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규의 시집 『너는 잘못 날아왔다』는 매우 기이한 작업의 보고서이다. 누가 이 시집의 이곳저곳을 펼쳐 여남은 편의 시를 읽고나서, 우리 시대의 불행한 현실을 유려한 리듬과 아이러니 가득한문장으로 재치 있게 서술하였다고 그 주제와 특징을 정리한다면,
그 말이 틀렸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르게 읽든 천천히 읽는 중단하지 않고, 읽은 사람이라면, 그말로 설명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표현하기 어려운 다른 것이 있기 때문이다. 김성규는 시집의 모든 시에서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우리 삶의 불행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만, 그 불행 앞에서 시인은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법이 없다. 불행과 비극이 내내 반복되는 것은 그것들이 여기저기서 - P604

지리멸렬하게 나타나기 때문이 아니다. 불행과 비극의 표현은, 마찬가지로 그것들의 존재양태는, 확연하고 투철하다. 시인이 자신의 감정을 덧붙이는 법이 없는 이 불행의 시에서 그 고통과 참혹함이 언젠가는 끝나거나 완화되리라는 전망을 기대할 수 없는 것도당연하다. 감정이나 전망이 왜 거기 있어야 하는가. 사실을 말한다면, 불행이나 비극이라는 낱말 자체가 우리의 임시적이고 임의적인 ‘해석‘을 담은 어휘일 뿐으로, 김성규는 자신이 말하는 것에 그런 이름을 붙인 적이 없다. 우리가 불행이나 비극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에게 집과 나무가 거기 있는 것처럼 거기 있다. 퐁주 같은 시인이 ‘사물의 편에 서서‘ 사물들이 저 자신의 성질을 드러낼 수 있는 수사법을 발견하려 했던 것처럼, 김성규는 우리가 불행이라고부르는 것들의 편에 서서 그것들이 저 자신을 낱낱이 보고하는 방식으로 그것들에 대해 말한다. 아름다운 말로 노래하지 못할 나무나 집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하지 못할 불행도 없다. 불행도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선율 높은 박자와 민첩하고 명민한 문장의 시를 얻을 권리가 있다. 김성규에게서는 불행이 행복과 대비되는 어떤 것이 아닐뿐더러, 행불행의 구분조차 없는 것 같다. - P605

너무 당연한 말일지 모르지만 김혜수는 시를 참 잘 쓴다. 60편의시 가운데 귀빠진작품 하나없이 구절마다 눈길을 잡고, 읽는 사람을 이따금 앉았다 일어서게 하는 시집은 어느 시대에도 흔치 않다. ‘타고난 재주‘라는 말이 합당한데, 그보다는 옛날 할머니들의표현을 빌려 ‘그것 참 팔자다‘라고 말하는 편이 더 좋겠다. 팔자라는 말은 한 재능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그 재능이 이 배은망덕한 세상에서 겪어야 할 신산한 운명에 대한 안타까움도 끌어안고있기 때문이다. 예(藝)를 늘 살()로 여겼던 노파들의 지혜를 증명하려는 듯이 김혜수는 과연 그 재능을 고통스럽게 사용한다. 시인자신의 삶을 포함한 우리 시대 사람들의 불행하고 황당한 삶을 낱낱이 들춰내는 일도 그렇고, 합당한 리듬으로 그 삶을 그려내어 조 - P613

용히 비평하는 일도 그렇지만, 먼저 그 삶이 불행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도 뛰어난 재능을 필요로 한다.
그의 시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문명비평이라는 말이 그럴듯한데,
정작 시를 읽다 보면 그런 말이 조금 허황하다는 생각도 든다. 길고 거대한 시선으로 이 삶을 거슬러 올라가 그 연원을 밝히고 그전망을 짚어내는 말들을 김혜수는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삶을 어떤 필연의 고리에 위치시켜제감정을 달래려는 사람이아니다. 문명 같은 말은 이데올로기를 불러오기 마련인데, 그는 어떤 종류의 것이건 이데올로기의 인간이 아니다. 누가 그에게 이론말하면 다소곳이 듣고는 있겠지만, 마음속으로는 반드시 그런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에게는 살아야 할 삶이 있고, 그것을 어떤 이론의 그물에 아무리 촘촘한 그물이라고 하더라도 떼어 맡기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에게서 그물은 늘 해체된다.  - P614

지난해 겨울, 대산문학상 시상식이 있던 날, 뒤풀이를 끝내고 포항으로 다시 내려가는 최승자를 배웅하며, 나는 그 가냘픈 어깨에 얹었던 손을 다시 거둬들였다. 허공에 뜬 가랑잎을 쥐는 것만 같아힘주어 붙잡을 수 없었다. 이 욕망의 거리에서, 아무것도 쌓아둔것이 없고, 아무것도 기대하는 것이 없는 사람만이 마침내 그 슬픈어깨를 얻는다고 해야 할까. 끌어안기조차 어려운 이 어깨, 그러나어쩌면 우리가 마지막 기대야 할 어깨가 거기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승자가 써온 시와 살아온 삶은 널리 알려져있다. 자신의 존재가 잉여물이라고 늘 생각했던 그는 자아를 찾아서, 또는 그 잉여물의 처지를 벗어날 수 있는 합당한 운명을 찾아서 긴 여행을 했다. 그는 너무 멀리 떠나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 - P624

도 했다. 그가 겪은 정신적 위기는 개인적 위기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시가 머지않아 감당해야 할 위기이기도 했다. 중년을넘긴 사람들에게라면 우리의 삶이 가장 불행했던 시기인 유신 시절부터 시를 써온 최승자가 섭생치료에서 점성술에 이르기까지 온갖 신비서들을 섭렵하고 거기 심취했던 것은 군사독재 권력이 막을 내리기 시작할 무렵부터였다. 불행 하나가 숨을 죽인 자리에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최승자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칠십 년대는 공포였고 팔십 년대는 치욕이었다"(세기말」, 『내 무덤 푸르고』). 그런데 1990년대와 2000년대는? 돌이켜보면 공포였고 치욕이었던 그 불행은 이름 붙일 수 없는 불행을가리고 있는 이름 붙일 수 있는 불행이었을 뿐이었다.  - P625

유령의 군대와 싸우는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들 자신이 벌써 유령이아닐까. 사실 우리의 삶은 시작하기도 전부터 뿌리가 뽑혀 있었다.
뿌리 뽑힌 상태에서 뿌리뽑힌 제 처지를 의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불안은 수시로 찾아온다. 욕망이 이 불안을 가리었다. 살아왔던 길을 모두 폐지하고 널따랗게 새로 뚫린, 뚫렸다기보다 침범해 들어온 큰길을 향해 우리를 너나없이 달려가게 하는 이 욕망은실상 비어 있는 욕망이지만, 그 비어 있음을 가리기 위해서는 또다른 욕망이 필요했다. 욕망이 욕망을 물고 온다. 달려가는 사람들속에서 잠시 비켜섰을 때에야, 또는 더 이상 그 발걸음을 따라갔을수 없을 때에야, 문득 사람들은 뿌리도 없이 유령들과 싸우고 있는 제 처지를 곰곰이 생각한다. 최승자는 예의 내 무덤 푸르고』의「자본족」에서 "새들도 자본 자본하며울 날이 오리라"고 벌써 예언했다. 그날은 재빨리 찾아왔고, 여행하던 최승자는 바로 그런 날들의 한복판에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 P625

최승자의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문학과지성사, 2010)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제 욕망을 누르고만 그 시집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말이 줄어들었고, 문장이 짧고 단순해졌으며, 그 낯익은 독기가 확실하게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짧은 호흡을 타고, 독립성이 강하고 투명한 말들이 여기저기 박혀 있어서 명사문이 아닌 문장들도 명사문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최승자가 관념을 나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 관념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이 구별이 없어진 어떤 체험이 있었다고 오히려 말해야 할 것이다. 그는사물들이 본디 모습을 되찾아 의미로 충만한 말들, 이제 더 이상기호가 아닌 말들이 그 의미와 온전하게 결합하는 자리에 들어서있었다. 물론 이 본디의 사물들 속에 아파트와 자동차를 비롯하여이 문명의 무서운 기계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폐허가 되어 무너져가는 모습으로 이따금 시에 나타났다. - P626

시인은 이 경제학으로 많은 것을 본다. 무엇보다도 그는 예전에 보지 않았던 풍경을 본다. 아침 햇살을, 냉랭하게 푸른 하늘을, 바다에 내리는 비를, "소보록 소보록 쌓여가는 눈", "만선의 ‘처럼펼쳐진 구름을, 아카시아 숲을, 지리산의 바람을, 그는 오직 바라본다. 그는 그 풍경을 그리스도라고도, 부처라고도 생각한다. 감각을절약해서 얻은 행복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최승자는 가장 가벼운 육체로, 가장 잘 활용된 감각으로, 인색하게 허락되는 언어로, 간명한 사상으로, 경제적으로 그러나 확실하게 사용되는 시적 선회로, 우리 시대에 가장 투명한 말의 거울을만들었다. 제 입김으로 거울을 흐려놓지 않으려면,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이 시집을 읽어야 한다. - P632

몸은 이 시대의 가장 끈질긴 강박증을 만들어내고 수렴하는 자리이다. 우리가 육체를 강철 같은 무기로 만들려고 결심하는 그 순간에 벌써 우리는 육체의 포로가 되어 있음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육체는 단단한 것이어야 할 때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렁이 되고,
깊이 있는 것이어야 할 때 그 깊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었다. 이생활 경험 위에 현대의 인문학적 담론이 겹친다. 몸은 엄연히 자아그 자체이지만 동시에 자아의 변두리를 구성하는 타자이다. 한 사람에게 제 육체보다 더 낯선 것은 없으며, 제 의지를 그보다 더 멀리 벗어나는 것도 없다. 어쩌면 현대시의 전통을 육체의 전통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상징파들이 세상을 파악하는 가장 날카롭고 정직한 수단으로 감각을 내세울 때 그것은 곧 우주의 작은모형인 육체의 발견이었다. 그러나 이 모형은 해석의 불빛이 닿을때까지 어둠 속에 감춰져 있을 뿐이다.  - P644

시인들은 육체에 상처를 내고 절개하고 해체하여, 적어도 몸을 혹사하여, 쉽게 진리를 내놓으려 하지 않는 그 인색함에 보복하였다. 초현실주의자들이 무의식을 말할 때 그 역시 몸에 대한 새로운 평가였다. 지성에 의해 억압된 것은 모두 몸속에 숨어 있다. 무의식은 무의식으로밖에 쓸 수없으며, 무의식을 쓴다는 것은 곧 몸으로 몸을 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몸이 몸을 잡아먹는 이미지는 초현실주의자들의 뛰어난 브랜드였다. 쓰이는 몸이건 쓰는 몸이건, 몸이 없는 현대시는 없다.
이성복에게 몸은 우선 고통의 밑자리이다. 몸은 늘 고통에 처해 있을 뿐만 아니라, 받은 고통을 재생산하여 세상에 난폭하게 되돌린다. - P644

"요절할 수 없는 것들"은 제각각의 단위 생명을 범생명에 합류하고 있는 것들이다. 불타 사그라짐은 생명을 위해 분열된 생명을 부정하는 열정의 실현이다. 삼각형 산의 삼각받침대가 거르는술은 단위 생명의 힘들이 범생명으로 집중된 순간의 흥분이다. 이흥분으로 한 어깨는 다른 어깨를 받는다. 그러나 말들이 이렇게 해석된다고 해서 그 말들을 비유나 은유로 취급할 수는 없다. 비유처럼 보이는 그것들은 말이 입 없는 것들의 수준으로 잠수했을 때만얻어낼 수 있는 변주일 뿐이다.
이성복의 『아, 입이 없는 것들』은 『남해 금산』이후 그의 시집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시집이며, 우리 시대에 희귀하게 아름다운시집이다. - P648

신현정은 ‘자전거 도둑」(애지, 2005)을 출간하면서, 시인이 몸을 어디에 두어도 그 시는 살아 있다는 것을 넉넉히 증명했다. 천진하다고도 의뭉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그런 시집이었다. 지나는 길에 만나의례적으로 악수를 하고 역시 의례적으로 몇 마디 인사말을 나누고헤어졌는데, 이튿날 아침, 잠이 깨면서, 아 그 말이 그 말이었구나!
화들짝 놀라게 되는 그런 경우에 빗대어야 할까. 그렇다고 시의 말에 무슨 함정이 숨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깊은 말과 그저 하는 말에구별이 없었을 뿐이다. 새 시집 『바보 사막(랜덤하우스코리아, 2008)도두 모습이다. 겉으로 보면 담담하고 산뜻하나, 그 속마음을 짚어보면처연하다. 달리 말한다면, 담담한 것도 그 처연함 위에서이고 산뜻한것도 그 처연함의 힘에 의해서이다.  - P649

시집의 표제시이기도 한 첫 시 「바보 사막은 당연히 서시의 구실을 하겠지만, 시집의 전체뿐만 아니라 한 생애의 전체를 요약하는 결어의 형식을 지니기도 한다. "오늘 사막이라는 머나먼 여행길에 오르는 사람은 출발하기도 전에, 그 여행이 어떻게 진행되어 어떻게 끝날 것인지, 또는 끝나지 않을 것인지, 미리 알고 있다.
사막 여행은 그 출발지도 경유지도 목적지도 모두 사막이다. 거기에 어떤 격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막을 가는 사람은 "해별 낙타이런 순서로 줄지어" 가야 하고, 이 행렬에 "조금의 흐트러짐"이나순서의 뒤바뀜이 용납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 모랫길을 밟는 일도 천지 운행의 지배 아래 그 율려를 체험하는 과정이지만, 그 체험이 지극히 작은 것이기에 사막을 가는 사람은 시작의 불모와 끝의 불모를 볼 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이 여행이 삭막할 뿐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 P650

사막을 가는 사람은 "난생처음 낙타를" 타보고, 허리에 찬 "가죽수통"과 "달무리 같은 크고 둥근 터번을" 뽐내기도 한다. 저 사막이 오래된 것처럼 낙타도 수통도 터번도 모두 낡은 것이겠지만, 이제 "여행길에 오르는 사람은 "난생처음"의 감각으로 그것들을 접수한다. 여행의 끝은 비극적이다. "사막 한가운데 이르러서/단검을 높이 쳐들어/낙타를 죽이고는 굳기름을 먹는다는 것이다." 낙타의 죽음이 여행자의 죽음으로 이어질것은 말할 것도 없다. 여행자는 여행의 끝에, 또는 삶의 끝에 "굳기름"을 먹겠지만, 그러나 또한 "난생처음" 먹을 것이다. 어쩌면 이
‘난생처음‘은 낡은 것들이 드리우는 낚싯바늘에 불과할지 모른다. - P650

그러나 낚싯바늘이 낚싯바늘인 것을 알고 무는 물고기는 없으나,
낚싯바늘이 낚싯바늘임을 모르고 무는 시인도 없다. 그 처연한 ‘희생‘이 바보들의 대물림 낙타에, 누군가 벌써 썼던 터번에, 또다시먹어야 하는 굳기름에 ‘난생처음‘의 이름표를 달아준다. 사는 일은누구에게나 자신이 책임지는 부분만 진정으로 그의 삶이며, 진정한 삶은 늘 난생처음의 삶이다.
지에세상에서 만나는 사물 하나하나에, 생애의 모퉁이길 하나하나에난생처음의 감각을 유지할 줄 아는 사람은 또한 지극히 작은 것으로도 그 삶을 누릴 줄 안다. - P651

루쉰은 그의 단편소설 「고향」에서 수구주의자들이 움직일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터부의 자리에 인간의 가치가 들어서기를 희망하며 다음과 같은 말로 그 끝을 맺었다. "희망은 길과 같은 것이다.
처음부터 땅 위에 길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다보면 길이 만들어진다." 나는 육사가 「광야」를 쓸 때, 루쉰의 이 말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감히 믿는다. - P695

이 시를 시인이 처음 발표했던 것처럼 세로로 쓸 수 없는 것이유감이다. 세로로 썼을 때만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세모꼴들이 ‘물구나무‘를 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자들이 책장을 오른쪽으로 돌려놓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면 거꾸로 선 다섯 개의 삼각형, 또는다섯 그루의 나무를 볼 것이다. 이 나무들이 바로 물구나무‘이다.
마지막 연의 "식물채집"과 "하아얀 죄"는 수음에 대한 암시이다.
수음으로 채집한 이 식물들, 글자로 그린 이 다섯 그루의 나무들은이 시인이 자신의 시에 허락했던 물질의 총량이다. 조향은 초현실주의자일 수 없었다. 그의 시는 현실을 넘어가기는커녕 현실에도 - P800

미치지 못했다.
어떤 풍문에 의하면 6·25전쟁 때, 부산에서 넉넉하게 살고 있던 조향은 서울에서 피난해온 문인들을 박대했기 때문에 그 후 문단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결국 잊힌 시인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풍문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서 그의 인간관계만을볼 수는 없을 것이다. 피난 문인들은 그의 앞에 닥친 현실이었다.
그는 시에서처럼 현실에서도 현실을 외면했다. 그러나 나는 새삼스럽게 조향의 시나 그 시적 태도를 비판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것은 아니다. 해방 이후 우리 시의 발전사라면 그것은 말에 사물과몸을 채워간 역사라는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하는 것뿐이다. - P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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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쇼는 「오게 될 책(Leive a remi)의 첫머리에서 소설과는 다른 이야기(rcuit)‘의 특징적 요소로 미지 세계와의 만남을 설명하는 가운데, 사이레네스의 노래와 율리시스에 대해 길게 서술하고 있지만,
모비 딕을 쫓았던 에이허브 선장에 대해서도 짧지만 결정적인 몇문장을 쓴다. 저 치명적인 미지의 매혹 앞에서 두 사람의 태도와운명이 다르다. 율리시스는 낯선 힘 앞에서 냉정한 계산으로 대처하여 현실세계와 상상세계 사이의 경계와 간극을 유지하였지만,
에이허브는 현실의 경계 너머 바닥없는 이미지의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사라졌다. 신화 속의 모험가는 노래의 시련을 이기고 이전의 자신을 다시 회복한 반면 복수심에 가득 찬 외다리 선장이이한 운명은 세계가 없는 공간에서 일어난 존재의 변모였다. 여기 - P462

까지가 『모비 딕(Moby Dick)』과 에이허브 선장에 대한 블랑쇼의 언급이지만, 그의 의도와 관계없이 그 끝을 잡고 생각을 연장하다 보면문학의 현대성에 대한 개념 하나를 얻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호메로스나 그의 서사시를 처음 읽는 독자들에게 세계는 무한하게 넓은 것이었다. 율리시스는 새로운 바다와 뭍으로 그의 여행을 끝없이 연장할 수 있었다. 그에게도 미지의 세계는 현실의 경계밖에 있으나, 또한 그것은 모든 길목에서 그를 노리고 있다. 그 세계를 차례로 만나고 그 시련을 차례로 이겨내기 위해, 그 세계들의무한함과 아울러 그 깊이를 말하기 위해 율리시스는 그때마다 일상의 세계로 되돌아와야 하며, 이 점에서 그의 귀환은 낯선 세계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그것과의 만남에 그 일부분이 된다. 여전히답사해야 할 미지의 세계가 남아 있다는 것을 증명해줄 것은 그 세계를 만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로서의 그의 건재와 귀환밖에 없다.  - P463

멜빌과 에이허브의 사정은 이와 다르다. 『모비 딕』이 발표되던19세기 중반은 발견해야 할 땅이 모두 발견된 다음이었고, 누군가가 설령 새로운 나라에 들어선다 하더라도, 보들레르가 그의 악의꽃의 마지막 시 여행 (Le voyage)」에서 말하게 되는 것처럼, "단조롭고 초라한 이 세계‘의 연장인 그곳에서도 "오늘, 어제, 내일 언제까지나 바로 "우리들의 이미지" "권태의 사막 하나"와 "공포의오아시스 하나"를 볼 수 있을 뿐임이 이미 알려진 시기였다. 멜빌에게는 그 매혹적인 미지와의 관계에서 단 한 번의 만남이 있을 뿐이며, 이 만남도 그의 투신으로만 이루어진다. 미지가 거기 있다는것을 증명해줄 것은 그의 결정적인 선택과 그 믿음에 대한 완전한헌신뿐이다. 그래서 에이허브의 투신은 문학에서 상상의 지리학이 - P463

자기 변모의 생리학으로 바뀌게 된 결정적인 시기를 표현한다. 벌써 현대인으로서 에이허브는 삶의 경계를 넘어서는 존재의 변모로만 미지와 관계하며, 미지를 만나며, 미지를 거기 있게 한다. 말하자면 에이허브는 매혹의 노래 그 자체가 되는데, 이는 보들레르가 예의 시의 끝에서 "지옥이건 천당이건" 가리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찾아" 심연의 밑바닥에, 다시 말해 죽음 속에 잠기고 싶다고 외치게 되는 정황과 상통한다. 이 죽음에 해당하는 어떤 것이 없다면필경 제한될 인자들로 구성될 이 삶에 지속과 확대가 가능한 상상력이 없으며, 따라서 문학이 없다.
이때 죽음은 물론 하나의 상징이다. 그것은 존재 위상의 선택에 그 결연함을 뜻할 것이며, 하나의 만남을 전후하여 완전하게 달라질 존재의 매혹과 불안을 시사할 것이다. 존재의 변모라기보다는 차라리 감추어진 존재를 끄집어내는 것이라고 정확하게 따져서말하더라도 사정은 여전하다.  - P464

문인수의 문학적 초상을 그리는 일은 쉽지 않다. 그의 문단 생활은오래되었고 꾸준하게 좋은 시들을 발표하였지만, 몇 년 전 김달진문학상을 수상하기 전까지는 ‘발굴되지 않은 시인‘의 처지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그의 시에 대한 단편적인 언급 이상의 진지한 비평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월평이나 계절에도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름 있는 시집 시리즈의 편집자들이 그에게 번호를 내주기 위해 서두르는 기색은 물론 없었다. 시인들이나 비평가들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 이따금 그의 이름이 나오게 되면 그의 무슨 시를 읽었다든지 그것이 어떻게 아름다웠다든지 하는 말들이곧바로 뒤따르기는 했지만, 늘 이야기는 그 정도에서 그치고 화제는 다른 곳으로 굴러가곤 했다.  - P477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풍경을 향해 다가가는 듯하지만 거기에 볼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벌써 알고 있는 사람처럼 허랑하게물러난다. 그는 그 자리에 있지 않다. 다른 곳을 더 그리워하기 때문이라는 말은 그럴듯하지 않다. 어디서나 허랑하게 물러나는 그는 ‘한 풍경‘이 아니라 ‘풍경‘에 실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자리를 옮기는 것은 그 자리가 실망스러워서라기보다 거기서 시시한 것만을 발견해야 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건 마음을 다져서건 특별한 것을 발견해내려는 사람은벌써 자기 자신을 무엇으로 만든 사람이거나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일 터인데, 그에게서 자기 존재를 규정하는 일은 이렇게 어설픈 풍경 보기와 함께 항상 뒷날로 연기된다. 그는 나그네다. 지금 있는 그 자리를 지키지 않거나 지킬 수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무엇이 될 수도 없고 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 P478

이경림은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재능이 있다. 일상의 작은 하소연에 그칠 듯이 시작되는 이야기는 곧바로 한역사의 어두운 밑바닥으로 내려가고, 간장처럼 진한 감정의 장대비 속을 헤매다가, 새벽꿈의 언저리만큼 몽롱한 곳에서 기억과 현실이 반죽된 작은보따리 하나를 들고 나온다. 좌중에는 회색 농담을 바탕으로 타다남은 장작불을 그린 것 같은 그림 한 장이 펼쳐지고, 사람들은 벌써 취해서 자기 앞의 술잔을 들어 홀짝거린다.
이야기의 주제가 다양한 것은 아니다. 비참했던 가족사, 그 중심에는 사회주의 운동가이기도 했고 한학자이기도 했고 재가승이기도했던 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짧은 대학생활과 한 남자의 얼굴, 모진 가난 속에서 끝내 얻어내지 못한 학위기처럼 그 얼굴도 끝내 지 - P487

워지지 않는다. 끝으로 모래밭같이 막막한 결혼 생활, 덤덤하나 착하고 너그러울 것이 분명한 남편이 늘 희생자의 자리에 서 있지만,
이 불행은 이경림 특수의 불행이 아니라 누구도 감당해주지 못할힘과 재능의 그것이다. 이 개인사적 불행 위에는 이 땅에서 우거진이런저런 정서적 역사의 불행이 겹쳐 있다. 따져서 듣다 보면, 주제는 늘 변함이 없는데, 이야기의 세부는 적게도 변하고 많게도 변한다. 그래서 반쯤은 사실 같고 반쯤은 소설 같다. 소설의 개입으로 왜곡된 현실일 것도 같고, 현실의 억압으로 완성되지 못할 소설일 것 같기도 하다. 조금 거친 말이 되겠지만, 이 문학적 개입의 확장력과 현실적 억압의 응축력에서 그 정수를 간추리면 이경림의시가 된다. - P488

시적 취향과 시적 감수성은 같은 것이 아니다. 게다가 그 취향이오로지 ‘좋은 취향‘을 말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좋은 취향을갖는다는 것은 모름지기 어떤 구심력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세상의 중심에 설치된 옥좌를 향해 조공을 올림으로써 그 분별력을인정받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화이론을 내세운 문화적 이상을 믿고 재인하는 것이며, 따라서 늘 평가가 뒤따른다. 아니 평가가 앞선다고 해야 더 정확한 말이다. 이미 평가를 받은 것의 외부에 설 수 있는 미적 취향은 없다. ‘좋은 취향‘은 그 평가의역사를 이해하고 그 역사와 자신의 형성사를 동일시할 수 있는 능력과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적 감수성은 중심을 모른다.
"그것은 몸의 불편함이거나 쾌적함이며, 몸의 무거움이거나 가벼움 - P518

이다. 그것은 화(華)의 유토피아에 가려진 현실의 이(夷)에 들리는능력이며, 말과 이미지들의 통일된 권력 아래에서 존재들의 불화와 지리멸렬함을 깨닫고, 그 세련되지 못한 힘을 다시 파악하는 능력이다. 시적 감수성은 그 또한 역사의 산물이라고 하더라도 그 자신은 역사를 모른다. 그것은 하나의 사태를 역사 속에서 추수하고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태의 원점으로 몸을 끌고 내려가 그기원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봄으로써하나의 ‘정신‘을 창출하는 능력이다. 감수성은 항상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 P519

취향은 공시적으로도 통시적으로도 늘 든든한 토대와 배경에 의지하지만, 감수성은 그 지위와 실천이 불확실하고 불안하다. 취향으로 시를 읽는 자들은 제가 읽는 것을 ‘시‘라는 말로벌써 반 너머 이해하며, 취향으로 시를 쓰는 자들에게서는 ‘시‘라는 말이 벌써 반쯤 시를 써준다. 감수성은 의지할 토대가 없다. 그것은 시적 프롤레타리아트를 만들어낸다. 랭보가 어디선가 "거지처럼 대리석 둑길을 달려갔다"고 했던 말은 빈말이 아니다. 문화가아니라 제 생명을 수단으로 삼아 시 쓰는 자는 따라서 이렇게 묻지않을 수 없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것이 시인가?
사람과 교섭하는 방법에서, 말을 다루고 시를 쓰는 태도에서, 요란하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한, 그러나 의심할 여지없이 매혹적인김이듬이 데뷔작으로 들고 나온 것도 이 질문이었다. - P519

이 말들은사실에 부합하고 따라서 순결하지만, 사실을 말하나 숨기는 방식으로 말하기에 어지럽다. 이 어지러움이 김이듬에게는 일종의 정돈에 해당한다. 그것은 극단에 이르려는 표현을 복잡성의 형식으로 절제하고, 상처와 원한의 관계가 조정될 때까지 시간을 버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가 숨기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릴 수 있는 독자에게는 이 어지러운 말만큼 잘 정돈된 말도 드물다. 이 어지러운 상태와 정돈 상태의 겹치기는 김이듬에게서 자주 시 쓰기에 비유되는 섹스의 체험과도 같다. 시 쓰기의 다른 이름인 김이듬의 섹스는, 쿤데라가 어디선가 말했던 것처럼, 육체가 속죄하는 순간에 해당한다. 그러나 쿤데라에게서 이 속죄는무겁고 늙어가는 육체의 그것이지만, 김이듬의 속죄는 공복감밖에가진 것이 없는 허기진 육체의 그것이다. 한쪽은 제 육체를 버리는것으로 끝나지만, 다른 한쪽은 제 육체가 이제부터 형성되기를 내내 기다려야 한다. 시의 감수성은 잘 살아가는 사람의 감수성이 아니라, 늘 지워졌다가 다시 회복되는 사람의 감수성이다. 김이듬의시적 운명도 재능도 거기 있다. - P526

「새떼를 베끼다』(문학과지성사, 2007)는 위선환의 세 번째 시집이다.
그가 눌러두었던 재능을 더 이상 눌러둘수없어 환갑이 다 된 나이로 뒤늦게 펜 끝을 다시 갈기 시작할 때, 도도한 필력은 금방 증명되었지만, 시단에 낮을 익히기는 그렇게 쉽지 않았다. 나이와 연조가 일치하지 않을 때 치러야 할 고통은 글 쓰는 사람들의 세계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스무 살은 서른 살을 예견하게 하고,
서른 살은 마흔 살을 설명해준다. 그 성장의 이력도 행적도 알려지지 않은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게다가 이 불편함이 비단 사람들과의 관계에만 국한된다고 할 수도 없다. 뒤늦은 행보는 그의 글쓰기를 또한 제약하기 마련이다. 젊은 시인의 모색과 망설임은 그의 진지함을 말해주는 것이지만, 어디에 매혹됨 - P546

이 없이 귀가 순해져야 할 나이에 첫 시집을 꾸리는 시인에게는 길을 알고도 모르는 척 헤매야 할 시간도 기회도 없다. 그에게는 오직 착오 없는 이행만이 허용된다. 숙고된 생각과 확고한 방법이 벌써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그가 뒤늦게 글을 써야 할 필연적인 이유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디에 들어서건, 들어선 자리에서 그는 옛날부터 거기 있었던 사람처럼 있어야 하며, 거기에 반드용 시 있어야 할 사람처럼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있었던 사람이나 있어야 할 사람이라는 말이 그 존재가 묻히거나 잊혀야 할 사람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옛날부터 거기에‘가 ‘새롭게거기에‘와 겹쳐야 하고, ‘반드시 거기에‘가 ‘자유롭게 거기에‘의 결과이어야 한다고 말해야 할 터인데, 이는 벌써 글쓰기의 고전적 이상을 말하는 것이나 같다. - P547

위선환은 질서와 평화를 앞장세우지 않는다. 질서가, 또는 질서의 허상이 보일 때마다 그는 그것을 끌고 저열한 중력의 자리로 내려와 그 앞뒤를 살피고 그 위아래를 두드리고, 힘이 다할 때까지 학대하여, 질서가 질서인 것을 고백하게 한다. 그래서 위선환이 질서를 내다볼 때 그것은 명백하게 질서이다.
하늘이 파랗다고 말할 때 하늘은 파랗고, 별똥별이 떨어진다고 말할 때 별똥별은 떨어진다. 위선환의 시는 아름답다. 이 말은 그 아름다움이 믿을 만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고전주의는 아름다움과 진실이 같은 자리에서 피어나는 나무다. 위선환의 시에서는 무질서의 진실이 질서의 아름다움과 함께 피어난다. - P556

송승환은 이지적이고 감정과 감각이 모두 섬세한 시인이지만, 몽환 속에서까지도 자기 검열이 그만큼 강한 시인이다. 그래서 그의시를 읽는 일은 즐거운 만큼 어렵다. 그의 생각을 짚기 위해서는어느 철학자가 말한 것처럼 "눈을 옆으로 한 번 돌리기만 하면 충분할 것 같은데, 시의 크고 작은 매듭에서마다 번번이 시선의 방향과 초점을 다시 조정해야 하니 특별한 정력이 필요하고, "눈을 옆으로"가 말은 쉽지만 그 옆이라는 게 때로는 안에 있고 때로는 밖에 있다. 시선의 문제가 모두 해결된다 하더라도, 또 남는 것은 송승환이 운용하는 말의 이상한 정교함이다. ‘나는 단지 내가 본 것을 그대로 기술할 뿐이다‘ - - P557

‘홍취(運)‘는 홍과 취미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는데, 그 말을 고쳐 쓸 수는 없을까. 바깥 사물에 늘 쉽게 재미를 붙여 눈여겨보고거기서 일어나는 감정을 어떤 리듬에 따라 오래도록 생기 있게 유지하는 마음의 능력이나 상태 같은 것을 표현하기 위해 ‘흥취(興
‘라는 말을 따로 만들어 쓸 수만 있다면, 이은봉의 시가 지닌 아름다움을 가장 적절하게 요약하는 말을 거기서 발견할 수도 있을것 같다. 내가 말하는 흥취가 도취와 다른 것은 그 취함의 깊이에서만은 아니다. 도취를 위해서는 어느 자리건 그 자리에 들어가야하며, 거기서는 감정이나 감각의 변덕이 추호도 용납되지 않는다.
변덕이 끼어드는 순간 도취는 깨진다. 흥취의 인간은 오히려 사물의 가장자리를 맴돌며 변덕을 그 취기의 리듬으로 삼아 제 흥취를 이어가고 또 다른 흥취를 만들어 낸다. - P566

이 흥취는 물론 황홀과 다르다. 황홀함을 느끼는 사람 앞에 사물은 균질적이다. 그에게는 껄끄러움도 끈적거림도 없다. 사물은 미묘하고 헤아리기 어려울 터인데, 사실은 헤아릴필요가 없다. 황홀함에 들기 위해 먼저 바쳐야하는 것은 분별의 관습이기 때문이다. 흥취한 인간에게는 껄끄러움과 끈적거림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정도가 어떠하건 그는 거기서 남다른 생기를 느낀다. 그는 어디까지나 분별하는 인간이지만 그가 만나는 같은 것과 다른 것들 사이에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고통스럽게 똑같은 생명의 기운이 흘러간다. 이은봉의 시에는 이 흥취가 있다.
- P567

정재학의 시에 관해 말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 초현실성을 거론해야 한다. 자주 산문시의 형식을 지니는 정재학의 시는 그만큼자주 하나 이상의 이야기를 끌어안고 있거나 그 이야기를 물고 시작하지만, 그 시말을 종잡기는 어렵다. 사건에는 인과적 추이라고불러야 할 것이 없고, 있더라도 그것은 어떤 ‘뜻‘으로 환치되려 하지 않는다. 이미지들은 늘 갑작스러운데, 그것들이 당혹스러운 점은 그 돌발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의외의 출현들이 누려야 할 공격성이나 환기성이 ‘거세‘되어 있다는 데 있다. 풀숲을헤쳐 가던 정찰병에게 갑자기 총을 겨누고 일어선 매복조들이 한번 희죽 웃고 사라져버린다면 두려워해야 할 것은 그 매복과의 조우가 아니다. - P577

박철의 시를 읽으면 늘 어딘지 한구석이 조금 허전하다는 느낌을얻게 된다. 마무리가 서툴러서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그는 시편마다 정갈하고 되바라지지 않는 리듬으로 할 말을 다 한다. 시가모호해서는 더욱 아니다. 그는 평이하게 시를 쓰고 시구를 이어갈때 논리를 생략하거나 건너뛰는 법이 없다. 시어는 늘 순순해서 딱히 은유나 상징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 없다. 그는 참외를 참외라고쓰고 침대를 침대라고 쓴다. 말의 전의는 이를테면 항상 남편을 앞세우고 본인은 뒷자리에 서는 시인의 아내가 "세컨드"라는 이름을 얻는 정도에서 그친다. 은유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은어라고 불러야 할 것이 가끔 나오지만 그 말을 모른다 해도 시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크게 지장을 받지는 않는다.  - P586

이문숙이 시에 쓰는 말은 잔잔하고 나직하다. 그의 시에는 강렬한 유혹도 기괴한 선동도 없다. 잔인한 결심도 환상적인 탈선도 없다. 시비를 걸거나 공격하지 않는다. 그는 말을 모나게 비틀지 않으며, 그 의미를 신비롭게 굴절시키지 않는다. 이문숙의 시에 어떤
‘기교‘가 있다면, 하고 싶은 말을 잠시 또는 영원히 묻어버리는 정도가 그 전부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번의 양보도 없이, 어떤 영합이나 타협도 없이, 우쭐거림도 없이, 어쩌면 그래야겠다는 생각조차 없이, 우리시대의 불행한 삶을 이만큼 깊은 눈으로그려낸 시집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시인은 이 말에 필경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정작 이문숙은 시쓰는 자신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 P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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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의미를 알았을 리 없다. 그들에게 만리국에서의 전사는 그야말로 자기 삶의 끝이며 개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빨치산은 달랐다. 그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죽음은 미 제국주의에 짓밟힌 조국의 해방이며 억압당하는 삼천만 인민의 해방을 약속하는 징표였다. 어쨌든 미군과 몇 번 싸워보고 미군 포로를 겪어본 이현상부대는 그 뒤로 미군만 보면 지던 싸움도 승리로 이끌 정도였다. ‘저 몰랑한 노란개‘도 못 잡아서야 백전불굴의 빨치산이라는 이름이아깝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포로가 되면 무릎을 꿇고 앉아 타는냄새가 나도록 손을 비비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미군 뒤에는 고도로 발전된 기술과 엄청난 무력, 그리고 군수품을 팔아 부를 축적하는 군수재벌을 가진 자본주의의 종주국 미국이 있었다. 이현상부대는 그걸 몰랐다.
백 명의 이현상부대가 만 명의 미군 부대를 이길 수는 있지만 ‘미국‘은이길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 P238

낙동강을 사이에 둔 치열한 전선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인민군은끊임없이 낙동강을 도하하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미군에게 낙동강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보루였다. 간혹 낙동강도하에 성공한 인민군 소부대들은 전멸을 당했다. 시체는 손을 대면 탄가루처럼 바스러졌다. 원자탄의 일종인 네이팜탄에 희생된 것이었다.
주전선이야 어떻든 유일하게 낙동강을 도하한 이현상부대는 마음껏 경북 일대를 휘젓고 다녔다. 낙동강 시절에는 밥 한 끼 편하게 먹어본 기억이 없을 정도였다. 뒤에서 주먹밥을 먹고 있을 때 앞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붙고, 이쪽을 한번 들쑤셔놓고 저쪽으로 도망치면 사방에서 적이 달려들고 하는 식이었다. 하루라도 맘 놓고 안전하게 묵을 만한 장소도 없었다. 이현상부대는 사방에서 밀려오는 적들에게 포위를 당해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 P238

"후퇴합시다!"
이현상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날 밤중으로 이현상부대는 영천을 향해강행군을 시작했다. 9월 30일, 이미 모든 인민군과 당기관이 조직적인 후퇴명령을 받고 후퇴한 뒤였다. 적진 깊숙이 최남단까지 침투해 있던 이현상부대는 뒤늦게 평양을 향해 북진을 시작했다.
이리하여 꼭 두 달간의 낙동강 시절이 막을 내렸다. 단숨에 서울을 함락하고 대전을 무너뜨렸던, 그 막강했던 인민군의 어떤 부대도 넘지 못한낙동강을 넘어 백 명도 안 되는 병력으로 수십 군데의 미군 기지를 공격하고 적진 사이를 누비고 다니던 이현상부대는 결국 먼저 후퇴한 인민군의 뒤를 따라 북으로 향해야 했다. 혹시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이영회부대를 위해 북상한다는 표지를 남겨놓고. 그러나 아무도 영원한 후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군의 희생자도 거의 없이 잠 한번 맘껏 자보지 못하며 싸웠던 낙동강 시절을 구빨치산들은 이현상부대의 본때를 보여준가장 치열하고도 가장 탁월했던 한때로 기억한다. - P240

그때 이현상부대에는 여자들이 열 명 정도 있었다. 반달음박질로 밀어붙이는 행군에서 제일 곤란한 것이 여자들의 용변문제였다. 남자들이야행군 도중에 잠깐 서서 볼일을 보면 끝났지만 여자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후퇴인파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길에서 실례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대열에서 빠져나와 용변을 보고 나면 부대는 이미 한참 앞서가고 있어 숨 돌릴 짬도 없이 줄곧 달려가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판인데 박종하는 일부러 도저히 용변을 볼 수도 없는 곳에서 휴식명령을 내리기 일쑤였다. 양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라 기어오를 수도 없는 곳에서 대열을 멈춰놓고 박종하는 싱글싱글 여자들을 놀려댔다. 안 볼 테니까 대열이 양쪽으로 늘어선 길 가운데에서 볼일을 보라는 것이다. 결국 용변을참고 길을 걷자니 자연 걸음걸이가 뒤뚱뒤뚱 오리 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박종하도 여자들의 폼을 그대로 흉내 내서 어기적거리며 걷는 것이다. - P244

소련이 유엔에서 한국전의 휴전을 제의하고 전세가 휴전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다는 것을 안 것도 바로 이 뱀사골에서였다. 물론 상급간부들이야 휴전이 제의된 6월 말부터 알았을 것이고 각 지방당의 일반 당원들도이전부터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남부군은 당조직이 아닌 전투부대라 항상 모든 정보가 그렇게 늦었던 것이다. 휴전협정 시 빨치산의 거취문제에대해 많은 빨치산 수기들이 마치 당시의 빨치산들이 휴전이 되면 북으로올라갈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으며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북에 대한 배신감과 함께 남한 유격투쟁에 대한 절망을 느낀 것처럼 그린 것은 사실과다르다. 물론 개중에는 그런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빨치산은 당시 최대한 적의 병력을 끌어들여 주전선으로 향하는 적의 힘을 분산시키는 것이 자신들의 유일한 임무라고 생각했고 그 임무를 위해서는 기꺼이 자기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돼 있었다. 물론 머지않아 해방이 될 거라는 확신 속에서 말이다. 그것이 무모했건 어리석었건 순수한혁명성에서였건 적어도 당시의 실정은 그랬다. 모든 정보가 차단되고 매일매일 전투에 쫓기는 상태에서 일반대원들은 실제로 당장 내일의 자기운명조차도 모르고 살 때였고, 보통의 상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감상쯤은끼어들 여지도 없던 시절이었다.  - P297

지리산의 가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산꼭대기에서부터 화려하게 타오르는 단풍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순간 낙엽이 지고 거센 북풍과함께 겨울이 닥쳐오는 것이다. 남부군의 마지막 낙원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11월 초 서남지구 경찰병력이 총동원되어 비행기까지 합동으로 달궁을 공격해 들어왔다. 대형폭탄과 기총사격에 밀려 남부군은 결국 한 달여의 천국을 버리고 그 달 말까지 지리산 곳곳의 골짜기를 전전하면서 월동준비에 바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깊어가는 겨울과 함께 남한 빨치산을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한 그 유명한 수도사단의 공세가 다가오고있었던 것이다.  - P305

 그 수많은 인민군 정규부대도 넘지 못한 낙동강을 넘어 종횡무진 적의 심장을 들쑤시고 다니던 남부군, 후평에서부터 지리산까지 몇 천리 장정 동안 유격부대답게 후방의 적을 마음껏 섬멸하고 다니던 남부군의 사실상의 유격투쟁은 이제 막을 내리고 있었다.
남부군이 완전히 전멸하기까지는 아직도 이 년이 더 남았지만 그동안남부군이 보여주었던 것은 유격투쟁의 실질적인 성과보다도 조국해방에대한 불꽃같은 집념으로 세계역사상 유례없는 악조건을 헤치고 끝까지순결하게 혁명정신을 지켜낸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었다. 거대한 불꽃으로 타올랐던 그들은 재가 되지 않고 숯이 되어 언젠가 다시 다가올 해방의 밑불로 자신을 남기고 간 것이다. - P306

그 와중에도 무정한 잠은 쏟아졌다. 보름간 계속된 1차공세를 통틀어하루에 두어 시간씩도 못 잤으니 눈구덩이건 얼음 위건 가릴 게 없었다.
꾸벅꾸벅 졸다 앞사람의 등에 머리를 박기를 수차례, 드디어 이동명령이내렸다. 엉덩이까지 얼음이 돼버린 느낌이었다.
산등선에는 거의 백 미터 간격으로 적들이 피워놓은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부대는 그 모닥불 사이를 소리 없이 빠져 얼마 전 악양전투에서확보한 식량을 비장했던 거림골로 갔지만, 식량은 단 한 톨도 남아 있지않고 부근에 남겨놓았던 부상자들의 시체 너덧 구만 눈 속에 나뒹굴고 있었다. 부대는 다시 허탈한 발걸음을 천왕봉 쪽으로 돌렸다. 중산리 능선을 따라 행군한 부대가 폐허가 된 법계사에서 트를 치고 있을 때였다. 보초선에서 난데없는 총성이 울리더니 곧 전투가 벌어졌다. 적세가 크지 않았는지 잠깐의 교전 끝에 적을 물리치긴 했지만 한바탕 전투가 붙은 곳에서 그대로 숙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부대는 다시 상봉 고지를 향해오르기 시작했다. 짧은 겨울낮이 어느새 저물고 있었다. 그때였다. 반대편에서 수십 명의 빨치산 대열이 눈을 헤치며 힘겹게 전진해오고 있었다.
경남도당이었다. 그 넓은 지리산을 이리저리 쫓겨 다니다 우연히 마주친것이다. - P312

녹 동무의 가까운 친척이라는 여자는 내내 울면서 멀어져갔다. 녹 동무의 고향은 함양 어느 마을로, 대부분이 좌익에 투신해 한문중간인 동네가 풍비박산이 났다. 처음에야 젊은이들만 시작한 일이었을 테지만 한 문중이 그렇게 되고 보니 노인네도 아낙네도 경찰의 등쌀에 견디질 못하고 모두 입산한 것이다. 눈보라 속에서의 눈물겨운 상봉은 그렇게스쳐갔다.
탈진하기 직전 부대는 눈에 파묻혀 형체도 없고 바닥과 나무기둥 몇 개만 초라하게 남아 있는 숯막에서 하루를 묵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부대는 천왕봉에 도착했다. 거대한 바윗덩어리로 된 지리산 상봉에는 온 세상을 삼켜버릴 듯 거센 광풍과 굉음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도저히 눈을뜨고 서 있지 못할 정도였다. 인간의 침입을 거부하는 분노의 표현일까.
상봉 아래 멀리 바라보이는 섬진강과 수많은 마을은 더없이 평화스러워보였다. - P313

부대는 커다란 바위를 바람막이로 삼아 아침을 짓기 시작했다. 취사반원들이 짐을 푸는 동안 대원들은 나무를 구하러 주변으로 흩어졌다. 사람키를 넘는 눈 속에서 무슨 나무를 구하겠는가. 그러나 빨치산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손으로 발로 밥그릇으로 눈을 헤치고 대원들은 어떻게든 나무를 구해왔다. 원래 산에서는 무겁고 거추장스러워서 갖고 다니지 못하는솥뚜껑 대신 목을 둘러씌워 밥을 한다. 그러면 웬만큼 높은 곳에서도밥이 설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은 눈을 솥에 퍼 넣고 불을 때서 녹인 다음씻지도 않은 쌀을 집어넣고 평소 하던 대로 광목을 씌웠는데도 웬일인지밥이 되지 않았다. 밑에서는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데 위에서는 김도 오르지 않는 것이다. 김이 오르길 아무리 기다려도 끊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 P313

지리산 상봉에까지 쫓겨 와서 두 사람의 입씨름이 또 한판 붙은것이다. 이현상의 중재로 유주목이 입맛을 쩝쩝 다시며 물러나긴 했지만그날의 정겨운 다툼을 사무치게 그리운 추억으로 남기고 유주목은 그 후어느 땐지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빨치산에게 있어 무소식이란 희소식이아니라 죽음 아니면 생포를 의미했다. 유주목이 생포됐다는 말은 그 후어디서도 들은 적이 없으니 아마 지리산 어느 골짝엔가 무덤도 없이 누워있을 것이다.
지리산 상봉의 추위는 지독했다. 눈에 젖은 채로 불을 쬐고 있으면 옷의 앞자락은 불이 붙어 타는데 뒷자락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영하 삼십 도는 족히 넘을 날씨였다. 게다가 옆 사람의 말소리도 잘 안 들릴 정도의 매서운 서북품을 생각하면 실제 체감온도는 그보다 훨씬 더했을 것이다. 내복도 없이 여름부터 입었던 군복 하나로, 눈에 젖은 고무신이나 짚신으로 그들은 그 추위를 견뎠던 것이다 - P315

한두 사람이야 어땠건 대부분 남한 사회주의자들은 최후의 순간까지적과 투쟁하면서 마지막 총 한방까지 적을 향해 겨누다가 전사하거나 자폭으로 자신의 생명을 거두었다. 이현상도, 박종하도, 김홍도, 이진범도, 이영희도, 전남도당의 박영발이나 김선우도, 전북도당의 방준표도,
모두 자신의 동지들이 숨져간 차가운 산기슭에서 자신들이 이루지 못한해방을 꿈꾸며 죽어간 것이다.
차일평의 변절을 알았건 몰랐건, 국군 비행기가 자수하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살려준다는 삐라를 온 산이 하얗게 뒤덮이도록 뿌려대도, 수많은삐라는 뿌려진 자리에서 그대로 썩어가거나 빨치산들의 뒤닦개로 긴요하게 쓰일 뿐이었다. - P318

대성골에서는 그 며칠 뒤까지 총성이 계속됐고 검붉은 불길이 그치지않았다. 1사단과 92사단을 합쳐 4백 명에 가까웠던 남부군 중에 그날 대성골을 빠져나온 사람은 150명 정도였고(상당기간이 흐른 뒤에 다 합류한 사람의 수가 그 정도였으니 그날 본대와 함께 후퇴한 사람은 백 명도 채 안 될 것이다), 57사단은 사단장 이영회가 40여 명을 데리고 탈출에 성공했으며, 역시 57사단에 있던 노영호도 남은 부대원 20명과 함께 대성골을 탈출했다.
경남도당 위원장 남경부는 그곳에서 전사했다. 경남도당은 완전히 박살난 것이다. 수백 명이 포로로 잡혔고 수백 명이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결사대를 뒤쫓아 나갔던 강만원은 온몸에 벌집처럼 총상을 입고도 끝까지 총을 놓지 않고 싸우다가 총탄이 떨어지자 마지막 남은 수류탄으로 조국의 이름을 목메어 외쳐 부르며 자폭했다. 적의 손에 죽는 것조차 그는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피의 전적, 원한의 대성골………."
남부군 정치부에 있던 시인 이명재는 대성골전투를 그렇게 적었다. 대성골전투 이후로 대성골 계곡물이 몇날며칠 핏빛으로 붉었다 한다. - P331

곧 사방을 포위한 적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돌격해 들어왔다. 순식간에 총성이 작열하면서 화약연기가 부옇게 앞을 가렸다.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졌다. 믿을 수 없는 적막이었다. 바위 밖으로설핏 고개를 내밀고 보니 적들이 다시 원위치로 물러나 있었다. 온몸에쥐가 내릴 듯한 긴장의 시간들이 초조하게 흘렀다. 잠시 뒤 다시 적들의반격이 개시됐다. 그렇게 몇 번의 적막과 총성이 교차됐을까. 중천에 떠있던 해가 어느새 기울고 있었다. 해그림자가 그들이 버티고 있는 바위숲까지 밀려들 무렵 적들도 빛이 사라지듯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궤멸의 위기를 희생자도 별로 없이 무사하게 넘긴 것이다. - P335

그러나 정작 영웅이어야 할 수많은 동지들은 곁에 없었다. 살아남은사람들은 텅 빈 주위를 돌아보며 비통한 울음을 터뜨렸다. 서훈식장은 삽시간에 눈물바다로 변했다. 살아남은 사람들 전부에게 여러 가지 상이 수여됐다. 상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피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그날 밤 오랜만에 눈물 젖은 오락회가 열렸다. 웃음과 눈물로 뒤범벅인 오락회였다. 많은 동지들이 한 줌의 흙으로 변해갔지만 아직도 그들의귓가엔 대성골전투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를 외쳐 부르며 수류탄으로 자폭하던 동지들의 마지막 외침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자폭할 힘조차 남지 않은 이들은 적의 손에 죽을 수는 없으니 총을 쏴달라고했다. 그런 동지들의 무서운 혁명정신은 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그들은 먼저 갔다. 이제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차례이다. - P338

핏빛 겨울이 가고 있었다. 바깥사람들은 절망의 봄이라고 부를 52년의봄이 왔다. 그러나 조국해방을 위해 싸우는 그들에게 절망이란 없었다.
자신들의 죽음조차도 언젠가 다가올 해방의 밑거름일 뿐…. - P339

봄이 왔다. 남부군은 피아골에서 보급투쟁만 하며 상당 기간 머물렀다.
휴식과 재정비가 필요한 때였다. 이 무렵 부대개편이 있었다. 81사단은박종하부대로, 92사단은 김지회부대로 개편했다. 박종하와 김지회는 이현상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사람들로, 이제는 곁에 없는 두 동지의 이름을 딴 것이다.
소소한 전투야 언제나 있는 일이지만 지난겨울과 같은 큰 공세는 이듬해 겨울이 다시 오기 전까지는 잠잠했고 별 피해도 없었다. 동지들의 피를 삼킨 눈도 녹고 피아골 아래 계곡엔 버들강아지에 물이 오르더니 새싹들이 하나둘 돋아나기 시작했다. 봄과 더불어 남은 대원들도 차츰 사기를회복해갔다. - P340

"같이 먹읍시다!"
그러나 양봉순을 제외한 아무도 부추무침에 손을 대지 않았다. 소금국만 떠먹으면서 대원들이라고 왜 싱싱한 부추가 먹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존경하는 대대장을 위해서 그들은 속으로 침만 삼키고 있는 것이었다.
"김 동무가 안 잡수면 나도 안 먹을라요!"
양봉순이 수저를 탁 내려놓자 그제야 대원들도 부추를 먹기 시작했다.
같이 먹자는 청을 뿌리치고 곁에 앉아 있던 그녀의 가슴이 뿌듯하게 달아올랐다.
한낱 촌 아낙네였던 양봉순이 전투부대의 대대장으로 남자 대원들의가슴에서 우러난 존경을 받으며 부추 몇 젓가락을 서로 나눠먹으며 식사를 하고 있다. 이게 바로 혁명 아닌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목숨 바쳐 건설하려는 새로운 세상의 모습이 아닌가. 여자도 남자도, 위도 아래도, 있 - P346

는 자도 없는 자도 모두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세상.......
여름밤이면 그들은 푸른 산죽을 꺾어다 깔고 자리에 누워 유난히 별이많은 지리산의 밤하늘을 올려보았다. 젖빛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다. 풀벌레의 울음소리 속에서 여름밤이 깊어갔다.
"바깥사람들은 우리가 다 죽은 줄 알겠지? 이렇게 멋진 밤을 보내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야."
"빨치산 아니면 이런 기분은 죽었다 깨나도 모를 거요."
"야! 별빛 한번 맑구만." - P347

"명순 동무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전남에서 문화선전대로 파견돼 온 김명순은 명랑하고 쾌활한 처녀로노래를 썩 잘 불렀다. 처음에는 노래보급만 하던 김명순은 수도사단 공세를 거친 뒤로 전투대원이 부족해지자 자청하다시피 전투부대로 옮겨가있었다. 후평에서 남진할 때만 해도 여성 전투원은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수도사단 공세를 거치면서 문화선전대원이나 취사원으로 활동하던 여성들도 상당수 전투부대에 참가하게 돼 52년 무렵에는 스무 명에 가까운 여성 전투원이 있었다.
"지도원 동무, 배가 아파 죽겠어요."
생리통이 유난히 심한 사람들이 몇 있었는데 김명순도 그중 하나였다.
그렇지 않아도 전투지휘자들에게 여자들 생리 때는 전투나 보급투쟁에서 제외시켜달라고 했건만, 남자 부대장에게 차마 말을 못하고 혼자서만끙끙 앓고 있는 것이었다.  - P349

목포 출신으로 여순사건 직후부터 이현상부대에 있었던 조종기는 여자들 눈만 봐도 안다는 자신의 말대로 자상하고 꼼꼼한 사람이었다. 생리문제는 여자들에게 가장 골치 아픈 문제였다. 배가 아픈 것은 둘째 치고천이 넉넉한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있는가. 그 몸으로 눈구덩이 위에쓰러져 자고 며칠 밤을 새우며 꼬박 행군을 하고 비옷도 없이 장맛비를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장거리 행군 때는 물론이고 낙동강 전선에서는 밤낮도 없이 매일매일 계속되는 전투에 쫓기느라 용변도 제대로 못 볼 때였으니 그 고통은 차마 말로 옮길 수 없을 지경이었다. 오죽했으면 아래가다 헐어 여자들의 걸음걸이가 모두 오리걸음이 됐는데 미얄스러운 박종하가 계속 여자들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며 따라다니는 통에 웃음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양봉순 같은 사람은 52년 여름 무렵엔 아예 생리가 끊겼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가장 커다란 고통이었다.  - P350

여성과 예술인을 특별히 우대하는 남부군이라 일선 지휘자들이 나름대로는 신경을 써주었지만 특별대우를 해준다고 해도 거부하는 여성들이 많았다. 남자들보다 몇 배나 더 열악한 신체조건을 가지고도 남부군의 여성들은 남성과동등하게 조국해방을 위해 싸웠던 것이다. 그녀와 양봉순을 비롯한 남부군 대부분의 여성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농사나 짓고 밥이나 하는 촌아낙네에 불과했다. 해도해도 산더미처럼 쌓이는 일 때문에 자기 자신이누구인지, 인간이 무엇인지, 또 역사와 조국이란 무엇인지도 생각할 짬이없던 그녀들이 지금은 조국의 해방을 위해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바치겠 - P350

다는 뜨거운 결의로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싸워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전열을 재정비한 남부군은 문춘 부사령관의 지휘하에 김지회부대를덕유산으로 파견해 분산투쟁에 들어갔다. 이 김지회부대는 덕유산에 들어가자마자 적에게 조발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그 전투에서 부사령관 문춘을 잃고 많은 희생자를 내고 말았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김지회부대는, 일곱 군데나 총상을 입고 거동이 불가능한 대대장 최동지와몇몇 부상환자를 남겨놓은 채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오랜 후 뜻밖에도 부상자 전원이 무사하게 지리산으로 귀환했다. 뱀을 잡아먹고 회복이 되어 지리산까지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덕유산에서 세상으로 내려갔으면 그들은 아마 편하게 나머지 인생을 살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고통의 운명을 찾아 죽음의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 P351

백운산에 온 얼마 뒤 호위대장 유화열이 그녀를 데리러 왔다. 이현상이 찾는다는 것이었다.
"선생님, 부르셨어요?"
그녀가 왔는데도 이현상은 먼 산만 바라본 채 대답이 없었다. 이번 겨울을 나면서 유난히 핼쑥해진 옆모습이 안타까웠다.
"진범이가 죽었소………."
서울에서 만나자며 남은 그녀를 걱정하던 이진범이 죽었다. 윤호를 만나면 그녀의 소식을 전하겠다고 하더니 정말 윤호의 뒤를 따라 가버린 것일까.
속리산에서……… 다들 전사했다고 하오."
언니 대신 잘하겠다고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며 그녀의 얼굴에 제 뺨을부비던 양봉순도, 임현태도, 함께 떠났던 스무 명의 동지들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 과연 해방은 올까. 앞서 간 동지들의 주검 앞에 해방을 바칠 날이 올까. 해방된 서울에서 뜨거운 눈물을 흩뿌릴 날이 정말로 있을까.
3월, 아직도 깊은 산에는 겨울눈이 그대로 쌓여있었다. 봄이 영영 오지않을 것처럼 추운 날이었다. - P361

골목까지 따라나오며 맘씨 좋은 아낙네는 발을 동동 굴렀다. 아주머니는 모를 것이다. 빨치산들이 왜 죽는 순간에도 어머니 대신 인민공화국만세를, 김일성 장군 만세를 외쳐 부르는지, 자수하면 살려준다는데도 죽음의 산으로 되돌아가는지, 그리고 혁명이 수많은 빨치산들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했는지, 자신이 혁명의 바다에 빠져보지 않고는 절대로 모를것이다.
그 무렵 그녀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다름 아닌 조병하 때문이었다. 그녀를 대하는 눈치가 남달랐던 것이다. 조병하는 5지구당 조직부장으로 바로 그녀의 직속상관이라 한 트에서 같이 생활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눈을 뜨면 조병하가 꼭 그녀의 곁에 누워 있었다. 결혼한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남녀문제에는 별 관심도 없고 눈치도 느린 그녀라 처음에는무심히 지나쳤다.  - P364

평가하든 그녀가 아는 이현상은 소박하고 따뜻하고 강인한, 그야말로 철의 투사였다. 누구에게도 반말을 하지 않고, 대원들의 짐을 대신 들어주고, 이름 없는 하부원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신경 쓰던 아버지 같은 지도자였다.
한참 신록이 푸르던 무렵 그녀는 남부군, 그 잊을 수 없는, 자신의 고향같은, 어머니 같은 남부군을 떠나 경남도당으로 향했다. 남부군에서의 만사 년은 그녀 삶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격정적이고 가장 빛나던시절이었다. 그 사 년을 제외하고 난다면 아마 그녀는 더 이상 그녀가 아니라 빈껍데기에 불과할 것이다. 그녀는 그곳에서 조국을 알았고 조국을위해 싸웠고 인간을 알았으며 인간해방을 위해 싸웠다.
정든동지들의 모습이 점점 사라져갔다. - P368

경남도당은 조개골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와 유화열, 그리고 강태봉 세 사람은 지하공작 사업의 임무를 띠고 도당과 조금 떨어진곳에서 대기하며 지하침투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했다. 어디서 구했는지사진기로 사진도 찍었다. 도민중에 붙일 사진이었다. 지리산에서의 마지막 여름이 무성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마지막이라는 것을 예감할 수 없을 만큼 한가로운 여름이었다. 세 사람은 함께 나무를 하러 다니고, 함께 개울가로 빨래를 하러 가고, 함께 식사를 준비하면서 여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화열과 김태봉이 먼저지하로 나가게 되었다. 두 사람은 모두 남해 출신이었다. 육 년 만에, 혹은 삼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땅에 돌아가는 것이다. 비합법의 신분으로. - P369

난무하고 있지만 사실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다). 종파주의자는 아니면 역으로 종파주의에 의해 희생당한 제물이든 분명한 것은 남한 현대사의 한장을 장식할 유격투쟁의 지도자였으며 남부군 대원들에게는 친아버지와같은 존경을 받던 한 탁월한 혁명가가 유격투쟁의 본거지인 지리산에서최후를 마쳤다는 사실이다. 혁명을 위해 자신의 삶 전부를 바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모든 죽음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 그는 진보하는 역사의 편에 서서, 핍박받는 민족의 편에 서서, 고통당하는 인민과 함께 자신을 불태운 것이다.
이현상이 죽고 난 두 달 뒤 대성골전투에서 살아남은 서른 명가량의 대원과 함께 계속 투쟁하던 57사단 전멸당했다.  - P374

남부군은 사라졌어도 조국의 해방을 위해 싸우던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의 지도자가 설령 미제의 앞잡이였다고 해도, 그리고 종파주의자였다고 해도 그들은 사상의 순결성을 죽음으로 지켜냈다.
절망의 겨울이 깊어갔다. 그러나 영원한 절망은 아니었다.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자기 몸을 썩혀 절망의 시절을 보내고 수많은 밀알을만들어내듯이 그들은 점점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도 언젠가는자기들의 눈물겨운 투쟁이 이어져 이 땅의 프롤레타리아가,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가 해방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 먼 날을 위해 그들은 스스로 절망을 선택한 것이었다. - P376

농사짓던 때를 생각하는 것일까. 김 영감은 산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는 경상도 쪽을 자주 쳐다보았다. 수년간 목숨을 걸고 싸워놓고도 그 대가로 자기 땅 몇 마지기 갖고 농사짓는 게 소원이라는 김 영감, 그 소박한소원조차도 이뤄지지 않는 세상이 저 순박한 김 영감을 혁명의 물결로 밀어 넣은 것이리라. 일한 만큼 대접받고 사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고 지난한 길일까. 오십 평생 노동으로 지문이 닳아 없어진 김 영감이 자기 땅 한마지기 가지고 사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일까. 자기 이름자도 쓸 줄 모른다고 부끄러워하는 김 영감의 모습을 보면서, 쇠죽 끓는 냄새가 세상에서가장 구수하다는 김 영감을 보면서, 그녀는 지금 현재의 고통이 어쨌건스스로 선택한 길이 분명히 옳은 일이었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 P378

다른 동지들은 어떻게 됐을까. 흰 눈이 쌓인 겨울산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동지들이 흘린 피처럼 노을은 붉었다. 지난 칠 년간의 삶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지난 칠 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가장 고통스러웠으또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처음으로 삶이 무엇인지 알았고 자신의 존재를 알았으며 조국을 알았고 역사를 알았다. 그녀는 혁명을 위해아이를 바쳤으며 남편을 바쳤다.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송두리째 바쳤다. 그리고 혁명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녀 자신의 혁명은 그녀를새로운 사람으로 탄생시켰다. 지금은 졌다. 그러나 언젠가는 또다시 해방이 올 것이다. 이 겨울산에 또다시 녹음이 짙푸르러오는 것처럼. - P388

남편의 얼굴이, 이현상, 박종하, 이진범, 양봉순, 다 기억할 수도 없는수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동지들의 피가 스미고 살이 썩은 이 산은 봄이면 더 눈부신 녹음을 피워낼 것이다. 이 산으로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역사는 소용돌이치며 저 거대한 지리산의 산맥처럼 수많은 봉우리를 만들며 흘러간다. 우리는 어떤 봉우리를 만든 것일까. 우리는 정상에오르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또 다른 동지들이 정상으로 오를 것이다. ‘평등‘이라는 말만큼 매혹적인 게 어디 있는가, 불평등한 세상이 계속되는 한 우리처럼 그 말에 자신의 생명을 걸고 불꽃같은 열정으로 또다시 꿈꾸는 자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그 혁명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 P388

다시 만날 것이다. 이현상도, 박종하도, 마실 동무도, 김 영감도...….….
아무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해도 좋다. 지리산에 담긴 역사를 몰라도좋다. 어떤 이름으로건 기어이 오고야 말 해방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것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빛나는 것이었다. 대성골에서 최후의 총탄까지 적의 심장을 겨누고 수류탄으로 자폭한 동지들의 외침이 생생하게들려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조선노동당 만세!"
어디서 어떤 식으로 그녀의 운명이 닥쳐오건 동지들의 그 외침과 수류탄의 장렬한 폭발음을 떠날 수는 없었다. 나는 살아서 내려간다. 동지들!
그러나 나는 반드시 동지들의 곁으로 돌아오고 말 것이다.
노을이 지고 지리산은 어둠에 묻혀갔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산으로부터점점 멀어졌다.
(끝) -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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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김구용


나는
시들어 떨어진 꽃에서
어느 아기 어머니를 보았다.
그 꺼칠한 길에
이상한 해무리가 떠 있었다.

몸은 괴로움을
영양화하는 공장이었으나
분명한 생각의 경치이며
실은 비를 맞고 있었다,
책임 없는 아름다움을
누구나 감상하듯이.

힘드는 목숨일 바에야
흠 없는 말씀은
자동기가 낳은 상품 정도라고나 할까.
다리 밑에서 더러운
사람들은 정을 나눈다.

가을 나무는
어느 아버지,
나는 감동을 받았다.
나라 없는 포로의 행렬이
다시 떠난 뒤에도.......



구용 시인이 이 시를 쓴 것은 1966년이자 내 나이 스물한 살 때의 일이다. 나는 아버지가 아니었으며, 언젠가는 아버지가 되리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 시절 어느 날 바느질을 하던 어머니가 하릴없이 누워 있는 나에게 말했다. ˝남섭아, 바늘에 실 좀 끼워다오.˝ 남섭은 내 이름이 아니다. 당시의 내나이가 되기 전에 비참한 정황에서 죽었던, 어머니의 동생이자 내외삼촌의 이름이다. 깊은 슬픔을 밑에 깔고 어머니가 누리는 잔잔한 평화 속에서 죽은 삼촌과 내가 뒤섞이는 이 인접성, 나는 그것을 어머니의 환유라고 부른다. 어머니는 어느 날 아버지 대신 나를 부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순수하고 완벽해서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다. 환유는 결여된은유다. 어머니의 결여와 세상의 결여가 내 결여 속에 들어옴으로써 나는 아버지가 된다. 어디엔가 정신적인 우주가 있다면 그것이발휘될 수 있는 터전은 나의 결여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는 문학의 입장에서 매우 행복한 시대였다.
한 작가가 쓰는 한 줄의 글은 그를 감옥에 들어가게 할 수도 있었고 그의 손톱을 뽑게 할 수도 있었으며, 때로는 그의 목숨을 위협했다. 이 정황은 물론 처참한 것이었지만, 작가는 자신의 글이 그가 내내 희망하던 세계의 건설에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이바지하고있으며, 인간의 미래를 위한 기획에 벌써 깊숙이 개입하고 있음을거기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고 그는 헛일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비단 민중과 민족의 기치 아래 전선을 형성했던 작가들에게만 해당되는말은 아니다. 순수주의자라고 지칭되었건 모더니스트라고 분류되었건 간에 문학 그 자체의 가치를 받들었던 작가들도 역사에 대해 - P214

서뿐만 아니라 역사를 초월한 근본적이고 가장 과격한 반항자들이라고 자신들을 규정할 때, 자신들의 글쓰기에 대한 이 가치부여의원기를 바로 이 거친 현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발견할 수는 없었기때문이다. 또한 이는 작가들과 시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인 감시자이고 또한 모든 사람이 그감시의 잠재적인 희생자인 정황에서, 한 시민이 소설 한 권을 사고시집 한 권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아직 이르지 못한 사회와 경험하지 못한 행복에 대한 신조의 표명이었으며, 누군가 제 손톱을 뽑으려 할 때 그것을 견뎌낼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일이기도했다. 작가와 독자의 유대는 강했고, 글쓰기와 독서 상호간의 기대지평은 그만큼 넓었다. - P215

그러나 (마지막으로 그러나라고 말하자) 감춰진 것이건 비어 있는 것이건, 인간 의식이 책임져야 할 몫인 1인치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해체론자들의 전망에 따르면 주체가 소멸됨으로써 비어 있는 이 자리는 타자의 자리이며, 무의식의 자리이며,
기호 대신 말의 자리이며, 제도 대신 자연의 자리이며, 문화적으로주변인의 자리이며, 정치경제적으로 프롤레타리아의 자리이다. 물 - P220

론 이것은 그 논자들의 주장일뿐 실제상황은 아니다. 실제로 그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주체를 해체한다고 말하는 그 해체의 주체들이다. 이 해체 작업이 벌써 어떻게 거대한 장치가 되고, 얼마나견고한 제도의 성이 되어 있는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은벌써 관행태가 되어 있다. (문학이 허위라는 말을 쓸 때 그것은 바로 이 관행태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문제는 바르트가 아니라 바르트 이후의 바르트들이며, 푸코가 아니라 푸코 이후의 푸코들이며,
데리다가 아니라 데리다 이후의 데리다들이다. 이 ‘이후의 들‘들은인간의 분별력에 대한 신뢰를 비웃는 신자유주의적 기술파시즘과공고하게 결속되어, 날마다 이미지-환상을 생산하고, 모든 인간적시간을 토막냄으로써 과거에 대한 우리의 기억을 끊어놓는다. - P221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어떤 반해체의 작업을 상상할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저 해체의 작업과 제도 속에서 그 최초의 의도와 이후의 장치들을 구분해내는 일로부터 우선 시작할 것이다. 관행의피안을 상정한다는 것, 그것은 문학이 늘 하던 일이다. 이 일은 매우 느리게 진행될 것이고, 독서 대중의 시선을 끌기도 어려울 것이다. 문학은 말의 온전한 의미에서 타자가 될 것이다. 그 성찰과 반성의 노력으로 모든 속도와 맹목의 제동장치로 기능한다는 것, 그것은 문학이 늘 하던 일이다. 이 기술파시즘의 시대에, 이 이미지-환상의 시대에, 문학은 늘 하던 일을 영예 없이 그렇게 계속함으로써자기 존립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 P221

나는
시들어 떨어진 꽃에서
어느 아기 어머니를 보았다.
그 꺼칠한 길에
이상한 해무리가 떠 있었다.

몸은 괴로움을
영양화하는 공장이었으나
분명한 생각의 경치이며
실은 비를 맞고 있었다,
책임 없는 아름다움을
누구나 감상하듯이. - P225

힘드는 목숨일 바에야
흠 없는 말씀은
자동기가 낳은 상품 정도라고나 할까.
다리 밑에서 더러운
사람들은 정을 나눈다.

가을 나무는
어느 아버지,
나는 감동을 받았다.
나라 없는 포로의 행렬이
다시 떠난 뒤에도....... - P226

「어느 날」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품위 있는 말과 자연스런 리듬,
잘 만들어진 은유와 지혜로운 결구는 아무리 고통스런 삶이라도하나의 풍경으로 보이게 하겠지만, 이 흠 없는 말씀이 "다리 밑에서" 나누는 "더러운 사람들의 정만 하겠는가. "나라 없는 포로의 행렬은 바람에 불려가는 낙엽들이겠지만, 또한 만물의 아버지인 시인이 안아 들여 합당한 표현을 만들어주어야 할 타자들이기도 하다. 주지주의와는 관계없이, 선비였던 구용 시인은 시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긴 산문시들을 빌려 언어적 측면에서건 사상적 측면에서건 온갖 모색을 다 하면서도, 정작 운문의 형태를 갖춘시에서는 가능한 한 온건하게 말하려고 애쓴다. 식민지 시대에 뒤 - P226

이어 전란을 겪었던 나라에서 아버지 되기의 책임이 그렇게 막중했던 것이다.
구용 시인이 이 시를 쓴 것은 1966년이자 내 나이 스물한 살 때의 일이다. 나는 아버지가 아니었으며, 언젠가는 아버지가 되리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 시절 어느 날 바느질을 하던 어머니가 하릴없이 누워 있는 나에게 말했다. "남섭아, 바늘에 실 좀 끼워다오." 남섭은 내 이름이 아니다. 당시의 내나이가 되기 전에 비참한 정황에서 죽었던, 어머니의 동생이자 내외삼촌의 이름이다. 깊은 슬픔을 밑에 깔고 어머니가 누리는 잔잔한 평화 속에서 죽은 삼촌과 내가 뒤섞이는 이 인접성, 나는 그것을 어머니의 환유라고 부른다. 어머니는 어느 날 아버지 대신 나를 부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순수하고 완벽해서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다. 환유는 결여된은유다. 어머니의 결여와 세상의 결여가 내 결여 속에 들어옴으로써 나는 아버지가 된다. 어디엔가 정신적인 우주가 있다면 그것이발휘될 수 있는 터전은 나의 결여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 P227

한용운이 『님의 침묵을 쓸 때, 그에게는 분명히 조국광복에 대한 염원이 있었으며 높은 지혜의 체득을 향한 한 선사의 희구가 있었다. 시집에서 줄곧 님을 그리워하는 한 여자의 목소리를 빌리고있던 그에게 또한 한 연인의 열정이 없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님의 침묵의 ‘작가적 의도‘에 관해 말하려 한다면 이 염원과 희구와열정의 어느 한쪽도 제쳐놓을 수 없다. 시인이 애국시를 쓰려 했을 때도 그는 여전히 연인이었으며, 오도시를 쓰는 선사로서도 민 - P231

족의 암담한 현실에서 초탈할 수 없었으며, 연애시의 어조로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그는 무애의 정신적 경지를 구하는 수도자로 남아 있었다. 시인이 무엇을 의도했건, 이 마음속의 다른 힘들이 끼어 들어와 『님의 침묵』을 그 의도 이상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이 시집에는 타고르의 독서에서 얻은 새로운 시에 대한 개념이 있고, 불경의 강설을 통해 익숙해진 문체가있으며, 근대문물에 대한 시인 나름의 이해가 있으며, 당시의 우리말이 놓인 형편이 있고, 시인이 염두에 둔 독자들의 정신상태가 있다. 이 모든 사정은, 저 염원과 희구와 열망과 함께, 시인의 의도가
‘님의 침묵』이라는 또 하나의 의도로 ‘생산되는 조건이었다. 어떤냉정한 작가도 이 사정과 힘들이 자기 작품에 개입하는 양과 방법과 계기를 완전히 결정하거나 조절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어떤 근면한 연구자도 이 조건들이 작품의 여러 층위에서 맺고 있는 관계를 밑바닥까지 파헤치기는 어렵다. 그것은 온갖 종류의 복잡성이론들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문학으로 실천된 복잡성이다. - P232

님의 침묵』은 우리 문학에 가르쳐주는 것이 많다. 식민지 치하에서 주눅 든 우리말의 정서적 역량을 높인 이 시집은 음울하기 짝이 없는 현실에서도 준동하는 정신의 한 활기를 늘 다시 증명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기획한 최초의 의도에 방향이 다른 여러 의지와 힘들이 개입하여 그 의도 이상의 의도를 만들어낸 과정자체가 우리 문학으로서는 어디에 비할 데 없이 중요한 경험이다.
『님의 침묵』은 여러 관점에서 늘 새롭게 해석되고 있지만, 그 해석들은 따로 놀지 않고 서로 엇물리거나 감싼다. 이 점은 만해가 독립운동가로도 선사로도 연인으로도 한 인간의 성의를 다함으로써, - P232

자기 자신을 그 의지와 힘들이 서로 북돋으며 성장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었음을 또한 증명한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의 이 성의는 그가 자신의 작품에 최초에부여하려 했던 의도의 성의와 다른 것이 아니다. 작품이 항상 그최초의 의도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작품이 발휘하는 힘은 그 최초의 성의로 환원된다. 어떤 변주에 따라, 높은 지혜에의 희구가 되고 좋은 세상을 향한 비원이 되고 순결한 사랑의 열정이 되는 이 절대적인 성의의 기운은 ‘님의 침묵』의 페이지 하나하나를 꿰뚫는다. 성의는 끊이지 않으나 그것이 어디에 닿을지는알기 어렵다. 거기에 닿는 길은 멀고도 멀지만, 거기서 만나려 했던 것을 이름 짓고 그려내는 일이 또 어렵다. 마음은 그 어려움만큼 깊어진다.  - P233

절대라는 말은 인간의 정신으로 온전하게 상상할 수 없으며, 인간의 인식으로 파악할 수 없고,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현상과 존재를 단순하게 표현하기 위해 끌어 붙이는 말이지만,
그 현상이나 존재 자체는 모든 복잡성 이론의 시발점이 된다. 어느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어떤 것을 말하기 위해, 그 ‘어느 것‘에해당하는 것을 모두 열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짐작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어느 것들‘은 ‘어떤 것‘을 무한하게 나타내고 무한하게 가린다. 그래서 짐작할 수 없었던 ‘어느 것‘ 하나가 모든 논리를 공론으로 돌리고 모든 계산을 무위에 빠지게 한다. 바라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저 거룩한 님 앞에서 만해의 이별은 ‘어느 것들‘
의 조건이 다 파악되지 않는 자리에서 그리운 ‘어떤 것‘을 말하고 - P241

내다보는 알레고리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것‘을 무한하게 드러내면서 가리는 ‘어느 것들‘이 차례차례 그리고 동시에 들어오는 괄호다. 이 괄호는, 절대라는 말이 그렇듯이, 정신의 자유로움과 감정의섬세함과 감각의 깊이를 촉구하는 명령과 다른 것이 아니다. 만해는 님과 이별의 개념으로 서투르지만 서투름을 늘 다시 원통하게여기는 말로 끝없이 쓰이게 될끝없이 저 괄호를 메우게 될 시를 지시한다. - P242

자연에 대한 언급이 없는 소월의 시는 거의 없다. 『진달래꽃‘에서는 시구 몇 개만 건너면 자연을 만나게 되고, 또 그 자연이 시의 음조 속에 끼어들거나 젖어드는 방식은 적절하다기보다 차라리 감쪽같아서 특별히 ‘자연‘이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늘 거기있는 길섶의 풀잎처럼 지나쳐버릴 정도다. 그에게서 자연이 주제인지 배경인지를 따지는 일이 그만큼 부질없기도 하다. 그의 정한은 자연과 구별되지 않으며, 하나하나의 감정은 자연에서부터 배어 나와 다시 자연 속으로 스며든다.  - P243

문법이 깊이를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소원은 늘 자연을 말했지만 자연으로 풍경을 만들지는 않았다.
어느 이론가가 말한 것처럼 현대 의식은 풍경의 발견 이후에만 있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이 환경 속에 확산되면서, 또는 환경이 정신속에 삼투하면서, 자아가 자연을 통해 생각하고, 자연이 자아를 대신해서 생각하는 것도 현대적 지각의 하나이다. 우리가 현대 예술의 가장 고양된 열정을 믿는다면 그 지각이야말로 본질적으로 현대적이다. 김소월의 자연은 민요적 자연이 아니다. - P252

김기림에게바치는 짧은 인사

식민지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의 진정한 비극은 부끄러운 일과도 마찬가지로 영예롭게 여겨질 일까지도 자주 죄가 된다는 데 있을것이다. 믿고 살아온 정신의 터전이 비웃음거리가 되고, 그렇다고새로운 터전을 제 의지로 일궈낼 수도 없는 사정에서는, 순박한 삶작은 몽매함의 표현이 되고, 고매한 이상의 추구조차도 도피의 혐의를 벗기 어렵다. 명랑한 활기도 제 처지를 망각한 사람의 경박함으로 치부되기 십상이지만, 저와 제 주변을 황폐하게 하는 우울한 정신으로 제사지를 절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시절이 불리할수록 어떤 단안이 필요하고, 어떤 방식으로건 한 걸음을 내딛는 일이 중요한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 P253

식민지의 모더니스트는 기선이면서 동시에 세관이다. 바다와 나비」를 다시 한 번 읽어보자.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 P260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이 작품을 두고 ‘순진무구하고 철없는 지식인‘이니 ‘냉혹한 현실‘이니 하는 말은 사실 부질없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좌절감‘이란 말도 따지고보면 부질없다. 문학적 모험이건 다른 모험이건 모험가는 순진하거나 철이 없어서 모험하는 것이다. 누가 콜럼버스에게 대서양의 넓이를 일러주었는가, 모험가에게 그가 헤쳐가려는 바다의 수심은 아무도 "일러준 일이 없는 깊이가 아니라 아무도 알지 못하는 깊이일 뿐이다. 흰나비는 바다를 "청무우밭인가" 여겼다고 한다. 그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낯익은 세계를 찾아갔던 것이다. 비극은 거기 있다.  - P261

식민지적 자기 검열의 가장 큰 비극은 거기, 자기가 알지 못하는 해답을 다른 어떤 사람은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데에 있다. 물론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는 말은 그가 공주는 아니라는 말도 된다. 시인은 자신의 실패를 엄살 섞어서 말하지만, 이 엄살에는 나도 할 만큼은 했다는속뜻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 엄살 위에 청백이 선명하게 대조되는그림 하나를 보여준다. 이 아름답고 처절한 그림을 그리면서 그는자기 뒤에 다른 어떤 사람이 이 실패를 두려워 말고 저 난바다로나아가기를 바란다.
우리가 알려고 애쓰는 것을 다른 사람이라고 해서 벌써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까지 우리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김기림의 도움이 크다. 우리는 김기림에게 고개 숙여 절하며 그를 위로할 수 있다. - P261

윤동주는 난해한 시인이 아니다. 그는 모국어를 늘 순탄하게 운용하고, 그때에나 지금에나 이 나라 사람들을 충동하여 시를 쓰고 싶게 만드는 다정하고도 날카로운 정서를 손에 잡힐 듯이 구체적으로 노래하였다. 기독교적 주제의 시들이 전통적 한국 정서와 약간의 거리를 지닌 것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이들 시 역시 종교적 성향이 다르고 성서적 지식이 빈약한 독자들에게도 인간과 세계에대한 실존적 고뇌라는 보편적 측면에서 접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를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르다. 그의 좋은 시-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에수록된 대부분의 시들과 다른 여러 편의 시들이 여기 해당한다―에는 거기 표현된 생각과 마음의 상태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상당 - P284

한 성찰을 요청하는 시구들이 늘 하나씩 들어 있다. 이 강연은 이들 시구를 다시 상기하고, 가능한 한 그것들을 이해해보려는 시도이다.
윤동주는 시에서 자주 하나의 모순을 돌출해내고 대개의 경우그 모순으로 시의 결구를 삼는다. 그의 시에서 시적 서정이 예민하게 드러나는 것도 이때이다. 이 모순은 논리적 서투름이나 비약의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한 정신이 논리의 경계에까지 철저하게 추론을 이끌어나간 끝에 더 이상의 진전이 불가능한 궁지에 이르러,
그 논리체계 자체를 다시 검토하여 그 논리의 피안을 바라보는 사고의 결과이다.
- P285

윤동주는 자신의 심정에 진실하였고, 배움에 진실하였으며, 자신의 시대 앞에서 진실하였다. 이 진실의 끝에서 그는 한 세계 안에서 다른 세계가 열리는 아이러니를 발견하였으며, 그 모순의 순간을 정성스럽게 구조화하였다. 그가 시에서 넓고 깊은 지식을 나열한 것도 아니고, 시구와 시어 하나하나를 정밀하게 계산하여 쓴것도 아니지만, 그의 시에서 뛰어난 지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진실의 끝에 이르려는 이 노력이 자주 생생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진실의 끝에서 하나의 모순을 발견한다는 것은, 그리고 그 모순을자기 사고의 터전으로 삼는다는 것은 주어진 진실을 자유롭게 비평하고, 그 진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검토를 실천하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윤동주는 식민지 시대에 이 자유 비평과 자기검토의 힘으로 거의 유일하게 변증법적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있는 성장과 발전의 시를 썼다. 해방 이후 한국에서 한때 세력을떨쳤던 지성주의 내지 주지주의의 시들이 공소함을 면할 수 없었던 것은 윤동주의 시를 충분히 이해하고 활용하지 못한 데도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 P295

김수영의 시어를 그의 현실 인식과 결부시키는 일은 새삼스럽지만 그만큼 정당하기도 하다. 그러나 시인으로서 김수영이 현실에 천착하였다는 말은 부족하다. 그는 현실만 보았고, 그것도 매우좁은 현실에만 천착했다. 그는 단 한 편의 여행시도 쓰지 않았으며, 자연 경관에 관한 길고 깊은 관상보다 그에게 더 낯선 것은 없다. 그의 시는 종로를 비롯한 서울 거리와 그 외곽 동네들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그는 양계장을 경영하였지만 그것은 가내공업이나진배없었고, 곁들여 채마밭을 일구기도 하였지만 거기에 지속적인정성을 바칠 처지가 아니었다. 그는 자연을 농사꾼이 바라보듯, 다시 말해서 그의 시대에 이 땅의 거의 모든 사람이 바라보듯, 바라 - P299

보지 않는다. 「거대한 뿌리가 증언하듯 그의 마음속에도 전통의깊은 뿌리가 분명하게 존재하였지만, 자신이 체험한 현실을 그 정서의 전통에 끌어다 붙이는 일은 그에게 금지된 것이나 같았다. 자연에 대한 감정은 어디서나 민족 감정과 엇물려 있기 마련인데, 그렇기에 더욱 이 감정은 「병풍」에서 말하듯 "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것"인 "설움"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그에게 땅에 떨어진 눈은 겨울 산촌의 아늑한 풍경과 연결되지 않았고, 봄에 돋는 새싹은친구의 사무실이 사무실인 것만큼만 새싹이었다. 그는 눈과 새싹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보았고, 처음으로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처럼 눈이라고, 새싹이라고 말했다. - P300

시가 현실을 발견한다는 말은 현실이 지니고 있는 시적 힘을 발견한다는 말과 다른 말이 아니다. 이는 용기의 문제이기도 하지만이해와 감수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더할 수 없이 메마른 현실에서어떻게 준동하는 힘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힘이 거기 있기나 한 것일까, 있다 한들 거기서 어떤 감동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현대시인‘으로서 첨단의 노래" (서시」)를 부르려 한사람이 풀어야 할 숙제였다. 김수영과 같은 시대에 그림을 그렸던박수근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현실에 대한 그의 태도를 이해하는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박수근도 전후 독재치하의 가난한 현실에 밀착하여, 근근하게 살아가는 농민과 소상인들의 삶을 그렸지만,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이 화가의 음울하면서도 아늑한 회색 톤과 양식화된 기하학적 선은 보는 눈을 매혹시켜, 현실을 세월의 먼지 속에 가려진 먼 옛날의 풍경처럼 바라보게 한다.
현실은 예술적 기억술의 세계로 바뀐다. 같은 시대와 그 이후까지, - P301

박수근의 회화에서 사물의 형태를 정돈하고 평면화하는 기하학적 선, 혹은 김현승의 시에서 사물을 결정화(化)하는 이미지를김수영에게서는 그 순결한 말이 대신한다. 김수영만큼 관념적인시, 정확히 말해서 관념을 설파하고 관념 아래 숨는 시를 증오했던사람도 드물다. 만들어진 관념을 사물에 들씌우는 일은 사물을 모욕하는 일이며, 현실에서 돋아나는 새로운 생각의 싹을 막아버리는 포기 행위의 일종이다. 정서의 안일한 장식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관념을 앞세우는 일이 없는 김수영의 언어는 그 의미를 바로 그 자리에서 손색없이 드러내는 그 성질에 의하여 벌써 어떤 사물, 어떤 현상을 절대적으로 지시하는 관념어의 가치와 자격을 얻는다. - P303

필연성의 고리에 붙잡히지 않는다. 길들여진 언어의 정서적 후원도, 명쾌한 이론의 안전한 권력도 바라지 않았던 김수영은 현실의언어로 현실을 진솔하면서도 절박하게 그리는 가운데 다른 삶을전망하고 끌어당기는 알레고리를 바로 이 삶에서 발견하였다. 그는 현실을 사는 것으로 다른 삶을 실천하였으며, 이 삶의 그림으로현실의 밖을 그렸다. 그는 현실을 직설하였지만, 그가 맨땅에 내던진 말에는 심정의 특별한 깊이가 아닌 것이 없고, 위대한 용기가아닌 것이 없고, 영원한 활력이 아닌 것이 없다. 진정한 초월이 거기 있으며, 김수영의 진정한 현대성이 거기 있다. - P310

김수영은 우리 시에 용기를 주었다. 그는 시에 시적으로 된 말을모은 것이 아니라 모든 말이 시적 힘을 지니도록 시를 썼으며, 이점에서 그는 자유시의 이상을 실천했다. 그에게서 처음으로 시적인 말과 일반적인 말의 차별이 완전히 사라졌다. 일상의 대화와 나날의 일기, 신문기사와 술자리의 흥분된 토론에서 거두어들인 것같은 시의 말들은 하나같이 사물의 속내를 짚어 그것과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감정이 맺는 관계를 예민하게 드러내고, 어떤 의문을, 어떤 욕망을, 어떤 성찰을, 어떤 전망을 거기서 솟아오르게 함으로써 유례없이 강력한 시정을 형성했다. 그에게 시는 소란한 현실 위에 걸리게 될 예쁘고 평화로운 액자도 아니었고, 삶의 전투에서 패배한 사람들이 찾아가는 망명지도 아니었다. 그것은 현실을현실로 발견하는 일이자 그것을 정신화하는 일이었고, 현실의 확장이자 그 전복이었다. 현실을 시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시를 추출하고, 현실을 시로 끌어올리는 이 능력은 곧바로 우리 문학에서 모더니즘과 사실주의를 연결시키는 힘이 되었다. - P310

김수영은 우리 시에서 지적인 것의 개념과 용도를 바꾸었다. 그는 알려진 지식체계의 진실성을 다시 한 번 증명하기 위해 또 하나의 실험 데이터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시를 쓰지 않았다. 한 번 사물 앞에서 놀라고, 그 놀라움을 저지혜의 말로 위무하는 절차, 다시 말해서 발견과 정돈의 기승전결은 그의 시에 없다. 마찬가지로평론가가 알아서 말하게 될 것을 미리 써놓는 식의 암묵적 공모의시 쓰기가 그에게 용서될 수는 없었다. 김수영이 말하는 ‘온몸으로시 쓰기‘의 본뜻도 거기 있다. 지식체계에 복무하기를 거부하고 탈주의 모험을 감행하는 그의 시가 말끔하고 지적으로 숙련된 외관을 누릴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 현대시의 한쪽을 오랫동안지배해온 지성주의 현대파들은 시 속에 혼란의 장소인 몸의 노출을 바라지 않았다. - P311

김수영이 그랬던 것처럼, 오히려 모험을 모험의 지식으로 뒤쫓는 모험가들, 저 아류 모험가들의 안전한 모험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젊은 시인들은 한때 자신들을 ‘미래‘라고 부르려하였다. 미래파라는 이름은 여러 가지로 불편하지만 그 말이 빈말은 아니다. 시가 미래를 전망하는 지점은 현실이 은유적 힘을 얻는알레고리적 계기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어쩌면, 김수영이 보기에는 "복사씨와 살구씨가" "사랑에 미쳐 날뛰는 날에 사는 것이겠지만 여전히 "도시의 피로"에서 배운다. 그들은 현실이 가볍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말로 현실을 움직일 수 있다고믿는다. 그것은 김수영의 능력이었으며, 시의 능력이다. - P314

이문숙은 좋은 시인이다. 과장하지 않고도 아주 좋은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는 시에 깊은 관심을 지닌 사람들에게조차 알려지지 않았을까. 필경 그 이유는 그가 지닌 삶의 태도와 관련이 있을 터인데, 이 말은 그가 자신을 널리 알리는 데에 서툴렀다거나 애써 노력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알려지지 않음은 오히려 그의 선택이다. 이문숙은 마치 세상의 다른 모든 일을제쳐두고 시 쓰기를 선택하듯이 이 알려지지 않음을 선택했다. 고통 속에 잊힌 사람으로서의 그 조건이 없다면 아마 그의 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문숙의 이 선택은 그의 시에 관해 말을 하려는 사람의 태도까지 규정한다. 알려지지 않으려는 그의 시에는 당연히 날카로운 방법도 우쭐거리는 주제도 없다. - P428

이영광은 유비적으로 사고하는 시인이다. 그는 세상의 사물이 제마음의 한 표정이거나 제가 지녀야 할 심정의 지표라고 생각한다.
그는 사물의 본질과 제 본성을 함께 보고 싶어 한다. 이는 그가 견고한 삶을 처음부터 원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며, 그 견고함을 쉽게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 시대의 다른 여러 젊은 시인들이나 인문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해답이 늘 뒤로 연기되는 일을 하고 있는 그에게 삶의 단단함을 확인해줄 것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확실한 근거와 연결되어 있고제 입에서 나오는 낱말 하나하나가 풍요로운 의미에 닿아 있기를바라지만, 그의 작업과 생존 자체가 불확실한 토대 위에 얹혀 있어, 견고한 의지를 소외시킬 뿐만 아니라 자주 그 진실성을 의심하 - P450

게 한다. 삶이 중간지대에서 서성이고 있다는 것은 최초의 순결한의지가 죄와 부정으로 왜곡되어 제 길을 올곧게 짚어가지 않았거나, 최소한 자신과 세상에 바쳐야 할 성의가 여전히 부족함을 어쩔수 없이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운명 의식 같은 것이 생겨나는것도 아마 이때일 것이다. 그것은 있는 것이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가 아니라, 있는 것이 왜 하필 그 자리에 있는가를 묻게 되면서 시작될 터이다.
한 인간의 유비적 사고는 그에게 불확실한 것들 너머에서 확실한 것을 엿보게 하고, 그의 신산한 삶을 어떤 거룩하거나 순결한뜻에 연결시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본성을 왜곡과 부정으로부터 복성시키는 계기를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일을 하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유비적 사고가 사람을 항상행복하게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 반대일 때가 더 많다.  - P451

시 쓰기에도 독서의 시 쓰기가 있고 해석의 시 쓰기가있다. 어떤 시인은 제 말의 끝에 이르러서야 제가 무슨 말을 하고있으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게 된다. 다른 시인은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으나 말할 것을 찾아가는 사람처럼 연출하며 말한다. 이영광은 지긋지긋한 슬픔」의 어느 대목에서 "나는 닐니리 통합으로 시를 훔쳤다"고 문득 고백한다. 훔쳤다는 말이야 빈말이겠지만, "닐니리 통밥"에는 내용이 없지 않다. 동밥은 연출하는 시 쓰기의 존재방식이다. 명민한 그는 어쩌면 유비적 사고에 천착할 때부터 그 파산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알고도 모르는 척 찾아 헤매었던 것이 바닥을 드러냈다고 해서 시가 바닥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그는 이제 아는 것이 없는 자로 현실 앞에 서게 될 것이며, 현실을 소박하고 용감하게 말하는가운데, 무엇을 유비한다는 생각도 없이, 무엇을 유비할 겨를도 없이, 전혀 다른 수준의 유비에 도달하기도할 것이다. 시는 아는 것을 상징하지 않는다. 상징은 모르는 것에 대한 말이다. 이 말을 사족으로 붙인다. - P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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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노래라고 흔히 말하지만, 시가 글자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기 훨씬 전부터, 그러니까 시가 그저 노래일 때부터, 시 짓는 일이말에 매듭을 지어 붙이려는 기이한 생각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던것 같다. ‘‘라는 한자만 해도 그렇다. 왼쪽의 ‘말씀 언(言)‘은 예나지금이나 말이라는 뜻이지만, 오른쪽의 ‘절사(寺)는 원래 관청을가리키는 글자였다고 한다. 이 글자를 다시 분해하면 ‘선비 사(士)‘
와 ‘마디 촌(寸)‘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글을 아는 사람들이 어떤 규칙에 따라 일을 하는 곳이 관청이라고 해석해야 할까. ‘詩‘는 여기에 말씀 언(言)이 하나 더 붙었으니, 글을 아는 사람들이 말에 매듭 - P136

을 붙이는 것이 바로 시라는 말이 될 법하다. 이런 옹색한 글자풀이를 하지 않더라도 노래에는 원래부터 가락과 장단이 있으니, 그노랫말에 매듭을 붙인다는 것이 놀라운 일일 수 없다.
시는 원래 노래이고, 결국 노래이지만, 그리고 그 가락과 장단은자연과 생명의 리듬을 어떤 상상력에 따라 다시 재현한 것이라고하지만, 자연이나 생명에는 우리가 노래에서 감지하는 것과 같은그런 확실한 매듭이 없다. 말하자면 노래의, 또는 시의 매듭은 자연과 생명 그대로의 매듭이 아니라, 거기에서 추상된 매듭이다. 추상은 물론 인간이 세계를 파악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해에 관해 아는 것이 없지만, 태양이라고 하는 하나의 총체에서 그 둥근 형태,지상을 향해 끝없이 쏟아지는 그 밝은 빛과 뜨거운 열기, 그 밝은빛 속에 들어 있는 흑점 등등 이런 성질들을 추상해내고는, 해에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온갖 지식들이 그렇게 구성된다. 문명은 그 자체가 매듭이다.  - P137

한 섬의 보리를 얻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직선의 밭고랑을 파야 하는가. 페이로더의그 유연한 운동 뒤에는 얼마나 많은 마디와 매듭이 있는가. 철이든다는 것은 철을 안다는 것이고, 철은 시간의 매듭이다. 그래서철이 든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매듭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나 이 추상의 매듭을 만들고 가정한다. 소리에 매듭을주어 악(樂)이라고 일컫고, 인간의 행동에 절도를 가정하며 예(禮)를강요한다. 이 매듭들의 그물망 위에서 질서 잡히고 평화로운 세계하나가 성립한다. 하늘은 그 매듭에 따라 비를 내리고 바람을 불어준다. 하늘은 만물을 생장시키고, 인간도 거기 함께 울력하여 제 삶을 도모한다. 세상은 얼마나 완벽한가. 노래는 얼마나 조화로운가. - P137

그러나 비는 항상 그 매듭에 맞춰 내리는 것이 아니고, 바람이항상 그 매듭과 조화를 이루며 부는 것이 아니다. 가뭄과 홍수가번갈아 찾아오고, 태풍은 삶의 뿌리를 뒤엎는다. 때로는 강이 마르고 땅이 갈라진다. 인간세계도 다르지 않다. 가뭄의 뒤 끝은 물론풍년에도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예로도 다스릴 수 없는 무뢰배가 있으며, 전란은 어쩌다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어쩌면 매듭은 환상에 불과한 것인지 모른다. 그 매듭이 교란될 때마다, 저무정한 침묵의 세계와 한순간도 쉬지 않고 부딪치고 살아야 하는 생명의 본디 모습이 드러난다. 석굴암에 들어서면, 온화한 자태와 사려 깊은 얼굴로 의연하게 앉아 있는 대불을 먼저 볼 수 있지만, 그좌대에는 사지를 비틀고 얼굴을 일그러뜨린 존재들이 새겨져 있다. 세상의 지혜 하나를 들어 올리는 일이 그렇게 처절하다는 말일까. 고통의 바다는 깊고 넓어서 고요하게 앉아 있는 부처가 마치 조각배처럼 보인다.  - P138

위로 지혜를 구하고 밑으로 중생을 제도하는그 위의가 아무리 장엄해도 그것이 풍랑 치는 바다 위에 뜬 일엽편주의 사유에 불과하다고 하면 불경한 말이되겠지만, 몸의 욕구가맑은 지혜가 되기보다는 불투명한 파도가 되는 우리에게는 그것이또한 사실이다. 인간이 만든 매듭의 그물이 아무리 넓고 촘촘하다한들 내 몸도 세상도 그 매듭으로는 무엇 하나 감당할 수는 없는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매듭이 포기되지는 않는다. 매듭이 자기를 반성하는일은 드물다. 매듭은 매듭을 부른다. 실패한 매듭일수록 저 자신을존속시키기 위해 더 많은 매듭을 부르고, 다른 매듭과 끊어지지 않는 연결 고리를 찾아내려고 애쓴다. 결국은 자연도 생명도 사람도 - P138

다 없어지고 매듭만 남는 것은 아닐까. 애초에 매듭은 자연과 사물을 간명하게 보려는 방법이었는데, 거꾸로 매듭이 모든 것을 가리는 형국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매듭을 이겨내기 위한답시고 더 촘촘한 매듭을 만든다. 옛날 태권브이 같은 로봇 영화에서 로봇의 횡포를 막기 위해 더 큰 로봇을 만드는 어리석음과 다를 것이 없다.
쾌적한 장식으로서의 말을 넘어서는 시, 노래를 넘어서는 음악은 매듭 밖에서 매듭을 바라본다. 말과 소리의 매듭이 아무리 아름다운 비단을 짜더라도 시와 음악은 그 비단 자락을 흔드는 바람처럼 지나간다. 말과 노래의 매듭이 낭랑하게 울릴 때, 그 영롱한 음조는 시인이 꿈꾸던 것을 단지 암시할 뿐이다. 인간의 매듭이 애초에 기획했으나 끝내 이루지 못할 세계, 그 음조의 순간에 얼핏 본세계는 육체와 함께 지상의 모든 제약을 벗어버릴 때만, 이를테면죽음 뒤에서만 보게 될 어떤 빛과 같다. - P139

아름다운 유리구슬에 잠시 정신을 빼앗겼으나 그것이 제 꿈의 빛과 같은 것이 아님을 알고이내 싫증을 내며 구슬을 댓돌에 내던지는 아이처럼 시인은 매듭을 만드는 순간 그 매듭을 쓸어버린다. 시인이 쓰는 시는 그가 얼핏 보았던 저 빛에 대한 한 차례의 기념일 뿐이다. 그는 매듭을 만들면서 매듭을 파괴한다. 그는 매듭을 딛고 매듭 밖으로 나가려 한다. 그러나 그에게 가능한 것은 또 하나의 매듭을 만드는 일에 불과하지 않는가. 그래서 시는, 좋은 시일수록, 실패담의 형식을 지닐수밖에 없을 것이다. - P139

김수영은 어느 평문에서 "시인을 발견하는 것은 시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은 시인을 특별히 치켜세우는 말도 아니고 비평가를 폄하하는 말도 아니다. 현실이 아무리 지리멸렬해도 그 속에서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지극히 사소한 움직임에서도 변화의 모든 기미를 알아내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서 노력하고 있는 사람만이 그와 동일한 노력에 대한 감수성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시인은 이 현실 속에 다른 현실을 언어로 만들어낼 뿐아니라 그 현실을 스스로 체험한다. 비평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도 그것이다. - P141

비유, 은유, 상징, 이미지, 운율, 선율, 시는 이런 것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은유나 선율이 곧 시를 만들지는 않는다. 비유를 비유라고 말하고 이미지를 이미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시가 이미 만들어진 다음의 일, 어쩌면 그 힘을 거의 잃었을 때의 일이다.
시인이 시를 쓸 때 그는 자기 언어를 은유나 상징으로 보지 않는다. 그가 보는 것은 현실이며 그는 그 현실을 산다. 이를테면 이성복은 남해 금산」의 첫대목에서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그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라고 읊는다. 이 시구를 다음과 같은 말로 풀어놓으면 아마 이해하기 쉬울지 모르겠다. ‘사랑하던 한 여자를 잃고 내 마음은 돌처럼 굳어졌다. 그 여자는 돌이 된내 가슴속에 박혀 있었다.‘ 이 두 말은 같은 말처럼 들리지만, 그질이 다르고 기운이 다르다. 풀어놓은 글에서 ‘돌처럼 굳어졌다‘거나 ‘그 여자가 굳어진 내 가슴에 박혀 있었다‘는 말은 절망과 불모의 상처를 표현하는 수사적 비유에 지나지 않는다. - P142

반면에 이성복의 돌은 현실의 돌이다. 그는 이 시를 쓰면서 정말로 돌속에 묻혀있는 여자를 보고 있으며, 자신이 그 돌 속에 진정으로 들어갔다고생각한다. 풀어놓은 말은 절망과 불모에 대한 낡은 수사법 하나를제시하지만, 이성복의 시는 절망과 불모 그 자체인 바윗덩이 하나를 우리 앞에 세워놓는다.
**비평가의 말도 마찬가지다. 풀어놓은 말의 수준에서이 시를 이해하는 비평가의 말과 시의 수준에서 이 시를 이해하는 비평가의말은 다를 것이다. 전자는 이 시의 시상을 일반적 감정의 하나로환원시킬 것이며 그 수사에 이미 알려진 이름을 붙일 것이다. 반면에 후자는 돌이 하나의 감정으로 되는, 또는 감정이 하나의 돌로 - P142

되는 특별한 순간을 여러 일반적 감정 위로 들어 올릴 것이며 현실을 창조하는 말의 힘을 자신의 언어체험으로 이해하려고 애쓸 것이다.
시가 비평에 영합할 때 대중에 영합하는 것 못지않게 위험하다.
시인이 시를 쓰면서 비평가가 자기시에 대해하게 될 말을 미리계산하는 방식의 시 쓰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거기에는 유행하는주제가 있으며,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은유와 상징이 있다. 앞뒤를분란하게 꿰맞추는 지적 구조가 있고, 한쪽 눈을 깜박거리며 언어를 약간 비틀어놓는 득의의 순간이 있다. 이때 시속의 사물들은,
허영쟁이 까마귀와 간교한 여우가 등장하는 이솝 우화처럼, 제각기 어떤 관념을 떠맡고 있다. 그 관념은 우주를 끌어안을 만큼 큰것일수록 더 좋다. 또한 거기에는 미시령 꼭대기에서 그넷줄을 놓아버리고 동해 푸른 물에 빠져든다는 식의 유아적 상상력이 있다. - P143

시인은 항상 순진무구하다. 그는 모든 사물에서 생의 이치를 보며,그 이치를 경구로 다듬는다. 그에게는 자연과 생명의 이치를 말하는 사물이 있을 뿐 정작 사물은 없다. 따라서 자연도 생명도 없다.
시가 비평에 영합하는 이유는 시인의 타락에 있기보다 비평의 무능에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비평가가 어디선가 보고 외워둔 말들을 풀어놓기 좋은 시, 자신의 명민함을 스스로 확인하기 좋을 것처럼 보이는 시, 그래서 결국은 어떤 시론으로 환언하기에 편안한시만을 주목할 때, 시가 알려진 주제와 어법, 벌써 질서 잡힌 형식의 상징과 은유, 낯익은 이미지의 순열조합에 갇히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평가에게 적절한 미끼를 주는 시와 그 미끼를 물고거창한 시론을 설파하는 비평의 관계는 짜고 치는 고스톱과 다를 바가 없다. - P143

시가 모험이라면 비평도 모험이다. 비평은 시와 더불어 안온하지만 비열한 이 삶 밖으로 한 걸음이라도 내디디려고 애써야 한다.
김수영은 「절망」이라고 이름 붙은 수 편의 시 가운데 하나에서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것처럼"이라고 썼다. 이 시구는 아름답다. 낱말과 선율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분석하기 좋게 짜맞춘 지적 구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의 암담함을 말하면서 암담한현실을 충전된 언어로 들어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충전된 언어에서 발휘되는 힘이 바로 현실 위에 떠오르는 또 하나의 현실이며,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라고 말할 때의 그 딴 곳의 바람에 해당한다. 비평은 시와 더불어 그 힘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 P144

문학적 글쓰기는 그 구체적 개별성을 통해 복잡한 사회적 구조를압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구조를 새롭게 바라보는 법과 새로운 구조를 발견하는 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문학적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것이기도 하며, 문학이 주어진 이론으로 환원될수 없는 이유가 거기 있기도 하다. 비평도 과학적 분석처럼 "하나의 구조와 하나의 이야기"를 고생스럽게 펼치고 전개하지만, 저자신이 허물어질 지점에서 그렇게 한다. 제비평의 위상을 묻는 질문은 종종 비평이 그 권력과 지도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대답을 듣고 싶어 한다. 비평은 지도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지도는 비평가가 작가에게 ‘당신이라면 저 형언할 수 없는 것‘ 앞에 설 수 있다고 말하는 데서 그쳐야 할 것 같다. - P150

모국어의 위반은 외국어의 위반이며, 모국어의 타자는 외국어의 타자이다. 그래서 적어도 문학의 관점에서 세계화는 바로 이 타자들의 세계화이다. 문학적 세계화의 주체는 바로 이 어두운 희망들의 몫이다. 문학이 어떤 진보의 도구라면 이 진보성은 오히려 진보라고 헛되게 이름 붙여진 것들의 맹목적 속도를 저 지체하는 타자들의 발목 잡기로 제어하는 데 있다. 세계화 시대에도 문학은 늘하던 일을 계속할 것인데, 다만 내향적 행복이고 절망이었던 것,
외로운 자아들의 편안함이었던 것을 다른 세상의 낯섦과 교환하는일에 좀더 역점이 주어질 것이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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