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전 상서(上書)'

  칠흑같은 새벽에 도서관으로 나온 남자는 무거운 표정으로 만년필을 꺼내 고향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쓴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고리대금업자를 동생이 흠씬 두들겨 패고 달아났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적 드라마인가? 1987년 MBC에서 방영된 김수현 극본의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초반부 이야기다. 시청률이 무려 70%를 넘었던, 드라마 작가 김수현에게는 경력의 최전성기를 열어준 작품이다. 이 34년 전 드라마를 KTV에서 다시 틀어주고 있다. 그 시절에 이 드라마를 열심히 보았던 이들에게는 꽤나 반가운 일이다.

  드라마는 춘천이라는 소도시를 배경으로 방앗간 집 아들 태준과 태수, 사진집 딸 미자, 그 주변 인물들을 둘러싼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그려낸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를 관통하는 시대적 배경을 가지는 이 드라마는 억척스러운 어머니(김용림 분) 밑에서 자란 상반된 성격의 두 형제가 중심인물이다. 태준(남성훈 분)은 냉정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의 소유자로 성공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실현해 나간다. 가난한 집안 환경을 딛고 서울대 법대에 진학, 사법고시에 합격하지만 법조계가 아닌 회사에 취직해서 기업인의 길을 걷는다. 태수(이덕화 분)는 불같은 성미로 배운 것은 없지만 강한 의지와 돈에 대한 타고난 감각으로 자신의 사업을 일군다. 태준이 사랑하는 여자 미자(차화연 분)는 단신으로 상경해서 여배우로 명성을 얻지만, 태준 어머니의 반대로 두 사람의 사랑은 헤어짐과 만남을 이어간다. 결국 태준과 결혼하게 되지만, 일 중독인 태준에 대한 원망과 자신의 경력을 이어가지 못했다는 좌절감에 우울증과 알콜 중독에 시달린다. 이들의 얽히고 설킨 사랑과 야망의 대서사시가 대략 이 드라마의 줄거리가 되겠다.

  이 드라마를 오랜만에 다시 TV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의 느낌은 반가움이었다. 그 시절, 이 드라마는 중장년층에게 그리 멀지 않은 과거를 회고하게 만들면서, 강렬하게 대비되는 캐릭터들과 흡인력 있는 서사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지금처럼 다양한 매체의 볼거리가 있는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시청률 70%대는 거저 나온 것이 아니다. 34년이나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이 드라마를 보아도 인물과 대사, 이야기들이 나름대로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적어도 그 당시의 시청자들이 볼 게 없어서 그 드라마 나오는 시간에 TV 앞에 앉아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가난한 하층 계급의 인물들이 저마다의 성공 서사를 써내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창 경제 개발의 호황기에 접어든 중산층은 드라마 속에서 자신들의 과거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특히 태수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성공기는 굴곡있는 한국 현대사의 한 부분을 조망하게 해준다. 아무 가진 것도 없는 인물이 어려움 속에서 맨손으로 일구어낸 기업의 과거에는 1970년대의 석유 파동(Oil Shock)이 있는가 하면, 건설 산업 붐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 있다. 태준이 보여주는 엘리트 기업인의 서사에는 그 어떤 집안의 뒷받침없이 자신만의 노력으로 얻어낸 성공이 그려진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의미의 '개룡남'의 선구적 캐릭터였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의 계층 상승은 자신의 노력과 약간의 운을 필요로 하는, 충분히 실현 가능한 목표였다.

  남성 시청자들에게 태준 태수 형제의 서사가 흥미있게 느껴졌다면, 여성 시청자들에게는 '미자'라는 캐릭터가 있었다. 사진집 딸로 알콜 중독자 아버지에게 구박덩이 취급을 받던 미자는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며 인기 여배우라는 스타의 자리에 오른다. 이 또한 당시 여성들에게는 매력적인 성공의 서사였다. 그러나 직업적 의미에서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었다. 태준과의 순탄치 않은 사랑, 결혼 이후 불거진 갈등과 증오, 그런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내적인 공허와 우울에 시달리는 미자는 화려한 성공 서사의 이면을 보여준다. 미자처럼 가부장제에 순응하지 못하는 또 한 명의 여성 캐릭터는 태수의 첫번째 부인 '정자'라고 할 수 있다. 전당포 집 딸로 태수를 쫓아다니며 자신의 사랑을 쟁취한 정자는 결국 태수의 외면으로 이혼에 이른다. 아이 둘을 놔두고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려 했던 정자에게 두번째 결혼은 삶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그들과 대비되는 여성 캐릭터들로는 태준 태수 형제의 여동생 선희(임예진 분)와 태수의 두번째 부인 은환(김청 분)이 있다. 선희는 차분하고 심지깊은 성격으로 자신의 삶을 일구어 가며, 결코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거나 가족의 뜻에 거스르는 법이 없다. 태준의 친구인 홍조와 결혼 생활을 순탄하게 이어가는듯 보이지만, 선희라고 마음의 괴로움이 없을까? 미자에 대한 연민과 애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편의 마음을 애써 모른 척하며 사느라 속이 타들어간다. 과수원집 딸 은환은 좋아하는 태수와 결국 결혼에 이르지만, 전처 소생의 자식들 때문에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심지어 은환은 의붓 자식들 잘 키우기 위해 아이 갖는 것도 포기한다. 이런 인내와 희생의 여성 캐릭터들은 어쨌든 가부장제 하에서 보호받고, 그나마 덜 고통받는다. 

  이 드라마의 놀라운 점은 결말에 있었다. 태준은 기업의 회장으로부터 차기 후계자로 지명되는데, 이를 두고 미자는 일과 성공에 대한 지칠줄 모르는 야망으로 질주하는 태준을 비아냥 거린다. 그런 미자에게 태준이 주먹을 날리는 것이 이 드라마의 결말이었다. 쓰러지는 미자의 모습이 잡힌 정지화면에서 끝나는 이 결말은 당시로서는 정말이지 파격적이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아니, 도대체 이게 뭐야?'하는 탄식을 했을 것이다. 그 장면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태준과 미자의 애증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너무나도 화려했던 자신의 과거를 복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김수현은 2006년에 리메이크 드라마로 '사랑과 야망'을 다시 선보였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도 원작에 미치지 못했고, 원작에서 수정되고 덧붙여진 이야기들은 아귀가 맞지 않고 너덜거렸다. 무엇보다 리메이크 드라마의 실패는 이전과 달리 '시대가 변했다'는 데에 있었다. 2006년의 시청자들은 1987년의 시청자들이 아니었다. 리메이크 드라마는 마치 김빠진 맥주처럼 외면당했다. 오래전 원작 드라마의 시청자들은 리메이크작을 보면서 머릿속에서 1987년의 드라마를 자동재생시켰을 것이다.

  이 드라마로 배우 경력의 정점에 오른 차화연은 이듬해 결혼과 함께 연예계를 떠났다. 은환 역의 김청은 청순하고 순종적인 이미지로 큰 인기를 얻었다. 홍조의 여동생 역으로 나온 김도연은 귀엽고 발랄한 이미지로 자신의 얼굴을 알렸다. 그리고 이 드라마로 성공적으로 안방 극장에 복귀한 배우가 하나 있다. '윤여정'이다. 미자의 후원자인 패션 디자이너 역으로 나온 윤여정은 조영남과 이혼한 직후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 오랜 미국 생활을 끝내고 자신의 경력을 이어가려고 고군분투했던 윤여정에게 이 역은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중요한 기회였다. 김수현과 오랜 친구 사이로 윤여정은 이후로도 김수현 드라마에서 고정적인 배역을 맡았다. 이후에 이어진 너무 많은 드라마 출연으로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지는 윤여정의 연기는 '사랑과 야망'에서는 오히려 신선한 느낌을 준다. 큰 인기로 온갖 화제를 몰고 다녔던 전설의 드라마 '사랑과 야망'은 KTV에서 평일 저녁 9시에 방영된다.  



*사진 출처: ksilbo.co.kr  미자 역의 차화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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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온도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이덕무 지음, 한정주 엮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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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이덕무의 소품집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에서 고전연구가 한정주가 뽑은 글들을 엮은 책이다. 그리 길지 않은 짧은 글들에 역자의 덧붙이는 글들이 매편마다 들어간다.


  이덕무는 북학파 실학자로 영조와 정조 시대를 살다간 이였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가 엄청난 독서가였고, 또 글쓰기를 좋아한 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이 얼마나 책을 좋아하는지, 또 좋은 글은 어떤 글인지, 어떻게 하면 빼어난 글을 쓸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또한 당시 중국을 통해 들어온 온갖 종류의 박물지에 대한 감상평들도 실려있는데,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우습고 황당해 보이는 당시의 과학 지식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한 그는 평생을 가난에 시달리며 살았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그는 가난을 수치스럽거나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글을 읽다보면 세상살이에 초연한 선비의 기상이 느껴진다. 나름대로 자신을 수양하며 얻은 깨달음들도 글로 남겼다. 일종의 수양록, 명상록을 쓴 셈이다. 그 가운데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글은 이러했다.


  "원망과 비방하는 마음이 점점 자라나는 까닭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면 진실로 즐겁다. 그러나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도 무엇이 해롭겠는가?"


  온마음으로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일을 한다고 해도 그 성과를 반드시 세상과 사람들이 다 알아주는 것은 아니다. 흔들리지 않는 고요한 마음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써내려갔던 삶. 돈과 명성에 한눈을 팔지 않고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쉬울까? 이덕무의 글에는 그런 것들으로부터 초연한 나름의 담백함과 결기가 느껴진다.


  매글마다 덧붙여진 역자의 감상은 이덕무의 글을 온전히 감상하는데 방해가 된다. 장황하고 불필요한 그 글들은 차라리 따로 떼어서 역자의 수필집으로 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덕무의 원문을 보조하고 설명하기 위한 각주의 역할을 하지도 못하는 그런 글을 덧붙이는 것은 사족처럼 느껴진다. 그 부분을 비어두고, 글을 읽는 독자들의 감상을 쓰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될 정도다. 이 책에 별점을 더 주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역자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원저자의 글을 빛나게 하는 데에 있어야 한다. 이런 번역 서적에서 그런 끼워넣기 구성은 원문이 가진 가치를 떨어뜨린다. 그럼에도 좋은 이덕무의 글을 만났다는 데에 의미를 두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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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세상이 싫어!"

  두 딸들 앞에서 이렇게 악다구니를 쓰는 엄마 베아트리스(조안 우드워드 분)는 결코 좋은 엄마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집안은 정리되지 않는 물건들로 가득하고, 제대로 청소를 하지 않아서 더럽기 짝이 없다. 술과 담배를 입에 달고 사는 정서불안의 이 엄마는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것도 버겁다. 그런 엄마를 부끄러워하고 경멸하는 첫째 딸 루스는 타고난 불안한 성정에 뇌전증(간질)까지 앓고 있다. 막내 마틸다(넬 포츠 분, 폴 뉴먼의 딸)는 조용하고 침착한 성품으로 그런 어두운 집안 분위기 속에서도 과학 과제에 흥미를 붙이며 스스로 마음을 다독인다. 영화의 제목 '감마선은 금잔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The Effect of Gamma Rays on Man-in-the-Moon Marigolds, 1972)'는 마틸다가 해낸 과학 과제물에서 따왔다. 퓰리처 상을 받은 폴 진델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만든 이 영화는 폴 뉴먼이 자신의 부인 조안 우드워드와 함께 본 연극에 깊은 감명을 받고나서 제작되었다.

  영화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여성이 딸들과 함께 살면서 일으키는 현실의 파열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경제적으로 곤궁한 베아트리스는 집안에 병든 노인들을 보살피는 하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자식들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이 여자가 노인 환자들이라고 제대로 보살피겠는가? 노환으로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어려운 내니 할머니는 마치 생기없는 인형처럼 그 집안에 자리하고 있다. 첫째 루스는 죽어가는 노인들이 거쳐가는 자신의 집과 엄마를 부끄럽게 여길 뿐만 아니라, 학교 수업시간의 연극에서 조롱거리로 흉내내기까지 한다. 정신없는 엄마와 불안한 언니 사이에서 오직 마틸다만이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키우는 토끼와 금잔화 과제가 마틸다에게는 질식할 것 같은 집에서의 작은 숨구멍이 되어준다. 그러나 베아트리스는 그런 마틸다에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퍼붓고 상처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조안 우드워드는 베아트리스 역을 미친 여자처럼 연기하지 않았다. 우드워드는 불안정한 삶 속에서 어긋나 버린 마음 때문에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없는 여자의 비애에 촛점을 맞추었다. 이 영화의 연기로 우드워드는 칸느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정작 우드워드는 베아트리스 배역이 지닌 어둡고 이그러진 면들 때문에 그 역을 진저리나게 싫어했다. 아내가 싫어하든 말든 폴 뉴먼은 뚝심있게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 자신이 연극 배우로도 여러 작품에 참여했던 뉴먼에게 연극은 인생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고, 이 영화 제작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문제는 이 영화가 대중성을 확보하기에는 상당히 동떨어진 지점에 있었다는 데에 있다.

  같은 배우 출신의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상업성에 놀라운 감각을 보여준 것에 비해, 뉴먼은 그런 것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감마선은 금잔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의 인물들은 어둡고, 흔들리며, 현실의 괴로움 속에서 몸부림친다. 그나마 마틸다가 보여주는 삶에 대한 희망의 느낌이 그 칙칙하고 무거운 영화의 분위기를 상쇄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너무나 약하다. 관객이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을 이해하기도 쉽지가 않은데, 이는 캐릭터의 불명확성에서 기인한다. 혹시 원작 희곡에 단서가 있을까 해서 희곡까지 찾아서 읽어보았지만, 희곡은 영화 보다 더 암울하다.

  다시 처음 대사로 돌아가 보자. 마틸다는 영화의 마지막에 이렇게 혼자 답한다. 

  "엄마, 난 세상을 싫어하지 않아요."

  원작 희곡에서는 이 부분이 다르게 나온다.

  베아트리스: 난 세상이 싫어, 이런 내 기분을 너도 알지?
  마틸다: 응, 엄마.

  마틸다는 감마선을 쬔 금잔화가 피어난 다양한 모습을 보면서 먼 우주에서부터 쏟아진 원소에 대해 생각한다. 그 심원한 기운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자신에 대해 자각한 마틸다는 세상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므로 세상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마틸다의 대사는 마틸다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힘을 얻었음을 보여준다. 폴 뉴먼이 돈 벌 생각하지 않고, 이 영화를 제작하고 감독한 데에는 삶의 불안정성을 견디는 힘으로서의 희망을 말하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사진 출처: fromthefrontrow.net 베아트리스 역의 조안 우드워드와 마틸다 역의 넬 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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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1-04-09 16:39   좋아요 1 | URL
아, 저 이거 정말 아끼고 좋아하는 영화인데 여기서 또 만나네요.
원래 연극으로 공연되었다는 것도 영화를 보고나서 훨씬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암울한 환경 속에서도 토끼키우기와 금잔화 실험으로 자기 세계를 지켜나가던 마틸다를 보면서 이 영화가 희망을 말하는가 절망을 말하는가 혼란스럽기도 했었어요.

푸른별 2021-03-30 18:57   좋아요 1 | URL
hnine님은 이 영화를 보았군요. 전체적으로 무거운 분위기의 영화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마틸다가 세상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마지막 장면은 희망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들더군요.
 

 

  소년원에 수감중인 악바르는 이제 18살 생일을 맞았다. 친구 알리는 깜짝 생일 파티를 열어주지만, 악바르는 그런 알리에게 오히려 주먹을 날린다. 16살에 여자친구를 죽인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알리에게 18살은 바로 그 형이 집행되는 나이를 뜻하기 때문이었다. 그제서야 악바르의 상황을 알게된 알리. 사형을 앞둔 살인자라도 피해자 가족의 탄원이 있으면 목숨은 건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알리는 방법을 찾는다. 가깝게 지내는 교도관에게 부탁을 해서 잠깐의 휴가를 얻어 나온 알리는 악바르의 누나 피루제와 함께 그 집을 찾아간다. 지난 3년 동안 피루제가 온갖 노력을 해도 소용없었던 그 일을 알리는 해낼 수 있을까?

  이란의 감독 아쉬가르 파라디의 2004년작 '아름다운 도시(Shahr-e Ziba, The Beautiful City)'는 관객들을 낯선 이란의 현실로 안내한다. 종교가 모든 일상을 지배하는 이 나라에는 외부자의 시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이 무척 많다.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준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The Separation of Nader from Simin, 2011)'를 한번 보자. 늙은 환자를 돌보기 위해 고용된 가정부는 여자인 자신이 남자 환자의 몸을 씻기는 것이 율법에 어긋나지 않는지 이맘에게 전화를 걸어서 묻는다.


  이 영화 '아름다운 도시'에서는 그 종교의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살인자가 무슬림 남성인 경우 피해자 가족이 용서를 하면 사형을 면할 수 있다. 단, 피해자 가족에게 그들이 요구하는 금전적 댓가(Blood Money)를 치루어야 한다. 말하자면 남자에게는 목숨을 건질 방도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무슬림 여성이 살인자일 때에는 그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여성은 어떤 경우에도 죽음을 면하지 못한다. 그런 기준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널리 통용되는 Qisas, 코란을 바탕으로 성립된 관습적 처벌법에 명시되어 있다. 영화 속 악바르가 사형을 앞두고도 피해자 가족과 합의만 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알리는 친구가 죽인 여자친구의 아버지 집을 찾아간다. 죽은 딸에 대한 정의로운 처벌을 원하는 아버지 아블로카셈에게 사면은 어림도 없는 소리다. 오히려 아블로카셈은 빨리 사형이 집행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악바르의 가족에게 목숨값을 지불하면 사형은 더 빨리 집행될 수 있다. 이 또한 Qisas에 명시된 것으로,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에 사형을 받을 남자의 가족에게 돈을 지불해야 한다. 남자가 살인 피해자라면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이 사형이 집행된다. 이슬람 율법에서 여자의 목숨은 남자에 비해 덜 중요하다. 아블로카셈은 집까지 팔아서 그 돈을 마련해 얼른 악바르의 죽음을 보려고 애를 쓰는 판국이다. 그의 뜻이 완고하다는 것을 알지만, 알리와 피루제는 어떻게든 마음을 돌리려 애를 쓴다. 그런 그들에게 조력자가 생긴다. 아블로카셈의 아내는 다리가 불편한 딸을 데리고 그와 재혼했는데, 그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남편에게 합의를 종용한다. 합의금으로 엄청난 돈을 요구받은 피루제는 세탁부 일로 겨우 먹고 사는 처지이다. 악바르의 사면은 아직 멀어 보인다.

  그런데 집을 드나들던 알리를 좋게 본 아블로카셈의 아내는 돈 대신에 알리와 자신의 딸을 결혼시킬 궁리를 하게 된다. 알리는 친구의 목숨을 살리려면 원하지도 않은 결혼을 해야할 판이다. 알리는 피루제와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고,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피루제를 어떻게든 돌보고 싶어한다. 알리의 고민은 깊어간다. 아쉬가르 파라디는 아주 단순하게 시작한 알리의 여정을 촘촘하고 복잡하게 짜가면서 관객들을 이야기 속으로 확 밀어버린다. 정말 대단한 솜씨다. 자, 당신이 영화 속의 알리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친구를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해서 평생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누구에게나 자신의 인생이 가장 소중하므로 그런 선택은 할 수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친구는 더이상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무려 '목숨'이 걸린 문제다. 그것을 모른 척 하고서 살아간다면, 알리는 남은 생애 동안 자신의 그 선택을 기억해야만 한다.

  자신의 여자 친구를 아무도 차지하지 못하게 하려고 살인을 저지른 악바르. 그런 악바르에게 딸을 잃은 아버지의 정의에 대한 절규, 살인자일지라도 소중한 동생의 목숨을 살리려는 피루제, 친구의 목숨값으로 자신의 인생을 내놓아야 하는 처지의 알리, 장애인 딸의 인생을 위해서 온당치 못한 요구를 태연하게 하는 아블로카셈의 아내. 그들이 갇혀있는 복잡한 윤리적인 딜레마는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들의 마음을 쉴 새 없이 헤집어 놓는다. 영화 속 인물들 모두는 자신들의 행동에 각자 정당한 이유를 갖고 있다. 그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현실은 선과 악, 흑과 백처럼 명확하게 분리될 수 있는 영역에 자리하지 않는다.
 
  아쉬가르 파라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처럼 관객들을 불러모은다. 그 이야기 속에는 잘 알지 못하는 이란이라는 나라의 현실과 거기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모습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영화는 그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다. '아름다운 도시'에서 그는 윤리적 딜레마에 처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의 마지막, 알리는 피루제의 집 대문을 세차게 두들기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관객들은 알리가 어떤 선택을 했을지 결코 알 수 없다. 이 열린 결말은 놀라운 재능을 지닌 이야기꾼 감독의 그 이후로 이어질 영화들에 대한 예고편처럼 보인다.   

 

 

*사진 출처: iranianfilmempire.wor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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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당신에게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들려줄 것인가? 그렇다. 좀 무거운 질문이다. 이 다큐의 끝에는 그 질문을 받는 사람들의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아프리카의 흑인 소년은 재치있게 대답한다.

  "난 아직 그 질문에 대해 대답할 그 무언가를 찾지 못했어요."

  얀 아르튀스-베르트랑의 2015년 다큐 '휴먼(Human)'은 3년 동안 60여개국의 2000명의 사람들에게 다양한 주제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대답들을 다큐로 담아냈다. 제작사에서 인터넷에 공개한 확장판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러닝타임이 무려 4시간 30분에 달한다. 극장판은 그보다 좀 짧아서 3시간 11분이다. 사랑과 행복, 빈부 격차, 노동 문제, 동성애, 전쟁과 폭력, 범죄, 삶과 죽음의 의미, 가족, 이주민, 교육, 장애와 질병과 같은 다양한 주제에 대한 각양각색의 답들이 쏟아져 나온다. 구성은 의외로 단순하다. 하늘에서 찍은 전세계 곳곳의 자연 풍광이 마치 하나의 장을 넘기는 것처럼 각각의 주제 사이에 배치되어 있다. 그 장면들에 들어간 유려하고 장중한 선율의 음악이 지루함을 상쇄시키는 역할도 한다. 4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다양한 국가, 인종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단순한 생각들부터 깊이있는 철학적 성찰에 이르는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역사적 비극에 대한 증언도 들어있다. 캄보디아의 여성은 크메르 루주에 의해 어떻게 자신의 가족들이 죽어갔는지를 들려주고, 르완다의 사람들은 인종 청소 시기의 끔찍한 기억을 말한다. 이슬람 국가들과 러시아에서 죽음의 위협을 받는 동성애자들의 증언도 나온다. 부패와 범죄로 고통받는 사람들, 가난과 빈부 격차에 대해 토로하는 이들, 정치적 부당함에 맞서는 이들의 이야기도 들어있다. 이 다큐는 그렇게 온갖 이야기들의 모자이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과연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삶의 조건은 어떤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어느 하나로 규정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큐를 기획한 의도도 나름대로 의미있고, 또 그 성과물인 'Human'의 만듦새도 괜찮은 편이다. 그런데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의 나열은 도무지 '깊이'를 획득하지 못한다. 그저, '아, 저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구나'하는 피상적 스침을 만들어낼 뿐이다. 약간의 성찰을 곁들인 영상 서사시쯤 될까?


  'Human'은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감정의 움직임, 행동의 촉구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무려 4시간 반에 이르는 다큐를 보고 나서, 대다수의 관객들은 너무나 잡다한 다큐 속 이야기들을 쉽게 잊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 보다는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날지도 모른다. 문구용품점에 가서 예쁜 팬시 문구류들을 잔뜩 구경하면서 몇 개를 샀지만, 집에 와서 서랍 속에 처박아 두고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 이 다큐는 뭔가가 크게 비어있는 느낌을 준다.

  이 다큐에 한국인의 인터뷰는 없었다. 중간에 들어간 영상에 통일교 합동 결혼식 장면이 나왔는데, 집단으로 모인 사람들의 모습을 조망한 여러 장면 속에 들어있었다. 자막에 'South Korea'라고 표기된 그 장면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지 모르겠다. 특정 종교의 합동 결혼식이 한국을 대표하는 장면도 아닌데, 그걸 구태여 넣은 감독의 의도가 참 황당하게 느껴진다. 알면서도 넣은 건지, 아니면 한국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이 다큐의 부박(浮薄)함을 드러내는 단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출처: 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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