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컨스피러시 뫼비우스 서재
스코트 마리아니 지음, 이정임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장르소설을 좋아하긴하는데 그 중에서 특히 스릴러장르를 좋아한다. 쫓고 쫓기고 비밀이 밝혀지고 어느순간에 반전이 일어나고 그러면서 엎치락 뒤치락하는 과정이 참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보면 저런 구조이기에 이야기를 엮어내기가 쉽지 않다. 조금만 어설프게 해도 급속히 집중도가 떨어지고 하품 나오게 된다.그래서 잘 쓰여진 스릴러 소설을 찾기 어려운데 오랫만에 괜찮은, 참 재미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 책이 나왔으니 바로 이 책 '모차르트 컨스피러시'다. 

이야기의 배경은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된다. 한 남자가 급하게 도망간다. 그 뒤를 쫓는 괴한들...그 남자는 집에 들러서 몇가지 작업을 하고 다시 도망치지만 결국 잡혀서 다시는 빛을 못보게 된다. 그리고 그 남자의 여동생인 '리 루엘린'은 과거 사랑했던 사람이자 오빠의 친구였던 '벤 호프'에게 신변을 요청한다. 오빠의 죽음이후 자신에게도 생명의 위협이 가해진것. 벤이 리를 보호하게 되면서 사건의 실체에 조금씩 다가간다. 모차르트가 남긴 편지에서 실마리를 포착한 두 사람은 이윽고 이것이 단순한 사건이 아닌 오랜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 거대한 정치적 사건임을 알게된다. 이들이 유럽 여러나라를 횡단하며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라고 할수있다. 

내용 자체는 아주 특별한것이 아니다. 여기에 나오는 단체나 사건들이 이미 다른 소설들에서도 비슷하게 보아온것이고 전체적인 전개방식도 어디서 본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 책이 다른 소설들과 차별되는것은 바로 '흐름'이다.  

마치 재미난 뮤직비디오를 보듯 장면 전환이 빠르다. 말하자면 이야기 전개 속도가 빠르다고 해야할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이야기가 잘 펼쳐진다. 주인공인 벤이 단서를 찾아 유럽의 여러나라의 여러 도시를 가로지르는데 그 과정이 물흐르듯이 잘 흐른다고 할까.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악당의 무리들의 행동도 잘 묘사되고 있다. 선과 악의 두 축의 흐름이 적절하게 대비가 되면서 빠른 전개를 하는것이 책에 몰입도를 한층 더 높게 하는거 같았다. 

장이 짧게 짧게 이어지게 구성을 해놔서 읽기도 편했지만 그런 형식 자체가 극의 긴박감을 더욱 높이고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하는 작용을 하는거 같다. 중간에 장을 만들지 않고 길게 가는 스타일도 물론 좋은점이 있겠지만 이 소설처럼 장을 짧게 나누는것도 책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는데 좋은 작용을 할꺼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내용과 함께 이 책을 특징짓는 것은 역시 주인공의 모습이다. 주인공인 '벤 호프'는 전직 SAS 요원이다. 뭐 간단히 말해서 죽다 살아날 만큼의 거센 훈련을 받은 군인출신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주인공 스타일인데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잘 그려놨다. 거칠고 무뚝뚝한 남자로만 그린게 아니라 나름 약한 모습도 보이고 고난을 겪기도 하면서 좀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게 그렸다. 어떤 소설에서는 말이 인간이지 완전 신같이 완벽하게 주인공을 그리는데 이 책에선 그거보다는 그래도 좀더 인간미가 난다고나 할까.  

그러나 좀더 세밀하고 자연스럽게 그렸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긴 하다. 매력적이지만 뭔가가 부족하다랄까. 아무래도 이야기 흐름이 빠르고 사건의 전개에 좀더 방점을 두다보니 인물에 대한 연구가 조금 생략된듯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등장인물의 캐릭터는 주인공만큼 인상적으로 그려지진 않은거 같다. 책을 읽고 나면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인물이 참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많이 남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 같은 경우에는 그게 상대적으로 약하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내용 자체가 재미있었기에 그렇게 느껴질수도 있을테지만.  

마지막 장면은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닌 스타일이다. 그런데 어쩌랴. 시리즈로 이어가기 위해선 어떻게 보면 꼭 있어야 하는 장치인것을. 단행본인줄 알았는데 '벤 호프 시리즈'란다. 그래서 들어간 것인거 같다. 어쩌면 그거때문에 다른 시리즈에서는 좀 더 캐릭터 구축이 발전될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었다. 

아쉬운건 재미있게 잘 쓰여지긴 했지만 살짝 예상이 된다고나 할까. 중간에 예상못한 장면이 나오긴 해도 좀 약하다. 좀더 독창적이고 아~ 하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의 플롯이 다음 시리즈에서는 나올껄 기대해본다.

제목은 우리말로 '모차르트 음모'? 그정도 된다고 볼수있는데 제목처럼 모차르트가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는 액션 스릴러다. 모차르트가 죽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수많은 가설이 있다. 각종 독살설에서부터 자연사설, 그리고 정치적 음모에 의한 타살설 등등. 최근에는 어떤 영화에서 묘사된, 당시 궁정악장이었던 '살리에르'에 의한 독살이 많이 알려져있다. 사실 영화로 많이 알려졌지만 그전부터 살리에르에 의한 독살설도 있었다. 지은이는 그런 여러가지 가설에 의문을 품고 모차르트와 관련된 이야기를 써내게 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처음에는 모차르트가 어떻게 죽었는가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줄 알았다. 그런데 광고문구에 나오는 살리에르는 내용에 큰 관계가 없다. 내용만으로도 좋은데 띠지의 문구는 좀 아리송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이 책, 재미있다. 장이 짧게 나누어져 있다보니 꼭 맛난 피자 한조각씩 야금 야금 아껴가며 먹는듯이 아껴가며 읽었다. 최근에 나온 스릴러중에서 몰입도면에서 손꼽을만하다. 밤에 봤다간 날샐듯하니 필히 낮에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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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블론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3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참 뭐랄까. 그냥 한마디로 남자의 거칠고 강인한 면이 잘 드러나는 형사물이라고 할까. 아무튼 읽고 나서 시원한 느낌이 나는 작품이 바로 이 콘크리트 블론드였다. 

지은이인 마이클 코넬리의 대표작인 해리 보슈 시리즈의 3번째 작품이 나왔다. 소설속의 주인공인 해리 보슈는 로스엔젤레스 경찰국의 강력반 형사다. 이야기는 전작의 꼬리에서 출발한다. 전작에서 희대의 살인마인 ''인형사'를 사살한 보슈는 그 행위의 적법성에 관해서 소송을 당해서 법정에 출두해야하는 처지다. 그런데 인형사의 살인 수법을 닮은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보슈는 자신이 쏜 살인범이 진짜 범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거기에 기죽지않고 보슈는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 한발짝 한발짝 나아간다. 과연 그는 살인범을 잡게 될것인가. 그리고 법정에서의 화살은 얼마나 버텨낼것인가. 

마이클 코넬리는 이 시리즈말고도 여러 작품들을 펴냈는데 작품들을 관통하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있다. 바로 주인공이 참 남자답다는것이다. 나름 의리도 있고. 거칠고 무서울꺼 같지만 나름의 섬세함과 배려심도 갖고 있는 남자다. 이런 사람이 경찰을 하고 있다니..은근 신뢰감이 생기지 않겠나. 이번 시리즈는 3번째이다. 아무래도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주요 인물의 캐릭터 구축이 더 잘될것이고 책 이야기 자체가 더 정교해지긴 하지만 벌써 3번째인데 구조가 짜임새가 있다. 

책은 크게 2가지 부분으로 진행된다. 한가지는 재판정에서의 보슈, 그리고 또 한가지는 연쇄살인범을 잡는 보슈. 어떻게보면 법정 스릴러와 경찰 수사물을 함께 섞어놓은듯한 느낌도 든다. 그런데 이 두 부분이 절묘하게 잘 엮어져있다. 전작에서 범인을 사살하는 과정에서 과연 죽일만큼 급박했느냐는 문제는 그가 과연 범인인가까지로 확대될 조짐이다. 바로 새로운 살인마의 등장때문이다.그것도 인형사와 동일한 살인 수법을 쓰는 범인. 내용은 법정과 수사 현장을 잘 교차시키면서 극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우리와는 다른 사법 현실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어서 미국 사법 행정 체제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미국은 소송으로 바람 잘 날이 없다고 하는데 여기서도 그걸 어느정도는 느끼게 되는데 이미 적법한 절차에 의한 사살이라고 결론이 났는데도 또 민사소송을 거는건 우리나라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여러가지 사실들을 보면 보슈의 처지가 참 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 보슈의 반대편 변호사로 나오는 첸들러라는 캐릭터, 참으로 매력적으로 잘 그려졌다. 아주 상대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능수능란하게 재판을 자신쪽으로 몰고 올려고 한다. 이 점은 보슈도 인정하는 바여서 자신의 변호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어떻게보면 이 책에서 보슈에 필적하는 주인공이라고 할만한데 그만큼 작가의 인물 표현력이 좋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법정에서의 이야기는 극적 긴장감이 그리 높진 않은 편이다. 진짜 범인을 가리는 형사소송이 아니라 과실 여부를 묻는 민사소송인데다가 보슈의 상대편 변호사인 첸들러의 능력이 워낙 출중해서 재판 내내 그녀에게 완패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의도를 보슈는 알아채지만 어떻게 할수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어서 결말이 어느정도 예상이 되기 때문이다. 끝부분에 가서 '아!'하는 탄식이 나올때까지는. 

제목에서도 적었지만 주인공인 해리 보슈는 참 인간적인 형사다. 어느 형사인들 그렇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이 시리즈에서 보이는 보슈의 인간미는 책의 몰입도를 더 좋게 한다랄까. 알꺼 다 아는 어른이면서도 수줍음 타는 어린 아이같은 면도 내포하고 있다. 악당을 향해서는 냉철하면서 강력한 인상을 풍기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그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면도 있는 여린 사람이기도 하다. 재판 과정에서 보슈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렇게 굴곡진 인생을 살아서인지 몰라도 사람이 참 깊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어쩌면 사람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고 있기에 그런것이 아닐까. 해리 보슈라는 이 캐릭터, 참 가깝게 느껴진다. 

이미 16번째 시리즈까지 나왔다고 한다.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책의 이야기 구조도 더 탄탄해지고 정교해질꺼고 더불어 나이들면서 더 원숙해질 보슈의 모습도 볼수있을것이다. 어서 다음 시리즈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난 형사물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 강추하는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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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문화혁명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남윤호 옮김 / 동아시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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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한것은 사과가 떨어지는것을 보고 나서라고 한다. 그런데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게 그때뿐이었을까? 아마 사과나무가 생긴 이래로 쭈욱 그렇게 떨어졌을것이다. 그리고 그 떨어지는 사과를 본 사람도 한두명이 아닐것이다. 그런데 왜 뉴턴이 그것을 보고 그 위대한 법칙을 알게 되었을까. 그것은 그 법칙으로 가는 수많은 이론과 논리를 공부했기 때문이다. 

아무나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그런것을 생각해내진 않았을것이다. 결국 그런 큰 발견이나 발명은 그전에 이미 밑바탕이 된것이 있기에 그런것이다. 

이책은 17세기의 과학혁명과 18세기 산업혁명의 근간이면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16세기의 문화적인 의미에서 대해서 주장한 책이다. 한마디로 위에 예를 든 것첨 17.18세기의 찬란한 업적이 결국 16세기에 여러가지가 쌓여서 일어난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중요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시대에 비해서 16세기는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과학사에 나오는 유명한 인물들이 16세기에는 상대적으로 적어서 그런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코 16세기의 업적이 결코 경시될 것은 아니다. 16세기가 없었다면 17,18세기의 그 변혁이 한참 뒤쳐졌을것이다. 

그런데도 관심은 다른 세기처럼 많이 받지 못하고 있다. 16세기 앞의 15세기 르네상스에 비해서도 특출난 인물이 없고 어떤 큰 이론이나 법칙이 두드러지게 나온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선 이유가 있다. 15세기나 17세기의 변화를 이끈것은 사회 엘리트계층이었다. 말하자면 배운 소수의 사람들이었단 뜻이다. 그들중에서는 그야말로 천재급이 많아서 여러가지 법칙이나 현상을 발견해냈는데 그거 때문에 그 시대를 이야기할 꺼리가 있는것이다. 그런데 16세기의 변혁을 이끈 사람들은 한마디로 무명의 사람들이었다. 그것도 엘리트 상층부가 아니라 일반 보통 직업을 가진 사람들. 그것도 고대부터 철학자들이 천하게 여겼던 육체노동자들에게서 일어났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직업의 발전을 위해서 혹은 지적인 호기심등의 이유로 여러가지 법칙에 대해서 알아내게 된것이다.  

예를 들어서 18세기 근대 화학의 출발점이라는 라부아지에의 이론은 이미 16세기 이탈리아의 기술자 반노초 비링구초에 의해서 정량적인 실험이 행해졌고 거의 원리에 근접하는 측정값을 얻어서 기록을 했던것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18세기의 이론이 정립될수 있었지 그냥 나온것이 아니란 뜻이다. 이런 직인들의 현실적인 자료들이 16세기에 광범위하게 축적되어 갔다. 다만 이들의 신분이 엘리트가 아니었고 정론화된 이론 체계를 갖출수있는 학자가 아니었기에 다른 시대에 가려진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 중세를 벗어나서 17-8세기 근대를 열게한 가장 근본적인 원동력은 무엇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론 언어의 혁명에 있다고 본다. 기존의 시대에선 라틴어를 필두로 해서 이른바 고급언어만 학문의 언어로 규정이 되었고 그 소통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한정되었다. 일반 민중에게까지 파급이 되지 않았다는것이다. 그러나 16세기의 종교혁명을 보면 알겠지만 각 지역의 종교혁명이 일어난것은 자국어로 된 성경의 보급에 있다. 사제급이 아니면 읽을수도 없었던 라틴어로 된 성경이 아닌, 자신들의 언어와 글자로 인쇄된 성경의 보급이 결국 종교혁명으로 이끈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기술쪽으로도 생각할수있다. 기존의 이론을 기술자들도 알게 되면서 자신들의 경험과 실험을 접목시킬수있게 된것이다. 결과적으로 원래 알려진 이론이 틀린걸 알게되고 이것은 곧 기존 권위의 붕괴를 뜻한다. 이른바 배운 사람들이 내새운 것이 사실이 아니란것을 알게되는데 그들에게 존경할 생각이 들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책을 쓰게 되었고 물론 자국어로 출판하면서 점점 지식이 아래까지 전파되게 되었다. 사회 계층도 꿈틀거릴수 있는 계기가 된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한마디로 르네상스를 이끈 진정한 주인은 천하다고 여겼던 직인, 기술자였다는 것을 주장하는것은 아닐까한다. 이들의 쌓여진 내용들이 17세기 이후로 상위층에서 받아들여서 이론화함으로써 사회변혁을 이끌었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민중에 의한 문화혁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것을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생각해봤다.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우리에게도 분명 이론이 아닌 실제적인것을 중시여기는 사람들이 나타났던 시대가 있다. 바로 조선 후기의 실학이다. 물론 그때도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상류 양반 실학자들이 있었긴 하지만 조선 후기의 문화를 이끈 원동력은 이른바 중인이었다. 청나라로 가는 사신편에 같이 갔던 통역사도 중인이었는데 그를 비롯해서 무역을 위해서 갔던 상인들을 통해서 선진문물을 받아들였고 이 중인들이 그것의 전파 매개체가 되었던 것이다. 안타까운것은 그런 기운이 서양과는 달리 상류 양반층에게 폭넓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소수의 실학자들에게는 잘 접목이 되었지만 문제는 집권 세력과 대부분의 양반 계층은 시대 떨어진 주자학에만 몰두해 있었고 중인들이 밑받침된 실학의 기운은 결국 계승 발전되지 못했다.  

그에 반해 서양은 비록 천한 육체노동자라고 무시해 왔었지만 16세기에 축적된 광범위한 지식의 기록은 17세기에 상류층 이론가들에게 받아들여져서 결국 산업혁명을 위한 기본 토대로 사용된것이다. 그것이 결국 우리가 망하게 되었던 한 축이라고 생각하니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아주 어려운것도 아주 쉬운것도 아니다. 여러 전문적인 용어도 나오고 기본적으로 서양사에 대해서 조금은 알아야 이해를 하기 쉬운 내용이다. 17-18세기가 어떤 시대였는지 모르는데 16세기의 의미를 알긴 좀 어려울것이다.  

지은이인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전작인 '과학의 탄생'을 통해서 이미 무시무시한 필력을 선보인바있다. 이 책은 그 책의 연장선상에서 쓴 책이라고 하는데 전작의 연장선이라는 말은 겸손이고 이 책 또한 전작만큼 대단한 책이다. 지은이의 이력을 보면 전혀 이런 쪽의 역사학자도 아니고 관련되는 학자도 아닌데도 이렇게 써낸거 보면 정말 엄청난 내공을 가진거 같다. 어떻게 보면 무명의 작가인셈인데 이런 능력자를 배출해내는 일본 출판계가 참 부럽기도 하다. 

책은 알려진 사실들을 각 분야별로 나열하는 형식이어서 좀 건조한 맛은 있다. 그리고 일반적인 16세기 역사를 다룬게 아니라 과학, 기술 영역에서 각 직인들이 쌓은 사실들을 밝혀내고 있어서 조금 진도가 잘 안나가는 면도 있다. 게다가 책 분량도 두껍다. 본문만 800여쪽이니. 

하지만 과학이나 기술사에 관해서 알고 싶은 사람에겐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사실에 대해서 좀더 깊게 알수있게 한다랄까. 이름있는 학자가 아닌 이름없는 민중들에게서 이루어진 16세기 문화혁명. 긴 인내심과 함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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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전쟁 - 호메로스의 서사시 그 이면의 역사
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최파일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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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몇년전에 '트로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그린 작품인데 꽤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이었던 '브래드 피트' 의 색다른 면을 발견할수도 있었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참 오랫동안 트로이 전쟁에 관해서 별 신경을 안 썼던거 같다.  

트로이 전쟁이라...기억을 더듬어보면 '트로이 목마'가 생각난다. 아마 누구나 그럴것이다. 그리스와 트로이가 전쟁을 했는데 트로이가 거의 이긴 경기에서 그리스가 트로이 목마를 이용해서 전세를 역전시킨다는 것. 이 인상적인 내용이 트로이 전쟁의 기억에서 대부분을 차지한다. 각종 영화나 드라마같은데서도 거대한 트로이 목마가 가장 중요한 장치로 나타난다. 딱 이야기 꾸미기 좋은 소재가 아닌가.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대체로 트로이 목마의 존재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본다. 즉 실제하지 않았다는것이다. 그러면 트로이 목마가 주는 뜻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기만'이다. 사실 트로이 목마 자체가 속이는것 아니겠는가. 바로 그런 기만전술을 그리스가 쓴 것일것이다. 그것이 트로이 목마라는 암호명이던 어떤 은유적인 표현이던간에. 그리고 그런 기만술은 그 이후에 여러 전쟁에서 나타 났다. 한니발의 작전에서나 고대 로마시대의 전투에서도 나타났었다. 멀리 서양을 예로 들지 않아도 우리 이순신 장군도 왜군과의 전투에서 거짓으로 패한척 달아나다가 숨어있던 아군과 협동해서 적을 섬멸하지 않았는가. 

이 책은 이렇게 기존에 알려진 신화로서의 트로이 전쟁을 좀더 사실적인 내용으로 역사적인 의미에서의 트로이 전쟁을 밝혀준다. 처음에 책을 읽어내려갈때 트로이 전쟁에 대해서 그 시대에 대해서 참 무지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게 이 전쟁이 일어난 시기가 '청동기 시대'란다. 청동기라..청동기라..금방 개념이 잡히진 않는다. 지금부터 수십년 전에 일도 가늠이 잘 안되는데 청동기 시대라고? 역사상 청동기 시대라면 기원전 3000년전후가 된다. 바로 우리의 고조선이 건국한 시기 비슷한 시대인것이다. 그때, 그리스에서 나라의 운명을 건 전쟁이 벌어졌다는것이다. 

이 청동기 시대라는게 중요한 포인트다. 대량 전쟁이 가능해진것은 현대에 이르러서고 수백년전에도 전쟁이란것이 요즘의 관점에서는 그리 큰 규모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으로부터 수천년전의 전쟁이란건 영화에서 보여지는 그런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이야기책에서 들었던 10년 전쟁이란것이 이 당시에는 불가능했다는 말이다. 그때의 경제규모나 생산력에서 그렇게 오랜 기간 전쟁을 수행하기에는 어려웠을것이다. 어떻게보면 국지적인 전투가 간간히 벌어진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고고학적인 성과에 의해서 트로이 전쟁의 실체는 대체로 인정되고 있지만 여러 이야기에서 보이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트로이 전쟁이 유명해진것은 그리스 시인 호로메스의 '일리아스' 와 '오딧세이아'덕분이다. 이 책에서 트로이 전쟁에 관한 여러 영웅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이 책들의 영향력은 정말 대단했다. 이미 그 당대에 그리스 국민들이 즐겨 암송할 시가 되었고 그 뒤 그리스 문화의 정수가 됨은 물론이고 유럽의 문화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어떻게 보면 이 시인의 그 멋진 시를 읽고 트로이 전쟁에 관한 꿈을 꾼 사람이 한두사람이 아니다. 고고학자가 된 사람들 중에서도 어렸을때 이 시를 읽고 신화를 현실의 꿈으로 꾼 사람이 있으니까. 

이 책의 부제인 '호로메스의 서사시 그 이면의 역사'에서 보듯이 지은이는 호로메스 시의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서 대체로 호의적인듯하다. 시 내용의 사실성에 대해서 부연설명한다고 할까. 비록 호로메스가 서사시를 쓴것이 수백년이 흐른 뒤이지만 그 서사시 자체가 마냥 머리에서 창작된것이 아닌 당대의 기록을 토대로 쓰여진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것이다. 사실 시라는 형식 자체가 어느정도 비유와 과장 은유 기법이 있기에 역사적 사실을 시로 표현한것은 그냥 기록물과는 다르긴 할것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수천년 뒤의 현대인이 수백년뒤의 그리스 시인보다는 트로이 전쟁에 대해서 아는것이 많진 않을것이라는 전제가 있다. 그래서 일리아스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이 마치 진짜 존재했던 사람들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일리아스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의 이름은 실체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 트로이 전쟁 자체를 부정하는 역사학자도 있는 판국에 이름쯤이야. 그러나 지은이는 이름이 중요하다기 보다는 그 이름의 인물이 행한 행동을 본다. 그리스군의 총사령관이 아마멤돈이 아닐수 있지만 어쨌던 그리스군 총사령관은 있었단 그런거 말이다.

책은 참 여러모로 읽기가 좋다. 글 자체가 역사적인 사실을 이야기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편하게 잘 쓰여진거 같아서 트로이 목마만 들어본 사람들에게도 크게 어렵진 않다. 고대사에 대해서 낯선 사람들 위해서 고대사와 고고학에 관해서 짧지만 이해 깊은 글도 앞부분에 있어서 책을 읽어내려가는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는 배경 즉 그리스와 트로이의 시대적인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해준다. 그러면서 천천히 전쟁이 일어나는 과정을 마치 소설 보듯이 이야기 하고 있는데 트로이 전쟁에 관심있는 사람에게는 흥미있는 책일꺼같다. 

물론 이 지은이가 이야기 하는 것들이 다 사실은 아닐것이다. 트로이 전쟁에 관해서는 이설이 많으니까 어떤것이 딱 맞은 사실이라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수천년전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읽어보기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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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에 안녕을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7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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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에 안녕을' 이란 제목 자체가 재미있다. 해피엔드는 말 그대로 행복한 결말을 말하는데그 행복한 결말에 대고 안녕이라. 일본말로 '사요나라'인데 불행한 결말이란 뜻이다. 그런데 원래 수학에서 마이너스 마이너스는 플러스인것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어쩌면 행복을 꿈꾸기 위해서 그런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제목부터 반전이 아닐까한 것인데 책 자체는 해피엔드가 아니라 '새드엔딩' 이긴 하다. 

능수능란한 '반전의 마술사' 우타노 쇼고가 돌아왔다. 이번엔 불행한 결말만 모은 책을 가지고. 사실 추리나 스릴러물은 결과가 나쁜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꼬이고 꼬인 사건을 해결한다는 자체가 좋은 결말이라고 할수 있어서 내적 갈등이 해소되면서 자연스럽게 해피엔드에 이르게 되는데 역시 반전가(?)답게 철저하게 불행한 결말을 만들어냈다.이 책은 그런 행복하지 않은 결말의 내용을 가진 단편들을 모았다. 비록 단편이라고 해도 우타노 쇼고가 보여주는 서술 트릭이나 반전의 묘미가 고스란히 잘 나타난다. 

이 책을 읽으면 각 단편에서 보여주는 느낌이 뭐랄까 좀 쉽게 와닿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것은 소재 자체가 아주 기괴하고 특이한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접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더 현실감있게 느껴지는 것이고 '그래 그럴수도 있겠다'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건 작은 소재에서도 탁월한 구성력을 발휘한 지은이의 능력이긴 하겠지만. 

일상생활에서 볼수 있는 내용이란건 처음 단편인 [언니]에서 바로 보여진다. 여기서 주인공의 언지는 부모에게 일방적인 사랑을 받는다. 동생인 주인공은 거기에 소외되고 차별을 받는다.사실 우리도 옛날에 아들 선호 사상이 심했던 시절에 딸보다 아들을 위했던 것이 흔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성이 바뀐거지만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이모에게 그 슬픔을 토로하던 소녀..하지만 다소곳하게 고백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도 않은 반전이 일어난다. 

제목에서 왠지 비장미가 느껴지는 [벚꽃지다]도 어떻게 보면 흔한 배경이다. 폭력적인 남편과 그 남편을 부지런히 뒷바라지하는 아내, 그리고 좋은 학벌을 가지고 싶어하는 아들. 어째 뭔가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배경부터가 뭔가 비극을 잉태하고 있는듯한데 또다른 복선이 자리잡고 있다. 

[천국의 형에게]는 분량이 좀 작은 편인데 동생이 천국의 형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의 글이다. 동생은 형에게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을까. 그의진심이 무엇일까. 

[지워진 15번]도 눈에 익은 배경이다. 아버지는 없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열심히 살아온 한 야구선수의 이야기. 그런 비슷한 운동선수 이야기, 제법 들었을것이다. 이 선수가 일본의 전국대회인 고시엔에 나간다. 등번호15번을 달고. 그런데 지워졌다라? 이 운동선수에게는 편한 야구선수의 삶이 보장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죽은자의 얼굴]은 왠지 으스스한 느낌이 들게 하는 이야기다. 어려서 죽은 아들을 잊지 못해 데드 마스크를 만든 부모. 그것을 발견하게 되는 나. 과연 데드 마스크는 어떤 존재로 다가올까.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부모의 행동이 사랑인지 집착인지 아니면 미친건지 여러 생각이 들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복제 인간의 탄생 가능성도 높아지는 이때, 어쩌면 더 데드 마스크를 만든 사람이라면 복제 인간도 마다하지 않았으리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제일 무서운건 사람이라고 했던가. 으스스한 느낌이 강하게 들게 했던 작품. 

[방역] 편은 그 이야기 자체가 사실 우리나라 이야기다. 아니, 더할지도 모른다. 일류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서 고작 6살짜리 아이에게 새벽부터 공부시키는 엄마의 이야기. 이 아이가 미치지않는다면 그게 비정상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의 극성 학부모 중에서는 영어 발음을 좋게 하기 위해서 어릴때 아이 혀수술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쯤이야. 정상적인 생각의 행동이 아니면 그 결과가 어떻게되리란건 뻔한 이치아니겠는가. 어린 아이를 그렇게 하는건 명백한 학대일것이다. 새삼스레 분노가 치밀어올랐던 이야기. 

[강 위를 흐르는 것] 편은 참 할 일 없는 애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장난꾸러기인지 개념이 없는건지 모를 3명의 고등학교 친구들. 기상천외한 내기를 하는데 점점 강도도 쎄지고 대담해진다. 그러던중 누군가가 죽고 누군가는 살인의 혐의를 갖게 된다. 자 이 아이들의 진실은 무엇일까. 내가 어릴땐 저렇게 안 놀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재미나게 읽을수 있었던 이야기였다. 

[살인휴가]는 제목에서 뭔가가 풍겨져 나온다. 살인을 하기 위해서 휴가를 낸건가? 이야기는 스토커에 관한 내용이다. 주인공인 리에가 소개팅을 하는데 이 남자 느낌이 이상하다. 과도한 선물을 하질 않나 집요하게 달라붙어서 구애를 하는게 왠지 섬뜩한 느낌이 들게 한다. 이 스토커를 어떻게 떼버리지? 사실 스토커 이야기는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스토커 문제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꼭 인기연예인이 아니라고 해도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그런일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현실감있는 소재였다. 하지만 이 작품의 백미는 끝에 가서야 진가가 나타난다.단순하지만 눈이 번쩍 띄일 결말이다. 

[영원한 약속]는 읽는다 싶은데 후딱 끝난다. 짧아서 뭐라고 말하기 그렇지만 인상하나만큼은 강렬한 작품이었다.

[in the lap of the mother] 는  영원한 약속과 마찬가지로 신문 기사에 결말이 드러나게 되는데아이의 안전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할까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마지막으로 [존엄과 죽음]은 IMF사태 이후로 너무나 흔하게 되버린 노숙자의 이야기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참 익숙한 존재가 배경인데 원래 노숙자는 삶의 의욕을 읽어버린 사람이다. 그저 하루하루 밥먹고 안 춥게 잘수있는게 주된 관심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노숙자에게 어느날 자원봉사자가 나타난다. 안락한 삶을 사는 노숙자에게 베푸는 친절이 왠지 참 부담스럽다. 그런 한편으로 당돌한 중학생이 나타나선 폭력을 휘두른다. 과도한 친절과 폭력. 노숙자 입장에선 과연 이 둘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편인데다가 내용 자체가 반전의 묘미가 있는 책이라서 서평쓰기도 참 쉽지 않았다. 이 책은 결말이 생명인 내용이라서 혹시라도 서평을 읽고 힌트를 얻어서 김이 샐까봐. 그저 이런 책은 아무 정보없이 그냥 막 읽는게 제일이다.   

11편 모두 일정수준의 재미는 보장한다. 분량이 적어서 뭔가 허전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인상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우리가 쉽게 생각할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에서 오싹한면을 뽑아내는 우타노 쇼고의 진수를 맛볼수 있는 책이었다. 인간의 어두운면이란게 어떻게 보면 참 우리 주변에 쉽게 있다는 생각엔 왠지 무서운 생각도 들게 한다. 내가 거기에 해당될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아쉬운 점은 책을 위해서 단편을 지은게 아니라 수년동안 썼던 단편들을 모은터라 각 단편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타노 쇼고 글의 맛을 진득하게 느끼지 못할수도 있을꺼 같다. 물론 세월이 지남에 따라서 더 원숙해져가는 모습을 보는것도 나쁘진 않지만. 

책은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졌다. 제본이나 번역도 괜찮은 편이고 무엇보다 겉표지의 그림이 인상적이다.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모두 한 집에서 일어난듯하게 보이는 구조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우타노 쇼고의 특징을 함축하고 있는것 같다. 

이미 우타노 쇼고의 작품을 접했던 사람들은 이 단편들을 통해서 역시라는 생각이 들것이고 이 책으로 우타노 쇼고를 접한 사람들은 그의 장편소설을 읽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좀 더 긴 호흡의 맛을 느끼고 싶을테니깐 말이다.       

언뜻 보면 별거 아닌듯하면서도 가만 생각해보면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 이 단편들, 참 강렬하면서도 인상적이고 감각이 독특한 이야기들이었다. 추운 겨울, 따뜻한 방에서 발 쭉 뻗고 재미나게 읽을수 있는 책이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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