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당신에게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들려줄 것인가? 그렇다. 좀 무거운 질문이다. 이 다큐의 끝에는 그 질문을 받는 사람들의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아프리카의 흑인 소년은 재치있게 대답한다.

  "난 아직 그 질문에 대해 대답할 그 무언가를 찾지 못했어요."

  얀 아르튀스-베르트랑의 2015년 다큐 '휴먼(Human)'은 3년 동안 60여개국의 2000명의 사람들에게 다양한 주제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대답들을 다큐로 담아냈다. 제작사에서 인터넷에 공개한 확장판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러닝타임이 무려 4시간 30분에 달한다. 극장판은 그보다 좀 짧아서 3시간 11분이다. 사랑과 행복, 빈부 격차, 노동 문제, 동성애, 전쟁과 폭력, 범죄, 삶과 죽음의 의미, 가족, 이주민, 교육, 장애와 질병과 같은 다양한 주제에 대한 각양각색의 답들이 쏟아져 나온다. 구성은 의외로 단순하다. 하늘에서 찍은 전세계 곳곳의 자연 풍광이 마치 하나의 장을 넘기는 것처럼 각각의 주제 사이에 배치되어 있다. 그 장면들에 들어간 유려하고 장중한 선율의 음악이 지루함을 상쇄시키는 역할도 한다. 4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다양한 국가, 인종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단순한 생각들부터 깊이있는 철학적 성찰에 이르는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역사적 비극에 대한 증언도 들어있다. 캄보디아의 여성은 크메르 루주에 의해 어떻게 자신의 가족들이 죽어갔는지를 들려주고, 르완다의 사람들은 인종 청소 시기의 끔찍한 기억을 말한다. 이슬람 국가들과 러시아에서 죽음의 위협을 받는 동성애자들의 증언도 나온다. 부패와 범죄로 고통받는 사람들, 가난과 빈부 격차에 대해 토로하는 이들, 정치적 부당함에 맞서는 이들의 이야기도 들어있다. 이 다큐는 그렇게 온갖 이야기들의 모자이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과연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삶의 조건은 어떤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어느 하나로 규정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큐를 기획한 의도도 나름대로 의미있고, 또 그 성과물인 'Human'의 만듦새도 괜찮은 편이다. 그런데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의 나열은 도무지 '깊이'를 획득하지 못한다. 그저, '아, 저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구나'하는 피상적 스침을 만들어낼 뿐이다. 약간의 성찰을 곁들인 영상 서사시쯤 될까?


  'Human'은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감정의 움직임, 행동의 촉구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무려 4시간 반에 이르는 다큐를 보고 나서, 대다수의 관객들은 너무나 잡다한 다큐 속 이야기들을 쉽게 잊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 보다는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날지도 모른다. 문구용품점에 가서 예쁜 팬시 문구류들을 잔뜩 구경하면서 몇 개를 샀지만, 집에 와서 서랍 속에 처박아 두고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 이 다큐는 뭔가가 크게 비어있는 느낌을 준다.

  이 다큐에 한국인의 인터뷰는 없었다. 중간에 들어간 영상에 통일교 합동 결혼식 장면이 나왔는데, 집단으로 모인 사람들의 모습을 조망한 여러 장면 속에 들어있었다. 자막에 'South Korea'라고 표기된 그 장면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지 모르겠다. 특정 종교의 합동 결혼식이 한국을 대표하는 장면도 아닌데, 그걸 구태여 넣은 감독의 의도가 참 황당하게 느껴진다. 알면서도 넣은 건지, 아니면 한국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이 다큐의 부박(浮薄)함을 드러내는 단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출처: 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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