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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문지 시선은 이성복, 황지우, 황인숙, 이병률등을 시인으로 만나는 통로였고 그 분들의 시집은 여러권이 상재되었다. 최근에는 김소연, 이수명시인의 시 속에서 지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 기형도시인. ‘입 속의 검은 잎‘은 김현선생의 해설과 61편의 시로 지금도 내 가방에 찬밥처럼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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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등
              고영민

울고 싶을 때 울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
어떤 미동으로 꽃은 피었느니
곡진하게
피었다 졌느니
꽃은 당신이 쥐고 있다 놓아버린 모든 것
울고 싶을 때 울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
마음이 불러
둥근 알뿌리를 인 채
듣는
저녁 빗소리

         시집 [사슴 공원에서(창비2012)]중에서


태풍 고니가 지나가는 중인가!
종일 비가 도란도란 내린다.
덕분에 봄에 몇 뿌리 심어 둔
도라지꽃을 요모조모 살펴 볼 시간을 얻었다.
예쁘다.
어여쁘다.
애쓴 일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들은 기특하다.
장하다.
척박한 땅에 여리디여린 가지로 저렇게 꽃을 피워내다니...
삶도 이와같다면.. 하는 씁쓸한 생각~

책에서나 보았던 도라지꽃을 처음 본 건
제천을 지나는 중앙선 기차 안에서였다.
산 옆으로 기차는 지나고 철로곁엔 색색의 아기별들이 흐드러져 있었다.
무슨 꽃인지도 모르고
홀린 표정의
무식한 내게
뭐 이런 애가 다 있나 싶은 투로
˝도라지꽃˝
을 알려주시던 뚝뚝하고 다정한 그 분은
안녕하신지...?
오래,
아주 오래되었다.
제주올레를 같이 걷자던 헛된 약속만 남아있다.
꽃은
하나씩 일 때와
무리로 만났을 때
어찌나 다른 표정을 가졌는지 그날 그 창가에 매달려 알았다.
그 꽃을 위해 들이는 노고에 대해서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꽃은 언제 어떻게든 제 몫을 다하는데
예쁘다, 예쁘다하는
이는 제 노릇을 못하고 사는 것이다.

비 오시는 날은 노릇노릇한 전이 맛있다.
청양고추 송송 썰어 넣은 감자전으로 점심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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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빗방울이 흩뿌린 탓일까?

이른 시각, 단체 예약 손님을 ​치르고 나서는 종일 조용한 토요일이다.

구불구불, 좁은도로도 오늘은 휑하다.

다들 어디로 달려갔을까​?

캠핑장을 향해,

족구장을 향해,

가족들과의 저녁을 향해,

줄줄줄 달려가던 이들의 행방이 궁금하다. ​

서창으로 우거진 나뭇잎​들 사이로 기운을 잃어가는 햇살만 무성한 저녁

어쩌다 한번씩 펴들어도 흡족해지는

김사인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에 코를 박는다.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한 서민의 [집 나간 책]은 점점 흥미진진한데

아끼고 싶어 한 꼭지씩 읽는다.

여운이 강렬한 책이다. ​

<무지에서 살아남기>가 아니라

<무지에서 깨우치기>중이라 숨고르기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자고로 리​뷰는 이 정도래야 리뷰지,

혼자 끄덕끄덕.

흔적도 없이 드나드는 몇몇 서재의 알라디너들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무서울만큼 예리하고 소박할만큼 따스한 시선들,

아직 세상이 살만한 이유는 이런 빛나는 존재들 때문이리라.

마지막 페이지까지 실망시키지 않으리란 예감에 더욱 ​든든하다.

<선운사 풍천장어집>을 유월의 시로 찜하고

<중과부적>에서 이미 무거운 몸무게에 무게를 더하고

<무릎 꿇다>에 무릎이 꿇린다.​

이렇게

한 세상을​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조용한 토요일 저녁이다.

'저무는 일의 저 무욕​

고개 숙이는 능선과 풀잎들 곁에서​

별빛 총총해질​ 때까지'

 

 

무릎 꿇다

​               김사인

 

뭔가 잃은 듯 허전한 계절입니다.

나무와 흙과 바람이 잘 말라 까슬합니다.

죽기 좋은 날이구나

옛 어른들처럼 찬탄하고 싶습니다.

방천에 넌 광목처럼

못다 한 욕망들도 잘 바래겠습니다.

고요한 곳으로 가

무릎 꿇고 싶습니다.

흘러온 철부지의 삶을 뉘우치고

마른 나뭇잎 곁에서

죄 되지 않는 무엇으로 있고 싶습니다

저무는 일의 저 무욕

고개 숙이는 능선과 풀잎들 곁에서.

별빛 총총해질 때까지

 

 

중과부적​(重寡不敵)

조카 학비 몇푼 거드니 아이들 등록금이 빠듯하다.

마을금고 이자는 이쪽 카드로 빌려 내고

이쪽은 저쪽 카드로 돌려 막는다. 막자

시골 노인들 팔순 오고 며칠 지나

관절염으로 장모 입원하신다. 다시

자동차세와 통신요금 내고

은행카드 대출할부굼 막고 있는데

오래 고생하던 고모 부고 온다. 문상

마치고 막 들어서자

처남 부도나서 집 넘어갔다고

아내 운다.

'젓가락은 두자루, 펜은 한자루 ​...... 중과부적!'*

이라 적고 마치려는데,

다시 주차공간미확보 과태료 날아오고

치과 다녀온 딸아이가 이를 세개나 빼야 한다며 울상이다.

철렁하여 또 얼마냐 물으니

제가 어떻게 아느냐고 성을 낸다.

*미루야마 모보루 [루쉰(魯迅)​]에서 빌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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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2014. 04. 16.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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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월의 시를 준비하면서 나희덕시인의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과 이영광시인의 [나무는 간다]를 펼쳤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매달 화장실에 시를 붙이는 일은 고르기부터 공력을 들여야 한다. 계절을 생각해야하고, 대중적으로 무난하게 읽혀야하고, 길어도 안 되고, 덧붙이는 말을 일순 떠올려야하고, 너무 흔하고 쉬운 시는 쉬이 식상해져서 내 스스로 마음에 안 들어서 빼게 되고 두고두고 읽어보아도 감칠 맛 나는 시를 택하게 된다. 준비하기 전에 '이번엔 이 시다'하고 생각한 바대로 쉽게 쓸 때도 있고 도무지 마땅한 시를 찾지 못해 빈약한 시집꽂이의  시의 집들이 몽땅 펄럭거리게 될 때도 있다. 삼월은 후자에 속했다. 시인과 시집을 택했는데 도무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두 시인의 시집을 모두 다시 읽었다.

  봄비 내리는 날, 가지 끝에 맺힌 물방울을 보면서 맨 처음 마음에 두었던  나희덕시인의 어떤 나무의 말

                  

제 마른 가지 끝은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졌습니다,

더는 쪼개질 수 없도록.

 ​

제게 입김을 불어 넣지 마십시오.

당신 옷깃만 스쳐도

저는 피어날까 두렵습니다.

곧 무거워질 잎사귀일랑 주지 마십시오.

나부끼는 황홀 대신

스스로의 관(棺)이 ​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부디 저를 다시 꽃피우지는 마십시오.

​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문학과지성사 2014)-중에서]

  그냥 읽을 땐 몰랐는데 적고 보니 완곡한 어법에도 불구하고 무겁다는 느낌이 든다. 봄인데, 삼월인데.......​ 하여 패스되고. ​

뿌리로 부터

한때 나는 뿌리의 신도였지만

이제는 뿌리보다 줄기를 믿는 편이다

줄기보다는 가지를,

가지보다는 가지에 매달린 잎을,

잎보다는 하염없이 지는 꽃잎을 믿는 편이다

희박해진다는 것

언제라도 흩날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뿌리로 부터 멀어질수록

가지 끝의 이파리가 위태롭게 파닥이고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당신은 뿌리로 부터 달아나는데 얼마나 걸렸는지?

뿌리로 부터 달아나려는 정신의 행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허공의 손을 잡고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

뿌리 대신 뿔이라는 말은 어떤가

가늘고 뾰족해지는 감각의 촉수를 밀어올리면

감히 바람을 찢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소의 뿔처럼 가벼워질 수 잇을 것 같은데

우리는 뿌리로 부터 온 존재들,

그러나 뿌리로 부터 부단히 도망치는 발걸음들

오늘의 일용할 잎과 꽃이

천천히 시들고 마침내 입을 다무는 시간

한때 나는 뿌리의 신도였지만

이미 허공에서 길을 잃어버린 지 오래된 사람​

  시인의 '뿌리에게'를 기억하고 있어서인지 이 시의 여운이 남는다. 우리는 뿌리로 부터 온 존재들, 그러나 뿌리로 부터 부단히 도망치는 발걸음들 나무의 가지 끝에서 뿌리를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아, 매력적인데 내가 쓰기엔 너무 길다. 서체와 글자 크기까지 고려해서 A4 용지 안에 맞춰 넣어야 한다.

다시, 다시는​

문을 뜯고 네가 살던 집에 들어갔다​

문을 열어줄 네가 없기에

네 삶의 비밀번호는 무엇이었을까

더 이상 세상에 세 들어 살지 않는 너는 대답이 없고

열쇠공의 손을 빌려 너의 집에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걸어 나갈 것 같은 신발들

식탁 위에 흩어져 있는 접시들

건조대에 널려 있는 빨래들

화분 속에 말라버린 화초들

책상 위에 놓인 책과 노트들

다시 더러워질 수도 깨끗해질 수도 없는,

무릎 꿇고 있는 물건들

다시, 너를 앉힐 수 없는 의자

다시, 너를 눕힐 수 없는 침대

다시, 너를 덮힐 수 없는담요

다시, 너를 비출 수 없는거울

다시, 너를 가둘 수 없는 열쇠

다시, 우체통에 던질 수 없는, 쓰다만 편지

다시, 다시는, 이 말만이 무력하게 허공을 맴돌았다

무엇보다도 네가 없는 이 일요일은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저 말라버린 화초가 다시, 꽃을 피운다 해도

 

불투명한 유리벽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찰칵,

네 얼굴이 켜졌어

누가 기억의 스위치를 누른 것일까

그러나 이내 네 얼굴은 꺼지고

깨진 유리조각들이 사방에서 모여 들었지

네가 쓰다 만 페이지,

자동차 바퀴가 멈춘 곳에서 유리벽은 자라나

점점 불투명해지고 단단해졌어

새소리가 나를 일으키지 못하고

눈부신 햇살도 유리벽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는

지금 여기는 어디일까

난파된 배처럼 가라앉는 방

거기 춥지 않아?...... 어둡지 않아?...... 무섭지 않아?

성에 낀 유리벽을 향해 하염없이 중얼거렸어

까마득한 곁에 누운 너를 향해

감긴 네 눈을 감겨주고

닫힌 네 입술을 어루만져주고

굳은 네 손과 발을 쓸어주고

식은 네 가슴에 흰 꽃을 놓아주고

그렇게 몇 시간을 누워 있었을까

간신히 몸을 일으켜 욕실로 갔어

물을 틀었어

뜨거운 물이 몸 위로 흘러내리고

불투명한 ​유리벽이 천천히 녹아내렸어

네 얼굴처럼​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속의 곳곳에서 상처의 흔적을 만나게 된다. 특히 이 두편의 시는 아직 남겨진 자의 슬픈 피눈물이 철철 흐르고 있다. 정도상작가의 '낙타'를 읽고 있는 것처럼 저릿저릿하고 묵직하다. 모든 것을 방기해버리고 싶은 순간에도 글의 동앗줄을 잡고 있는 이에게 글은 구원일까? 업일까? 당신들은 스스로에게 징그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독자의 눈에는 존경이 담기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픔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아픔의 강도는 누구랄 것 없이 고르게 느껴질 터인데 글로, 시로 풀기까지 스스로를 얼마나 담금질 했을까. 다시, 다시는 으로 반복되는 운율 속에. 거기 춥지 않아 등의 물음 속에 울음이 뜨거운 깊은 울음이 담겨 있다. 이제는 부재를 인정해야 하는데 인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그 마음이 드러난다. 그런데 나의 오독일까? 분명 세월호 이전 출간된 시집인데 나는 자꾸만 세월호 속 아이들에게 거기 춥지 않아?...... 어둡지 않아?...... 무섭지 않아? 묻고 싶어지는 것일까? 지금 여기는 어디일까 지옥의 모습이 이렇지는 않을까. 다시, 다시는, 이 말만이 무력하게 허공을 맴돌았다 거리에서 돌아갈 수 없는 부모들의 마음이 짚어져 온다. 이 무책임한 정부의 꿍꿍이는 무엇일까? 이러고도 우리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것일까? 그들만의 나라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치루는 그들에게 우리가 국민인 때는 선거용뿐이겠지만.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꽃과 분홍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겹의 마음을 읽는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창비2001)]-중에서

​ 

  이번에 새롭게 읽힌 시다. 마음의 빚, 원주에서 복숭아 농장을 하시는 별밭농부님께 안부도 여쭙지 못하는 세월이 여러 해다. 그분을 떠올리면 또 다른 무거운 얼굴을 떠올리게 되고 그렇게,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처연해지는 심사가 빚으로 남아있는데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가서 그저 가만히 앉아있다 오고 싶어진다.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 망연히 바라보기만 하고 싶다.

푸른 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길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목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문학동네 2004)​]-중에서

​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때문에 오래 가슴에 묻어둔 시편이다. 처음으로 나희덕의 시집으로 장만한 것이 [그곳이 멀지 않다] 이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시집 속의 시들을 오래 끌어안고 다녔다. 언제고 한번은 써먹고 싶은 시의 목록에 속해있다.

연두에 울다

떨리는 손으로 풀죽은 김밥을

입에 쑤셔넣고 있는 동안에도

기차는 여름들판을 내 눈에 밀어넣었다​.

연둣빛 벼들이 눈동자를 찔렀다​.

들판은 왜 저리도 푸른가

아니다. 푸르다는 말은 적당치 않다.​

초록은 동색이라지만

연두는 내게 좀 다른 종족으로 여겨진다.

거기엔 아직 고개 숙이지 않은

출렁거림, 또는 수런거림 같은 게 ​남아 있다.

저 순연한 벼포기들.

그런데 내 안은 왜 이리 어두운가.

나를 빛바래게 하려고 쏟아지는 저 햇빛도

결국 어두워지면 빛바랠 거라고 중얼거리며

김밥을 네 개째 삼키는 순간​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것이 마치

감정이 몸에 돌기 위한 최소 조건이라도 되는 듯.

눈에 즙처럼 괴는 연두.

그래. 저 빛에 나도 두고 온 게 있지.

기차는 여름 들판 사이로 오후를 달린다.

               시집 [사라진 손바닥(문학과지​성사 2004)]-중에서

 

 연두, 몇 해 전부터 자꾸만 연두가 눈에 밟힌다. 여린 새순에서도 나무들의 가지 끝에서도, 징글징글 올라오는 풀에서조차  연두를 발견하고는 뭉클해진다. 아마도 저 표현​ 눈에 즙처럼 괴는 연두.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

한점 배후도 없이 나무는

                         이영광

주먹 쥔 손을 ​내밀고 나무는

자욱이, 서 있다​

힘없이 멈춰 있다

싸우지 않는 싸움꾼처럼 ​

잔매가 쌓이듯 마른 몸에 내리는 눈발을

삭풍이 달궈놓은 팔뚝으로 받는다

싸움꾼은 저렇게 무방비 상태로 설 수 있어야 한다

저렇게, 싸우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저렇게 싸워야 한다 ​

내릴 수 없는 백기를 들고​

나무는 빈 들판에 서 있다

대지를 섬광처럼 한바퀴​ 돌고와서 고요하다

뿌리째 떠돌아도 제자리에서

터질 듯, 가만히 숨 쉰다

나무의 적은 얼굴을 드러낸 적 없는 세력

빈 들은 이글거리는 뿌리들을 비끄러맨다

바람은 잡념의 가지들을 ​조각조각 부러뜨린다

나무의 정권들이 나무 속으로 들어간다

나무는, 오직 나무로 지워진다

한점​ 배후도 없이 나무는

삭풍과 눈보라와 흙먼지의 백만 대군을,

백만 대군을 호령하는 무한의 지평선을

한그루 장창으로 막아선다

                     시집 [나무는 간다(창비2014)]-중에서​

​ 

  '딱 이시다'하고 시작한 삼월이었다. 그런데 도무지 덧붙일 말이 써지지 않는 거다. 며칠 시만 들여다보고, 들여다보고 그러다가 놓았지만 아쉬움은 여전하다 나무는, 오직 나무로 지워진다/ 한점​ 배후도 없이 나무는/ 삭풍과 눈보라와 흙먼지의 백만 대군을,/ 백만 대군을 호령하는 무한의 지평선을/ 한그루 장창으로 막아선다 나무에게서 배운다 외에는 여전히 덧붙일 말이 궁하다. 산수유 광고처럼 참 좋은데, 참 좋은데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슬픔이 하는일

슬픔은 도적처럼 다녀간다

잡을 수가 없다

몸이 끓인 불,

울음이 몸을 꽉 눌러 터뜨리려 하면

어디론가 빠져 달아나버린다

뒤늦은 몸이 한참을 젖다 시든다

슬픔은 눈에 비친 것보다는 늘

더 가까이 있지만,

깨질 듯 오래 웃고 난 다음이나

까맣게 저를 잊은 어느 황혼,

방심한 고요의 끝물에도

눈가에 슬쩍 눈물을 묻혀두고는

어느 결에 사라지고 없다

슬픔이 와서 하는일이란 겨우

울음에서 소리를 훔쳐내는 일​

​ 

천국

 

봄꽃 그늘 지날 때

먼 것들, 모두 지척에서 숨 쉬고

숨 거둔 것들은 돌아와 심장에.

나는, 나는 저 흰 꽃의 깨끗한 흰 빛이

참 마음에 드네

신은 아무래도 이곳을

천국으로 지은 것 같으다.

사람이 낳는 괴로움이 아니라면

고통은 받아들일 수 있네.

사람이 짓는 괴로움도 칼 받듯 하얗게

봄날엔 받을 수 있네.

우주는 다 하늘이고

지구는 하늘의 작은 별나.

꽃 피듯 생이 제 혼몽을 젖히고

죽은 것들 꽃 향기에 받아 적시는  ​

반갑고 서러운 해후가 있어,

그늘이 희게 살찌는 날​.

아무래도 신은 이곳을 ​

천국으로 지은 것만 같으다.

아이 손에 부서지는 장난감처럼

천국은 오래 천국을 망치는 손안에 있었지만

하얀 그늘 하얗게 지고 나면

이곳은 또 천국의 지옥일 테지만.

​ 

  [나무는 간다]를 새로 읽으면서 시인께서 병중이 아닐까 하는 기미를 여러 군데서 발견했다. 프로필의 사진으로는 머리도 부스스 소도둑처럼 우락부락한 이미지가 강한데 어찌 저리 여리고 섬세한 시어를 구사하는 것일까. 이래서 세상의 시름에 아픈 건 아닐까 싶었다. [천국]을 찜했는데 [두부]를 발견하는 바람에 밀리고 말았다. 슬픔이 와서 하는일이란 겨우/ 울음에서 소리를 훔쳐내는 일​/ 이라든가 그늘이 희게 살찌는 날​./ 이런 표현에 압도당한다.

저 나무

저 나뭇잎들 만원권 ​지폐거나

로또였으면, 하는 마음들이

석 달 열흘 지나갔는데

절대로 집구석엔 들어가지 않겠다,

허망과 오기로 떠들며 견디던

국밥집의 사내들도 취해 돌아갔는데

소주 이빠이 들어간 빈속처럼

뒤틀린 언덕길

그늘을 다 나눠준 누드

저 나무, 불 끄듯 언 손을 더듬어

마지막 한 잎을 떨군다

어둠이 한번​ 받았다가 내려주는

추운 땅

변두리에서의 오랜 공덕,

아무도 지갑에 넣어가지 않는

복권을 다 파셨다

한 점의 후회도 없으시다

​                     시집[아픈 천국(창비 2010)]-중에서

나팔꽃

  가시 난 대추나무를 친친 감고 올라간 나팔꽃 줄기, 그대를 망설이면서도

징하게 ​닿고 싶던 그날의 몸살 같아 끝까지 올라 갈 수 없어 그만 자기의

끝에서 망울지는 꽃봉오리, 사랑이란 가시나무 한그루를 ​알몸으로 품는 일

아니겠느냐 입을 활짝 벌린 침묵 아니겠느냐​

                         시집 [직선 위에서 떨다(창비2003)]- 중에서

​문

가지 말아야 했던 곳

범접해선 안되었던 숱한 내부들

사람의 집 사랑의 집 세월의 집

더렵혀진 발길이 함부로 밟고 들어가

지나보면 다 바깥이었다

날 허락하지 않는 어떤 내부가 있다는 사실,

그러므로 한번도 받아들여진 적 없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서 나는 지금

무엇보다도, 그대의 텅 빈 바깥에 있다

가을 바람 은행잎의 비 맞으며 

더이상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닿아서야

그곳에 단정히 여민 문이 있었음을 안다

단풍​ 

산들도 제 고통을 치장한다​

저 단풍 빛으로 내게 왔던 것

저 단풍 ​빛으로 날 살려냈던 것

열려버린 마음을 얼마나

들키고 싶었던가

사랑의 벗은 몸에 둘러주고 싶었던가

불난 집처럼 불난 집처럼 끓어

마침내 잿더미로 멸한다 해도​

​  이 네 편의 시를 새롭게 찜해둔다. 계절에 맞게 언제 써먹어야지 하는 것이다. 삼월은 시편을 준비 하는데는 힘들었지만 시인별로 몇 권의 시집을 다시 읽으면서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롭게 읽히는 시를 여럿 만나는 행운을 안겨주었다.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좋은 것이 꼭 다 좋은 것은 아니고, 나쁜 것이 꼭 다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평범한 교훈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는 경우에 속한다. 시를 읽지 않고 산다면 얼마나 황폐할 것인가. 아찔하다. 내가 이런 자잘한 노력을 하는 것은 누군가도 나처럼 시에서 잠시 위안을 얻었으면 하는 것이고 이렇게 준비하는 시간동안 나름 시의 이마를 만지면서 사유가 깊어지는 나를 만나게 되는 즐거움 때문이다.

  사월에는 쪼들린 시간 때문이었지 비교적 쉽게 시를 고른 달이기도 하다.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가게 앞 목련은 기대했던 대로 장하다. 아무리 좋은 것도, 아무리 멋진 것도 보지 않고 느끼지 않으면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목련을 보면서 새로이 한다. 목련이 이렇듯 시리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 목련을 가진 마당을 부러워하기만 하고 살아온 것이다.

  봄바람, 봄 햇살, 봄꽃 조화롭게 아름다운 사월이다. 거기에 잠시 의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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