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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를 찾아서 - 할인행사
마크 포스터 감독, 조니 뎁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Finding Neverland
“Just" or "Not just"
요정과 마법가루, 악어와 갈고리 손,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아이와 그 아이가 사는 곳 네버랜드. 자, 이 아이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 아마도 이 아이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피터 팬!” 탄생된 후로 결코 사라지지도 변하지도 않는 이름. 단지 그 이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잠옷만 입은 채 런던의 빅벤 위를 날아다니는 게 상상이 됩니다. 마치 상상의 나라로 들어 갈 수 있는 주문과도 같은 이름 “피터 팬” . 바로 그 “피터 팬”이 만들어진 과정을 이 영화 <Finding Neverland>에서 만났습니다.
사실 <피터 팬>에 이런 뒷이야기가 있었는지 몰랐던 저로서는 영화의 소재만으로도 충분히 흥미가 갔습니다. 거기다가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매력 만점의 남자배우인 조니 뎁을 <피터 팬>의 저자인 배리 역으로 만날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였습니다. 정말 이 배우는 보헤미안 느낌이 그대로 나는 해적 역에서부터 말쑥한 정장차림의 런던 신사까지 안 어울리는 역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영화가 배리를 지적인 작가로서 보다는 순수함을 지키려는 사람으로서 더 가까이 바라봤기 때문에 조니 뎁에게 이 배역이 잘 어울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조니 뎁의 다른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 영화의 가중 큰 특징은 배리가 순수하고 천진한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그 속에서 영감을 얻고 해적과 요정을 상상하고 하늘을 날고 칼싸움을 하는 등 상상의 나래를 펴는 장면이 현실과 상상의 구분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묘사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마디로 연출이나 편집에서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없습니다. 이야기의 흐름과 표현 기법이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관객이 상황에 따라 배리도 되고 실비아도 되고 아이도 될 수 있게끔 감정이입을 적절히 유도하는데요, 그 부분이 절대로 과장되게 미화되지 않았다는 점이 특히나 이 영화를 더욱 돋보이게 했습니다.
영화는 눈앞에 있는 현실을 못 본체 하라고도 또 상상의 나라가 실제로 눈앞에 있다고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상상하라. 그리고 그냥 믿어라.”라고 얘기하는데요, 영어 자막으로 보면 이 부분이 더 명확해 집니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 똑같은 단어가 전혀 다른 뉘앙스로 사용되는데 바로 “just"입니다.
배리가 애견 포르도스를 거대한 곰이라고 상상하면서 함께 춤을 추는 장면에서 피터는 배리를 비웃습니다.
피터 : It's just a dog. (그냥 개잖아요.)
배리 : Just a dog? (그냥 개라고?) Just? (그냥?) That's like saying "He can't climb that mountain, He's just a man." Or "That is not a diamond, it's just a rock." (그건 “사람은 산을 오를 수 없어”나 “다이아몬드는 돌 일 뿐이야” 라고 말 하는 거랑 같지.)
Just……. (그냥이라는 말은…….)
이 부분에서 “just”는 상상을 가로막는 위험한 의미로 표현됩니다. 의미가 있거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조차 “단지, 그냥, 그저…….” 등등의 별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는 말로 표현됐던 이 “just”가 마지막에서는 전혀 다르게 사용됩니다.
배리 : She went to Neverland. You can see her if you want to anytime. (엄마는 네버랜드로 가신거야. 넌 언제나 찾아가서 엄마를 만날 수 있단다.
피터 : how? (어떻게요?)
배리 : By believing, Peter. Just believe. (믿음으로써, 피터. 그냥 믿는 거야.)
같은 “just” 지만 여기서는 상상을 가로막는 단어가 절대 아닙니다. 바로 상상을 시작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단어.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고 없는 것도 만들 수 있는 상상의 시작으로 표현되니까요. 그냥 믿으라고요.
모든 아이들은 결국 영화 속 배리가 실비아의 큰아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어느 순간 순식간에 어른이 돼버립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아이로 돌아 갈 수 없죠. 한마디로 다시 순진해 질 수는 없습니다. 몰랐던 걸을 알 수는 있지만 다시 몰랐던 것으로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순진했었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서 이미 어른이 돼 버린 내가 굳이 아이로 돌아 갈 필요는 없습니다. 순진할 수는 없지만 순수할 수는 있으니까요. 그리고 순수하다는 것은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가능합니다. 이건 내가 지금과 현실을 다 알면서도 충분히 다른 무엇을 꿈꾸고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그건 때때로 갑갑하게만 느껴지는 현실에서 날 보호해주는 보호막이 돼주기도 하고 반대로 현실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비상구가 돼주기도 하죠. 그리고 순수하다는 누구나 어떤 장소에서나 또 어느 시간에서나 가능합니다.
어떻게요? “그냥 믿음으로써.”
어때요? Neverland를 믿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