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는 고등학교 다닐 때 즐겨 읽곤 했는데 알듯 하면서도 모를듯 하고 모를듯 하면서도 알듯 싶어 이게 대체 뭔 말인가 궁금해하면서 읽고 읽고 또 읽었다. 니체와 릴케의 연인으로 알려져 프로이트도 루 언니에게 연모의 정을 품었다고 하던데 언니의 사유력이 어느 정도였을지 새삼 궁금해진다.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언니를 좋아했던 까닭은 생각할거리를 많이 줘서, 그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궁금한 것들이 많아져 잠을 이루기가 힘들 정도였다(는 건 개뻥_ 나는 잠을 아주 잘 자기로 유명해서 사춘기에는 거의 하루 9시간 이상씩 자곤 했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혹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그런 것들을 최초로 생각하게 만든 이가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였던지라 그에게 온갖 애정을 품고 광화문 거리를 뛰어다니곤 했다. 내 딸아이는 나와 많이 다르다. 나를 내려다보기 시작하는 딸아이를 올려다보면서 이 아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궁금해지곤 하는데 아이가 들려주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이 아이는 나와 참 많이 다른 삶을 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히파르키아가 주인공인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친구들과 모여 연회를 열 때 히파르키아는 문 너머에 의자를 놓고 앉아 무슨 이야기가 오고가는지 듣는다. 좋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히파르키아는 강아지들을 상대로 자신의 사유를 펼친다. 맞선을 보기 위해서 아테네로 떠나기 전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모여 식사를 하는 동안에 히파르키아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만 무시당한다. 여자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그들은 관심이 없다. 고모의 방문을 받은 히파르키아는 제발 책 이야기 같은 건 하지 말고 조용히 다정하게 우아하게 웃기만 하라고 조언한다. 남편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고 그것이 여자의 삶이라고 고모는 말한다. 엄마가 계시지 않아 네 아빠는 너를 너무 오냐오냐 키웠다며 고모는 한소리 한다. 등장하지 않은 히파르키아의 어머니를 상상했다. 히파르키아의 어머니는 고모처럼 말하지 않을듯. 뭐 그럴 수도 있지만. 내 상상 속에서 히파르키아의 어머니는 히파르키아와 판박이다. 다만 자신의 생각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파피루스 종이 위에 적었을 것이다. 자신의 맞선 상대인 남자가 어떤 철학자를 읽을지 궁금해하는 히파르키아. 소크라테스의 도시 아테네로 배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히파르키아는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시대에 여자는 노예와 동급의 존재로 여겨졌다. 노예는 동물과 같은 동급의 존재로 여겨졌고. 그러니 간단한 도식을 만들자면 그때 보통 여자의 삶이란 이렇게 볼 수 있다.
동물 = 노예= 여자
오늘 나의 화두다. 히파르키아를 처음 만난 날. 보통 여자의 삶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