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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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한 권의 책이 주는 감동과 즐거움, 그것은 매번 있는 호사가 아니다. 가끔은, 이런 책에 나의 시간을 낭비했다고 화를 내기도 하고, 아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놀라워 하기도 한다. 사실, 좋은 책은 자신과 딱 들어맞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칭송하는 고전도 자신이 이해할 수 없다면, 그 뜻을 알 수 없다면 개 발에 편자나 다름없다. 하지만, 자신에게 딱 들어맞고 두고 두고 읽고 싶은 책이 나타난다면 사람들이 잘 읽지 않고, 알지 못하는 책이라도 독서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자~ 여기에 유시민 만의 기쁨이 있다. 어려워 보이는 책들이라고 겁먹지 말자. 그는 이 어려운 책들을 쉽고 명쾌하게 요약해준다. 자신만의 생각도 양념으로 곁들여, 읽고 싶은 책들로 만들어준다. 그것도 힘이라면 힘. 그의 설명을 듣고 있자면, 꼭 이 책들만은 읽어봐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불끈 솟아오른다. 만만한 책이 없다. 그는 오래된 지도라고 펼쳤지만, 그 오래된 지도에 표시된 다시 가는 목적지는 모두에게 종착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매력이라면 매력. 힘을 내서 끝까지 따라간다면 그가 가는 대로 어설프지만, 즐겁게 종착지에 다다를 수 있다.

그는 잠시 길을 잃었다. 그래서, 오래된 지도 같은 책들을 펴쳐 들었다. 그는 세상이 두려울 때마다 책들에게 길을 물었다 한다. 다시 책을 펼쳐들었다. 그들이 줄 답을, 이미 알고 있지만 다시 한 번 다짐할 답들을 가슴에 되새기고자.

도스프예프스키의 <죄와 벌>, 리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 칼 마르크스, 흐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토머스 맬서스 <인구론>,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대위의 딸>, 맹자의 <맹자>, 최인훈의 <광장>, 사마천의 <사기>,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그 제목만 봐도 질릴 만한 책들도 있다. 논술을 위한 필독서라고 몇 십 년 동안 리스트에 올라도 잘 읽지 않게 되는 책들. 어쩌면, 강요된 독서 속에서 우리는 정말 필요한 책들을 밀어두고 재미와 즐거움을 좇았던 것은 아닌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는 맹자를 읽으며 진정한 보수주의자를 논한다. 재미있는 점은 그가 이렇게 한 권 한 권 이야기를 들려주듯 짚어주는 책들 안에 그의 정치적 생각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맹자>에서도 우리는 그의 생각을 살짝 엿볼 수 있다.

   
   보수가 이념이 아니라 "연속성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전통적인 제도와 관습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라면 맹자는 정말 멋진 보수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다. 흔희들 보수가 물질적 이익과 세속적 출세를 탐낸다고 하지만 진짜 보수주의자는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탐한다. 진짜 보수주의자는 다른 누군가와 싸우는 전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에 정체성에 닻을 내린다. 진짜 보수주의자는 타인을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을 성찰한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누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도 실의에 빠지지 않으며 깊은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난다. - 131p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를 만나다 
 
   


그가 바라는, 자기를 보수주의자라고 논하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그런 모습인 듯 싶다. 또한, 우리가 통상 잘못알고있는 보수주의자라는 의미와 개념에 대해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이 구절을 되새기며 읽다보니, 진정한 보수주의자를 발견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도 든다. 우리나라에서 '보수'라고 자처하는 이들에게서 느껴지지 않는 개념이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던 나는, 이것을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항소이유서' 마지막 단락에 다시 인용했다. 그 '항소이유서'가 '불법 복사'되어 널리 나돈 탓에 네크라소프는 대한민국에서 제법 유명한 시인이 되었다. - 183p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슬픔도 힘이 될까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 실린 서문. 그리고 이 책을 쓴 작가 '솔제니친'에 관한 이야기. 생생이 묘사된 수용소에서의 삶, 생존, 그리고 노동, 규칙에 복종하는 생활. 수용소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이는 한 남자의 이야기에서 그는 '군대'를 발견하고, 슬픔과 노여움도 느낀다. 당시 소련 체제를 전면적으로 비판한 이 소설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솔제니친 또한, 이 소설을 쓴 죄로 20년 동안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이 책에 대한 그만의 애정은 마지막에 인용한 소설의 한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궁금하시다면, 읽어보시라~

다른 책들에 대한 설명과 그의 사유도 인상깊었지만, 가장 그의 고통을 잘 드러낸 책에 관한 이야기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이다. 그는 언론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카타리나 블룸을 이야기 하며, 분노에 차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직시하라고 말한다. 한 기자에 의해 철저하게 왜곡된 카타리나 블룸의 삶, 허위 보도의 피해자가 되어 대중에게 질타받는 카타리나 블룸. 한 명의 평범한 여자에게 언론이 끼친 악위적인 기사. 견디지 못한 그녀의 살인,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에서 그녀가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느낄 수 있다. 진실은 어디에도 없었고, 더럽혀진 명예만 있었을 뿐. 얄궂게도 그가 이 책에 대한 초고를 쓰고 나서 한 달이 되지 않아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언론의 악의적 왜곡 보도에 대해 말한다. 그가 빼앗긴 권리 마저도. 우리가 보고 읽는 것은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만들어낸 기사에 의해 불신하고 의심한다. 그렇게 고통받는 이들은 많다.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소개하는 책 면면에는 그의 생각들을 읽을 수 있는 설명이 등장한다. 그가 걸어온 길이 왜 그렇게 형성되었는지도 살짝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을 통해 독자만이 누릴 수 있는 사유도 선물 받을 수 있다. 어려운 책들이라 하여,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그의 간결하고 설명은,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어렵지 않도록 친절하다. 그의 지도에 표시된 책들을 나도 체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엔 그의 사유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사유를 만드는 걸로 말이다.

그는 이 책을 쓰고 난 후, 길을 찾았을까? 앞으로의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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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의 탐닉 - 김혜리가 만난 크리에이티브 리더 22인 김혜리가 만난 사람 2
김혜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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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내면을 들여다본 적이 있나요? 겉핥기식 대화가 아니라, 진지하고 풍성한 대화를 나누어 본적 있나요? 가십을 궁금해하기보다, 그의 생각과 철학을 궁금해한 적이 있나요? 우리는 그들의 무엇이 궁금한 건가요?

김혜리가 만난 사람들은 각 분야에서 독보적이며, 독특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독보적이라고 말하지도, 독특하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을 뿐. 뚜렷한 철학과 주관이 있으며, 자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아는 이는, 대답도 막힘없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기에,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어려울 것도 힘들 것도 없다.

가끔 인터뷰를 하다 보면,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꾸미듯 말하는 이가 있다. 그럼, 인터뷰를 진행하는 이는 당장 알아챈다. 이 사람이 얼마만큼 보여주고 싶은지,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말하는 사람에게 속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도 기자의 몫이리라. 김혜리는 외면 풍경만 말하고 지나칠 수 있는 이들에게, 내면 풍경을 끌어내기 위해 밀도 높게, 깊은 중심으로 돌진해갔다.

김연수, 김제동, 김태호, 정우성, 장성일, 김명민, 신형철, 유시민, 김혜자, 김동호, 류승범, 김경주, 신경민, 방은진, 정영목, 하정우, 고현정, 정두홍, 정재승, 최규석, 김미화, 장한나.

이들에게 공평한 공을 들였고, 이들에게 얻고 싶은 답을 이끌어냈다. 연예 가십, 알고 싶은 것만 인터뷰하는 일반 기사와 달리 그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 인터뷰는 '한 사람'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인간이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자기만의 정체성을 쌓아가는 한 인간. 그 인간에 초점을 맞추니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가 진지하고 특별하다.

김제동이나 고현정처럼 이슈가 있는 대상에게는 무례하지 않고 정중하게 질문을 던진다. 그들에게 따라다니는 이슈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입장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들을 수 있다. 김태호의 인터뷰는 <무한도전>과 닮아있다. 엉뚱하지만, 분명한 자기 철학. 자기만의 의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단호할 정도로 분명하게 말하는 그의 답에서 <무한도전>의 향기가 폴폴 난다. 김혜자의 소녀 같은 성격, 장한나의 끝날 줄 모르는 도전과 질주, 방은진의 또 다른 꿈. 때론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을 망각한 듯한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동화되어 간다. 

장한나의 마지막 대답처럼, 이들은 모두 자기 안에 불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차가운 불', '뜨거운 불'. '생각하는 불', '실천하는 불'. '활활 타오르는 불', '따뜻하게 밝히는 불'. 그들의 성격과 삶만큼 불도 가지각색이다. 김혜리는 그들의 불을 들여다 보는데 열심이다. 그들을 세밀하게 추적한 후, 다가선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소개도 많은 공을 들였다. 그녀는 그들에게 애정을 갖고 다가갔다. 그렇기에, 그들의 이야기가 섬세하게 그려질 수 있었고 그들 또한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 같다. '진심의 탐닉' 그것은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과 어려움까지도 이해하고 다가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그들의 진심보다는, 우리가 알고 싶은 이야기만 들으려 했던 것은 아닌지. 

그들의 내면 풍경이 그래서 더 빛나고, 그래서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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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 상처에서 치유까지, 트라우마에 관한 24가지 이야기
김준기 지음 / 시그마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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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은 아주 천천히 형성되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 페이스 볼드윈

 

트라우마, 현대인이라면 트라우마의 그늘을 벗어나기 힘들다. 발버둥쳐도 트라우마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괴롭다면 맞써 싸우는 수밖에 없다. 고통과 대면하는 것이다.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은 트라우마의 종류와 그 트라우마로 나타나는 정신 상태, 삶에 미치는 영향들을 영화로 쉽게 풀이하고 있다. 어렵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쉽게 일상으로 돌아온다. 영화라는 쉬운 것이, 심리학이라는 어려운 것과 결합되어 트라우마에 대한 설명을 가볍게 또는 무겁게 풀어내고 있다.

 

가족이 죽은 비극 - 레인 오버 미, 밀양

사소한 상 - 붕대 클럽

무관심 -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

사고, 죄, 질병 - 21그램

사고와 죽음 - 위 아 마셜

실연의 상처 - 라비앙 로즈

불치병, 죽음의 공포 - 씨 인사이드

비뚤어진 부정 - 샤인

성폭행 - 여자, 정혜

폭행, 죽음 - 브레이브 원

전쟁 - 람보

어린시절의 상처 - 미스틱 리버

해리 현상 - 나비효과

일본 - 박치기

군대 - 용서받지 못한 자

부실 공화국의 사고 - 가을로

긍정적인 치유 - 포레스트 검프

내면과 내면이 만나 상처를 치유 - 굿 윌 헌팅

가족간의 소통 - 아들의 방

관계 속 교감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경쟁 사회 속에 가족 간의 서포트 - 미스 리틀 션사인

예술 - 포 미니츠

진실한 고백 - 휴먼 스테인

 

24가지의 상처에서부터 치유까지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삶에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 것들은 여기저기 널려 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고통과 상처는 부지불식간에 나를 덮치고 그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며 살 수 있다.
우리는 그 사건에 집중해야 할까? 치유와 상처에 집중해야 할까?

트라우마는 무엇보다도 이해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타인의 이해가 없다면 상처를 치유하기 힘들다. 트라우마 안에 갇힌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무기력하고 나약해져 있다. 이들에게 상처를 쓰다듬고 보듬어주는 행동은 큰 위안이 된다.
네 잘못이 아니라는 말, 네 탓이 아니라는 말.
여자들은 성폭력이 가장 큰 트라우마가 된다. 성의 나약함과 자신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수치심은 자신을 꼭꼭 숨어버리게 한다. 남자들은 강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기에 사고로 사랑하는 이가 죽었다는 고통도 이겨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상처를 닫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경우, 트라우마와 관련된 하나의 불씨가 당겨지면 걷잡을 수 없이 내면이 폭발한다.

사실 영화로 설명하는 트라우마는 간단하다. 영상으로 보이는 것이기에 이해하기도 쉽다.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작자는 전문적인 덧붙임을 한다. 트라우마의 종류와 전문적인 지식들을 늘어 놓는 것이다. 그것까지 읽고 나면, 트라우마와 그 현상 종류에 대해서 더 쉽게 이해된다. 

문제와 똑바로 대면하는 것이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방법이다.
그것들을 이야기해주기 위해 작자는 많은 예를 들어 쉽게 이야기하고 있다.
상처가 쌓여 병이 된다.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일상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일종의 정신병이다. 숨기려고만 한다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상처와 대면하라'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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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잡상인 - 2009 제3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우승미 지음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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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에게 삼류인생이라고 하는가? 팍팍하고 지리멸렬한 삶 속에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는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신을 방치하는 사람이야말로 삼류인생, 막장인생이 아닐까?

방송국에서 퇴출당하고, 극단에서도 뚜렷한 성과 없이 밀린 전직 개그맨 철이는 청년 백수다. 방구들 짊어지고 만화책이나 보고 비디오나 보면서 시간 보내기 일쑤. 그의 삶은 이렇다 할 전망도 희망도 없어 보인다. 화려한 미모를 자랑하는 왕년의 여배우 조지아 킴 여사, 철이를 키운 할머니. 집에서 빈둥대는 철이를 보다 못해 지하철 잡상인계의 전설 미스터 리에게 보내버린다. 스승으로 삼고 지하철계에서 돈 좀 벌며 인생을 살아보라고. 지하철에서 칫솔을 팔다가 만나게 된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미혼모 수지, 그녀를 만난 철이의 인생은 살짝 바뀌기 시작한다. 수지의 동생 효철,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그를 사랑하며 한집에서 복닥거리는 지효. 이들의 삶은 평탄해 보이지 않는다.

남들에게 갑갑해 보이는 일상이라도 그들만의 법칙과 행복이 숨어 있다. 철이는 느리지만 천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유쾌한 변화 말이다. 갑자기 개과천선해서 스타 개그맨이 된다거나 얼토당토 않게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이 된 건 아니지만, 타인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하고 행복을 찾아가는 행로를 시작한다.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미혼모 수지와 소통하게 되면서, 그는 조금씩 자신을 바꿔나간다. 그의 마음을 흔들리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철이 씨, 전에 나한테 물었지. 내가 효철 씨 사랑하는 거 맞느냐고, 혹시 동정하는 거 아니냐고."
"그랬지."
"동정이 나쁜 거야?"
"그럼. 나쁜 거지."
"어째서?"
"동정은 내가 그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거잖아. 너는 많이 아프구나, 나는 안 아픈데, 참 안됐다 얘. 그러니까 나쁜 거지. 아무리 같이 아파하는 척해도 고통은 공유할 수 없어. 고통은 온전히 당사자의 몫이라고. 사실은, 얘는 정말 불쌍해, 그래도 나는 얘보다는 덜 불쌍해서 다행이야, 그러면서 자기 위안을 느낀다고. 그게 동정의 본질이야."
"사랑은?"
"사랑은 서로 동등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거지. 너, 나 좋아해? 나도 너 좋아해, 이렇게 시작되는 게 사랑이잖아."
"나도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아. 사랑이라는 것, 늘 동정과 연민에서 시작돼. 누구에게나 삶은 고달픈 거잖아. 상대방의 고달픔을 보고, 너도 힘들구나, 너도 나처럼 아프구나. 그렇게 생겨나는 감정이 동정이고 연민이야. 타인에 대한 배려든 사랑이든 희생이든 모두 동정과 연민의 바탕 위에 있어. 그러니까, 동정이든 연민이든 사랑이든 이름만 다를 뿐 결국 다 같은 거야. 철이 씨, 사람은 누구도 다른 사람의 위에 설 수 없어. 우리는 모두 다 아래에 있으니까.

 

효철을 사랑하는 것을 동정이라고 여겼던 철이는 지효의 말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수지를 사랑하게 되고, 수지의 아이를 자기가 키워야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 고민에 휩싸이고 의문이 들지만, 결국 사랑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걸 알게 된 철이. 자신이 짊어져야할 그리고 책임지고 싶은 것들이 생기면서, 철이는 나태와 무력함을 벗어던지고 서서히 허물을 벗고 그의 삶을 위해 노력을 시작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등장 인물 모두가 자신만의 상처가 있다. 하지만, 심각하지 않다. 그 상처 때문에 지금의 삶이 불행하다거나, 상처의 그늘에 묻혀 산다거나 하지 않는다.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상처를 쓰다듬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조지아 킴 여사가 왜 부모도 버린 자신을 거두었을까 라는 의문을 가슴에 품으며 살아온 철이는, 그녀가 수지를 보자마자 만삭의 배를 어루만지며 '탐스러운 달' 같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때 철이는 이해와 배려와 사랑을 느낀다.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트라우마는 수지의 아이를 지켜주고 싶다는 것과 연결되고 그것은 자신의 상처와 고통의 치유와 연결된다. 그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없는 개그맨이었던 것은 그의 상처에도 관련이 있었던 듯싶다.

그는 이제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고, 관계 속에서 자신의 내면에 감춰두었던 상처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간다. 행복을 찾는 변화가 급격히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삶 속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분명하다. 더 행복해지고 싶다는, 누군가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변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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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눈물 - 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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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少年). 해를 적게 산, 나이가 적은 아이를 일컫는 말이다.

소년들은 알지 못하는 세계를 경험하고 그 세계에서 자신을 만들어 나간다. 작은 것에 상처받기도 하지만, 뜻밖에 꿋꿋하고 씩씩하게 기특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소년은 아직 아무것도 완성되지 않았고, 완성되기 위하여 끊임없이 경험한다.

이국땅에서 자란, 특별한 신분(?)을 가진 소년은 많은 아픔을 경험한다. 그것은 내면으로 눌러 담는 아픔이 되기도 하고, 외면으로 표출하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서경식 그의 소년 시절 반 이상은 책과 함께 했다. 일본에서 자라고 일본어를 모어(母語)로 쓴 그였기에 일본 문학이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책을 좋아했고, 어머니는 책 읽는 그를 좋아했다. 어머니는 일본어를 읽고 쓸 줄 모르셨고, 그것은 그에게 안타까움이기도 하지만 모른척하고 싶은 애잔함이 되기도 한다. 운동을 잘할 줄 몰랐던 그는 책이 탈출구가 되고, 마음의 평화를 주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의 외로움과 고뇌는 어릴 때부터도 깊었나 보다. 그가 읽은 책들과 그가 인상깊게 생각하는 구절에서 그의 마음 켜켜이 쌓인 고뇌와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초등학생이었던 그는, 이런 구절에 마음을 주었다.

도토리를 주우며 마냥 기뻐하던 아내마저도 지금은 없다. 아내의 무덤가엔 이끼 꽃이 몇 번이나 피고 또 졌다. 산에는 도토리가 떨어져 뒹굴고, 직박구리 울음소리에 낙엽이 떨어진다.

데리다 도라히코 수필집에 <도토리>라는 글의 한 부분인데 초등학생이 이런 글귀에 마음을 주었다니, 그가 너무 성숙했거나 그를 둘러싼 상황들이 글쓴이의 마음과 동화되기 쉬운 상태였던 것 같다.

그의 책에서는 책 이야기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집안 형편, 형들과의 관계,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야기하나를 읽고 나면, 그가 글을 쓰는 스타일이 언제 굳어졌는지 글에서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 왜 고독하고 쓸쓸한지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을 자신 안에 가두기 좋아했고, 아이들이 그렇듯 별것 아닌 일로 싸우는 상황도 예사로 보지 않고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런 것들이 쌓여 지금의 그를 만들었겠지만, 소년의 눈물이 천진 해야 할진데 너무 깊고 넓은 생각 때문에 아이답지 않은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어쩐지 유년시절에 그의 많은 생각이 짠하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는 작은형을 참 많이 따랐다. 그것은 작은형이 책을 좋아해서였고, 작은형은 그에게 또 다른 아버지 같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바쁘고, 형제들은 서로를 돌봐야 했는데 작은형은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격려했고, 보호했다. 작은형은 그에게 절대적인 의지였고, 지혜롭고 박식한 형이었다. 어쩌면 그 이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중학생이 되어 그는 시를 읽기 시작한다. 그가 읽었던 시들을 소개해주고 있는데, 그 시 속에는 '디아스포라'인 그의 애환을 느낄 수 있다. 식민지였고, 전쟁을 치렀던 조국의 역사적 사건들이 그가 성장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친 만큼 그에게 와 닿는 시들은 그와 관련된 시들이었다.

 
1937년 난징으로 떠난 군인 아저씨
당신을 거기서 무엇을 하셨나요......

(.....중략)

1958년 여름
난징으로 떠난 군인들은 선량한 아버지가 되어
내일을 계산하며
검은 다리를 타고 건너간다
누구도 그들을 알아보지 않는다
그들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 <검은 다리>, 이시카와 이츠코


 

일본의 조선 지배와 아시아 침략에 대해 일본의 책임과 자성을 요구하는 이 시가 어린 그의 마음을 흔든다. 그의 상처를 시인이 쓰다듬은 것이다. 그는 이미 아주 어릴 때부터 자신이 조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일본에서도 국민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현실이 아팠나 보다.

그에게 읽기란, 책을 읽고, 글을 읽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었나 보다. 그가 읽었던 책과 이야기들이 그를 말해주고 있다. 인간이 걸아 가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그,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희망'이라는 그는, 소년 시절 무던히 희망을 찾고 있었나 보다.

그는 책 속에서 희망을 찾았고, 책 속에서 물음에 대한 답을 얻었다. 그는 많은 눈물을 흘렸지만, 곁에는 책이 있었고 형제가 있었고 가족이 있었다. '디아스포라'라는 트라우마는 그를 따라다니지만, 그것이 그의 정체성이기에 숨기려 하지 않는다. 받아들인다.

그가 싸우는 것들, 그가 고민하는 것들은 그가 쓴 책 곳곳에 흔적처럼 남아있다. 언제 그가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어쩌면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무런 확신도 할 수 없지만, 그는 계속 쓰고 읽고 이야기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아직도 그는 소년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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