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石詩全集
백석 지음, 이동순 엮음 / 창비 / 198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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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 羅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 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

  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

  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섰다가 쉬

  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三 千 浦

 

졸레졸레 도야지새끼들이 간다

귀밑이 재릿재릿하니 볕이 담복 따사로운 거리다

 

잿더미에 까치 오르고 아이 오르고 아지랑이 오르고

 

해바라기 하기 좋을 볏곡간 마당에

볏짚같이 누우란 사람들이 물러서서

어늬 눈오신 날 눈을 츠고 생긴 듯한 말다툼소리도 누우라니

  

소는 기르메 지고 조은다

 

아 모도들 따사로히 가난하니

 

 

  

바 다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는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눌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故 鄕

  

나는 北關에 혼자 앓어 누어서

어늬 아침 醫員을 뵈이었다

醫員은 如來 같은 상을 하고 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넷적 어늬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드니

문득 물어 故鄕이 어데냐한다

平安道 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氏  故鄕이란다

그러면 아무개氏ㄹ 아느냐 한즉 

醫員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醫員은 또 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어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故鄕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같은 넥타

  이를 매고 고흔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

  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늬 가

  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꼬 들려오는 탓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탸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燒酒를 마신다

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밤아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

  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

      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

      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陶淵明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리하듯이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

  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

  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白石詩全集( 창비, 이동순編) 중에서 

 

 

 

 

 

백석을 만나다

 

                    손세실리아

  

아이에게 용돈 주는 날이면

천 원 짜리 몇 장 달랑 건네기가 뭣해서

오래된 시집 속 시편들을

덕담처럼 얹어주곤 하는데

순전히 나 좋자고 하는 일에

번번이 억지 춘향 노릇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엊그제, 서랍 정리를 하다가

일 없이 방바닥을 배회하는 티끌거미를 보았다

무얼 삼켜 소화시키고 배설하는 기관이

저것들에게도 과연 있을까 싶을 만큼의

가늘고 여린 적색 몸통을 엄지로 뭉개려는 찰나,

아이가 막아서며 불쑥 한마디 한다

 "이 놈에게도 새끼나 누이가 있겠지요?"

구어체로 된 문장을 따분해하던 녀석에게

수라修羅를 들려준 지 반년도 더 지났는데

기억장치에 단단히 저장된 모양이다

  

거미를 문 밖으로 내몰고 와

서랍장을 훌렁 뒤집어 먼지를 터는데

갈라진 합판 밑바닥에

쌀겨만한 거미 알이 촘촘 슬어

저희끼리 똘똘 어깨 곁고 있지 않은가

필시 멀리 도망치지도 못하고 문틈 엿보며

강추위에 덜덜 떨고 있을 엄마 거미 곁으로

고치 같은 거미줄을 거두어 내놓고 돌아서다가

형형한 눈빛의 한 시인과 마주쳤다

  

                                          기차를 놓치다 (애지) 중에서  

 

 

노골노골 피곤한 데도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문득

그를 읽고 싶어진다

읽다보면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잠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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