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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한 권의 책이 주는 감동과 즐거움, 그것은 매번 있는 호사가 아니다. 가끔은, 이런 책에 나의 시간을 낭비했다고 화를 내기도 하고, 아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놀라워 하기도 한다. 사실, 좋은 책은 자신과 딱 들어맞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칭송하는 고전도 자신이 이해할 수 없다면, 그 뜻을 알 수 없다면 개 발에 편자나 다름없다. 하지만, 자신에게 딱 들어맞고 두고 두고 읽고 싶은 책이 나타난다면 사람들이 잘 읽지 않고, 알지 못하는 책이라도 독서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자~ 여기에 유시민 만의 기쁨이 있다. 어려워 보이는 책들이라고 겁먹지 말자. 그는 이 어려운 책들을 쉽고 명쾌하게 요약해준다. 자신만의 생각도 양념으로 곁들여, 읽고 싶은 책들로 만들어준다. 그것도 힘이라면 힘. 그의 설명을 듣고 있자면, 꼭 이 책들만은 읽어봐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불끈 솟아오른다. 만만한 책이 없다. 그는 오래된 지도라고 펼쳤지만, 그 오래된 지도에 표시된 다시 가는 목적지는 모두에게 종착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매력이라면 매력. 힘을 내서 끝까지 따라간다면 그가 가는 대로 어설프지만, 즐겁게 종착지에 다다를 수 있다.
그는 잠시 길을 잃었다. 그래서, 오래된 지도 같은 책들을 펴쳐 들었다. 그는 세상이 두려울 때마다 책들에게 길을 물었다 한다. 다시 책을 펼쳐들었다. 그들이 줄 답을, 이미 알고 있지만 다시 한 번 다짐할 답들을 가슴에 되새기고자.
도스프예프스키의 <죄와 벌>, 리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 칼 마르크스, 흐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토머스 맬서스 <인구론>,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대위의 딸>, 맹자의 <맹자>, 최인훈의 <광장>, 사마천의 <사기>,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그 제목만 봐도 질릴 만한 책들도 있다. 논술을 위한 필독서라고 몇 십 년 동안 리스트에 올라도 잘 읽지 않게 되는 책들. 어쩌면, 강요된 독서 속에서 우리는 정말 필요한 책들을 밀어두고 재미와 즐거움을 좇았던 것은 아닌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는 맹자를 읽으며 진정한 보수주의자를 논한다. 재미있는 점은 그가 이렇게 한 권 한 권 이야기를 들려주듯 짚어주는 책들 안에 그의 정치적 생각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맹자>에서도 우리는 그의 생각을 살짝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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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가 이념이 아니라 "연속성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전통적인 제도와 관습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라면 맹자는 정말 멋진 보수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다. 흔희들 보수가 물질적 이익과 세속적 출세를 탐낸다고 하지만 진짜 보수주의자는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탐한다. 진짜 보수주의자는 다른 누군가와 싸우는 전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에 정체성에 닻을 내린다. 진짜 보수주의자는 타인을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을 성찰한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누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도 실의에 빠지지 않으며 깊은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난다. - 131p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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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바라는, 자기를 보수주의자라고 논하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그런 모습인 듯 싶다. 또한, 우리가 통상 잘못알고있는 보수주의자라는 의미와 개념에 대해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이 구절을 되새기며 읽다보니, 진정한 보수주의자를 발견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도 든다. 우리나라에서 '보수'라고 자처하는 이들에게서 느껴지지 않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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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던 나는, 이것을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항소이유서' 마지막 단락에 다시 인용했다. 그 '항소이유서'가 '불법 복사'되어 널리 나돈 탓에 네크라소프는 대한민국에서 제법 유명한 시인이 되었다. - 183p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슬픔도 힘이 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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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 실린 서문. 그리고 이 책을 쓴 작가 '솔제니친'에 관한 이야기. 생생이 묘사된 수용소에서의 삶, 생존, 그리고 노동, 규칙에 복종하는 생활. 수용소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이는 한 남자의 이야기에서 그는 '군대'를 발견하고, 슬픔과 노여움도 느낀다. 당시 소련 체제를 전면적으로 비판한 이 소설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솔제니친 또한, 이 소설을 쓴 죄로 20년 동안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이 책에 대한 그만의 애정은 마지막에 인용한 소설의 한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궁금하시다면, 읽어보시라~
다른 책들에 대한 설명과 그의 사유도 인상깊었지만, 가장 그의 고통을 잘 드러낸 책에 관한 이야기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이다. 그는 언론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카타리나 블룸을 이야기 하며, 분노에 차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직시하라고 말한다. 한 기자에 의해 철저하게 왜곡된 카타리나 블룸의 삶, 허위 보도의 피해자가 되어 대중에게 질타받는 카타리나 블룸. 한 명의 평범한 여자에게 언론이 끼친 악위적인 기사. 견디지 못한 그녀의 살인,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에서 그녀가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느낄 수 있다. 진실은 어디에도 없었고, 더럽혀진 명예만 있었을 뿐. 얄궂게도 그가 이 책에 대한 초고를 쓰고 나서 한 달이 되지 않아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언론의 악의적 왜곡 보도에 대해 말한다. 그가 빼앗긴 권리 마저도. 우리가 보고 읽는 것은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만들어낸 기사에 의해 불신하고 의심한다. 그렇게 고통받는 이들은 많다.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소개하는 책 면면에는 그의 생각들을 읽을 수 있는 설명이 등장한다. 그가 걸어온 길이 왜 그렇게 형성되었는지도 살짝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을 통해 독자만이 누릴 수 있는 사유도 선물 받을 수 있다. 어려운 책들이라 하여,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그의 간결하고 설명은,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어렵지 않도록 친절하다. 그의 지도에 표시된 책들을 나도 체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엔 그의 사유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사유를 만드는 걸로 말이다.
그는 이 책을 쓰고 난 후, 길을 찾았을까? 앞으로의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