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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어떤 얼굴로 먹고 있을까?
헴미 요 지음, 최성현 옮김 / 삼신각 / 199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영숙 씨 말대로 왜 이렇게 좋은책은 빨리 절판되어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 영숙 씨의 말에 따르면, 이 좋은 책이 출판사에 재고로 7,000권쯤 쌓여 있다는데 그래서 중고 시장을 뒤져 샀다고 하는데. 읽는 내내 마음이 경건해지고 나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기자의 눈으로 찾은 세계 곳곳에 식(食).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기억이 잠재되어 있고 문화가 숨쉬고 있는 식(食)에는 미각을 사로잡는 달콤함과 넘쳐 흐르는 폭식은 없다.
식에는 삶의 아픔이 가득차서, 그것이 맛있는 것인지 맛없는 것인지 자각하지 못한 채 생존과 삶을 지탱하는 하나의 의식이 되어 버렸다.
방글라데시에서, 구 유고에서, 소말리아에서, 체르노빌에서, 한국에서...
음식찌꺼기를 먹는 사람들, 인건비보다 비싼 고양이용 통조림을 만드는 사람들, 인육, 네스카페에 팬이 되어버린 필리핀 원주민, 경제발전과 먹는 속도의 상관관계, 독일에서 팔리는 터키 음식 도나 케바프, 공연을 위해 먹지 않는 서커스 단원, 우간다의 에이즈 환자들의 고립된 식사, 러시아 군인들의 죽을만큼 배고픈 식사, 위안부 할머니들의 잊혀지지 않는 삶, 잊혀지지 않는 맛 등.
그가 찾아다닌 식(食)은 유희가 아니라, 생존이었고, 고통이었고, 강제였고, 억지였고, 슬픔이었고, 발버둥이었다. 묻는 이도 고통스럽고, 대답하는 이도 힘든. 밥통의 자유가 없는 세상. 진실된 눈으로 보고자 했기에, 진실을 글로 옮겼기에, 더 아팠고 쓰렸다.
잔반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잔반을 먹으며 생존하는 사람들에겐 먹다 버린 음식들은 돈이고 희망이다. 개발에 미친 국가들에서 버려지는 음식들은 굶주리는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양보다 차고 넘친다. 일본으로 팔리는 고양이 사료용 통조림은 제조 공장 노동자 월수입의 1/3. 노동자가 먹는 밥은 최고급 통조림보다 못하다.
군인들의 밥을 팔아 돈을 챙기는 러시아 관료들 덕분에! 군인들이 사망하기까지 이르렀으나, 변함없이 시중에는 군인들의 밥이 돌아다닌다.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거리로 나와 첼로를 켜는 어린 소녀. 그녀의 어머니는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본다. 고기를 먹기위한 몸부림. 손이 곱은 소녀는 누가 알아볼까봐 슬프다.
위안부 할머니가 일본으로 끌려가던 날 배 안에서 먹다가 빼앗긴 찹살떡. 연행 도중, 포장마차에서 먹었던 가케 우동. 한을 품은 할머니들이 눈물을 삼키며 먹는 밥.
15년이 넘은 이야기들이다. 작가가 발품을 팔아 눈으로 확인하고, 몸으로 느낀 식(食) 이야기.
진기한 식사처럼 보여도 이 세상에 진기한 식사가 하나도 없다는 작가. 그것을 먹고 있는데 충분한 이유와, 먹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에 관한 사연이 있단다. 보이지 않는 먹거리는 기억. 그 기억을 주인으로부터 나누어 받아 먹은 것도 있다.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고, 상상의 목구멍에서도 꽉 막혀 넘어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먹는다'는 '산다', '살았다', '살아야 한다'가 혼합된 처절한 행위이다. 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세계 어딘가에서 먹기 위해,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