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드에 안녕을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7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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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에 안녕을' 이란 제목 자체가 재미있다. 해피엔드는 말 그대로 행복한 결말을 말하는데그 행복한 결말에 대고 안녕이라. 일본말로 '사요나라'인데 불행한 결말이란 뜻이다. 그런데 원래 수학에서 마이너스 마이너스는 플러스인것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어쩌면 행복을 꿈꾸기 위해서 그런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제목부터 반전이 아닐까한 것인데 책 자체는 해피엔드가 아니라 '새드엔딩' 이긴 하다. 

능수능란한 '반전의 마술사' 우타노 쇼고가 돌아왔다. 이번엔 불행한 결말만 모은 책을 가지고. 사실 추리나 스릴러물은 결과가 나쁜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꼬이고 꼬인 사건을 해결한다는 자체가 좋은 결말이라고 할수 있어서 내적 갈등이 해소되면서 자연스럽게 해피엔드에 이르게 되는데 역시 반전가(?)답게 철저하게 불행한 결말을 만들어냈다.이 책은 그런 행복하지 않은 결말의 내용을 가진 단편들을 모았다. 비록 단편이라고 해도 우타노 쇼고가 보여주는 서술 트릭이나 반전의 묘미가 고스란히 잘 나타난다. 

이 책을 읽으면 각 단편에서 보여주는 느낌이 뭐랄까 좀 쉽게 와닿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것은 소재 자체가 아주 기괴하고 특이한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접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더 현실감있게 느껴지는 것이고 '그래 그럴수도 있겠다'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건 작은 소재에서도 탁월한 구성력을 발휘한 지은이의 능력이긴 하겠지만. 

일상생활에서 볼수 있는 내용이란건 처음 단편인 [언니]에서 바로 보여진다. 여기서 주인공의 언지는 부모에게 일방적인 사랑을 받는다. 동생인 주인공은 거기에 소외되고 차별을 받는다.사실 우리도 옛날에 아들 선호 사상이 심했던 시절에 딸보다 아들을 위했던 것이 흔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성이 바뀐거지만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이모에게 그 슬픔을 토로하던 소녀..하지만 다소곳하게 고백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도 않은 반전이 일어난다. 

제목에서 왠지 비장미가 느껴지는 [벚꽃지다]도 어떻게 보면 흔한 배경이다. 폭력적인 남편과 그 남편을 부지런히 뒷바라지하는 아내, 그리고 좋은 학벌을 가지고 싶어하는 아들. 어째 뭔가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배경부터가 뭔가 비극을 잉태하고 있는듯한데 또다른 복선이 자리잡고 있다. 

[천국의 형에게]는 분량이 좀 작은 편인데 동생이 천국의 형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의 글이다. 동생은 형에게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을까. 그의진심이 무엇일까. 

[지워진 15번]도 눈에 익은 배경이다. 아버지는 없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열심히 살아온 한 야구선수의 이야기. 그런 비슷한 운동선수 이야기, 제법 들었을것이다. 이 선수가 일본의 전국대회인 고시엔에 나간다. 등번호15번을 달고. 그런데 지워졌다라? 이 운동선수에게는 편한 야구선수의 삶이 보장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죽은자의 얼굴]은 왠지 으스스한 느낌이 들게 하는 이야기다. 어려서 죽은 아들을 잊지 못해 데드 마스크를 만든 부모. 그것을 발견하게 되는 나. 과연 데드 마스크는 어떤 존재로 다가올까.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부모의 행동이 사랑인지 집착인지 아니면 미친건지 여러 생각이 들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복제 인간의 탄생 가능성도 높아지는 이때, 어쩌면 더 데드 마스크를 만든 사람이라면 복제 인간도 마다하지 않았으리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제일 무서운건 사람이라고 했던가. 으스스한 느낌이 강하게 들게 했던 작품. 

[방역] 편은 그 이야기 자체가 사실 우리나라 이야기다. 아니, 더할지도 모른다. 일류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서 고작 6살짜리 아이에게 새벽부터 공부시키는 엄마의 이야기. 이 아이가 미치지않는다면 그게 비정상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의 극성 학부모 중에서는 영어 발음을 좋게 하기 위해서 어릴때 아이 혀수술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쯤이야. 정상적인 생각의 행동이 아니면 그 결과가 어떻게되리란건 뻔한 이치아니겠는가. 어린 아이를 그렇게 하는건 명백한 학대일것이다. 새삼스레 분노가 치밀어올랐던 이야기. 

[강 위를 흐르는 것] 편은 참 할 일 없는 애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장난꾸러기인지 개념이 없는건지 모를 3명의 고등학교 친구들. 기상천외한 내기를 하는데 점점 강도도 쎄지고 대담해진다. 그러던중 누군가가 죽고 누군가는 살인의 혐의를 갖게 된다. 자 이 아이들의 진실은 무엇일까. 내가 어릴땐 저렇게 안 놀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재미나게 읽을수 있었던 이야기였다. 

[살인휴가]는 제목에서 뭔가가 풍겨져 나온다. 살인을 하기 위해서 휴가를 낸건가? 이야기는 스토커에 관한 내용이다. 주인공인 리에가 소개팅을 하는데 이 남자 느낌이 이상하다. 과도한 선물을 하질 않나 집요하게 달라붙어서 구애를 하는게 왠지 섬뜩한 느낌이 들게 한다. 이 스토커를 어떻게 떼버리지? 사실 스토커 이야기는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스토커 문제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꼭 인기연예인이 아니라고 해도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그런일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현실감있는 소재였다. 하지만 이 작품의 백미는 끝에 가서야 진가가 나타난다.단순하지만 눈이 번쩍 띄일 결말이다. 

[영원한 약속]는 읽는다 싶은데 후딱 끝난다. 짧아서 뭐라고 말하기 그렇지만 인상하나만큼은 강렬한 작품이었다.

[in the lap of the mother] 는  영원한 약속과 마찬가지로 신문 기사에 결말이 드러나게 되는데아이의 안전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할까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마지막으로 [존엄과 죽음]은 IMF사태 이후로 너무나 흔하게 되버린 노숙자의 이야기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참 익숙한 존재가 배경인데 원래 노숙자는 삶의 의욕을 읽어버린 사람이다. 그저 하루하루 밥먹고 안 춥게 잘수있는게 주된 관심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노숙자에게 어느날 자원봉사자가 나타난다. 안락한 삶을 사는 노숙자에게 베푸는 친절이 왠지 참 부담스럽다. 그런 한편으로 당돌한 중학생이 나타나선 폭력을 휘두른다. 과도한 친절과 폭력. 노숙자 입장에선 과연 이 둘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편인데다가 내용 자체가 반전의 묘미가 있는 책이라서 서평쓰기도 참 쉽지 않았다. 이 책은 결말이 생명인 내용이라서 혹시라도 서평을 읽고 힌트를 얻어서 김이 샐까봐. 그저 이런 책은 아무 정보없이 그냥 막 읽는게 제일이다.   

11편 모두 일정수준의 재미는 보장한다. 분량이 적어서 뭔가 허전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인상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우리가 쉽게 생각할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에서 오싹한면을 뽑아내는 우타노 쇼고의 진수를 맛볼수 있는 책이었다. 인간의 어두운면이란게 어떻게 보면 참 우리 주변에 쉽게 있다는 생각엔 왠지 무서운 생각도 들게 한다. 내가 거기에 해당될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아쉬운 점은 책을 위해서 단편을 지은게 아니라 수년동안 썼던 단편들을 모은터라 각 단편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타노 쇼고 글의 맛을 진득하게 느끼지 못할수도 있을꺼 같다. 물론 세월이 지남에 따라서 더 원숙해져가는 모습을 보는것도 나쁘진 않지만. 

책은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졌다. 제본이나 번역도 괜찮은 편이고 무엇보다 겉표지의 그림이 인상적이다.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모두 한 집에서 일어난듯하게 보이는 구조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우타노 쇼고의 특징을 함축하고 있는것 같다. 

이미 우타노 쇼고의 작품을 접했던 사람들은 이 단편들을 통해서 역시라는 생각이 들것이고 이 책으로 우타노 쇼고를 접한 사람들은 그의 장편소설을 읽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좀 더 긴 호흡의 맛을 느끼고 싶을테니깐 말이다.       

언뜻 보면 별거 아닌듯하면서도 가만 생각해보면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 이 단편들, 참 강렬하면서도 인상적이고 감각이 독특한 이야기들이었다. 추운 겨울, 따뜻한 방에서 발 쭉 뻗고 재미나게 읽을수 있는 책이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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