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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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그의 전집을 구했다. 처음에 그의 사진을 보았다. 실제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하며 짙은 눈썹. 그의 얼굴은 개성 있는 연기파 배우의 얼굴처럼 무척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다음에 본 것은 그의 필체. 그의 필체는 매우 다양하고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공부를 꽤나 열심히 그리고 많이 한 사람의 글씨체다. 조금은 여성스러워서 섬세한 듯하지만 무척 단호하게 뻗어나간 글씨의 굴곡들. 그의 시와 소설과 일기 등을 읽어나가면서 자꾸만 우울하고 음습한 기운들이 느껴져서 몇 번이나 책장을 덮어야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그의 전집을 다 읽기까지는 꼬박 일주일의 시간이 걸렸다.
그의 연보는 1994년까지 나와 있지만 그는 1989년에 만 29세의 생일을 엿새 앞두고 종로의 한 심야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쓰여 있다. 이름만큼 기형적인 죽음이다. 왜 똑똑한 많은 작가들은 단명 하는 것일까? 그들은 세상의 많은 것들을 너무 일찍 다 알아버려서 더 이상 보고, 느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들 특유의 허무주의 역시 그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잎을 피우기도 전에 꽃을 먼저 피우는 목련처럼 삶을 채 살아보기도 전에 삶의 허무를 키웠다.(류시화의 시 ‘목련’ 인용) 그들은 남들이 마라톤으로 달릴 거리를 단거리 선수처럼 달렸다. 그리고 쓰・러・졌・다. 그들이 바라본 하늘은 어둡고 우울한 무채색이었다. 기형도의 하늘엔 진눈깨비가 날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줄곧 겨울을 살다갔다.

‘입 속의 검은 잎’ 이 독특한 시 제목은 주의해서 머리 속에 새겨두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제고 ‘잎 속의 검은 입’이 되어 사용될 수도 있으니까.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시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그 분위기만 느껴질 뿐 뚜렷이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그의 많은 시에서처럼 짙은 허무주의만이 안개처럼 감싸고 돌 뿐. 그러나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든 카페에 들어가 보면서 그의 시에서 희망을 읽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에 나는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의 시에서 비판과 비관을 읽고 거기서 동질감을 얻어서 그의 시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시간이 갈수록 그의 시에서 희망을 읽었다는 말은 나에게는 좀체로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그의 시들은 삶의 최극단의 절망에 서 본 사람의 시다. 그의 시는 가난한 가족사와 경제 성장기 한국 사회의 모순들을 그림으로써 상당히 보편성을 지닌 소재로 시를 써갔다. 담담하고 비관적인 눈으로……. 그의 시를 읽으면서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으로 조세희 씨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떠올랐다. 장르는 시와 소설로 나뉘지만 두 작품의 분위기가 무척 비슷했다는 점이 인상에 많이 남는다.

기형도는 그렇게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시를 이끌어나가면서도 어떤 밝은 전망도 시 속에 제시하지 않는다. 그런 면이 어쩌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기에 유리한 점으로 작용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어처구니없는 환상 따위…, 억지 전망이야말로 그의 시를 읽는 사람들을 우롱하는 것일 수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본다면 그의 시에서 ‘희망’을 읽은 사람들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시가 ‘희망이 적어 오히려 읽기에 행복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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