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 - 3, 다시 읽는 이효석
이효석 지음 / 맑은소리 / 199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메밀 꽃 필무렵’하면 이효석의 대표작으로 대한민국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작품일 것이다. 이 작품의 ‘서정시를 연상시키는 문체’, ‘배경과 인물 및 사건의 긴밀한 조화’, ‘치밀한 구성’ 등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자주 듣던 것이라 ‘메밀 꽃 필무렵’하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는 왼손잡이라는 요소의 몇몇의 암시만으로 허생원이 동이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자연스레 연결시키려 하고 있는데 사실 그것만으로 둘이 부자관계라는 점을 나타내기에는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그 비약은 아름다운 배경과 여러 암시들에 의한 신비로운 분위기에 의해 어색하지 않게 가려진다. 이것은 마치 스토리와 장면이 독립된 영화에서 이야기 흐름상 발생하는 중간 중간의 공백을 아름다운 화면을 통해 커버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이룬다. 기본적으로 독자들은 불신의 장벽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효석의 ‘메밀 꽃 필무렵’에서는 그런 독자의 불신의 장벽을 수려한 문체와 탄탄한 구성을 바탕으로 누그러뜨리고 있다는 점이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그만큼 이 작품의 구절들이 영화를 볼 때처럼 하나의 파노라마로 생동하고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메밀꽃 필무렵에서 내가 재밌게 본 것은 주인공 허생원과 늙은 나귀가 동일시 되고 있다는 것인데 이런 식의 비유는 1930년대 발표된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내가 읽은 이효석의 다른 작품으로는 ‘산’, ‘수탉’, ‘장미 병들다.’, ‘돈’, ‘분녀’가 있는데 그 중 ‘수탉’에서 주인공 을손이 비참한 현실적 처지에 놓인 자기 자신을 암탉에게마저도 쫓기고 ‘찢어진 맨드라미에서는 피가 생생’하고 ‘퉁겨진 죽지의 깃이 거꾸로 뻗’치고 ‘눈이 한쪽 찌그러’지고 ‘피가 흘러 털을 물들’인 수탉과 동일시하는 장면은 허생원이 늙은 나귀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는 면과 상통한다. ‘수탉’과 메밀꽃 필무렵‘에서 주인공과 동물을 동일시하고 있다면 ’돈‘에서는 주인공 식이가 암퇘지와 자기를 떠나간 분이를 동일시하고 있다.

이처럼 그의 다른 많은 작품들에서 등장인물과 동물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효석은 인간과 자연을 떨어진 둘이 아닌 서로 교감하는 존재로서의 연결된 둘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그의 다른 몇몇 작품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보더라도 ’메밀꽃 필무렵‘에서보다 더 동물과 인간의 동일시가 긴밀히 잘 되고 구성이 잘 된 작품은 없는 것 같다. 그만큼 ’메밀꽃 필무렵‘이 주는 형식주의적 미는 절대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효석 소설의 세련된 언어와 시적 분위기 속에서의 낭만적 정서, 다채로운 어휘등의 특징에 대해 김동리는 이효석을 ‘소설을 배반한 소설가‘라고 평했다 하는데 그런 평가를 내렸던 김동리의 작품 가운데 고등학교 때 읽었던 역마라는 작품이 메밀꽃 필무렵과 여러모로 비슷한 면이 있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역마에서는 화개장터를 배경으로 설정하여 인생과 길의 유사성을 보여주었고 아니라 옥화가 우연히 계연의 귓바퀴에 난 사마귀(유전적 특징)를 보고 계연이 자신의 동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는 메밀꽃 필무렵에서 봉평에서 대화까지의 길이 장돌뱅이의 삶을 암시하는 점이나 동이의 왼손잡이가 허생원의 왼손잡이와 상관을 가지는 점과 상통한다.

게다가 체장수 영감과 옥화 모의 하룻밤 사랑으로 인해 옥화가 태어났다는 점은 메밀꽃 필무렵에서 허생원이 성서방네 처녀와 물방앗간에서 하룻밤 사랑으로 동이를 낳은 점과 매우 유사하다. 메밀꽃 필무렵에서 동이가 허생원처럼 장돌뱅이 생활을 물려받았다는 것은 역마에서 성기가 체장수의 떠돌이 삶을 물려받은 것과 같이 생각해볼 수 도 있다. 그리고 두 작품은 신비로운 분위기 면에서도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비록 한 6년 전에 읽어서 역마의 내용은 세세한 부분까지 생각나진 않지만 아직도 그 운명의 장난스러움에 대한 신비로운 분위기가 잊혀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역마 역시 그 구성에 있어서 신비로운 분위기의 몫이 무척 컸지 않았나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