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현실적으로 생각했을때 있을꺼 같지 않은 일이지만 소설속에서는 비현실이 현실이 되는데 그 이야기가 그저 이야기로만 남아 있는 책이 있고 책속에서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이책은 책속의 이야기 일뿐이고 그냥 그냥 사랑이야기에 약간 환상적인 요소들이 섞여 있다. 이 이야기는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고 가보지도 못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소아과 의사가 겪는 시간여행에 관한 것이다. 캄보디아에서 의료봉사활동으로 도와준 사람에게 신기한 알약을 받은 엘리엇은 그 알약으로 30년전 젊은시절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미 오래전에 자신의 운명의 여인은 사고로 목숨을 잃었지만 그녀조차 30년전엔 아름답게 살아있고 그녀를 바라볼수만 있다면 이라는 소원을 알약으로 푼다. 시간여행을 통해 그녀를 살릴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기지만 그 계획은 또 다른 운명을 가져오게되고 또 다른 사건을 만들어버린다. 1970년대 샌프란시스코의 엘리엇은 2007년을 모르지만 2007년의 나는 1970년대 샌프란시스코를 알수 있다. 물론 30년이라는 제한을 뒀고, 10번이라는 회수도 제한이 있지만, 누구나 알 수 있는 사건들을 시간여행을 통해 이야기로 재구성되어진다는 점이 어찌보면 신선하기도 하겠지만 왠지 나는 어허 작가가 왜 이리 상상력 부족이실까 하는 마음뿐이었다.
안동의 400년된 무덤에서 편지 한장과 미라가 발견돼 한동안 기사에 오르내렸나보다. 작가는 그 편지의 복원하는 작업에 참여하다 우연히 일본의 교수가 가지고 있는 문서들을 접하게 된다. 이 편지와 일기같이 쓰여진 서류들을 통해서 이야기가 엮어지는데 실제로 함께 있었던 제문이나 다른 편지들은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었고 유독 책 속에 여늬가 쓴 편지들만 오롯이 보존되었다고 한다. 하늘의 꽃인 소화를 훔친 여늬가 현생에 태어나고 그 사실을 모른채 이응태와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태어날때 이미 소화를 들고온 여인은 뒤도 돌아보지말고 내치라는 운명의 예언을 받은 이응태의 아버지는 사실을 모른채 여늬가 박복하고 박색에다 성격도 거칠다는 이야기를 믿고 둘의 혼인을 치르게 하는데 그 과정도 참 운명적이다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소화꽃을 지키던 정원지기 팔목수라는 훔쳐간 꽃을 찾아 이승세계의 여늬를 찾아 헤메는데 응태와 여늬를 연결해준 소화나무를 모두 베버릴수가 없어 남겨둔 한그루의 향기를 맡고 이응태의 집까지 찾아들고 여늬를 지키려 이응태는 팔목수라에게 자신의 목숨을 뺏기게 된다. 아비 없이 키운 아들 원이와 둘째아들 승회를 시댁에 보내고 여늬는 친정에서 죽은 남편과 아이들을 그리워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다 큰아들마저 팔목수라가 데리고 가자 능소화라는 이름을 소화꽃에 붙여주고 자신과 남편무덤에 소화꽃을 심어달라는 부탁을 하고 자신의 목숨을 끊을 결심을 한다. 사실 내용은 약간 황당했지만 실제로 작가는 능소화가 피는 그 계절에 능소화가 가득 핀 이름없는 무덤을 찾아냈고 제를 올려주었다고 한다. 편지여백을 돌려가며 쓴 구절구절마다 눈물이 맺혀있는듯, 하루하루 바람소리 물소리 발소리 낙엽소리도 눈물로 변해서 그 눈물들로 능소화가 피어나는듯, 저세상에선 평화롭게 둘이 만날 수 있었는지. 아들 원이와 허허롭게 소풍 갈 수 있었는지. ...
굉장히 체계적이고 심층적이다. 이중섭의 일대기는 물론 일련의 작품에서 그의 내면세계를 훑어내는 과정이 일목요연하고 이해하기 쉽게(?) 정리되어있다. (이중섭의 실제 생각이 이 책에서 짚어내는 부분과 같을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전시에서 은지화와 군동화를 처음 봤었고 실상 좋아하는 황소그림은 사진으로 밖에 못 봤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황소뿐아니라 '흰소'와 '서 있는 소'를 실제로 볼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생활안에서 찾아낸 소재들로 그가 추구하고 완성하려 했던 도원(桃圓)이 오래 지속되지 못 한점이 아쉬웠다. 엄청난 창작에너지의 근원이 자신을 넘어서고 가족을 넘어선 민족의 이야기로 걸쳐진다는 부분을 읽을때는 약간 소름이 돋기도 했다.
정민선생님(이교수님은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훨씬 잘 어울린다) 이 쓴 미쳐야 미친다도 그렇고 (아직 읽지 못함) 이책도 그렇고 죽비소리도 그렇고.. 참 제목이 책 읽고 싶게 만든다. 얼마전 호모 쿵푸스를 읽으면서 알게된 사실인데 책을 소리내서 읽는게 기억에도 도움이 되고 또 훨씬 건강한(?) 공부법이라는걸 알았었다.(목소리를 울림으로써 기를 돌게한다는) 역시 이책에도 같은글이 적혀있어 여기저기 낭독해 본 구절이 많았다. 이책을 읽는동안 계속 옛 선비들의 글 읽는 모습, 글 읽는 소리들이 졸졸졸 들리는 거 같았다. 또 옛 선인들에 비춘 오늘날의 모습에 선생님이 걱정어린 한마디를 하시는것도 정답게 들렸고. 조선시대를 지금과 비교하면 모든 물질적인면들은 나을 수 있겠지만 기초적인 것들을 공부하는 힘, 우주를 바라보는 눈, 예를 생각하는 마음은 이 선비들의 발끝에 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 늦은 장마에 사랑채에서 나지막히 비소리와 함께 글 읽는 소리를 매번 듣게 하는 작가가 보석같다.
청소년 소설의 소재가 다양해지고 자극적이 돼간다는 기사를 읽은적이 있다. 지금 청소년들을 생각하면 마냥 순수하고 행복하기만 할 것 같은 책만 나온다는게 좀 이상하게 들리긴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주홍이가 낙태를 하기까지엄마와 선생님과 주홍이가 겪는 마음상태를 쥐를 통해서 적는다. 역시 소재면에선 확실히 자극적이다. 실제로 소설 중간을 읽을때까지 칠판이 긁히는 거 같은 쥐소리를 내가 아무 저항없이 듣게만 되는데 그래서 온몸을 곤두세우고 책을 읽게 된다. 대체 정체가 뭐란말이냐 하면서. 그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손을 내민다는게 또 누군가의 손을 잡아준다는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일까. 생각하게 된다. 엄마와 딸인데도 저렇게 쉽지 않은데. 손을 내밀고 나서도, 손을 잡아주고 나서도. 받아들이기 쉬운 일은 아닐것이다. 그래도 ..그렇지만.. 그래서, 살아야 하는거 아닌가? 그렇게 휙 잘라버리고 죽어버리면 내가 내밀기까지, 내가 잡아주기까지 힘든 선택들을 다 저버리는 일인데. 쉽게 결정내려서는 안될 문제인데 가까이에서 상처받은 마음과 몸을 잘 보듬어주지 못한 주홍이 엄마가 답답했다. 결국 자신을 추스리지 못한 주홍이도 답답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