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문화혁명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남윤호 옮김 / 동아시아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한것은 사과가 떨어지는것을 보고 나서라고 한다. 그런데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게 그때뿐이었을까? 아마 사과나무가 생긴 이래로 쭈욱 그렇게 떨어졌을것이다. 그리고 그 떨어지는 사과를 본 사람도 한두명이 아닐것이다. 그런데 왜 뉴턴이 그것을 보고 그 위대한 법칙을 알게 되었을까. 그것은 그 법칙으로 가는 수많은 이론과 논리를 공부했기 때문이다. 

아무나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그런것을 생각해내진 않았을것이다. 결국 그런 큰 발견이나 발명은 그전에 이미 밑바탕이 된것이 있기에 그런것이다. 

이책은 17세기의 과학혁명과 18세기 산업혁명의 근간이면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16세기의 문화적인 의미에서 대해서 주장한 책이다. 한마디로 위에 예를 든 것첨 17.18세기의 찬란한 업적이 결국 16세기에 여러가지가 쌓여서 일어난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중요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시대에 비해서 16세기는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과학사에 나오는 유명한 인물들이 16세기에는 상대적으로 적어서 그런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코 16세기의 업적이 결코 경시될 것은 아니다. 16세기가 없었다면 17,18세기의 그 변혁이 한참 뒤쳐졌을것이다. 

그런데도 관심은 다른 세기처럼 많이 받지 못하고 있다. 16세기 앞의 15세기 르네상스에 비해서도 특출난 인물이 없고 어떤 큰 이론이나 법칙이 두드러지게 나온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선 이유가 있다. 15세기나 17세기의 변화를 이끈것은 사회 엘리트계층이었다. 말하자면 배운 소수의 사람들이었단 뜻이다. 그들중에서는 그야말로 천재급이 많아서 여러가지 법칙이나 현상을 발견해냈는데 그거 때문에 그 시대를 이야기할 꺼리가 있는것이다. 그런데 16세기의 변혁을 이끈 사람들은 한마디로 무명의 사람들이었다. 그것도 엘리트 상층부가 아니라 일반 보통 직업을 가진 사람들. 그것도 고대부터 철학자들이 천하게 여겼던 육체노동자들에게서 일어났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직업의 발전을 위해서 혹은 지적인 호기심등의 이유로 여러가지 법칙에 대해서 알아내게 된것이다.  

예를 들어서 18세기 근대 화학의 출발점이라는 라부아지에의 이론은 이미 16세기 이탈리아의 기술자 반노초 비링구초에 의해서 정량적인 실험이 행해졌고 거의 원리에 근접하는 측정값을 얻어서 기록을 했던것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18세기의 이론이 정립될수 있었지 그냥 나온것이 아니란 뜻이다. 이런 직인들의 현실적인 자료들이 16세기에 광범위하게 축적되어 갔다. 다만 이들의 신분이 엘리트가 아니었고 정론화된 이론 체계를 갖출수있는 학자가 아니었기에 다른 시대에 가려진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 중세를 벗어나서 17-8세기 근대를 열게한 가장 근본적인 원동력은 무엇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론 언어의 혁명에 있다고 본다. 기존의 시대에선 라틴어를 필두로 해서 이른바 고급언어만 학문의 언어로 규정이 되었고 그 소통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한정되었다. 일반 민중에게까지 파급이 되지 않았다는것이다. 그러나 16세기의 종교혁명을 보면 알겠지만 각 지역의 종교혁명이 일어난것은 자국어로 된 성경의 보급에 있다. 사제급이 아니면 읽을수도 없었던 라틴어로 된 성경이 아닌, 자신들의 언어와 글자로 인쇄된 성경의 보급이 결국 종교혁명으로 이끈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기술쪽으로도 생각할수있다. 기존의 이론을 기술자들도 알게 되면서 자신들의 경험과 실험을 접목시킬수있게 된것이다. 결과적으로 원래 알려진 이론이 틀린걸 알게되고 이것은 곧 기존 권위의 붕괴를 뜻한다. 이른바 배운 사람들이 내새운 것이 사실이 아니란것을 알게되는데 그들에게 존경할 생각이 들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책을 쓰게 되었고 물론 자국어로 출판하면서 점점 지식이 아래까지 전파되게 되었다. 사회 계층도 꿈틀거릴수 있는 계기가 된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한마디로 르네상스를 이끈 진정한 주인은 천하다고 여겼던 직인, 기술자였다는 것을 주장하는것은 아닐까한다. 이들의 쌓여진 내용들이 17세기 이후로 상위층에서 받아들여서 이론화함으로써 사회변혁을 이끌었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민중에 의한 문화혁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것을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생각해봤다.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우리에게도 분명 이론이 아닌 실제적인것을 중시여기는 사람들이 나타났던 시대가 있다. 바로 조선 후기의 실학이다. 물론 그때도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상류 양반 실학자들이 있었긴 하지만 조선 후기의 문화를 이끈 원동력은 이른바 중인이었다. 청나라로 가는 사신편에 같이 갔던 통역사도 중인이었는데 그를 비롯해서 무역을 위해서 갔던 상인들을 통해서 선진문물을 받아들였고 이 중인들이 그것의 전파 매개체가 되었던 것이다. 안타까운것은 그런 기운이 서양과는 달리 상류 양반층에게 폭넓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소수의 실학자들에게는 잘 접목이 되었지만 문제는 집권 세력과 대부분의 양반 계층은 시대 떨어진 주자학에만 몰두해 있었고 중인들이 밑받침된 실학의 기운은 결국 계승 발전되지 못했다.  

그에 반해 서양은 비록 천한 육체노동자라고 무시해 왔었지만 16세기에 축적된 광범위한 지식의 기록은 17세기에 상류층 이론가들에게 받아들여져서 결국 산업혁명을 위한 기본 토대로 사용된것이다. 그것이 결국 우리가 망하게 되었던 한 축이라고 생각하니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아주 어려운것도 아주 쉬운것도 아니다. 여러 전문적인 용어도 나오고 기본적으로 서양사에 대해서 조금은 알아야 이해를 하기 쉬운 내용이다. 17-18세기가 어떤 시대였는지 모르는데 16세기의 의미를 알긴 좀 어려울것이다.  

지은이인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전작인 '과학의 탄생'을 통해서 이미 무시무시한 필력을 선보인바있다. 이 책은 그 책의 연장선상에서 쓴 책이라고 하는데 전작의 연장선이라는 말은 겸손이고 이 책 또한 전작만큼 대단한 책이다. 지은이의 이력을 보면 전혀 이런 쪽의 역사학자도 아니고 관련되는 학자도 아닌데도 이렇게 써낸거 보면 정말 엄청난 내공을 가진거 같다. 어떻게 보면 무명의 작가인셈인데 이런 능력자를 배출해내는 일본 출판계가 참 부럽기도 하다. 

책은 알려진 사실들을 각 분야별로 나열하는 형식이어서 좀 건조한 맛은 있다. 그리고 일반적인 16세기 역사를 다룬게 아니라 과학, 기술 영역에서 각 직인들이 쌓은 사실들을 밝혀내고 있어서 조금 진도가 잘 안나가는 면도 있다. 게다가 책 분량도 두껍다. 본문만 800여쪽이니. 

하지만 과학이나 기술사에 관해서 알고 싶은 사람에겐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사실에 대해서 좀더 깊게 알수있게 한다랄까. 이름있는 학자가 아닌 이름없는 민중들에게서 이루어진 16세기 문화혁명. 긴 인내심과 함께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