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질문을 하고 싶을 때 있다. 지옥을 지키고 지옥에서 살아가고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들에게. 어떤 한 줄기의 희망이라도 품으면서 지옥을 견디는 건지에 대해서. 지옥이란 무엇일까, 지옥이란 누구일까, 지옥에 대한 정의를 단 한 마디로 압축할 수 있다면 그것이 어떤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벽에 매달려서 땀과 슬픔으로 축축해진 몸으로 곰곰 질문을 해보았지만 단 한 단어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문제는 당신이 지옥에 익숙해진다는 사실이야." 해리엇이 말했다. (88) 


 반복학습이 천국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지, 반면 반복적인 행위와 반복적인 말이 지옥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지금은 지옥이지만 천국으로 나아가는 길에 있는거야, 라는 자기최면이나 천국으로 나아가지는 못해도 그 언저리에 머물러있는 만족감은 안겨주지 않을까 라고 안이하게 거울 속 스스로를 마주하는. 해리엇을 이해하고 싶지만 소설 속 제일 감정이입이 되는 이 또한 해리엇이지만 그는 벤을 마주하면서 무엇을 얻고자 했던 걸까. 단지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의 몸 속에서 만들어져 몸 밖으로 밀어냈기에 그러는 건 아니겠지만 이해할 수 없는 괴물을 이해하고자 애쓰는 노력들, 그 행동에서 보이는 것들 이외 보고싶었다. 곰은 무시무시한 힘을 갖고 있지만 인간에게 사로잡히면 농락당한다. 반복적인 학대 행위에 지치지 않을 존재 없고. 조금 더 읽어봐야 알겠지만 이 이야기에 사로잡히는 동안 해리엇 뱃속에서 펄럭거리는 커다란 꽃잎 보았다. 딸아이가 맨처음 자신의 존재를 내게 알릴 때도 그리 느꼈다. 펄럭거리는 낯선 존재, 그와 내가 한몸이라는 사실이 기이해서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던 그날 밤. 누군가는 내게 환희를 안기는 꽃잎이 되고 또 누군가는 내게 곰이 되고 지옥의 지킴이가 되고 날개를 커다랗게 펼쳐 보호를 해주기도 하고_ 나 역시 당신에게 그랬을까 싶어 허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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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누구에게도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것. 애당초 인간에게 선택권이 없는 것. 그리고 언젠가 마침내 사라지는 것. 인생에는 되감기도, 일시 정지도 없다. 당연한 것도, 영원한 것도 없다. 어느 때는 내가 나의 삶을 선택하고 이끌고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나를 제어하고 움직이고 소유하는 듯하다. 나는 이제야 사람이 삶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사람을 선택한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허버트 바담 Herbert Badham도 이런 마음에서 이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52-53) 



 동네 영풍문고에서 또 책을 사왔다. 이전의 나였다면 사오지 않았을 책들을 잔뜩. 누군가가 보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런 자격지심은 지금 내 형편에 무리다. 난 부단히 살려고 밧줄을 꽈악 쥐고 있으니까, 안간힘을 다해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고 처음 들어보는 책이었으나 여인 혼자 신문을 읽고 있는 그림에 넋이 앗겨 덥석 집어들었다. 한 장면도 놓치고 싶지 않고 다시 리와인드가 된다면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야 할지조차 판단이 불가능하니까. 사람들은 내게 와서 비밀을 알려준다고 한다. 궁금하지도 않은 비밀을 보따리째 들고 와서 하나씩 푼다. 누구를 위한 비밀이고 누구를 위해 밝히는건지 궁금하지도 않지만. 된장찌개에 두부를 넣고 오리고기에 파채를 썰어올려놓고 딸아이를 위한 허니머스터드소스를 귀퉁이에 뿌린다. 나사가 풀려있는지 아니면 너무 꽉 조여있는지 그조차 판가름 되지 않지만 두 눈을 뜨고 두 눈을 감고 누군가는 궁금해할 그런 비밀을 수첩 한쪽에 빼곡하게 적고싶다. 중얼거린다. 개심사에 다녀왔다. 새끼냥이들이 죽어가는 매미 한 마리를 갖고 쉴새없이 장난을 쳤다. 어미인지 아비인지 모를 고양이가 그들의 한쪽 켠에서 뿌듯하게 그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아마도 저기에서 어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죽어가는 매미인가 거칠 것 없는 새끼냥이인가,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 그늘에서 새끼들을 바라보다 이방인을 흘기는 어미인가, 오백 년도 더 지난 쩍 벌어진 나무귀퉁이 한쪽에 두 손을 가만히 올려놓고 눈을 감았다. 저를 이리 버리지 마세요, 부디. 심장에 번개가 치고 살이 너덜거릴 적마다 혈관에서 자디잔 얼음부스러기가 동동 떠다닐 적마다 동네에서 제일 커다란 나무에게 다가가 항상 되뇌인 그 말, 저를 이리 놓아버리지 마세요,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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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장이 없었다. 심장이 없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런 자유라니. 


  저 소리 들려요? 그래요, 웃음소리,

  내가 웃는 소리예요. 그래요. 나예요.  (104)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 



  


     


   















 심장은 마땅히 안에 있어야 하고 고동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야 살아있다고 믿는 반면 심장을 잃고 제대로 웃을 수 있는 여성의 하루 풍경, 배는 바다 위에 떠있어야 제자리에 있는 거라고 활동을 하고 있는 거라고 보이지만 안착하고 있을 때 더 평화로워보인다는 사실. 반드시 둘이어야만 한다고 그래야 행복한 인생을 살아간다고 믿었던 게 온전한 내 믿음이었는지 세상이 내게 주입한 믿음인지 헷갈리는 지점들.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안경을 썼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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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실로 가다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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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언저리에서 다시 마주한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인생에 세련된 태도가 있다는 환상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묵묵히 현실을 마주하고 바라보는 이들도. 거기에서 현명하고 불성실한 기준과 잣대를 찾을 필요는 없다. 그 자체 환상일지도. 인생은 불공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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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에 대한 편견이 까닭없이 심해진 이유는 찾지 않았다. 계속 영풍문고에서 광고를 하는 책을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찾다가 결국 포기하고 계산대 앞에 갔을 때 찾고 있던 책을 손에 들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어디에 있느냐고 차마 묻지 못했다. 질문은 서점 직원에게도 할 수 있었겠으나 그 질문 자체가 번거로워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건데 차마 낯선 남자에게 그 책이 어디에 있었던가요 질문하기란 더더욱. 서점 안에 그렇게나 많은 이들이 모두 고개를 박고 책을 읽고 있는 게 신기해서 나도 빈 자리를 찾아 읽어볼까나 했으나 삼십여분 지나는 동안 단 한 자리도 비지 않아 나왔다. 그냥 나오기가 어색해 신간 코너에 가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글 잘 쓴다는 작가의 소설을 살까 하다가 이내 그 소녀 같은 어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 고개를 외로 꼬다가 발견한 책, 모든 것을 제자리에. 



방학인 딸아이를 데리고 냉방비를 아껴보겠노라고 나와서 근처 음식점에서 간단한 한끼를 해결하고 별다방으로 가서 함께 공부를 했다. 스페인어 인강을 같이 보자고 그 다음에 네가 보고싶은 걸 보여주겠노라고 장난을 치고 같이 인강을 들었는데 집중해서 다 듣는 모습이 기특해서 알아듣기 어려운데 지루하지 않냐 물어보니 신기하다,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묘하게 재밌다, 만화영화만큼이나. 이런 맛에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것이냐 영어보다 재미있다, 대꾸했다. 스페인어 가을부터 같이 공부해볼까 하니 됐다, 지금 히라가나도 다 외우지 못했는데 무슨 스페인어냐, 일본어 얼추 기초 끝내고 생각해보겠다, 라고 대꾸. 넌 가끔 나보다 훨씬 어른 같다, 이럴 때, 대꾸하니 나도 안다, 엄마야, 라고 대꾸. 



 공부를 다 마치고 버스를 타고 근처 영화관으로 갔다. 버스 타고 10분 거리에 영화관이 있으니 세상 참 편하다, 촌동네로 이사오기 잘했다는 생각. 쇼핑몰 안에는 온통 인간들. 영화관에 도착해서 보니 딱 7분 후에 보고싶은 영화가 상영, 딸아이가 보고싶어한 영화를 함께 봤다. 그 집착과 열정과 무모함에 기가 질려하면서도 다 보았다. 영화를 다 보고난 후 간단한 식료품을 구입하고 쇼핑몰에서 모자 두 개를 샀다. 딸아이 하나, 나 하나. 서로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면서 거울 속에 비친 너와 나를 보았다. 각자 만족하며 택시를 타기 위해 쇼핑몰을 나섰다. 바람이 너무 강해서 새로 산 모자를 강풍에 빼앗길뻔 하고 구겨지지 않게 조심조심 종이백 안에 넣었다. 묘하게 모자 욕심이 생긴다. 선크림은 바르기 싫고 상대방 눈을 마주하기 싫을 때 꽤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고 쇼핑몰에 가면 모자만 보게 된다. 불안을 숨긴다고 해서 불안이 담긴 눈빛까지 감출 수는 없다. 흔들거리는 눈동자와 금방 눈물이 쏟아질 거 같이 내내 젖어있는 눈을 감추고싶은 건 당연지사. 다른 사람들 역시 이런 불안을 지니고 계속 살아간다, 이런 문장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늘은 사람들이 많은 곳을 가도 이질감이 들지 않아서 편했다. 대인기피증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그저 사람이라면 막 피하고 싶어서 오들오들 떨 정도는 아니지만 가능하면 마주하고싶지 않다, 이걸 최정화는 가벼운 대인기피증이라고 표현했다. 나네 나, 막 이러면서 끄덕끄덕. 최정화는 처음. 촌철살인. 좀 놀랐다. 출판사에서 홍보용으로 쓰는 소설이나 에세이 안 문장들은 대개 오글거린다. 그게 인생의 질서를 얼추 담아놓았다 해도 손발이 오글거려서 작가가 누구이건 간에 아 뭐 이렇게나 오글거리게 포인트 크게 맞춰서 홍보해야하는가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더구나 순한 캐릭터로 세상사 비밀 모두 다 알려줄듯 따뜻한 말들이 적혀있는 걸 보면 소름이 다 돋는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으나 온통 거짓으로 그득한 우물 안 물을 떠마시며 계속 목이 탄다, 목말라, 그런 볼멘소리가 흘러나온다. 거짓된 물을 마셨으니 목은 계속 마른다. 자 이번에는 다른 우물. 우물 안 물이 썩은 물이었다고 치자, 두 눈이 멀어서 썩은 물을 마셔도 썩은내 나지 않아 다 마시고난 후 아 이제야 살 거 같다, 시원하다 외친다. 합리적이고 인간적이고 실용적이고 정의롭다고 여긴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다 잊게 된다. 그 썩은 물 안에는 불안이 한가득이었으니. 최정화 소설 안 촌철살인 문장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아니 뭐 이런 아니 어쩌다가 이런 아 정말 이거야말로, 이렇게 감탄을 하면서 읽는다. 버석거리는 이 불행들이 온전하게 다 벗겨져 새로운 살이 돋아나면서 인생 정말 살만해 외치지는 못하리라. 바삭바삭 바게트 껍질을 갉아먹다보면 뜨끈한 속살이 나오는데 그 감촉이 혀에 닿는 순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바게트 하나와 에스프레소 하나에 버무려지는 불행들. 어느 순간 제자리를 찾게 될지도. 희망 없이도 담담하게. 커다란 모자 안에 불안으로 축축해진 두 눈을 노을진 하늘에 고정시키고 수영하고싶다 웅얼거리다가 뜻하지 않은 위안 최정화 읽다가 메모. 불합리한 것들은 불합리한 그 순서에 맞게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그러니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십시오. 목숨이 끊어질 거 같은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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