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만 우리들의 역사를 가졌을 뿐이고, 그 역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그렇다. 우리는 잊힐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며, 아무것도 할수 있는 일은 없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해 보이고 심각해 보이며, 버거운 결과로 보이는 것들, 바로 그것들이 잊히는, 더는 중요해지지 않는 순간이 올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지금우리는 언젠가 엄청나고 중요하게 여겨질 일이나 혹은 보잘것없고 우습게 여겨질 일을 알지 못한다. (중략) 지금 우리가우리의 몫이라고 받아들이는 오늘의 이 삶도 언젠가는 낯설고, 불편하고, 무지하며, 충분히 순수하지 못한 어떤 것으로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누가 알겠는가, 온당치 못한 것으로까지 여겨질지도.
- 안톤 체호프

모든 장면들은 사라질 것이다.


전쟁 후 이브토, 폐가 부근의 커피를 파는 막사 뒤에서 대낮에 몸을 웅크리고 오줌을 싸다가 일어나 팬티를 입고 치마를 올리고 카페로 돌아간 여자


영화 이처럼 긴 부재에서 조지 윌슨과 춤추는 알리다 발리의 눈물 가득한 얼굴 - P9

모든 게 귀했다. 물건들, 사진들, 오락거리들, 교리 교육과 리케 신부의 사순절 설교, 주느비에브 타부이가 큰 소리로 말하던 내일의 최신 뉴스들과 오후에 커피 한 잔을 놓고자신과 이웃의 인생을 말하던 여자들의 이야기로 국한된, 자신과 세상에 대한 설명들. 아이들은 오랫동안 산타 할아버지와 장미나 배추 안에서 발견된다는 아기들을 믿었다.


사람들은 도보나 규칙적인 움직임으로 자전거를 타고 이동했다. 남자들은 무릎을 벌렸고 바짓단을 핀셋으로 줄였으며, 여자들은 치마를 펼쳐서 엉덩이를 가리고 명확하지 않은 선을 따라 평온하게 길을 달렸다. 침묵은 사물의 본질이었고, 자전거는 인생의 속도를 쟀다.


우리는 형편 없는 것들을 곁에 두고 살았고, 그것은 우리를 웃게 했다. - P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 내가 정신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글을 쓰느라 긴 시간을 보내기는 하지만, 그리고 글쓰기 ‘노동‘이라는 말을 자주 쓰기는 하지만, 그래도 난 여전히 글쓰기가 사치라고 생각해요. 내가 주변에서 지켜보았고 지금도 여전히 보이는 노동에 비해 글쓰기는 사치라는 생각을 사실 난 오래전부터 해왔어요. 장을 보러 마트에 가서 계산대에서 일하는 여자들의 반복적인 동작을, 그 여자들이 들어 올리는 생수를 묶음을 보면서, 난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요. 만일 내가 저 일을 해야 한다면? 그러면 난 스무 살에도 저 일을 해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죠. 심지어 쉰살까지 그 일을 하는 여자들도 있는데 말이에요. 1960년대에 장피에르 샤브롤Jean-PierreChabeol이라는 작가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스스로 육체노동자와 똑같다고 확신하는 걸 보면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고단하고 때로는 위험한 일부 육체노동을 어떻게 따뜻한 곳에서 책상에 앉아 하는 글쓰기와 비교할 수 있겠어요? 나는내 사촌 자매들처럼 공장이나 재봉 작업실에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너무나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 그러니까 스무 살경에, 난 노동에 따라 보상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주어진 문제들도 다르고요. 물론 그렇다고 몸이 아무 상관 없는 건 아니죠. 보다시피 나는 곧 여든두 살이 되고, 이미 정형외과 수술을 몇 차례 받았고 걷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요. 하지만 내 가족의 다른 여자들과 달리, 내 어머니와 달리, 육체적 마멸과 영양 부족의 징표가 몸에 남아 있지는 않죠. 나에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몸이 아주 중요한 문제였어요.
P- 128. 129

얼어붙은 여자』의 출발에는 일상 속에서 불쑥불쑥 솟아오르면서 점점 더 강박적이 되어간 한 가지 생각, 나에게 글을 쓰 - P55

라고 부추기던 그 생각이 배어 있어요. ‘나도 직업을 갖고 일을 하는데,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을여기저기 데려다주고 병원에 데려가는 건 언제나 내일이다.
난 단 한 번도 혼자 극장에 가지 못하고, 남편이나 아이들 없이는 휴가를 떠나지 못한다‘ 이런 생각이죠. 내가 상상하던,
스무 살의 내가 바라던 삶은 그런 게 아니었는데, 무슨 일이일어났기에 바뀌고 말았을까요? 난 그 답을 알아요. 간단해요. 내가 대대로 상속된 가부장제를 대표할 만한 남자와 부르주아적인 결혼을 했기 때문이죠. 나는 당신의 아름다운 책의제목처럼 나 스스로를 ‘가누기‘ 위해서 글을 썼지만, 또한 나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서, 희미하게나마 변화를 촉발하기위해서 한 일이기도 해요. 책이 출간되고 1년 뒤에 남편과 헤어졌고요. - P56

라그라브

「얼어붙은 여자가 출간되었을 때 그 책을 읽으면서 난 당시의 내 삶이 적나라하게 펼쳐진 모습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물론 똑같지는 않아도 아주 많은 게 일치했죠. 난 놀라며 마음속으로 외쳤어요. ‘그래, 바로 이거야!‘ 당신의 책은 우리의차이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내 마음을 들쑤셔서 성찰과 질문을 불러냈답니다. 난 딸이 아홉, 아들이 둘 있는 가정에서 자라났고, 교사들까지 모두 여자인 여자 중등학교에서 기숙 생활을 했어요. 여성적 세계를 증오했고, 그 안에서 질식할 것같았죠. 남자들의 세계에 대해 그야말로 아무것도 몰랐지만, 영웅들이 등장하고 온갖 음모가 펼쳐지는, 뛰어난 업적 - P56

들이 이루어지는 책 속의 세계들은 나에게 자유의 약속이 되었어요. 그때 난 ‘남자들의 세계가 바람직하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대로라면 철저한 안티페미니스트가 되었어야 하죠. 그래서 스스로를 가누다』를 쓰면서 그런 내가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었는지 보여주려고 애썼어요. 무엇보다 사적인 영역에서 지배 경험들이 자꾸 쌓였고, MLF의 그룹 상담 모임에서 그 경험들이 갖는 의미를 알게 되었죠. 같이 모여서 서로의 상황을 다 같이 분석함으로써 남성 지배가 얼마나 견고한체계를 이루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거든요. 그때 내가 속했던 ‘기혼 여성 그룹‘에서(머지않아 다 이혼했죠) 내가 여자가
‘되었다‘기보다는 나 자신을 여자로 받아들인 셈이에요.  - P58

말하자면 여자인 것이 그때부터 진짜 내 일이 된 거죠. 그런 큰 변화를 겪고, 그 변화로 여럿이 함께하는 이론적 성찰에 참여하게 되고, 그렇게 나의 사회학적 접근법이 자리잡게 되었어요. 그 뒤로 난 계급과 젠더라는 이중 초점의 안경을 썼죠. 사회계급에 우위를 둔 건, 나 스스로 청소년기부터 강하게 느꼈던 계급적 경멸mépris de classe에서 비롯되었을 거예요. 지금은 더는 쓰지 않는 말이지만, 나에겐 늘 계급 본능이 있었거든요. 나아갈 길을 개척하기 위한 일종의 나침반이었죠. 그리고 페미니스트로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젠더 연구를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면서 계급과 젠더의 교차로 인한 결과들에대해 자문하게 되었어요. 분명한 사회적 혹은 역사적 문맥 속에서 계급과 젠더가 각기 어느 만큼의 무게를 갖는가 하는 질문이었죠.  - P58

에르노


난 당신 같은 상황은 체험하지 않았지만, 아프리카 여성 작가들과 교류한 적이 있어요. 우리는 글을 쓴다는 글을 쓰는 여자라는 사실로 가까워졌고, 각자 자신이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지, 무엇을 하려 하는지 이야기했죠. 물론 그런 식으로글쓰기의 문제에 집중한다는 한계가 설정된 방식이 서구의지배를 가려주거나 부정할 위험이 있다는 건 나도 인정해요.
당신의 경우는 하물며 지식을 주는 자리에 있었으니까 어느정도는 지배 상황에 있었던 셈이네요.



라그라브


물론이에요. ‘당신은 주변부에서 고치려고 시도해보지만, 경국 그 어떤 것도 고치지 못한다. - P60

에르노


보편적인 페미니즘은 불가능해요. 페미니스트 투쟁을 사회투쟁과 분리할 수 없죠. 나에게 교차성은 명백한 일이에요.
여자들은 어떤 사회계급에 속하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인종화되었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남성 지배라는 조건을 같은 방식으로 겪지 않으니까요. 내가 겪고 분석한체험들에 근거하는 확신이죠. 노동자인 나의 친척 여성들과내가 책 속에서 모델을 삼은 부르주아 여성들 사이에, 내 어머니와 시어머니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 P61

어머니가 내 시어머니를 두고 했던 말이 기억나요. "우리처럼 자란 사람이 아니구나." 이때의 ‘우리‘는 그냥 ‘너와 나‘를 가리키는게 아니라, 다른 환경에 속해 있다는 뜻이잖아요. 지금 생각하기로, 내가 결혼 생활 중에 성차별적 지배를 받았고 또 받아들인 건 내가 속한 출신 계급이 사회적으로 지배받는 계급이었기 때문이에요. 당신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페미니즘은,
당신이 사용하는 표현을 그대로 가져오자면, "경험의 페미니즘"이에요. 난 당신이 책에서 한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빈민가에, 신정 국가에, 혹은 옆 건 - P61

물에 사는 여성들의 착취가 모두 끝날 때까지 자신이 투쟁할것임을 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영원히 투쟁할 준비가되었다는 것이다. "
요즈음 난 카미유 프루아드 메트리 Camille Froidevaux-Metterie로 대표되는 현상학적 페미니즘을 흥미 있게 보고 있어요. 시몬드 보부아르처럼 "체험된 젠더"로부터, 그리고 남성 지배의자리인 동시에 해방의 자리인 몸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이관심을 끌더군요. 하지만 한 가지 걱정은, 여성적 본성에 기반을 두었던 1970년대의 어느 페미니즘에서처럼, 예를 들어
‘돌봄‘ 직종 같은 분야에서 사회적 제약이 여자들에게 가하는특수한 무게가 가려지지는 않을까 하는 거예요. - P62

라그라브


나에겐 교차성이 늘 곤란한 문제였어요. 특히 논문을 지도할때 그래요. 분명한 상황에서 주어진 주제에 관련될 때, 젠더,
계급, 나이, 섹슈얼리티, 인종으로 인한 결과를 통계적으로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아주 어려운 문제죠. 난 젠더와 교차성에 관한 불완전한 이론들을 비판하기보다는 방법들에 관한 집단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렇게 여러 장치를 개선하려고 노력할 때, 주변에서 그중엔 훌륭한 연구로 나를 감탄하게 만드는 일부 동료들도 포함되죠 왜 제대를 계급보다 우위에 두느냐고 이의를 제기하기도 해요. 우리 - P62

는 젠더 연구가 학문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학술제도 안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싸워왔는데, 정작 사회계급에 인식론적 우위를 두지 않는다는 이유로 젠더 연구를 끌어내리려 하는 거죠. 나는 계급 탈주자이지만, 젠더 연구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에게 맞설 수밖에 없어요. 사실 그들의 말을 뒤집어서 응수할수도 있거든요. 남자 계급 탈주자들은 자신들의 젠더가 어떤힘을 발휘했는지 잊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거죠. 젠더 여정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계급의 여정에 대해서만 말하잖아요. - P63

나는 ‘나‘라고말하는 데 성공했고, ‘나‘를 개인화하지는 않았어요. 이미 당신이 쓴 글들을 통해서 그 문제에 대해 알고 있기도 했고요.
당신의 글에 대해 비평가들은 ‘나‘라는 인칭을 벗어나서 그녀‘라고 말하면, 삼인칭으로 쓰는 그 순간부터 보편성에 이른다고 했죠. 사실 난 당신 스스로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생각해요. 그때 나는 ‘나‘를 사용하면 보편적 가치를 갖지 못하는 특수한 경우를 소개하는데 그치게 될까봐 두려웠어요. 그런데 내 책이 나온 뒤의 반응을 보면서 깨달았죠. 독자들은 내가 지나온 길을 그 특수한 개별성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독자들 자신의 길을 비춰보라고 내민 일종의 거울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처음엔 ‘나‘가 두려웠는데, 결국은 나쁘지 않았어요. 심지어 글쓰기의 상대적인 자유에 이를 수 있었죠. - P71

에르노


『세월』하고 『여자아이 기억』일부에서 그랬죠. 나머지는 처음 글을 쏠 때부터 전부 ‘나‘였고요. 당신은 학술적 글쓰기의 비개인성에 매여 있었으니까, 나와 반대인 거죠. 『사건』이나「수치」와 달리, 세월을 쓸 때는 내가 개인적으로 지나온 길을 되짚어가겠다거나, 내 인생의 어느 한순간 속으로 빠져들겠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그보다는 한 세대를, 우리 안에서 그리고 밖에서 변화한 것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죠(처음엔 세대라는 말을 그 책의 제목으로 생각하기도 했답니다). 물론 여자로서, 그리고 암암리에 계급 탈주자로서 그 일을 하고 싶었던 거예요.  - P72

『세월』을 쓰겠다는 계획은 마흔다섯 살쯤에, 지나간 시간에 대한 강렬한 자각에서, 그리고 내가 살고 생각하는 방식을 내 어머니나 1950년대의 일반적 세계의 방식과 비교해볼 때의 당혹감에서 시작되었어요. 많이, 특히 여자들에겐 엄청나게 많이 바뀌었잖아요! ‘나‘를 ‘사람들‘과 ‘우리‘ 안에 위치시키면서, 그렇게 내 뒤에 놓인 시간을 되짚어보고싶었어요. 하지만 ‘나‘를 다 비워내기까지 오래 걸렸죠. 정말로 비워내면 구체성이 떨어질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내 책은 역사서, 사회학 저술과 어떻게 다른가 자문해보았고, 개인 - P72

적인 사진들을 넣어 설명하고 그 사진과 관련된 기억과 미래로의 투사를 더하는 방식으로 답을 얻었어요. 『여자아이 기에선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나‘ 혹은 ‘그녀‘를 내세웠죠. 1958년에 열여덟 살이던 여자아이를, 그 아이가 폭력적으로 처음 겪은 성적 경험을 내가 다른 ‘나‘를 보듯이 멀리서 본 거예요. 그 아이는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규칙이 지금과 전혀 다르던 시절에 자신의 믿음과 아비투스에 따라 변화해나갔고요. 나는 망원경으로 보듯 그 아이를 바라봐요. 그런 식의 거리두기가 점점 더 편하게 느껴지죠.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땐 ‘나‘를 피할 수 없었지만요. 그 자유는 계급 탈주자로서의 나의 역사와 그 특성들에 관계될테죠. 탈주자는 서로 다른 여러 상황과 경로를 포괄할 수 있는 단어잖아요. 『빈옷장』의 경우는 아무도 모르게,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썼어요. 책 내용이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폭력적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그래도 흔들림 없이 썼어요.  - P73

어쨌든 독자들에게 여러 번 받은 질문이기도 한데, 난 단 한번도 가까운 사람들이나 누군가의 반응에 대해서 생각해본적이 없어요. 단숨에든 서서히든 나를 사로잡은 것, 어서 써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쓰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단순한 열정』과 『탐닉은 내 아들들에게 아마도 읽기 힘든 글이었을테죠. "단순한 열정 앞부분에서 글쓰기는 "도덕적 판단의 정지"를 지향해야 한다고 쓴 건, 그 글이 펼쳐놓게 될 위반적성격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방법이었을 거예요. 사실상 난, 텍스트와 단둘이 대면한다는 점에서, 엄청난 고독 속에서 글을써요. 하지만 당신이 가족을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들도 다 이해할 수 있어요. - P74

라그라브


조금 전 당신은 당신 안에 자리 잡은 글쓰기가 있다고 했어요. - P74

그게 나와야 하고, 글로 쓰여야 하는 거죠. 글쓰기의 욕망, 그리고 글쓰기의 힘이 있으니까요. 거기가 바로 문학과 사회학사이에 놓인 경계일 테고요. 사실 그 경계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죠. 어떤 것이 사회학에서 가능한지 아닌지를 내가판단할 수는 없지만, 늘 그 문제에 관심을 쏟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이 책에서 사용한 소재들 중에 내 책에서는 전적으로배제된 것들도 있죠. 성생활,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 단순한열정과 그렇지 않은 열정, 임신중지가 범죄였던 시절에 겪은끔찍한 중절의 고통, 방학 캠프에서 겪은 강간의 경험 같은 것들이죠. 당신의 작품과 내 책의 큰 차이를 말하자면, 당신에게는 내밀한 것의 한계를 밀어낼 수 있는, 아니 없애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거예요. 당신은 그렇게 해서 "사적인 것이정치적인 것이다"라는 페미니스트 슬로건을 되살리죠.  - P75

『단순한 열정』과 『사건』에서 당신은 아무도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어요. 사회학자로서 나는 까다로운질문과 맞닥뜨렸고요. 바로 내밀성의 경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거죠. 예를 들어 내 형제자매들과 인터뷰할 때의 태도가 그랬고, 나의 사적인 삶을 되살릴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난 가까운 사람들의 사적인 것을 내가 마음대로 끌어내지 않으려고조심했어요. 내가 겪은 상처들 중에도 인터뷰에서 언급하지않은 것들이 있고요. 이른바 ‘사적인 삶에 대해 나 스스로 자기검열을 한 거예요. 두 경우만 예외죠. 그러니까 첫 고해성사이야기, 오빠와 함께 루르드로 순례를 갔던 이야기는 내밀한 요소들로 분류될 수 있어요.  - P75

읽으면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죠. 예를 들어 당신이 파리를, 혹은 노동의 세계를 처음 접할때 이야기를 읽다 보면 흡사 당신 곁에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왜 여자들이, 나부터도 그랬지만, 당신 책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까요? 그건 바로 그 책을통해 우리가 가족의 삶, 중등학교, 대학교 같은 구체적인 상황들과 이어진 감정과 감각 속에 젖어들 수 있기 때문이에요.
난 내밀한 것을 글로 쓰면서 두려움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글을 쓰는 동안 나 자신을 나와 분리된 존재, 다른 사람으로 느끼거든요. 그 또한 세계 안에 존재하는 한 가지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사랑의 열정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가장 내밀한 것이지만, 난 그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절대적으로 매 순간을 나눌 수 있었고, 심지어 내 생각들을 사물로 간주할 수도 있었어요. 모든 것을 사물처럼 간주할 것. - P86

1974년에 「빈 옷장』을 쓰던 때만 해도 난 계급 탈주자라는 용어를 알지 못했어요. 10년 뒤 자리가 나왔을 때 국립농학연구소-오늘날의 국립 농학 · 식량 · 환경 연구소INRAE 의 전신이죠 의 한 연구원이 클로드 그리뇽의 강연 내용을 전해주었고, 그때 그 용어를 처음 듣고 의미도 알게 되었어요. 나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었죠. 그때부터 그 말을 자주 사용했어요. 하지만 거의 언제나, 전쟁 중의 탈주자는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배신하지만, 내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썼죠. 사실 탈주자라는 말에는 스스로 내린 결정, 명철하게, 심지어 고집스럽게 추구한 의도라는 개념이 들어 있어요. 시대에 대해서도, 그 어떤 영향에 대해서도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위계를 고려하지 않는 단어죠. 하지만 사회나 학교가 우리에게이러저러한 방식의 말을 사용하라고, 이러저러한 책을 읽으라고 말한다면, 그로 인해서 서서히 자기 가족 환경의 취향과태도로부터 멀어지게 된다면, 그것을 스스로 의도한 변절이 - P101

에르노


어느 순간에 자기 스스로를 탈주자라고 느끼게 되는지는 잘모르겠어요. 내 생각엔 단계적으로 오는 것 같아요. 하지만 나에겐 절대적으로 분명한 중요한 순간이 있었어요. 남편과 아이와 함께 안시에 살게 되면서 부모님을 못 만난 지 2년째 되었을 때였어요. 한 번도 못 만난 건 물론이고, 목소리조차들을 수 없었죠. 부모님 집에는 전화가 없었거든요. 그러다가 - P107

찾아갔는데, 어째서 그때 나 자신이 탈주자로 느껴졌을까요?
내 부모의 현실이 단번에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일 거예요. 이전에는 이미지로 떠올렸다면, 그때는 노르망디 억양, 말하는방식, 다른 사람 말을 자르기, 감정을 표현하는 강렬한 말들,
거친 동작, 모든 게 그대로 나타난 거죠. 부모님 가까이 살 때는 자각하지 못하던 것들이었어요. 사실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나 그대로였죠. 똑같이 정겹고 극성맞았어요. 내가 달라진 거죠. 내 부모를 나의 새로운 환경으로부터 바라보게 되었고, 내 부모가 민중 세계에 속했음을 드러내는 것들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부엌에 같이 서 있는데, 그래요, 여닫이문으로 카페와 이어진 부엌이 너무 좁고초라해서 마음이 아팠어요.  - P108

그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냉장고도 없고 욕실도 화장실도 따로 없었죠. 그땐, 그러니까 1960년대에까지도 그런 집들이 있기는 했지만, 점점 줄어들던 때였거든요. 말하자면 그때의 느낌은 물질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나는 저들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물론 애정이 있었고, 아버지는 좋아 어쩔 줄 몰라 하고 어머니는 내아들에게 달려들었죠. 하지만 아이가 자기가 왜 여기 와 있는걸까 어리둥절하면서 놀라는 모습을 보면서 난 내 세계가 바뀌었음을 깨달았어요.
일종의 사회적 현현이라 할 수 있을 그런 순간들은 쉽게 찾아오지 않죠.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 가능하니까요. 영화<레벤느망>에서 임신한 상태로 부모를 보러 간 안이 같이 밥을 먹으면서 우스운 라디오 방송을 듣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 P108

때 안은 침묵을 지키잖아요. 그 장면을 보면서 내가 십대 때 옆에서 라디오 뤽상부르 에 나온 풍자만담가의 이야기를 듣곤 하던 부모님이 생각났어요. 난 그 장면이 계급 탈주자인 대학생 여자아이를 아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그 아이의 침묵은 ‘나는 더는 저들과 같지 않아. 난 저런 걸 들어도 웃기지 않아‘ 같은 거죠. 혹은 ‘내가 임신한 걸 알게 된다면.……
‘나는 내 어린 시절로부터 너무 많이 멀어졌구나… 이고요.
내 생각에는 돈보다는 지적이고 문화적인 획득이 계급 탈주자를 만드는 것 같아요. - P109

라그라브


내 경우는 스스로를 가누다 이전에는 아니었는데, 그 책을쓰면서 처음 나 자신을 ‘계급 탈주자‘로 지칭했어요. 내가 지나온 사회적 경로를 규정해야 했는데,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와 마주한 거죠. 우리는 계급 탈주자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계급 탈주자가 되고, 내가 계급 탈주자가 된 건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연구교수로 선발되었을 때였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아주 늦어서죠. 계급 하락이 일어날 이유와 가능성이 없어진, 정말로 안도할 수 있게 된 때이죠. - P109

에르노


어떤 것이 눈에 보이게 만들려면 이름을 붙여야 해요. 물론그럴 경우에 성찰을 메마르게 할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요. 내 - P109

가 보기에 사람들이 계급 탈주자 개념에 온갖 소스를 더해서깃발처럼 휘두르고 있는 것 같아요. 능력 있는 학생이라는 개념이 성공하면서 결국 학교 시스템을 강화함으로써 상속자들에게 이권을 부여하는 과정이 되풀이되는 거죠.
처음에, 그러니까 자리』를 쓸 때만 해도 난 그런 상황을 표현해줄 이름을 알지 못했어요. 그래서 거리distance라는 말을 사용했죠. 내가 말하는 거리는 가정부와 고용인 사이에 놓인거리와는 다르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에요. "헤어진 사랑"
에 비유하기도 했어요. 내 경우엔 정말 그랬거든요. 그보다10년 전 『빈 옷장』을 쓰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지금은 계급 탈주의 여정이라고 정의되는 그것을 이야기하려 할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찢김, "둘로 잘림"의 이미지였어요. - P110

사실 처음에는 ‘빈 옷장‘ 대신에 ‘찢김‘을 그 소설의 제목으로삼으려 했답니다. ‘빈 옷장‘은 엘뤼아르Éluard의 시에서 가져온 제목이죠. "나는 빈 옷장들에 가짜 보물들을 간직했다." 내가 빈 옷장에 쌓아둔 보물들은 지식과 독서였어요. 그것들이 나로 하여금 검증하게 했고, 나를 내 출신 환경에서 잘라냈죠.
앞에서 이미 얘기한 대로, 그보다 5년 전에 난 내가 사는 세상이 바뀌었음을 마치 계시처럼 깨달았어요. 그리고 그 계시같은 깨달음이 있고 사흘 뒤에, 끔찍한 우연이죠, 심근경색후유증을 앓던 아버지가 내가 부모님 집에 가 있는 동안에 돌아가셨죠. 그런 뒤에, 같은 해에 새 학년이 시작될 때 나는 본 - P110

빌의 한 고등학교에서 처음 교사 생활을 시작했어요. 비서ㆍ회계 계열의 반이 제일 신입 교사인 나에게 주어졌는데, 그곳의 학생들은 내가 이전에 중등교원 자격시험의 실기 과정을 치른 리옹의 중등학교들의 학생들과 많이 달랐죠. 그땐 아직 내가 부르디외를 읽기 전이었지만 학교 교육에 대해 자문하게 되었고, "열악한 환경‘ 출신의 탁월한 학생들도 만나게되었어요 중학 1년 과정도 맡았는데 반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이 노동자의 딸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있는 자리에서자술 감독 교사가 그 아이 어깨를 잡으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파트리샤, 넌 네가 나중에 잘살게 될 거라는 거 알지? 네 부모님보다 더 잘살게 될 거야" 물론 의도적인 말이었겠죠. - P111

하지만 난 소리 없는 분노와 고통으로 너무 괴로웠어요. 그리고곧 1968년 5월의 사건들이 일어났어요. 사회 전반에 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고, 그중에 학교에 관한 것도 있었죠. 바로그즈음에 상속자들』을 읽었어요. 보들로와 로제 에스타블레Roger Establet 의 프랑스의 자본주의적 학교L‘école capitaliste enFrance 도 읽었고요. 그때부터, 정확히는 1972년 봄에, 나의 출신 환경과의 찢김에 관해 글을 쓰겠다는 욕망이 강박관념이되었고, 남편과의 불화로 인해서 더욱 강해졌어요. 남편은 중산층 부르주아 가정의 남자였고, 그의 환경에 통합되어가는 - P111

중에도 내 안에서는 출신 환경과의 차이가 끊임없이 느꼈거든요. 그즈음에 난 MLAC에서 임신중지 자유화를 위한 싸움을 시작했고, 스물세 살 때 받은 불법 중절 시술이 출신 환경으로부터 찢겨나간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나에게 문을 열어주었어요.
탈주자 얘기가 많이 빗나갔네요. 개인적으로 겪은 상황들과사회에서 벌어지는 운동들이 우리의 의식이 깨어나고 글 쓰는 행위로 넘어가는 과정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고 싶어서였어요. 나에게는 근본적인 문제로 보이는 한가지만 더 얘기해볼게요. 바로 계급 탈주자가 어떤 글쓰기를선택하는가 하는 문제에요. 『빈 옷장』에서는 그런 질문을 제기하지 않았죠. 그냥 달려들었어요. 화자가 느끼는 것을, 마치 투사지를 위에 대고 베끼듯이 그대로 베꼈달까요.  - P112

상당히 격렬한 글쓰기죠. 그 뒤에, 아버지에 관해 글을 쓰려고 할 때 처음으로 ‘형식의 도덕‘이라는 문제와 직면했어요. 책을 쓰기 시작하긴 했는데 전혀 나아가지 않고, 자꾸만 거짓처럼 보였거든요. 결국 그리뇽이 파스롱과의 대화를 통해 민중주의와 동정주의에 관해 분석한 것을 조금씩 더듬어나가면서 나 혼자서 실험한 셈이에요. 사실상 지배당하고 있는 삶의 양태를 칭송하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이전에 나 역시 함께했던 행동과 태도에 대해서 관대한 시선이나 빈정거림에 빠지지 않는 것 또한 무척 힘들었죠. 그 좁은 길, 내가 양쪽 어디로든 떨어질 수 있다는 위험을 안고 올라서 있던 그 선을 나는 불행히도 ‘밋밋한 글쓰기‘라고 불렀어요.  - P112

에르노


난 내가 정신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글을 쓰느라 긴 시간을 보내기는 하지만, 그리고 글쓰기 ‘노동‘이라는 말을 자주 쓰기는 하지만, 그래도 난 여전히 글쓰기가 사치라고 생각해요. 내가 주변에서 지켜보았고 지금도 여전히 보이는 노동에 비해 글쓰기는 사치라는 생각을 사실 난 오래전부터 해왔어요. 장을 보러 마트에 가서 계산대에서 일하는 여자들의 반복적인 동작을, 그 여자들이 들어 올리는 생수를 묶음을 보면서, 난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요. - P128

만일 내가 저 일을 해야 한다면? 그러면 난 스무 살에도 저 일을 해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죠. 심지어 쉰살까지 그 일을 하는 여자들도 있는데 말이에요. 1960년대에 장피에르 샤브롤Jean-PierreChabeol이라는 작가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스스로 육체노동자와 똑같다고 확신하는 걸 보면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고단하고 때로는 위험한 일부 육체노동을 어떻게 따뜻한 곳에서 책상에 앉아 하는 글쓰기와 비교할 수 있겠어요? 나는내 사촌 자매들처럼 공장이나 재봉 작업실에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너무나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 P128

그때, 그러니까 스무 살경에, 난 노동에 따라 보상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주어진 문제들도 다르고요. 물론 그렇다고 몸이 아무 상관 없는 건 아니죠. 보다시피 나는 곧 여든두 살이 되고, 이미 정형외과 수술을 몇 차례 받았고 걷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요. 하지만 내 가족의 다른 여자들과 달리,
내 어머니와 달리, 육체적 마멸과 영양 부족의 징표가 몸에 남아 있지는 않죠. 나에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몸이 아주 중요한 문제였어요. - P129

라그라브


얘기를 듣다 보니 당신의 다음번 책은 노년을 과감하게 다루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나도 요즘 노년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돼요. 우리가 직접 겪은 경험들에 관심을 쏟는다는 징표이기도 하죠. 그래도 우리의 다른 점도 알겠어요. 당신은 늘 당신의 몸에서 출발해서 글을 썼죠. 몸의 글쓰기. 반면에 난 늘 몸을 멀리 두려 했어요. 곰곰 생각해보면, 난 몸을 내가 일하는 데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통제해온 것 같아요. 몸을 노동력으로서 관리한 거죠. 일흔여덟 살이 되기까지 문제가 생겨서 일을 못 한 적은 없었으니까. 몸이 잘 버텨준 셈이에요. 물론 나이 들면서 절대 착각할 수 없는 신호를 보내기도 하죠. 얼굴이 서서히 변하고, 배가 점점 나오고, 눈의 관제가 떨어지고… 프레베르 Prévert 식으로 계속 나열할 수 있겠네요. 그런 것에 순응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당신이 - P129

강조한 것처럼, 내 몸은 힘겨운 육체노동으로 고생한 적 없고 제법 많은 은퇴 연금을 받고 또 예방 치료의 기회를 누릴 수도 있죠. 사실 힘겨운 투쟁으로 얻은 사회적 권리인데 요즘들어 예방적 치료의 기회가 줄어들고 있잖아요. 아무튼 그렇게 나이 들어온 여자의 몸이에요. 어떻게 보면 우리는 나이가들어야 자기 몸과 다시 친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나만 해도 이전에는 피로가 길동무처럼 늘 따라다녀도 그걸 경고로 받아들이지 않았거든요. 몸이 한 군데씩 탈이 날 때 내 안에 일종의 분노 같은 것이 솟아나지만, 그 분노를 곧 모두가 겪는운명에 대한 순응으로 바꿔버리곤 하죠. 그 운명이 어떤 건지 이해하려고 애쓰게 되고요.  - P1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1940-프랑스의 작가 
1940년 9월 1일, 노르망디의 소도시 릴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이브토로 이사한 후, 청소년기까지 그곳에서 보냈다. 딸의 교육에 관심이 높았던 어머니는 아니 에르노를 사립 가톨획 학교에 입학시켰고, 에르노는 부르주아 계층의 소녀들 사이에처 처음으로 자신의 계급에 대한 수치를 느낀다.
루앙대학교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공부하고 1967년에 중등교원자격시험에 합격한 후,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1971년 현대문학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1977년부터 2000년에 은퇴할때까지 프랑스 국립원격교육원CNED 교수로 일했다.
1974년 자전적 소설인 「빈옷장』을 출간하며 작가로서의 행보를시작했다. 1984년 아버지의 삶을 다룬 ‘자리 Place」로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2008년에는 세월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림 독자상을 수상했다. 2003년 그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제정되었으며, 2011년에는생존 작가로서는 최초로 프랑스 갈리마르 총서에 자전 소설과 미발표 일기 등이 포함된 삶을 쓰다가 편입되었다. 처음 데뷔했을때부터 픽션을 거부했던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작품을 두고 직접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개인적 경험을 통해 사회 구조를 파헤치는 예리한 글쓰기로 역사, 사회, 개인의 관계를 탐구하고 재구성하며 ‘자전‘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했다는 평을 받는다.
2017년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문학상을 받았으며,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로즈마리 라그라브 Rose-Marie Lagrave, 


1944~프랑스의 사회학자, 
1944년, 파리에서 태어나 노르망디에서 자랐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EHESS의 연구책임 교수였으며, ‘젠더, 정치, 섹슈얼리티‘라는 석사과정을 개설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가누다ressaisir』 등의 책을 썼다.

아니 에르노와 로즈마리 라그라브는 암묵적인 동조를 바탕으로 하는 솔직한 대화를 통해서 자신들이 그동안 쓴 글들에 관해 성찰하고,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라는 시대적 문맥 특유의 사회적 · 역사적 변모에비추어 자신들의 계급 변화와 페미니스트로의 이행 과정을 되짚어본다.
같은 세대에 속하는 두 여자는 상대가 쓴 삶의 이야기들 속에서 서로를알아보았고, 무엇보다 직접 겪은 체험과 그에 대한 분석을 오가는 작업속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들의 방식은 체험된 것과 그에대한 분석이라는 두 층위가 분리될 수 없음을 말해준다. 문학과 사회과학에서 끌어낸 실들을 교차시키면서 자신들이 겪은 지배 경험을 해석하기 위한 옷감을 직조해나가는 것이다. - P7

에르노

그때 나는 임신중지와 피임 자유화를 위한 운동MLAC에 참여하고 있었고, 막 발표한 소설『빈 옷장』도 배경이 불법 중절이었죠. 물론 그 배경 자체가 책의 목적은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드니즈 르쉬르라는 주인공이 대학 문학부까지 학업을 이어감으로써 이르게 된 ‘정당성을 누리는‘ 부르주아 세계와서민적 출신 환경 사이에서 겪는 점진적인 괴리를 이야기하려 했죠. 임신중지를 포함해서 분명 자진적인 이야기였고요.
그때 원고를 ‘여성‘ 관련 시리즈를 내고 있던 출판사들에 보내지 않은 건 어느 정도는 본능적인 판단이었을 거고, 어쩌면출판계를 잘 몰랐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어쨌든 난 그때 내책의 대상, 그러니까 지금이라면 ‘계급 탈주자가 지나온 경로‘라고 부를 그것이 여성에 국한된 문제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플라마리옹에 먼저 보냈죠. 곧바로 거절당했고요. - P39

사실 그때는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도 여자가 살림하고 식구들 먹이고 아이들을 돌보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정신적인 부담이라고 부르는 일들은 진짜 주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F 매거진>이라는 잡지에서 소설가 카트린 리우아Catherine Rihoit의 글이 그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비판한 게전부였죠. 내가 쓴 많은 책이 논쟁의 대상이 되었지만, 얼어붙은 여자』는 유난했어요. 거부의 대상이었죠. 그러니까,
1981년에는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책이었던 거예요. 내가 문제 삼은 것들은 ‘사유되지 않은 것impensé‘에 속했달까요. 반면 단순한 열정』의 경우는…… - P43

버지니아 울프 얘기도 하지 않을 수 없죠. 나는 『자기만의방은 마흔 살이 돼서 읽었지만, 「댈러웨이 부인』과 『파도』는글을 쓰기로, 소설을 써보기로 결심했을 때 읽었어요. 소설가로서 버지니아 울프는 남자들이 지배하던 문학사에서 등대같은 존재였죠. 나에게 자극과 힘을 주었어요. 버지니아 울프가 해냈으면 나도 해낼 수 있다! 글을 쓸 수 있다! 이런 거죠.
상황을 조금 설명해야겠네요. 난 처음에 적성과 안 맞는 직업을 골랐고-초등학교 교사가 되려 했거든요, 그러다가 오페어로 영국에 머물렀고, 돌아와서는 장차 교수가 되고 글을 쓰겠다는 욕망으로 대학 문학부에 입학했어요. 당시 ‘예비교양과정‘이라고 불리던 1학년은 경쟁이 아주 치열한 과정이었죠. 아무튼 그때, 놀랍게도, 내가 다른 학생들보다 철학이 아니라 프랑스어를 월등히 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이어 학사과정에 입학허가를 받고 현대문학을 골랐죠. 그런데 그 과정에 외국 문학 시험을 치러야 하는 ‘수료증‘이 포함되어 있었고, 바로 그 수업에서 버지니아 울프를 알게 되었어요.  - P49

특별히 좋지는 않았어요. 어쩌면 그 책이 내 삶에 너무 늦게왔기 때문일 거예요. 어떤 글을 우리가 언제 만났는지도 중요하잖아요. 동시대 작품들에 대한 갈증으로 닥치는 대로 읽어나가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뒤라스는 내 길에 없었어요.
작가로서 이미 자리를 잡고 난 후에 만나게 되는 책들의 경우, 물론 그 작가와의 사이에서 일종의 공명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멀게 느껴지기도 하죠. 내 경우엔 뒤라스가 그랬어요. 오히려 나탈리 사로트가 더 가깝게 느껴졌고요. 하지만 기억해보니, 이상하게도, 중등학교 3학년 과정 학생들에게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나리오를 읽게 했네요! 나도뒤라스의 영화들은 늘 좋아했거든요. - P51

나도 안시에서 지젤 알리미 Gisèle Halimi의 선택하라 Choisirt 운동, 이어 임신중지와 피임 자유화를 위한 운동에까지 참여했지만, 페미니스트 활동과 만남은 대부분 파리에서 이루어졌죠. 파리는 내가 여섯 시간 기차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고요. 1975년에 세르지"로 온 뒤에도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어요. 심지어 고립이 더 심해졌죠, 국립원격교육원CNTE. 지금의 CNED의 교수로 임명된 뒤로 ‘원격‘ 수업을 하니까, 동료들과도 학생들과도 다 떨어져있게 된 거죠. 얼어붙은 여자』는 1978년 가을에 쓰기 시작했는데, 이론을 참조하지 않고 그냥 내 경험과 기억으로 써나갔어요. 말하자면, 환자가 의사 앞에서 자기 병력을 설명하듯이, 내가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려 한 거죠. - P5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성 작가는 질병의 이미지, 질병의 전통, 질병과 불편함의권유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자기 본성의 불안을 비추는 많은 거울을 들고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앞으로 보겠지만, 감염된 문장이 새끼를 친다‘는 개념은 여성 문인에게 너무도 잘 들어맞는 진실이다. 오스틴과 셀리부터 디킨슨과 배럿 브라우닝에 이르는 19세기 소설가들과 시인들의 위대한 예술적성취는 사실적으로나 비유적으로나 번번이 질병과 결부되었다.
그것은 마치 절망과 파편화가 빚어낸 감염성 ‘우울증‘으로부터건강과 완전함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역설하는 것만 같다. 문화가 건네는 독사과를 거부하는 여성 작가는 거식증 환자가 되어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침묵으로 들어간다. - P158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의 오로라 리는 일찍이 ‘모국‘ 이탈리아에서 멀어지는 바람에 모국을 ‘잊기에 이른다. 그러나 마지막 사례가 암시하듯이, 이 모든 인물들과 작가들이 잊었을까 봐 정말로 두려워하는 대상은 정확하게 말해 가부장적 시학 때문에 멀어진 자신들 삶의 국면, 즉 자신들의 모계적 문학 유산이다. 그것은 애니고틀립이 말한 것처럼 그들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어머니‘임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들에게 중요한 ‘여성직 힘‘이다. 따라서 ‘감염된 문장‘이 여성들 사이에 ‘새끼를 쳐나가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어떻게 질병을 통해 예술적 건강을 획득해내는가를 배우기 위해서도 ‘영향에 대한 불안이라는 블룸의 중요한 정의를 재정의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19세기 여성들이 자신들을 쇠약하게 만드는 가부장적 인식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고유한 여성의 힘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잃어버린 어머니들을 되찾고 기억해내 ‘작가가되는 것에 대한 불안‘을 극복한 일이 얼마나 지난했는지 추적해낼 수 있을 것이다. - P161

울프의 언급이 암시하듯, 자신의 문학적인 노력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여자들은 미친 사람 내지 괴물로 취급받았다. ‘성을벗어났기 때문에 기이하고 성적으로 ‘ 타락했기 때문에 기이하다는 것이다. 캐번디시의 비상한 지적 야망은 자연에서 탈선한듯 보였으며, 핀치의 글은 그녀를 바보로 만들었고, 애프라 벤(사실상 영국 최초의 ‘전문‘ 여성 작가)처럼 아주 뻔뻔하고 사죄할 줄 모르는 반항아는 항상 의심할 바 없이 문란하고 방종하며 ‘음란한‘) ‘수상한 여자‘로 간주되었다. ‘판단력과 신성한시를 금지당한 이 가련한 여자는 무엇을 했는가?‘ 벤은 솔직하게 질문했고, 또 솔직히 말하자면 왕정복고 시대 방탕자의 삶을 살았던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 마치 현실판 두에사처럼, 그녀는 진지한 문학의 정전에서뿐만 아니라 점잖은 사람들의 응접실이나 도서관에서도 점차 가차 없이 추방(나아가 삭제)당했다.  - P167

우리는 1869년 루이자 메이 올컷의 조 마치가 야심찬 고딕스릴러 대신에 어린이용 교훈 설교집을 쓰는 모습을 만난다. 이모든 선택, 즉 확실히 주류적인 것이 아니라 외관상 소품 같은것, 극적인 것이 아니라 가정적인 것, 공적인 것이 아니라 사적인 것, 영광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은 것을 선택한 데는 의식적이거나 반의식적인 아이러니가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그런 선택의 필요성은 아주 최근까지 영미의 거의 모든 여성 작가들이처했던 상황, 즉 작가 되기의 병적인 불안을 강조해준다.
모든 여성의 삶과 시, 그리고 선택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는간단히 말해, 여성 문인이 세계 내에서 자신의 공적 현존을 규 - P168

정해야 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하든 똑같이 항상 자기 존재를 비하하는 결과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여성 문인은 자신의 작품을전적으로 억압하거나 작품의 출판을 필명이나 익명으로 출판해야 했고, 그렇지 않은 경우 그녀는 겸손하게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고백하고, 열등한 능력에 걸맞게 숙녀들을 위한 ‘더 하찮은‘ 주제에 집중해야 했다. 후자의 선택이 실패의 인정으로 보인다면 여성 문인은 반항할 것이며 그 결과 불가피하게 추방당할 것이다. 그리하여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듯, 여성 작가는 당황스러운 이중의 속박에 갇혀 있었다.  - P169

여성 문인은 자신이 ‘단지 여자‘일 뿐임을 인정하거나 ‘남자만큼 훌륭하다‘고 저항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 같은 불안감을 조장하는 선택에 직면한 여자들이 문학작품을 창조하자 그들의 작품에는 제한된 선택에 대한 강박적 관심뿐 아니라 예외 없이 강박적 감금의 이미지가 강력하게 나타난다.
감금 이미지는 어느 쪽이든 숨을 틀어막는 양자택일과 그렇게만들어놓은 문화에 의해 여성 예술가들이 감금되고 병들었다고 느꼈음을 보여준다. 괴테의 허구적 인물인 천사 같은 마카리에뿐만 아니라 조지 엘리엇도 (버지니아 울프처럼) 끔찍한 두통에 시달렸다. 그 이유를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 P169

문학작품과 마찬가지로 여성 작가에게는 난항일 뿐이다.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에서 신랄하게 보여주었듯이, 여성 소설가가 자신을 백설 공주와 동일시하면 로맨틱한 유리 관은 죽음의 침대처럼 느껴진다.‘ 반면 여왕처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하는 여성은 사회에서 추방한다는 암울한 사실은, 여성 문인에게 비극적이고 장엄한 이야기의 영감이기보다 늘 불안의 원천이 되었다. 고귀한 자는 결국 맥베스이고 레이디 맥베스는 괴물이다. 마찬가지로 오이디푸스는 영웅이지만, 메데이아는 마녀일 뿐이다. 리어의 광기는 거룩하고 보편적이지만, 오필리아의광기는 그저 측은할 따름이다. 비극의 구조가 가부장제의 구조를 반영하는 한(다시 말해 비극이 ‘고귀한‘ 인물의 ‘몰락‘ 이야기여야 하는 한 비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그런 이야기를 단순히 사용한다기보다는 필요로 하는 것이다.  - P175

그러나 치료도 질병만큼 문제적이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교수와 조지 엘리엇을 논할 때 자세하게 살펴볼 것이다. 왜냐하면 남자 분장의 문학적인 어려움이 보여주었듯, 자신이 여성임을 부정하는 천재 여성은 배럿 브라우닝 자신이 ‘헛된 부정‘ 이라고 말했던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반항의 외침은 / 버려진 여자의 흐느낌 속으로 잦아들고, 그녀의
‘여성스러운 머리칼‘은 ‘고통 속에서 헝클어진 힘‘을 드러낸다.
이 모든 것은, 그녀가 ‘남자의 이름‘으로 얻어내는 실용적인 이점이 무엇이든 그것을 반증하고 반박하며 전복시키는 사례가허다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와 동시에 자신의 여성성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플롯이나 시학의 가부장적인 성격에 정면으로 맞서는 여자는 장르와 젠더의 화해할수 없는 대립에 아연실색할 것이다. 마거릿 풀러의 일기는 이문제를 깔끔하게 요약했다.


내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생의 모든 물결을 느끼면서도, 나의생각을 형식으로 주조하려고 할 때면 나는 입이 딱 붙고 무력해 - P179

진다. 옛날 것은 어떤 것도 나에게 맞지 않는다. 내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나는 창조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무언가를 쓸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여자인 게 정말 좋다. 그러나지금은 여성이라는 사실이 직접적으로 ‘나‘의 영역을 제한한다.
어떤 때는 진정으로 여자로서 살지만, 또 어떤 때는 숨이 막힌다. 내가 예술가 역할을 할 때 마비되는 것처럼. - P180

가부장제의 문장(판결)으로 병들고 감염되었지만, 자신 안에서 느껴지는 ‘시적 정열의 절박성을 부인할 수 없는 여성 작가는 작가가 되는 것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개발했을까? 그녀는 어떻게 남성 텍스트의 거울을 벗어나그녀 자신의 권위를 창조할 수 있는 전통 속으로 춤추며 들어갔을까? 창조성에 필수적인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지위를 박탈당한 채,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권리와기술과 교육을 다 거부당했지만 천사 같은 침묵 속으로 물러나지 않은 여성들은 처음에는 매우 제한된 선택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P180

18세기와 19세기 여성 작가들은 남자에 의해, 남자를 위해 만들어진 구조에 갇힌 채 지배적인 미학에 반항하기보다는 순응할 수 없다는 데 죄의식을 느꼈다. 생명력 있는 여성 문화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던 여성 작가들은 다른 말하자면 남성) 작가들이 결코 느끼거나 표현하지 않았던 진실을 전달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퍽 고통을 겪었다. 그들 자신의 권위를 의심할수 밖에 없는 조건 속에서 디킨슨의 말마따나 ‘조롱거리가 되지않는 것을 묘사하려 했던 여성 작가들은 사회를 향해 비판적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자신을 의심하는 것이 더 쉬웠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예술적 회피나 은폐는 대부분 남성 작가들보다훨씬 더 정교하다. 19세기 문학 문화의 가부장적 편견을 감안한다면, 여성 문인은 감추어야 할 중요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P185

최근 페미니즘 연구가들이 상실되거나 은폐되었던 여성 문화의 많은 진실을 복원한 덕분에, 여성 독자들은 19세기 여성 문인들이 무언가를 숨겨야 한다고 느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페미니즘 비평가들은 여성의 글에 나타나는 회피와 은폐 현상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여성의 상상력』에서 퍼트리샤 마이어 스펙스는 여성 작가들이 표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는 진실에 대해 여성 작가의 소설이 드러낸 ‘땅밑의 도전‘ 같은 방식들을 묘사한다. 마찬가지로 캐럴린 하일브런과 캐서린 스팀프슨은 여성문학에 나타난 ‘부재의 현전‘, ‘작품 안의 구멍, 중심, 동굴(자신이 기대한 활동이 상실되었거나[··] 거짓으로 부호화되어 있는 장소들)‘에 대해 논한다.  - P185

따라서 이 미친 분신은 샬럿과 에밀리 브론테의 한층 반항적인 이야기에서 중요하듯 제인 오스틴이나 조지 엘리엇의 지극히 온전한 소설에서도 중요하다. 고딕 작가와 반고딕 작가 두부류는 모두 선택받은 수녀와 저주받은 마녀 사이에 있는 에밀리 디킨슨처럼, 또는 고상하고 비판적인 과학자와 분노에 찬 어린에 같은 괴물 사이에 있는 메리 셸리처럼, 자신을 분열된 자아로 재현했다. 여성 작가의 이런 정신분열은 지극히 중요하다. 그것이 19세기 작가들을 (자신을 댈러웨이 부인과 미친 셉티머스 워런 스미스 둘 다에게 투사하는) 버지니아 울프, (자신을 분별 있는 마사 헤세와 미친 린다 콜리지 사이에서 분열시키는) 도리스 레싱, (자신을 석고로 만들어진 성자이자 위험한 ‘늙은 황색‘ 괴물로 본) 실비아 플라스 같은 20세기의 후배 작가들과 연결해주기 때문이다. - P190

말하지 않는 법을 버리기‘와 같은 매우 결정적인 투쟁을 벌였음에도 예술의 외관 뒤에 숨는다는 것은 여전히 숨기는 것이고 제한받는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비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감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밀리 디킨슨에게 보내는 통렬하고도 통찰력 있는 시에서 에이드리언 리치는 노래하기를, 디킨슨은 나름의 ‘반쯤 미친 방식으로‘ ‘즐거움을 위해 침묵을 선택했으며, ‘마침내 [그녀] 자신의 집에서도 /침묵을 선택했다‘고 했다.  - P197

이것은 바로 제인 오스틴이 자신의작업대를 5센티미터 폭의 작은 상아 조각이라고 아이러니하게규정하면서 그녀가 선택한 바이며, 에밀리 브론테가 자신의 시를 부엌 찬장에 숨기면서 (그리고 아마 자신의 곤달 이야기를없애버리면서) 그녀가 선택했던 바이며, 크리스티나 로세티가 ‘수도원 문설주‘와 같은 종교적인 속박을 칭송했던 예술을 하기로 결심하면서 스스로 선택한 바다. 리치의 집/전제premises 라는 다의어적 말장난은 우리를 이 여성들의 감금, 즉 가장 위대한 승리의 순간에도 피할 수 없었던 감금, 비밀 속에 내포되어있는 감금으로 데려간다. 이 감금은 사실적이면서 동시에 비유적이다. 글자 그대로 디킨슨, 브론테, 로세티 같은 여자들은 가 - P197

정, 아버지의 집에 갇혀 있었다. 실제로 거의 모든 19세기 여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남자의 집에 갇혀 있었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여자들은 비유적으로 남성 텍스트에 갇혀 있었고, 오로지독창적인 재간과 우회적인 방식으로만 남성 텍스트에서 도망칠수 있었다. 그러므로 거의 강박적인 강렬함으로 잘 다듬어진 폐쇄와 탈출이라는 공간적 이미지가 그들 작품의 특징이라는 점은 놀랄 일이 아니다.
실제로 공간에 대한 불안이 19세기와 20세기 여성문학을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면 엘런 모어스가 최근에 ‘여성 고딕‘이라고 불렀던 장르에서 여자 주인공들은 대개 이해할 수없을 만큼 복잡하거나, 숨막히게 답답한 집에 붙잡혀 있거나, 족쇄가 채워져 있거나, 덫에 걸렸거나, 심지어 산 채로 묻혀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 P198

글자 그대로의 집이 된다는 것은 결국 몸을 정신적으로 초월할 수 있다는 희망을 거부당하는 것이다. 그런 초월성이야말로 시몬 드 보부아르가 주장했듯, 인간을 고유하게 인간으로 만들어주는데 말이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출산에 갇혀 있는 것은(그리고 우리가 지금 ‘출산‘이라고 부르는 행위를 일컫는 19세기 단어가 ‘감금‘이라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어떤 점에서는 집이나 감옥에 갇혀 있는 것만큼이나 문제적이다. 사실상 여성 문인에게, 개체 발생이 계통 발생을 반복하는 것처럼, 임신의 감금은 사회의 감금을 반복하는 것처럼 다가올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은유적으로만 초월을 거부당했다고 할지라도, 집/몸의 방정식이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는 여성 작가는 그런 은유가 그녀를 유리 관에 ‘넣을‘ 뿐 아니라 그녀 자신을 일종의 유리 관으로 변형시킨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 P206

따라서 그런 은유의 그물망에 갇힌 채, 이른바 에이드리언 리치가 명명한 ‘생각하는 여자‘는 자신이 자신의 이질적이고 혐오스러운 몸에 갇혀 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여성 예술가는 갇혀 있는 수인은 물론이요괴물이 된다.
마치 이 모든 문제들을 종합해서 (다시 말하자면 여성 작가들이 유사한 병행적 감금으로 보았던 텍스트와 집, 출산하는여성의 몸 등 불안을 유발하는 모든 것 사이의 관련성에 대해)논평하려는 듯, 샬럿 퍼킨스 길먼은 이 모든 문제를 결합시켜 1890년에 여성의 감금과 탈출에 대해 놀라운 이야기를 썼다. - P206

에밀리 디킨스처럼 길먼도 ‘감염된 문장도 새끼를 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여성의 절망에 대한 치료는육체적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이어야 하며, 사회적일 뿐만 아니라 미학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길먼은 「누런 벽지」를 통해 ‘미쳤다‘고 추정되는 여자가 자신의 몸이라는 ‘감염된‘ 집에 갇히는 형을 받았을 때조차 (70년 후 실비아 플라스가 말했던 것처럼) "회복할 자아, 여왕‘이 있음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것을 보여준다.  - P211

‘경계‘와 ‘울타리‘라는 공간 이미지는 작가들이 제인오스틴을 받아들일 때마다 확산해나가는 것 같다. 마치 오스틴이 드러내는 바에 대한 그들 자신의 불안을 보여주는 듯하다. 에드워드 피츠제럴드의 논평은 ‘오스틴은 나름대로 훌륭하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거실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대표적이며,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이 오스틴의 소설을 ‘나름대로 완벽하다. 그것은 확실하다. 다만 멀리 나아가지 않을 뿐이라고 가볍게 묘사한 것도 마찬가지다. 에머슨이 오스틴의 이야기의 사소함과 하찮은 가정사에 혐오감을 느끼며 ‘왜 사람들이 오스턴의 소설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어조는 저속하고, 예술적 창작력은 빈곤하고, 영국 사회의 불쌍한 인습에 갇혀 있으며, 천재적 재능이나 위트도 없고, 세계 - P236

에 대한 지식도 없다. 삶이 심각하게 위축되거나 힘겨웠던 적도없다. 내가 읽은 두 작품 『설득』과 『오만과 편견』에 드러난 작가마음속의 문제는 오직 결혼할 수 있느냐다. 소설 속 인물들의모든 관심은 오로지 그 한 가지 문제, 그(또는 그녀)에게 결혼할 돈과 적합한 조건이 있느냐다. 그것은 ‘맹목적인 절망‘, 이를테면 영국 하숙집의 ‘광기‘에 가깝다. 자살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  - P237

그러나 오스틴의 사소함을 진부한 태도로 판단한 남성 중 단연 압권은 마크 트웨인일 것이다. 트웨인은 오스틴의 가장 강력한 미국인 옹호자였던 윌리엄 딘 하우얼스에게 편지를 쓸 때오스틴의 이름을 정확하게 쓸 마음도 없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산문은 읽을 수 없다. 제인 오스틴의 글처럼‘이라고 말하면서 둘 사이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고 덧붙인다. ‘돈을 받는다면 포의 산문은 읽을 수 있지만 제인의 산문은 그렇지 않다. 제인 오스틴은 조금도 못 참겠다. 그들이 그녀를 자연사하도록 놔두었다는 것이 유감천만이다.‘‘‘ D. H. 로런스도 오스틴을 공격하면서 여성 작가를 향한 유사한 적의를 표현했다. 로런스는 오스틴을 ‘인물 대신 ‘성격‘을 전형화하며, 종합적으로 아는 것 대신 따로따로 날카롭게 아는 노처녀‘라고 비난했고, ‘내가 느끼기에 오스틴은 매우 불쾌하고 형편없고 인색하고 속물적이라는 의미에서‘ 영국적이라고 했다.  - P237

오스틴은 문화의 상징이 되었지만, 그녀가 끈질기게 보여준 자신이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에 대한 불편함, 특히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부여한 협소한 위치에 대한 불만, 성적 착취의 경제학에 대한 분석은 지금도 충격적이다. 동시에 오스틴은 처음부터
자신에게는 좁은 장소 이외의 다른 어떤 곳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녀의 패러디 전략은 부적절하지만 피할 수 없는 구조에대항한 자신의 싸움에 대한 증언이다. 만일 스콧과 브론테, 에퍼슨과 제임스처럼 우리가 계속 오스틴의 세계를 협소하고 하찮다고만 본다면, 우리는 험버스톨에게 ‘우리가 좁은 곳에 있을때 제인을 필적할 만한 자는 아무도 없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이 협소한 장소는 문학적이며 사회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패러디적인 초기 작품부터 읽어나갈 것이다.  - P2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또 백설 공주나 사악한 여왕처럼, 이들의 초기 욕망이 양가적임을 보게 될 것이다. 이들은 가부장제의 유리관 속에서 숨 막히게 꼭끼는 코르셋으로 자기 자신을 옴짝달싹 못 하게 조이거나, 거울밖으로 나와 불같은 죽음의 춤을 추어 스스로를 파괴하라고 유혹받는다. 그러나 천사와 괴물이라는 한 쌍의 이미지가 제시하는 걸림돌이 가로놓여 있었어도, 그리고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과 불모성에 대한 공포로 고통을 받았어도, 여성 작가들은 작품을 산출했다. 18세기 말까지 여성들은 글만 쓴 것이 아니라 (이것이 이 책 전반에서 우리가 보게 될 가장 중요한 현상인데)가부장적인 이미지와 인습을 근본적으로 수정한 허구의 세계를품고 있었다. 그리하여 앤 핀치와 앤 엘리엇부터 에밀리 브론테와 에밀리 디킨슨에 이르는 자부심 강한 여성들이 남성 작가의텍스트라는 유리 관에서 나와 여왕의 거울을 폭파했을 때, 오래전 침묵 속에 추었던 죽음의 춤은 승리의 춤, 언어를 향한 춤,
권위의 춤이 되었다. - P137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문학적 권위에 대한 근본 정의는 공공그리고 은근히 가부장적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여성작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문학 전통이 여성들에게 제해주는 주된 이미지가 천사와 괴물, 착하지만 바보 같은 백설사고 광적인 여왕 같은 극단적인 대립쌍뿐이라면, 그이미지는 여성이 글을 쓰는 방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마왕의 거울이 왕의 목소리로 말한다면, 그 목소리가 들려주는생원한 춘계는 여왕 자신의 목소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여성이 듣는 목소리가 주로 왕의 목소리인 만큼 여왕은 왕의 음색, 왕의 억양, 왕의 표현, 왕의 관점을 모방하여 왕처럼 들리도록 애쓰지 않을까? 아니면 여왕은 자신의 관점을 주장하면서 - P140

자신의 음색과 자신의 어휘로 왕에게 ‘응수‘ 할까? 페미니즘 문학비평이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답변해야 할 기본 질문은바로 이런 물음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19세기 여성문학을동해할 때 이 장뿐만 아니라 반복적으로 이 질문들로 되돌아가야 한다.
작가들이 선배들의 업적을 소화하고 나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것을 긍정하거나 거부하는 일은 문학사에서 당연히중요하다. T. S. 엘리엇, M. H. 에이브럼스, 에리히 아우어바흐 프랭크 커모드 같은 다양한 이론가들은 그것의 미학적 형이상학적 의미를 상세하게 논의한 바 있다.‘ 좀 더 최근에는 일부문학 이론가들이 문학사의 심리학이라 부르는 것(작가들이 선배들의 업적뿐 아니라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장르, 문체, 은유의 전통과 직면했을 때 느끼는 긴장, 불안, 적대감, 결여 등)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J. 힐리스 밀러가 말했듯이 이런 비평가들은 문학작품이 ‘이전 작품들의 현존, 메아리, 인유, 손님, 유령이라는 기생체의 거주지‘가 되는 방식을 연구한다. - P141

미첼과 다른 이론가들이 주장한 합리적 심리분석적 이유뿐만아니라 이런 이유 때문에도, 블룸이 남성 작가에게 제시했던 오이디푸스적 구조에 상응하는 엘렉트라 패턴에 여성 작가를 가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여성 작가가 여성 모델을 찾는 이유는 (우리는 여성들이 줄곧 이 일을 반복하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여성성‘에 대한 남성의 정의를 충실하게 따르고자 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저항을 합리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가부장적 사회의 대부분 여성처럼 여성 작가도 자신의 젠더를 고통스러운 걸림돌 내지 쇠약하게 만드는 부족함으로까지 경험한다. 다시 말해 가부장제에 길들여진 대다수 여성들처럼, 여성작가는 미첼이 말한 ‘가부장제 여성들을 열등하게 취급하는 ‘대 - P146

체‘(『제2의 성』) 심리학‘의 희생자인 것이다. 따라서 여성 예술가의 고독, 여성 선배와 후배에 대한 갈증과 남성 선배로부터의소외감, 남성 독자의 반감을 사는 일에 대한 두려움, 여성 독자에 대한 절박한 갈구, 문화적 조건 안의 자아를 극화시킬 때 튀어나오는 소심함, 예술의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두려움, 여성창조의 부적절함에 대한 불안 등등 이 모든 ‘열등화‘ 현상은 여성 작가가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정립하려는 분투의 표식이며,
자아 창조를 위한 그녀의 노력을 남성 작가와 구분해주는 현상이다. - P147

마치 디킨슨에게 화답하듯이, 고틀립은 선배 여성 작가를 찾는 과정에서 여성 작가는 감염과 쇠약만을 발견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성 작가는 여전히 ‘여성적 힘‘을 찾아야 한다. 그것을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잃어버린 문학적 모계를 찾기위해서는 ‘그 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했을 때 어머니에 대한 디킨슨 자신의 고백은 많은 의미를 드러낸다. 디킨슨은 ‘나는 어머니가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어렸을 때 나는늘 집으로 두려움에 차 달려갔다. […] 어머니는 몹시 무서운사람이었지만 나는 누구보다 어머니를 좋아했다‘ ‘어머니는 기적이었다‘라고 말을 바꿔가며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드러나듯, 작가가 되는 일이 불러일으킨 그녀의 불안은 ‘절망‘이었다. 그것은 병든 생모와 고통받은 문학적 어머니가 옮겨 들이마신 절망일 뿐만 아니라, 가끔은 가까이서 가끔은 ‘수세기나 떨어진 곳에서‘ 그녀에게 말했던(‘거짓말‘까지 했던)문학적 아버지가 퍼뜨린, 문학적 텍스트라는 검열의 거울에서옮겨붙어 들이마신 절망이었다. - P1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