타히티의 여인>에 그린 여인의 표정이 거의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얼굴은 전혀 다른 얼굴이지만 미소 없이 무표정한 입매와 정면을 향해서 약간 째려보는 시선이 방향만 다르고 거의 똑같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그림은 루소의 <M부인의 초상>이다. 참 못 그린 그림이다. 실제로 루소는 원래 화가는 아니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은 주인공의 성별부터가 명확하지 않다. 자세히 보면 우산을 들고 있는 엄지 손가락 위에 다시 그려진 엄지 손가락이 보이는데 이 그림을 처음 공개했을 때 비례며 구도가 하나도 맞지 않다는 악평들이 많아서 나중에 수정한 부분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엄지손가락 하나만 수정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림이 주는 몽환적인 분위기나 언밸런스한 소품들(정글 속의 고양이나 양산이 아닌 우산을 들고 있는 것 등)은 확실히 다른 그림들과는 구별된다. 잘 그린 그림은 아니지만 재미있는 그림이고 그만큼 기억에 오래 남을 거 같다.
생각했던 것 보다 그림이 많지는 않았지만 다리 아프지 않게 한 나절 보기에는 적당하고 작품수에 비해서는 다양한 화가와 화법을 볼 수 있어서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친구와 같이 있어서 더 좋았고 올 때 빈손으로 오지 않아서 먼 길 다녀온 보람도 있었다. 물론 여전히 돈과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지금 예술에 전당에 전시된 그림들은 전시회 이후로는 파리에 가지 않으면 다시는 마주 볼 수 없는 그림들이다. 그렇다면 그 때 들여야 하는 돈과 시간은 지금 투자하는 돈의 몇 십 배다. 오히려 이번 전시회는 규모와 분위기가 전문가 보다는 그림을 잘 모르거나 전시회장과 익숙하지 않은 분들께서 쉽게 그림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만 하다. 전시회는 9월 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