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진이정

  시인이여,

  토씨 하나

  찾아 천지를 돈다

  시인이 먹는 밥, 비웃지 마라

  병이 나으면

  시인도 사라지리라

     시집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중에서














  일부러 산수유꽃을 보러 산수유 마을에 간 적이 있다. 마을 골목이나 언덕에나 나이 먹은 산수유들이 무리 지어 넘실넘실 피어서 서로 눈 맞춤하고 있었다. 하필 눈이 폴폴 날리고 지리산은 눈을 하얗게이고 있는 이른 봄날이었다. 그날, 비로소 알았다. 산수유의 노랑은 겸손한 색이었다. 그 무엇이든 그 누구이든 어우러지게 만드는 색이었다. 마음 안으로 스며드는 색이었다. 그 후로 겸손한 노랑은 끌림이다. 산수유꽃 빛깔을 닮은 얇은 시집이 왔다. 표지색부터 겸손해서 더욱 처연한 슬픔이 가득한 故진이정시인의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가 복간되었다. 이 시집을 끌고 다니는 며칠 동안 시인을 꿈꾸는 친구의 따끈따끈한 산문집과 동행했다.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 (김해서 산문) 세미콜론(2022)]이다.

  세상은 마침 모든 색상들이 절정을 이루는 늦가을이다. 즐겨듣는 라디오에서는 아침마다 "가을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이다- 알베르 카뮈-"의 말을 들려주고 있었다. 나날이 진해지는 은행잎의 노랑이, 세월호의 노랑과 우리들의 대통령의 노랑과 겹쳐지고 이태원과 더해져서 아득하게 먹먹한 노랑이 되고 있었다. 파랑이 약간 입혀진 산수유의 노랑이 올 시월의 "두 번째 봄"을 서럽게, 부끄럽게 만들고 있었다. 무책임한 어른의 일원이 되어버린 것이 한없이 부끄럽다. 작아진다.

  책 얘기로 돌아가서 솔직히 한 것도 없이 나이만 먹은 탓인지 젊은 작가들의 책은 조심스럽다. 소설들은 더러 읽기도 하고 그것보다 더 더러 뭐라고 끄적거리기도 하지만 산문집에는 어떤 덧붙이기도 주저한다. 사실 덧붙일 말이 궁색하다. 단지 나이만 더 먹었다 뿐이지 이 작가들의 성찰이나 시선은 한참 윗길이어서 늙은 나를 서늘하게 만든다. 새삼 내 나이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책 또한 마찬가지였다. 읽는 동안은 나이를 잊었고 읽고 나서는 내 나이가 부끄럽다. 이래저래 창피하고 부끄러운 11월을 맞았다.

  "사실, 이 작가를 안다. 아니 이 작가의 아빠를 안다." 이렇게 적고 보니 과연 안다고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모르는 쪽이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블로그의 오랜 이웃인데 어렸을 때 '토비'라 불리던 이 친구의 동시와 근황을 가끔 올리셨다. 하여 더욱 조심스럽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것.

  비키지 않는 것.

  나는 내 자리를 알아요.


  책은 저렇게 시작된다.

  저 문장들로 나는 이 책을 읽고 뭐라고 뭐라고 쓰게 될 것임을 예감했다. "내 자리를 알"아도 "비키지 않는 것"의 용기를 아는 작가에게는 어떤 말들도, 어떤 후기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어야 했다. 이 책은 이태원과 무관한데도 결국은 무관하지 않다. 저 문장이 콕 박혀온다. 이것이 글의 힘은 아닐까 생각했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면서도 세상에 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만 했다. 시를 흠모하여 시로 다져진 내 감각이 무엇으로든 세상에 쓰일 수 있음을, 그것으로도 이 한 몸을 지탱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들어가는 녀석에게.

에세이, 인터뷰를 비롯한 잡지 기사, 주얼리나 향기 제품 설명글, 책 큐레이션 등. 시로 터득한 나만의 화법과 관점으로 일을 해나갔고, 차츰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렇게 살고도 여태 굶어 죽지 않은 이유다. 사부작사부작 다양한 작업을 했고, 대단히 벌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게는 버티는 힘이 존재한다. 그 사실만으로 자긍심을 되찾고 감사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다. 일은 일이고 시는 시니까. 시인은 어떤 상태일 뿐 직업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 나는 내 시를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하는 몸으로 전환되었다.

- P65

상상하는 것. 어쩌면 상상력이 밥 먹여준다는 말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상상력은 밥 대신 미래를 짓는다. 오늘이라는 토양 위에 내일의 태양빛을 불러오도록 한다. 그 빛의 아름다움을 보도록 한다. 그리하여 살게끔 한다.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게 연루된 다음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것들이 예상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이어지는 삶은 우리가 이어갈 삶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야기는 그렇게 쓰인다는 것을 망각할 리 없다. - P66

다정함과 섬세함에 대한 나름의 고찰은 다음과 같다. 다정한 사람들은 리액션이 좋다. 경험상 이들은 무드나 환경에 약하고 상대방의 감정과 표정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따뜻한 사람이다. 그만큼 감정 기복도 심하고 표정 변화도 크게 드러난다. 누군가 울 때 같이 우는 사람이 딱 ‘다정‘ 유형.

반면, 섬세한 사람은 순간순간의 리액션이 크지 않더라도 기억력이 좋은 경우가 많다. 그 사람과 어떤 식당에서 어떤 농담을 나눴는지, 그 사람은 머리가 아플 때 어떤 약을 먹고 어떻게 쉬는지, 그 사람은 평소에 귀걸이를 빼서 어디에 두는지 등등, 대상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고 잊지 않는 것이다. 잊지 않았다는 것이 어떻게든 행동에서 티가 난다. - P106, 107

주변에 다정하고 섬세한 사람들이 많다. 허술하긴 해도 내가 분류한 이 유형을 참고해 그들을 관찰하는 것은 오랫동안 흥미로울 것 같다. 다정한 사람들의 입매와 눈빛, 눈썹과 고개의 방향, 허리를 숙이는 방식. 그리고 섬세한 사람들의 행동과 그 곁의 장면들. 나비 같고 나무 같은 사람들이다. 사랑스럽고 성실한 내 사람들.

섬세한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풍경 위에서 다정한 사람들이여, 내내 행복하기를! - P110, 111

좋은 것을 다 갖고 있는 듯 보이는 언어에 현혹되지 말자. 좋은 것을 다 이해하고 있다는 듯 으쓱하는 사진에도 휘둘리지 말자. 그것들이 독점한 가치는 사실 우리 안에도 있다. 고유한 빛을 머금은 채.

자기 삶의 서사를 단단하게 쌓아가기 위해 자신을 둘러싼 사랑의 고유함을 공부하는 사람. 그리하여 그 사랑 한가운데 기어코 들어가 젖어보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타자를 ‘이해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 작가, 그런 에디터로 성장할 수 있을까.

혼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결국 내가 의지해야 하는 존재도 우리다. 서로 다른, 긁힌 자국투성이의, 미우면서도 사랑스러운 우리.

우리가 지킬 삶은 우리를 외롭게 하지 않을 것이다. - P269, 270

유월, 시 쓰기 참 좋은 계절이야. 쓰고 있어도 시가 그리워져. 때론 밉기도 해. 벽을 미워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지만, 아무튼 그래. 네가 날 자주 미워했던 것과 비슷한 마음이겠지. 나도 네가 날 미워해서 네가 미웠어. 이젠 그저 모두가 건강했으면 좋겠구나. 장마가 오기 전까지, 장마가 끝나기 전까지, 겨울이 되기 전까지, 다음 해로 넘어가기 전까지. 그다음 해, 다다음 해, 언제 까지든. - P305

책은 저렇게 끝맺는다. 시인을 꿈꾸는 작가 '김해서'의 책은 기승전詩이다.

그래서 '다정'이라면 '한 다정'하면서도 궁극의 '섬세한 유형'의 나는 "옥타비오 파스의 시"를 작가를 위해 찾아 읽는다.

내가 보는 것과 내가 말하는 것

내가 말하는 것과 내가 침묵하는 것

내가 침묵하는 것과 내가 꿈꾸는 것

내가 꿈꾸는 것과 내가 잊는 것,

그 사이















시를 좋아한다. 자주 찾아 읽는다. 새로운 시인을 만나기도 하고 읽었던 시집을 또 읽기도 한다. 보따리 같은 가방 안에는 언제나 두 권의 책이 있다. 아침에 필이 꽂히는 시집 한 권, 읽고 있는 책 한 권. 시는 특히 버스에서 읽기 좋다. 시 한 편이 나를 훌쩍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주는 '찰나'는 언제나 황홀하다. 시를 버리지 않으면 시는 멀리 있지 않다. 행간과 행간 사이에 잠시 머무는 그 사이에 '우주'가 있고 '詩'가 있다.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에는 이미 빼곡한 답장들과 시들이 범람하고 있다. 받아 적기만 하면 되겠다. '시인'이 되려고 '일상'을 포기하지 않은 작가의 하루하루가 이미 '시'다. 주변을 향한 다정하고도 섬세한 시선이 세상을 품고 있기에 그의 시들은 따뜻하다. '사람'이 살아있는 '시인 김해서'의 시집을 가방 안에서 설레며 꺼내는 버스 안의 나를 상상해 본다. 기분이 좋다. 유쾌해지는 긴 편지를 한 통 받은 느낌이다. 이 글은 부끄러운 답장이다.

마지막으로 황현산 선생의 글을 덧붙여둔다. 시인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시는 승인하고 구성하고 조직할 수있으며, 거부하고 파괴하고 해체할 수 있다. 그러나 거부는 승인의마지막 패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다. 시는 제가 부르는 노래를 비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비웃음으로 다시 확인되는 것은노래의 존재다. 분석의식에서 떠날 수 없는 시는 제가 완전하고 절대적인 세계를 실현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시는(만)그 세계의 전문가다. 시는 순진하면서도 순진하지 않아서, 자유와평등을 완전하게 누리고 생명이 모욕받지 않는, 풍요로운 세계가실현된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 풍요로운 세계가 존재할 수없다고도 믿지 않는다. 불행의 끝까지 가게 하는, 어떤 불행의 말이라도 그 말을 시 되게 하는, 고양된 감정을 그 세계가 아니라면어디서 얻어올 것인가. 시는 현실에 내재하는 현실 아닌 것의 알레고리다. 그 점에서 시는 진보주의자다. 제가 옳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 외에 다른 어떤 말로 진보주의를 정의할 것인가, 사물을, 말을, 사람을 시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옳은것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높이로 정신을 들어 올린다는 뜻이다.

  시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이 시의 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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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습득한 책 읽기 습관을 요약해 본다.

1. 눈을 감아야 보인다(in/sight).

2. 새로운 것을 얻으려면 기존의 인식을 잠시 유보하라.(판단 정지, epoche).

3. 한계와 관점은 언어와 사유의 본질적인 속성이지, 결함이 아니다.

4. 인식이란 결국 자기 눈을 통해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나의 시각을 객관화하는 것이다.

5. 본질적인 나는 없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나다.

6. 선택 밖에서 선택하라.

7. 궤도 밖에서 사유해야 궤도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8. 대중적인 책은 나를 소외시킨다.

9. 독서는 읽기라기보다 생각하는 노동이다. - [정희진처럼 읽기] P24

독서는 저항, 불복종의 시작이다. 이 책에는 내가 그간 겪은 ‘책, 글쓰기, 공부와 여성/아줌마‘와 관련해 차별, 편견, 무시, 경멸, 혐오당한 일화는 쓰지 않았다. 남들이 봐도, 지금 내가 생각해도 재미있는 일화가 무궁하다. 20여 년 동안 거의 매일 하루에 한 건 이상 겪었다. 너무 많아서, 너무 어이가 없어서, 누가 믿을까 싶어서 쓰지 않았다. 새삼스런 이야기지만 가장 강력한 지배는 사람들에게 여행과 독서를 금지하거나 접근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독서 이전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갑‘은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 잃을 것이 없는 사람, 덜 사랑하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권력이 두려워하는 인간은 분명하다. 세상이 넓다는 것,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다. - [정희진처럼 읽기] P25

정찬의 [새의 시선]의 인용 부분 때문에 [정희진처럼 읽기]를 펴게 된 저녁, '누구나 독서 이전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문장이 무겁게 남았다. 나한테 책 읽기는 무엇일까. 책을 생각하면 학교에 들어가서야 내 이름을 알게 되고 한글을 뗀 내가 교과서 외에 첫 그림책을 만난 아홉 살의 도서관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새로 지은 건물이라 지독했던 페인트 냄새처럼 여전히 나한테 강렬하고 지독한 냄새로 따라다니는 책은 내게 무엇일까.

'숨쉬기'다.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공기가 책에서 오고 책을 통해 숨을 쉰다.' 이런 표현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책' 없는 나란 사람은 상상할 수 없으니. 읽기보다는 사들이고 쌓아두면서도 흡족하던 때, 이건 지적 허영심이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아직도 읽지 못한 책이 꽤 많이 꽂혀있지만 이 정도의 허영은 스스로에게 허락하기로 한지 오래되었다.

도서관의 책들을 다 읽고도 책에 대한 허기는 날이 갈수록 강해져서 친구들 집에 쌓아둔 책들을 탐하기 시작했다. 좀 먹고산다는 집에서는 아이들을 위해서 전집들이 몇 질씩 꽂혀있기 마련이었고 그렇게 친구들의 집을 들락거리면서 책이 가득한 책방의 로망을 키우기 시작했던 것 같다. 특히 Y네 집의 책방은 여전히 로망이다. 지역 유지에다 손꼽히는 재력가였던 그 친구의 집에는 별채가 있었다. 별채에는 '식모 언니'방이 있고 벽마다 종류별 책으로 가득한 책꽂이가 천장에 닿아 있었다. 언니 오빠들도 많았고 대학생이거나 고등학생이었던 그 집에는 다양한 책들이 도서관보다 많았다. 툇마루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으면 마당을 뒤덮은 포도나무 덩굴을 벗어난 햇살이 발목을 간지럽히던 아른아른한 그림자의 풍경과, 그 시간, 그 여유가 열두 살의 봄으로 나를 데려간다. 집에 돌아가면 4년째 앓고 계신 아버지가 야윈 팔다리를 주물러주기를 기다리시고, 농사 일하랴 집안 살림 챙기랴 종종걸음으로 바쁜 엄마는 도와줄 손길이 간절한 걸 알면서도, 털고 일어나기 싫어서 의도적으로 책 속으로 빠져들던 갈래머리의 내가 거기 있다. 저녁밥 때가 오기 전에 일어나서 어스름 저녁 시오 리 길을 타박타박 걷노라면 배는 고프고 검어지는 산모퉁이 커다란 바위는 신성한 기운으로 무서워 걸음은 자동 빨라진다. 도착했다는 안도감도 잠시, 오늘도 늦었다고 엄마의 큰 손은 어김없이 등짝을 후려치고 욕을 한 상 푸짐하게 차려주셨다. 그 친구의 집에서 간식으로 내어주는 처음 보는 과일도, 가사 일을 돌보는 식모 언니도, 내가 책을 읽는 동안에 친구가 과외 선생과 함께 치는 피아노도, 레이스 가득하고 질감 좋은 드레스를 입은 우아한 친구의 엄마도, 마당에서 탁구를 치며 환하게 웃던 친구의 오빠들도 부럽지 않았다. 오로지 책방, 책방만이 부러웠고 그 책방의 책들을 다 읽고 싶어서 조바심이 났다. 책장의 한 칸도 채 읽지 않았는데 그 집에 돈 빌리러 오신 초라한 엄마와 마주친 이후로는 그 친구네 집에 가지 않았다. 돈 빌리러 오는 양수장 집 딸인지도 모르고 왜 안 오는지 묻는다는 친구 엄마의 전언에도 '나한테 삐진 거냐'라는 친구의 채근에도 그 친구의 집에는 다시 가지 않았다. 포도나무는 베어지고 그 자리엔 등나무가 심기고, 별채는 허물어지고 장미 밭으로 만들었다는 소식을 중학생이 되어서 듣고 그 풍경이 아련해졌다.

돌아보면 그립고 평온한 봄밤이었다. 그 봄 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더 이상 평온한 저녁은 맞을 수 없었다. 평생을 가정에 소홀하고 가족에게는 무능한 분이었지만 지역의 한량이었던 아버지가 떠나시자 우리들은 순식간에 '애비 없는 자식'들이 되어버렸다. 특히 엄마는 많은 것을 놓아버리셨는데 '장남'에게 아버지를 대신할 관심과 책무와 의존과 기대를 고스란히 전가했다. 스물다섯의 우유부단하면서도 나르시스 청년에게 넘겨진 일곱 식구는 너무 과한 무게였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와 의존은 제왕적 권력의 힘으로 작용했고 뭐든 할 수 있게 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대서 발전해서 노름에 빠졌던 것이다.

내 유년은 끝나버렸다. 어두운 십 대의 터널이 시작되었다. 온통 회색이었고 절망이었고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았다. 애증의 '엄마'만 아니라면 모든 걸 놓아버릴 수 있었고 놓아버리고 싶었다. '가족'이라는 올가미가 항상 목에 걸려 있었다. 앎에 대한 갈망은 지속되는 목마름이었고 책은 유일한 샘물이 되어주었다. '책'이 없었다면 아마도 살지 못했으리라. 어떤 종류의 책이라도 책을 읽고 있으면 다른 세상, 다른 곳에서 사는 나를 꿈꿀 수 있었고 그 꿈이 나를 살게 했다.

[아주 친밀한 폭력].

오랫동안 무거운 마음에 밀어두고 밀어두었던 책이다. [아주 친밀한 폭력]의 그 '아주 친밀한'의 시작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모른 척하고 싶었다. 잊고 싶었다. 그러나 '독서는 저항, 불복종의 시작이다.'에 용기를 냈다. '아주 친밀한 폭력'은 책 속의 얘기만도 아니고 남의 일도 아니고, 내 주변에서도 흔하고 나에게도 흔痕이다.

노름에 빠진 장남은 돈이 되는 무엇이든 가져가느라 눈이 벌게져갔고 엄마는 포기와 의존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시면서도 우리들에게는 '장남이 잘 되어야 집안이 선다'라는 말을 수없이 주입했다. '돈 내놓으라'라는 협박의 강도가 세질수록 더 이상 돈 한 푼 빌릴 데도 없는 엄마는 비굴해져갔고 그런 엄마를 밀쳐버린 것은 엄마를 향한 폭행의 시작이었다. 술을 먹고 들어오면 '내 인생을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라고 주정하기가 일쑤였고 자신의 인생을 저당한 동생들 중에서도 가장 어린 나와 내 동생은 꼼짝없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잠에 곯아떨어질 때까지 자기가 얼마나 잘나가는 사람이었는데 이 꼴이 되었는지를 듣고 또 들어야 했다. 울분으로 똘똘 뭉친 막내 오빠는 집을 떠났고 객지로만 떠돌다 우연히 집에 들른 둘째 오빠는 엄마한테 패악질 하는 것을 보고 죽여버리겠다고 부엌칼을 휘두르다 만류하는 엄마 때문에 대성통곡을 쏟아내고는 그 길로 집을 떠나 다시 몇 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아프기 시작했다. 일 년 내내 툭하면 코피를 흘리셨지만 여전히 들에서 허리가 꺾이도록 일을 하고 우리를 위해 밥을 짓고 장남의 노름 돈을 대고 우리를 학교에 보냈다. 코피가 잡히자 두통이 덮쳐서 엄마의 이마에는 흰 머리띠가 자리 잡았다. 병원에는 한 번도 가지 않았고 겨우 침을 놓는 집에 저녁마다 찾아가 침을 맞으셨다. 중 2, 열다섯 살의 나는 저녁마다 엄마를 모시고 침쟁이 집 어둑신한 골방을 찾아갔다. 이불 바늘만 한 침들을 꽂고 잠드신 엄마를 무기력하게 바라보다가 부축하고 돌아오던 깜깜한 길들이 어제처럼 선명하다. 그 가을, 친구 하나는 집에 있던 농약을 마셨다. 선배 오빠가 변심했다고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버린 것이다. 재주 많고 착하던 동네 오빠는 겨울마다 찔레 열매에다 청산가리를 넣어서 꿩을 잡고는 했는데 그 청산가리를 마셔버리고 고통 속에서 하루를 소리 지르다 떠나갔다. 좋아하던 동네 언니와 결혼을 집안에서 반대했다는 이유였다. 총각은 무덤도 쓰지 못하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에다 묻는 거라고 내가 즐겨 걸어 다니던 둑에 몰래 묻었다. 살짝 튀어 올라온 그곳을 지날 때마다 풀피리를 불던 그 오빠가 생각나서 결코 밟지 않으려고 길 끝으로 걸었다. 죽음은 멀리 있지 않았다. 죽음의 유혹은 강렬했다.

그때 나는 게오르규의 '25시',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와 심훈의 '상록수'와 삼중당 문고판에서 이광수의 책들을 읽고 다시 친구들의 책장을 뒤졌다. 중학생이 된 기념으로 집에 들인 양장본 전집들에서 '전쟁과 평화', '죄와 벌'을 읽어 치웠다. 돌아보면 조판 엉망, 번역 엉망의 해적판들이 포장만 그럴싸했던 것이다. 나중에 그 책들을 다시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때 나를 살게 한 책은 앞 뒷장이 찢겨서 나중에 다시 읽고서야 제목을 알게 된 '25시',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 가운데', 레마르크의 '개선문'이었다. 특히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나 '개선문'의 [조앙 마두]에게 빠졌다. 그런 세월을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그 시절을 통과하는 나를 위로했다. 그 어떤 위무보다, 그 무엇보다 그 시절을 견디는 힘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폭력의 세월을 견디다 결국은 엄마와 동생을 두고 도망쳤다. 고등학교를 포기하는 것만이 그에게서 도망치는 것이었으므로.

누구나 그럴 것이지만 나는 체벌이 싫다. 너무너무너무 싫다.

학교에서 손바닥을 자로 맞는 것도 싫었고, 아버지가 동생하고 싸운다고 호박 들기 벌을 내리는 것도 실어서 다시는 동생하고 싸우지 않았고 맞기 싫어서 공부를 잘해버리는 쪽을 선택했다. 키가 크다고 차출당한 배구부에서는 이유도 모른 채 단체 기합을 받거나 탱자나무 몽둥이로 맞았다. 코치가 때리고 선배들이 돌아가며 때리고. 배구는 하고 보니 매력적인 운동이었지만 맞는 거 싫어서 안 한다고 그만두었지만 집안에서 이뤄지는 폭력에는 답이 없었다. 맞는 동안 나는 점점 졸아들어서 먼지가 되어가고 맞다 보면 맞는 이유도 불분명해져서 '맞을 짓'을 해서 맞고 있으니 그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게 된다.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피해 여성이 피해 여성에게 주는 편지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제 생일도 아니었고 다른 특별한 날도 아니었답니다.

지난밤 우리는 처음으로 말다툼을 했어요.

그가 던진 수많은 잔인한 말들에 저는 정말 가슴이 아팠어요.

하지만 지금 저는 그가 미안해하는 것도,

그리고 그가 한 말이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아요.

왜냐하면 그가 오늘 제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우리의 기념일도 아니었고 다른 특별한 날도 아니었답니다.

지난밤 그는 저를 벽으로 밀어붙이고 목을 조르기 시작했어요.

마치 악몽 같았어요.

현실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죠.

오늘 아침 깨어났을 때 제 몸은 온통 아프고 멍투성이였어요.

하지만 지금 저는 그가 틀림없이 미안해할 거라는 걸 알아요.

왜냐하면 그가 오늘 제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어머니의 날‘도 아니고 다른 특별한 날도 아니었답니다.

지난밤 그는 저를 또다시 때렸어요.

이제까지 어느 때보다 훨씬 심하게요.

만약에 그를 떠난다면, 저는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제 아이들을 돌보나요? 돈은 어떻게 하고요?

저는 그가 무섭지만 그를 떠나기도 두려워요.

하지만 지금 저는 그가 틀림없이 미안해할 거라는 걸 알아요.

왜냐하면 그가 오늘 제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답니다.

제 장례식 날이었거든요.

지난밤 그는 결국 저를 죽였습니다.

죽을 때까지 때려서요.

만약에 그를 떠날 만큼 용기와 힘을 냈다면,

저는 아마 오늘 꽃을 받지는 않았을 거예요.

* 이 시는 가정 폭력 생존자이자 여성운동가인 폴레트 켈리(Paulette Kelly)의 작품이며,

신혜수의 번역문을 다듬어 수정했다.

--정희진 [아주 친밀한 폭력]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폭력 그 자체로 인식하지 않게 하는 다양한 문화적 구조들을 생산해 왔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종교의례, 민족 문화, 전통, 놀이 따위로 정상화, 합리화, 일상 문화화되었다. 이는 여성 폭력을 은폐하고 해결을 지체시켜온 사회 구조로 작용해 왔고 특히 ‘아내 폭력‘은 가족 내에서 발생한다는 점 때문에 수천 년 동안 폭력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여기서는 피해 여성의 폭력 해석, 수용 방식을 통해 폭력의 발생과 지속 구조를 알아보고자 한다. 아내가 특정한 방식으로 폭력을 해석하는 사회 문화적 맥락을 가족 구조와 가족 내 남성과 여성의 관계 방식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폭력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면, 폭력 당하는 현실이 부정의 하다고 생각하기 힘들다. 폭력을 남성의 정당한 자원으로 인정하는 한국 사회에서 피해 여성들은 남편을 제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므로 폭력을 견딜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몸이 경험하는 육체적 고통을 상대화하고 다른 종류의 문제로 치환하면서 폭력을 수용한다. - 정희진의 [아주 친밀한 폭력] P155

남편의 폭력은 아내를 훈육하려는 폭력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의 많은 폭력은 이보다 훨씬 더 도구적이다. 남편은 폭력을 통해 자기이해(利害)를 실현한다. ‘맞을 짓‘에 대한 성별적 적용은 오랜 세월이 지남에 따라 남편이 ‘맞을 짓‘을 해도 아내가 맞게 된다. 어떤 남편들에게 폭력은 생활 방편이다. 가정만 유지한다면 아내의 경제력으로 평생 먹고 살 수 있다. 폭력은 남편이 ‘노상(언제나 하는 일)‘로서 직업이자 노동이 된다. 이때 아내는 가족을 벗어나길 바라지만, 남편은 가족 없이 살아가지 못한다. 결혼 관계에서 폭력은 남편이 관계의 유지를 위해 서건 청산을 위해 서건,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가장 손쉽게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다. 두 사람 간의 이해 갈등 상황에서 남편은 아내보다 훨씬 쉽게 폭력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폭력은 남성적인 자원이다. 가정 외 폭력에서도 폭력 행위 주체가 대부분 남성이라는 점에서 폭력은 성별화된 사회 현상이다. - 정희진의 [아주 친밀한 폭력] P156

여성의 탈출 의지는 아내, 어머니 역할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에 회귀함으로써 폭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여성의 가족 내 성 역할 수행이 여성의 인권보다 우선시되면서 어머니, 아내로서의 ‘도리‘는 인간의 기본권으로서 ‘맞지 않을 권리‘를 유보하거나 산소화하였다. 또한 피해 여성의 공포심, 자기방어, 저항 행동은 한국 사회 전반의 성별 규범에 의해 인정되지 않았다. 결국 현재의 가족 제도 아래서는 남편의 폭력에 대한 아내의 순종과 저항 모두가 ‘아내 폭력‘을 재생산하였다. - 정희진의 [아주 친밀한 폭력] P247

첫 직장에서 같이 일하던 선배 언니 한 명은 애인이 있었다. 일이 끝나는 시간이면 왜소하고 성말라 보이는 남자가 껌을 씹으며 기다리고 있다가 그 언니를 보면 날름 팔짱을 끼고 사라졌다. 그 언니는 아기 팔뚝보다도 가늘게 마른 몸이었는데 일요일에 쉬고 나오면 멍투성이였다. 이유는 넘어졌거나 부딪혔다는 것이지만 우리는 알았다. 일을 안 하고 빈둥거리는 남자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꺼냈다가 툭하면 맞고 있다는 것을.

또래의 멋쟁이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미모며 몸매며 애교도 뛰어났지만 화장도 잘했다. 화장의 변신술을 그녀를 통해서 보았을 정도다. 주말이면 곱게 화장하고 잔뜩 들떠서 남자친구를 만나러 나가고는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만두었다. 친구들하고 놀다가 약속에 늦었다고 길에서 막무가내로 때려서 팔이 부러졌다는 뒷얘기를 들었다. 거의 45년 전 이야기다. 아마 그들은 그 남자들과 헤어지지 못하고 결혼해서도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을 것이다. 좋아해서 놓아주지 못하고 사랑해서 놓을 수 없다는 흔하디흔하고 뻔한 이유들이다.

사귀던 남자아이가 있었다. 같이 공부를 했고 같이 많은 길들을 걸었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이야기했고 암담했던 지난 시절들을 이야기하면서 몇 시간씩 길 위에 있고는 했다. 비가 오는 날은 공원의 미끄럼틀 밑이 비를 안 맞게 하는 것도 알았고, 팔달산에 그렇게 많은 오솔길들이 있는 것도 그 아이를 통해서 알았는데 만날수록 헤어져야 할 시간에는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스무 살, 남자와 자버리는 일은 너무 두려운 미래였다. 그 거듭되는 거절에 결국은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 당했다. 너무 놀라서 아픔도 느끼지 못했는데 찰칵, 칼을 꺼내는 소리가 들렸다. 어둑한 골목에서 순간적으로 공포가 목구멍까지 차올라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불이 켜지고 문소리가 나자 칼을 거두고 돌아서서 씹어뱉듯이 나이트클럽 같은 데서 눈에 띄면 죽여버리겠다고, 공부나 하라면서 뛰어가 버렸다. 다행인지 그 이후로 다시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우연히 자주 마주치면서 만나기 시작했는데 말이다.

한 번씩 생각해 본다. 그 아이와 밤을 같이 보냈다면 나는 영영 그와 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맞고 살았을 것이다. 그 생각만으로도 위가 꼿꼿해진다. 체할 것 같다. 저녁밥(밥보다는 국수나 수제비였을 때가 훨씬 많았지만)을 먹고 있을 때 술에 취한 '장남'이 들어오면 위부터 뒤틀려서 꼭 체하고는 했다. 쳇기는 설사로 이어지고 몸살을 앓고서야 끝이 났다. 그 이후로도 자주 체한다. 조금만 불편한 자리에서 식사만 해도 밥알이 차곡차곡 얹히는 기분이 든다. 이 이야기를 풀어 놓는 지금도 쳇기가 명치를 누른다.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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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30 0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30 1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닥
이산하


누군가 인생의 바닥까지 내려가봤다고 말할 때마다
누군가 인생의 바닥의 바닥을 치고 올라왔다고 말할 때마다
오래전 두 번이나 투신자살에 실패했다가
수중 인명구조원으로 변신한 어느 목수의 얘기가 떠오른다.
어떤 이유로든 사람들이 강에 투신자살하면거의 ‘99대 1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시신의 99%는 강물 속으로 가라앉다가 그대로 흘러가버리고
1%는 투신한 자리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흘러간 시신은 강의 바닥까지 가라앉지 못한 시신이고
떠오른 시신은 강의 바닥까지 완전히 가라앉은 시신이란다.
물론 잠시 머문 뒤 떠내려가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시신들은 한결같이
반쯤 눈 감은 채 미소를 머금어 마치 불상처럼 보인다고 했다.
어떤 생이든 막다른 벼랑에서 떨어져 바닥에 이르면
그곳이 정말 더이상 떨어질 수 없는 바닥의 바닥이라면
관짝을 부수고 나온 부처의 맨발처럼 오히려 고요해질지도모른다.

고요해지면 더이상 두렵거나 더이상 취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난 바닥을 쳤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숨이 멎는다.
물론 욕망과 탐욕의 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이르기도 전에흘러간들
바닥을 치고 다시 떠올라 잠시 세상을 애도하고 흘러간들
시신을 염하고 운구하는 강물의 숨결은 한결같을 것이다.
언젠가 내 몸도 바닥에 이르지 못한 채 흘러가겠지만
언제나 가벼운 생일수록 바닥을 쳤다고 더욱 강조하겠지만
이제는 강물의 색깔만 봐도 수심을 안다는 목수의 말만큼은
바닥의 바닥을 치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을 믿는다.


시집[악의 평범성]중에서


[새의 시선]을 마치고 가을 광교산에 올라갔다. 책이 주는 먹먹함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던 거다. 여름내 멀리했던 산이 무거워진 다리를 밀어낸다. 땀을 쏟으며 다리를 뻗어나가며 방금 빠져나온 소설을 생각한다. 이 땅의 현대사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소환되고, 세월호, 용산, 어린이집 수련회 화재로 아이를 잃는 피해자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로만 생각할 수가 없다.
이 이야기들이 그럴듯한 이야기에 불과하다면 좋겠다.
그렇게 눈 감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의 소설은
이 시대의 작가는 이런 글을 써내야한다.
지겹도록, 써내야 할 책무들이 있다.

이산하시인의 시들이 맴돈다.
‘바닥의 바닥을 치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영혼들을 생각한다.

세상은 아름다운 가을이다.
이 아름다움이 거저 온 것이 아니라는...
그 흔한 새 한마리 만나지 못하고,
새소리 한 번 듣지 못하고 산을 내려온다.
무력하다.
부끄럽다.

‘그는 권력과 폭력을 비판하거나 혐오하기보다, 사유한다.‘
정희진은 옳았다

˝배우 자신도 그랬다지만 나 역시 영화를 보고 ‘만 가지 슬픔‘ (이라는 책이 있다)이 쏟아졌다. 인류는 폭력 피해자 가족의 이런 ‘희망과 안도‘를 개념화한 적이 있는가? 나의 무식 탓이기를 바란다. 이런 심정은 프리모 레비(Primo Levi)의 책이나 로만 폴란스키(RomanPolanski)의 영화 <죽음과 소녀 (Death and the Maiden)> 같은 ‘전형적인‘ 고문의 서사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한국 소설 중 나만의 3부작‘이 있다. <슬픔의 노래> <얼음의 집> <새>.
모두 한 작가의 작품이다. 우연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생은 생잔(生殘, 살아남기‘), 권력은 폭력, 슬픔은 실패를 의미한다. 이런 현실에서 폭력과 권력 탐구를 짊어지는 작가는 흔치 않다. 어쨌든 정찬같은 ‘캐릭터‘의 지식인이 많아야 한다고 절실히 주장한다. 내가 만일 대통령 후보라면 이런 공약을 하겠다. ˝치열하게 생각하는 인간이 대우받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내가 이해하는 ‘정치신학자‘ 정찬의 주제는, 권력과 폭력 앞에 선 인간의 선택이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그들의 모습은 작가를 통해 예술과 신학의 이유가 된다. 그는 권력과 폭력을 비판하거나 혐오하기보다, 사유한다. 그의 작품은 ‘남영동‘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윤리학이다.˝ [정희진처럼 읽기]중에서 p149, 150


새들의 길


운동화 한 켤레가 방파제 위에 놓여있다. 봄햇살을 받아눈처럼 희게 빛난다. 그녀의 눈에는 한 마리 새처럼 보인다.
운동화 옆에 비닐에 싸인 옷이 있고, 그 위에는 부모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접착테이프로 붙여져 있다.
- 사랑하는 내 아들, 넌 지금 어디 있니? 어찌 그리 못 오고 있어. 새 신발을 신어보고, 옷도 입어봐야지. 너의 여행이너무 길어. 어서 빨리 돌아와. 오늘은 약속하는 거지?
그녀의 눈자위가 금방 붉어진다. 저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우리 종우와는 얼마나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걸까? 어젯밤 꿈이 떠오른다. 종우가 바다 밑 뻘을 헤치고 무언가를찾고 있었다. 얼굴 표정과 몸짓이 간절했다.  - P111

 종우야, 깊은 바다 밑에서 무얼 그토록 애타게 찾고 있니? 함께 찾고 싶었지만 종우에게로 갈 수 없었다. 몸이 무언가에 묶여 있는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종우의 발이 보였다.
맨발이었다. 몸은 진흙투성인데 발은 하였다. 하얀 발에 눈이시렸다. 아! 그녀의 입에서 탄성이 흘렀다. 종우가 찾는 것이무엇인지 깨달은 것이다. 운동화였다. - P112

"그럼 신고 가. 외삼촌이 너에게 주는 거니까."
"가슴 깊은 곳에서 슬픔이 일렁이고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묻어둔 슬픔이었다.
"외삼촌이 주시는 거라면 받아야지."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종우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이 운동화 내 거네."
"그래, 외삼촌 운동화는 이제 우리 종우 거야."
오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해맑은 얼굴이었다. 그녀는 나이가 들어 얼굴이 쭈글쭈글해졌는데, 오빠의 얼굴은 여전히 스물다섯 살 청년이었다. 스물다섯 살 청년을 그리워하며 보낸 세월이 아득했다. 사무친 아득함이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P118

진도 바닷가에서 지낸 한 달여 동안 잠을 제대로 잔 적이없다. 간신히 잠이 들면 악몽에 시달렸다. 끔찍하게 변해버린종우가 꿈에 자주 나타났다. 손톱이 다 빠진 손으로 무언가를긁고 있었다. 눈동자가 없어 휑하니 뚫린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입안에 피를 가득 머금은 채 누군가를 소리쳐 부르고 있었다. 너무 끔찍해 잠드는 것이 무서웠다.
배가 침몰하던 4월 16일 아침 그녀는 잠 속에 빠져 있었다.
마트 일이 끝난 것은 새벽 1시 40분이었다. 매출 금액과 받은 - P118

돈이 차이가 나 식은땀을 흘렸다. 적은 액수가 아니었지만 그녀 돈으로 메웠다. 팀장을 면담하고 사유서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했다. 집에 오니 2시 반이었다. 3시 넘어 이불을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오랫동안 뒤척이다 간신히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난 것은 성태의 전화 때문이었다. 잠결에전화를 받았다. 9시 40분경이었다. - P119

오후 2시에 구조된 승객이 368명이라고 발표한 정부는 4시30분에는 164명으로 수정 발표했다. 믿기지 않았다. 종우가구조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타들어갔다.
오후 5시 10분에 시작된 행정안전부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데, 그렇게 찾기 어려운가요?"라고 물었다고 했다. 학생들 대다수가 배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뉴스로 알려진 지 한참 지난 뒤였다. 억장이 무너졌다. 옆에 앉은 이에게 무어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말하는 법을 잊은 것 같았다. - P122

"고래의 눈을 어떻게 보니?"
"컴퓨터 스크린에서는 볼 수 있어요."
"아, 그렇겠네."
"저도 봤는데, 눈동자가 너무 깊어요."
"눈동자가 어떻게 깊어?"
"제가 보일 만큼요."
종우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슬픈 얼굴 같기도 하고, 화난얼굴 같기도 하다. 어쩌면 자신도 명호 어머니처럼 종우에게정말 중요한 것은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종우가 고래를 좋아하게 된 건 고래 눈동자가 깊기 때문이라는 거야?"
"맞아요. 종우는 고래 눈동자 속에 다른 세상이 있다고 했어요. 여기와는 다른 세상 말이에요." - P131

"귀신고래가 1년 동안 여행하는 거리가 얼만지 아세요?"
"몰라."
"2만 킬로미터예요. 귀신고래의 수명은 40년 남짓이에요.
40년 동안 귀신고래가 여행하는 거리는 지구에서 달까지의거리예요. 귀신고래에게 북극 여행은 아주 가벼운 여행인 거지요."
"하지만 종우는 고래가 아니잖니?"
"종우는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고래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어요."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종우가 부르는 소리를듣지 못하고・・・・・・ 너는 들었는데, 난 듣지 못하고・・・・・・ 그동안그녀는 종우와 통화했을 경우의 상황을 수없이 그렸다. 종우에게 갑판으로 올라가라고 말했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을 하면견디기 힘들었다.
132배 안에 있는 친구들이 부러워요."
"왜 그런 생각을 해?"
"많은 사람이 배를 탄 친구들을 생각하고………… 또・・・・・・ 보고 - P132

싶어 하잖아요."
"그건.......
목에 무엇이 턱 걸려 있는 것 같아 말을 할 수 없다.
"종우와 함께 북극에 가는 것이 꿈이었어요. 그 생각만 하면 힘이 절로 났어요. 이제 제 꿈은 산산조각이 났어요. 전 종우와 함께 배를 탔어야 했어요. 정말 탔어야 했어요."
성태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있다. - P133

지나자 경찰서를 찾았다. 치안 공무원들은 몹시 곤혹스러워했다. 담당이 아니라고 서로 미루었다. 민원실로, 수사과로,
보안과로, 정보과로 돌아다니다 수색원 서류 하나만 달랑 제출하고 쫓겨나다시피 나왔다. 그 후 경찰서에서는 어떤 연락도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오빠 주변 사람들은 물론 오빠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사람이면 수소문해서 만났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그들의 얼굴은 어두워져갔다. 어머니는 땅을 파헤쳐서라도 오빠를 찾고야 말겠다고 혼잣말하듯 중얼거리곤 했다. - P136

그녀를 바라보는 오빠의 눈은 슬펐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오빠는 간혹 그녀에게 말을 건네곤 했는데,
그녀에게 닿기도 전에 공중으로 흩어졌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새가 되고 싶었다. 새라면 공중으로 흩어지는 오빠의 말을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오빠의 말은 공중으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들의 길을 따라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의 서른번째 생일을 맞은 그해 늦봄, 법무사인 지인의권유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법원을 찾았다. 법원행정처 공무원은 아드님이 행불돼버렸으니 보상금 받으면 부자 되겠소,
하고 말했다. 그날 이후 시름시름 앓던 어머니는 한 달도 채못 되어 세상을 떠났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던 아버지는 이듬해 겨울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아버지 시신은 공장 숙직실에서 발견되었다. 소주병들이 뒹구는 방 안에서 앉은 채로 죽어 있었다. - P137

오랜 세월 동안 오빠가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희망은 오빠를 대신하는 생명체였다. 그녀가 세상의 끔찍함을견딘 것은 희망이라는 생명체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의 운동화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생명체의 표징이었다.
그것은 버릴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럼에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빠를 보내야 했다. 언젠가부터 오빠를 가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에게 갇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은 종우가 커갈수록 짙어졌다. 그녀가 오빠운동화를 새로 산 것은 종우를 통해 오빠를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빠의 오래된 운동화는 너무 낡아 신을 수 없었다.
종우 운동화 치수가 오빠 운동화 치수와 같아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작별을 연습했다. 그전처럼 두렵지 않았다.
오빠가 떠난 가슴속 빈방을 종우가 채워주리라 믿었다. 수학여행 가는 날 아침, 종우가 오빠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설 때기쁘면서도 슬펐다. - P139

종우야 가거라.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엄마도 잊어라. 엄마를 잊지 않으면 죄 많은 땅도 잊지 못할 테니. 시신으로도 돌아오지 마라. 시신으로 돌아온 아이는 시신을 통해,
시신으로도 돌아오지 않는 아이는 시신의 없음을 통해 죄 많은 땅을 비출 테니까. 네가 머나먼 여행을 하는 동안 엄마는죄 많은 땅을, 너를 사라지게 한 죄의 진창 속을 무릎으로 기어가면서 너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움의 힘으로 너의 없음을 땅과 하늘 사이에서 쉼 없이 외칠 것이다.
그녀는 등대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 P140

등불


그가 여객선 사고 소식을 처음 들은 것은 문경새재에서였다. 부산항에서 안산 시화공단으로 화물을 싣고 가던 도중이었다. 휴게소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을 때 가까운 식탁에서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이 들려왔다. 5백 명에 가까운 승객들이 탄 여객선이 침몰되었는데 구조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승객 가운데 수학여행 가던 학생이 3백 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는 빠르게 잊었다. 그에게 세상일은 어디론가끊임없이 흘러가는 흐린 영상 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 P143

뜻밖에도 식당 문이 잠겨 있었다. 창 안을 들여다보니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식당 전화번호를 눌렀으나 받지 않았다. 그녀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두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옆집 세탁소 노인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관두었다. 노인이어떻게 생각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세탁소 노인은 그녀를 모슬포댁이라고 불렀다. 그녀 고향이 제주 모슬포였다. 언젠가모슬포댁이 보기 드물게 착한 여자라고 그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못 들은 척했다. 노인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으나 알 수 없었다. - P145

식당 문은 그전처럼 잠겨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녀가 식당을 일주일씩이나 비워둘 리 없다는 생각이들었다. 머릿속에서 희뿌연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주 낯설지가 않았다. 가슴이 조이는 듯한 불안이 일면서 발밑이 허전해졌다. 두 발을 딛고 있는 데가 땅이 아닌 듯 몸이 흐느적거렸다. 무릎 아래가 사라진 것같은 느낌이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발밑을 살피면서 식당 앞 계단에 겨우 앉았다. 그런 증상이 처음 나타난것은 시커멓게 불에 탄 채 반쯤 무너진 건물을 보고 있을 때였다. 어린이 캠프에 참가한 딸의 숙소였다.
그는 딸이 죽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받아들이지 못했다.
겨우 여섯 살이었다. 여섯 살 아이가 그렇게 죽을 수 있다는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소풍을 간다고 했다. 하룻밤만 자고온다고 했다.  - P147

"그런데 왜 그 사람 이름이 없다고 해요?"
그의 물음에 노인은 한숨을 쉬었다.
"회사 직원 말로는 유료 승객이 아닌 승선자의 신원은 확인이 안 될 수 있다는 거야. 어떻게 무료로 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승무원이나 선사 관계자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더러그렇게 탄다고 하더군. 선박 회사 사람들이 모슬포댁 식당에종종 오곤 했어. 더 알아볼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진도로가보라고 해. 거기에 가면 그들이 모르는 정보를 들을 수 있올지 모른다면서…….."
노인의 주름진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 P151

아내는 숨을 쉴 수 없다면서 가슴을 자주 쥐어뜯었다. 자신에게서 역겨운 냄새가 난다고 했다. 기분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죄스럽다고 했다. 딸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귓전을 늘 맴돌던 딸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딸이뜨거운 석탄 위에 서 있는 꿈을 자주 꾼다고 울며 말했다. 어느 날은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말했다. 처음에는 믿기가 힘들었다. 멀쩡한 눈이 안 보일까닭이 없었다. 의사는 전환장애라고 했다. 마음의 깊은 상처가 신체 이상으로 나타나는 병으로, 사람에 따라 증세가 다양하다고 했다. - P152

한 모습이었다. 아내는 유서에서 그를 혼자 두고 떠난 자신을부디 용서해달라고 하면서, 떠나는 것을 허락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다른 말은 없었다.
아내를 화장한 후 딸의 곁에 두었다. 이제 딸이 외롭지 않을 것이란 생각과 함께 딸과 아내를 제대로 기억해줄 사람은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웠다. 그가 짊어져야 할죽음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P155

그녀는 그에게 죽은 자가 아니었다. 사라졌을 뿐이었다. 산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삶과 죽음 사이를, 그 자욱한안개 속을 떠도는 존재였다. 그의 의식도 그녀를 따라 삶과죽음 사이를 떠돌았다. 그에게는 낯선 떠돌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그렇게 떠돌았다. 트럭 안이 관처럼 느껴져도 조금도이상하지 않았다. 가속 페달을 밟고 있을 때는 백합 향기가 콧속으로 스며들곤 했다. - P165

 세탁소 노인을 만난 이후 잠자리에 들면 똑바로 누워
‘눈을 감고 양팔을 가슴에 얹은 자세를 자주 취했다. 죽은 사람의 자세였다. 외로움을 견디는 좋은 방법이었다. 그녀가 제주도에서 돌아오면 칼을 맡기려 했다. 죽음을 그녀에게 맡기고 싶었다.
달빛이 한층 밝아졌다. 달 주위에 얇게 끼어 있던 구름이걷히고 있었다. 트럭에 올랐다. 시계를 보았다. 4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진도에 도착하면 아침이 될 것이다. 그 시각에 꽃을 살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백합 다발을 가득 안고항구로 가고 싶었다. 시동을 걸었다. 길이 떠올랐다. 처음 가는 길이었다. 그녀를 만난 것은 길에서였다. 처음 가는 길에서 누구를 만나게 될지 가슴이 설렜다. 길 너머에서 누군가가손을 흔들고 있었다. 손은 빛처럼 희었다. - P169

카일라스를 찾아서 


정신이 혼미했다. 머릿속에 축축한 안개가 가득 차 있는 것같았다. 땅의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다. 공중에 뜬 상태로 걷는 듯했다. 귓속에서는 종류가 다른 소리들이 뒤섞인 채 쉼없이 윙윙거렸다. 바람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얼음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까지 들렸다.
고산병 증세가 나타난 것은 티베트 고원지대로 들어서면서였다. 해발 4천 미터가 넘는다고 했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물속에 있는 것처럼 숨이 찼고, 머리가 아팠다. 조금만 걸어도 몸이 축축 처졌다. 라사에서 카일라스 가는 길은 멀고험했다.  - P173

밤에는 꿈을 많이 꾸었다. 아내가 자주 나타났다. 아내는혼자 나타나지 않았다. 현수와 함께 왔다. 현수의 얼굴은 윤곽이 흐려 잘 보이지 않았다. 현수가 탄 승용차가 새벽 고속도로에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전복했다. 운전자의 부상은 가벼웠지만 조수석에 앉아 있던 현수는 병원 응급실에실려 온 지 얼마 안 돼 숨졌다. 겨우 열일곱 살이었다.
머릿속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 것은 언덕으로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바위투성이 언덕에는 수많은 룽다와 타르초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티베트인에게 경전의 언어는 진리의표상이다. 그 표상을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삶의 공간에 배치해놓았다. 룽다가경전의 언어가 새겨진 천을 깃대에 꽂은 한 폭의 깃발이라면,
타르초는 경전의 언어가 새겨진 오색 천들을 기다란 끈에 연결해놓은 천 다발이다. - P174

골짜기가 황량함에도 풍경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풍경 속에는 이마를 차갑게 하면서 정신을 두드리는 무언가가있었다. 길이 꺾이는 곳에 돌탑이 보였다. 순례자들이 쌓은탑이었다. 돌 하나를 놓으며 무언가를 빌거나 누군가를 생각했을 것이다.
현수의 죽음 이후 살아 있는 이들은 그립지 않았다. 눈에보이는 것들,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삶이 슬프고 무서웠다. 슬프고 무서운 삶을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삶은 버리고 싶다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었다. 삶을 버리려면 먼저 삶이 내 몸에 새긴 기억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했다. 현수와 함께한 기억들이, 아내와의 추억들이 버려진다고생각하면 죽음보다 더 슬프고 무서웠다. - P189

"언젠가부터 저는 히말라야의 풍경에서 시선을 느꼈습니다. 저만이 풍경을 보는 게 아니었습니다. 놀랍게도 풍경도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저의 시선과 풍경의 시선이 마주치는순간 신성한 존재의 숨결을 느꼈습니다. 어머니의 신성이었습니다. 풍경의 내면에서 흘러나온 어머니의 신성한 숨결이제 몸속으로 흘러들어 와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라는존재의 생물학적 몸에 갇혀 있던 저의 자아가 해방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저를 감싼 희열은 자유가 불러일으킨 희열이었습니다. 그 희열 속에서 저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사르나트의 무너진 탑 앞에서 오체투지하고 있었던 여인이 저의어머니였음을." - P201

"사랑을 한다는 것은 고통과 마주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훈은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 고통과 마주했습니다. 기훈에게는 혹독한 고통입니다. 그 고통을 저는 옆에서 느끼고 있습니다. 티베트 속담에 부정한 카르마를 쓸어내는 빗자루가 고통이라고 했습니다. 영혼을 정화하는 고통의힘을 표현하는 말이지요. 기훈은 아드님에게서 영혼을 정화하는 마르지 않는 우물을 얻은 것입니다. 우물의 원천은 아드님의 희생입니다. 사고 당시 상황이 불러일으킨 어떤 물리학적 법칙의 결과로 기훈이는 살았고, 아드님은 숨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연 혹은 운으로 치부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현상의 거죽일 뿐입니다. 영혼의 생명 활동은 거죽에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저는 기훈의 고통을 통해 아드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아드님은......"
그는 눈을 내리깔았다.
"사무치게 아름답고 거룩한 존재입니다.그존재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기도뿐입니다. 저는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깊은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 하고."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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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1

 

  몇 년 만에 고향에 다녀왔다. 지난달에 고향으로 이주를 단행한 언니의 생일을 맞아서 이른 휴가를 다녀온 셈이다. 원래는 시끌벅적한 규모의 동행들을 계획했으나 이런저런 사정들로 혼자 다녀오게 되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휴면으로 이전되어버린 코레일 멤버십카드를 살리고 저렴하고 시간이 걸리는 무궁화 왕복표를 사고 나서야 떠나는 실감이 났다. 피를 돌게 하던 역마살이 알코올로 대체된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진 않았던 모양이다.

  기차를 탄다. 바깥의 폭염에서 기차는 비껴있다. 그리고 딱 이 시절에 썼을, 이 방향의 기차에서 시작되었을 시를 생각한다. 지금은 기차에서 김밥을 삼킬 수는 없지만 눈에 즙처럼 괴는 연두이 한 줄로 연두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시다. 그리고 이렇게 하행선, 기차 창에 눈을 두면 저 순연한 벼포기들은 포기, 포기 살아서 추억으로 다가온다.

​​

  연두에 울다

 

  떨리는 손으로 풀 죽은 김밥을

  입에 쑤셔 넣고 있는 동안에도

  기차는 여름 들판을 내 눈에 밀어 넣었다.

  연둣빛 벼들이 눈동자를 찔렀다.

  들판은 왜 저리도 푸른가

  아니다. 푸르다는 말은 적당치 않다.

  초록은 동색이라지만

  연두는 내게 좀 다른 종족으로 여겨진다.

  거기엔 아직 고개 숙이지 않은

  출렁거림, 또는 수런거림 같은 게 남아 있다.

  저 순연한 벼포기들.

  그런데 내 안은 왜 이리 어두운가.

  나를 빛바래게 하려고 쏟아지는 저 햇빛도

  결국 어두워지면 빛바랠 거라고 중얼거리며

  김밥을 네 개째 삼키는 순간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이 마치

  감정이 몸에 돌기 위한 최소 조건이라도 되는 듯.

  눈에 즙처럼 괴는 연두.

  그래. 저 빛에 나도 두고 온 게 있지.

  기차는 여름 들판 사이로 오후를 달린다.


         나희덕 시집 [사라진 손바닥(문학과 지성사 2004)]-중에서

 

















  뜨거움은 창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오래 두지 못하게 한다. 고민하다 챙겨온 책들은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이다. 이번에 2권이 출간되었는데 1권의 내용들은 까마득하다. 연결되지 않은 여행기이지만 1권부터 읽기로 한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유럽의 도시들, 나는 아마 가지 못할 것이다. 예전에는 언젠가 갈 수 있다는, 언젠가는 가고 말 것이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아마도 가지 못할 것이다'라는 전제를 깔고 여행서를 읽게 된다. 그것도 자주.

  '아마도 가지 못할 것'이기에 더 애틋하게 그곳을 보는, 그곳을 걷는 필자에게 빠져서 그곳을 같이 보고 그곳을 같이 걷게 된다. 그렇게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를 돌아보는 데는 4시간이 걸렸다.

 


  아테네 플라타 지구, 로마의 포로 로마노, 이스탄불 골든 혼, 파리 라탱 지구, 빈의 제체시온, 부다페스트 언드라시 거리, 이르쿠츠크 데카브리스트의 집, 이런 곳에 가고 싶었다. 다른 대륙에도 관심이 없지는 않았지만, 스무 살 무렵부터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든 곳은 주로 유럽의 도시들이었다. 그곳 사람들이 훌륭한 사회를 만들어 좋은 삶을 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떻게 더 자유롭고 너그럽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다가 소설보다 더 극적인 역사의 사건들을 만났고, 그 주인공들이 살고 죽은 도시의 공간을 알게 되었다. 삶의 환희와 슬픔, 인간의 숭고함과 비천함, 열정의 아름다움과 욕망의 맹목성을 깨닫게 해주었던 사람과 사건의 이야기를 그곳에 가서 들어보고 싶었다. - P5

 

  내가 도착한 곳은 '아테네'가 아니라 '나주역'이다. 고향이긴 하지만 '나주'는 여전히 서툴고 낯설다. 나주보다는 광주가 더 가깝고 살뜰한 것은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많아서일 텐데 항상 복잡한 광주보다는 여유롭고 널찍한 나주역을 이용한다. 40여 일 만에 만나는 언니네 부부가 마중 나와 있다. 길가에는 배롱나무들이 첫 꽃을 환하고 선명하게 피우고 환영 인사를 건넨다.

  반갑다.

  이런 풍경들을 기대했다. 남도의 여름은 원색으로 환하고 명쾌하다. 어디서나 기품있게 선 배롱나무들의 꽃 인사를 만날 수 있다. '카이사르'의 흔적과 역사를 만나지는 못하겠지만 이제 늙어가고 같이 낡아가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유쾌하고 맛있고 즐거운 시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것으로 됐다. 충분하다.




  712

 

  한쪽으로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 나지막하게 보이지만 멀리는 아파트가 우뚝우뚝하고, 한쪽으로는 잡목이 우거진 산이 가깝게도 멀게도 중첩되는 풍경 속에 앉아서 [유럽 도시 기행 2] ‘내겐 너무 완벽한 빈을 읽는다. 너무 달라서 닮아있는 풍경이라 그런지 아주 머나먼 곳을 떠도는 기분이다. 바깥에는 이웃집 노부부가 날이 밝자마자 시작한 메밀 작업이 한창이다. 박스마다 여린 메밀 순들이 가지런히 담기고 있고 유시민 부부는 빈을 여행 중이다.

  빈은, 책으로 말하자면, 유명한 인문학 고전과 비슷하다. 명성 높은 인문학 고전은 모르면 교양인이 아닌 것 같아서 읽는 경우가 많다. 대단한 내용이 들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다 읽어도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내게는 플라톤 · 공자 · 단테· 괴테 등의 책이 다 그랬다. 빈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내 심정은 그런 책들을 펴들었던 때와 다르지 않았다.

  빈은 명성만큼 대단해 보였다. 도심의 모든 공간이 영화 속 같았다. 건물은 하나같이 크고 멋졌으며 거리는 넓고 깨끗했다. 상가의 쇼윈도와 사람들의 옷차림에 부티가 흘렀다. 카페와 레스토랑은 실내장식이 화려했고 음식값도 그만큼 비쌌다. 바로크 스타일 건물에 들어선 공공 전시관과 세련미 넘치는 민간 갤러리에는 미술 교과서에서 보았던 거장들의 그림과 조각이 넘쳐났고, 오페라하우스와 음악협회 공연장 등에서는 유럽 최고 수준의 악단이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비롯한 대가의 작품을 공연했다. - P15

 


  우리도 길로 나선다.

  오빠네 와 언니네 중 올케언니만 평균 체격을 밑돌뿐, 우람한 넷을 태운 차의 첫 목적지는 신안으로 가는 천사 대교다. 갑자기 차 노릇에 충실해진 차 입장에서 즐거운 비명일지, 슬픈 비명일지도 모르고 아이스박스 한가득 점심거리를 싸 들고 소풍 간다. 목적지도 풍경도 불편함도 날씨를 포함한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모든 일정과 일상을 내려놓고 왁자하게 떠들고 모두 조금씩은 들떠서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크게 웃는다. 잘못 든 길에서도 흥겹다. 돌아 나와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고 서로를 탓하고 원망하느라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아왔다. 누구 때문도 아니다. 모두 자신의 몫을 살아내느라 버겁고 지치고 허덕거렸을 뿐이다.

  우리가 함께하는 이런 소풍, 처음이다.

  어디든 길은 비었고 날씨는 적당히 흐리고 배롱나무들은 살랑살랑 손을 흔드는 가운데 남도의 곡식들은 목마르고 뜨거운 여름을 건너는 중이다. 목포를 지나간다. 목포는 매번 거쳐 가기만 할 뿐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목포의 변방 어디쯤에선가 녹을 뒤집어쓴 채 점점 더 '세월' 속으로 묻혀가고 있을 '세월호'에 대한 부채감에 살짝 불편하다. 당연하다. 불편하다고 시선을 피한다면 더 무거운 '세월'들이 우리를 잡아먹을 것이다. 불편하고 장이 꼬이게 불편하더라도 마주해야 할 것들은 눈 똑바로 뜨고 대면해야만 한다. 그걸 잊지 말자.

  점점이 흩어진 섬들이 보이고 압해대교를 건넌다. 이제는 고립된 섬이 아닌 압해도는 크고 넉넉하고 기름지고 포실 포실하다. 가끔 나타났다 사라지는 바다는 조금 큰 호수 같다. 이름도 크기도 다른 섬들이 1004개나 된다는 신안군에 놓은 다리 1004 대교는 자은도,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 등을 잇는다. 드디어 천사들이 아닌 우리는 다리를 지난다. 시야가 탁 트인다. 가슴이 뻥 뚫린다. 무엇이든 용서할 수 있고 무엇이든 담아내는 풍경이 이어진다. 차창을 내리고 바람을 빵빵하게 채운다. 마음들은 다리를 건너 서로에게로 다가간다. 악마들에게도 천사의 마음을 돌아보게 만드는 곳, 천사 대교다.



     



  우리들의 최종 목적지는 자애롭고 은혜로운 섬, 자은도(慈恩島)의 무한의 다리다. 무인도 사이를 잇는 1004미터를 바다 위로 걸어보는 것이다. 섬과 섬 사이에는 다리가 있고 할미도 절벽에는 원추리가 엉겅퀴와 나리꽃들과 어우러져 가득하다. 원추리 향이 땀 냄새마저 향기로 만들어준다. 뒤틀리고 휘어지고 꺾인 채로 나무들은 척박함과 바람을 견디며 제 자리를 지키며 어우러져 살고 있다. 우리들의 모습도 다르지 않구나. 각각 몇 번의 수술들을 통과한 몸뚱아리들은 상흔과 뒤틀림을 견디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작정한 것도 아닐 텐데 작은 동산만 한 무인도가 건네는 이야기는 대하소설이다. 바다를 건너고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여리고 강한 생명력을 가진 야생의 꽃들이 저마다의 향기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휘어져도 뽑히지는 않은 채 나무들은 이렇게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며 지키고 있다고 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온 각자의 시절도 그러할 것이다. 사느라고, 살아내느라고 강하고 뚝하게 감추고 있던 감성의 속살들이 이제는 또렷하게 보이기도 한다. 다리는 섬과 섬 사이만 잇는 것은 아니다. 섬의 속살들을 만나게도 한다. 우리 안의 속살도 드러난다.

 


  713

 

  오늘의 목적지는 여수다. 고흥 녹동항, 어판장에서 횟감을 사고 팔영대교를 건너 여수에서 간장게장으로 점심을 먹고 돌아와 저녁은 회에다 ㅋ~ 한 잔의 플랜이다. 어제 마땅한 횟감이 없어 "회 먹자. ~" 노래를 부르던 나는 회 대신 오빠가 숯불에 구워주는 삼겹살을 상추에 싸 먹으면서도 입이 댓 발이나 나온 채 툴툴거렸다.

  "내일 녹동항에 가면 민어를 삽시다."라는 오빠

  "민어, 비싸기만 하고 맛없든 대." 형부

  "요즘 서대 철이고 여수· 녹동 서대는 맛있어요." 올케

  "어쨌든 내일, 녹동항에 가보고 결정하자." 분분한 의견을 단번에 정리한 큰언니는 역시 카리스마 갑이다.

  새벽에는 오늘도 메밀 작업에 분주한 이들의 굽은 등을 일별하고 잠시 빈에 다녀왔다.

 


  오래된 도시들은 저마다 역사의 상처를 지니고 있다. 아테네는 의도와 무관하게 상흔이 드러나고 부다페스트는 일부러 드러내며 파리는 감추었지만 보인다. 그런데 빈에서는 그런 것을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으로 치면 사기 캐릭터였다. 부잣집에서 태어난 수재인데 잘생겼고 키도 크다. 손꼽는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가족 기업을 넘겨받아 성공적으로 경영한다. 예술적 감각을 지닌 교양인에다 성격마저 원만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산다. 약점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빈은 그런 사람 같았다. 부러워하거나 시샘할 수는 있지만 흉보기는 어려웠다.

  여행에도 상대성원리가 적용되는 게 아닌가 싶다. 빈 만큼 또는 비보다 더 대단한 도시에서 온 여행자라면 모든 게 좋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빈틈이라고는 보이지 않아서, 너무 완벽해서, 내게 편하지만은 않았다. 오스트리아는 한국보다 부유하고 빈은 지구 행성에서 가장 호화로운 도시다. 건물도 거리도 사람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노점상이나 거리 음식은 아예 없었고, 치안도 완벽해서 소매치기 걱정 따위는 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비가 내릴 때는 모두 실내에 머무는지 거리가 텅 비었다. 우산을 들고 걷는 이조차 드물어서 우리도 준비한 비옷을 꺼내지 않고 카페와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빈이라고 상처가 없는 건 아니다. 수많은 역사의 상흔을 덮어버리는 데 완벽하게 성공해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정치적 후진성은 시씨 황후의 아름다움과 바로크 궁전의 화려함으로 가렸다. 독일과 합병해 자의 반 타의 반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질러 놓고서도 나치 잔재 청산 작업은 하지 않은 채 영세중립국으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았다. 유엔 사무총장을 연임한 쿠르트 발트하임은 나치 돌격대 가입과 독일군 중위 복무 사실이 드러나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지만 무난히 대통령에 뽑혔다. 독일은 모든 도시 모든 장소에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되새기는 공간과 시설을 만들어두었지만 빈에서는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으면 볼 수 없다. 그라벤의 삼위일체 상도 페스트의 참극을 모르는 여행자에게는 그저 멋지게 금박을 두른 종교적 조형물일 따름이다. - P92. 93

 

  가는 길에 운전대를 잡은 오빠는 네비를 끄고 우리들의 고향집이 있던 길과 추억이 있을 법한 길들을 달려 능주를 지나간다. 능주에서 사사 당한 정암 조광조의 이야기도 나누고 화순· 보성 쪽으로 가는 중이다. 화순 너릿재에 관한 추억담이 구불구불 이어져 나오고 지석천의 물들도 구불구불 흘러간다. 화순장으로 '두부'를 배우러 다니던 2014년 여름의 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런 두부(고소하고 달큰하고 감칠맛 가득한)를 다시는 먹지 못할 것이다에 모두 한 표씩을 찍고 조금은 쓸쓸해 한다. 풍경은 우리들의 기분과는 아랑곳없이 옛길들을 지키는 늙은 벚나무와 멀리 논을 지키는 메타세콰이어들 사이에 자태를 뽐내는 배롱나무들이 여름 남도의 상징성으로 완벽하게 어우러져있다. 보성의 조성면에서 커피를 마시려고 잠시 멈춘다. 처음 들르는 곳인데 익숙한 풍경은 고만고만한 건물들과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고만고만한 가게들이 시골 어느 면 소재지나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 조성 장날이다. 장에 나온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들은 난데없는 우리를 구경하면서 정다운 길을 지나간다. 어쩐지 아는 사람들 같다.

  곳곳에서 현수막으로 '우주'를 만나니 고흥이다. 최근 누리호가 지나갔을 법한 길들을 따라 달려간다. 오래전 뚜벅이로 갔던 팔영산과 나로도의 길들도 이제는 '누리호'의 길이 되었다.

 

  드디어 녹동항. 한센병의 유배지, 소록도가 바로 지척이다. 일반인에게는 금지겠지만, 당사자들한테는 격리와 유배의 섬이던 소록도가 다리 하나로 쉽게 넘나들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다리가 놓였어도, 누구나 왕래가 가능해도, 그 병을 앓는 환자에게는 여전히 심리적인 유배지일지 모른다. '소록도'.

  팔딱팔딱한 생선들을 만나니 덩달아 살아서 펄떡이는 것처럼 걸음이 가붓해진다. 잠시 후면 경매 시간이다.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저 줄돔이다. 여수가 고향인 올케의 표현으로는 "샛서방한테 잡아주는 생선"이라는데 우리는 오늘 모두 '샛서방'이고 싶다. 최근에 '우리들의 블루스'에서의 이정은처럼 경매 낙찰을 옆에서 쳐다보며 그들의 제스처와 빠른 손동작을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사이, 발 빠르고 입 빠르고 손까지 빠른 오빠는 무사히 줄돔을 차지했다.



     


  요즘 마땅한 생선이 없다는 말은 사실인 듯 이쪽에서 경매를 기다리는 애들은 빈약했다. 소라나 조기 정도였고 민어가 조금 보였다. 반면에 저쪽은 이제 막 금어기가 풀린 문어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지금은 낙지가 금어기, 어제 무안에서 갯벌 낙지 '탕탕이'가 먹고 싶었던 나는 졸지에 철딱서니 없는 1인이 되었기에 오늘은 돌문어를 잔뜩 보아도 돌부처처럼 함구한다. 그러나 다음번에는 낙지를 '종류별로 다 먹어야지.' 옴팡지게 다짐한다.


  핏물을 뺀 녀석들과 아이스팩으로 채운 아이스박스를 싣고 희희낙락 고흥을 떠난다. 다리가 놓이기 전이라면 순천 쪽으로 빙빙 돌아서 갔을 여수를 고흥 영남에서 팔영대교를 건너면 여수 적금도에 닿고 '백리섬섬길'이 시작되어, '적금 대교', '낭도 대교', '둔병 대교', '조화 대교'등의 대교를 다섯 개 건너면 여수다. 각각의 다리는 각각의 섬들과 모양을 달리했지만 건너는 일에만 충실한 우리는 그저 다리들을 지나간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이토록 많은 섬들에 감탄하면서. '세계 최고'라고 우리나라의 다리를 놓는 기술에 혀를 내두르면서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한 여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렇게 세세한 남도 여행은 처음인 형부의 감탄사가 가장 잦다.

  오빠 내외의 지인이 관리하는 '화양'의 요양병원에 잠시 들른다. 가파른 산 중턱에 자리한 요양병원은 저절로 숨을 깊게 쉬게 만드는 쾌적한 공기와 가까이로는 다도해가 보이고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이 조성되어 있어서 아프지 않아도 머물고 싶은 욕심이 드는 곳이었다. 이런 풍경과 환경이라면 치유되지 않을 병도 없을 것 같고, 내려놓지 못할 생존의 욕심도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관찰자의 시선일 뿐, 암 환자 전문 병원이라는데 생이 소멸 중인 사람은 어떠할지를 헤아릴 수가 없다.

  단지 여수에는 '간장 게장'을 먹기 위해 그 먼 길을 달려간 것처럼 '게장 골목'을 찾아, ''라면 종류 불문, 요리 불문하는 '게 마니아'인 큰언니도 인상 쓸 만큼 생각보다 별로인 '게장'과 터무니없는 '갈치조림'을 허겁지겁 먹고, 다리를 건너다니기 위해 길 위에 있는 것처럼 많은 다리를 다시 건너서, 건너서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이런저런 관광과 여행들로 여수의 곳곳을 다녀보았고 굳이 우리가 함께 가고 싶은 곳이 없기도 해서 길에서 길로, 다리에서 다리로의 여행이 되고 말았다.

  오는 길의 운전기사는 올케언니, 추억이 가득한 '남평역'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남평역을 이용하지는 않았어도 나의 탯자리가 근처이고 우리에게 자부심을 안겨주는 시가 있어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간이역이다. 2004년 가을에 이곳을 지나갔고 그 흔적은 남았다.

 

 

  가을의 시작에서 --남도(5)

 

  기차는 정해진 길로 보성, 능주, 화순……. 이름만으로도 정겨운 지명들을 지나가고 창에 묻은 이마에서는 점점 해가 거두어집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남평역입니다. 곽재구의 시사평역에서의 그곳, 임철우의 소설 사평역의 그곳이면서도 동시에 그 어느 곳도 아닌, 그냥 남평역. 이곳을 꼭 지나 보고 싶었습니다. 가까워질수록 울렁울렁 멀미가 날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래요, 남평이 제 고향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제 역사가 남아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여기를 한 번인가 두 번, 지나쳐갔을 뿐입니다. 남평에서 역은 멀리 있습니다. 우리 중 아무도 여기에 와서 막차를 기다리거나 막차를 타보지는 않았습니다. 언제나 막차를 기다리고 타면서 살아왔어도, 여기에 역이 있는지를 아는 사람도 이제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가깝고도 먼 곳입니다. 사진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뾰족한 양철지붕의 낡은 역사, 두런두런 서 있는 나무들, 잘 가꾼 화초들 사이로 배롱나무꽃이 핀 예쁜 간이역입니다. 아무도 기차를 기다리지 않고 내리는 사람도 없습니다. ‘남평역이라는 지명이 벗겨져 가는 나무 팻말과 근처의 나직한 산들을 눈에 담습니다. 어디쯤 만삭의 한 여인이 볕 바른 봄날, 몸을 풀었던 산이 있을 것입니다. 오후 한 시 남평역에 도착하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그 여인의 아이에게 시간을 주었다는데 지금의 기차는 조용히 역을 떠납니다. 이제는 누구도 기적소리로 시간을 가늠하지 않습니다. 그 아이는 자신을 낳던 여인의 나이를 훌쩍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여기를 지나갑니다. 속은 여전히 울렁울렁합니다. 여인과 아이를 연결한 탯줄이 산자락 어디선가 부르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립니다. 뜨거운 이마를 차창에 얹자 지나버린 풍경을 감추듯 9월의 저녁이 살포시 내려와 있습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중에서---

 

  소리는 멀어집니다. 사평역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남평역은 사라져도 사평역은 언제까지나 남아있을 것입니다. 여인과 아이의 끈, 탯줄처럼.

 

            2004. 9. 14

 

 


  714


  지난밤에 야심 차게 준비했던 횟감은 실패했다. 알이 가득 차서 회를 뜰 수 없었다. 겨우 몇 점을 맛보기 하는 걸로 만족하고 숯불에 구워 먹었다. 구웠어도 '샛서방'한테 몰래 주고 싶은 맛이었다. 대신에 입에 쩍쩍 달라붙는 '서대 회 무침'으로 회덮밥을 한 양푼씩 만들어 먹고 복수박으로 입가심한 뒤 수박이 되어버린 배를 통통 두드리며 밤 산책을 했다. 오랜만에 울 집의 대표 카수, 큰언니의 노래를 라이브로 들으며 걷는 길은 좋았다.


 

   


  마지막 여정은 사진 속의 '죽림사'. 지난밤의 살생은 다 잊고, 절집이라니 거시기하긴 하다.

  아버지, 어머니, 둘째 오빠의 영가를 모시고 난 뒤, 나로서는 첫걸음이다. 주지 스님이 바뀐 절집은 고즈넉하고 한층 절집다운 침묵에 놓여있었다. 가만가만 극락전에 들러 아미타불을 만나고 서성서성 둘러보았다. 장한 배롱나무들과 거기 머물러 있을지도 모를 영혼에게 작별을 고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오는 기차에서 창에 머리를 박고 노을을 본다. 손에는 여전히 [유럽 도시 기행2]를 들고 있다.


  부다페스트는 아름다웠다. 그렇지만 슬픈 건 또 그대로 슬펐다.
  단것을 먹으면 슬픔이 덜어질까 해서 구도심의 유명한 카페에 들렀다. 19세기 부다페스트의 예술가들이 즐겨 찾았고 시씨의 단골집이기도 했다는 그 카페에서 카라멜 프라페와 카푸치노를 마시고 산딸기 요구르트 케이크를 먹었다. 시씨는 그 집을 ‘부다페스트의 보석‘이라고 했다지만 너무 달아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벽에 창업자로보이는 커다란 남자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는데 독일어로 써놓은 안내문을 보니 이름이 ‘쿠글러 (Kugler)‘였다. 유럽의 성씨는 직업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쿠글러는 공이나 총알을 가리키는 명사 쿠겔(Kugel)에서 파생했다. 총알과 대포알이 아니라 동그란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만든 그 남자는 넥타이까지 맨 양복 차림으로 카페 고객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P145


  프라하는 아름다웠다. 왕궁과 교회, 거리와 강, 카페와 박물관, 모든 것이 아기자기하게 예뻤다. 그 무엇도 대단하다고 할 수 없었지만 - P239


  프라하 자체는 대단했다. 프라하는 역사의 상처를 감추지 않았고, 그상처 때문에 고통스러워하지도 않았다. 지난날의 상흔은 지난 일로정리하고 오늘은 오늘의 즐거움을 추구한다. 그렇게 하려고 성과 속의 공존을 허락한다. 프라하의 공기는 자유와 관용의 정신을 품고 있는 듯했다. ‘심하게 지나치지만 않다면 뭘 해도 괜찮아. 사람들이 프라하를 좋아하는 것은 이렇게 말하는 도시여서가 아닌가 싶었다. - P241



  한때 고향은 환멸이었다. 아픔이었다. 눈감고 싶은, 잊어버리고 도망치고 싶은 지긋지긋한 곳이었다가 늘 그립고 가고 싶은 곳이기도 한 뒤죽박죽 엉망진창의 마음으로 만들어버리는 지명이었다. 지금은 언제나 환대해줄 가족이 있는, 아무런 기대치를 발동하지 않아도 좋은, 굳이 지금의 나를 해명하거나 꾸미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곳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점점 푸르게 어둠이 내리는 세상, 나의 시간도 그쯤을 지나간다. 지금 타고 있는 기차의 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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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2 2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13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빗방울에 대고 할 말이 없습니다

                                  이승희



  상처 많은 사람처럼 자꾸만 부딪혀온다. 아무것도 담지 못한 생처럼 자꾸만 그렇게 부딪혀 온다. 세상은 그렇게 완강했다고 한없이 밀리는 나를 또 밀어댄다. 연두의 기억도 새들의 눈웃음도 맨드라미의 옆얼굴도 무엇 하나 적시지 못했는데 빈방들이 자꾸만 비명처럼 머리를 부딪혀오는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지상에 닿는 무게가 되기까지 살아냈어야 할 생이 있는 것이고, 당신의 얼굴에 내리는 빗방울은 모두 당신의 이야기, 당신이 처형한 사람들의 이야기, 더 할 말도 없으면서 자꾸만 나를 붙드는 마음 같아서 유리창에 대고 마구마구 편지를 쓰네. 불빛 두어 개 붙이면 누군가의 안부처럼 쓸쓸해질 테지. 나는 자꾸만 내 얼굴을 내어준다. 그것은 허공에 대한 이야기, 이젠 허공이 된 이야기, 앞으로 허공이 될 이야기. 그러므로 저 빗방울 속에 불을 켜두고 싶은 마음. 그 사이를 비틀 만한 것도 화해랄 것도 없었다. 낯섦만 깊어져 사이로 사이만 자란다고 어떤 힘만이 사이에서 갇혀 울기도 하였는데, 아주 먼 별의 뒷덜미를 볼 수 있다면 이 진부함이 좀 용서될까. 눈코입도 없는 얼굴을 씻다가 나는 무엇으로 울어야 하나.


     시집[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중에서



  가을장마에다 태풍까지 만나서 많은 비가 오시는 휴일, 정혜윤의 【그의 슬픔과 기쁨 】을 덮고 먹먹해진 마음을 도저히 가눌 길이 없다. 가슴 안으로 폭우가 쏟아진다. 몇 자 끄적거리다 깜박거리는 커서만 들여다본다. 결국 포기하고 집어 든 맨드라미 색상의 이승희 시집, 쩝~! 정말 '빗방울에 대고 할 말이 없'다. 어쩌자고 '상처 많은 사람처럼 자꾸만 부딪혀'오는지. 김대용, 윤충렬, 박호민, 이현준, 박정만, 김정욱, 최기민, 김득중, 한윤수, 서맹섭, 이갑호, 정형구, 고동민, 이창근, 김정운, 김상구, 문기주, 복기성, 한상균, 김남오, 유제선, 박주헌, 염진영, 오석천, 김성진, 양형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담지 못한 생처럼 자꾸만 그렇게 부딪혀 온다.' 빗방울은 거세어졌다 여려졌다를 반복하는데 '아주 먼 별의 뒷덜미를 볼 수 있다면 이 진부함이 좀 용서될까'. 이 비 때문에 누군가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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