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또 백설 공주나 사악한 여왕처럼, 이들의 초기 욕망이 양가적임을 보게 될 것이다. 이들은 가부장제의 유리관 속에서 숨 막히게 꼭끼는 코르셋으로 자기 자신을 옴짝달싹 못 하게 조이거나, 거울밖으로 나와 불같은 죽음의 춤을 추어 스스로를 파괴하라고 유혹받는다. 그러나 천사와 괴물이라는 한 쌍의 이미지가 제시하는 걸림돌이 가로놓여 있었어도, 그리고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과 불모성에 대한 공포로 고통을 받았어도, 여성 작가들은 작품을 산출했다. 18세기 말까지 여성들은 글만 쓴 것이 아니라 (이것이 이 책 전반에서 우리가 보게 될 가장 중요한 현상인데)가부장적인 이미지와 인습을 근본적으로 수정한 허구의 세계를품고 있었다. 그리하여 앤 핀치와 앤 엘리엇부터 에밀리 브론테와 에밀리 디킨슨에 이르는 자부심 강한 여성들이 남성 작가의텍스트라는 유리 관에서 나와 여왕의 거울을 폭파했을 때, 오래전 침묵 속에 추었던 죽음의 춤은 승리의 춤, 언어를 향한 춤,
권위의 춤이 되었다. - P137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문학적 권위에 대한 근본 정의는 공공그리고 은근히 가부장적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여성작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문학 전통이 여성들에게 제해주는 주된 이미지가 천사와 괴물, 착하지만 바보 같은 백설사고 광적인 여왕 같은 극단적인 대립쌍뿐이라면, 그이미지는 여성이 글을 쓰는 방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마왕의 거울이 왕의 목소리로 말한다면, 그 목소리가 들려주는생원한 춘계는 여왕 자신의 목소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여성이 듣는 목소리가 주로 왕의 목소리인 만큼 여왕은 왕의 음색, 왕의 억양, 왕의 표현, 왕의 관점을 모방하여 왕처럼 들리도록 애쓰지 않을까? 아니면 여왕은 자신의 관점을 주장하면서 - P140

자신의 음색과 자신의 어휘로 왕에게 ‘응수‘ 할까? 페미니즘 문학비평이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답변해야 할 기본 질문은바로 이런 물음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19세기 여성문학을동해할 때 이 장뿐만 아니라 반복적으로 이 질문들로 되돌아가야 한다.
작가들이 선배들의 업적을 소화하고 나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것을 긍정하거나 거부하는 일은 문학사에서 당연히중요하다. T. S. 엘리엇, M. H. 에이브럼스, 에리히 아우어바흐 프랭크 커모드 같은 다양한 이론가들은 그것의 미학적 형이상학적 의미를 상세하게 논의한 바 있다.‘ 좀 더 최근에는 일부문학 이론가들이 문학사의 심리학이라 부르는 것(작가들이 선배들의 업적뿐 아니라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장르, 문체, 은유의 전통과 직면했을 때 느끼는 긴장, 불안, 적대감, 결여 등)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J. 힐리스 밀러가 말했듯이 이런 비평가들은 문학작품이 ‘이전 작품들의 현존, 메아리, 인유, 손님, 유령이라는 기생체의 거주지‘가 되는 방식을 연구한다. - P141

미첼과 다른 이론가들이 주장한 합리적 심리분석적 이유뿐만아니라 이런 이유 때문에도, 블룸이 남성 작가에게 제시했던 오이디푸스적 구조에 상응하는 엘렉트라 패턴에 여성 작가를 가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여성 작가가 여성 모델을 찾는 이유는 (우리는 여성들이 줄곧 이 일을 반복하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여성성‘에 대한 남성의 정의를 충실하게 따르고자 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저항을 합리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가부장적 사회의 대부분 여성처럼 여성 작가도 자신의 젠더를 고통스러운 걸림돌 내지 쇠약하게 만드는 부족함으로까지 경험한다. 다시 말해 가부장제에 길들여진 대다수 여성들처럼, 여성작가는 미첼이 말한 ‘가부장제 여성들을 열등하게 취급하는 ‘대 - P146

체‘(『제2의 성』) 심리학‘의 희생자인 것이다. 따라서 여성 예술가의 고독, 여성 선배와 후배에 대한 갈증과 남성 선배로부터의소외감, 남성 독자의 반감을 사는 일에 대한 두려움, 여성 독자에 대한 절박한 갈구, 문화적 조건 안의 자아를 극화시킬 때 튀어나오는 소심함, 예술의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두려움, 여성창조의 부적절함에 대한 불안 등등 이 모든 ‘열등화‘ 현상은 여성 작가가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정립하려는 분투의 표식이며,
자아 창조를 위한 그녀의 노력을 남성 작가와 구분해주는 현상이다. - P147

마치 디킨슨에게 화답하듯이, 고틀립은 선배 여성 작가를 찾는 과정에서 여성 작가는 감염과 쇠약만을 발견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성 작가는 여전히 ‘여성적 힘‘을 찾아야 한다. 그것을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잃어버린 문학적 모계를 찾기위해서는 ‘그 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했을 때 어머니에 대한 디킨슨 자신의 고백은 많은 의미를 드러낸다. 디킨슨은 ‘나는 어머니가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어렸을 때 나는늘 집으로 두려움에 차 달려갔다. […] 어머니는 몹시 무서운사람이었지만 나는 누구보다 어머니를 좋아했다‘ ‘어머니는 기적이었다‘라고 말을 바꿔가며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드러나듯, 작가가 되는 일이 불러일으킨 그녀의 불안은 ‘절망‘이었다. 그것은 병든 생모와 고통받은 문학적 어머니가 옮겨 들이마신 절망일 뿐만 아니라, 가끔은 가까이서 가끔은 ‘수세기나 떨어진 곳에서‘ 그녀에게 말했던(‘거짓말‘까지 했던)문학적 아버지가 퍼뜨린, 문학적 텍스트라는 검열의 거울에서옮겨붙어 들이마신 절망이었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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