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은 벽난롯가 장면으로 유명하다. 소설 속 벽난롯가 장면에서는 몇몇 인물들이 아주 하찮아 보이는 선택을 두고편안하고 조용하게 논쟁하곤 한다. 그 과정에서 아주 하찮아 보였던 선택은 놀랍게도 중요하고도 윤리적인 딜레마로 변형된다. 또한 그런 장면들이 중요성을 띠는 것은 화자의 기술 덕분이라는 느낌이 매번 든다. 오스틴은 진부함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잘 알고 그 때문에 아주 하찮은 제스처라도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던 것 같다. 『사랑과 우정』 (1790)에서한 가족은 그들 ‘둥지‘의 난롯가에 앉아 있다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 P243

노크 소리 하나에도 심사숙고하는 이 장면은 어이없을 정도로 아주 하찮은 사건까지 기록하는 경향이 있는 감상 소설 작가들을 조롱한다. 그러나 이것은 왕자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예의 바른 대화를 유지해야 하는 평범한 여성의 권태도 보여준다.
말하자면 오스틴의 초기 작품은 작가의 표현을 깎아내리는 잘못된 문학적 인습을 조롱함으로써 특히 여성 독자의 기대치를위험이 따를 정도까지 저버리고, 나아가 그런 인습이 바로 여성의 삶을 결정했다는 인식을 드러내기 때문에 중요하다. 제인 오스턴은 문학적 인습을 노골적으로 패러디함으로써 여성을 지속적으로 그런 환상에 빠지게 만드는 문화를 공격하려고 했다. - P244

오스틴이 존경하는 듯한 존슨 박사조차 예언자인 체하는 수사학적문체로 인해 오스틴의 풍자 대상이 된다. 이런 풍자는 처음에는오스틴의 초기 작품 속 공허한 추상 개념과 대구를 통해 나타나고, 나중에는 진부한 말로 거만을 떨며 자랑하는 『오만과 편견」의 메리 베넷의 입을 통해 나타난다. 또 오스틴은 여성 독자를 깔보는 태도를 취하는 <스펙테이터>를 거듭 공격한다. 여성인 자신의 사적인 관점과 더불어 섭정 시대라는 시대적 배경도그녀가 흔히 놓이는 신고전주의 시대의 맥락에서 그녀를 분명히 떼어낸다. 가장 성숙한 여자 주인공인 『설득』의 앤 엘리엇처럼 오스틴도 한 번씩 젊은 독자에게 ‘최고의 가르침과 가장 강력한 도덕적 종교적 인내의 본보기를 통해 정신을 깨우치고 강건하게‘ 해주었던 에세이스트들의 지혜를 성찰하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오스틴도 ‘스스로도 잘 실천하지 못한 일에 말만 앞세우고 있다‘고 분명히 표현하고 있다. [『설득』 1부 11장] - P249

그녀 스스로 건축가가 되고자 한다면, 접근 가능한 건축 자재(마음대로 쓸 수 있는 언어, 장르, 인습, 전형)만이용할 수밖에 없다. 오스틴은 그것들을 거부하지 않고 재창조한다. 그렇게 보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오스틴은 마리아헤키워스 래드클리프 부인, 샬럿 레너스, 메리 브런턴, 패니 버니 같은 동료 여성 작가의 작품을 찬양하고 즐겼다. 둘째, 우리가 살펴보았듯 그들의 작품들이 여성에게 얼마나 치명적인가에상관없이 오스틴 문화의 여자들은 로맨스 소설의 관습을 내면화해왔다. 그런 만큼 그 작품들은 성장하는 여성의 심리를 묘사한다. 셋째, 그들의 작품은 오스틴이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이야기능이다. 작품의 여자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오스틴은 자신의 한계 상황을 잘 활용했다. 오스틴은 자신이 부적절하다고 폭로한 바로 그 인습을 이용해 가부장제의 권력뿐만 아니라 여성작가의 한계와 양면성을 보여준다. 또한 오스틴은 자신의 문화를 가혹하게 비판할 효과적인 속임수를 찾아낸다. 피할 수도 넘어설 수도 없는 사회에서 자신의 소외 문제를 극화시킬 때조차대중소설의 인습을 전복시킨 것이다. 그것은 소녀들이 그토록강박적으로 읽었던 소설 속 인생과 마찬가지로, 훨씬 더 세속적하며, 그 건축물이 사실상 여성의 일 그들의 삶도 좌절과 외로움으로 상처받기 쉽다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서였다.  - P256

오스틴 시대에 인기 있던 대중적 도덕론자들에 따르면, 마음에 들지 않은 상황에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적자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스틴 소설에 등장하는 젊은 여자들은 대부분 ‘내적 자원‘이 없다. 그들은 무능한 어머니와 살고 있거나 어머니가 없어서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오스틴의 초기 작품들은 여자 주인공을 고아나 버려진 아이 방치된 의붓딸로 묘사한 소설을 조롱하지만, 후기의 성숙한작품에서도 여자 주인공에게 초기와 별다르지 않은 가정환경을제공한다. 『여성의 권리 옹호』에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모든 상황에서 편견의 노예인 [・・・] 여성은 현명하게 모성적 사랑을 행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소홀히 대하거나 부적절한 관대함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을 망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스틴은 특히 딸 양육에 실패한 어머니들에게 초점을 맞추지만 울스턴크래프트에게 동의할 것이다.  - P2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독 출신인 그는 훔볼트대학 재학 당시 학과 규정에 따라 한국학전공자는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2년간 수강해야 한다 해서 어쩔수 없이 78~79년 양해에 걸쳐 평양에 머물렀는데, 정작 당시 평양에 간 동기는 자신과 다른 한 명뿐이었다. 당해에 총 여섯 명이 입학했는데, 두 명은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학과 공부(그러니까 당시명칭은 ‘조선어‘)를 포기했고, 다른 두 명은 북한에 갈 즈음 전과를 해버려, 결국 홀머 선생과 동기 한 명만이 평양에 가게 되었다. - P277

체류 당시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어 버렸는데, 홀머 선생은 정말 공포에 떨었다고 했다. 북한 학생들이 "수령님께서 명령만 내려 주시면 남조선에 내려가 불쌍한 남한 동무들을 해방시켜 줘야 할 때입니다!"라며 모두 흥분했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그는 이렇게 ‘조선어‘를 배운 게 계기가 되어, 88년에서 89년까지 또 한 번김일성 정권의 초청(?)을 받아 평양에서 일하게 됐는데, 당시 그가맡은 일은 총 40여 권에 육박하는 김일성 선집 (연설문, 선언문, 주체사상 강의록 등 그 내용이 실로 다양함) 중 제36권과 37권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것이었다. 그땐 어차피 동독도 사회주의 국가여서 그냥 일한다는 느낌으로 갔는데, 그는 평양의 몇 안 되는 외국인이라 차관급의 집을 제공받았다고 했다(그때 평양에 있던 외국인은 러시아인, 동독인, 중국인 정도였다). - P277

확실히 동독 출신 독일인은 세속적인 욕심과는 거리가 멀다는 인상을 준다(한국 나이로 예순인 그는 유행이 지난 청바지를 매일 입고, 배낭을 직접 메고 다니며, 학교에서 독일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지낸다. 그러면서 그는 "연금 나올 때까지 계속 일해야 해" 하며, 내식사값까지 치르고 연구실로 갔다.

"아니, 이거 더치페이 하는 독일인한테 얻어먹어서 어쩌죠?"라고하니, 그는 갑자기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듯 "나는 한국에 염색됐으니까"라고 했다. 내가 "오염 말씀입니까?"라고 하니, "아니!"라고하기에, "그럼, 감염?" 하니, "것도 말고"라고 했고, "그럼, 전염?"
하니까. "아니!"라며 웃기에 "그럼 물들었다는 말씀이십니까?"라고 하니, 마침내 "맞다! 물들었으니까!"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캠퍼스 한구석에 대나무가 심겨 있었는데, 그는 잠시 멈추더니 "으음. 한국 냄새 " 하며 공기 중에 떠다니는 대나무 향을 흠뻑 마셨다. - P281

천재 모차르트는 죽을 때까지 다작을 했다.

그의 최후 몇 시간을 묘사한 그림을 보면, 그는 죽음을 앞두고도미완성한 레퀴엠 악보를 쥐고 있다. 제자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의식을 잃기 몇 시간 전까지 레퀴엠의 악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천재도 노력해야 한다는 걸 모차르트를 통해 배운다.

단, 그에게는 미녀 부인이 있었다.

천재도 미녀 부인이 있어야 노력할 수 있다는 걸 역시 모차르트를통해 배운다.

모차르트가 서른다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정체불명의 질병으로 급사해 버렸을 때, 미녀 부인이었던 ‘콘스탄체‘에게는 그가 남긴 두 명 - P325

의 아들과 빚밖에 없었다(총 여섯 명의 자녀가 있었지만, 네 명은 아주어릴 때 죽어 버렸다). 콘스탄체는 자신이 노래를 불러 가면서까지 모차르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고, 그의 악보집을 출간하고, 전기 작가에게 부탁해 전기 출판 작업까지 했다. 남은 두 명의 아들 역시 미혼인 채로 죽어 버려 결국 후손이 없는 모차르트에게 이 부인이 없었다면, 그의 생이 우리에게 온전히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전기를 출판하는 데에는 한 덴마크 외교관이 큰 도움을 줬는데,
그는 18년이 지나 그녀와 코펜하겐에서 살림을 차려 버린다(이 외교 - P326

관이 그 전기 작가였다).

결국 죽으면 다 소용없다는 걸 모차르트를 통해 배운다.

그런데 마침 새 남편도 모차르트의 팬이었던지라. 이 부부는 계속모차르트의 공연을 올리며 그 수익을 착실히 거둬들인다.
결국 예술가가 일찍 죽으면 유족들 좋은 일만 시킨다는 사실을 또한 번 배운다(전처의 재혼남에게까지 유익하다. 참고로, 유사시 미래의나의 부인은 일찍 재혼해도 된다. 아쉽게도, 인세는 거의 없을 것이다. 고로, 무조건 오래 살기로 한다).

모차르트가 한때 주춤하긴 했지만 죽기 전에는 다시 상당한 수입을 올렸는데, 죽을 때 빚만 남겼던 건 사실 모두 그의 사치스러운 삶과 도박 때문이었다. - P327

리라 굳게 다짐했다).
그나저나 이탈리아는 많은 영감을 준다. 독일에 있던 괴테가 이탈리아로 가서 어떻게 영감을 받고 기행문을 썼는지 십분 이해된다.
그도 아마 길 위에 갇혀서, 경상도 사투리의 스무 배쯤 되는 강력한억양의 이탈리아어를 연속적으로 들으며 ‘아름다움과 편리함은 공존할 수 없는 것‘이란 걸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걸핏하면 이탈리아 기행을 떠났던 괴테만이 나의 심정을 이해할것이다.

늦은 밤에 도착한 피렌체의 두오모는 이때껏 살면서 본 모든 성당 중 가장 아름다웠다. 그 흥분이 채 사라지기 전에 펍에서 옆자리에 앉은 모로코 출신 남성이 내 목도리를 자기 것처럼 두르고 있는 걸 파비오가 발견했다. 피렌체는 눈깜짝할 사이에 목도리를 훔쳐 가니, 그래도 눈 깜짝할 사이에 코 베어 간다는 한양보다는 낫다고 여긴다. - P400

대기 인원이 135 명인 역에서 네 시간을 기다렸고, 사람이든 사회든 외질보다는 내실이라는 생각을 했다(그저께 피렌체의 바에서 옆자리 손님이 태연하게 내 목도리를 자기 목에 두르고 있던 것 역시 떠올랐다. "내 것인데요"라고 하니, "아, 그런가? 껄껄껄껄!" 하며 되돌려 주었던것이다. 그 와중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며 악수를 청했다).

오랜 생각 끝에, 다섯번에 걸쳐 실패하며 썼던 14장의 에피소드는 잊기로 했다.

이곳에 오고 나서 어처구니없게도, 백림에서의 나날이 썩 나쁘지않았다는 걸 깨달았다(물론, 물은 맥주보다 비싸고, 전철 노선은 복잡하고, 인터넷은 느리고, 먹을 건 소시지밖에 없지만, 완벽한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

한 공동체가 건강하게 돌아가려면 훌륭한 정치인도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정직한 시민과 지치지 않고 정치권을 견제하는 시민 - P413

사회와 합리적인 제도를 구축하기 위한 끈질긴 관심과 왕성한 지적·정치적 호기심이 필요하다.

내가 이 땅에서 숨 쉬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왜 각종 변명을 붙여서 세금을 안 받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이곳에서 손해를 감수하며 새치기를 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친절을 베풀며, 고귀한 성품을 지키고 살아가는 선인들이 안쓰러워진다.

일흔여섯 번째 날이었다. - P414

역시나 공항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약 스무 명이 넘는 현지인들이내 앞에서 새치기를 했다. 그 덕에 현지인들 사이에서 활발한 고성빵가가 오갔고, 원치 않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사이 나의 탑승 시간은 지나 버렸다.

그 덕에 나는 거의 15년 만에 공항에서 뛰어야 했다. 하지만 ‘어허, 여긴 이탈리아야!‘라는 듯이, 탑승 시간은 지켜지지 않았다. 내뒤로도 약 스무 명의 승객들이 뛰어온 뒤, ‘아! 여긴 이탈리아였지‘ 라는 표정을 지었다. 비행기 역시 ‘어허, 여긴 이탈리아라니까!‘라는듯한 투로 한 시간 뒤에 출발했다.

포르토는 실로 마음에 들었다. 베니스처럼 아름답진 않았지만, 사람들은 친절하고 여유가 넘쳤으며, 적당한 자존심과 적당한 관용을 - P426

선보였다. 거리엔 따뜻한 햇살이 넘실거렸으며, 믿기 어렵게도 나는1월 1일에 노천카페에 앉아 몇 시간 동안 식사를 했다. 많은 시민들이 시 당국이 설치한 의자에 앉아 햇살을 쬐고 있었다. 아마 훗날 내가 불순한 예술적 반역 행위를 저질러, 모국의 정부로부터 추방을당한다면 그때 나는 포르투갈의 포르토를 자발적 유배지로 선택할것이다. 사람들과 풍경과, 바다와 강과, 건물의 적당한 낡음과 거리의 적당한 어지러움이 내 마음을 활짝 열고 들어왔다.
특히 거리 한구석에 잔뜩 버려진 쓰레기가 한 해의 마지막 날 밤이들이 얼마나 격정적인 축제를 벌였는지 증명하고 있었다. 그것은몹시도 인간적이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반면, 새해의 첫날은 숙취에 시달려 꼼짝 않는 사람처럼 고요했다. 이런 양면적이고도 복합적인 역동성과 평온함이 나를 강하게 유혹했다.
시내에서 햇빛을 즐기며 식사를 한 후, 버스를 타고 스페인 비고에도착하니 다닐로와 여자 친구가 마중 나와 있었다.
그리하여 이날은 본의아니게 아침은 이탈리아에서, 점심은 포르투갈에서, 저녁은 스페인에서 먹게 되었다.

엄청난 빚에 쫓기어 도망 다니는 국제 채무자가 된 심정이다. - P427

이제야 고백하자면 나는 비록 단신이지만, 영혼뿐 아니라 내장의 3할가량 역시 미국화되어 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미제 조식(American Breakfast)‘을 먹어 온 탓이다. 부친이 유사 식당 같은 걸운영했었는데, 거기서 미제 조식을 팔았다. 즉, 중국집 아들이 밥이없으면 자장면을 먹고, 치킨집 아들이 닭 다리를 뜯듯이, 홍콩 영화에 흠뻑 빠져 있던 중학생 시절, 뭔가 취향과는 조응되지 않게 베이컨과 식빵을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어째서. 이게 아침이라는 거야?‘
라는 생각을 품어 왔는데, 몇 년을 먹다 보니 맛있었다. 그만 그 맛에 길들여져, 이제는 숙소에서 조식이 나올 때마다 ‘음. 가히 고향의맛이군‘ 하며 먹는다. 고로, 여행의 마지막 날인 오늘 역시 미제 조식을 먹었다. - P460

나는 파독 간호사로 온 이민 1세대인 육십 대 할머니의 집에서 그녀의 권유에 따라, 안락의자에 다리를 올려놓고 일기를 썼다. "아니…… 이거…… 이래도 됩니까?"라는 나의 질문에, 그녀는 "부디 그렇게 해 주세요. 최 선생님"이라고 했다.
"최 선생님. 여름에 꼭 다시 오세요. 제일 안 좋을 때 오셔서, 제일 우울한 경험만 하시고 가시는 거예요."
그녀의 말을 증명하듯, 나를 배웅하러 나온 그녀의 등 뒤로 펼쳐진 암흑 같은 검은 하늘 가운데 줄곧 비가 내렸다. 나는 그녀가 준 우산을 쓰고 있었다. 돌이켜 보니, 그녀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하지만, 제일 안 좋을 때, 제일 우울할 때 오니, 볼 것이 없어, 오히려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많이 변한 것 같다. 어쩌면 나는 내 문학의 상징인 빈정댐과투덜댐을 잃어버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것은 잃어버려도 좋다. 그렇게 생각했다.
여든아홉 번째 날이었다. - P484

많은 사람을 만났고, 해일처럼 그 만남들이 모두 지나가니, 결국비수기의 해변처럼 쓸쓸하고 차가운 일상만이 남았다. 다시 할 일은없어졌고, 어쩌면 1년 내내 이런 날들이 이어질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인가‘ 하는 상대성이지만, 크게 보자면 지금 맞은 한 해가 여생과 별차이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어쩌면 다시 원고지를 펼치고 스스로 펜을잡을지도 모르겠다고 여겼다. 당연한 말이지만, 작가에게 고독은 실로 떨쳐 내고 싶은 지긋지긋한 존재이지만, 떨쳐 내 버리면 자기 자신이 생존 불가능해지는 필요악 같은 존재다. 어불성설같지만, 작가가 완전히 혼자가 아닌 것은 언제나 고독이 함께하기 때문이다(백림에 다녀온 후, 관념 철학에 오염된 것 같다. 아울러, 유머도 독일식에 감염된 것 같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 P491

결국 인생에서 필요한 건 상대에게 웃음을 짓는 것. 상대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 그리고 스스로를 존중하며 소중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그 실천인 것 같다.
어디에 있건, 남은 시간들은 소중히 쓰기로 했다.
서울에서의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백림의 여운은 이제 모두 정리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서울에서의 날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날이었다. - P492

이후에 오월에 백림을 다시 방문했다. 하지만, 그때의 일기는 책에 싣지 않기로 했다. 한 며칠쯤의 일기는 순수하게 일기로 남겨 두고 싶었다. 사월의 화창한 어느 날 유학생 경보에게 전화가 와 "아! 형님. 어서 오셔야죠! 여기 날씨 완전 환상이에요. 지금 놓치면 후회해요. 어서오세요!"라고 해서 갔는데, 도착하니 줄곧 비만 내렸다.
백림의 화창한 날은 한동안 상상의 대상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 작가적 상상력은 글을 쓰지 않아도 필요한 것이다.

베를린 일기 끝.

발렌시아 일기, 뉴욕 일기, SF(샌프란시스코) 일기 …… 부다페스트 마라케시, 베이루트, 사하라, 나이로비, 아마존, 남극, 교도소 일기도 기대해 주세요. - P4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민석


2010년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2012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으며, 쓴 책으로는 장편소설 <능력자>, 『풍의 역사』, 『쿨한 여자,  소설집『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
산문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등이 있다. 6·70년대 지방 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의보컬로도 활동 중이다.

나는 한 예술 기관의 지원으로 2014년 가을부터 이듬해 겨울까지 베를린자유대학(Frei Universität)에 머물렀다.
이 90일간 나는 일기를 썼다.
막상 출국을 하니 딱히 할 일이 없었는데, 한 독자가 선물로 준 다이어리가 떠오른 것이다.
하여, 김현 평론가를 흉내내볼 요량으로 그 일기장에 70년대 문인들의 문체를 차용하여 자필로 직접 일기를 썼는데, 하다보니 90일간 계속 써버리게 된 것이다.

일기를 읽기에 이해해야 할 것이 네 가지 있다.

나는 천성부터 게으르다. 고로, 일기는 하루 지난 다음 날 아침(때론, 오후)에 썼다.
옛 문체를 살리기 위해 종종 한자를 썼다.
(물론, 내가 아는 한자이기에 중학생 수준을 넘지 않는다.)출국 한 달 전 자전거를 타다 교통사고를 당했기에, 그에 대한 극복기도 곁들여 있다.
나는 고독했다.

이뿐이다.
그 외에는 그냥 읽으면 된다. - P7

어제 아시아나 비행기에서 32만 몇천 원을 주고 ‘제플린(Zeppelin)‘ 이라는 독일제 시계를 샀는데, 시계 박스를 뜯는 순간 내가 엄청나게 멍청한 짓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비행 내내 내가 저지른호구짓에 속이 쓰려 와, 원래 장염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도 잊었다.

베를린으로 오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프랑크푸르트 공항에내려 ‘의도치 않게‘ 시계점에 들른 후, 내가 저지른 멍청한 짓이 얼마나 한심한 결정이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비슷한 가격, 심지어는 더 값싼 가격의 ‘에비에이터‘ 시계와 ‘아르마니‘ 시계들이 훨씬멋진 자태를 뿜어내며 내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미안해. 나는 이미 호구 짓을 한 번 저질렀단 말이야‘라고 한국어로 변명했다. 과연 프랑크푸르트 공항 면세점에 전시된 미국 시계와 이태리 시계는 발화되지 않은 내 한국어 변명을 들을 수 있었을까. 내 딴에는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하얼빈의 안중근 의사 심정으로 절규했지만 말이다. - P9

밤은 일찍 오고, 그 밤은 길다. 이곳에서의 나의 일상 대부분은 어들이 차지한다. 그렇다 해서 이 일상을 거절할 순 없다.

때로 일상은 살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때로 그 일상이 다시 살고 싶은 대상이 되기도 하기에, 살아내야 하는 오늘을 무시하지 않으려 한다. 소중한 날로 이어지는 다리는 필시 평범한 날이라는 돌로 이뤄져 있을 것이다. 보잘것없는돌 하나를 쌓은 밤이다.

필요한 날이었다.

열네 번째 날이다. - P76

수백 명의 동베를린인이 이 검문을 피하려다 목숨을 잃었다(탈출을 시도한 이는 5천 명가량이고 그중 100~200명 정도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마침 올해가 베를린장벽이 붕괴된 지 25주년이 되는 해였다. 독일은 결혼을 해서도 25주년이 되면 은혼식을 올릴 만큼, 25년이라는 숫자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 탓인지 브란덴부르크 문앞에서는 25주년 특별 영상 같은 것이 상영되고 있었다. 영상 속의동독인은 군인들을 향해 "자유를 달라!"며 목청이 터질 듯 외치고있었고, 한 동독 아주머니는 자식에게 자유가 없는 세상을 물려줄수 없어 아기를 낳지 않고 있다고 울음을 터트렸다. "사회주의는 민주주의가 없이는 불가능하며, 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문구도 스쳐 갔다(독일의 사회주의는 경제적 사회주의를말한다). 그런 화면이 몇 차례 지나가고, 수십만 명의 서독인들과 동독인들이 각자의 경계 내에서 "비폭력"과 "우리는 사람이다!" 라고독일어로 외치며, 장벽을 허물자고 주장하는 시위 영상이 나왔다. - P127

이곳에 온 뒤, 너무 소설가로서의 삶과 동떨어진 일상을 보낸 것같아 고민하던 차, 마침 한강 선배가 독일에 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것은 우연의 결과였는데, 어느 날 내 연구실 책상 위에 누군가가
‘한국 문화원‘의 낭독 행사 팸플릿을 갖다 놓은 것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팸플릿을 보며 ‘아니, 내가 독일에 있는데, 굳이 왜 다른나라에 있는 작가를 여기까지 초청하는 거야?!‘라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팸플릿 자료를 읽자마자 바로 수긍했다.

"Han Kang ist eine reprasentative korenishche Schriftstellerin~"
(한강은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로서 ~ ) - P135

선배는 나를 때릴 듯이 "베를린에 머무르고 있는 거예요? 레지던스?" 하며 단번에 모든 걸 파악했다는 듯이 물었다. 알고 보니 선배는 폴란드의 바르샤바에 레지던스 작가로 와 있다고 했다. 선배는폴란드가 적적한 듯, "베를린에 있어서 좋겠어요. 볼 것도 많고!"
라고 했는데, 나는 몹시 고독한 표정을 지으며 "헤르만 헤세가 졌다고 할 만큼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어서, 의도치 않게 매일 글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오늘도 그런 이유로 낭독회까지 찾아왔다고 하니, 그녀는 문인 선배가 아니라 인생의 선배처럼 "그건 도시의 문제가 아니라, 민석 씨 개인의 문제"라며, 진정 애틋한 눈빛으로 "어서 여자를 만나야 할 텐데.……"라며 지구를 걱정하는 그린피스 대표처럼 애통해했다. 알아요. 알아! 나도 어서 짝을 만나야 할텐데 말이죠. - P136

이 역시 나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태어나서 자발적으로 하루도쉬지 않고 한 달간 일기를 써 본 것은 처음이다. 작가가 되고 나서도 누군가의 부탁이나, 금전적인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한 달간 매일 글을 쓴 것 역시 처음이다. 동백림에 머무는 마지막 날까지 계속써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온전히 쓰고 싶을 때에만 쓰려 한다. 나 역시 나 자신을 실험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수한 전쟁 영화에서 왜 꼭 주인공 포로가 일기를 쓰는지 알 것 같다. 마찬가지로, 독방에 수감된 죄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왜 의외로 연필과 종이를 달라고 하는지도 알겠다. 이곳에 오기 전, 나는 ‘쓴다는 행위‘에 대해 강력한 회의를 품었다. 일종의 무기력한 구호라고 느낀 것이었다. 그것은 주장도, 깨달음의 나눔도, 발견의 확산도 아니었다. 그것은 내게 생존 수단이었고, 노동이었고, 평가의 대상이었고, 비난과 조롱의 발미였다. - P161

그나저나, 함부르크는 독일이면서도 영국 같은 도시였다. 항구도자라는 느낌과 선원들이 이룩한 남성적인 문화, 그리고 비틀스의 탓인 듯했다. 게다가 국제적 명성에 비해 도시가 굉장히 아담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버거에 뼈만 발라낸 날생선을 몸통째넣어 팔고있었다는 것이다. 10여 년 전쯤, 이스탄불에서 고등어 케밥을 먹고그 자리에서 보스포러스 해협에 뱉어 내고 싶었던 마음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기에, 생선 버거는 먹지 않았다. 하지만, 새우 버거는 괜찮았다. 작은 새우(Shrimp) 백여 마리를 버거 안에 무더기로 넣고 마요네즈를 뿌려서 팔았는데, 경보는 "우와, 형, 이거 맛있어요. 우와.
정말 맛있어요. 하하. 민망하네요. 많이 먹어서" 하며 내게도 한 입권했다. 나는 경보에게 진로를 요리사로 바꿔 볼 것을 조심스레 권했다. - P196

개인은 실로 다양하고 모두 제각각이다. 하지만, 국적은 개인에대해 일정 부분 정도는 설명해 준다. 물론, 일정 부분 이상의 해석은 예의에 어긋난다. 어제 두 달째 독일어 수업을 수강하며 깨달은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건 독일어가 아니라 스페인어를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수강생 전원이 스페인어를 했다.

일본어와 이태리어를 배울 때에도 느꼈는데, 영어를 제대로 하지못하는 사람에게 일본어와 이태리어를 쓸 기회는 오지 않는다(물론,
개인의 유흥이나, 현지에서의 삶을 위해서는 필요하다). 즉, 외국어 학습에도 순서가 있는 셈이다. - P250

말하자면,
영어 → 스페인어 불어, 독어→ 일본어, 이태리어....… 스와힐리어, 와 같은 순이다(중국어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제외시켰다).

사실 나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반아어를 두 달 정도 배웠지만, 금세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이태리어와 독일어를 배우면서 깨달았다.

이 노력이면 차라리 다시 스페인어를 배워야 한다는걸. 게다가 스페인어는 쓸모 있다(물론, 가장 필요한 것은 영어지만, ‘노력 대비 가용성‘을 말하는 것이다). - P251

살면서 여러 번 느꼈지만 영어를 전혀 못 하면 인생의 범위는 60억분의 5천만, 즉 120분의 1로 줄어든다. 달리 말해 전 세계의 범위가1 이라면, 인생을 살며 분노를 느끼든, 좌절을 겪든, 정부에 불만이쌓이든, 혹은 주머니에 돈이 쌓이든 간에 상관없이, 그저 120분의1의 세계에만 머물러야 한다. 하지만 영어를 그럭저럭 구사하면 자신이 머무를 수 있는 세계의 범위는 2분의 1로 확장된다. 스페인어까지 하면 5분의 3, 그 외 불어, 독어, 이태리어까지 하면 자기 세계의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지는 셈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삶은 고단한이방인의 삶이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애석하지만 이것이 현실이기에, 다시 영어와 스페인어를 공부해 볼까 생각 중이다. 그다음에 어중간하게 끝내 버린 일본어를 다시 해 볼까 싶다. 프랑스엔 별 관심이 없 - P251

으니 통과하고, 이태리어와 독어는 양국에겐 미안하지만) 그다음이냉정히 말하자면, 그만큼 쓸 일이 없는 것이다).

두 번째 일기장을 다 썼다.

아, 오늘 40분 동안 수정해야 할 시나리오의 50%를 끝냈다.

역시 글은 마음으로 쓰는 것이다(사실 소설은 몸으로 쓰는 것이다. 그것은 조사 하나, 수식어 하나 세밀하게 선정해야 하기에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시나리오는 생각한 바를 그대로 옮겨 적으면 되기에 사실 마음으로 쓰는 시간이 훨씬 길다. 물론, 내 경우에 말이다). - P2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홈 하나 없는 인간이라면, 내가 실수한 적 없는 인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를 요즘 많이 생각한다. 나의 어떤 과거 혹은 과거의 어떤 발언이나 행동들은 누군가에게 말하기가 너무 부끄러운것들이라 그것이 세상에 드러날까 두렵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또알게 되면서 가장 견딜 수 없는 건, 과거의 나 자신이다. 여성 혐오적인 발언을 일삼던 나...... 물론 그때도 나는 늘 당당했고 내가 하는 말에 자신이 있었으며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는 참기보다 말하는 사람이었다. 남자아이들과 싸우기도 많이 싸워서, 내가 나를 알기 전부터 난 이미페미니스트였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닫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때 괜찮은 인간이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이었는지, 여성 혐오에 일조하는 인간이었는지를,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다시 보며 깨달았다. - P150

나는 고등학생일 때 반 아이들 몇 명과 이 영화를 봤다. 그때의나는 델마(지나 데이비스)와 루이스(수잔 서랜든)가 자신들을 성희롱하는 남자의 트럭을 폭발시키는 장면을 보고 "어휴~ 아무리 그래도그렇지, 뭘 저렇게까지 해"라고 말했다. 그러자 우리 반 반장(여고으므로 당연히 여자였다)이 화를 내며 "저게 왜 심하다고 생각해? 저남자가 잘못했는데?"라고 내게 따졌다. 나는 지지 않고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트럭까지 터지게 하면 어떻게 해"라고 말했던 거다. 지금돌이켜보면 우리 반 반장은 페미니스트였던 것 같다. 내가 지금 깨닫고 공부하는 많은 것을, 그 애는 그때 이미 알았으니,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아주 얌전한 아이를 보고 내가 무심결에 "여자 중에 여자"라고 표현한 거다. 그러자 반장이 내게 물었다.
"여자다운 게 뭔데?" - P151

"나는 어느 지점을 이제 지나온 것 같아. 다시는 돌아갈 수 없어."
아 그녀는 이제 그녀로서 자리한다. 갇히고 억압받는 그녀가아니고 온전히 그녀가 되었다. 그전까지는 그녀의 삶의 모든 패턴과 방향을 다른 사람이 대신 결정해줬다면, 이제부터는 그녀가 직접 결정한다. 이것이 맞고, 이것이 옳다. 그녀는 이 모든 일, 지금의위기가 자신 때문에 일어났음을 깨닫고 루이스에게 사과한다. 그때 루이스가 그런다.
‘내가 말했잖아. 이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때, 바로 그때, 루이스가 그렇게 말한 그때, 그제야 갑자기 내가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아, 맞다! 이게 왜 델마 잘못이야? 이게 왜델마 잘못이냐고, 그런데 나도 무의식적으로 델마를 원망하고 있었잖아, 맙소사! 델마를 강간하려는 남자가 없었다면, 그들의 돈을 모두 훔쳐간 남자가 없었다면, 그랬다면 그들의 인생이 이렇게 절벽으로 향하진 않았을 텐데! 애초에 그녀를 어릴 때부터 강압적으로 가둬두고 살았던 남편이 없었다면?
- P155

시종일관 등장하는 거의 모든 남자가 그랬다. 그랬는데, 그게지금 우리의 삶이다. 강압적인 남편과 강간하려는 남자, 피해자인여자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경찰, 돈을 뜯어가는 남자, 아무렇지도않게 성희롱을 일삼고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남자. 루이스의남자 친구는 그중 ‘나은‘ 남자였는데,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뜻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자, 테이블 위의 모든 것을 거칠게 손으로 쓸어버리는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다. 여자를 때리진 않았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거칠게 변하는 남자를 좋은 남자라고 할 순없을 것이다.
친구와 나는 영화를 보고 나온 뒤에 영화에 대해 계속 얘기했다. 나는 아직도 내 안에 여성 혐오가 남아 있는 것 같아 너무 괴로웠다.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에 아득해졌다. 그렇게나 공부하고 주의를 기울이는데도 아직도 갈 길이 멀다니.. 아직도 많이 부족하구나, 나라는 인간 친구와 나는 이번 여행에서 <델마와 루이스〉를함께 본 시간이 가장 좋았다고 얘기했다. - P157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와 침대를, 화장실을, 부엌을 함께 사용하지 않음을 의미한다면,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불 꺼진 집에 돌아가 내 손으로 불을 켜고 내 손으로 보일러를 돌리고, 내 손으로 침대의 시트를 갈아치우는 일들이 간혹 외로움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더 자유롭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홀로 살아간다는 것‘이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나 혼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그런 삶이라면,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하기가 무척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레이브스조차 도시로거처를 옮겨 다른 이들과 함께하기를 원하니까. 내가 비명을 지르면 옆에서 누군가 들어줄 수 있는 그런 곳. 내 공간에 내가 비록 혼자일지언정, 문을 열고 나가면 얼마든지 다른 누군가를 볼 수 있는그런 삶을 그가 원하니까 - P223

가족이라서 멀쩡한 아버지의 요강을 어머니가 비운다는 말, 같은 가족인데도 요강을 비우지 않는 아들. 이 집은 대체 어떤 집인가 나는 다른 사람들의 사랑이나 연애, 혹은 결혼에 ‘난 반댈세‘
를 외치고 싶지는 않다. 다 저마다의 사연과 사정이 밖에서 보았을 때는 절대 알 수 없는 아주 많은 것이 거기 담겨 있다고 생각하므로, 그렇지만 평생 아버지의 요강을 비워온 어머니와 그 상황에한 점의 의심이나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이 가족 구성원을 보노라니, 나나에게 ‘이 결혼 반댈세‘를 외치고 싶어졌다. ‘부부‘여서 왜아내가 남편의 요강을 비워야 하는가. 왜 남편은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지 않는가.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는가. 지랄 맞은 경우가 아닌가. - P238

시간이 지나 소설 속에서는 아내가 자신에게도 자신의 시간이있는 거라며 남편의 제안을 거절하고, 남편은 ‘아내에게도 아내의시간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받아들였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사실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진작 일어났어야 했고.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해서 같은 꿈을 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우리에겐 상대의 의견을 물어보는 게 반드시, 꼭 필요한 법이다. 이건 기쁜 일,
축하할 일, 마땅히 좋아해야 할 일이니까 네 의견을 묻지 않아도 당연히 좋아하겠지, 라는 생각은 정말이지 오만하지 않은가. - P244

변방에 남겠다는 김경미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나는야 세컨드 1


누구를 만나든 나는 그들의 세컨드다
,라고 생각하고자 한다
부모든 남편이든 친구든
봄날 드라이브 나가자던 자든 여자든 - P247

그러니까 나는 저들의 세컨드야, 다짐한다
아니, 강변의 모델의 주차장 같은
숨겨놓은 우윳빛 살결의
세컨드, 가 아니라 그냥 영어로 두 번째,
첫 번째가 아닌, 순수하게 수학적인
세컨드, 그러니까 이번, 이 아니라 늘 다음, 인언제나 나중, 인 홍길동 같은 서자, 인 변방, 인
부적합, 인 그러니까 결국 꼴찌,


그러니까 세컨드의 법칙을 아시는지
삶이 본처인 양 목 졸라도 결코 목숨 놓지 말 것
일상더러 자고 가라고 애원하지 말 것
적자생존을 믿지 말 것 세컨드, 속에서라야
정직함 비로소 처절하니
진실의 아름다움, 그리고 흡반, 생의 뇌관은,
가 있게 마련이다 더욱 그곳에
그러므로 자주 새끼손가락을 슬쩍슬쩍 올리며
조용히 웃곤 할 것 밀교인 듯

나는야 세상의 이거야 이거 - P248

나는 동물을 키우지 않고 앞으로도 키울 생각이 없다. 그러므로 E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아는 E는 사람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관심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다. 함께길을 걷다가 한 어린 아이가 엄마 뒤에 따라가면서 소리 내어 우는걸 본 적이 있다. 아, 저 아이 왜 울지? 라고 나는 계속 그 아이를 봤는데, E는 내가 보지 않는 곳으로 뛰어가서는 길고양이한테 먹이를주더라. 그때 내가 에게 말했다. 우린 이렇게 다르구나, 같은 길을걸으면서 나는 우는 아이를 보는데 너는 고양이를 봐. E는 내가 사람을 예뻐하는 만큼 고양이를 예뻐하고, 내가 사람에게 위로받는만큼 고양이로부터 위로받는다. 그러니 E에게 고양이가 심각하게아픈 것은, 나에게 내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 것과 다를 바 없다, 라고 나는 다만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그러니 나는 E의 고통을 공감한다기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 P265

동물 학대는 인간에게서 나온다. 그토록 끔찍한 짓을 하는 게인간이다. 그러니 독미나리 술이나 먹을까 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가 아니다. 지긋지긋한 인간들, 내가 그런 인간들 중의 하나라니. 그러나 세상에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알리고 싶어 하고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도 인간이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고 노래하는 것도 인간이다. 아픈 동물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돌보겠다고 하는 것도, 동물 해방을 주장하는 것도 역시 인간이 하는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이 지구를 버텨가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들과 동물 실험을 하는사람들 또 동물 해방을 주장하고 돌보는 사람들, 그 경계선에 자리하고 있는 걸까? - P270

게다가 남자들에게 강인함을, 냉정함을, 객관적임을 주입하는 순간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와 동시에 ‘그래서 열등하다‘가 되어버리니까. 이 책에도 나오지만, 여자들은 남자들로부터 보호받기를 원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약하니 우리를 보호해줘, 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 ‘너네, 폭력을 쓰지 마!‘를 말하는 거지.
토니 포터는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이 사회에서 차별을없애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없애는 길은, 남자의 사회화 자체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것도 분명히 알고 있고. 토니 포터같은 사람이 알고 있고 또 여러 사람에게 얘기하기를 선택했다는것은 분명히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다. 백 명이 듣는다고 백 명이 다 바뀌는 건 아니겠지만, 그중의 일부는 그동안 자신이 ‘선한 남자로서‘ 폭력이 행해지는 것에 어떻게 일조했는지를인지할 테고, 잘못을 뉘우칠 것이며 그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할테니까. 그런 사람이 점차 많아지면 저자가 바라는 것처럼 더 나은세상이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나도. - P2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친구랑 그런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사랑에 푹 빠졌을 때, 우리가 일상을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간신히 회사에 앉아 있는 일들의 연속이었음을. 중요한 일을 업무 시간 내에 하는 것조차힘겨웠음을, 누군가를 ‘너무‘ 혹은 ‘아주 많이 좋아하는 것이 우리의 이성을 얼마나 앗아가는지를. 우리가 문자 메시지를, 전화를, 이메일을 얼마나 기다리는지를. 그런 것들을 내가 보낼 때면 어떤 단어를 선택할지 고심하는 것도, 심지어 보내는 시간조차 지금이면될까 망설이던 순간들을. - P67

될까, 생지독한 사랑에 빠진 나는 마치 뇌가 혹은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똑똑하다는 말을 듣던 나도, 재치 있다는말을 듣던 나도 없어졌다. 이런 행동은 옳지 않아, 하며 평소에 하지 않던 일들까지 저질렀고, 말문이 막히는 일이 많아졌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나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행동도 제대로 못하는 멍청이 그 자체였다. 그러니 아니 에르노의 저 한 줄 한 줄이 다 내얘기였다. 내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내 얘기이며 지독한 사랑에 빠진 모든 여자들의 얘기였다.  - P67

그 글을 보노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한결같은 고민을, 항상 하고 있었다고. 그리고 남자들이 혹여 술집 포스팅을 쓴다면 ‘화장실이 안에 있어서 좋다‘는 글을 쓸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여성 전용 화장실, 여성 전용 주차장, 여성 전용 휴게소를 두고역차별이라고 주장하는 남자들이 있다는 걸 안다. 그것들이 ‘왜‘ 있는지 전혀 모르는 걸까?
어제는 내내, 앞에 인용한 레베카 솔닛의 문장이 떠올랐다. 남자들아, 밤에 돌아다니지 마,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 P118

늦은 밤에 아이를 데리고 걸어가는 길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한이장 할머니는 얼른 본인의 일을 마치고 차를 몰고 태우러 오지 않았는가. 이런 공감, 이런 배려를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볼 수 있고, 어려움이 있다면 도우려고 하시는 분이다 보니 이장 역할도 매우 잘해내실 거라고 믿는다. 이 책의 저자는 그간 이장 뽑는 제도가 잘못됐다고 생각했고 못마땅하다고 여겨서 기권했는데, 그 사이에 누군가는 ‘잘못된 걸 바로잡겠다‘ 는 생각으로 행동에 옮겼다. 이 얼마나 근사한 사람인가! 불평과 불만을 가진 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개선해 나가려고 하다니, 나는이 이장 할머니에게 반해버리고 말았다. - P131

할아버지는 손녀를 어떻게 협박해야 하는지 잘 안다. 이건 우리 둘 다 행복해지는 거라고, 내가 너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러는 거라고 네가 밖에 나가서 이상하게 말해도 아무도 네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말비나 역시 알고 있다. 그래서 기절할지경이 되면서도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심지어 말비나가 어릴때부터 이 부당한 폭력에 노출됐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할머니는 죽어가면서 이 어린 소녀에게 유언까지 한다. 할아버지를 곤란하게 만들지 말아달라고. 이제 남자 친구가 생기고, 자신의 이름이
‘권리‘를 뜻한다는 걸 새삼 되새긴 말비나는 깨닫는다. 할머니가 자신을 사랑한 게 아니었다. 자신이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해서도 안 되었다. 그것이 할머니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되었다. 이것이 착한 아이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는 것을. - P133

내게 일어났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건 아주 오랫동안 나 스스로 나를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의 나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는 내게 일어나는 일이 무언지 분명하게 인지하지 못했고, 그것을 인지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는 내 안의
‘음탕함‘이 싫었다. 내가 싫다고 계속해서 분명히 말했다면, 도망쳤더라면 그 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내가 미적지근하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으므로 그 일이 반복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것은 내 안의 음탕함이 되었다. 어린년이 음탕했다고, 나는 나를 그렇게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볼까 봐 두려워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혹여 어릴 때부터 음탕했다는 말을 듣게 될까 봐 나는 정말로두려웠다.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그 일을 당했다는 것, 그게 어린 나의 음탕함 때문이라는 것, 그게 나를 미치게 했다. 그래서 누르고 눌렀다. - P134

언젠가부터 나는 그 일을 입 밖으로 내기 시작했다. 입 밖으로내면서, 어릴 적에 울지 못했던 것들을 나중에야 울게 되었다. 여러명의 여자들과 함께 모여 이 일에 대해 얘기했을 때 내가 놀란 건, 그 자리에 있던 여자들이 대부분 나랑 비슷한 일을 당했다는 거였다. 그들 대부분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그들이 당한 일을 주변 어른들에게 말했을 때 그들이 들은 대답은 말비나와 내가 들은말과 똑같았다. "네가 예뻐서 그렇지." 그들은 더는 누구에게도 그일을 말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 P134

다른 많은 여성들이 어린 시절 성추행당한 일을 말하지 못하고가슴속에 담아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더 많이 말하기 시작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녀들은 자신이 당한 일을 입 밖으로 꺼내며 울었다. 어린 그들을 만지고 더 심한 행동을 한 사람들은 그 위치도 다양했다. 할아버지, 아빠 친구, 옆집 아저씨, 사촌 오빠 등등.
모두들 그저 말하지 못한 채로 살아왔다. 누가 먼저 말하기 전까지는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한번은 친구에게 나의 속마음까지 얘기했다. 나 스스로 어린 게 음탕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무엇보다 그게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고 그때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친구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음탕하다는 말은 초등학생에게 쓰는 단어가 아니야." 그 말을 들은 나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줄줄 눈물을 흘렸다. 그간 내가 어린 나를 미워하고 원망했다는 게 미안해졌다. 또 언젠가 술을 마시며 친구들 앞에서 얘기했을 때, 그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건 네잘못이 아니야." - P135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어쩌면 아주 많은 사람이 어린 날의 상처를 안고, 그것이 자기잘못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나는 표현하고 드러내고 주변에 좋은 친구가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바깥으로 드러내 말을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같이 울고 화내고 욕하면서 풀어낸덕분에 지금 건강한 생활을 해나간다. 이런 나와는 달리 자신의 상처를 안으로만 삼키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비밀로만 간직한 탓에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여전히 듣지 못한 채 자기 자신만을 원망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건 정말이지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당신은 더 반항할 수 없었고, 당신은 음탕하지 않고,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혹여 이걸 모르는 채로 여전히 세상의 잔인한 소식들에 울며 가슴을칠 사람이 있을까 봐 이 말을 해주기 위해 이 글을 썼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정말 그렇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 P139

아주 갈길이 멀지만 위에 언급한 노르웨이처럼, 사회적으로 아빠가 육아휴직을 받는 분위기를 만들고, 그렇게 육아를 함으로써 나라에서 지원을 받는다면 많은 것이 점차적으로 달라지지 않을까. 이렇게 쓰고 있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그렇게 되기까지 아주 아주 멀다는 걸안다. 멀기만 할까? 실현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그렇지만 누구나 다 아는 아주 기본적인 전제는 아이를 낳기만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나라가 아이를 키우는 데 대체 뭘 얼마나 해준다고 자꾸 아이를 낳으라, 낳으라고 하는가. 가임기 여성 분포도‘ 같은 걸 뿌려대는 나라에 과연 어떤 답이 있을까. 지금 내가 아빠와 엄마가 함께 육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 지점과 가임기 여성 분포도를 뿌려대는 그 지점의 간극은정말이지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먼가. 이건 무슨 우주에 혼자 떨어진 느낌 같은데,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혼자 우주에 남겨진 앤해서웨이의 기분이 이런 걸까. - P1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