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정원 - 상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의 책장이 쉼없이 빠르게 넘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멋진 사랑이야기가 이어졌기 때문이고, 감옥에서 수인의 생활 묘사가 몹시 흥미로웠던 때문이다. 역시 그 때문에 이 소설의 알맹이는 다 기억 속에서 빼먹기도 했지만 ……. 오현우와 한윤희가 살아온 삶 속에 우리의 지난 시대가 들어있고, 그들이 그 시대와 화해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통해 작가 황석영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가려 하는 지를 짐작할 듯하다.

소설 속에서의 광주 항쟁이며 10월 유신반대, 반독재・민주화 운동 등은 나에겐 ‘모를 일’,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몰라도 될 일’은 아니다. 이 소설은 내게 그것들에 대해 알려주고 있었다. 아주 자상하고 아름답게.

윤희의 아버지는 빨치산 출신으로 가장 노릇을 거의 해내지 못한다. 그녀의 딸 은결이의 아버지인 오현우 역시 앞으로는 어떠할지 모르겠으나 책 속의 과거에서는 아버지의 존재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 윤희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알 수 없는 원망을 언젠가부터 미안하게 느낀다. 그리고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윤희는 은결이가 자신과 같이 아버지의 삶을 원망 섞인 눈초리로 바라볼까봐 길고긴, 자세하면서도 따스한 편지를 남긴다. 그녀 자신의 아버지와 은결이 아버지인 현우에 대하여……. 그들의 삶에 대하여……. 나는 윤희가 어째서 저렇게 자기 아버지의 젊은 날에 대하여 자세히 적어두고 기억을 되새겼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윤희는 은결이와 내가 이승에서 지어갈 부녀지간의 애증을 걱정했는지도 모른다.(160쪽)

윤희는 자신이 사랑한 건 ‘아버지의 빛나는 젊음에 대한 막연한 상상’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그녀가 사랑한 건 시대를 온 몸으로 살다간, 시대의 아픔을 그려낸 듯한 ‘그들’이 아니었을까? 미대 조소과 선배에서 오현우, 송영태, 이희수까지……. 그녀는 시대를 껴안은 그들과 자신의 짧은 생을 함께 했다. 그녀 역시 시대를 함께 했지만 좀더 배후에서 바라보는 입장이다. 그렇게 살다간 그녀가 사랑했던 현우의 남은 생은 어떻게 될까?

사람에게나 아니면 무슨……풀꽃도 제철이 있는 거 아닌가요? 아버님의 이십대가 그 분의 생애에서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고, 살아남는 다면 그 뒤에는 그냥 사는 거요. 현우 역시 빛나는 시절을 뒤로하고 이젠 그냥 살아가게 될까? 그의 몫은 이제 다음 세대인 은결에게로 넘어갈까?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을 줄 알았던 이 세상에’ 윤희가 ‘남겨놓은 갈뫼의 아이’에게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밀꽃 필 무렵 - 3, 다시 읽는 이효석
이효석 지음 / 맑은소리 / 199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메밀 꽃 필무렵’하면 이효석의 대표작으로 대한민국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작품일 것이다. 이 작품의 ‘서정시를 연상시키는 문체’, ‘배경과 인물 및 사건의 긴밀한 조화’, ‘치밀한 구성’ 등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자주 듣던 것이라 ‘메밀 꽃 필무렵’하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는 왼손잡이라는 요소의 몇몇의 암시만으로 허생원이 동이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자연스레 연결시키려 하고 있는데 사실 그것만으로 둘이 부자관계라는 점을 나타내기에는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그 비약은 아름다운 배경과 여러 암시들에 의한 신비로운 분위기에 의해 어색하지 않게 가려진다. 이것은 마치 스토리와 장면이 독립된 영화에서 이야기 흐름상 발생하는 중간 중간의 공백을 아름다운 화면을 통해 커버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이룬다. 기본적으로 독자들은 불신의 장벽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효석의 ‘메밀 꽃 필무렵’에서는 그런 독자의 불신의 장벽을 수려한 문체와 탄탄한 구성을 바탕으로 누그러뜨리고 있다는 점이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그만큼 이 작품의 구절들이 영화를 볼 때처럼 하나의 파노라마로 생동하고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메밀꽃 필무렵에서 내가 재밌게 본 것은 주인공 허생원과 늙은 나귀가 동일시 되고 있다는 것인데 이런 식의 비유는 1930년대 발표된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내가 읽은 이효석의 다른 작품으로는 ‘산’, ‘수탉’, ‘장미 병들다.’, ‘돈’, ‘분녀’가 있는데 그 중 ‘수탉’에서 주인공 을손이 비참한 현실적 처지에 놓인 자기 자신을 암탉에게마저도 쫓기고 ‘찢어진 맨드라미에서는 피가 생생’하고 ‘퉁겨진 죽지의 깃이 거꾸로 뻗’치고 ‘눈이 한쪽 찌그러’지고 ‘피가 흘러 털을 물들’인 수탉과 동일시하는 장면은 허생원이 늙은 나귀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는 면과 상통한다. ‘수탉’과 메밀꽃 필무렵‘에서 주인공과 동물을 동일시하고 있다면 ’돈‘에서는 주인공 식이가 암퇘지와 자기를 떠나간 분이를 동일시하고 있다.

이처럼 그의 다른 많은 작품들에서 등장인물과 동물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효석은 인간과 자연을 떨어진 둘이 아닌 서로 교감하는 존재로서의 연결된 둘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그의 다른 몇몇 작품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보더라도 ’메밀꽃 필무렵‘에서보다 더 동물과 인간의 동일시가 긴밀히 잘 되고 구성이 잘 된 작품은 없는 것 같다. 그만큼 ’메밀꽃 필무렵‘이 주는 형식주의적 미는 절대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효석 소설의 세련된 언어와 시적 분위기 속에서의 낭만적 정서, 다채로운 어휘등의 특징에 대해 김동리는 이효석을 ‘소설을 배반한 소설가‘라고 평했다 하는데 그런 평가를 내렸던 김동리의 작품 가운데 고등학교 때 읽었던 역마라는 작품이 메밀꽃 필무렵과 여러모로 비슷한 면이 있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역마에서는 화개장터를 배경으로 설정하여 인생과 길의 유사성을 보여주었고 아니라 옥화가 우연히 계연의 귓바퀴에 난 사마귀(유전적 특징)를 보고 계연이 자신의 동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는 메밀꽃 필무렵에서 봉평에서 대화까지의 길이 장돌뱅이의 삶을 암시하는 점이나 동이의 왼손잡이가 허생원의 왼손잡이와 상관을 가지는 점과 상통한다.

게다가 체장수 영감과 옥화 모의 하룻밤 사랑으로 인해 옥화가 태어났다는 점은 메밀꽃 필무렵에서 허생원이 성서방네 처녀와 물방앗간에서 하룻밤 사랑으로 동이를 낳은 점과 매우 유사하다. 메밀꽃 필무렵에서 동이가 허생원처럼 장돌뱅이 생활을 물려받았다는 것은 역마에서 성기가 체장수의 떠돌이 삶을 물려받은 것과 같이 생각해볼 수 도 있다. 그리고 두 작품은 신비로운 분위기 면에서도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비록 한 6년 전에 읽어서 역마의 내용은 세세한 부분까지 생각나진 않지만 아직도 그 운명의 장난스러움에 대한 신비로운 분위기가 잊혀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역마 역시 그 구성에 있어서 신비로운 분위기의 몫이 무척 컸지 않았나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그의 전집을 구했다. 처음에 그의 사진을 보았다. 실제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하며 짙은 눈썹. 그의 얼굴은 개성 있는 연기파 배우의 얼굴처럼 무척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다음에 본 것은 그의 필체. 그의 필체는 매우 다양하고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공부를 꽤나 열심히 그리고 많이 한 사람의 글씨체다. 조금은 여성스러워서 섬세한 듯하지만 무척 단호하게 뻗어나간 글씨의 굴곡들. 그의 시와 소설과 일기 등을 읽어나가면서 자꾸만 우울하고 음습한 기운들이 느껴져서 몇 번이나 책장을 덮어야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그의 전집을 다 읽기까지는 꼬박 일주일의 시간이 걸렸다.
그의 연보는 1994년까지 나와 있지만 그는 1989년에 만 29세의 생일을 엿새 앞두고 종로의 한 심야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쓰여 있다. 이름만큼 기형적인 죽음이다. 왜 똑똑한 많은 작가들은 단명 하는 것일까? 그들은 세상의 많은 것들을 너무 일찍 다 알아버려서 더 이상 보고, 느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들 특유의 허무주의 역시 그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잎을 피우기도 전에 꽃을 먼저 피우는 목련처럼 삶을 채 살아보기도 전에 삶의 허무를 키웠다.(류시화의 시 ‘목련’ 인용) 그들은 남들이 마라톤으로 달릴 거리를 단거리 선수처럼 달렸다. 그리고 쓰・러・졌・다. 그들이 바라본 하늘은 어둡고 우울한 무채색이었다. 기형도의 하늘엔 진눈깨비가 날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줄곧 겨울을 살다갔다.

‘입 속의 검은 잎’ 이 독특한 시 제목은 주의해서 머리 속에 새겨두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제고 ‘잎 속의 검은 입’이 되어 사용될 수도 있으니까.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시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그 분위기만 느껴질 뿐 뚜렷이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그의 많은 시에서처럼 짙은 허무주의만이 안개처럼 감싸고 돌 뿐. 그러나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든 카페에 들어가 보면서 그의 시에서 희망을 읽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에 나는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의 시에서 비판과 비관을 읽고 거기서 동질감을 얻어서 그의 시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시간이 갈수록 그의 시에서 희망을 읽었다는 말은 나에게는 좀체로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그의 시들은 삶의 최극단의 절망에 서 본 사람의 시다. 그의 시는 가난한 가족사와 경제 성장기 한국 사회의 모순들을 그림으로써 상당히 보편성을 지닌 소재로 시를 써갔다. 담담하고 비관적인 눈으로……. 그의 시를 읽으면서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으로 조세희 씨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떠올랐다. 장르는 시와 소설로 나뉘지만 두 작품의 분위기가 무척 비슷했다는 점이 인상에 많이 남는다.

기형도는 그렇게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시를 이끌어나가면서도 어떤 밝은 전망도 시 속에 제시하지 않는다. 그런 면이 어쩌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기에 유리한 점으로 작용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어처구니없는 환상 따위…, 억지 전망이야말로 그의 시를 읽는 사람들을 우롱하는 것일 수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본다면 그의 시에서 ‘희망’을 읽은 사람들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시가 ‘희망이 적어 오히려 읽기에 행복했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괭이부리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양장본
김중미 지음, 송진헌 그림 / 창비 / 200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는 줄곧 내가 가진 감정은 ‘답답함’ 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뭔가 풀린다.’, ‘시원하다.’는 감정보다 얽힌 실타래가 점점 더 얽히듯 꼬여만 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감정의 근원이 무엇일까? 이 작품은 현실에 그 뿌리를 깊숙이 박고 있다. 현실에서 건져 올린 사실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작품 속의 여러 면면들이 꽤나 현실적이다. 책 속의 우울하고 답답한 상황들이 현실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데에 비극이 있다.

작품 속에서 아이들은 현실적인 소망을 찾아간다. 기술자가 되고 좋은 아빠가 되는 것, 제빵 기술을 익혀 빵집을 갖는 것. 우리에겐 아주 소박해 보이는 그 꿈들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절실한 바람으로 다가온다. 그들의 소망을 과장되게 포장하지 않고 그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였다는 점이 이 작품의 리얼함에 큰 기여를 했다. 판타지에만 너무 젖어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이런 리얼리즘적 작품이 세상을 보는 눈을 좀더 키워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똥이 어디로 갔을까 신나는 책읽기 3
이상권 글, 유진희 그림 / 창비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요새는 똥이나 오줌, 방귀가 소재가 되고 책의 제목이 되는 동화가 참 많다. 이 동화집도 똥을 소재로 여러 이야기들을 묶어 놓은 것이다. 차례를 펼쳐보면 차례에 나온 소제목에도 모두 '똥'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똥이 어디로 갔을까'부터, '아빠의 똥 이야기', '똥 먹는 개', '똥개 생각', '개똥참외'까지. 아이들은 똥 이야기를 좋아한다는데 나에게도 똥 이야기가 재밌게 읽히는 것을 보면 어른들 역시 똥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에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이 똥을 더러워하며 피하는 반면에 작은 생물들은 똥을 먹으며 소중한 목숨을 이어간다. 이 부분이 이 동화의 중요한 장면이다. 똥파리, 보통 파리, 노린내, 쇠똥구리, 말벌, 개미, 버섯은 단후의 똥을 맛있게 먹는다. '세상에 필요 없는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특히 똥을 거름으로 자란 버섯이 씨를 퍼트린다는 것은 똥이 새로운 생명 창조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라서 똥의 소중함이 더 크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그렇게 똥은 자신을 조금씩 다른 생명을 위해 떼어주고는 사라진다. 그렇게 사라진 똥이 어디로 갔을까 하며 단후와 아빠가 똥을 찾는다. 똥은 다시 새로운 생명이 되어 자연의 일부로 순환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이 모두 똥?!)

똥을 소재로 한 동화는 아이들이 흥미를 끌기에는 큰 장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흥미에만 치우친다면 그것은 아이들의 기억 속에, 마음속에 남아있기 힘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동화집은 아이들이 생각하는 똥의 이면을 생각하게 함으로써 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확장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화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