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새 틈이 날 때마다 하는 일이 있다. 구글 서치 콘솔(Google Search Console)에 들어가서 내 블로그 글들의 색인 생성을 요청하는 일이다. 이제까지 써온 영화 글들이 대략 500편 정도이다. 이 글들이 구글 검색 결과에 나오게 하려면, 구글에다가 직접 요청해야 한다. 그런데 이 작업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무려 500편의 글의 URL을 일일이 클릭해야만 한다. 클릭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구글에다가 '요청'하는 것이지, 그걸 들어주는 건 구글 마음이다. 그야말로 엿장수 마음대로인 셈. 구글이 보기에 내 글이 지들의 검색 결과에 나올 만큼 영양가 없다고 생각하면, 퇴짜를 놓을 수도 있다.

  아이구, 구글 행님요. 좀 잘 봐주이소. 겉으로는 이렇게 말을 해도, 속으로는 더럽고 치사하다는 생각만 든다. 내 머릿속에는 문득 한 장의 사진이 떠올랐다. 1980년대와 90년대, 미국 대사관의 비자 신청은 꽤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구불구불, 마치 전국구 맛집의 대기 줄처럼 미국 대사관 앞에서 비자 신청을 하려고 기다리는 이들은 무작정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 신청을 하기 위해 기나긴 줄을 선 이들의 사진은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대국이 가지는 힘을 상징했다. 구글 서치 콘솔을 드나들면서 내 많은 글의 URL을 일일이 찍는 내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딱, 그 사진 생각이 났다. 천조국 미국은 구글이며, 나는 그 구글 왕국의 방문 비자를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다.

  사실 나는 최근까지도 '구글 서치 콘솔'이 뭔지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자신의 블로그 개설기에 대해 쓴 글을 읽었다. '블로그의 글이 구글 검색에 나오게 하려면, 구글에 직접 글의 색인 생성을 요청해야 합니다'는 구절에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 내가 글을 쫙 쓰면 구글 갸들이 다 알아서 검색하도록 해주는 거 아니었어? 정말로 나는 그렇게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내 구글 블로그는 원래 알라딘 서재의 영화 글 백업 창고 개념의 블로그였다. 그런데 그쪽 블로그의 방문자 유입은 아주 적었다. 나는 그 블로거의 글을 읽고서야 비로소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건 내 블로그 글이 구글 검색 결과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려면, '내 글이 검색 결과에 나오게 해주십사' 나는 구글에 정중하게 요청해야 하는 거였다.

  나처럼 구글 왕국 행 방문 티켓을 얻으려는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블로그로 금전적 이득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더욱더 열심히 구글의 대문을 두드리고 두드릴 것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글, 콘텐츠가 구글 검색 결과에 나와야지 사람들이 와서 볼 테니까. 구글은 그런 많은 사람들의 요청에 즉시 응답하지 않는다. 아니, 하기 어렵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내가 생각한 구글의 입장은 이러하다.

  "우리 시스템에는 매일 엄청난 요청이 들어오고 있어. 우리가 그걸 다 들어주려면 시스템에 부하가 걸려. 그러니 시간이 걸린다고. 기다리던가, 아니면 당신이 직접 우리에게 당신 글이 인터넷의 어디쯤에 있는지 찾아서 알려줘. 물론 그렇게 알려줘도 언제 등록이 될지 확답은 줄 수 없어."

  산더미처럼 쌓인 곰 인형의 눈알 붙이기 부업. 구글 서치 콘솔에다가 500편이 넘는 글의 URL을 찍고 있는 내 모양새가 그러하다. 나는 왜 이걸 하고 있을까? 그건 내 새끼들, 내 피와 시간과 정신이 들어간 그 글들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 는 속담. 여기에서 '함함하다'는 말은 털이 보드랍고 반지르르하다는 뜻이다. 나에게는 함함하기 그지없는 그 글이 구글의 이름표를 달고 세상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딱, 그것뿐이다.

  나에게는 아직도 인터넷으로 눈알을 붙여주어야 할 곰인형이 300개나 남아있다. 구글은 하루에 기껏해야 10여 개 안팎의 색인 생성 요청을 받아들인다. 나는 새삼 새로운 시대의 정보 권력자 구글의 위엄을 실감한다. 그것은 나에게 카프카가 쓴 '성(城)'의 거대한 성문 벽 앞의 한 인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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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놀이터


조그만 계집아이는
신나서 튕겨 나갈 듯
그네에 몸을 매달고
그 옆의 배 나온
애비는 느릿느릿
자신의 그네로
반원(半圓)을 연주한다

이제 자식이 옆에 없는
늙은 남자는 희고 마른
강아지 한 마리를 벤치에
풀어놓고 휴대전화에 외로운
얼굴을 조용히 묻는다
 
건너편 아파트 입구
붉은 빛줄기 번득이며
구급차가 누군가를 실으려고
대기 중이다 어슬렁어슬렁
회색의 어린 고양이가
그 옆을 지나간다 며칠 전
한밤중에 으스러지게 짝을
불러대던 그 녀석이었을까

구급차는 아무도 태우지
않고 떠났다 짐짓 좋은
애비노릇하느라 지친
남자는 계집아이를
달래어 집으로 갔다

밤 9시, 정신이 가출해버린
애새끼들이 악다구니를 쓰며
놀이터를 휘젓는다 아무도 미친
아이들을 탓하지 않으며
놀이터는 자비롭게
꾸벅꾸벅 졸음을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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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방 가위를 찾기 위해 나는 방 2개를 왔다 갔다 했다. 이곳저곳을 훑어보고 나서야 가위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내 기억력에 문제가 생겼는가? 아니다. 지금 집안은 난민 캠프를 방불케 한다. 작은 방에는 생수가 쌓여있고, 다른 방에는 세탁 세제와 항아리며 잡다한 살림살이가 자리하고 있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은 바로 '개별난방 전환 공사'이다. 내가 살고 있는 32년 된 이 구축 아파트는 중앙난방에서 개별난방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다. 400 세대가 못 되는 이 작은 아파트 단지는 거대한 공사판으로 변했고, 하루 종일 공사 소음이 메아리처럼 울린다. 끔찍하다.

  작년 겨울의 일이었다. 동대표 영감탱이가 어디서 무슨 소리를 주워듣고는 귀가 펄럭였던 모양이다. 갑자기 '개별난방 전환 공사'를 입주자 대표 회의 안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더니 입주민을 위한 설명회가 얼마 지나지 않아 열렸다. 그 설명회에 주민 몇 명이 참석했는지는 모른다. 관리사무소에서는 방송으로 내보내길, 많은 입주민이 개별난방 전환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곧 개별난방 전환 찬반 투표가 실시되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나는 그냥 부결되려니 했다. 공사가 시작되려면, 전체 입주민의 80퍼센트 이상이 찬성을 해야 한다. 나는 반대 입장이었다. 그 지난한 공사는 생각만 해도 귀찮았다.

  물론 겨울이면 난방비가 많이 나오기는 했다. 특히 가스 요금 인상률이 무척 높았던 작년 겨울은 난방비만 30만 원 가까이 나왔다. 주민들 사이에서 난방과 관련한 이런 저런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난방을 넣는 날씨와 시간대로 인한 민원도 매해 반복되는 문제였다. 그런 불편함이 있기는 해도, 중앙난방에 익숙해진 나는 구태여 개별난방을 선택하고 싶지는 않았다. 겨울만 그럭저럭 넘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다수 주민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무려 90퍼센트가 넘는 압도적 찬성률로 개별난방 전환이 결정되었다. 그 결정에는 공사가 완료되면 '집값이 오른다'는 장밋빛 전망도 깔려있었다. 우리집 포함, '반대' 표는 겨우 20세대 정도였다.

  그래서 오늘, 1차 공사로 가스계량기 교체와 가스관 연결 공사가 이루어졌다. 관리사무소의 공지문에는 다용도실을 치워달라고 적혀 있었다. 공사 1주일 전부터 나는 다용도실의 짐을 빼내었다. 무슨 화수분처럼 살림살이가 나왔다.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 그릇과 화분도 있었다. 그것들을 내다 버리는 것도 일이었다. 공사를 하게 되면 먼지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그 먼지들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 부엌의 잡다한 물건들도 치워놓아야 했다. 내가 오늘 주방 가위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고 다닌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입주민 찬반 투표에서부터 시공사와 보일러 선정, 이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과연 그 세부적인 결정이 얼마나 투명한 걸까? 겨우 몇 명의 입주자 대표라는 사람들이 거수기처럼 참석하는 회의와 회장 주도의 사업 추진은 타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찬성표를 던진 90퍼센트의 주민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불만과 균열의 지점은 엊그제 엘리베이터에 붙은 종이 쪼가리 하나에서 드러난다.

  자칭 '개별난방 공사를 우려하는 모임'이라는 사람들이 글을 써 붙여놓았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사 내용과 상황이 주민들에게 제대로 공유되지 않고 있다. 공사 업체에 입주민의 불만을 전달하고 시정을 요청하려고 한다. 뜻이 있는 입주민분들은 일요일 저녁 8시에 주민회관에 모여달라.

  "웃기고 자빠졌네."

  그걸 읽자마자 그 말이 나왔다. 아니, 그럴 거면 공사 전에 입주자 대표회의 방청 신청을 하고 발언을 하던가,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넣던가 해야지. 이제 와서 도대체 뭘 하자는 건가. 이미 아파트 전체가 공사판으로 변한 마당에. 머저리들. 버스 떠난 다음에 등신처럼 손 흔드는 격이다. 공사 업체에 뭔 요구를 한다는 건가? 공사 완료 기념 열쇠고리라도 받아내겠다는 건가? 그 거지같은 종이 쪼가리는 멸시 받아 마땅하다.

  일주일 뒤에는 보일러 설치 공사가 있다. 또 한 번 이 집은 먼지와 소음에 휩싸일 것이다. 이 공사를 해서 얼마나 세대 난방비가 절약될지는 나도 모른다. 나는 원치 않는 공사를 다수결이라는 다수의 횡포로 한 달 넘게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공사는 8월 말이 되어서야 끝날 예정이다. 개별난방 전환 공사는 아파트라는 애증의 주거공간과 입주자 대표회의라는 불투명한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불신만을 나에게 각인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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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自敍傳)


재미없는 인생이야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래
진실과 거짓의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무언가를
써야 하지 솔직하게 쓰자는
마음가짐은 무익해

그런데 쓰고 싶은 이야기가
딱히 없거든 글 쓰는 사람이
뭐 팔아먹을 이야깃거리
하나쯤 있어야 하는데

쇠고기의 양지머리처럼
뭉근히 우려내어서 국을
끓일 수도 없고 참으로
인생이란 우습고도
눈물이 나 찔끔

예정된 죽음의 시간
또박또박 내게로 걸어오지
꼬깃꼬깃 구겨진 마음
잊어버리자 되뇌지만
꼭 만나야 하는 너처럼
그 순간이 오고야 말 테지

문이 열린 차의 조수석
늙고 아픈 노인은 입을
벌리고 단잠에 빠져 있어
건너편의 놀이터에는
분홍색 옷을 입은
조그만 아이가 엄마를
향해 웃으며 달려가

봄의 마지막 날
포플러 나무의
휘어지는 손짓
자서전의 가운데
페이지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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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자객(刺客)


뱀눈의 남자는
암만 봐도 무서워
겁먹지 않은 것처럼
짐짓 태연한 척하지만
결국 눈을 떠버리지

하루 종일 꾸물거리는
흐린 날 하수구로
시어진 포도주 냄새가
올라와 나는 그걸 죽음의
냄새라고 생각해

이 집으로 이사 오고
그 이듬해, 윗층의
젊은 아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 아주
오래전 일이야 어떤
죽음은 기억의 둥지에
철끈을 매고 기다리지

할머니는 나쁜 꿈을 꾸면
액운을 내어 쫓는다며
새벽 마당 바닥에
날이 반듯하게 선 칼을
세게 내려치곤 했지
나에게는 잘 들지 않는
칼이 세 자루 있을 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뱀눈의
남자와 싸우는 수밖에 없겠어
사박사박 숫돌에 칼을 갈고
꿈으로 길을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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