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나무
호시노 미치오 지음, 김욱 옮김 / 갈라파고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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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어디로

     여행하는 나무-호시노 미치오지음, 김욱 옮김, 갈라파고스.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호시노 미치오 글.사진 이규원 옮김

                                           청어람미디어

  다큐 지구의눈물 시리즈3탄인 [아프리카의 눈물]을 보다가 [여행하는 나무]가 생각났다. 생각난 부분의 기억이 맞는 건지 안달이 났다. 결국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펴든 책에는 툰드라에서 야영을 하던 중에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보며 비가 올까 걱정하는 미치오에게 인디언 알이 웃으면서 했다는 한 마디.
  “미치오, 그런 걱정하지 마. 비가 올 때는 다 이유가 있어서 오는 거야. 그칠 때가 되면 자연히 그쳐.” 자연의 일부인 알은 자연이 만들어주는 세계에서 안달하지 않는다. 우리가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걸 잊어버리는 우리만 작은 변화에도 기다리지 못하고 안달할 뿐. 작은 일에도 전전긍긍하고 조바심 내는 내 자신이 가여워져서 책을 다시 읽는다. 처음인 듯 새롭다. 거친 숨결 또한 어느덧 고요해진다. 
  지금의 세계 곳곳 모든 환경변화들은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 논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이 땅에서 파헤쳐지고 있는 강들은, 흐르고 싶은 곳으로 흐르지 못 할 물들은, 그 강과함께 사는 우리는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생각하면 우울하지만 우리는 머잖아서 우리 강 때문에 흘려야할 눈물을 다큐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로 호시노 미치오라는 일본의 야생사진작가를 처음 만났다. 책속에는 역시 처음 만나는 알래스카의 경이로운 사진들과 영화 같은 모험과 놀라운 경험들로 가득했다. 그는 알래스카의 장대함과 그 장대함을 구성하는 연약한 것들을 사랑하고 그 생명에 대한 연민의 시선을 사진에 담아냈던 것이다.  
  그를 알래스카로 이끈 것도 헌책방에서 만난 한 장의 사진, 조지 모블리가 찍은 쉬스마레프마을의 전경이 담긴 사진을 보고 알래스카를 향한 동경어린 편지를 띄우게 된다. 운명처럼 6개월이 지나서 촌장이 보낸 답장을 받고 그는 알래스카와 마침내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여행하는 나무 본문 중에 ‘알래스카에서 온 편지’ (p170)에 그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돌이켜보면 한 줄의 문장이, 한 권의 책이, 한 장의 사진이, 한 소절의 노래가, 한 사람의 영향력이, 찰나에 가까운 어떤 한 순간이, 우리를 얼마나 다른 삶으로 이끌어주는지 놀랍게도 자주 만나게 된다. 
  [여행하는 나무]는 사진이 거의 없다. 먼저 읽은 책이 준 감동을 생각해서 주문했던 기분은 살짝 당황되면서 실망스럽다. 그러나 담담하면서도 생생한 그의 글들이 또 다른 매력의 경이로운 알래스카를 만나게 해준다. 아끼면서, 아끼면서 읽어도 책은 결국 마지막 페이지를 향하고 이제 어떤 책이 더 나았다는 비교는 스스로에게도 무색하다. 책은 시작을 여는 작가의 말부터 멋지게 읽는 이를 알래스카로 초대한다. 관광지 알래스카가 아니라 생활로서의 알래스카, 사진 속의 알래스카가 아니라 삶으로서의 알래스카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오는 이야기를 조근, 조근한 속삭임으로 듣게 된다. 

 

  [알래스카의 강변을 거닐다 보면 이 땅의 상징적인 풍경들과 마주칩니다. 강가 제방에서 수평으로 길게 누운 채 자라 있는 등피나무, 기나긴 세월 동안 조금씩 대지를 침식한 물줄기가 어느새 그 흐름을 바꿔 숲으로 향합니다. 나무들은 하나둘씩 강물에 휩싸이고, 저마다의 생을 마감합니다. 유속이 빠르고 경사가 심한 강일수록 더 많은 대지를 침식하고, 더 많은 나무들을 휩쓸어버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강물에 휩쓸린 나무들은 길고 긴 여행을 시작합니다. 이 거칠 것 없는 혼돈된 풍경을 나는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모든 존재가 늘 같은 장소에 멈춰 있지 않다는 진리를 내게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벌써 꽤 오래전 일인데, 처음 북극해 해안에 당도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나는 그때 커다란 유목 위에 앉아 있는 한 마리 티티새를 사진에 담고자 풀숲에 숨어 있었습니다. 나무가 자랄 수 없는 북극권의 툰드라에서 어떻게 이토록 근 유목이 해안까지 떠내려 올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이 나무는 강물의 침식 작용에 휩쓸려 바다로 흘러나갔고, 그 후 다시 긴긴 여행 끝에 머나먼 북쪽의 해안에 당도한 등피나무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곳이 여행의 종착지였던 것입니다. 가지는 모두 떨어지고, 껍질도 완전히 벗겨진 채였습니다. 하늘을 향해 솟구치던 옛 시절은 간 데 없고, 이제 뿌리가 흉물스럽게 드러난 벌거벗은 유목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작은 티티새에겐 날개를 유지 할 수 있는 아주 요긴한 장소였겠지요. 또 이곳을 드나드는 북극여우에겐 영역표시를 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었을 겁니다. 근처에 있는 대지는 천천히 부패하는 유목을 흡수해 꽃들에게 전해줄 것이고, 그래서 완전히 썩어버린 다음에는 이곳에 꽃들이 만발할지도 모릅니다. 먼 바다에서 떠내려 온 유목이 아름다운 유목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생과 사의 관계가 마치 여행처럼 느껴졌습니다. 
  알래스카에 도착한 후로 어느덧 17년이 흘렀습니다. 한때는 뿌리 없는 풀처럼 여행자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곳에 집과 가정이 있습니다. 관광객의 입장이었던 내가 이곳 주민이 된 것입니다. 그 후로는 알래스카의 풍경이 모두 새롭게 보입니다. 이 책은 그런 심정을 담아 오랫동안 기록해온 결과물입니다. 저 등피나무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간이라고 부르는 존재는 어쩌면 등피나무를 툰드라벌판까지 인도해준 강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곳에 버들난초가 피기 시작했습니다. 이 꽃이 만발하면 알래스카의 여름도 끝이 날 것입니다. 앞으로 한 달쯤 지나면 오로라가 밤하늘을 가득 메우겠지요. 그리고 또다시 극북의 아름다운 가을이 시작될 것입니다.] 작가의 말.

  [무한한 세께 저편으로 흘러가는 시간들은 계절을 통해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자연이란 얼마나 멋진 생명인지 매일같이 감탄할 뿐입니다. 일 년에 단 한 번뿐인 오늘의 풍광은 내년에나 다시 볼 수 있다는 기약 때문에 더 많은 그리움을 남깁니다. 오늘과 같은 그리움들이 우리들의 인생에서 과연 몇 번이나 찾아오는 것일까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생명을 품고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알래스카의 대지처럼 인간의 삶을 작고 나약하게 만드는 힘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알래스카의 가을이야말로 나에겐 그런 힘을 절감케 하는 계절입니다. ] p38, 39 
  

  이 페이지들은 내가 꼭 알래스카에서 보내 온 편지를 한 통 받은 것 같았다. 생각지도 않았던 지인이 보내 온, 아름답고도 짧은 알래스카의 가을이 담담하게 담긴 편지를 설레면서 읽고 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카리부의 새끼가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설원에서 태어나는 것도, 한 마리의 검은방울새가 영하 60도의 추위 속에서 즐겁게 지저귀는 것도 단지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도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입니다. 모든 생명에게는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는 강인함이 있습니다. 또 너무나 쉽게 사라지는 연학함도 있습니다. 나는 생명이 가진 그 연약함 때문에 알래스카를 사랑합니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당연한 일상이 아니라 기적입니다. 오늘 나의 심장이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p46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마다 사람의 정성이 묻어났지만, 사람의 정성이 진정한 자연의 생명력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는 듯한 생명의 약동이야말로 자연의 위대한 힘입니다. ]p74

  [북극성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이 별에는 사람의 기억을 되돌리는 외로운 상념이 깃들여 있다. 그러나 수천 년, 혹은 수만 년이 흐른 뒤에는 북극성의 위치가 바뀐다고 한다. 그때쯤이면 지금 내가 바라보는 저 자리에 다른 별의 추억이 깃들 것이다. 모든 생명은 바로 이 순간에도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별도 예외일 수는 없다. 
  손만 뻗으면 곧 닿을 것 같은 하늘이 오늘따라 유난히 가까게 느껴진다. 저 하늘을 가득 메운 별빛은 몇 만 년 내지는 몇 억 년 전의 빛이다. 길고 긴 여행 끝에 바로 오늘 이곳에 당도한 것이다. 저 작은 별빛에 몇 광년의 세월이 숨어 있다니, 매일 밤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는 별빛은 우주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진 페이지인 셈이다. 그러나 말로는 그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p148

  [인생의 기로라고 느껴지는 순간, 먼 옛날의 풍경들이 아른거리면 떠오르는 것이다. 그때마다 알 수 없는 힘이 솟고 위안을 받기도 한다. 이 아이들에게 오로라가 바로 그런 풍경이 되길 바란다.] p154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도 또 하나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에서 또 하나의 시간을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에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다. 마치 하늘과 땅이 서로의 차이를 좁힐 수 없는 것처럼.] p161

    [오늘 하루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지만 우리는 서로를 의식하지 못했다.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근원적인 슬픔은 바로 이런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분명 내 곁에 존재하는 사람들인데,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고 또 아무런 영향도 받지 못한다는 점을 깨달을 때 인생에 감춰진 고독의 베일이 벗겨진다는 것을 나는 조지와의 만남을 통해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p177

  [인간의 삶은 타인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타인은 내 이웃이 될 수도 있고 자연이 될 수도 있다. 한 생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생명이 사라져야 한다. 이것은 자연의 숙명이다. 인간도 이 같은 숙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모습이 다를 뿐이지 문명사회를 지탱하는 힘 역시 약자의 희생에서 나온다. 어떤 면에서는 알래스카 대지보다 더 춥고, 살벌한 곳이 현대사회인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우리들이 알래스카 대지를 피로 물들인다는 이유만으로 에스키모와 인디언의 생활을 야만적이라고 말한다는 이는 자기 자신의 범죄를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사냥에 성공한 에스키모들은 짐승의 영혼을 달래고, 그 희생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것이 알래스카의 율법이다. 에스키모들은 자신들 또한 늑대와 고래와 곰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곰의 피를 마셨지만, 내일은 곰이 나의 피를 마실 수도 있다. 살아남기 위해 내가 한 생명을 희생시켰듯이 자연은 나를 희생시켜 다른 생명을 살릴 권리가 있다.] p244, 245 
   

  밑줄 그어 인용한 다른 페이지도 그랬지만 특히 이 문단은 감동적이면서 가슴 서늘하다. 그는 이미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내용을 쓴 것은 훨씬 오래 전이었을 텐데, 그는 1996년 8월 8일 러시아 캄차카 반도 쿠릴 호반에서 취침 중 불곰의 습격으로 사망했다. 
  “오늘은 곰의 피를 마셨지만, 내일은 곰이 나의 피를 마실 수도 있다. 살아남기 위해 내가 한 생명을 희생시켰듯이 자연은 나를 희생시켜 다른 생명을 살릴 권리가 있다.”  향년 43세. 그는 그렇게 떠나갔고 그가 생전에 쓴 책들[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가 2005년 7월, [여행하는 나무]는 2006년 5월 우리에게로 왔다. 여행하는 등피나무처럼 그렇게. 

 

  [결과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라는 단어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경과에 상관없이 지나온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진정 의미를 갖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렇게 쌓인 시간들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간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인생일 것이다. 
  볼을 스치는 북극 바람의 감촉, 여름철 툰드라에서 풍기는 달콤한 냄새, 백야의 엷은 빛, 못 보고 지나칠 뻔한 작은 물망초……. 문득 걸음을 멈추고 그 풍경에 마음을 조금 얹어서 오감의 기억 속에 남겨놓고 싶다. 아무 것도 낳지 않은 채 그냥 흘러가는 시간을 소중하게 누리고 싶다. 경황없는 세상의 삶과 평행을 이루며 또 하나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을 마음 어디에선가 항상 느끼면서 살고 싶다. 그 소중한 시간들을 언젠가 내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p299

    마지막 장에는 노을을 배경으로 불빛을 응시하고 있는 저자의 사진이 담겨있다. 장엄한 알래스카의 작고 연약한 생명처럼 그는 그렇게 서있는데 여운을 남기는 한 줄로 [여행하는 나무]를 덮는다. 
  더 이상 강이 파헤쳐지지 않길, 그럴 일 없을지 뻔히 알면서도 단지 그것밖에 하지 못하는 무력한 기원을 간절하게 얹어서. 
   [오늘 우리들의 삶은 내일 후손들이 살아갈 미래를 준비하는 여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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