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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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하게 우울하고싶다. 그런 소망을 품은 적 있다. 우울이란 감정은 내게 중하기에 이것을 차마 떼어놓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평생 이걸 안고 살아야하니 기왕이면 나는 발랄하게 우울하고싶다는 꿈을 품은 적 있다. 한창 우울했던 시절에. 고통은 수시로 어떤 형태를 지녔는지 알려주지도 않은 채 다가와 훅을 날린다. 버텨볼만큼 버텨보리라 하고 이를 악문다. 맞서면서도 감당하기 힘든 지옥불과 같은 고통이 언제 다가올지 모른다. 담대해지리라 하지만 순간 무릎이 꺾이고 땅바닥을 맨주먹으로 쳐서 손가락뼈가 으스러지는 순간이 분명 있으리라. 겪어본 적 없어 상상으로도 알 수 없으나 사지가 찢기는 고통. 이 생에 한 번은. 그럼에도 발랄할 수 있을지. 감히 발랄하고 더 발랄하게 인생을 즐기겠다는 무모한 말을 할 수 있을지. 그렇지만 나는 발랄하고싶다. 너털웃음이 나온다. 사지가 찢기워지는데 그 후에도 고통은 가시지 않는데 어떻게 발랄하겠단 말인가. 그게 인생에 가능하겠는가. 그리고 인생.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인생. 발랄한 고통은 극히 모순적이라 눈썹부터 찡그려진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설령 내가 괴물이 된다고 해도 나는 발랄해지고 싶다. 누군가를 해치지 않고 그저 발랄하게 생의 템포를 마지막 멈춰지는 순간까지 이끌어나가고 싶다. 어떻게? 발랄하게.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를 완독했다. 마음으로는 별 다섯인데 아직은 별 다섯을 언니에게 주고싶지 않아요. 다른 책도 읽어보고 어제처럼 확 몰아치지 않고 느긋하게 재독하고 별 다섯을 드리고싶다. 차분하게 이지적으로 마주 앉아 나는 이런 이런 시간을 보냈어, 너는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니? 봄바람이 이렇게 좋은데 (언니, 봄바람이 아니라 황사바람이에요, 황사바람) 너는 왜 우울하게 내 책을 읽고 있니. 세상에 얼마나 좋은 책이 많은데. 그리고 너 사페도 아직 완독하지 못했잖니. 친구들이 사페 읽는 동안 너 나 읽으면 너무 비겁한 거 아니니. 언니 사페가 제 생각만큼 재미있지 않아요. 그러니 잠깐만 언니 읽고 다시 사페로 돌아갈게요. 아니 언니 근데 왜 이렇게 글을 잘 쓰세요. 막 무너지네요 제가. 페이지를 넘기는 손가락이 딱 정지 상태로 있고 다른 일로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지지 않아요. 아니 언니 왜 이렇게 자신을 혹사시키셨어요. 내가 나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이 말 모르세요? 똑똑한 언니가! 너무 이른 나이에 도착한 죽음. 더 살았다면 분명 번역가의 말처럼 오래오래 더 많이 좋은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을 텐데. 고립과 고독, 중독에 대한 것들, 나쁜 연애, 사랑에 대한 열망, 완벽한 부모님의 무너져가는 모습을 마주하는 동안, 혼자 사는 여성의 고독, 우정, 개와의 사랑 등등에 대해서 캐럴라인이 하는 말들 주워담는 동안 반짝반짝 빛나는 구슬 하나 떠올랐다. 모든 것들이 끝났다고 여길 때 살그머니 떠오를 수 있는 마법 구슬 하나를 선물받은 느낌이다. 자신을 극단으로 몰고가는 사람들은 위험하다 분명. 곁의 이들까지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이 아파 술을 갑자기 확 끊고난 후에야 어느 정도로 엉망인 삶을 살았는지 깨달았다. 아직까지 중독은 아니지, 중독 직전까지 갔지. 하지만 지나고보니 중독이었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자신에 대해서 이토록 명료하게 드러내보이기가 쉽겠는가. 다른 이들 눈살을 찌푸리지 않게 하면서도 읽는 동안 느낌과 생각하기를 동시에 하게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캐럴라인 냅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제목이 좋았을 뿐이고 김명남 번역가가 번역했다고 해서 목을 길게 빼었을 뿐, 그중에 제일인 건 역시 표지였다. 정면을 응시하지 않고 허공을 바라보며 내 안에 있는 것들을 헤아리는 시간, 하얀 커피잔이 앞에 놓여져 있고 내가 나에게 혹은 사랑하는 이에게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내보이는 시간. 스스로 삶을 헤아리는 시간. 그런 것들이 담겨져 있어서 책이 나온 후 바로 사지도 않고 바로 읽지도 않고 그림을 한참 바라보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나는 나에게 누구일까. 내 인생은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갈까. 나는 이 인생으로 무엇을 할지 그런 것들을 중간 지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표지 속의 여인은 내게 그러한 것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딱 중간까지 살았는데 이쯤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분명 잘못하고 있는 일이 있을 텐데 어긋난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게 뜻하지 않게 때로는 뜻해서 있을 텐데 이 엉망으로 꼬인 것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앞으로도 계속 이것들을 품고 나아가야 할지 아니면 아쉽지만 괴롭지만 이제는 이것들을 놓아주고 자유롭게 안온하게 생을 살아가도록 확 뒤집어엎어야 할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여인. 그건 나이와 무관하다. 열심히 살아가면서도 한 번씩 멈춰서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바라봐야하는 순간 있으니. 그림 속의 여인과 마찬가지로 캐럴라인 냅의 글 역시 너도 한번 체크해봐, 네 현재 인생을, 알려준다. 


같은 맥락에서, 내가 더 애정에 굶주리고 불안정한 상태일 때는 그 갈망이 격화된다. 사랑받는 느낌이란-진정으로 사랑받는 느낌이란- 일종의 균형이 필요한 일이다. 그 느낌은 상대와 내게서 절반씩 생겨나야 한다. 사랑은 솟구쳤다가 가라앉았다가 하는 역동적인 감정이다. 가끔씩 밀려드는 의문과 실망과 애매함의 파도는 사랑의 자연스러운 물결에 반드시 있기 마련인 그 일부다.
이런 깨달음이 마냥 좋은 건 아니다. 나도 이런 현실이 싫고, 그래서 자주 맞서려고 한다. 아직도 나는 동화적인 환상, 어린 시절부터 뇌리에 새겨온 신념, 즉 언젠가 완벽한 사람이 나타나서 나를 사로잡아 모든 것이 분명하고 밝고 모호함 따위는 없는 미래로 데려갈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기가 끔찍이 어렵다. 하지만 나도 인간일 뿐인 것을 어쩌겠는가. 나는 사랑받고 싶다. 한없이 한없이 한없이. - P81

중독은 즐거움과 기쁨과 놀라움을 마비시킨다. 우리가 진정한 친밀감, 진짜 웃음, 진실된 통찰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붙잡는다. 마취제를 버릴 때, 우리는 자신의 인간성에서 가장 의미 있는 측면들을 되찾을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는 셈이다. 삶을 살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는 셈이다. 그걸 상상해보라. - P225

겸손한 영혼을 갈망하는 마음, 당신의 기대를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낮춰줄 현실적 세계관을 갈망하는 마음이다. 쉬고 싶은 마음, 당신이 아닌 존재가 되려고 발버둥 치기를 그만두고 (이 대목에서 깊은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그냥 당신으로 존재하고 싶은 마음이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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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1-03-30 1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링킹을 지난 여름에 사 왔는데 한번 펼쳐보지도 못했네요 (그런 책이 어디 한두권이냐마는)
그리고 사페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말하는 거죠? 처음에 사이코패스인줄.... 그리고보니 사이코패스는 사패구나 ㅋ

수연 2021-03-30 11:14   좋아요 0 | URL
네 사회주의 페미니즘 ㅋㅋㅋㅋㅋㅋ 내일이 3월 마지막 날인데 계속 뒤로 미루다가 결국 오늘내일 미친듯 읽게 생겼네요 -_- 드링킹은 조만간 읽어보려고 해요. 명랑한 은둔자 읽고 캐럴라인 냅 팬 됐어요. ^^

공쟝쟝 2021-03-30 19:16   좋아요 0 | URL
사이코패스 (ㅋㅋㅋㅋㅋㅋㅋ) 두께가 그정도이긴 합니다만 ㅋㅋㅋㅋㅋㅋㅋ 왜 그런거 있지않나요? 제목 줄여서 부르면 그 책이랑 친해진 기분 ㅋㅋ

공쟝쟝 2021-03-30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수연님 리뷰읽구 차분해졌어요! 냅언냐 좋죠. 명랑한 은둔자 저 앞에 다섯페이지 읽고 또 홀딱 반해서 밀쳐놨는 데... 수연님 글 읽으니 벌써 기대가... (그러고 보니 우리 은근 독서 취향 맞는 듯? 😭)
우울하지만 발랄한 자세... 발랄하고 우울한 사람.. 어 넘나 매력적.. 저 그거 될래요! 수연님도 그거 하십시다!!

수연 2021-03-30 19:20   좋아요 0 | URL
어머낫 그렇네 그러고보니 🥰
 

‘전형적‘ 식욕부진증 환자에 대해서 잠시 설명하자면, 일단 약90퍼센트가 여성이다. 대부분 교육 수준이 높고 부유하고 성취를 중시하는 가정 출신이다. 대부분 12세에서 25세 사이로 젊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대부분 의지가 강하고, 완벽주의자이고, 자기 인식이 형편없고, 자긍심이 바닥이지만 그마저도 남들을 만족시키는데서 얻는 사람들이다.
나는 중상층 가정에서 자랐고, 사립 중등학교를 다녔고, 아이비리그 대학을 다녔다. 예뻤고, 인기가 좋았고, 성적이 올 에이였고, 학업 우수상을 많이 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내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내게 생기는 좋은 일들은 모두 외부적 요인의 산물이라고 - 우연이거나, 남들이 잘못 판단한 것이거나, ‘행운’ 이거나 - 여기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속에서 나는 흠이 있는 사람이었다.- P160

친구들이 회복에 관한 질문을 던지면, 나는 가끔 문화적 이미지들을 끄집어내어 말한다. 케이트 모스, 빼빼 마른 모델들, 수영복광고 등등. 늘 그런 것들을 보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과연 어떤 여자가 음식과 신체 이미지에 있어서 자신이 정상이라고 느낄까? 날씬한 몸을 이상으로 받드는 이미지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거식증 같은 문제를 진짜 극복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나는 그런 이미지들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하고, 그 힘에 영향받지 않는 여자는 아주 적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지긋지긋하게 싫다. 이런 외모를 가지면 더 행복할 거예요, 날씬해지면 삶이 더 나아질 거예요, 하는.
그런데 그런 메시지들은 비록 상태를 악화시키는 힘을 발휘하기는 해도 궁극적으로는 배경 음악일 뿐이다. 진짜 음악은 우리 머릿속에 있다. 그 속에서 매일 혼란스럽게 연주된다. 오늘 운동할까말까? 운동을 안 해도 기분이 괜찮을까 나태하다고 느껴질까? 나태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내가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하고 강박적이라는 뜻일까? 망할 메뉴 고르기 딜레마도 마찬가지다. 성이 찰까싶은 그리스 샐러드를 주문하면 잘했다 싶을까 불만스러울까? 불만스럽다면 집에 가서 쿠키 열일곱 개를 먹는 걸로 과잉 보상하게될까? 과잉 보상하게 되면……….- P181

술은 그토록 알 수 없는 수수께끼입니다. 우리가 술에 절어 있을 때는 술이 유일한 해결책인 듯, 술이 자신을 산산조각 나지 않게 붙잡아주는 접착제인 듯 느껴지죠. 하지만 사실은 술이 문제의 근원이죠. 술은 우리가 꼼짝달싹하지 못하도록 발바닥을 바닥에 붙여놓는 접착제죠. 그날 아침, 저는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그 사실을 깨우쳤습니다. 어쩌면 퍼뜩 머릿속을 스친 생각에 불과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순간의 생각이 점차 자라서 결국 저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진실은 무릇 무척 단순하지만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이죠. 저는 아빠를 사랑했어요. 하지만 아빠처럼 되고 싶진 않았어요. 저는 술을 사랑했지만, 아빠처럼 죽고 싶진 않았어요.
두 달 뒤, 저는 술을 끊었습니다.- P212

"글쎄, 너도 만약에 다리 사이에 이렇게 덜렁거리는 게 있다면 그걸 대하는 태도가 지금하고는 달라질걸." 친구는 이렇게 말하고는 내처 자유연상을 펼치기 시작했다. 열여섯 살 남자아이가 수학수업을 듣다가 아무런 이유 없이 불쑥 발기했는데 마침 그때 수업이 끝나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면 어떤 기분인지 아냐…… 남자가 되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98퍼센트 이상을 자기 섹슈얼리티를 의식하는 데 쓰지 않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
잠자코 친구의 말을 듣다 보니 좀 묘한 감정이 일었다. 처음에는 방어적인 태도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알았어, 남자애들은 호르몬 때문에 수학 수업을 듣다가도 황당하게 꼴린다는 얘기는 지겨우니까 이제 그만해." 하지만 그 기분은 이내 다른 것으로바뀌었는데, 이건 마치..질투였다. 아니, 음경 선망은 아니었다. 나는 별 볼품없는 살덩이 몇 센티미터가 내 인생과 사랑에 대한 관점을 좌지우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평생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런 얘기가 아니다.- P237

대부분의 사람은 만약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록스타가 되거나, 뇌 수술 전문의가 되거나, 하이즈먼 트로피(미국 대학 미식축구 최우수선수상) 수상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 만약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나는 이탈리아인이 되고 싶다.
그냥 하는 말도, 잠시 든 생각도 아니다. 나는 예전부터 이탈리아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파스타를 좋아한다. 이탈리아 포도주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로, 나는 만약 내가 이탈리아인이라면 혹은 이탈리아인의 기질만이라도 갖고 있다면 —1990년대라는 이 시대가 이토록 심란하게 느껴지진 않을 거라고 믿는다.- P252

여느 많은 여성들처럼, 그때까지 내가 육체적 변형에 기울인 노력은 주로 아름다움과 날씬함을 추구하는 데 맞춰져 있었다. 내 곧은 머리카락을 물결치게 만들기 위해서 파마를 했고, 피부를 곱게 만들기 위해서 로션이며 물약이며 발랐고, 체중을 통제하기 위해서 기진맥진해지는 운동 처방을(조깅, 스텝 에어로빅) 따랐다. 거식증조차도, 비록 역설적이고 뒤틀린 방식이기는 해도 조금쯤은 이런 노력에서 비롯한 행위였다. 거식증은 우리를 둘러싼 미의 이상이 왜곡된 현상이고, 여성은 이 세상에서 아주 좁디좁은 공간만을 차지해야 한다는 명령에 일면 굴복하는 행위이면서도 다른 한편 저항하는 행위이기도 한 그로테스크한 과장 행동이다.
하지만 내 팔은, 근육질의 강한 내 팔은 이런 패러다임에서 면제된 부위, 운 좋게도 면역이 있는 부위였다. 팔이 여성의 몸에서대부분의 다른 부위에 비해 자기 수용의 측면에서 조금이나마 더여지를 주는 부위라는 사실은 아마 많은 여성에게 공통된 일일 것이다. 세갈래근 수술을 받으려고 성형외과를 찾아가는 사람은 없고, 탈의실에서 자신의 못생긴 아래팔을 한탄하거나 팔꿈치를 불평하는 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팔은 (최소한 아직까지는) 우리 몸에서 가장 덜 검열되는 부위이고, 가장 덜 성애화된 부위이며, 그 덕분에 우리는 팔을 사랑하기가 가령 엉덩이나 허벅지를 사랑하기보다 약간 더 쉽다.- P342

오늘 아침 일찍 나는 강에 배를 띄우고, 청명한 8월 말 하늘 아래 강을 거슬러 오르며, 배의 리듬에, 수면에 부딪혀 반짝이는 햇빛에, 노가 물을 가르는 느낌에 넋을 잃고 몰입했다. 나는 스스로 강하고 유능하다고 느꼈고, 내 몸이 내가 가르친 대로 움직인다고 느꼈다. 그리고 계속 노를 저으면서 나는 내 팔을 생각했고, 힘과 아름다움의 관계를 생각했고, 내가 여성의 몸매와 체형을 규정하는 표준 방정식을 거스르는 데 이 스포츠가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지를 생각했다. 평소 내 팔은 스웨터나 긴팔 옷에 싸여서 남들 눈에 띄지 않게 가려져 있다. 나는 팔을 내보이지 않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내가 내 팔에서 느끼는 만족은 전적으로 사적인 것이고, 이 점이 그 만족감을 특히 의미있게 만들어준다. 몸매에 관한 외부의 명령이 아니라 나 자신의 열정과 어떤 일을 할 줄 아는 능력들에서 비롯한 미적 기쁨, 안에서 나와 밖으로 드러난 아름다움. 날개가 된 나의 팔, 이것이 바로 해방의 정의라고, 나는 믿는다.-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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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 퀸의 공작과 나_를 다 읽고 내 인생 다시 이렇게 뜨거운 밤이 찾아오겠는가 이토록 뜨거운 대낮의 사랑이 다시 가당키나 하겠는가 물어보지는 않았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바로 펼치고 두 장 읽었다. 사랑 하면 좋지만 지금은 사랑이 아니어도 할 일이 많은지라 아마도 그래서 물어보지 않은 거 같다. 연애하지 않는 친구들에게 너는 왜 연애 안 하니 자꾸 물어보고 연애하는 친구들에게는 적당히 사랑해야 해 적당히가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연애가 없어도 연애 대신 하고싶은 일들 리스트로 쫘악 작성한다. 김혜수 언니는 연애 언제나 할 거 같지만 연애하지 않는 혜수 언니도 멋지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어느 곳에 있어도 그 여유로운 웃음을 잃지 않을 거 같다. 혜수 언니 헤어진 전 애인이랑 공식석상에서 포옹도 하는 여자야. 아 이 사람들은 헤어졌어도 이럴 수 있구나 이게 가능하구나 이렇게 사랑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 포옹을 해. 우정의 몸짓에서 그 무엇을 더하거나 뺄 필요 없어보였다. 이런건가. 나이가 들어 그 모든 경계를 무너뜨리는 건. 봄이 오는 게 빗방울이 아스팔트를 찰박찰박 때리는 그 광경에서 느껴졌다. 보도블럭에 고여있던 물웅덩이 건드리면서 운동화가 다 젖는데도 기분이 좋은거다. 봄이라고 미니스커트 입고 나온 친구 예쁜 다리 훔쳐보면서 아니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 왜 이렇게 옷을 얇게 입고 다녀! 감기 걸리게! 하니까 하나도 안 추워! 진짜로 안 추워! 하는데 운동화 젖어서 짜증 날 법도 한데 기분 좋아 배실배실 웃고 있는 나랑 똑같은 마음인 거니? 그래서 춥지 않은 거니?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나는 자꾸 눈물이 나왔다. 그냥 계속 눈물이 나와서 커피숍 냅킨으로 눈물을 찍으면서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또 물어보았다. 이런 이야기는 술 마시면서 들어야 하는데 하고 머리 속으로 쩜쩜쩜 찍었다. 외로울 새가 있어? 외로울 틈새가 없는 시간도 있다. 할 일은 많고 그 많은 할 일을 하지 않고 대충 지내려고 해도 꼭 일이 쌓이고 쌓인다. 그리고 문득 외로워하기도 한다. 베르그송은 잘 지내는지. 빛과 소금 노래를 끝없이 불러주던 기타를 잘 치던 첫사랑은 아직도 내게 안 좋은 마음을 갖고 있을지 가끔 궁금하지만. 영어공부 하던 남편이 서재에서 나와 나 커피 마실건데 커피 내려줄까? 또 알라딘에 일기 쓰니? 또 내 욕 하니? 지난 사랑 이야기 또 하니? 묻는다. 여보 만일 나랑 헤어지면 넌 또 재혼할 거야? 또 연애할 거야? 물어보니 아니 하지 않아, 나한테는 자기밖에 없어, 이런 거짓말은 필요 없을 테고 귀찮잖아. 읽을 책도 많고 해야할 일이 많으니까. 그리고 우리딸이 싫어할걸. 너나 나 연애 하는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아이는 성인이 되어 딸아이의 인생을 꾸려갈 것이다.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을 떠나고 밤새워 술을 마시거나 밤새워 독서토론을 하지는 않겠지? 설마. 왜 너는 나랑 헤어지면 또 연애하고싶어? 아니, 나는 친구들이랑 놀 거야. 책 읽고 커피 마시고 맛난 거 해먹고 세계 방방곡곡으로 여행 다닐거야. 응? 그런 건 굳이 나랑 헤어지지 않아도 할 수 있단다. 앗 그렇군. 봄인지라 더 이상 사랑이 가당키나 한가 묻는 순간도 있기는 하더라. 페이지는 사각거리고 갓 내려진 커피는 입을 아직 델 수 없을 정도로 뜨겁다. 해는 쨍쨍거리는데 황사가 심하다고 한다. 서울을 뜨고싶은 마음과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사는 일이 가능할까 홀로 묻는다. 말콤 글래드웰이 그랬다. 너는 너 혼자 잘나서 너 혼자 잘 사는 거 같지? 아니란다. 우주의 기운이 너 잘나서 너 잘 살라고 그렇게 다양한 각도로 에너지를 보내주고있는 거란다. 시간과 공간과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너를 잘나게 봐주는 너를 사랑해주는 이들 덕분에 그렇게 오늘도 네가 잘날 수 있는 거란다 그렇게 그렇게. 오늘 우주 에너지 받고 짱짱해져서 밀린 책 후루루루루룩 읽어나가자. 지금 사랑이 있어도 사랑이 없어도 우리는 모두 한때 그런 마음을, 그런 뜨거운 눈빛과 그런 뜨거운 몸짓을 주고받지 않았던가. 





Almost, this was freeing. - 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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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03-29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건 굳이 나랑 헤어지지 않아도 할 수 있단다. 그렇지. 그렇다니까요. 그렇다구! 지금해 지금 다해! 울언니 다하자!

수연 2021-03-29 17:34   좋아요 0 | URL
돈 벌어야 여행 가지요 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03-29 17:36   좋아요 0 | URL
맞네 ... 나도 빨리 돈 벌어야지... (궁리중)

수연 2021-03-29 17:37   좋아요 0 | URL
여행 다니면서 돈 벌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합시다. 어때? 🤔

psyche 2021-03-30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니스커트 입고 봄비 맞으면서 막 걸어다니다가 커피숍들어가서 따뜻한 커피랑 맛난 케익 먹고 그러는 거 다른 데는 모르겠지만 이 동네에서는 못 합니다. 비도 거의 안 오지만 걸어서 갈 수 있는 데가 별로 없어요. 다 차로 이동을 해야....ㅜㅜ
특히 술 마시고는 집에 올 수가 없으니 밖에서 술도 못 마시고요. 지금은 코로나라 어차피 못 하지만. 엘에이 뉴욕 샌프란시스코 같은 큰 도시에서는 가능하겠지만 대부분의 미국 도시에서는 못한답니다. ㅜㅜ

쓰다보니 막 한국가서 돌아다니면서 맛난 것 먹고 한잔하고 그러고 싶어요!!!!

수연 2021-03-30 11:23   좋아요 1 | URL
언니 한국 오시면 진짜 해요!! 맛난 거 먹고 막 걷고 커피 마시고 또 술 마시러 가고_저 대기조 할게요 :)
 

입마개는 머리 위에 씌우는 철제 틀이었고, 대부분 위반자의 입에 삽입되게 만든 긴 못이나 톱니바퀴가 달려 있었다. "시끄럽게 떠드는 여자의 혀를 눌러서 조용히 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였다. 이와 같은 못 달린 철틀은 툭하면 다투거나 남편이 적절하게 통제할 수 없다고 판정된 여자들을 벌하기 위한 물건이었다. 이런 처벌을 집행하는 통상적인 형식은 여자에게 입마개를 씌운 채 마을을 돌게 하는 것이었다. 때로는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일정한 시간 동안 기둥에 사슬로 묶어두기도 했다. 이런 일은 공적인 징벌이었지만, 가정 내의 지배와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일부 도시에는 가정 내에서 입마개를 사용하기 위한 규정이 마련되었다. ....... 남자들은 흔히 입마개를 씌우겠다고 위협해서 부인이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혀를 가만히 두지 않으면 간수를 불러다가 입마개를 씌울 줄 알아." 이 사례에서 우리는 가부장의 지배와 국가의 지배가 얼마나 복잡하게 뒤얽혀있는지를 알 수 있다.- P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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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샐리 루니 낙찰, 어떤 내용일지 저희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친구가 직접 만든 빵 갖고 왔다. 어마무시하게 많이 구워 왔다. 인증샷 찍고 바로 가족에게 내미니 손이 가요 손이 가, 자꾸 손이 가요. 이모가 짱이다. 민이 계속 오물오물 먹으면서 이거랑 이건 내일 내가 먹을거야, 엄마아빠 다 먹지마!! 민이랑 같이 사는 남자 저녁 먹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는데 먹고 먹고 또 먹고. 


우주야 우리 마음 알아주렴, 하고 미래에 할 일들 하고싶은 일들 이야기. 아 비도 내리는데 모든 것들이 딱딱 맞아 떨어졌다. 베르그송은 생각하다 그냥 관뒀다. 생각해봤자. 사랑은 알 수 없는 감정. 친구들은 날이 갈수록 더 사랑스러워져. 얼른 씻고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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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28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빵이 저절로 손이 가겠는데요. 윤기가 좌르르르.... 이 밤중에 침 삼키고 있으면 어쩌자는건지...ㅠ.ㅠ
저 위 사진 분위기도 너무좋아요. 원서 읽는 모임인가요? 솔직히 영어가 딱 쓰인거 보고 눈을 싹 돌리다가, 사진 속 카푸치노에 눈이 고정됩니다. ㅎㅎ

수연 2021-03-28 12:54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원서 읽는 여자들로 검색하시면 ㅋㅋㅋㅋㅋㅋ 빵 진짜 맛있어요. 라떼는 라떼 좋아하는 친구가 시켜서 맛은 미처 물어보지 못했네요;;; 비 오는데 집에 들어가야하는데 계속 친구들이랑 있고 싶어서 혼났어요.

psyche 2021-03-29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기 앉아서 한 입만 먹을 수 있다면!

수연 2021-03-29 10:40   좋아요 1 | URL
프시케님이 당장 서울 오시면 우루루루루 달려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