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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란
현기영 지음 / 창비 / 2009년 8월
평점 :
사막 같은 시대에 '민주주의'라는 오아시스를 찾기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 그들이 있기에, 지금의 시대가 있고, 그들이 있었기에 많은 것을 얻어냈다. 하지만, 시대는 그들을 쓰다듬거나 위로하지 않는다. 알아주지도 않는다. 그저, 가끔 기억할 뿐이다.
'허무성' 강성인 운동권 학생이었지만, 사람을 동물보다 못한 짐승으로 만드는 모진 고문에 항복하고 말았다. 같이 활동하던 동지들의 이름을 줄줄이 뱉어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외면당한 채 가해자에 의해 조종당한다.
'김일강' 그는 자신을 고문한 가해자이지만, 이미 배신의 굴레에서 돌아올 수 없는 허무성에게는 벗어나지 못하는 거대한 괴물이다.
유학을 다녀오고, 교수가 되었다. 김일강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저항하지 못한다. 무섭다. 과거의 세상이 무섭고, 자신이 싸워서 이루려했던 세상이 무너져 가는 게 무섭다. 결국, 이루려했던 것들은 변절되고 기득권은 가해자가 되었던 사람들이 쥐었다. 세상에 돌아와 보니, 젊은이들도 과거의 고통과 역사의 아픔에 대해 알려 하지도 않고,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해결되지 않은 고통은, 정신적인 피폐함만 가중시킨다. 시대의 피해자들은,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뒷세대가 감싸 안고 도와줘야 할 몫임에도, 아무도 관심두지 않는다. 시대의 아픔을 개인들이 짊어졌건만 국가도, 사회도, 국민도 관심이 없다. 뱀처럼 악독하기만 한, 싸워 없애려고 했던 그들만, 배가 부르고 떵떵거리고 권력을 쥐고 있다. 이제는, 운동권이었던 동지들마저도 권력을 잡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감옥에 갔던 게 경력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허무성은 혼란스럽다. 다시 만난 사랑도 자기만의 세계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다. 마음 둘 곳도 마음 가는 곳도 없다. 그나마 '오유미'라는 빛을 만났을 때, 누군가에 의해 그의 순수성이 철저히 짓밟힌다. 오늘의 동료가 내일의 적이 되어버리는 시대에 그는 염증이 난다. 그가 싸웠던 대상 '박정희'를 강의해야 살아남는 시대에 봉착한 것이다.
그는, 결국 세상과의 단절을 선택하고, 그늘에 자신을 숨긴다. 중첩된 시대에 사는 그는, 마음을 치유하지 못한 채 변해버린 세상에 던져진 것이다. 아무도 그의 상처에는 관심이 없고, 젊은이들은 신자유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그는 희망을 위해 싸웠는데, 그가 쟁취하려 했던 희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게 아프다. 하지만, 아프다고 말해도 아무도 관심이 없다.
386세대의 외로움과 적막함. 빼앗겨 버린 열정과 정열. 잊혀 가는 시대가 되어버리는 존재들.
허무성은 그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지금 우리가 이 시대에 얻으려 하는 것은 무엇일까? 돈? 일자리? 안정된 생활?
그것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뉴스는 연일 경제, 흑자, 적자를 떠든다. 그게 삶의 전부인 것처럼. 소비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 돈은 인생 최고의 목표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많다. 돈을 얻지 못하면 무능력해지는 것이니.
우리 선배들이 싸워서 얻으려 했던 것이 이런 것들이었을까? 자유를 갖고도 자유를 버리는 사람들.
나도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