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석


2010년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2012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으며, 쓴 책으로는 장편소설 <능력자>, 『풍의 역사』, 『쿨한 여자,  소설집『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
산문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등이 있다. 6·70년대 지방 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의보컬로도 활동 중이다.

나는 한 예술 기관의 지원으로 2014년 가을부터 이듬해 겨울까지 베를린자유대학(Frei Universität)에 머물렀다.
이 90일간 나는 일기를 썼다.
막상 출국을 하니 딱히 할 일이 없었는데, 한 독자가 선물로 준 다이어리가 떠오른 것이다.
하여, 김현 평론가를 흉내내볼 요량으로 그 일기장에 70년대 문인들의 문체를 차용하여 자필로 직접 일기를 썼는데, 하다보니 90일간 계속 써버리게 된 것이다.

일기를 읽기에 이해해야 할 것이 네 가지 있다.

나는 천성부터 게으르다. 고로, 일기는 하루 지난 다음 날 아침(때론, 오후)에 썼다.
옛 문체를 살리기 위해 종종 한자를 썼다.
(물론, 내가 아는 한자이기에 중학생 수준을 넘지 않는다.)출국 한 달 전 자전거를 타다 교통사고를 당했기에, 그에 대한 극복기도 곁들여 있다.
나는 고독했다.

이뿐이다.
그 외에는 그냥 읽으면 된다. - P7

어제 아시아나 비행기에서 32만 몇천 원을 주고 ‘제플린(Zeppelin)‘ 이라는 독일제 시계를 샀는데, 시계 박스를 뜯는 순간 내가 엄청나게 멍청한 짓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비행 내내 내가 저지른호구짓에 속이 쓰려 와, 원래 장염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도 잊었다.

베를린으로 오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프랑크푸르트 공항에내려 ‘의도치 않게‘ 시계점에 들른 후, 내가 저지른 멍청한 짓이 얼마나 한심한 결정이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비슷한 가격, 심지어는 더 값싼 가격의 ‘에비에이터‘ 시계와 ‘아르마니‘ 시계들이 훨씬멋진 자태를 뿜어내며 내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미안해. 나는 이미 호구 짓을 한 번 저질렀단 말이야‘라고 한국어로 변명했다. 과연 프랑크푸르트 공항 면세점에 전시된 미국 시계와 이태리 시계는 발화되지 않은 내 한국어 변명을 들을 수 있었을까. 내 딴에는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하얼빈의 안중근 의사 심정으로 절규했지만 말이다. - P9

밤은 일찍 오고, 그 밤은 길다. 이곳에서의 나의 일상 대부분은 어들이 차지한다. 그렇다 해서 이 일상을 거절할 순 없다.

때로 일상은 살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때로 그 일상이 다시 살고 싶은 대상이 되기도 하기에, 살아내야 하는 오늘을 무시하지 않으려 한다. 소중한 날로 이어지는 다리는 필시 평범한 날이라는 돌로 이뤄져 있을 것이다. 보잘것없는돌 하나를 쌓은 밤이다.

필요한 날이었다.

열네 번째 날이다. - P76

수백 명의 동베를린인이 이 검문을 피하려다 목숨을 잃었다(탈출을 시도한 이는 5천 명가량이고 그중 100~200명 정도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마침 올해가 베를린장벽이 붕괴된 지 25주년이 되는 해였다. 독일은 결혼을 해서도 25주년이 되면 은혼식을 올릴 만큼, 25년이라는 숫자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 탓인지 브란덴부르크 문앞에서는 25주년 특별 영상 같은 것이 상영되고 있었다. 영상 속의동독인은 군인들을 향해 "자유를 달라!"며 목청이 터질 듯 외치고있었고, 한 동독 아주머니는 자식에게 자유가 없는 세상을 물려줄수 없어 아기를 낳지 않고 있다고 울음을 터트렸다. "사회주의는 민주주의가 없이는 불가능하며, 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문구도 스쳐 갔다(독일의 사회주의는 경제적 사회주의를말한다). 그런 화면이 몇 차례 지나가고, 수십만 명의 서독인들과 동독인들이 각자의 경계 내에서 "비폭력"과 "우리는 사람이다!" 라고독일어로 외치며, 장벽을 허물자고 주장하는 시위 영상이 나왔다. - P127

이곳에 온 뒤, 너무 소설가로서의 삶과 동떨어진 일상을 보낸 것같아 고민하던 차, 마침 한강 선배가 독일에 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것은 우연의 결과였는데, 어느 날 내 연구실 책상 위에 누군가가
‘한국 문화원‘의 낭독 행사 팸플릿을 갖다 놓은 것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팸플릿을 보며 ‘아니, 내가 독일에 있는데, 굳이 왜 다른나라에 있는 작가를 여기까지 초청하는 거야?!‘라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팸플릿 자료를 읽자마자 바로 수긍했다.

"Han Kang ist eine reprasentative korenishche Schriftstellerin~"
(한강은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로서 ~ ) - P135

선배는 나를 때릴 듯이 "베를린에 머무르고 있는 거예요? 레지던스?" 하며 단번에 모든 걸 파악했다는 듯이 물었다. 알고 보니 선배는 폴란드의 바르샤바에 레지던스 작가로 와 있다고 했다. 선배는폴란드가 적적한 듯, "베를린에 있어서 좋겠어요. 볼 것도 많고!"
라고 했는데, 나는 몹시 고독한 표정을 지으며 "헤르만 헤세가 졌다고 할 만큼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어서, 의도치 않게 매일 글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오늘도 그런 이유로 낭독회까지 찾아왔다고 하니, 그녀는 문인 선배가 아니라 인생의 선배처럼 "그건 도시의 문제가 아니라, 민석 씨 개인의 문제"라며, 진정 애틋한 눈빛으로 "어서 여자를 만나야 할 텐데.……"라며 지구를 걱정하는 그린피스 대표처럼 애통해했다. 알아요. 알아! 나도 어서 짝을 만나야 할텐데 말이죠. - P136

이 역시 나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태어나서 자발적으로 하루도쉬지 않고 한 달간 일기를 써 본 것은 처음이다. 작가가 되고 나서도 누군가의 부탁이나, 금전적인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한 달간 매일 글을 쓴 것 역시 처음이다. 동백림에 머무는 마지막 날까지 계속써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온전히 쓰고 싶을 때에만 쓰려 한다. 나 역시 나 자신을 실험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수한 전쟁 영화에서 왜 꼭 주인공 포로가 일기를 쓰는지 알 것 같다. 마찬가지로, 독방에 수감된 죄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왜 의외로 연필과 종이를 달라고 하는지도 알겠다. 이곳에 오기 전, 나는 ‘쓴다는 행위‘에 대해 강력한 회의를 품었다. 일종의 무기력한 구호라고 느낀 것이었다. 그것은 주장도, 깨달음의 나눔도, 발견의 확산도 아니었다. 그것은 내게 생존 수단이었고, 노동이었고, 평가의 대상이었고, 비난과 조롱의 발미였다. - P161

그나저나, 함부르크는 독일이면서도 영국 같은 도시였다. 항구도자라는 느낌과 선원들이 이룩한 남성적인 문화, 그리고 비틀스의 탓인 듯했다. 게다가 국제적 명성에 비해 도시가 굉장히 아담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버거에 뼈만 발라낸 날생선을 몸통째넣어 팔고있었다는 것이다. 10여 년 전쯤, 이스탄불에서 고등어 케밥을 먹고그 자리에서 보스포러스 해협에 뱉어 내고 싶었던 마음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기에, 생선 버거는 먹지 않았다. 하지만, 새우 버거는 괜찮았다. 작은 새우(Shrimp) 백여 마리를 버거 안에 무더기로 넣고 마요네즈를 뿌려서 팔았는데, 경보는 "우와, 형, 이거 맛있어요. 우와.
정말 맛있어요. 하하. 민망하네요. 많이 먹어서" 하며 내게도 한 입권했다. 나는 경보에게 진로를 요리사로 바꿔 볼 것을 조심스레 권했다. - P196

개인은 실로 다양하고 모두 제각각이다. 하지만, 국적은 개인에대해 일정 부분 정도는 설명해 준다. 물론, 일정 부분 이상의 해석은 예의에 어긋난다. 어제 두 달째 독일어 수업을 수강하며 깨달은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건 독일어가 아니라 스페인어를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수강생 전원이 스페인어를 했다.

일본어와 이태리어를 배울 때에도 느꼈는데, 영어를 제대로 하지못하는 사람에게 일본어와 이태리어를 쓸 기회는 오지 않는다(물론,
개인의 유흥이나, 현지에서의 삶을 위해서는 필요하다). 즉, 외국어 학습에도 순서가 있는 셈이다. - P250

말하자면,
영어 → 스페인어 불어, 독어→ 일본어, 이태리어....… 스와힐리어, 와 같은 순이다(중국어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제외시켰다).

사실 나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반아어를 두 달 정도 배웠지만, 금세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이태리어와 독일어를 배우면서 깨달았다.

이 노력이면 차라리 다시 스페인어를 배워야 한다는걸. 게다가 스페인어는 쓸모 있다(물론, 가장 필요한 것은 영어지만, ‘노력 대비 가용성‘을 말하는 것이다). - P251

살면서 여러 번 느꼈지만 영어를 전혀 못 하면 인생의 범위는 60억분의 5천만, 즉 120분의 1로 줄어든다. 달리 말해 전 세계의 범위가1 이라면, 인생을 살며 분노를 느끼든, 좌절을 겪든, 정부에 불만이쌓이든, 혹은 주머니에 돈이 쌓이든 간에 상관없이, 그저 120분의1의 세계에만 머물러야 한다. 하지만 영어를 그럭저럭 구사하면 자신이 머무를 수 있는 세계의 범위는 2분의 1로 확장된다. 스페인어까지 하면 5분의 3, 그 외 불어, 독어, 이태리어까지 하면 자기 세계의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지는 셈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삶은 고단한이방인의 삶이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애석하지만 이것이 현실이기에, 다시 영어와 스페인어를 공부해 볼까 생각 중이다. 그다음에 어중간하게 끝내 버린 일본어를 다시 해 볼까 싶다. 프랑스엔 별 관심이 없 - P251

으니 통과하고, 이태리어와 독어는 양국에겐 미안하지만) 그다음이냉정히 말하자면, 그만큼 쓸 일이 없는 것이다).

두 번째 일기장을 다 썼다.

아, 오늘 40분 동안 수정해야 할 시나리오의 50%를 끝냈다.

역시 글은 마음으로 쓰는 것이다(사실 소설은 몸으로 쓰는 것이다. 그것은 조사 하나, 수식어 하나 세밀하게 선정해야 하기에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시나리오는 생각한 바를 그대로 옮겨 적으면 되기에 사실 마음으로 쓰는 시간이 훨씬 길다. 물론, 내 경우에 말이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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