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의미를 알았을 리 없다. 그들에게 만리국에서의 전사는 그야말로 자기 삶의 끝이며 개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빨치산은 달랐다. 그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죽음은 미 제국주의에 짓밟힌 조국의 해방이며 억압당하는 삼천만 인민의 해방을 약속하는 징표였다. 어쨌든 미군과 몇 번 싸워보고 미군 포로를 겪어본 이현상부대는 그 뒤로 미군만 보면 지던 싸움도 승리로 이끌 정도였다. ‘저 몰랑한 노란개‘도 못 잡아서야 백전불굴의 빨치산이라는 이름이아깝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포로가 되면 무릎을 꿇고 앉아 타는냄새가 나도록 손을 비비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미군 뒤에는 고도로 발전된 기술과 엄청난 무력, 그리고 군수품을 팔아 부를 축적하는 군수재벌을 가진 자본주의의 종주국 미국이 있었다. 이현상부대는 그걸 몰랐다.
백 명의 이현상부대가 만 명의 미군 부대를 이길 수는 있지만 ‘미국‘은이길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 P238

낙동강을 사이에 둔 치열한 전선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인민군은끊임없이 낙동강을 도하하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미군에게 낙동강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보루였다. 간혹 낙동강도하에 성공한 인민군 소부대들은 전멸을 당했다. 시체는 손을 대면 탄가루처럼 바스러졌다. 원자탄의 일종인 네이팜탄에 희생된 것이었다.
주전선이야 어떻든 유일하게 낙동강을 도하한 이현상부대는 마음껏 경북 일대를 휘젓고 다녔다. 낙동강 시절에는 밥 한 끼 편하게 먹어본 기억이 없을 정도였다. 뒤에서 주먹밥을 먹고 있을 때 앞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붙고, 이쪽을 한번 들쑤셔놓고 저쪽으로 도망치면 사방에서 적이 달려들고 하는 식이었다. 하루라도 맘 놓고 안전하게 묵을 만한 장소도 없었다. 이현상부대는 사방에서 밀려오는 적들에게 포위를 당해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 P238

"후퇴합시다!"
이현상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날 밤중으로 이현상부대는 영천을 향해강행군을 시작했다. 9월 30일, 이미 모든 인민군과 당기관이 조직적인 후퇴명령을 받고 후퇴한 뒤였다. 적진 깊숙이 최남단까지 침투해 있던 이현상부대는 뒤늦게 평양을 향해 북진을 시작했다.
이리하여 꼭 두 달간의 낙동강 시절이 막을 내렸다. 단숨에 서울을 함락하고 대전을 무너뜨렸던, 그 막강했던 인민군의 어떤 부대도 넘지 못한낙동강을 넘어 백 명도 안 되는 병력으로 수십 군데의 미군 기지를 공격하고 적진 사이를 누비고 다니던 이현상부대는 결국 먼저 후퇴한 인민군의 뒤를 따라 북으로 향해야 했다. 혹시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이영회부대를 위해 북상한다는 표지를 남겨놓고. 그러나 아무도 영원한 후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군의 희생자도 거의 없이 잠 한번 맘껏 자보지 못하며 싸웠던 낙동강 시절을 구빨치산들은 이현상부대의 본때를 보여준가장 치열하고도 가장 탁월했던 한때로 기억한다. - P240

그때 이현상부대에는 여자들이 열 명 정도 있었다. 반달음박질로 밀어붙이는 행군에서 제일 곤란한 것이 여자들의 용변문제였다. 남자들이야행군 도중에 잠깐 서서 볼일을 보면 끝났지만 여자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후퇴인파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길에서 실례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대열에서 빠져나와 용변을 보고 나면 부대는 이미 한참 앞서가고 있어 숨 돌릴 짬도 없이 줄곧 달려가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판인데 박종하는 일부러 도저히 용변을 볼 수도 없는 곳에서 휴식명령을 내리기 일쑤였다. 양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라 기어오를 수도 없는 곳에서 대열을 멈춰놓고 박종하는 싱글싱글 여자들을 놀려댔다. 안 볼 테니까 대열이 양쪽으로 늘어선 길 가운데에서 볼일을 보라는 것이다. 결국 용변을참고 길을 걷자니 자연 걸음걸이가 뒤뚱뒤뚱 오리 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박종하도 여자들의 폼을 그대로 흉내 내서 어기적거리며 걷는 것이다. - P244

소련이 유엔에서 한국전의 휴전을 제의하고 전세가 휴전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다는 것을 안 것도 바로 이 뱀사골에서였다. 물론 상급간부들이야 휴전이 제의된 6월 말부터 알았을 것이고 각 지방당의 일반 당원들도이전부터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남부군은 당조직이 아닌 전투부대라 항상 모든 정보가 그렇게 늦었던 것이다. 휴전협정 시 빨치산의 거취문제에대해 많은 빨치산 수기들이 마치 당시의 빨치산들이 휴전이 되면 북으로올라갈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으며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북에 대한 배신감과 함께 남한 유격투쟁에 대한 절망을 느낀 것처럼 그린 것은 사실과다르다. 물론 개중에는 그런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빨치산은 당시 최대한 적의 병력을 끌어들여 주전선으로 향하는 적의 힘을 분산시키는 것이 자신들의 유일한 임무라고 생각했고 그 임무를 위해서는 기꺼이 자기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돼 있었다. 물론 머지않아 해방이 될 거라는 확신 속에서 말이다. 그것이 무모했건 어리석었건 순수한혁명성에서였건 적어도 당시의 실정은 그랬다. 모든 정보가 차단되고 매일매일 전투에 쫓기는 상태에서 일반대원들은 실제로 당장 내일의 자기운명조차도 모르고 살 때였고, 보통의 상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감상쯤은끼어들 여지도 없던 시절이었다.  - P297

지리산의 가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산꼭대기에서부터 화려하게 타오르는 단풍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순간 낙엽이 지고 거센 북풍과함께 겨울이 닥쳐오는 것이다. 남부군의 마지막 낙원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11월 초 서남지구 경찰병력이 총동원되어 비행기까지 합동으로 달궁을 공격해 들어왔다. 대형폭탄과 기총사격에 밀려 남부군은 결국 한 달여의 천국을 버리고 그 달 말까지 지리산 곳곳의 골짜기를 전전하면서 월동준비에 바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깊어가는 겨울과 함께 남한 빨치산을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한 그 유명한 수도사단의 공세가 다가오고있었던 것이다.  - P305

 그 수많은 인민군 정규부대도 넘지 못한 낙동강을 넘어 종횡무진 적의 심장을 들쑤시고 다니던 남부군, 후평에서부터 지리산까지 몇 천리 장정 동안 유격부대답게 후방의 적을 마음껏 섬멸하고 다니던 남부군의 사실상의 유격투쟁은 이제 막을 내리고 있었다.
남부군이 완전히 전멸하기까지는 아직도 이 년이 더 남았지만 그동안남부군이 보여주었던 것은 유격투쟁의 실질적인 성과보다도 조국해방에대한 불꽃같은 집념으로 세계역사상 유례없는 악조건을 헤치고 끝까지순결하게 혁명정신을 지켜낸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었다. 거대한 불꽃으로 타올랐던 그들은 재가 되지 않고 숯이 되어 언젠가 다시 다가올 해방의 밑불로 자신을 남기고 간 것이다. - P306

그 와중에도 무정한 잠은 쏟아졌다. 보름간 계속된 1차공세를 통틀어하루에 두어 시간씩도 못 잤으니 눈구덩이건 얼음 위건 가릴 게 없었다.
꾸벅꾸벅 졸다 앞사람의 등에 머리를 박기를 수차례, 드디어 이동명령이내렸다. 엉덩이까지 얼음이 돼버린 느낌이었다.
산등선에는 거의 백 미터 간격으로 적들이 피워놓은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부대는 그 모닥불 사이를 소리 없이 빠져 얼마 전 악양전투에서확보한 식량을 비장했던 거림골로 갔지만, 식량은 단 한 톨도 남아 있지않고 부근에 남겨놓았던 부상자들의 시체 너덧 구만 눈 속에 나뒹굴고 있었다. 부대는 다시 허탈한 발걸음을 천왕봉 쪽으로 돌렸다. 중산리 능선을 따라 행군한 부대가 폐허가 된 법계사에서 트를 치고 있을 때였다. 보초선에서 난데없는 총성이 울리더니 곧 전투가 벌어졌다. 적세가 크지 않았는지 잠깐의 교전 끝에 적을 물리치긴 했지만 한바탕 전투가 붙은 곳에서 그대로 숙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부대는 다시 상봉 고지를 향해오르기 시작했다. 짧은 겨울낮이 어느새 저물고 있었다. 그때였다. 반대편에서 수십 명의 빨치산 대열이 눈을 헤치며 힘겹게 전진해오고 있었다.
경남도당이었다. 그 넓은 지리산을 이리저리 쫓겨 다니다 우연히 마주친것이다. - P312

녹 동무의 가까운 친척이라는 여자는 내내 울면서 멀어져갔다. 녹 동무의 고향은 함양 어느 마을로, 대부분이 좌익에 투신해 한문중간인 동네가 풍비박산이 났다. 처음에야 젊은이들만 시작한 일이었을 테지만 한 문중이 그렇게 되고 보니 노인네도 아낙네도 경찰의 등쌀에 견디질 못하고 모두 입산한 것이다. 눈보라 속에서의 눈물겨운 상봉은 그렇게스쳐갔다.
탈진하기 직전 부대는 눈에 파묻혀 형체도 없고 바닥과 나무기둥 몇 개만 초라하게 남아 있는 숯막에서 하루를 묵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부대는 천왕봉에 도착했다. 거대한 바윗덩어리로 된 지리산 상봉에는 온 세상을 삼켜버릴 듯 거센 광풍과 굉음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도저히 눈을뜨고 서 있지 못할 정도였다. 인간의 침입을 거부하는 분노의 표현일까.
상봉 아래 멀리 바라보이는 섬진강과 수많은 마을은 더없이 평화스러워보였다. - P313

부대는 커다란 바위를 바람막이로 삼아 아침을 짓기 시작했다. 취사반원들이 짐을 푸는 동안 대원들은 나무를 구하러 주변으로 흩어졌다. 사람키를 넘는 눈 속에서 무슨 나무를 구하겠는가. 그러나 빨치산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손으로 발로 밥그릇으로 눈을 헤치고 대원들은 어떻게든 나무를 구해왔다. 원래 산에서는 무겁고 거추장스러워서 갖고 다니지 못하는솥뚜껑 대신 목을 둘러씌워 밥을 한다. 그러면 웬만큼 높은 곳에서도밥이 설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은 눈을 솥에 퍼 넣고 불을 때서 녹인 다음씻지도 않은 쌀을 집어넣고 평소 하던 대로 광목을 씌웠는데도 웬일인지밥이 되지 않았다. 밑에서는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데 위에서는 김도 오르지 않는 것이다. 김이 오르길 아무리 기다려도 끊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 P313

지리산 상봉에까지 쫓겨 와서 두 사람의 입씨름이 또 한판 붙은것이다. 이현상의 중재로 유주목이 입맛을 쩝쩝 다시며 물러나긴 했지만그날의 정겨운 다툼을 사무치게 그리운 추억으로 남기고 유주목은 그 후어느 땐지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빨치산에게 있어 무소식이란 희소식이아니라 죽음 아니면 생포를 의미했다. 유주목이 생포됐다는 말은 그 후어디서도 들은 적이 없으니 아마 지리산 어느 골짝엔가 무덤도 없이 누워있을 것이다.
지리산 상봉의 추위는 지독했다. 눈에 젖은 채로 불을 쬐고 있으면 옷의 앞자락은 불이 붙어 타는데 뒷자락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영하 삼십 도는 족히 넘을 날씨였다. 게다가 옆 사람의 말소리도 잘 안 들릴 정도의 매서운 서북품을 생각하면 실제 체감온도는 그보다 훨씬 더했을 것이다. 내복도 없이 여름부터 입었던 군복 하나로, 눈에 젖은 고무신이나 짚신으로 그들은 그 추위를 견뎠던 것이다 - P315

한두 사람이야 어땠건 대부분 남한 사회주의자들은 최후의 순간까지적과 투쟁하면서 마지막 총 한방까지 적을 향해 겨누다가 전사하거나 자폭으로 자신의 생명을 거두었다. 이현상도, 박종하도, 김홍도, 이진범도, 이영희도, 전남도당의 박영발이나 김선우도, 전북도당의 방준표도,
모두 자신의 동지들이 숨져간 차가운 산기슭에서 자신들이 이루지 못한해방을 꿈꾸며 죽어간 것이다.
차일평의 변절을 알았건 몰랐건, 국군 비행기가 자수하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살려준다는 삐라를 온 산이 하얗게 뒤덮이도록 뿌려대도, 수많은삐라는 뿌려진 자리에서 그대로 썩어가거나 빨치산들의 뒤닦개로 긴요하게 쓰일 뿐이었다. - P318

대성골에서는 그 며칠 뒤까지 총성이 계속됐고 검붉은 불길이 그치지않았다. 1사단과 92사단을 합쳐 4백 명에 가까웠던 남부군 중에 그날 대성골을 빠져나온 사람은 150명 정도였고(상당기간이 흐른 뒤에 다 합류한 사람의 수가 그 정도였으니 그날 본대와 함께 후퇴한 사람은 백 명도 채 안 될 것이다), 57사단은 사단장 이영회가 40여 명을 데리고 탈출에 성공했으며, 역시 57사단에 있던 노영호도 남은 부대원 20명과 함께 대성골을 탈출했다.
경남도당 위원장 남경부는 그곳에서 전사했다. 경남도당은 완전히 박살난 것이다. 수백 명이 포로로 잡혔고 수백 명이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결사대를 뒤쫓아 나갔던 강만원은 온몸에 벌집처럼 총상을 입고도 끝까지 총을 놓지 않고 싸우다가 총탄이 떨어지자 마지막 남은 수류탄으로 조국의 이름을 목메어 외쳐 부르며 자폭했다. 적의 손에 죽는 것조차 그는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피의 전적, 원한의 대성골………."
남부군 정치부에 있던 시인 이명재는 대성골전투를 그렇게 적었다. 대성골전투 이후로 대성골 계곡물이 몇날며칠 핏빛으로 붉었다 한다. - P331

곧 사방을 포위한 적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돌격해 들어왔다. 순식간에 총성이 작열하면서 화약연기가 부옇게 앞을 가렸다.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졌다. 믿을 수 없는 적막이었다. 바위 밖으로설핏 고개를 내밀고 보니 적들이 다시 원위치로 물러나 있었다. 온몸에쥐가 내릴 듯한 긴장의 시간들이 초조하게 흘렀다. 잠시 뒤 다시 적들의반격이 개시됐다. 그렇게 몇 번의 적막과 총성이 교차됐을까. 중천에 떠있던 해가 어느새 기울고 있었다. 해그림자가 그들이 버티고 있는 바위숲까지 밀려들 무렵 적들도 빛이 사라지듯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궤멸의 위기를 희생자도 별로 없이 무사하게 넘긴 것이다. - P335

그러나 정작 영웅이어야 할 수많은 동지들은 곁에 없었다. 살아남은사람들은 텅 빈 주위를 돌아보며 비통한 울음을 터뜨렸다. 서훈식장은 삽시간에 눈물바다로 변했다. 살아남은 사람들 전부에게 여러 가지 상이 수여됐다. 상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피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그날 밤 오랜만에 눈물 젖은 오락회가 열렸다. 웃음과 눈물로 뒤범벅인 오락회였다. 많은 동지들이 한 줌의 흙으로 변해갔지만 아직도 그들의귓가엔 대성골전투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를 외쳐 부르며 수류탄으로 자폭하던 동지들의 마지막 외침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자폭할 힘조차 남지 않은 이들은 적의 손에 죽을 수는 없으니 총을 쏴달라고했다. 그런 동지들의 무서운 혁명정신은 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그들은 먼저 갔다. 이제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차례이다. - P338

핏빛 겨울이 가고 있었다. 바깥사람들은 절망의 봄이라고 부를 52년의봄이 왔다. 그러나 조국해방을 위해 싸우는 그들에게 절망이란 없었다.
자신들의 죽음조차도 언젠가 다가올 해방의 밑거름일 뿐…. - P339

봄이 왔다. 남부군은 피아골에서 보급투쟁만 하며 상당 기간 머물렀다.
휴식과 재정비가 필요한 때였다. 이 무렵 부대개편이 있었다. 81사단은박종하부대로, 92사단은 김지회부대로 개편했다. 박종하와 김지회는 이현상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사람들로, 이제는 곁에 없는 두 동지의 이름을 딴 것이다.
소소한 전투야 언제나 있는 일이지만 지난겨울과 같은 큰 공세는 이듬해 겨울이 다시 오기 전까지는 잠잠했고 별 피해도 없었다. 동지들의 피를 삼킨 눈도 녹고 피아골 아래 계곡엔 버들강아지에 물이 오르더니 새싹들이 하나둘 돋아나기 시작했다. 봄과 더불어 남은 대원들도 차츰 사기를회복해갔다. - P340

"같이 먹읍시다!"
그러나 양봉순을 제외한 아무도 부추무침에 손을 대지 않았다. 소금국만 떠먹으면서 대원들이라고 왜 싱싱한 부추가 먹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존경하는 대대장을 위해서 그들은 속으로 침만 삼키고 있는 것이었다.
"김 동무가 안 잡수면 나도 안 먹을라요!"
양봉순이 수저를 탁 내려놓자 그제야 대원들도 부추를 먹기 시작했다.
같이 먹자는 청을 뿌리치고 곁에 앉아 있던 그녀의 가슴이 뿌듯하게 달아올랐다.
한낱 촌 아낙네였던 양봉순이 전투부대의 대대장으로 남자 대원들의가슴에서 우러난 존경을 받으며 부추 몇 젓가락을 서로 나눠먹으며 식사를 하고 있다. 이게 바로 혁명 아닌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목숨 바쳐 건설하려는 새로운 세상의 모습이 아닌가. 여자도 남자도, 위도 아래도, 있 - P346

는 자도 없는 자도 모두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세상.......
여름밤이면 그들은 푸른 산죽을 꺾어다 깔고 자리에 누워 유난히 별이많은 지리산의 밤하늘을 올려보았다. 젖빛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다. 풀벌레의 울음소리 속에서 여름밤이 깊어갔다.
"바깥사람들은 우리가 다 죽은 줄 알겠지? 이렇게 멋진 밤을 보내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야."
"빨치산 아니면 이런 기분은 죽었다 깨나도 모를 거요."
"야! 별빛 한번 맑구만." - P347

"명순 동무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전남에서 문화선전대로 파견돼 온 김명순은 명랑하고 쾌활한 처녀로노래를 썩 잘 불렀다. 처음에는 노래보급만 하던 김명순은 수도사단 공세를 거친 뒤로 전투대원이 부족해지자 자청하다시피 전투부대로 옮겨가있었다. 후평에서 남진할 때만 해도 여성 전투원은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수도사단 공세를 거치면서 문화선전대원이나 취사원으로 활동하던 여성들도 상당수 전투부대에 참가하게 돼 52년 무렵에는 스무 명에 가까운 여성 전투원이 있었다.
"지도원 동무, 배가 아파 죽겠어요."
생리통이 유난히 심한 사람들이 몇 있었는데 김명순도 그중 하나였다.
그렇지 않아도 전투지휘자들에게 여자들 생리 때는 전투나 보급투쟁에서 제외시켜달라고 했건만, 남자 부대장에게 차마 말을 못하고 혼자서만끙끙 앓고 있는 것이었다.  - P349

목포 출신으로 여순사건 직후부터 이현상부대에 있었던 조종기는 여자들 눈만 봐도 안다는 자신의 말대로 자상하고 꼼꼼한 사람이었다. 생리문제는 여자들에게 가장 골치 아픈 문제였다. 배가 아픈 것은 둘째 치고천이 넉넉한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있는가. 그 몸으로 눈구덩이 위에쓰러져 자고 며칠 밤을 새우며 꼬박 행군을 하고 비옷도 없이 장맛비를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장거리 행군 때는 물론이고 낙동강 전선에서는 밤낮도 없이 매일매일 계속되는 전투에 쫓기느라 용변도 제대로 못 볼 때였으니 그 고통은 차마 말로 옮길 수 없을 지경이었다. 오죽했으면 아래가다 헐어 여자들의 걸음걸이가 모두 오리걸음이 됐는데 미얄스러운 박종하가 계속 여자들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며 따라다니는 통에 웃음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양봉순 같은 사람은 52년 여름 무렵엔 아예 생리가 끊겼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가장 커다란 고통이었다.  - P350

여성과 예술인을 특별히 우대하는 남부군이라 일선 지휘자들이 나름대로는 신경을 써주었지만 특별대우를 해준다고 해도 거부하는 여성들이 많았다. 남자들보다 몇 배나 더 열악한 신체조건을 가지고도 남부군의 여성들은 남성과동등하게 조국해방을 위해 싸웠던 것이다. 그녀와 양봉순을 비롯한 남부군 대부분의 여성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농사나 짓고 밥이나 하는 촌아낙네에 불과했다. 해도해도 산더미처럼 쌓이는 일 때문에 자기 자신이누구인지, 인간이 무엇인지, 또 역사와 조국이란 무엇인지도 생각할 짬이없던 그녀들이 지금은 조국의 해방을 위해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바치겠 - P350

다는 뜨거운 결의로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싸워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전열을 재정비한 남부군은 문춘 부사령관의 지휘하에 김지회부대를덕유산으로 파견해 분산투쟁에 들어갔다. 이 김지회부대는 덕유산에 들어가자마자 적에게 조발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그 전투에서 부사령관 문춘을 잃고 많은 희생자를 내고 말았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김지회부대는, 일곱 군데나 총상을 입고 거동이 불가능한 대대장 최동지와몇몇 부상환자를 남겨놓은 채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오랜 후 뜻밖에도 부상자 전원이 무사하게 지리산으로 귀환했다. 뱀을 잡아먹고 회복이 되어 지리산까지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덕유산에서 세상으로 내려갔으면 그들은 아마 편하게 나머지 인생을 살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고통의 운명을 찾아 죽음의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 P351

백운산에 온 얼마 뒤 호위대장 유화열이 그녀를 데리러 왔다. 이현상이 찾는다는 것이었다.
"선생님, 부르셨어요?"
그녀가 왔는데도 이현상은 먼 산만 바라본 채 대답이 없었다. 이번 겨울을 나면서 유난히 핼쑥해진 옆모습이 안타까웠다.
"진범이가 죽었소………."
서울에서 만나자며 남은 그녀를 걱정하던 이진범이 죽었다. 윤호를 만나면 그녀의 소식을 전하겠다고 하더니 정말 윤호의 뒤를 따라 가버린 것일까.
속리산에서……… 다들 전사했다고 하오."
언니 대신 잘하겠다고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며 그녀의 얼굴에 제 뺨을부비던 양봉순도, 임현태도, 함께 떠났던 스무 명의 동지들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 과연 해방은 올까. 앞서 간 동지들의 주검 앞에 해방을 바칠 날이 올까. 해방된 서울에서 뜨거운 눈물을 흩뿌릴 날이 정말로 있을까.
3월, 아직도 깊은 산에는 겨울눈이 그대로 쌓여있었다. 봄이 영영 오지않을 것처럼 추운 날이었다. - P361

골목까지 따라나오며 맘씨 좋은 아낙네는 발을 동동 굴렀다. 아주머니는 모를 것이다. 빨치산들이 왜 죽는 순간에도 어머니 대신 인민공화국만세를, 김일성 장군 만세를 외쳐 부르는지, 자수하면 살려준다는데도 죽음의 산으로 되돌아가는지, 그리고 혁명이 수많은 빨치산들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했는지, 자신이 혁명의 바다에 빠져보지 않고는 절대로 모를것이다.
그 무렵 그녀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다름 아닌 조병하 때문이었다. 그녀를 대하는 눈치가 남달랐던 것이다. 조병하는 5지구당 조직부장으로 바로 그녀의 직속상관이라 한 트에서 같이 생활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눈을 뜨면 조병하가 꼭 그녀의 곁에 누워 있었다. 결혼한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남녀문제에는 별 관심도 없고 눈치도 느린 그녀라 처음에는무심히 지나쳤다.  - P364

평가하든 그녀가 아는 이현상은 소박하고 따뜻하고 강인한, 그야말로 철의 투사였다. 누구에게도 반말을 하지 않고, 대원들의 짐을 대신 들어주고, 이름 없는 하부원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신경 쓰던 아버지 같은 지도자였다.
한참 신록이 푸르던 무렵 그녀는 남부군, 그 잊을 수 없는, 자신의 고향같은, 어머니 같은 남부군을 떠나 경남도당으로 향했다. 남부군에서의 만사 년은 그녀 삶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격정적이고 가장 빛나던시절이었다. 그 사 년을 제외하고 난다면 아마 그녀는 더 이상 그녀가 아니라 빈껍데기에 불과할 것이다. 그녀는 그곳에서 조국을 알았고 조국을위해 싸웠고 인간을 알았으며 인간해방을 위해 싸웠다.
정든동지들의 모습이 점점 사라져갔다. - P368

경남도당은 조개골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와 유화열, 그리고 강태봉 세 사람은 지하공작 사업의 임무를 띠고 도당과 조금 떨어진곳에서 대기하며 지하침투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했다. 어디서 구했는지사진기로 사진도 찍었다. 도민중에 붙일 사진이었다. 지리산에서의 마지막 여름이 무성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마지막이라는 것을 예감할 수 없을 만큼 한가로운 여름이었다. 세 사람은 함께 나무를 하러 다니고, 함께 개울가로 빨래를 하러 가고, 함께 식사를 준비하면서 여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화열과 김태봉이 먼저지하로 나가게 되었다. 두 사람은 모두 남해 출신이었다. 육 년 만에, 혹은 삼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땅에 돌아가는 것이다. 비합법의 신분으로. - P369

난무하고 있지만 사실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다). 종파주의자는 아니면 역으로 종파주의에 의해 희생당한 제물이든 분명한 것은 남한 현대사의 한장을 장식할 유격투쟁의 지도자였으며 남부군 대원들에게는 친아버지와같은 존경을 받던 한 탁월한 혁명가가 유격투쟁의 본거지인 지리산에서최후를 마쳤다는 사실이다. 혁명을 위해 자신의 삶 전부를 바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모든 죽음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 그는 진보하는 역사의 편에 서서, 핍박받는 민족의 편에 서서, 고통당하는 인민과 함께 자신을 불태운 것이다.
이현상이 죽고 난 두 달 뒤 대성골전투에서 살아남은 서른 명가량의 대원과 함께 계속 투쟁하던 57사단 전멸당했다.  - P374

남부군은 사라졌어도 조국의 해방을 위해 싸우던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의 지도자가 설령 미제의 앞잡이였다고 해도, 그리고 종파주의자였다고 해도 그들은 사상의 순결성을 죽음으로 지켜냈다.
절망의 겨울이 깊어갔다. 그러나 영원한 절망은 아니었다.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자기 몸을 썩혀 절망의 시절을 보내고 수많은 밀알을만들어내듯이 그들은 점점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도 언젠가는자기들의 눈물겨운 투쟁이 이어져 이 땅의 프롤레타리아가,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가 해방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 먼 날을 위해 그들은 스스로 절망을 선택한 것이었다. - P376

농사짓던 때를 생각하는 것일까. 김 영감은 산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는 경상도 쪽을 자주 쳐다보았다. 수년간 목숨을 걸고 싸워놓고도 그 대가로 자기 땅 몇 마지기 갖고 농사짓는 게 소원이라는 김 영감, 그 소박한소원조차도 이뤄지지 않는 세상이 저 순박한 김 영감을 혁명의 물결로 밀어 넣은 것이리라. 일한 만큼 대접받고 사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고 지난한 길일까. 오십 평생 노동으로 지문이 닳아 없어진 김 영감이 자기 땅 한마지기 가지고 사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일까. 자기 이름자도 쓸 줄 모른다고 부끄러워하는 김 영감의 모습을 보면서, 쇠죽 끓는 냄새가 세상에서가장 구수하다는 김 영감을 보면서, 그녀는 지금 현재의 고통이 어쨌건스스로 선택한 길이 분명히 옳은 일이었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 P378

다른 동지들은 어떻게 됐을까. 흰 눈이 쌓인 겨울산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동지들이 흘린 피처럼 노을은 붉었다. 지난 칠 년간의 삶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지난 칠 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가장 고통스러웠으또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처음으로 삶이 무엇인지 알았고 자신의 존재를 알았으며 조국을 알았고 역사를 알았다. 그녀는 혁명을 위해아이를 바쳤으며 남편을 바쳤다.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송두리째 바쳤다. 그리고 혁명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녀 자신의 혁명은 그녀를새로운 사람으로 탄생시켰다. 지금은 졌다. 그러나 언젠가는 또다시 해방이 올 것이다. 이 겨울산에 또다시 녹음이 짙푸르러오는 것처럼. - P388

남편의 얼굴이, 이현상, 박종하, 이진범, 양봉순, 다 기억할 수도 없는수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동지들의 피가 스미고 살이 썩은 이 산은 봄이면 더 눈부신 녹음을 피워낼 것이다. 이 산으로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역사는 소용돌이치며 저 거대한 지리산의 산맥처럼 수많은 봉우리를 만들며 흘러간다. 우리는 어떤 봉우리를 만든 것일까. 우리는 정상에오르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또 다른 동지들이 정상으로 오를 것이다. ‘평등‘이라는 말만큼 매혹적인 게 어디 있는가, 불평등한 세상이 계속되는 한 우리처럼 그 말에 자신의 생명을 걸고 불꽃같은 열정으로 또다시 꿈꾸는 자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그 혁명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 P388

다시 만날 것이다. 이현상도, 박종하도, 마실 동무도, 김 영감도...….….
아무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해도 좋다. 지리산에 담긴 역사를 몰라도좋다. 어떤 이름으로건 기어이 오고야 말 해방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것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빛나는 것이었다. 대성골에서 최후의 총탄까지 적의 심장을 겨누고 수류탄으로 자폭한 동지들의 외침이 생생하게들려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조선노동당 만세!"
어디서 어떤 식으로 그녀의 운명이 닥쳐오건 동지들의 그 외침과 수류탄의 장렬한 폭발음을 떠날 수는 없었다. 나는 살아서 내려간다. 동지들!
그러나 나는 반드시 동지들의 곁으로 돌아오고 말 것이다.
노을이 지고 지리산은 어둠에 묻혀갔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산으로부터점점 멀어졌다.
(끝) -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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