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작가는 질병의 이미지, 질병의 전통, 질병과 불편함의권유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자기 본성의 불안을 비추는 많은 거울을 들고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앞으로 보겠지만, 감염된 문장이 새끼를 친다‘는 개념은 여성 문인에게 너무도 잘 들어맞는 진실이다. 오스틴과 셀리부터 디킨슨과 배럿 브라우닝에 이르는 19세기 소설가들과 시인들의 위대한 예술적성취는 사실적으로나 비유적으로나 번번이 질병과 결부되었다.
그것은 마치 절망과 파편화가 빚어낸 감염성 ‘우울증‘으로부터건강과 완전함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역설하는 것만 같다. 문화가 건네는 독사과를 거부하는 여성 작가는 거식증 환자가 되어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침묵으로 들어간다. - P158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의 오로라 리는 일찍이 ‘모국‘ 이탈리아에서 멀어지는 바람에 모국을 ‘잊기에 이른다. 그러나 마지막 사례가 암시하듯이, 이 모든 인물들과 작가들이 잊었을까 봐 정말로 두려워하는 대상은 정확하게 말해 가부장적 시학 때문에 멀어진 자신들 삶의 국면, 즉 자신들의 모계적 문학 유산이다. 그것은 애니고틀립이 말한 것처럼 그들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어머니‘임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들에게 중요한 ‘여성직 힘‘이다. 따라서 ‘감염된 문장‘이 여성들 사이에 ‘새끼를 쳐나가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어떻게 질병을 통해 예술적 건강을 획득해내는가를 배우기 위해서도 ‘영향에 대한 불안이라는 블룸의 중요한 정의를 재정의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19세기 여성들이 자신들을 쇠약하게 만드는 가부장적 인식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고유한 여성의 힘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잃어버린 어머니들을 되찾고 기억해내 ‘작가가되는 것에 대한 불안‘을 극복한 일이 얼마나 지난했는지 추적해낼 수 있을 것이다. - P161

울프의 언급이 암시하듯, 자신의 문학적인 노력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여자들은 미친 사람 내지 괴물로 취급받았다. ‘성을벗어났기 때문에 기이하고 성적으로 ‘ 타락했기 때문에 기이하다는 것이다. 캐번디시의 비상한 지적 야망은 자연에서 탈선한듯 보였으며, 핀치의 글은 그녀를 바보로 만들었고, 애프라 벤(사실상 영국 최초의 ‘전문‘ 여성 작가)처럼 아주 뻔뻔하고 사죄할 줄 모르는 반항아는 항상 의심할 바 없이 문란하고 방종하며 ‘음란한‘) ‘수상한 여자‘로 간주되었다. ‘판단력과 신성한시를 금지당한 이 가련한 여자는 무엇을 했는가?‘ 벤은 솔직하게 질문했고, 또 솔직히 말하자면 왕정복고 시대 방탕자의 삶을 살았던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 마치 현실판 두에사처럼, 그녀는 진지한 문학의 정전에서뿐만 아니라 점잖은 사람들의 응접실이나 도서관에서도 점차 가차 없이 추방(나아가 삭제)당했다.  - P167

우리는 1869년 루이자 메이 올컷의 조 마치가 야심찬 고딕스릴러 대신에 어린이용 교훈 설교집을 쓰는 모습을 만난다. 이모든 선택, 즉 확실히 주류적인 것이 아니라 외관상 소품 같은것, 극적인 것이 아니라 가정적인 것, 공적인 것이 아니라 사적인 것, 영광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은 것을 선택한 데는 의식적이거나 반의식적인 아이러니가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그런 선택의 필요성은 아주 최근까지 영미의 거의 모든 여성 작가들이처했던 상황, 즉 작가 되기의 병적인 불안을 강조해준다.
모든 여성의 삶과 시, 그리고 선택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는간단히 말해, 여성 문인이 세계 내에서 자신의 공적 현존을 규 - P168

정해야 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하든 똑같이 항상 자기 존재를 비하하는 결과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여성 문인은 자신의 작품을전적으로 억압하거나 작품의 출판을 필명이나 익명으로 출판해야 했고, 그렇지 않은 경우 그녀는 겸손하게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고백하고, 열등한 능력에 걸맞게 숙녀들을 위한 ‘더 하찮은‘ 주제에 집중해야 했다. 후자의 선택이 실패의 인정으로 보인다면 여성 문인은 반항할 것이며 그 결과 불가피하게 추방당할 것이다. 그리하여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듯, 여성 작가는 당황스러운 이중의 속박에 갇혀 있었다.  - P169

여성 문인은 자신이 ‘단지 여자‘일 뿐임을 인정하거나 ‘남자만큼 훌륭하다‘고 저항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 같은 불안감을 조장하는 선택에 직면한 여자들이 문학작품을 창조하자 그들의 작품에는 제한된 선택에 대한 강박적 관심뿐 아니라 예외 없이 강박적 감금의 이미지가 강력하게 나타난다.
감금 이미지는 어느 쪽이든 숨을 틀어막는 양자택일과 그렇게만들어놓은 문화에 의해 여성 예술가들이 감금되고 병들었다고 느꼈음을 보여준다. 괴테의 허구적 인물인 천사 같은 마카리에뿐만 아니라 조지 엘리엇도 (버지니아 울프처럼) 끔찍한 두통에 시달렸다. 그 이유를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 P169

문학작품과 마찬가지로 여성 작가에게는 난항일 뿐이다.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에서 신랄하게 보여주었듯이, 여성 소설가가 자신을 백설 공주와 동일시하면 로맨틱한 유리 관은 죽음의 침대처럼 느껴진다.‘ 반면 여왕처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하는 여성은 사회에서 추방한다는 암울한 사실은, 여성 문인에게 비극적이고 장엄한 이야기의 영감이기보다 늘 불안의 원천이 되었다. 고귀한 자는 결국 맥베스이고 레이디 맥베스는 괴물이다. 마찬가지로 오이디푸스는 영웅이지만, 메데이아는 마녀일 뿐이다. 리어의 광기는 거룩하고 보편적이지만, 오필리아의광기는 그저 측은할 따름이다. 비극의 구조가 가부장제의 구조를 반영하는 한(다시 말해 비극이 ‘고귀한‘ 인물의 ‘몰락‘ 이야기여야 하는 한 비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그런 이야기를 단순히 사용한다기보다는 필요로 하는 것이다.  - P175

그러나 치료도 질병만큼 문제적이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교수와 조지 엘리엇을 논할 때 자세하게 살펴볼 것이다. 왜냐하면 남자 분장의 문학적인 어려움이 보여주었듯, 자신이 여성임을 부정하는 천재 여성은 배럿 브라우닝 자신이 ‘헛된 부정‘ 이라고 말했던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반항의 외침은 / 버려진 여자의 흐느낌 속으로 잦아들고, 그녀의
‘여성스러운 머리칼‘은 ‘고통 속에서 헝클어진 힘‘을 드러낸다.
이 모든 것은, 그녀가 ‘남자의 이름‘으로 얻어내는 실용적인 이점이 무엇이든 그것을 반증하고 반박하며 전복시키는 사례가허다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와 동시에 자신의 여성성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플롯이나 시학의 가부장적인 성격에 정면으로 맞서는 여자는 장르와 젠더의 화해할수 없는 대립에 아연실색할 것이다. 마거릿 풀러의 일기는 이문제를 깔끔하게 요약했다.


내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생의 모든 물결을 느끼면서도, 나의생각을 형식으로 주조하려고 할 때면 나는 입이 딱 붙고 무력해 - P179

진다. 옛날 것은 어떤 것도 나에게 맞지 않는다. 내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나는 창조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무언가를 쓸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여자인 게 정말 좋다. 그러나지금은 여성이라는 사실이 직접적으로 ‘나‘의 영역을 제한한다.
어떤 때는 진정으로 여자로서 살지만, 또 어떤 때는 숨이 막힌다. 내가 예술가 역할을 할 때 마비되는 것처럼. - P180

가부장제의 문장(판결)으로 병들고 감염되었지만, 자신 안에서 느껴지는 ‘시적 정열의 절박성을 부인할 수 없는 여성 작가는 작가가 되는 것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개발했을까? 그녀는 어떻게 남성 텍스트의 거울을 벗어나그녀 자신의 권위를 창조할 수 있는 전통 속으로 춤추며 들어갔을까? 창조성에 필수적인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지위를 박탈당한 채,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권리와기술과 교육을 다 거부당했지만 천사 같은 침묵 속으로 물러나지 않은 여성들은 처음에는 매우 제한된 선택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P180

18세기와 19세기 여성 작가들은 남자에 의해, 남자를 위해 만들어진 구조에 갇힌 채 지배적인 미학에 반항하기보다는 순응할 수 없다는 데 죄의식을 느꼈다. 생명력 있는 여성 문화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던 여성 작가들은 다른 말하자면 남성) 작가들이 결코 느끼거나 표현하지 않았던 진실을 전달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퍽 고통을 겪었다. 그들 자신의 권위를 의심할수 밖에 없는 조건 속에서 디킨슨의 말마따나 ‘조롱거리가 되지않는 것을 묘사하려 했던 여성 작가들은 사회를 향해 비판적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자신을 의심하는 것이 더 쉬웠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예술적 회피나 은폐는 대부분 남성 작가들보다훨씬 더 정교하다. 19세기 문학 문화의 가부장적 편견을 감안한다면, 여성 문인은 감추어야 할 중요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P185

최근 페미니즘 연구가들이 상실되거나 은폐되었던 여성 문화의 많은 진실을 복원한 덕분에, 여성 독자들은 19세기 여성 문인들이 무언가를 숨겨야 한다고 느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페미니즘 비평가들은 여성의 글에 나타나는 회피와 은폐 현상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여성의 상상력』에서 퍼트리샤 마이어 스펙스는 여성 작가들이 표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는 진실에 대해 여성 작가의 소설이 드러낸 ‘땅밑의 도전‘ 같은 방식들을 묘사한다. 마찬가지로 캐럴린 하일브런과 캐서린 스팀프슨은 여성문학에 나타난 ‘부재의 현전‘, ‘작품 안의 구멍, 중심, 동굴(자신이 기대한 활동이 상실되었거나[··] 거짓으로 부호화되어 있는 장소들)‘에 대해 논한다.  - P185

따라서 이 미친 분신은 샬럿과 에밀리 브론테의 한층 반항적인 이야기에서 중요하듯 제인 오스틴이나 조지 엘리엇의 지극히 온전한 소설에서도 중요하다. 고딕 작가와 반고딕 작가 두부류는 모두 선택받은 수녀와 저주받은 마녀 사이에 있는 에밀리 디킨슨처럼, 또는 고상하고 비판적인 과학자와 분노에 찬 어린에 같은 괴물 사이에 있는 메리 셸리처럼, 자신을 분열된 자아로 재현했다. 여성 작가의 이런 정신분열은 지극히 중요하다. 그것이 19세기 작가들을 (자신을 댈러웨이 부인과 미친 셉티머스 워런 스미스 둘 다에게 투사하는) 버지니아 울프, (자신을 분별 있는 마사 헤세와 미친 린다 콜리지 사이에서 분열시키는) 도리스 레싱, (자신을 석고로 만들어진 성자이자 위험한 ‘늙은 황색‘ 괴물로 본) 실비아 플라스 같은 20세기의 후배 작가들과 연결해주기 때문이다. - P190

말하지 않는 법을 버리기‘와 같은 매우 결정적인 투쟁을 벌였음에도 예술의 외관 뒤에 숨는다는 것은 여전히 숨기는 것이고 제한받는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비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감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밀리 디킨슨에게 보내는 통렬하고도 통찰력 있는 시에서 에이드리언 리치는 노래하기를, 디킨슨은 나름의 ‘반쯤 미친 방식으로‘ ‘즐거움을 위해 침묵을 선택했으며, ‘마침내 [그녀] 자신의 집에서도 /침묵을 선택했다‘고 했다.  - P197

이것은 바로 제인 오스틴이 자신의작업대를 5센티미터 폭의 작은 상아 조각이라고 아이러니하게규정하면서 그녀가 선택한 바이며, 에밀리 브론테가 자신의 시를 부엌 찬장에 숨기면서 (그리고 아마 자신의 곤달 이야기를없애버리면서) 그녀가 선택했던 바이며, 크리스티나 로세티가 ‘수도원 문설주‘와 같은 종교적인 속박을 칭송했던 예술을 하기로 결심하면서 스스로 선택한 바다. 리치의 집/전제premises 라는 다의어적 말장난은 우리를 이 여성들의 감금, 즉 가장 위대한 승리의 순간에도 피할 수 없었던 감금, 비밀 속에 내포되어있는 감금으로 데려간다. 이 감금은 사실적이면서 동시에 비유적이다. 글자 그대로 디킨슨, 브론테, 로세티 같은 여자들은 가 - P197

정, 아버지의 집에 갇혀 있었다. 실제로 거의 모든 19세기 여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남자의 집에 갇혀 있었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여자들은 비유적으로 남성 텍스트에 갇혀 있었고, 오로지독창적인 재간과 우회적인 방식으로만 남성 텍스트에서 도망칠수 있었다. 그러므로 거의 강박적인 강렬함으로 잘 다듬어진 폐쇄와 탈출이라는 공간적 이미지가 그들 작품의 특징이라는 점은 놀랄 일이 아니다.
실제로 공간에 대한 불안이 19세기와 20세기 여성문학을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면 엘런 모어스가 최근에 ‘여성 고딕‘이라고 불렀던 장르에서 여자 주인공들은 대개 이해할 수없을 만큼 복잡하거나, 숨막히게 답답한 집에 붙잡혀 있거나, 족쇄가 채워져 있거나, 덫에 걸렸거나, 심지어 산 채로 묻혀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 P198

글자 그대로의 집이 된다는 것은 결국 몸을 정신적으로 초월할 수 있다는 희망을 거부당하는 것이다. 그런 초월성이야말로 시몬 드 보부아르가 주장했듯, 인간을 고유하게 인간으로 만들어주는데 말이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출산에 갇혀 있는 것은(그리고 우리가 지금 ‘출산‘이라고 부르는 행위를 일컫는 19세기 단어가 ‘감금‘이라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어떤 점에서는 집이나 감옥에 갇혀 있는 것만큼이나 문제적이다. 사실상 여성 문인에게, 개체 발생이 계통 발생을 반복하는 것처럼, 임신의 감금은 사회의 감금을 반복하는 것처럼 다가올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은유적으로만 초월을 거부당했다고 할지라도, 집/몸의 방정식이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는 여성 작가는 그런 은유가 그녀를 유리 관에 ‘넣을‘ 뿐 아니라 그녀 자신을 일종의 유리 관으로 변형시킨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 P206

따라서 그런 은유의 그물망에 갇힌 채, 이른바 에이드리언 리치가 명명한 ‘생각하는 여자‘는 자신이 자신의 이질적이고 혐오스러운 몸에 갇혀 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여성 예술가는 갇혀 있는 수인은 물론이요괴물이 된다.
마치 이 모든 문제들을 종합해서 (다시 말하자면 여성 작가들이 유사한 병행적 감금으로 보았던 텍스트와 집, 출산하는여성의 몸 등 불안을 유발하는 모든 것 사이의 관련성에 대해)논평하려는 듯, 샬럿 퍼킨스 길먼은 이 모든 문제를 결합시켜 1890년에 여성의 감금과 탈출에 대해 놀라운 이야기를 썼다. - P206

에밀리 디킨스처럼 길먼도 ‘감염된 문장도 새끼를 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여성의 절망에 대한 치료는육체적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이어야 하며, 사회적일 뿐만 아니라 미학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길먼은 「누런 벽지」를 통해 ‘미쳤다‘고 추정되는 여자가 자신의 몸이라는 ‘감염된‘ 집에 갇히는 형을 받았을 때조차 (70년 후 실비아 플라스가 말했던 것처럼) "회복할 자아, 여왕‘이 있음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것을 보여준다.  - P211

‘경계‘와 ‘울타리‘라는 공간 이미지는 작가들이 제인오스틴을 받아들일 때마다 확산해나가는 것 같다. 마치 오스틴이 드러내는 바에 대한 그들 자신의 불안을 보여주는 듯하다. 에드워드 피츠제럴드의 논평은 ‘오스틴은 나름대로 훌륭하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거실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대표적이며,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이 오스틴의 소설을 ‘나름대로 완벽하다. 그것은 확실하다. 다만 멀리 나아가지 않을 뿐이라고 가볍게 묘사한 것도 마찬가지다. 에머슨이 오스틴의 이야기의 사소함과 하찮은 가정사에 혐오감을 느끼며 ‘왜 사람들이 오스턴의 소설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어조는 저속하고, 예술적 창작력은 빈곤하고, 영국 사회의 불쌍한 인습에 갇혀 있으며, 천재적 재능이나 위트도 없고, 세계 - P236

에 대한 지식도 없다. 삶이 심각하게 위축되거나 힘겨웠던 적도없다. 내가 읽은 두 작품 『설득』과 『오만과 편견』에 드러난 작가마음속의 문제는 오직 결혼할 수 있느냐다. 소설 속 인물들의모든 관심은 오로지 그 한 가지 문제, 그(또는 그녀)에게 결혼할 돈과 적합한 조건이 있느냐다. 그것은 ‘맹목적인 절망‘, 이를테면 영국 하숙집의 ‘광기‘에 가깝다. 자살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  - P237

그러나 오스틴의 사소함을 진부한 태도로 판단한 남성 중 단연 압권은 마크 트웨인일 것이다. 트웨인은 오스틴의 가장 강력한 미국인 옹호자였던 윌리엄 딘 하우얼스에게 편지를 쓸 때오스틴의 이름을 정확하게 쓸 마음도 없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산문은 읽을 수 없다. 제인 오스틴의 글처럼‘이라고 말하면서 둘 사이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고 덧붙인다. ‘돈을 받는다면 포의 산문은 읽을 수 있지만 제인의 산문은 그렇지 않다. 제인 오스틴은 조금도 못 참겠다. 그들이 그녀를 자연사하도록 놔두었다는 것이 유감천만이다.‘‘‘ D. H. 로런스도 오스틴을 공격하면서 여성 작가를 향한 유사한 적의를 표현했다. 로런스는 오스틴을 ‘인물 대신 ‘성격‘을 전형화하며, 종합적으로 아는 것 대신 따로따로 날카롭게 아는 노처녀‘라고 비난했고, ‘내가 느끼기에 오스틴은 매우 불쾌하고 형편없고 인색하고 속물적이라는 의미에서‘ 영국적이라고 했다.  - P237

오스틴은 문화의 상징이 되었지만, 그녀가 끈질기게 보여준 자신이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에 대한 불편함, 특히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부여한 협소한 위치에 대한 불만, 성적 착취의 경제학에 대한 분석은 지금도 충격적이다. 동시에 오스틴은 처음부터
자신에게는 좁은 장소 이외의 다른 어떤 곳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녀의 패러디 전략은 부적절하지만 피할 수 없는 구조에대항한 자신의 싸움에 대한 증언이다. 만일 스콧과 브론테, 에퍼슨과 제임스처럼 우리가 계속 오스틴의 세계를 협소하고 하찮다고만 본다면, 우리는 험버스톨에게 ‘우리가 좁은 곳에 있을때 제인을 필적할 만한 자는 아무도 없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이 협소한 장소는 문학적이며 사회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패러디적인 초기 작품부터 읽어나갈 것이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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