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옆 머리가 지저분해졌다. 난 옆머리, 뒷머리가 지저분해지면 빨리 미용실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 오늘은 어디서 깎지?
미용실에 가서 앉으면 항상 "괜찮게 적당히 깎아주세요"라는 표현을 쓴다. 누군가 내 삶을 평가한다면 적당주의라 할 수 있을만큼 무딘데다가, 취향에 있어서도 호오가 남들보다 그리 뚜렷하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머리를 자르는데도 좋게 말하자면 그다지 욕심이 없다. 미용실 가면 가끔 머리의 길이를 주문하기도 하지만 머리 스타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해본 경험은 내 일생에서 거의 없었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이 무디고 무딘 입맛(덕분에 옆지기는 편하다)은 최고의 맛집 요리조차 분간해낼 수 없을 정도이기에 웬만한 음식이면 다 맛있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사는게 편하다. 그렇지만 나도 나름대로 식당 고르는 기준이 있는데, 그것은 얼마나 음식에 성의가 보이는가다. 5천원짜리 음식에 달랑 단무지, 김치만 주는 그런 식당들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가격과 상관없이 그 가격에서 마련할 수 있는 최선의 식단을 제공해 주는 곳을 선호한다. 맛은 두 번째 기준이다.
내가 미용실 또는 미용사를 선호하는 기준은 얼마나 성의있게 나의 머리를 대하는가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남자의 머리를 정성껏 다듬는 것일까? 성의있는 머리손질의 기본은 바로 가위질의 횟수와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성의없다고 생각하는 미용사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위를 거의 혹은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기계로만 다듬는 사람들이다. 가위를 쓰는 방법이 서툴러서 그런지, 아니면 단 한번만 갖다 대도 지르르 잘도 자르는 기계의 효능을 과신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스타일의 미용사를 만난다면 돈의 액수와 상관없이 괜히 왔다는 생각이 절로 나게 마련이다. 또 한가지, 빗질 가위질 하면서 머리카락을 뜯는 사람을 만나면 무지하게 기분이 나빠진다. 어쩌다 한번 그러면 실수이거니 생각하지만 10여분 동안 몇 번씩 소리없는 작은 비명을 지르게 하는 미용사들에 좋은 감정이 생길 리 없다. 더군다나 이런 미용사들이 제공하는 이발 서비스의 시간은 대체로 무척이나 짧다.
그렇다면 정성껏 자르는 사람들은? 내 머리의 구석구석에 가위를 세밀하게 대는 사람들이다. 정성스런 손길에서 나오는 소리, 내 귓가에서 나지막히 들리는 그 사각거리는 가위소리는 마치 연인이 속삭이는 사랑스런 밀어를 듣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능숙한 빗질도 나를 만족시켜준다. 빗과 가위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내 뒷머리를 살며시 들어올리고 순식간에 잘라버리는 기술을 사용할 때 나는 약간의 스릴을 느낀다. 대부분 성의를 들여 정성껏 머리 자르는데 몰입하다보면 그 시간이 훌쩍 길어질 수도 있다. 이제 시작하는가 생각했는데 벌써 손에 쥐어져 있는 머리카락 터는 솔을 본다면 허망하기 그지없다.
머리 감은 후에도 끝까지 머리의 전체 모양을 보며 부분적으로 머리를 다듬어 주는 성의도 필요하다. 구레나룻과 같이 마무리가 필요한 부분에서마저 조그만 기계로 몇번 드르륵 해버리고 마는 미용사들과 피부가 벌겋게 다칠까봐 크림이나 분이라도 발라주며 아프지 않게 정확히 칼을 댈 줄 아는 미용사들의 정성의 차이는 실력 차이만큼이나 크다.
사실 가위를 잘 쓰는 것은 미용사들의 최소한의 기준 아닌가? 미용실이 여성 고객을 주로 상대하다보니 상대적으로 까다롭지 않은 남성들을 위한 기술을 연마하는데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쓰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위를 잘 쓴다는 점에서 남자 이발사들은 장인이라 불려도 될 것이다. 사각 사각 소리를 내면서 빠르게 움직이는 가위와 빗. 그렇지만 이발소가 요즘처럼 쇠퇴해 가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터. 젊은 감각에 떨어지는(떨어진다기보다 노력을 하지 않는) 이발소의 분위기, 끝난 뒤에도 내가 내 머리를 감아야 한다는 점(이것 때문에 이발소만 찾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또 잘못 찾아갔다가는 엉뚱한 서비스를 강요받을 것만 같은 시대적 불안감이 나의 발길을 떠나게 한다.
지금 실토하지만, 남자 미용사가 깎아주는 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낀다. 특히나 머리를 감겨주는 것은 더더욱 그러하다. 간혹 여성들이 미용실에서 남자 미용사(혹은 시다바리)가 우악스런 손으로 머리를 감겨줄 때 스릴을 느낀다고 적은 글들을 보곤 하는데, 난 역시 남자라 힘세고 거친 손길보다는 부드럽고 세심한 여성의 손길이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좋아한다. 가위손 같은 멋진 미용사라면 또 모를까? 근육질의 남성이 무방비상태로 뒤로 누워 있는 나의 머리를 힘차게 세탁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발소의 대안으로 최근 급성장한 "퍼런 구락부"와 같은 남성전용 미용실 브랜드는 사실 최악의 조합을 선택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만다. 쥐가 내 머리를 뜯어먹는 것처럼 고문당하는 듯한 '실력없는 미용사들의 처절한 손질'과 '머리도 안감겨주는 첨단 이발소 시스템'이 바로 최악의 만남인 것이다. 돈 아끼려 선택했다가 그 돈마저 아까워서 몇 번이나 슬퍼했다.
나에게 있어 머리 손질은 남들 보기에 좋고 깨끗해지기 위해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한 달에 한 번 머리 손질을 받는 그 짧은 시간은 내 몸의 일부를 타인에게 맡기는 유일한 시간이고(옆지기가 안마도 안해준다. 흑흑), 그 시간만큼은 내 몸이 소중히 다뤄진다는 느낌을 받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부드러운 손길의 어루만짐에 대한 로망도 없다고는 말 못한다.
겉만 번지르르해진 요즘 미용실들. 겉옷을 걸 수 있는 옷장도 있고 언제나 뽑아 먹을 수 있는 각종 차들도 준비되어 있으며 비듬이나 탈모에 대한 과도한 조언을 해주기도 하지만, 당황스럴 정도로 짧은 시간동안 몇 번 드르륵 해버리고 끝내고 마는 그런 미용실들. 그러면서 최소 만원 이상을 받는다. 내 머리 손질 값을 멋지구리구리한 인테리어 보는 것으로 보상받을 생각은 없다. (그리고, 왜 미용실에 남자 컷트 비용은 안써놓는거야. 입구에 가격표를 떡하니 써놓아야 발길을 돌릴 것 아닌가?)
몇 년 전, 지금은 없어진 학교 앞의 한 미용실에서 무려 30분 가까이 내 머리 붙잡고 이리 살짝 저리 살짝 돌려가면서 정성껏 다듬어주던 미용실 언니의 손길이 아직도 느껴지는 듯하다. 아무렇게나 머리를 자르고 나면 가끔씩 그 미용실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난 아직까지 마음에 드는 단골 미용실을 만들지 못했다.
* 참고로, 경북 어느 지방에서는 머리를 자른다는 표현대신 '머리를 끊는다'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얘! 진영아, 오늘 우리 머리 끊으러 가자." 타지인들이 들으면 등골이 오싹해질지도 모르겠다.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