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평전 :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송하선 지음 / 푸른사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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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문득 

얼굴을 스쳐가는 바람결에서

떠나버린 이의 서늘한 기운을 느낍니다.

엊그제 아니라, 오래 전에 떠나버린 이가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의 향기로 지나갑니다.

향기로운 이별, 아슴아슴한 자취의 기억,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일지라도 그 추억이 살게 합니다.

그대도 그런 하루를 사셨는지요.

무탈, 하신지요. 

바람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그대여, 늘 강건하십시오

 

 

2011, 일월의 편지를 끝으로 그럭저럭 4 년을 몸담은 그 곳을 떠나왔습니다.

그 곳에서 시간,

좋은 일, 좋은 사람, 좋은 기억이 나쁜 어떤 것들 보다 많았습니다.

그러면 됐다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제 안의 셈법은 계산합니다. ^^

 

전 떠나왔어도

그 곳 화장실 한쪽엔 저 시가 붙어 있을 겁니다.

저였는지

시였는지

둘 다였는지를

좋아한 몇, 몇의 마음을 차마 모른 척 할 수는 없어서

봄까지는 몇 편을 준비해 주고 떠나왔지요.

남은 이들이나 잠시 그곳에 머무는 이들을 위해서 했다고 생각했는데

가라앉고 싶은 어떤 날에도

누추한 삶이 부끄러운 어떤 날에도

그 곳을 지키고 있을 시 한 편 생각에

정작 제 자신이 넉넉해지고 뿌듯해집니다.

뭔가 소용되는 일 한가지는 한 듯

제게 위로가 되어주는 것이지요.

여러모로 시는 제게

보잘 것 없는 삶을 빛나게 해줍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

 

그대는 어찌 지내시는지?

무탈... 하시지요.

그러리라, 반드시 그러리라 믿습니다.

2011, 2, 27,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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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8
박남준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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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편지

              박남준


밤새 더듬더듬 엎드려

어쩌면 그렇게도 곱게 썼을까

아장아장 걸어 나온

아침 아기 이파리

우표도 붙이지 않고

나무들이 띄운

연둣빛 봄 편지


               시집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중에서

               박남준 시인은 1957년 전남 법성포에서 태어났다.

               1984년 시 전문지 [시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풀여치의 노래],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적막]이

              산문집으로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 [꽃이 진다 꽃이 핀다],

               [박남준 산방 일기]등이 있다.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쏟아지고 있네요.

어제가 되어버린 29일,

얼마 전까지 매일 지나다니며 눈맞추던 길을

핑크빛 스쿠터 '바람'이를 타고 달려보았지요.

와우~ 선물처럼 꽃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그 꽃잎들 빗물에 흘러가고 있겠네요.

 

사진 속 매화는 작년 것인데요.

올해는 행여나 행여나,

두 번이나 걸음했는데

'방화수류정' 밑 용연에 물 올라올 버드나무 대신 포크레인께서

떡 하니 앉아 계시는 걸 보고 매화도 포기하고 말았답니다.

자귀나무 필 때까지는 그가 거기,

물오리 대신 있지 않기를 바라는데 모를 일이지요.

이렇게 사월이 가버리고 있는 것처럼 모를 일이지요.

 

[그녀의 프로필] 속의 가게로 복귀한 지가 석 달이 지났습니다.

남의 가게인 듯 영 어색했는데 닦고 쓸고,

정리하고 정리하고 했더니 이제 겨우 자리가 잡혀가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편지를 시작 할 생각이 드네요.

오가는 버스 안에서 읽은 [봄 편지]의 여운이 길어서...

오월의 편지는 쓰게 되겠지요. 

 

그대, 잘 지내셨는지요.

보고 싶다는 말 대신에 게으른 안부를 묻습니다.

비가 그친 걸까요?

세상이 고요합니다.

그대의 꿈길도 그러하기를.

2011, 4, 30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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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石詩全集
백석 지음, 이동순 엮음 / 창비 / 198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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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 羅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 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

  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

  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섰다가 쉬

  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三 千 浦

 

졸레졸레 도야지새끼들이 간다

귀밑이 재릿재릿하니 볕이 담복 따사로운 거리다

 

잿더미에 까치 오르고 아이 오르고 아지랑이 오르고

 

해바라기 하기 좋을 볏곡간 마당에

볏짚같이 누우란 사람들이 물러서서

어늬 눈오신 날 눈을 츠고 생긴 듯한 말다툼소리도 누우라니

  

소는 기르메 지고 조은다

 

아 모도들 따사로히 가난하니

 

 

  

바 다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는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눌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故 鄕

  

나는 北關에 혼자 앓어 누어서

어늬 아침 醫員을 뵈이었다

醫員은 如來 같은 상을 하고 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넷적 어늬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드니

문득 물어 故鄕이 어데냐한다

平安道 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氏  故鄕이란다

그러면 아무개氏ㄹ 아느냐 한즉 

醫員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醫員은 또 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어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故鄕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같은 넥타

  이를 매고 고흔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

  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늬 가

  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꼬 들려오는 탓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탸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燒酒를 마신다

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밤아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

  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

      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

      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陶淵明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리하듯이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

  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

  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白石詩全集( 창비, 이동순編) 중에서 

 

 

 

 

 

백석을 만나다

 

                    손세실리아

  

아이에게 용돈 주는 날이면

천 원 짜리 몇 장 달랑 건네기가 뭣해서

오래된 시집 속 시편들을

덕담처럼 얹어주곤 하는데

순전히 나 좋자고 하는 일에

번번이 억지 춘향 노릇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엊그제, 서랍 정리를 하다가

일 없이 방바닥을 배회하는 티끌거미를 보았다

무얼 삼켜 소화시키고 배설하는 기관이

저것들에게도 과연 있을까 싶을 만큼의

가늘고 여린 적색 몸통을 엄지로 뭉개려는 찰나,

아이가 막아서며 불쑥 한마디 한다

 "이 놈에게도 새끼나 누이가 있겠지요?"

구어체로 된 문장을 따분해하던 녀석에게

수라修羅를 들려준 지 반년도 더 지났는데

기억장치에 단단히 저장된 모양이다

  

거미를 문 밖으로 내몰고 와

서랍장을 훌렁 뒤집어 먼지를 터는데

갈라진 합판 밑바닥에

쌀겨만한 거미 알이 촘촘 슬어

저희끼리 똘똘 어깨 곁고 있지 않은가

필시 멀리 도망치지도 못하고 문틈 엿보며

강추위에 덜덜 떨고 있을 엄마 거미 곁으로

고치 같은 거미줄을 거두어 내놓고 돌아서다가

형형한 눈빛의 한 시인과 마주쳤다

  

                                          기차를 놓치다 (애지) 중에서  

 

 

노골노골 피곤한 데도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문득

그를 읽고 싶어진다

읽다보면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잠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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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리 시편 - 심호택 유고시집
심호택 지음 / 창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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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새

 

                심호택

 

 

쌀 떨어진 딸네 집

양식 물어다 주고

쉬엄쉬엄 돌아가는 길인가

우리 할머니

부엌 창문 콕콕 두드리다

알은체해주니 오히려 날아간다

레덤불 속인지

외딴 절인지

간 곳은 알 수 없어도

까마종이 두 알

글썽한 눈매

남기고 가셨다

 

                     

 

 

 

 

물봉선이

 

 

 

싸가지 없는 아무개놈

속으로 욕하며 걷는 산길

바보여뀌 널려 있고

물봉선이 피어 있네

나밖에 볼 사람도 없는

시월이면 지고 말걸

빨간 물봉선이는, 아니

보라색 물봉선이는 뭐하러

저리도 곱게 피어 있나

여뀌는 또 무엇이 즐거워

저리도 깨가 쏟아지나

 

 

 

 

 

겨울 편지

 

 

 

아픈 건 그럭저럭 나았소

올해도 김장 몇포기 담갔소

 

사랑이여

당신이 사준 고동색 파카는

시골집 수도펌프가 입게 되었소

 

 

 

 

 

장화

 

 

 

형은 장화를 샀을까

물건이 떨어진 것은 아닐까

두 짝 모두 챙겼을까

 

낮 한시를 못 기다려 

십리 밖 옥구역에 마중 갔으나

군산에서 기차가 오고

형도 왔건만 보따리 속에는

장화가 없었다

 

눈도 눈도 많이는 와서

세상이 발 시린 날들뿐일 것만 같던

내 생애의 몇번째 겨울이었나

 

장화를 신고 산꿩마냥

눈밭을 헤집고 쏘다니고 싶었던

내 어린 꿈이 그 거뭇한

철둑길에 주저앉던 그날은

 

 

 

                      유고시집 [원수리 시편] 중에서(창비)

                     

                      심호택 시인은 1947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91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빈자의 개] 등

                      8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하늘밥도둑] [최대의 풍경] [미주리의 봄]

                      [자몽의 추억]이 있다.

                      원광대 불문과 교수를 지냈으며

                      2010년 1월 교통사고로 타계했다.

 

 

그의 시는 어쩐지 아리다

그의 부재 탓일까

왜 부재중인 시인들의 시는 가슴에 담기는 건지.......

'아픈 건 그럭저럭 나았소'

하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 밤이다

그의 시집은 가끔

가끔

읽고 싶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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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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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결코 익숙해 질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따돌림과 고의적 시비를

 무시하는 일, 몰매를 맞으면서도 대항하지 않는 일, 침묵 속을 걷는 일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교실을 나오는 동안 내 몸은 새파란 화염에 휩싸여 있

 었다. 차갑고도 끈질긴 불길이었다.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교문을 통과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동네 편의점에 다다를 때까지, 쉼없이 나를 태웠다."

 

   "나는 카메라플래시를 받으며 서 있었던 열두 살 이래로 허둥댄 적이

 없다. 소년분류심사원에 다녀온 후부턴 분노하지도 않는다. 누군가 호감

 을 표해와도 관계에 대한 기대를 품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다. 안다. 놀라면 허둥대야 정상이다. 모욕당하면 분노 하는

 게 건강한 반응이다, 호감을 받으면 돌려 주는게 인간적 도리다. 내 또래

 아이들은 대부분 그렇게 산다. 아저씨는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

 다. 나는 그 문장에서 '그렇게'를 떼어내라고 대꾸한다.

  나도 살아야 한다, 그러러면 당황하고, 분노하고, 수치심을 느끼고 누군

 가에게 곁을 내줘서는 안된다. 거지처럼 문간에 서서, 몇 시간씩 기다려서

 라도 일한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세상을 사는 나의 힘이다.

 아니, 자살하지 않는 비결이다."

 

  그렇게 어떤 문장들은 새겨지고 있었다.

  정유정의 "7년의 밤" 이다.

  오랜만이다.

  얼마만일까?

  읽던 책을 덮지 못해서 밤을 새운 일이.......

  500페이지도 넘는 짧지 않은 분량의 소설이 나를 놓아 주지 않았다.

  재미있다.

  그리고 엄청난 몰입이다.

  책을 덮고도 오래 세령호의 물 소리를 듣고 있는 듯하다.

  어느 사이 소설 읽기 좋은 가을 인 것이다.

  단단한 작가를 새로이 만났다.

  '정유정 '

  덕분에 졸리운 밤,

  자야겠다.

  꿈도 없이 깊이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어디선가의 당신도 그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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