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과 만남
구본형 지음, 윤광준 사진 / 을유문화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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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과 만남



  구본형의 산문집, 이 책을 참 좋아한다. 그 책 속의 길을 따라서 남도의 많은 길들을 달팽이처럼 걸었고 팔영산, 천관산들을 따라 올라보았다. 그처럼 한 달간 이어지는 일정을  취하지는 못했지만 구간별로 끊어서 구석구석 그와 같게, 혹은 다르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낙안읍성에서는 책 속의 내용처럼 액자로 걸린 봄 풍경을 넋을 빼고 오래 바라보았던가. 깃발 나부끼는 성루에 앉아 푸르른 보리밭을 바라보며 엽서를 쓰던 몇  해전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선명해진다. 바닷물결처럼 넘실대던 청청한 보리밭....... 여전히 선물하기를 즐기지만 책 속처럼 여행하기를 멈춰버린 요즈음, 그 책을 읽으며 여행적금이라도 부어야겠다는 지인의 문자를 받고 갑자기 아주 오래전, 그 책을 만나기 이전에 다녀온 홍도가 불쑥 그립다.

 

  오래 시내에서만 맴돌던 후배랑 여행사 팩키지 상품으로 떠났던 여행. (그때 계속 특집기사로 실리던 홍도, 흑산도 여행 홍보는 두어 번 기회를 놓친 내게는 대단히 유혹적이었다.) 결국 저지르게 만든 계기는 ‘언제 여행 한번 같이 가자’를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우리 두 사람이 스케쥴을 조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휴일이면 쉬는 일을 하는 그 친구와 휴일이면 더 바쁜 내가 같이 움직일 시간을 확보한 것으로 어디로든 떠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휴일에 대한 모독이었으니....... 여행이라고는 수학여행이 전부인 후배는 얼마나 흥분하고 기대를 하던지 재미없을까 잔뜩 긴장한 쪽은 오히려 나였다. 목포까지 기차로, 다시 페리호로 여행의 요소를 고루 갖춘 매력적인 코스임이 분명했지만 바다는 그리 호락호락하게 뭍사람의 상륙을 허락하지 않았다. 미리 멀미약을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배 얼굴은 말라가는 탱자빛깔이었다. 홍도를 먼저 가려던 계획이 흑산도로 변경될 만큼 바다의 사정은 좋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거나 예리항은 섬 분위기 물씬했고 눅진하고 습한 바람을 타고 유람선으로 돌아본 흑산도의 해무는 그 속으로 떨어져 내리고 싶을 만큼 유혹적인 몽환이었다. 무진의 안개가 이렇겠다고 자연스럽게 연상했다.

  지금은 많이 돌아왔다는 홍어는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다행이다로 위안삼고 (-_-;; 어쩔 것이냐. 엄두도 못내게 비싼 것을....) 가리비에 기울인 보해소주와 함께 흑산도의 하룻밤은 무기력하게 지나갔다. 일정조절로 자산어보의 바다를 예리항 부근에서 어슬렁거리는 걸로 그치고 만 것이다. 아마도 다시는 하게 될 것 같지 않은 팩키지 여행, 정작 자유롭고 싶을 때는 자유시간이 없고 무료할 때는 널널한 자유시간에다가 숙소배정에 걸리는 시간들은 성질 더러운 우리를 기함시키기 충분했다.

  그리고 홍도....... 구본형은 구멍섬이라 칭했던가, 원추리 꽃으로 치장한 섬의 부두는 시멘트 덩어리였지만 물빛은 가을이었다. 바다가 가장 아름다운 색깔을 보여준다는 가을 물빛........ 사실 전형적인 뭍사람인 나는 그 색감 차이를 모른다. 설명에 그저 그런갑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중에 홀로 아는 척 써먹을 뿐이다. 혹자는 이런 잘난 척에 넘어가서 참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니 성공한 셈인가. ((_ _) 아차차~~~ 또 곁길로 샜다.)

  홍도는 아주 먼 바다에 있는 섬이었고, 섬에 있다는 것으로 우리는 묘한 고립감과 동시에 더 끈끈한 유대감에 그동안의 세월 십여 년보다 단 하루에 더욱 친밀한 느낌이 들었다. 입에서 살살 녹는 바닷장어 아나고 구이는 그동안 무진장 비웠던 진로, 빨간 뚜껑과 달리 우리 입맛에는 좀 달큼한 느낌이 남는 보해를 몇 병씩 비우게 만들었다. (그때 보해소주, 보드카처럼 투명한 케이스였던 술 이름을 모르겠다. 지금은 잎새인 것이 확실한데. -_-;; 지금의 진로가 참이슬로 대표되듯이 그때는 빨간 뚜껑에 새겨진 두꺼비가 그랬다.

  우리가 같이 회사를 다닌 몇 해동안 잡아먹은 두꺼비 숫자를 모으면 그럴듯한 집 한 칸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란 썰렁한 농담을 둘은 요즘도 주고받는다. 사실 술값보다 안주 값이 더 대단했을 것인데. 아, 안주 없다면 술은 대체 무슨 맛일까? 지독하도록 쓰기만 할 것이다. 왜 그리 술맛 땡기게 하는 사건, 사고가 많던 이십대였는지....... 날마다 비분강개로 날 새는 줄 모르던 그때의 젊음이 그리운 시절이 올까? 아직은 아니다. 이십대는 너무 추레하고도 비통에 찬 나날이었다는 생각에서 아직 자유롭지 않다. 다 버리고, 다 털고 나면 정말 철이 들었다 할 수 있을지 모른다. ㅋㅋ~)

  짠바람이 코를 간질이는 바다를 지척에 두고 마시는 탓일까? 술이 들어갈수록 더욱 명료한 의식은 그립지도 않았던 그리운 것들을 불러 세우기에 더할 나위없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쓸데없이 처연해져서 오래전에 공염불이 되어버린 버린 옛사람과 바다에 같이 가자던 약속 따위가 다 떠올랐다. 달랑 전철 삯으로 수원에서 구로, 구로에서 인천행 전철로 갈아타고 물어물어 찾아간 월미도....... 그 화려한 곳을 아무 곳에도 들어가지 못 하고 찬 바람 속에 떠있는 거대한 군함을 보면서 훗날을 기약했던가. (몸보다 마음이 더 추웠던 시절, 한 곳으로만 흘러가는 마음을 방치해두면 얼마나 적막한 곳까지 흘러가버리는 것일까?) 하필이면 둘의 숙소로 배정받은 곳은 터무니없게도 단체용, 삼사십 명은 거뜬히 자겠다싶은 휑한 방에서 전화 통화 중에 잠들어버린 후배 곁에 이불을 펴고 누워있자니 한데나 다름없이 바람이 불어댔다. 덜컹덜컹 창문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이 후두둑 비까지 몰고 오는 듯 하더니 이윽고 파도소리까지 데불고 나타났다. 처음엔 이러다 여기 고립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이내 밤바다가 무서움보다는 유혹으로 불렀다. 습기를 잔뜩 담은 눅눅한 바람이 우엉우엉 울어대는 포구에는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었고 빠르게 구름이 몰려가는 하늘바다에 빼곡하던 별....... (별에서도 바다 냄새가 났다고 쓰는 순간, 문장은 얼마나 가식적이 되고 마는가!) 

  홍도를 생각할 때마다 이러저러한 다른 설명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떠오르는 것은 방파제 끝에서 몇 시간이고 나를 사로잡던 별이 가득한 밤바다와 해상관광 중에 배에서 먹은, 어부가 직접 떠준 착착 감기던 막회 맛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김건모의 미련........ 혼자 방파제를 걷던 그 밤 함께 있어준 노래. 홍도를 생각하면 미련의 멜로디가 떠오르는지 미련을 들으면 홍도가 기억나는지 잘 모르겠다.  

  바람이 뒤숭숭하게 불어대던 오늘 하루, 귀에 감겨오는 미련을 듣는다. 피아노 건반으로 파도소리도 따라 나온다. (그 시절은 잠이 많질 않았는데 이제는 졸립다. 어쩔 수없이 나이 탓인가. 졸려서 감기는 눈으로 쓰고있다. 빨리 마치고 싶다. -_-;;)

  돌아오는 길에서부터 후배랑 꼭 같이 가기로 한 제주는 벌써 몇 년째 유보 상태다. 아직 비행기도 못타봤다는 푸념도 여전히 유효한 불쌍한 친구^^* (여전히 홍도 이야기를 시작하면 눈을 반짝이면서 너무 좋았다고 입맛을 다신다.) 이제는 둘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게 다닐 수 있는 여행 노하우가 생겼는데 언제쯤 그 약속을 이행할 수 있을까? 꼭 지키고 싶은데.......

  그러나 무수하게 남발하는 약속들 속에 마음과 달리 지키지 못한 약속이 어디 그뿐이랴. 내일 하루치의 삶을 위해 에라 잠이나 자야겠다.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있다면, 건강하게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면, 지킬 수 없는 약속도 없을 것이니 지금은 그저 마음으로 떠남과 만남을 반복한다.


 

 2005. 3. 7.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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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 제3의 詩 6
강연호 지음 / 문학세계사 / 199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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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식月蝕 

                     강 연 호

오랜 세월 헤매 다녔지요
세상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그대 찾아
부르튼 생애가 그믐인 듯 저물었지요
누가 그대 가려 놓았는지 야속해서
허구한 날 투정만 늘었답니다
상처는 늘 혼자 처매어야 했기에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흐느낌
내가 우는 울음인 줄 알았구요

어찌 짐작이나 했겠어요
그대 가린 건 바로 내 그림자였다니요
그대 언제나 내 뒤에서 울고 있었다니요
 

                 시집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중에서
                 시인은 1962년 대전 출생. 1991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비단길],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있다]가 있음. 

                 [현대시 동인상] 수상

 

그리 오래,
그리 간절히 찾아 헤맨 당신,
'어찌 짐작이나 했겠어요
그대 가린 건 바로 내 그림자였다니요
그대 언제나 내 뒤에서 울고 있었다니요’

.
.
.

이제 한해를 정리해야하는 피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가끔은 한번,
뒤를 돌아보며 속삭여주세요.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그대에게 간절한 그대가 아득히 먼 곳이 아니라
바로 등 뒤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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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저쪽 - 미학신서 2
오세영 / 미학사 / 199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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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오세영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
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 없이 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
안쓰러 마라.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안히 밝아 오는 어둠 속으로
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때,
눈 떠라,
절망의 그 빛나는 눈.

                  시집 [사랑의 저쪽] 중에서
                  시인은 1942년 전남 영광 출생. 1968년『현대문학』으로등단.             

                  시집으로 [반란하는 빛]『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무명연시』            

                 『불타는 물』 『사랑의 저쪽』 『신의 하늘에도 어둠은 있다』              
                 『반란하는 빛』 『벼랑의 꿈』 『적멸의 불빛』 『봄은 전쟁처럼] 『

                 시간의 쪽배』 『문 열어라 하늘아』 『임을 부르는 물소리 그물소리』
                『바람의 그림자』등이 있고
                  평론집으로 『한국 낭만주의 시 연구』 『한국현대시의 행방』
               『상상력과 논리』 『한국 근대문학론과 근대시』『김소월, 그 삶과문학』

               『시적 상상력과 언어』『한국 현대시인 연구』 『우상의 눈물』 등이 있음.
                한국시인협회상, 녹원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2010년이 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한 해는 어떠했는지요.
당신이 살아온 생애의 어느 날들처럼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갔기를 바래봅니다.
올 한해도 함께해주고

믿음으로 지켜보아주어서

늘 고마운 당신,

사랑합니다.

남은 날들 마무리 잘하시기를.

부디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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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위로 - 개정판
이해인 지음 / 열림원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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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새 아침   
                     이해인 
 

새해의 시작도 

새 하루부터 시작됩니다. 
 

 

시작을 잘 해야만 

빛나게 될 삶을 위해
겸손히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아침이여 
 

 

어서 
희망의 문을 열고
들어오십시오 
 

 

사철 내내 변치 않는
소나무빛 옷을 입고
기다리면서 기다리면서
우리를 키워온 희망

힘들어도 웃으라고
잊을 것은 깨끗이 잊어버리고
어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희망은 자꾸만 우리를 재촉하네요

어서 
기쁨의 문을 열고
들어오십시오

오늘은 배추밭에 앉아
차곡차곡 시간을 포개는 기쁨
흙냄새 가득한
싱싱한 목소리로
우리를 부르네요

땅에 충실해야 기쁨이 온다고
기쁨으로 만들 숨은 싹을 찾아서
잘 키워야만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조용조용 일러주네요

어서
사랑의 문을 열고
들어오십시오

언제나
하얀 소금밭에 엎드려
가끔은 울면서
불을 쪼이는 사랑

사랑에 대해
말만 무성했던 날들이 부끄러워
울고 싶은 우리에게
소금들이 통통 튀며 말하네요

사랑이란 이름으로
여기저기 팽개쳐진 상처들을
하얀 붕대로 싸매주라고 

 

새롭게 주어진 시간 
만나는 사람들을
한결같은 따듯함으로 대하면
그것이 사랑의 시작이라고-
눈부신 소금꽃이 말을 하네요

 

시작을 잘해야만  

빛나게 될 삶을 위해
설레이는 첫 감사로 문을 여는 아침
천년의 기다림이 비로소 시작되는
하늘빛 은총의 아침
서로가 복을 빌어주는 동안에도
이미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새해 새 아침이여

                                   시집 [작은 위로]중에서

 

이천십일 년, 삼백육십오일 날마다 날마다

새해, 새아침으로 새로이 시작하십시오.

어제는 이미 지나간 오늘,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오늘,

바로 지금,

오늘......

날마다 오늘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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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
공선옥 지음 / 뿔(웅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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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영란과 익명의 영란

                         

                                       공선옥의 소설 [영란 (뿔, 2010)]을 읽고

   

   

  목포에 가본 적이 있던가. 없다.

  아니, 있다. 홍도에 가느라 거쳐 갔고, 제주를 배를 타고 갈 때, 완도를 가느라, 해남을 가느라, 진도를 가느라 거쳤던 곳인데 정작 목포에 머문 시간들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가본 적이 없는 게 맞다. 내게 목포는 그런 곳이다. 익숙하고 친숙해서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제대로 아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는 것을 ‘영란’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런 목포처럼 내 친구 영란이도 그렇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책을 덮으며 문득했다. 영란이란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슬픔의 사람’인 친구의 ‘슬픔’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 것인지 ‘슬픔’을 돌보 적이나 있었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책, 익명성 속의 ‘영란’은 그 책을 덮을 때의 묵직함만큼이나 듬직해졌다. 무게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무겁고, 슬픔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슬프고, 눈물이 나지 않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공선옥, 처음 만난 서른 언저리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이후,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작품에 따라 기대치가 높아졌다가 낮아졌다가를 반복하여도 새로운 책을 써내면 은근 기대하면서 사게 되는 작가가 몇 있는데 그중 포함되어있다. 일테면 [유랑 가족]은 좋았는데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2%쯤 부족했다. 사건을 많이 벌려놓고 마무리에 쫓기는 드라마들처럼 끝이 조급했다. 산문집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속의 진솔한 글이 좋은데 [수수밭으로 오세요]는 너무 억지스러웠다. 그래도 첫 소설집[피어라 수선화]의 넘치는 생기와, [마흔에 길을 나서다]의 다양한 밑바닥 이웃들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이고, 신산한 삶을 꾸려가는 여인들의 이야기가 미사여구 없이 날 것으로 살아있는 그녀만의 글을 좋아한다.

  첫 작품부터 일관되게 끌고 가는 가족, 다양한 작품 속에 어떤 식으로 조합된 가족이든지 그 안에서 좌충우돌, 해피엔딩을 꿈꾸는 우리 이웃들의 소박한 소망을 모성으로 생생하게 담아 놓는 그녀에게 감탄한다.

   

 

  ‘영란’은 슬픔과 사랑의 이야기다.

  ‘나’의 옛집과 그 집에 피어나던 장미와 그 장미 그늘 아래서 사랑을 나누고 살던 ‘나’가 사고로 아들을 잃고 그 여파로 남편을 잃고 빵과 막걸리로 하루하루를 버티다 말조차도 잃어가던 어느 날, 남편 선배의 친구이자 소설가인 정섭을 만난다. 갑작스런 친구의 부음을 전해들은 그는 홀로 남겨두면 위태로울 ‘나’를 데리고 목포로 간다. 그리고 둘은 헤어져 버린다. ‘나’는 무심결에 따라 들어간 목포의 ‘영란여관’, 그곳에서 ‘나’는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수옥이와 한 때의 사랑의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할머니, ‘나’를 보며 가슴이 두근대는 ‘완규’를 만나 ‘영란’으로 살아간다. ‘영란’으로 살면서 다시 부활하는 가족, 아니 식구라는 표현이 맞겠다. 작가에게 훈훈한 가족은 밥상을 같이 나누는 ‘식구(食口)’일 것이다. 어려울 때 더운 찌개 냄비에 서로 숟가락을 담그며 나눠먹는 밥이거나 술의 뜨거움이 목을 타고 내려갈 때 설움도 따라 내려가면서 위장을 따뜻하게 해주리라.  그 희망을 어렸을 때 먹어본 ‘병어찜’ 한 냄비로 받아들었다. 내 친구 영란이도, 익명의 영란이도 그 밥상에 함께였으면 좋겠다. 맛있겠다. 

   

 

  책을 펴면 앞에 있든 뒤에 있든 ‘작가의 말’을 처음 읽는다.

  “나는 ‘지금 슬픈 사람’들이 자신의 슬픔을 내치지 않기를 바란다. 외면하지 말기를 바란다. 슬픔을 방치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는 슬픔을 돌볼 시간이다. 내 글의 독자들이 슬픔을 돌보는 동안 더 깊고 더 따스하고 더 고운 마음의 눈을 얻게 된다면, 그리하여 더욱 아름답고 더욱 굳건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슬픔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쓴 사람으로서, 많이 기쁠 것이다.”

   

 

  또 언제부터인지 슬그머니 생긴 버릇이 책을 읽다가 밑줄을 긋게 된다. 아마도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폈는데 여린 연필로 그어진 밑줄이 그 책을 읽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의 흔적으로 읽혀 반가웠고, 다시 새로운 감동의 파장을 전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고가는 말들은 거침이 없이 활달하다. 그 여자를 생각했다. 실은 이곳에 오는 내내 그 여자 생각만 났다. 한마디 하는데도 남아 있는 에너지를 총동원해서 겨우겨우 입을 열긴 열지만 그렇게 힘들여서 하는 말들이, 곧잘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말이 되어 버리곤 했던 여자. 그런 여자가 이렇게 거침없고 활달한 말씨를 쓰는 사람들 곁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데도 자꾸만 자꾸만 그 여자가 아직 이곳 목포에 있는 것만 같다.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어, 먼 데 시선을 두고 정처 없이 항구의 낯선 거리를 배회하고 있을 것만 같다. 한 ‘슬픔의 사람’이 지금 어디선가 울고 있을 것만 같다. 그 여자 때문이 아니라, 그 여자의 슬픔 때문에 정섭은 지금 울고 싶다. 한 여자의 슬픔이 그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차박차박 걸어와 나를 좀 도와주세요,라고 노크했다는 것을 정섭은 이제야 깨닫고 화들짝 놀란다. 미안하고 부끄럽고 속상해서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다. 이곳에서의 여정은 어쩌면 그 여자, 한상준의 아내를 찾는 여정이 될지도 모른다. 그 여자를 찾으면 우선 신발부터 사 신기고 싶다고 정섭은 생각한다. 석 달 전, 그 여자와 함께 목포에 오던 날, 그 여자가 신고 있던 빨간 비닐 슬리퍼가 정섭의 가슴을 아프게 찌른다.] p93

   

 

  [사람들은 큰 산에 오르든, 작은 산에 오르든, 언제나 꼭대기까지 오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정섭도 오직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산을 오른 적이 있었다. 어떤 한 가지 목적만을 목표로 삼게 되면 목표 이외의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들리지 않고 소홀하게 된다는 것을 정섭은 예전에 알지 못했다. 표지판에 씌어 있는 소요정이 그 소요(逍遙)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 인생에서 목표를 향해 ‘돌진’ 하는 시간 외에 아무 목표도 없이 그저 ‘소요’ 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목포에서의 소요가 찢긴 내 삶에 새살을 돋게 할 수 있을까.] p104

    

 

  [이쪽 사람들이 위쪽 사람들보다 훨씬 개방적인 품성인 것 같았다. 윗사람한테 존대어를 쓰지 않는 게, 예의가 없다기보다 내가 당신에게 내 마음을 주고 싶다는 의미로 느껴지는 것은 그 개방적이고 정다운 태도 때문일 것이었다. 그런데, 또 특이한 것은 윗사람한테나, 아랫사람한테나, 공히 자네라는 호칭을 쓴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것은 공통적으로 상대를 높이는 호칭이라는 것도 정섭은 처음 알았다. 호준이나 호준의 친구 영대가 형 친구인 정섭에게 어이, 자네는 왜그런가,라고 했을 때도 그것은 전혀 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예의를 갖춘 정다운 태도인 것이다. 똑같은 말을 아랫사람한테 했을 대도 그렇다는 것이다. 처음에 그것을 이해 못해 호준이나 영대가 자신에게 어이, 자네,라고 했을 때, 기분이 상한다기보다 좀 어이가 없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목포 사람들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대화법을 깨친 이후로는 자신한테서도 이따금 자네,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존칭은 아니지만 예의를 갖춘 정다운 호칭, 자네.] p124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했던 ‘자네’ 이 호칭 때문에 곤욕을 치룬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그래서 잃어버리고 산, 존칭은 아니지만 예의를 갖춘 정다운 호칭, 자네.

   

 

  [그녀의 힘겨움을 덜어주거나 이해해주지 못해서가 아니라, 예의를 갖춘 이별을 하지 못해서였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뒤늦었지만, 정중한 이별의 말을 할 수 있는 때가 올까. 그러나 그런 순간이 온대 해도 그때 하는 이별의 인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또 한 사람, 황망한 이별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던 그 여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 여자를 연민하는 것으로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을 덜려는 수작인가. 그러나, 그저 아팠다. 자신이 아프니, 다른 이의 아픔이 비로소 아프게 다가왔다. 단지 그뿐이었다. 내 살이 아리니 다른 이가 아려하는 것도 눈에 보였다. 위로받고 위로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저 아파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내 아픔이 타인의 아픔에 조응하는 이 낯선 경험이 그러나 정섭은 위로가 되었다. 위로를 바란 것도 아닌데, 그녀를 생각하며 아파하고 있는 순간에 제 가슴속 통증 위로 도포되는 어떤 안식의 약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면, 그때에야 아주 오래전, 남루한 현실 속에서도 싱그럽고 빛나던 한때들을 편한 마음으로 떠올릴 수 있었다.] p129

  이런 시절도 있었다. 날마다 날마다 아프다고, 죽을 것 같다고 엄살을 매달고 살던 이십 대 후반 덜컥, 다치고 나서야, 치명적으로 아프고 나서야, 다른 이의 아픔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로소 생에게 겸손해졌다.

   

 

  [세상을 살면서 아무도 누군가를 아프게 할 권리는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누구에게도 누군가를 아프게 할 권리가 없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기는 하지만, 누구나 누군가의 아픔을 감당할 수도 없지 않은가.] p171

   

 

  ["나도 얼마 전까지는 엄마랑 내가 독하지 못한 것이 그렇게 아쉽고 속상하드라고. 근데, 이제 안 그래. 안 그런당게. 울 엄마가 그래도 참 좋게 살아왔구나. 한 번쯤, 독한 맘먹고 험한 말이라도 한번 하고 패악질이라고 해도 좋고 하여간, 악이라도 한번 써봤으면 싶다가도, 결국은 아무한테도 해 끼치지 않은 우리 엄마가 잘살았구나 싶어. 나도 다른  누구보다 나를 원망하고 살았는데, 이젠 내가 그래도 잘살았구나, 싶은 게, 내가 남한테 당하긴 했어도 남한테 해 끼친 것은 없구나, 싶어서. 내가 바보 같긴 해도 참 고운 사람이다, 생각하기로 했지. 그러니까, 그제사 내가 나한테 고맙고 내가 막 이뻐지고…… 그러더라고.”

  인자가 말하는 동안 싸락눈처럼 흩날리던 눈은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해 있었다.

  인자 엄마가 문틈으로 눈 구경을 하듯이 나는 인자의 말소리 사이사이로 문득문득, 눈송이로 가득한 아득히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힘은 없어도 그래도 태어난 이상 살아야 하니까.”

  누가 상 줄 것도 아닌데,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 나 자신을 탓하면서, 자신을 미워하면서, 자신을 자기가 원망하면서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도 살아야하니까, 결국 마지막에 선택한 것은 자신을 자기가 예뻐해 주는 것, 그뿐이더라고.

  “안 그러면 지가 어쩔 것이여. 그려, 안 그려?”] p200

   

 

  [ "나 그때 많이 행복했다.”

  “언제요?”

  “니가 야, 이 나쁜 놈들아 , 우리 오빠 잡아가지 마,라고 했을 때.”

  총총히 멀어지는 오빠를 향해 손을 흔들고 돌아서는데 한순간, 울컥, 했다. 내가 오빠를 부르며 울었던 때가 떠올라서이기도 했지만, 지나가는 길에 여동생이 일하는 곳에 ‘그냥’ 들른 오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나도 모르게 가슴이 메어왔다. 그 울컥, 했던 순간들 때문에 나는 ‘나의 무정한 의붓오빠’를 미워할 수가 없다. 세상을 살다 보면 울컥하는 순간들이 있고 바로 그런 순간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끝끝내 미움보다는 사랑을 선택하게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p235

  

 

  [그것이 생명이 가진 힘임을. 생명은 태동할 때도 눈물겹고 살아갈 때도 눈물겹고 소멸할 때도 눈물겹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생명은 눈물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눈물이 없이는, 그 어떤 생명도 생겨날 수 없고 살아갈 수 없고 소멸되지 않을 것 같다. 복숭아꽃잎이 뚝 떨어져 내릴 때, 내가 화들짝 놀라는 것이 실은 눈물이 출렁이는 순간임을 나는 알겠다. 바람이 건듯 불 때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실은 내 눈물이 흩날리는 순간임을. 내 사랑들이 남긴 눈물이 나를 살게 하는 힘이듯이, ] p261

  어쩌면 좋은 글이냐, 아니냐의 차이는 각자가 느끼는 공감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공감할 수 있을 때 몰입도 가능하니까.

   

  이제는 슬픔을 돌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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