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기 나는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두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 모른다 나는너를 모른다.
너당신 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개 같은 가을이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최승자 시집 <이 시대의 사랑>중에서


산문집<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를 읽다가 시집을 펼쳤다.
가진 시집이 다섯 권, 다시 최승자다.
찬란한 계절 오월과 최승자시인은 극과 극이어서 닮았다.





시를 뭐하러 쓰냐고?

시를 뭐하러 쓰냐고? 글쎄 그럼 시를 뭐하러 안 쓰지? 뭐하기 위하여 시를 안 쓰는 것은 아닌 것처럼, 뭐 하기 위하여 시를 쓰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면 나는 다른 시인들로부터 엉덩이를 걷어차일는지도 모른다. 종로 같은 큰길을나다닐 땐 꼬리를 잘 감추고 다녀야지, 느닷없이 걷어차이지 않도록,
내 인생은 언제나 예감 혹은 암시에 앞이마가 얻어터지고, 기억에 뒷덜미를 물렸다. 앞으로도 얻어맞고 뒤로도 얻어맞고, 겉으로도 얻어맞고 속으로도 얻어맞았다. 홍, 내가동네북인 줄 아느냐. 얻어터지기만 하는 게 괴로워서 나는정말로 내 머리통을 뽀개버리고 어디론가 도망가버리고 싶었다. 최악의 불길한 예감과 찰거머리 같은 뻔뻔스러운 기억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하여 나는 내 머리를 폭파해버리고 - P24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들, 나에게 괴로움과 상처를 가했던 사람들, 그리고 내 편에서 괴로움과 상처를 가했던 사람들, 나의 슬픔과 괴로움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로, 과거의 시간 속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되돌아가 나는 당신들의 발꿈치의 때라도 핥으면서, 나를 학대하지 말아달라고, 나를 용서해달라고 빌고 싶었다.
그러나 난 이제 정말로 지겹고 정말로 지쳤다. 나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당신들은 아직도 내게서 받을 빚이 남아 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나는 오랜 세월 동안꼬박꼬박 피나게 이자를 물어왔다. 하지만 영원히 본전을같을 수 없는 것이라면, 갚는 게 불가능한 것이라면, 나는 차라리 과감히 이자도 본전도 줄 수 없다고, 떼어먹겠다고 선언하겠다. 나는 이제, 결코 나의 피눈물 나는 돈을 당신들에게 한푼도 주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은 내 머릿속에서 찰거머리처럼 내 피를 빨아먹고 살아왔다. 나는 갚을 만큼 갚았다. 나는 감히 당신들의 본전을 떼어먹을 것이다. 당신들 찰거머리들을 내 머릿속에서 없애버리기 위하여 내 머리통 자체를 없애버리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나는 당신들께 돈을지불할 수 없다는 파산 선고를 스스로 내리고 당신들로부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으로부터 떠나갈 것이다.
- P25

도덕은 자신의 가치체계의 정통성을, 따라서 새로운 가치나 자신의 율에 어긋나는 가치에 대해서는 비정통성을 주장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따라서 상대방의 부당성을 주장함으로써 자기 보존과 자기 수호의 속성을 굳히고, 그리하여상대적으로 도덕적이지 않은 모든 것에 강경하고 경직된 태도를 취한다. 기존의 도덕률은 마치 합법적 정통성 위에 세워진 전권을 부여받은 최고 권력구조와도 같아서, 그 권력에 위배되는 것을 반역으로 몰아붙인다. 그리고 대다수의민중은 기존 도덕률의 보이지 않는 강압적인 힘을 정당하다고 인정하며 거기에 맞추어 자신이 부도덕하지 않다는 것만으로 이미 자신은 도덕적이라고 믿으면서 도덕의 기득권 아래 편히 안주하려 하고, 때로는 기존의 도덕에 브레이크를 - P30

반면에 헤스터 프린은 비록 주홍글씨를 몸에 달고 살아야 했지만 자신이 죄인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았다.
한 인간의 행동에 서로 모순된 판단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가치관의 차이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는, 기존도덕률에 의해 유죄 선고된 새로운 가치관을 몸소 행복하게실현함으로써 그 가치관의 옳음을 보여주거나 혹은 기존 도덕률의 응징에 따라 스스로 철저하게 파멸함으로써 그 기존도덕률이 썩어 있음을 보여줄 수도 있으리라. (1982) - P34

그러나 떠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떠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자기 자신의 현실속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끝과 시작처럼 떠난다는것과 되돌아온다는 것은 하나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무수히 떠나고 무수히 되돌아오면서 많은 시간을,
그것도 대부분 괴로움과 불행의 시간을 바침으로써 우리가얻게 되는 것은 어쩌면, 행복이란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불행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는 조금은 쓴, 그러나 넉넉한인식뿐일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인간은 상처투성이의 삶을통해 상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모순의 별아래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상처 없는 삶과 상처투성이의삶, 꿈과 상처.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일상을 더욱 굳건하게받쳐주는 원리, 한 몸뚱이에 두 개의 얼굴이 달린 야누스의원리이다.
- P59

그것은 충격이었다. 그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나와는 전혀 무관한 한 젊은이의 죽음 소식에 나는 착잡해질 수밖에없었다. 물론 피붙이들의 죽음을 접했을 때처럼 슬프지도않았고, 내가 느낀 것은 슬픔이라기보다는 근원이 어딘지도..
모를 둔하고 무딘 어떤 미미한 통증일 뿐이었다. 1 청년의사회적 죽음은 결코 옳다고 보이진 않았고, 분명 잘못 선택한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왜 잘못 선택했을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잘못 선택하게 만들었겠는가 하는 생각들이 오랫동안 내 의식의 언저리를 맴돌았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죽음을 보고 겪게 되고, 그리고그때마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점검하게 된다.
나 역시 앞으로 더 많은 죽음을 보면서 나 자신의 삶을 수시로 되돌아보게 되리라. 마침내 내가 나 자신의 죽음을 보게될 때까지. (1986) - P96

앞서 나는 1980년대는 (그리고 1970년대는) 내게 가위눌림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 가위눌림을어떻게 구체화시켰는가?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 자신이 그것을 구체화시키지는 못했던 것 같다. 다만 나는 그가위눌림에 대하여 시적 저항을 보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 저항은 강한 비명과 비탄, 과격한 에너지를 가진 어휘들과 이미지들의 사용 등을 통해 이루어졌던 것 같다. 앞서 나 자신이 의식보다는 무의식,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많이 기대어왔다고 고백한 것은, 나를 짓누르는 그 가위눌림에 관하여그것의 실체나 구조를 이성적으로 분석한다거나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키지 못한 채, 무섭다고 싫다고 비명을 지르기만 했다는 점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 P140

가위눌림이 장기간에 걸쳐 계속되자, 그것으로부터 깨어나는 나의 방법 또한 몇 단제로 변화했던 것이 생각난다. 첫번째 단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공포에 휩싸인 채 본능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움 으로써, 내게 극심한 육체적 아픔을 가해오는 가위눌림 속의 그 억압자를 쓰러뜨리고 깨어나는 것이다. 두번째 단계는 처음에는 본능적으로 온 힘으로 저항하다가 그 와중에나 자신이 또다시 가위에 눌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그리하여 이제는 공포감 없이, 싸우면 내가 이기도록 되어있다는 확신을 갖고 싸워 깨어나는 것이다. 세번째는, 가위눌림이 시작되자마자 그것이 가위눌림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되고, 그러나 경험으로 보아 어쨌든 간에 조만간 깨어나도록 되어 있다고 생각하고서 그 억압자에 대한 저항 자체를 포기해버리고, 그러자마자 이상하게도 그 가위눌림이 서서히 풀어지는 것이다.
- P141

오래 묵혀두었던 산문집을 출판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것 같다.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자니웃음이 쿡 난다.
웃을 일인가.
그만 쓰자.
끝.

2021년 11월 11일최승자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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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텅 빈 하버드 광장
마지막 햇빛 속에 우리가 있었다.
아무것도 갖지 못했던
서로에게 무엇이 될 수도 없었던
다신 돌아갈 수 없어 
아름다운 시절에 대하여 .....(뒷 표지에서)

본 수아레


그러나 우리는 우연히 손이 스칠 때 제외하고는 서로를 만진 적이 없어서 지금 그렇게 하는 게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대신 나는 그의 손바닥을 만지려고 손을 뻗었다가 그의 손등을 잡았고, 처음에는 부드럽게 잡고 있다가 점점 더 힘을 주어 꽉 잡았다. 이조차 나로서는 쉽지 않은 행동이었고,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보면 그에제도 쉽지 않은 게 틀림없었다. 뼛속 깊이 지중해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우리 두 남자보다 더 감정 표현을 할 줄 모르고자제하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어쩌면 우리 둘 다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고, 칼라지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같다. 그 순간 나는 나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 나는 다시 일어서는 대신 그의 옆에 누워서 그를 바라보며 한팔로 그의 가슴을 감싸 안았다. 그러자 그도 팔을 뻗어 내 손을 잡더니 내 쪽으로 돌아누워 한 다리로 나를 휘감고 나를부드럽게 끌어안았다. 그의 숨죽인 흐느낌을 제외하고는 둘다 철저히 침묵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P275

알 수 없었다. 조명이 모두 꺼지고 다들 집으로 돌아간후 분장실에 홀로 있기를 원하는 배우처럼, 나는 천친히 화장을 지우고 가발, 의치, 속눈썹을 제거하고 천천히 나 자신이로 돌아오고 싶었다. 가면이 아닌 내 맨얼굴을 보고 싶었다.
또 가면을, 언제나 가면만을 보고 싶진 않았다. 나는 나에게프랑스어로, 나만의 프랑스어 억양으로 말하고 싶었다. 나를낳은 부모로부터 배운 그대로 말하고 싶었다. 나는 영어에 넌덜머리가 났고, 여름날의 바다 소금 맛이 나지 않는 모든 것에, 끝없이 이어질 듯했던 여름날 오후 우리 집 부엌에서 만들어지던 짭조름한 맛이 나지 않는 모든 것에 넌덜머리가 났다. 매미가 미친 듯이 울어대고, 시간이 느려지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다가 우리를 손짓해 부르던 그 여름날 오후, 낮잠 잘 생각이 없을 때도 자장가처럼 우리를 재우던 파도 소리가 그리웠다. 나는 심지어 내 환상 속의 파리에 넌덜머리가났고, 내가 쌓은 장벽에, 내가 가면을 쓰고 있다는 생각에, 내진짜 얼굴에 대한 갈망에, 내가 불화하는 것은 가면이 아니라내 진짜 얼굴이라는 생각에 넌덜머리가 났으며, 사실은 내 진짜 얼굴이란 지금도 앞으로도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넌덜머리가 났다.  - P332

칼라지는 미국에 푹 빠져들자마자 약해졌다. 그때까진미국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히 드러냈었다. 그 혐오가 그의 떠돌이 신분을 그럴듯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는 격리된 발코니에서 이 새로운 세상을 관찰할 수는 있었지만 접하긴커녕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저주를 퍼부었다.
그러나 비록 하룻저녁 잠깐 들여다보는 정도에 그쳤음에도그 세계에 초대받아 들어가본 그날 이후, 그는 곧바로 개종했다. 그의 마음은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인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에게 왜 그렇게 변했느냐고 물었다. 부자들의 풍요, 호화로움, 자기만족? "사실 이게 다 햄때문이야." 그가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의 초라한 엉 돌라르뱅두가 그들의 레드 와인에는 비교도 안 된다는 사실하고."
- P339

자신은 이미 프랑스를 보았고 그곳에서 살면서 결혼도 했지만 다시는 그곳에 발을 내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거라니, "그러면 미쳐버릴 텐데." 내가 말했다. 불현듯 내가 알렉산드리아를 영원히 버리고 나서 다시 그곳에 던져진다면 어떤 기분일지 떠올랐다. "마치 도망치고 싶어 안달이 났던 곳에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겠네요."
"다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다시 죽는 것 같겠죠." 모로코인 택시운전사가 말했다.
"그러게요. 그럴 것 같네요."
칼라지는 프랑스 이전과 이후의 시기에 다시 죽는 것과같은 삶을 살았다. 그는 경험은 항상 환영할 일이라고, 인생에서 필요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사람과 우리가 가는 모든 장소와 우리가 가진 가장 초라하고별 볼 일 없는 직업까지도 지금의 우리를 만드는 데 작은 역할이라도 했다고 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식적인 헛소리고, 칼라지는 자신이 그런 헛소리에 빠지지 않도록 대단히 냉혹하고 엄격하게 자신을 관리했다. 그의 사전에는 새로운 기회란 없었다. 그저 자신을 축내며 살고, 먼저 죽은 사람들이 남긴 적은 유산을 물려받아 살 뿐. 그에게는 사방에 함정이 있었고, 잔인한 속임수가 있었고, 끔찍한 실수가있었다. 거기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했다.  - P360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쁜 짓을 한 손을 잘라야 했고, 끝없이 자르고, 쳐내고, 찢고, 긁어내야 했다. 가장 기본적인 뼈대만 남을 때까지. 우리의 뼈는우리를 드러낸다. 뼈는 숨길 수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모두 자르고 뼈대만 남기는 거였다. 그러면 우리가 고백할 필요도 없고 그들이 고백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잃고 마지막 지푸라기만 남았다는 사실을 부모가 알고 형제자매가 알고 애인이 알 듯이 우리 자신도 알기 때문에. 한편 용서를 모르는 그의 신은 그를 치유해줄 약도, 도와줄 사람도 보내주지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선택한 무기가 분노와 칼라슈니코프였다.
그는 내가 자신과 똑같이 빈 수통을 들고, 자신과 똑같이맹물이 아닌 다른 음료에 대한 갈증을 느껴서 같은 술집에 들른 같은 부대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를 실망시켰다. 그는내가 자신처럼 인간적이고 날것의 욕망이 가득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뉴잉글랜드에서의 삶에 환멸을 느끼고 지중해를 동경하고는 있지만, 이미 반대편으로 옮겨왔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위해 칼라지 같은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 P361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 순간 참을 수 없는 수치심과 참을 수 없는 슬픔 사이를 오가는,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격통느꼈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짓을 한 것이다. 다른 사람도아닌 내가. 그동안은 이렇게까지 비열하고 천박한 인간으로전락한 적은 없었는데, 나는 죽어가는 친구를 보러 가기를 차일피일 미루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죽어가는 사람이 전화해서 몇 분 만이라도 들렀다 가라고 부탁할 때마다. 그 아픈 사람의 사기를 북돋운다는 핑계로 그의 걱정을 무시한다. 내일 가보도록 애써볼게. "내일이 없을지도 몰라." 죽어가는 친구가 말한다. 여전하군, 자네, 두고 봐, 자네가 우리 모두보다. 오래 살 거야."
그러나 지극한 수치심으로 통증을 느낀 것과 거의 동시에, 페르시아 여자의 집에서 걸어 나온 밤 이후로 느껴보지못했던 즐겁고 가벼운 마음과 안도감이 들었다. 여러 달 동안나를 쫓아다니고, 짓누르고, 갉아먹던 불안과 걱정이 갑자기싹 사라진 것처럼, 자유와 기쁨과 해방감을 느꼈다. 내 마음은 구름 사이로 자꾸만 올라가는 연처럼 가볍게 하늘 위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 P373

칼라지 때문에 만난 모든 이들, 하비스트와 카사블랑카와 일요일 저녁의 하버드 엡워스 교회, 처음부터 우리가 만들어낸 우리만의 언어, 그 언어 때문에 꽃을 피웠던우정, 그 모두에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그가 내 삶에 가져다준 많은 새로운 것들에게, 친구들과 함께했던 저녁식사에, 우리 둘만의 저녁식사에, 해피 아워에, 내 삶에서 빠져 있었고우리의 공통점을 찾게 도와주었던 공모자 의식에, 본 수아레.
영주권에 대한 그의 걱정과 학업에 관한 내 걱정이 먹구름을드리울 땐 우리 삶 속으로 표류해 들어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여자들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그 먹구름을 몰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여자들보다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준 것은 그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우리 둘이 그녀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었다. 우리의 작은 오아시스에, 우리의 상상 속 지중해에, 우리의 작은 프랑스 마을에,
나 자신을 미국이라는 춥고 외롭고 어두운 평원에서 발목이잡혀 오도가도 못하게 된 외로운 이방인으로 생각했던 내 착각에, 본 수아레. 나는 이제 그들 중 한 명이었다.  - P379

우리 입술에 떠올랐다가 소리로 변환되기 전에 즉시 재갈이물리듯이. 어느날엔 그의 택시를 불러서 타보자고 계속 되뇌인적도 있었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지는 못 했는데, 내 형편에택시를 타는 것은 가당치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차 문을열었을 때 내가 계속 찾고 있었던 것을 발견하리라는 사실을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항상 구두 가게를 연상시켰던 그낡고 갈라진 가죽 덮개의 냄새, 월든 호수에 차를 세우고 나서 두 소년을 함께 앉힌 뒤로 젖힌 보조좌석, 이제 생각해보니 영원히 그의 주위를 맴돌았던 지울 수 없는 담배 냄새, 그리고 또 그 택시를 타면 안 되는 이유는 내가 뒷좌석에 타본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차에 올랐을 때, 그가나를 집까지 태워다주었을 때, 혹은 어느 날 밤늦게 브루클린에 사는 여자와 자고 싶어 안달이 난 나를 브루클린까지 태워주었을 때, 나는 항상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언젠가는, 어쩌면 케임브리지를 떠나기 몇 주 전에라도 그의 택시를 부를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는 항상 그걸 잊었다. 그리고 그 택시는사라졌다. 그리고 나도 사라졌다.
-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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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두 시, 광교산에 있었다. 바람이 땀을 식혔고 아직 여린 빛이 남아 있는 나뭇잎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해드폰으로 고정채널 cbs fm을 들으며 하버드 스퀘어를 읽는다.
평화롭고 서늘했고 ‘행복‘이란 것의 순간적 정의는 이런 게 아닐까 싶도록 충만했다. 뭘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옷에서 책쪽으로 기웃거리는 벌레를 발견하기전까지만...ㅠ,ㅠ ‘충만은 찰나다.‘ 부족하고 미흡한 것만이 지속된다고 산을 내려오며 생각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 네 사람 모두 함께하는 지금이 진정으로 행복하고, 이젠 우리가 케임브리지라는 세상에서 자신을포기한 사람, 해체된 기업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직원이라고 느끼지 않기 때문일 터였다. 월든 호수는 엄밀히 말하자면우리 소유가 아니었지만, 주인이 출타 중일 때 빈 테니스 코트를 온종일 차지할 수 있듯 우리가 그곳에서 놀게 해주었다.
우리는 태양 아래서 한두 시간 놀고자 하는 온건한 침입자들일 뿐, 불한당이나 불법거주자들이 아니었다. 우리는 미국에정착하지 않고 미국을 잠깐 빌려 쓰고 있었다. 벌이 몰려드는것을 막고 주변을 어지럽히지 않으려고 수박 껍질을 서둘러비닐봉지에 던져 넣는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납작 엎드려 조 - P241

잠시 후 그는 일어서서 호숫가를 따라 거닐다가 발가락을 물에 적시기도 했고 저 멀리 서 있는 나무의 꼭대기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그가 월든 호수를, 심지어 미국을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곳에서 나는 마침내 칼라지를 이해했다. 그가 미국을 싸잡아 비난하는 건 사실 미국이 자신에게굴복하지 않기로 결정할 경우에 대비해서 자신도 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것이었다. 요전에 변호사가 강제 추방을 언급했을 때, 우리 둘 다 움찔했던 일이 기억났다.  - P243

또한 칼라지는 미국을 폄하하고 세상의 모든 나쁜 것에아메르로크 양키라고 별명을 붙임으로써, 자신을 위한 지중해적정체성과 지중해의 실낙원을 만들고 있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상상 속 어느 해변에 있다고 믿을 필요가있는 곳, 그런 곳이 없다면 미국이 그에게 등을 돌릴 경우 그가 등을 기댈 데가 없기 때문에.
모든 물건을 도로 챙겨 차에 싣고 쓰레기를 종류별로 나누어 버리면서 서로를 바라보던 우리는 바라던 것보다 햇빛을 더 쬐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항상 우리 옆을 미끄러져도망가던 여름을 마침내 포획하는 데 성공한 것마냥 우리는신이 나서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 P244

내가 열쇠를 갖고 책을 놓아두고 다니는 작은 강사실 밖에 한 여학생이 서서 담당 강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햇볕에그을린 피부와 밝은 갈색의 풍성한 머리카락을 돋보이게 하는 주황색 원피스,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샌들을 신고 있었다. 나는 잠시 옆에 서서 그녀에게 무슨 강의를 듣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나에게 무슨 과목을 가르치느냐고 물었다. 그녀의 졸업논문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대화하는 동안 나는그녀의 눈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도 내 눈에서 눈을떼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눈이 계속 내 눈을 살피는 방식이,
내 눈이 그녀의 눈을 살피는 방식이 좋았다. 서로의 눈이 서로에게 머물며 서로를 애무하고 있었다. 우리는 사랑을 나누고 있었고, 그것을 부인하지도, 그 사실에 특별히 주목하지도않았다.
우리는 둘 다 프루스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녀는 졸업논문도 프루스트에 관해 쓰고 있었다. 언제 조언 - P254

라디오에서 마리아 칼라스의 아리아가 연달아 흘러나왔다. 한 가수의 노래가 연속으로 나오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어서 심상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나운서가 충격적인소식을 전했다. 마리아 칼라스가 그날 파리에서 사망했다고..
한순간에 분위기가 싹 가라앉았다. 내 예전 룸메이트의 여자친구와 나는 칼라스의 열성 팬이었다. 백작은 그가 피에로라고 자기 이름을 말했는데도 칼라지는 그렇게 불렀다. 특히 더 충격을 받았다. 자기 아버지가 칼라스의 오랜 친구였고, 아버지의 사무실엔 칼라스가 서명한 초상화가 걸려 있다.
고 했다. 화제는 칼라스로 옮겨갔고, 내게 칼라스 음반이 몇장 있어서 아리아 두세 곡을 틀었고, 그녀가 프리마 돈나 아루타 절대적 프리마돈나인 이유를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내 견해를확실히 입증하기 위해서 다른 소프라노 가수들이 부르는 아리아도 틀어서 비교하게 했다.
- P264

그러나 이 어두운 침실에서 문득 아주 선명하게 떠오르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에게서 나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
그는 여기서 모든 것을 망치고 모든 것을 잃는 순간에 내가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였다. 그는 나보다 딱 세 걸음 앞서가는 내 운명이었다. 나는 종합시험에 떨어지고 짐 싸서 뉴욕으로 돌려보내질 수 있었고, 지금으로부터 일 년 후엔 이 파티는 물론이고,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 P272

킬라지의 눈물을 본 그날 밤, 그의 절망과 절망의 일시적치료제인 희망이 손에 잡힐 것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그는튀니지에 계신 아버지의 병환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외로운 사람이 여기 있다고 생각했다. 분노와 슬픔과 두려움, 심지어 우는 모습을 들킨 것에 대한 수치심도 삶의 매 순간 그에게 휘몰아치는 지독한 고독과 절망의 폭풍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듯했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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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2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5-13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광교산은 제겐 뒷산 같은 품 너른 산이지요. 수원과 용인을 걸쳐서있는. 저도 알리디너분들이 많이 읽으시길래 주문했던건데 제가 좀 오래 걸리는 경향이 있죠ㅎ 산에서 마저 읽으려했는데 벌레때문에 후다닥 내려와서 어제 마쳤답니다^^
 


안드레 애치먼 Andre Achimain


1951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어를 쓰는 유대인 부모 밑에서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아랍어 등 다양한 언어를 접하며 성장했다. 1965년, 반유대주의를 비롯한 정치적 문제로 이집트를 떠났고 로마를 거쳐 뉴욕에 정착했다.
1995년 이집트에서의 어린 시절과 고국에서 추방된 후의 성찰을 담은 회고록 (아웃 오브 이집트)를 발표, 화이팅어워드논픽션 부문을 수상하며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비교적 늦은나이에 작가가 된 것에 대해 애치먼은 긴 잠복기를 가졌을뿐이라며, 자신에게 글쓰기는 직업이 아니라 사명이라 밝히기도 했다. 2007년 발표한 첫 소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람다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 영화로도 만들어져 널리사랑받았다. 여덟 밤Eight White Nights 파인드 미 등의장편소설과 연작소설집 수수께끼 변주곡, 논픽션 (폴스 페이퍼 False Papers) 알리바이) 등을 출간하며 전방위적인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한편, 뉴욕시립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마르셀 프루스트 과목을 맡아 강의하고 있다.
(하버드 스퀘어는 방황하는 하버드 대학원생과 거친 택시운전사의 이야기로, 애치먼의 자전적 소설이라 평가받기도한다. 실제로 하버드에서 약 7년간 학업에 정진하던 애치먼은 전문적인 연구가 오히려 문학에 대한 개인적인 사랑을 짓누른다고 느끼고 학교를 떠나 증권사에 입사했다가 되돌아와 비교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작가 스스로 ˝하버드에서의 나날은 증오와 사랑의 시간˝이라고 밝혔듯, 자기애와 자기혐오가 뒤섞인 청춘의 기록이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활화산처럼 분노를 표출하고 인류 전체에 대해 과장된비난이나 쏟아냈을 뿐 그는 조금도 성장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자신이 성장했다고 생각하거나 성장한 척했다. 우리가 그에게 가할 수 있는 최악의 폭력은 그에게서 열일곱 살 소년을발견하는 것이었다. 그의 삶이 멈춰버린 시기가 바로 그때였다. 그 이후로는 실수와 헛소리로 점철된 삶을 살아왔을 뿐이었다.
- P87

하지만 차이점도 분명히 있었다. 그는 실험에서 대조고..
이었고 나는 실험군이었다. 그에겐 가짜 약이, 내게는 진가약이 주어졌다. 나는 신약의 효과를 경험한 반면 그는 왜약이 효과가 없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둘 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내겐 버티고 설 땅이 있었고 그는 언제나 방랑자였다. 내게는 영주권이, 그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있었다.
그는 날마다 벼랑 끝에 서 있었지만 나는 벼랑 밑을 내려다봐야 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게는 그 심연을 가릴 담장이나 생울타리가 항상 있었던 반면 그에게는 그런 것이 주어지지 않았다. 한편 또 다른 차이도 있었다. 그는 그 벼랑에서 물러서서 살아나올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벼랑과 나 사이에 그를 세워놓았다. 그는 내 가림막, 내 스승, 내 목소리였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추구했던 삶이 그의 삶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P96

문득 내가 칼라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라지는 아랍인 사이에서는 베르베르인이었고, 프랑스인 사이에서는 아랍인이었으며,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여겼다. 마찬가지로 나는 아랍인 사이에서는 유대인이었고, 낯선 이들 사이에서는 이집트인이었으며, 지금은 와스프사이에서 철저한 외계인, 라크로스팀이나 폴로팀에 지원하는 멍청한 잡역부였다.
나는 대서양 이편에 있는 모든 것을 증오했다.
그러고 보니 대서양 저편에 있는 것도 증오했다.
나는 미국과 유럽과 북아프리카를 증오했고, 지금 이 순간은 프랑스를 증오했다.  - P133

그때야 비로소 나는 부모님이 이집트에서 사시던 마지막해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하게 되었다. 추방되지 않기를간절히 바라면서, 추방되기를 기다리며 사는 것, 재산이 몰수되기를 기다리고, 끔찍한 소식을 가진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르기를 기다리고, 조작된 혐의로 체포되기를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기 - P163

볼륨을 아주 작게 해서 듣기를 좋아했다. 그 테너 색소폰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모든 나한 감정들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그 서정적인 선율에 맞춰여자와 합을 맞대고 춤추던 무더운 여름밤이 떠오른다고, 그음악은 자신에게도 사랑이 찾아올 거라는 걸 민지 않기로 결심한 후에도 사랑을 원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메모리얼거리와 스토로우 거리를 달리면서 그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 했고, 비컨 힐과 백 베이와 에스플러네이드 공원을 따라 늘어선 반짝이는 작은 불빛들을 보며 거리를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밤에 운전을 하면 미국인이 된 기분이야. 마치 누아르영화에서 페도라를 비스듬히 눌러 쓰고 차를 몰면서 담배를피우는 악당이 된 것 같아." 한번은 승객이 음악을 바꿔달라고 요구했지만, 칼라지는 그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승객이다시 요구하자 칼라지는 록스베리 한복판에서 급브레이크를밟았고, 그 백인 신사에게 내리라고 말했다.
- P167

유대인에 대해서는 험한 말을 한 번도 한 적 없는 칼라지였지만, 아랍 음악을 듣는 아랍인 택시운전사에겐 팁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유대인 승객에게는 그의 할머니와 당시에 아기였을 그의 아버지가 가스실로 직행하지 않아서 유감이라고, 만일 그랬다면 자신이 기꺼이 오븐에 불을 켰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어디를 공략하면 상처를 줄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나의 어디를 공략하면 내가 상처를 받을지도 정확히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곳을 절대로 건드리지 않았다.
- P168

그는 세상을 모욕하기 위해, 사물을 보고 부르는 다른 방법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모든 것이 불로써세례를 받아 모든 위선과 신앙심을 깨끗이 씻어내야 자신의세계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주변의 모든 것에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모습으로, 혹은 그가 바라는 세상의 모습으로 세상을 재창조하는 그만의방식이었다. 이 춥고 척박하고 대용품이 넘쳐나며 천박한 도시를 몇 단계 끌어내려, 친절하고 친밀하고 잘 도우며 더 밝은 곳으로 바꾸는 그만의 방식이기도 했다. 이렇게 바뀐 도시는 그에게 비밀 통로를 열고 웃으면서 그를 따를 것이다.  - P172

은 여기니까. "라고 말해주기를그는 카페 알제에서 만난 모든 사람을 자신의 비좁고 일 시적인 세계에 꽉꽉 밀어 넣었지만, 단 한 사람에게는 공기가잘 통하는 제일 좋은 방을 주었다.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는 피를 나눈 형제이자 공범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끝내 알지 못했다. 그가 다양한 삶의 방법을 내게보여주기 위해 다른 세상의 문을 더 열어젖히고 케임브리지에서 나를 끌어내려 하면 할수록, 나는 하버드가 내미는 작은특전과 잠정적인 약속을 더 절박하게 붙들고 늘어졌다는 사실을,
- P173

멀어져가는 그의 택시를 바라보면서, 우리를 친하게 만든 요인은 상상 속 프랑스와의 로맨스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그냥 가림막, 착각이었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어디서도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우리의 극단적인 무능력이었다. 우리는 평범하게 사랑하고 평범한 집에서 살며 평범한 일을 하고 평범한 텔레비전을 보고 평범한 식사를 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심지어우린 평범한 친구를 갖거나 유지할 수도 없었다.
- P199

케임브리지로 돌아오는 길에 칼라지는 모파상은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스탕달도 좋았고, 발자크는 천재라고 했다.
"근데 그 사드라는 친구는 역겨워. 그의 책은 돌려줄 테니까 - P226

가 그런 책을 빌려줬다는 건 잊어버리자고."
나는 삶의 경험이 그렇게나 많은 사람이 그토록 쉽게 충격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진짜로 불쾌해하고 있었다. 개망나니같이 사는 줄 알았는데
순진한 구석이 있었다. - P227

나는 먼저 식당을 나와 연구실로 돌아가서 몇 시간이고그곳에 처박혀 있었다. 미국인은 정말로 그토록 신비한 통찰력으로 타인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그전까진 그런 의문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미국인이 인간의 본성을 더군다나 한 개인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않았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면 내가 왜 지금 이런 의문을 품고 있겠는가? 어쨌든 아까 그 여학생의 통찰력과, 그통찰력을 말로 풀어내는 솔직함과 침착함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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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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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쉽게 누리는 편의는 누군가의 불편과 노동으로 가능해진다. 골목마다 24시를 밝히는 편의점이 이제는 누군가의 일터로 보인다. 직원을 귀하게 대하는 사장은 많지 않아도 손님이나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최저임금의 직원들은 많다. 나와 내 주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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