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창비시선 326
천양희 지음 / 창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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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보아라

 

                 천양희

 

 

자식들에게 바치느라

생의 받침도 놓쳐버린

어머니 밤늦도록

편지 한장 쓰신다

'바다 보아라'

받아보다가 바라보다가

 

바닥 없는 바다이신

받침 없는 바다이신

 

어머니 고개를 숙이고 밤늦도록

편지 한장 보내신다

'바다 보아라'

정말 바다가 보고 싶다

 

 

 

 

참 좋은 말

 

                천양희

 

 

내 몸에서 가장 강한 것은 혀

한 잎의 혀로

참, 좋은 말을 쓴다

 

미소가 한 육백개나 가지고 싶다는 말

네가 웃는 것으로 세상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

오늘 죽을 사람처럼 사랑하라는 말

 

내 마음에서 가장 강한 것은 슬픔

한줄기의 슬픔으로

참, 좋은 말의 힘이 된다

 

바닥이 없다면 하늘도 없다는 말

물방울 작지만 큰 그릇 채운다는 말

짧은 노래는 후렴이 없다는 말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말

한송이의 말로

참, 좋은 말을 꽃피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란 말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는 말

옛날은 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꾸 온다는 말

 

 

 

 

 

물의 가족

 

                천양희

 

 

물을 거꾸로 쓰면 룸이고

룸을 뒤집으면 물이 된다고 너가 말했을 때

바다는 거대한 물의 룸이라고 다시 너가 말했을 때

 

물소리 높아지면 파도가 된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물길 깊어져 수심이 되었다고 말하고 말았다

 

수평선 바라보다 

수평한 세상에서 살고 싶네, 너가 말했을 때

하늘 쳐다보다 

땅에서 하늘까지 아직도 수직이네, 다시 말했을 때

 

경계 없는 것들이 좋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흘러가는 것들이 눈물겹다고 말하고 말았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어 바다는 위대한 것이라고 너가 말했을 때

바다의 모든 소리는 뒤에 여운을 남긴다고 다시 너가 말했을 때

 

마음에도 밀물 썰물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물결에도 들숨 날숨이 있다고 말하고 말았다

 

소리와 의미가 잘 맞아 철썩이는 

우리는 

물의 가족

 

 

                           시집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창비2011)] 중에서

                           

                           천양희 시인은  1942년 부산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5년 대학 3학년 재학중에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 [너무 많은 입]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시의 숲을 거닐다] [직소포에 들다]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박두진문학상, 공초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문학부문) 등을 수상했다.

 

 

 

            

 

 

 

늦은 휴가를 떠나기 전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를 들고 다녔다.

그리고 떠나있는 내내 저 바다만 '바다 보아라'였다.

나는 단 한번도 '바다 보아라'를 받은 적 없고

'어머니 전상서' 한번도 써보지 못한 바침 없는 생을 살았는데...... 그저 바다는, 바다는 실컷 보았다.

거기 앉아서 맛있는 커피를 홀짝거리고 '장사익'을 듣고 '후지와라 신야'를 읽고 '두근두근 내 인생'이 덩달아 두근두근하게 만들었다.

 

일주일 전의 저 바다가 아득한 한 시절로 그립다.

아니, 거기 앉기만하면 평온해지던 그 마음이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너무 황홀한 아름다움이라 내 것이 아닌 듯 여겨지던 순간들......

이 새벽,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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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외면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07
복효근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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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 적 없다

 

                             복효근

 

다시 같은 자리에 돋는 새잎이란 없다

이미 새잎이 아니지

낯선 자리 비켜서

옛 흉터를 바라보며 지우며 새잎은 핀다

 

이전의 사랑은 상처이거나 흉터다

이후의 사랑도 그러할 것이므로

사랑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조금 비켜서

덤덤히 바라볼 수 있는 눈빛으로

나무의 새순은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싹튼다

 

제 형체와 빛깔과 향기를

지우고, 지고 부정하고 배반하고

새잎은 비로소 새잎이다

 

내 너를 사랑한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사랑한 적 없다

오늘은 내 어느 부위에 상처를 남겨두랴

 

엄살 피우지 말자

남은 날 가운데 가장 새것이어서

우리 세포는 너무 성하다

흉터 따위를 기억하는 것은 사랑도 아니다

 

지금 네가 마지막 첫사랑이다

 

               시집 [따뜻한 외면 (실천문학2013)] 중에서

                   복효근시인은 1962년 남원에서 태어나,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목련꽃 브라자], [마늘촛불] 이 있고,

                   시선집 [어느 대나무의 고백] 등이 있다.

                   편운문학상 신인상, 시와시학상 젊은 시인상을 수상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죽을 만큼 사랑한다가 대세인 세상에서

사랑한적 없다고 엄포를 놓고

‘지금 네가 마지막 첫사랑이다’ 라는 시인의 역설은

유쾌하고 명징하게 와 닿네요.

새잎을 틔우는 에너지처럼

생생하게 살아가면서

‘엄살 피우지 말자 남은 날 가운데 가장 새것’으로

사랑하자 합니다.

 

부디 그러하시길.......

그대,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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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공원에서 창비시선 354
고영민 지음 / 창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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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고영민

 

길가 돌멩이 하나를 골라

발로 차면서 왔다

저만치 차놓고 다가가 다시 멀리 차면서 왔다

먼 길을 한달음에 왔다

집에 당도하여

대문을 밀고 들어가려니

그 돌멩이

모난 눈으로

나를 멀끔히 쳐다본다

영문도 모른 채 내 발에 차여

끌려온 돌멩이 하나

책임 못 질 돌멩이를

집 앞까지 데려왔다

                                     출처 [시집 사슴공원에서 (창비2013)] 중에서

 

돌멩이 하나,

그저 세상에 하고 많은 돌멩이들 중에 돌멩이 하나,

사소하고도 사소한 돌멩이 하나,

돌멩이 하나의 동행이 저리 무겁고도 깊은 뜻이 담겨있군요.

무심코 한 행동이,

아무 생각 없이 내 뱉은 말 한마디가,

심심해서 차고 온 돌멩이 하나가,

가슴에 태산보다 더 무거운 돌덩이로 얹힙니다.

연탄재도 돌멩이도 함부로 발로 차지 말아야겠습니다. ^.^

 

그대가 걸어가는 생은 어떠신지요?

그 모두가 소중한 동행이요 인연입니다.

이 풍진 세상을 함께 가는 소소한 인연들,

그 모든 동행들과 인생의 여정을

그대, 행복하게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기서 머문 시간이 그대 생의 쉼표,

따스한 밥 한 숟가락의 사랑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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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의 공동체 - 신형철 산문 2006~2009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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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의 내면을 말로 설명하겠다는 생각을 접어라. 굳이 말해야 한다면, 아름답게 말하려 하지 말고 정확하게 말해라. 아름답게 쓰려는 욕망은 중언부언을 낳는다. 중언부언의 진실은 하나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을 장악하고 있지 못 하다는 것.

장악한 것을 향해 최단거리로 가라. 특히 내면에 대해서라면 문장을 만들지 말고 상황을 만들어라." 그러고는 덧붙인다. "카버를 읽어라."  -P285

 

  '느낌의 공동체'는 작가가 규정한대로 두 번째 평론집이 아니라 첫 번째 산문집으로 읽혔다. 그동안 내게 평론은 무조건 무겁고, 본문 중의 책을 읽지 않았을 때는 글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전작 '몰락의 에티카'는 꽤 들고 다녔지만 여전히 마치지 못하고 군데군데 밑줄만 무성한 상태이다. 그런데 이 ‘느낌의 공동체’는 많은 작가들을 다루고도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책들을 그만의 문체로 쉽게 읽을 수 있었기에 감히 산문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작에서도 느꼈지만 시와 시인들을 향한 그의 애정이 이 산문집에서는 더욱 간절한 문장들로 채워져서 읽는 내내 내가 당사자 시인이라도 되는 양 가슴이 저릿저릿했다. 그의 글이 주는 미덕은 거기 있지 않을까 싶다. 또 위에 인용한 부분처럼 베끼고 싶은 부분은 또 어찌나 많던지 옮겨 적은 분량도 꽤 된다. 옮겨 적다보면 내게 취약한 부분, 띄어쓰기의 감이 잡히고 읽었던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손가락이 아프게 몰두하는 것으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슬며시 스스로를 위안해준다.

  

  "아마추어는 말줄임표를 마치 통행 허가증처럼 사용한다. 경찰의 허가를 받고 혁명을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말줄임표는 겸손함이 아니라 소심함의 기호다. 마침표에 대해서는 긴 말이 필요 없다. 담배는 백해무익이요, 마침표는 다다익선이다. 많이 찍을수록 경쾌한 단문이 생산된다. 이사크 바벨은 이렇게 썼다. "어떠한 무쇠라 할지라도 제자리에 찍힌 마침표만큼이나 강력한 힘으로 사람의 심장을 관통할 수는 없다." 이 글에서는 서른다섯 번 찍었다.  -P254

 

  어찌 이런 단락들을 옮겨 적지 않을 수가 있을까? 구두점 하나하나에 저토록 명쾌하고 간결한 결론이라니.

  그렇게 시작한 옮겨 적기 내용이 수첩이 빼곡하다. 또한 읽어야 할 책 목록이 가득하다. 그 사실이 행복하기도하고 불행하기도하다. 

  그는 문학평론이라는 것이 꼭 무겁고 두려운 장르만은 아니라는 것을 거듭거듭 일러주는 작가다. 모두가 입을 모아 진정성을 이야기하는데 비평가로서 그의 진정성은 비평을 위한 비평이 아닌 문학으로서 비평인 이유를 알게 한다. 일개 독자인 내게도 비수처럼 날카롭게.

  이제는 책꽂이 장식중인 두꺼운 평론집들의 먼지를 이제는 털어주어야 할 때다. 그런 생각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동안에 가슴에서 절로 우러나게 해주는 문학평론가이다. 고마워요. 

 

  " 삶이라는 이 피할 수 없는 패배에 직면한 우리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그 패배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것" 이라고  그러기위해서는 모든 종류의 "선(先) 해석의 커튼"을 찢는 것이 소설의 존재이유라고 말할 때 이 말은 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의 나이 이제 팔순이다. 자신이 평생을 바친 일의 가치에 대한 변함없는 이 확신과 애정! 그러고 보면 이 해박하고 우아하고 유쾌한 할아버지는 지금껏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P312  

 

  이렇게 노골적으로 애정을 드러낸 '밀란 쿤데라'와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 '손택수' '이병률' '문태준' '김선우' 김경주' '박정대' '허수경' '김기택' '안현미' ‘김소연’ ‘이영광’ ‘황인숙’ ‘등등의 시와 시집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에서는 질책까지도 따뜻함으로 읽혀서 뭉클했다. 문학을 향한 근본적인 애정 없이는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겠지만 어느 부분은 그와 기호가 많이 비슷하다는 뿌듯함에서 비롯되었음을 숨길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치명적인 시, 용산’ - 신경민 앵커의 클로징 멘트와 경찰교신-P163, 시가 아니지만 시를 읽어내는 그의 시선 속에서 용산은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압도였고 장엄한 서사시였다. ‘그 화인火因이 진실로 불명확하다면, 그건 그 불이 목숨을 걸고 씌어진 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덧붙이자. 화염병은 시가 될 수 있지만 시는 화염병이 될 수 없다. 이 긴장을 포기하면 시는 사라지고 만다.’

  그런 글이 바로 그가 서문에서 쓰고 있는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줄을 알면서도 그 어떤 공동체를 향해 노를 젓는 일이다" 의 노를 젓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는 나에게 덧붙인다. '몰락의 에티카'를 마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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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나무
호시노 미치오 지음, 김욱 옮김 / 갈라파고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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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어디로

     여행하는 나무-호시노 미치오지음, 김욱 옮김, 갈라파고스.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호시노 미치오 글.사진 이규원 옮김

                                           청어람미디어

  다큐 지구의눈물 시리즈3탄인 [아프리카의 눈물]을 보다가 [여행하는 나무]가 생각났다. 생각난 부분의 기억이 맞는 건지 안달이 났다. 결국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펴든 책에는 툰드라에서 야영을 하던 중에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보며 비가 올까 걱정하는 미치오에게 인디언 알이 웃으면서 했다는 한 마디.
  “미치오, 그런 걱정하지 마. 비가 올 때는 다 이유가 있어서 오는 거야. 그칠 때가 되면 자연히 그쳐.” 자연의 일부인 알은 자연이 만들어주는 세계에서 안달하지 않는다. 우리가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걸 잊어버리는 우리만 작은 변화에도 기다리지 못하고 안달할 뿐. 작은 일에도 전전긍긍하고 조바심 내는 내 자신이 가여워져서 책을 다시 읽는다. 처음인 듯 새롭다. 거친 숨결 또한 어느덧 고요해진다. 
  지금의 세계 곳곳 모든 환경변화들은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 논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이 땅에서 파헤쳐지고 있는 강들은, 흐르고 싶은 곳으로 흐르지 못 할 물들은, 그 강과함께 사는 우리는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생각하면 우울하지만 우리는 머잖아서 우리 강 때문에 흘려야할 눈물을 다큐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로 호시노 미치오라는 일본의 야생사진작가를 처음 만났다. 책속에는 역시 처음 만나는 알래스카의 경이로운 사진들과 영화 같은 모험과 놀라운 경험들로 가득했다. 그는 알래스카의 장대함과 그 장대함을 구성하는 연약한 것들을 사랑하고 그 생명에 대한 연민의 시선을 사진에 담아냈던 것이다.  
  그를 알래스카로 이끈 것도 헌책방에서 만난 한 장의 사진, 조지 모블리가 찍은 쉬스마레프마을의 전경이 담긴 사진을 보고 알래스카를 향한 동경어린 편지를 띄우게 된다. 운명처럼 6개월이 지나서 촌장이 보낸 답장을 받고 그는 알래스카와 마침내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여행하는 나무 본문 중에 ‘알래스카에서 온 편지’ (p170)에 그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돌이켜보면 한 줄의 문장이, 한 권의 책이, 한 장의 사진이, 한 소절의 노래가, 한 사람의 영향력이, 찰나에 가까운 어떤 한 순간이, 우리를 얼마나 다른 삶으로 이끌어주는지 놀랍게도 자주 만나게 된다. 
  [여행하는 나무]는 사진이 거의 없다. 먼저 읽은 책이 준 감동을 생각해서 주문했던 기분은 살짝 당황되면서 실망스럽다. 그러나 담담하면서도 생생한 그의 글들이 또 다른 매력의 경이로운 알래스카를 만나게 해준다. 아끼면서, 아끼면서 읽어도 책은 결국 마지막 페이지를 향하고 이제 어떤 책이 더 나았다는 비교는 스스로에게도 무색하다. 책은 시작을 여는 작가의 말부터 멋지게 읽는 이를 알래스카로 초대한다. 관광지 알래스카가 아니라 생활로서의 알래스카, 사진 속의 알래스카가 아니라 삶으로서의 알래스카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오는 이야기를 조근, 조근한 속삭임으로 듣게 된다. 

 

  [알래스카의 강변을 거닐다 보면 이 땅의 상징적인 풍경들과 마주칩니다. 강가 제방에서 수평으로 길게 누운 채 자라 있는 등피나무, 기나긴 세월 동안 조금씩 대지를 침식한 물줄기가 어느새 그 흐름을 바꿔 숲으로 향합니다. 나무들은 하나둘씩 강물에 휩싸이고, 저마다의 생을 마감합니다. 유속이 빠르고 경사가 심한 강일수록 더 많은 대지를 침식하고, 더 많은 나무들을 휩쓸어버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강물에 휩쓸린 나무들은 길고 긴 여행을 시작합니다. 이 거칠 것 없는 혼돈된 풍경을 나는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모든 존재가 늘 같은 장소에 멈춰 있지 않다는 진리를 내게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벌써 꽤 오래전 일인데, 처음 북극해 해안에 당도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나는 그때 커다란 유목 위에 앉아 있는 한 마리 티티새를 사진에 담고자 풀숲에 숨어 있었습니다. 나무가 자랄 수 없는 북극권의 툰드라에서 어떻게 이토록 근 유목이 해안까지 떠내려 올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이 나무는 강물의 침식 작용에 휩쓸려 바다로 흘러나갔고, 그 후 다시 긴긴 여행 끝에 머나먼 북쪽의 해안에 당도한 등피나무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곳이 여행의 종착지였던 것입니다. 가지는 모두 떨어지고, 껍질도 완전히 벗겨진 채였습니다. 하늘을 향해 솟구치던 옛 시절은 간 데 없고, 이제 뿌리가 흉물스럽게 드러난 벌거벗은 유목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작은 티티새에겐 날개를 유지 할 수 있는 아주 요긴한 장소였겠지요. 또 이곳을 드나드는 북극여우에겐 영역표시를 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었을 겁니다. 근처에 있는 대지는 천천히 부패하는 유목을 흡수해 꽃들에게 전해줄 것이고, 그래서 완전히 썩어버린 다음에는 이곳에 꽃들이 만발할지도 모릅니다. 먼 바다에서 떠내려 온 유목이 아름다운 유목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생과 사의 관계가 마치 여행처럼 느껴졌습니다. 
  알래스카에 도착한 후로 어느덧 17년이 흘렀습니다. 한때는 뿌리 없는 풀처럼 여행자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곳에 집과 가정이 있습니다. 관광객의 입장이었던 내가 이곳 주민이 된 것입니다. 그 후로는 알래스카의 풍경이 모두 새롭게 보입니다. 이 책은 그런 심정을 담아 오랫동안 기록해온 결과물입니다. 저 등피나무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간이라고 부르는 존재는 어쩌면 등피나무를 툰드라벌판까지 인도해준 강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곳에 버들난초가 피기 시작했습니다. 이 꽃이 만발하면 알래스카의 여름도 끝이 날 것입니다. 앞으로 한 달쯤 지나면 오로라가 밤하늘을 가득 메우겠지요. 그리고 또다시 극북의 아름다운 가을이 시작될 것입니다.] 작가의 말.

  [무한한 세께 저편으로 흘러가는 시간들은 계절을 통해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자연이란 얼마나 멋진 생명인지 매일같이 감탄할 뿐입니다. 일 년에 단 한 번뿐인 오늘의 풍광은 내년에나 다시 볼 수 있다는 기약 때문에 더 많은 그리움을 남깁니다. 오늘과 같은 그리움들이 우리들의 인생에서 과연 몇 번이나 찾아오는 것일까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생명을 품고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알래스카의 대지처럼 인간의 삶을 작고 나약하게 만드는 힘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알래스카의 가을이야말로 나에겐 그런 힘을 절감케 하는 계절입니다. ] p38, 39 
  

  이 페이지들은 내가 꼭 알래스카에서 보내 온 편지를 한 통 받은 것 같았다. 생각지도 않았던 지인이 보내 온, 아름답고도 짧은 알래스카의 가을이 담담하게 담긴 편지를 설레면서 읽고 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카리부의 새끼가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설원에서 태어나는 것도, 한 마리의 검은방울새가 영하 60도의 추위 속에서 즐겁게 지저귀는 것도 단지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도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입니다. 모든 생명에게는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는 강인함이 있습니다. 또 너무나 쉽게 사라지는 연학함도 있습니다. 나는 생명이 가진 그 연약함 때문에 알래스카를 사랑합니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당연한 일상이 아니라 기적입니다. 오늘 나의 심장이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p46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마다 사람의 정성이 묻어났지만, 사람의 정성이 진정한 자연의 생명력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는 듯한 생명의 약동이야말로 자연의 위대한 힘입니다. ]p74

  [북극성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이 별에는 사람의 기억을 되돌리는 외로운 상념이 깃들여 있다. 그러나 수천 년, 혹은 수만 년이 흐른 뒤에는 북극성의 위치가 바뀐다고 한다. 그때쯤이면 지금 내가 바라보는 저 자리에 다른 별의 추억이 깃들 것이다. 모든 생명은 바로 이 순간에도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별도 예외일 수는 없다. 
  손만 뻗으면 곧 닿을 것 같은 하늘이 오늘따라 유난히 가까게 느껴진다. 저 하늘을 가득 메운 별빛은 몇 만 년 내지는 몇 억 년 전의 빛이다. 길고 긴 여행 끝에 바로 오늘 이곳에 당도한 것이다. 저 작은 별빛에 몇 광년의 세월이 숨어 있다니, 매일 밤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는 별빛은 우주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진 페이지인 셈이다. 그러나 말로는 그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p148

  [인생의 기로라고 느껴지는 순간, 먼 옛날의 풍경들이 아른거리면 떠오르는 것이다. 그때마다 알 수 없는 힘이 솟고 위안을 받기도 한다. 이 아이들에게 오로라가 바로 그런 풍경이 되길 바란다.] p154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도 또 하나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에서 또 하나의 시간을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에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다. 마치 하늘과 땅이 서로의 차이를 좁힐 수 없는 것처럼.] p161

    [오늘 하루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지만 우리는 서로를 의식하지 못했다.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근원적인 슬픔은 바로 이런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분명 내 곁에 존재하는 사람들인데,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고 또 아무런 영향도 받지 못한다는 점을 깨달을 때 인생에 감춰진 고독의 베일이 벗겨진다는 것을 나는 조지와의 만남을 통해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p177

  [인간의 삶은 타인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타인은 내 이웃이 될 수도 있고 자연이 될 수도 있다. 한 생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생명이 사라져야 한다. 이것은 자연의 숙명이다. 인간도 이 같은 숙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모습이 다를 뿐이지 문명사회를 지탱하는 힘 역시 약자의 희생에서 나온다. 어떤 면에서는 알래스카 대지보다 더 춥고, 살벌한 곳이 현대사회인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우리들이 알래스카 대지를 피로 물들인다는 이유만으로 에스키모와 인디언의 생활을 야만적이라고 말한다는 이는 자기 자신의 범죄를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사냥에 성공한 에스키모들은 짐승의 영혼을 달래고, 그 희생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것이 알래스카의 율법이다. 에스키모들은 자신들 또한 늑대와 고래와 곰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곰의 피를 마셨지만, 내일은 곰이 나의 피를 마실 수도 있다. 살아남기 위해 내가 한 생명을 희생시켰듯이 자연은 나를 희생시켜 다른 생명을 살릴 권리가 있다.] p244, 245 
   

  밑줄 그어 인용한 다른 페이지도 그랬지만 특히 이 문단은 감동적이면서 가슴 서늘하다. 그는 이미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내용을 쓴 것은 훨씬 오래 전이었을 텐데, 그는 1996년 8월 8일 러시아 캄차카 반도 쿠릴 호반에서 취침 중 불곰의 습격으로 사망했다. 
  “오늘은 곰의 피를 마셨지만, 내일은 곰이 나의 피를 마실 수도 있다. 살아남기 위해 내가 한 생명을 희생시켰듯이 자연은 나를 희생시켜 다른 생명을 살릴 권리가 있다.”  향년 43세. 그는 그렇게 떠나갔고 그가 생전에 쓴 책들[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가 2005년 7월, [여행하는 나무]는 2006년 5월 우리에게로 왔다. 여행하는 등피나무처럼 그렇게. 

 

  [결과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라는 단어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경과에 상관없이 지나온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진정 의미를 갖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렇게 쌓인 시간들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간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인생일 것이다. 
  볼을 스치는 북극 바람의 감촉, 여름철 툰드라에서 풍기는 달콤한 냄새, 백야의 엷은 빛, 못 보고 지나칠 뻔한 작은 물망초……. 문득 걸음을 멈추고 그 풍경에 마음을 조금 얹어서 오감의 기억 속에 남겨놓고 싶다. 아무 것도 낳지 않은 채 그냥 흘러가는 시간을 소중하게 누리고 싶다. 경황없는 세상의 삶과 평행을 이루며 또 하나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을 마음 어디에선가 항상 느끼면서 살고 싶다. 그 소중한 시간들을 언젠가 내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p299

    마지막 장에는 노을을 배경으로 불빛을 응시하고 있는 저자의 사진이 담겨있다. 장엄한 알래스카의 작고 연약한 생명처럼 그는 그렇게 서있는데 여운을 남기는 한 줄로 [여행하는 나무]를 덮는다. 
  더 이상 강이 파헤쳐지지 않길, 그럴 일 없을지 뻔히 알면서도 단지 그것밖에 하지 못하는 무력한 기원을 간절하게 얹어서. 
   [오늘 우리들의 삶은 내일 후손들이 살아갈 미래를 준비하는 여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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