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1940-프랑스의 작가 1940년 9월 1일, 노르망디의 소도시 릴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이브토로 이사한 후, 청소년기까지 그곳에서 보냈다. 딸의 교육에 관심이 높았던 어머니는 아니 에르노를 사립 가톨획 학교에 입학시켰고, 에르노는 부르주아 계층의 소녀들 사이에처 처음으로 자신의 계급에 대한 수치를 느낀다. 루앙대학교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공부하고 1967년에 중등교원자격시험에 합격한 후,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1971년 현대문학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1977년부터 2000년에 은퇴할때까지 프랑스 국립원격교육원CNED 교수로 일했다. 1974년 자전적 소설인 「빈옷장』을 출간하며 작가로서의 행보를시작했다. 1984년 아버지의 삶을 다룬 ‘자리 Place」로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2008년에는 세월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림 독자상을 수상했다. 2003년 그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제정되었으며, 2011년에는생존 작가로서는 최초로 프랑스 갈리마르 총서에 자전 소설과 미발표 일기 등이 포함된 삶을 쓰다가 편입되었다. 처음 데뷔했을때부터 픽션을 거부했던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작품을 두고 직접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개인적 경험을 통해 사회 구조를 파헤치는 예리한 글쓰기로 역사, 사회, 개인의 관계를 탐구하고 재구성하며 ‘자전‘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했다는 평을 받는다. 2017년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문학상을 받았으며,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로즈마리 라그라브 Rose-Marie Lagrave,
1944~프랑스의 사회학자, 1944년, 파리에서 태어나 노르망디에서 자랐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EHESS의 연구책임 교수였으며, ‘젠더, 정치, 섹슈얼리티‘라는 석사과정을 개설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가누다ressaisir』 등의 책을 썼다.
아니 에르노와 로즈마리 라그라브는 암묵적인 동조를 바탕으로 하는 솔직한 대화를 통해서 자신들이 그동안 쓴 글들에 관해 성찰하고,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라는 시대적 문맥 특유의 사회적 · 역사적 변모에비추어 자신들의 계급 변화와 페미니스트로의 이행 과정을 되짚어본다. 같은 세대에 속하는 두 여자는 상대가 쓴 삶의 이야기들 속에서 서로를알아보았고, 무엇보다 직접 겪은 체험과 그에 대한 분석을 오가는 작업속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들의 방식은 체험된 것과 그에대한 분석이라는 두 층위가 분리될 수 없음을 말해준다. 문학과 사회과학에서 끌어낸 실들을 교차시키면서 자신들이 겪은 지배 경험을 해석하기 위한 옷감을 직조해나가는 것이다. - P7
에르노
그때 나는 임신중지와 피임 자유화를 위한 운동MLAC에 참여하고 있었고, 막 발표한 소설『빈 옷장』도 배경이 불법 중절이었죠. 물론 그 배경 자체가 책의 목적은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드니즈 르쉬르라는 주인공이 대학 문학부까지 학업을 이어감으로써 이르게 된 ‘정당성을 누리는‘ 부르주아 세계와서민적 출신 환경 사이에서 겪는 점진적인 괴리를 이야기하려 했죠. 임신중지를 포함해서 분명 자진적인 이야기였고요. 그때 원고를 ‘여성‘ 관련 시리즈를 내고 있던 출판사들에 보내지 않은 건 어느 정도는 본능적인 판단이었을 거고, 어쩌면출판계를 잘 몰랐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어쨌든 난 그때 내책의 대상, 그러니까 지금이라면 ‘계급 탈주자가 지나온 경로‘라고 부를 그것이 여성에 국한된 문제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플라마리옹에 먼저 보냈죠. 곧바로 거절당했고요. - P39
사실 그때는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도 여자가 살림하고 식구들 먹이고 아이들을 돌보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정신적인 부담이라고 부르는 일들은 진짜 주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F 매거진>이라는 잡지에서 소설가 카트린 리우아Catherine Rihoit의 글이 그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비판한 게전부였죠. 내가 쓴 많은 책이 논쟁의 대상이 되었지만, 얼어붙은 여자』는 유난했어요. 거부의 대상이었죠. 그러니까, 1981년에는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책이었던 거예요. 내가 문제 삼은 것들은 ‘사유되지 않은 것impensé‘에 속했달까요. 반면 단순한 열정』의 경우는…… - P43
버지니아 울프 얘기도 하지 않을 수 없죠. 나는 『자기만의방은 마흔 살이 돼서 읽었지만, 「댈러웨이 부인』과 『파도』는글을 쓰기로, 소설을 써보기로 결심했을 때 읽었어요. 소설가로서 버지니아 울프는 남자들이 지배하던 문학사에서 등대같은 존재였죠. 나에게 자극과 힘을 주었어요. 버지니아 울프가 해냈으면 나도 해낼 수 있다! 글을 쓸 수 있다! 이런 거죠. 상황을 조금 설명해야겠네요. 난 처음에 적성과 안 맞는 직업을 골랐고-초등학교 교사가 되려 했거든요, 그러다가 오페어로 영국에 머물렀고, 돌아와서는 장차 교수가 되고 글을 쓰겠다는 욕망으로 대학 문학부에 입학했어요. 당시 ‘예비교양과정‘이라고 불리던 1학년은 경쟁이 아주 치열한 과정이었죠. 아무튼 그때, 놀랍게도, 내가 다른 학생들보다 철학이 아니라 프랑스어를 월등히 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이어 학사과정에 입학허가를 받고 현대문학을 골랐죠. 그런데 그 과정에 외국 문학 시험을 치러야 하는 ‘수료증‘이 포함되어 있었고, 바로 그 수업에서 버지니아 울프를 알게 되었어요. - P49
특별히 좋지는 않았어요. 어쩌면 그 책이 내 삶에 너무 늦게왔기 때문일 거예요. 어떤 글을 우리가 언제 만났는지도 중요하잖아요. 동시대 작품들에 대한 갈증으로 닥치는 대로 읽어나가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뒤라스는 내 길에 없었어요. 작가로서 이미 자리를 잡고 난 후에 만나게 되는 책들의 경우, 물론 그 작가와의 사이에서 일종의 공명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멀게 느껴지기도 하죠. 내 경우엔 뒤라스가 그랬어요. 오히려 나탈리 사로트가 더 가깝게 느껴졌고요. 하지만 기억해보니, 이상하게도, 중등학교 3학년 과정 학생들에게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나리오를 읽게 했네요! 나도뒤라스의 영화들은 늘 좋아했거든요. - P51
나도 안시에서 지젤 알리미 Gisèle Halimi의 선택하라 Choisirt 운동, 이어 임신중지와 피임 자유화를 위한 운동에까지 참여했지만, 페미니스트 활동과 만남은 대부분 파리에서 이루어졌죠. 파리는 내가 여섯 시간 기차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고요. 1975년에 세르지"로 온 뒤에도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어요. 심지어 고립이 더 심해졌죠, 국립원격교육원CNTE. 지금의 CNED의 교수로 임명된 뒤로 ‘원격‘ 수업을 하니까, 동료들과도 학생들과도 다 떨어져있게 된 거죠. 얼어붙은 여자』는 1978년 가을에 쓰기 시작했는데, 이론을 참조하지 않고 그냥 내 경험과 기억으로 써나갔어요. 말하자면, 환자가 의사 앞에서 자기 병력을 설명하듯이, 내가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려 한 거죠.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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