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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에게 보낸 편지 - 어느 사랑의 역사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학고재 / 2007년 11월
평점 :
책상 정리하다가 마지막 페이지들 다시 리딩하면서 느낀 건데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왜 바라보지 못하고 모르는 척 한 걸까 그런 질문들 다시 일어났다. 어제 오후에 들은 정희진 팟캐스트_에서 임경선이 말한 것들도 다시 겹쳤고. 갈래는 여러 가지인데 항상 어떤 식으로든지 마무리는 되어야 한다고 여겨서 사람들은 이미 다 아는 척, 너도나도 다 겪어본 것들이잖아, 뭐 굳이 다시...... 이런 말을 한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너희도 다 살아본 건 아니잖아, 이런 식의 대꾸를 하지는 않지만 그 삶이랑 그 삶이 똑같이 겹친다는 보장은 있나, 그런 식으로 삐뚤게 이야기하고 싶을 때는 있다. 어슐러 르귄을 읽어야겠다는 생각 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존재하는 그러니까 이런 식의 관계도 있다는 걸 나는 민에게 알려주고 싶다. 낭만성이니 로맨스 혹은 민이 담임이 자기 학생에게 대놓고 너는 남미새여서 이러저러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농담처럼 해대는 것도 다 자기 깔때기 안에서 보니까 그런 거 아니겠는가 싶다. 젊은 여자 선생님이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면서 자기 학생에게 남미새라는 말을 농담처럼 아이들 사이에서 한다? 난 이거 문제 있다고 보지만 또 뭐.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모여 담임 욕을 엄청 해댔다고 한다. 너는 남미새야_ 라고 대놓고 말을 하지만 우리들 보기에는 자기가 남미새인데_ 라는 말을 해대며.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를 위할 때와 서로가 서로를 까댈 때, 그 경계는 모호하고 흐릿하다. 정뚝떨. 아이들은 모여 담임이 없는 사이 정뚝떨_ 이라며 스승의 날에도 찾아가지는 않을듯_ 이란 말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좋은 선생님이라 여겼는데 농담을 한번 잘못 해서 아이들에게도 학부모들에게도 이런저런 말을 듣고 마네. 이번 에피소드를 통해서도 다시 한번 느꼈지만. 남미새라는 단어 하나가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는 판국이니 농담으로 할 수 있다고 해도 맥락 안에서 남미새가 존재하는 거 아닌가 싶다. 설령 남미새면 어떻고 로맨스에 미친 철없는 중년이면 어떤가 다 그 각자의 프레임 안에서 볼 것들은 다 보고 느낄 것들은 다 느끼고 행할 것들은 다 행하는데 말이다. 꼭 자기 프레임 안에서 모든 것들을 맞춰야 윤리적이라고 보는 거 좀 많이 역겨워. 윤리의 깔때기. 이걸 제일 조심해야 하는데 말이다. 모두가 잘난 사회라 그런지 이 윤리의 깔때기가 다 제각각 높이가 달라, 이걸 작년부터 자주 느낀다. 위산이 역류하고 속이 쓰려서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것들은 이상한 것들을 먹었기 때문이야. 몸은 즉각 반응을 하고 또 낑낑거리면서 요즘 유행한다는 장염에 걸린 건 아닐까 조바심을 내면서 오늘 읽을거리들을 쌓아놓고 바라보다가 또 그런대로 오늘도 보내겠구나 싶다. 앙드레 고르 마지막 몇 페이지 읽고 나니 편지 쓰고 싶다, 다 관두고. 중얼중얼 종알종알.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는지는 참 순간인 거 같기도 하고. 태도와 말투와 경계. 얼마 전에 오빠들과 이야기 나눈 부분이기도 하고. 앙드레 고르가 자신의 연인이자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스로를 높이기 위해서 당신을 보잘것 없는 인물로 만든 걸 사과하는 구절들 좋았다. 아내의 투병 생활을 위해서 신문사를 관두고 아내의 간병을 하며 쓴 글들이 궁금해지기도 했고.
사람이 사람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내가, 내가 누군가에게 서로가 서로를 위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건 크나큰 기쁨이다. 닮고 싶은 연인들. 돌아오면 함께 읽고 싶어 연인을 위해서 한권 더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