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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트레버William Trevor

1928년 아일랜드 코크주 미첼스타운에서 태어났다. 더블린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역사학을 수학하고 1954년 영국으로이주, 1964년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데뷔 이후 횟브레드상(현 코스타상) 3회, 오헨리상 4회, 래넌상, 왕립문학협회상등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고, 다섯 번의 부커상 후보 외에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수차례 거론되었다.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7년 대영제국 훈장 사령관 수훈을, 1994년 문학 훈위 칭호를 받았으며, 1999년에는 영국 작가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영예로운 문학상이라 불리는 데이비드 코언상을 수상했다. 2002년 평생의 업적과 공헌에 대하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기사 작위를 받았다. 줌파 라히리,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등이 많은 영향을 받은 작가로 손꼽았으며, 아일랜드의 대통령 마이클 히긴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뛰어난 업적을 이뤄낸 우아함을 지닌 작가‘로 표현한바 있다. 2016년 11월 20일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 수백 편의 단편과 18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했고 대표작으로 《비온 뒤》《여름의 끝》《루시 골트 이야기》 《그의 옛 연인》 《밀회》 등이 있다.

우리가 그때 풋사랑이든 뭐든 서로 사랑했던 걸까? 당신은 라스코맥이나 캐슬타운로쉐에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어디도 아닌 여기 로크였을지도. 지난 수많은 세월 난 종종 당신이 가까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눈을 감으면 일요일 교회에 있는 당신 모습이 보였다. 당신의 파란 드레스, 모자 끈에 달린 조화 장미. 의자 너머로 당신을 흘긋 보았다. 나 자신을어찌할 수 없어서, 데렌지 씨가 팬지 고모에게 눈길이 머무르는 걸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 P35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건 이런 불안한 사랑이었다. 심지어팬지 고모를 향한 정중한 구애에도 불구하고 데렌지 씨는 때때로 쓸쓸해 보였다. 아버지가 말하는 걸 들었는데, 데렌지 씨는 사랑꾼은 아니라고 했다. 사랑꾼은 바로 조니 레이시라고. 데렌지 씨는 회계장부와 청구서들, 스위니네하숙집 2층의 고독한 프로테스탄트 세계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는30여 년 동안 팬지 고모를 사랑했다고 한다.
난 킬개리프 신부나 데렌지 씨와 팬지 고모가 불행하길 원치 않는 것 이상으로 팀 패디가 불행하길 바라지 않았다. 모든것이 어떤 식으로든 결국엔 다 괜찮길 바랐다. 오닐의 아픈 관절이나 플린 부인의 과부 형편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 P49

난 무엇보다도 동정을 원하지 않았다. 주홍 응접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팀 패디는 두 번 다시 솔 자루에 기대지않을 테고, 플린 부인도 근사한 정장을 차려입고 일요 미사에가지 못할 것이다. 난 아버지와 함께 다시는 경사진 목초지를올라 자작나무 숲길을 지나서 제분소로 걸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밤에 잠자리에서 난 더 이상 흐느끼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손톱을 써서 다른 손 손바닥을 쥐어뜯지 않고도아버지와 여동생들을 생각할 수 있었다. 심지어 내가 그토록많이 들었던 천국, 이제 궁금해할 더 큰 이유가 생겼음에도 여전히 어렴풋한 땅으로 남은 천국에 있는 제럴딘과 데르드러를상상할 수 있었다. 플린 부인과 팀 패디와 오닐도 그곳에 있다.
고 여겼다. 물론 나의 아버지도. - P78

그 시절 아일랜드에 평화가 머뭇머뭇 찾아왔다. 독립전쟁에이어진 내전은 결국 끝이 났다. 마이클 콜린스는 내전 중 조약을 반대하는 반란군 매복조에 의해 죽었다. 영국과의 조약으로 스물여섯 개 아일랜드 카운티가 자치지역으로 인정받을 거라는 <코크 이그재미너>의 기사를 조세핀이 읽어주었다. 빨간우편함이 녹색으로 칠해졌고, 제국주의 인물의 동상들이 철거되었고, 아일랜드어가 되살아났다. 이런 종류의 문제에 흥미를 잃어버린 어머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성장할 수 있는 위대한 시대야." 내가 어느 날 오후 머천트방파제를 서성이고 있을 때 한 노인이 장담했다. "내가 네 시대를 살았음 좋았을 텐데." 그러나 낯선 거리와 상점이야말로국가의 자유나 성장이 보장된 미래보다 내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도시의 날씨 또한 중요했다. 날씨는 전과 같지 않았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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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일반적인‘ 성학대와 성폭력, 그리고 성매매 내에서 일어나는 성학대와 성폭력 사이의 유사점을비교하기 조심스러워한다. 조롱받을까 두려워서 생긴 신중함이다. 나는 조롱받을까 두려워 물러설 형편이 아닌데, 조통을 피하려고 물러서면 진실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학대의 기회를 스스로 구해 찾은 사람은결코 학대 피해자가 아니지만 우리 여성들은 지속적으로학대당한 자의 언어로 서로의 경험을 연관 지었다. 우리 몸위에 부과된 성행위를 얘기함에 있어 우리는 ‘역겹다‘ ‘끔찍하다‘ ‘구역질 난다‘ ‘혐오스럽다‘ ‘메스껍다‘ 라는 표현을썼다. 특히 학대적인 성구매자들을 언급할 때 우리는 ‘개자식‘ ‘쓰레기같은 인간‘ ‘돼지 같은 자식‘ ‘추잡한 동물‘ 같은말을 사용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여성들로부터 이런 말들을 들었지만 묘사하는 이 모든 용어들 중에 ‘학대‘라는 단어는 거의 듣지 못했었고 그 이유를 안다. 그 말이 우리가경험하는 학대를 실제로 더 악화시키는 이차적인 역동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직업‘에서 겪은 경험을 학대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 이것이 가장 마음을 아프게 했다.
- P174

성매매 여성이 실제로 하는 일이란 자신의 몸이 성적으로 확대되도록 돈을 받고 허락하는 것이다. 성학대와 관련된 모든 부정적인 느낌들을 겪지만, 본인이 수용했기에 사실상 스스로에게 재갈을 물리고야 말았다. 말 그대로 표현할 권리를 팔았다. 이는 성매매의 또 다른 쌍둥이이고, 이두 번째 요소는 적어도 첫 번째 만큼이나 해롭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학대를 숨기고 내면화해야 하는 상황 또한 학대이다. 강요된 침묵은 학대적이다.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상황에서 잠깐 섹스를 빼고 상상해보자. 만약에 채찍질로 고문하면서피해자를 조용하게 하려고 재갈을 물렸다면, 채찍질의 상처가 피부에 덜 남을까? 그리고 만약에 여성이 ‘여기, 돈 주고 채찍질하세요‘라고 말하며 채찍을 건네고 채찍을 맞으려고 가만히 있다면 그 피부에 쓰라림이 덜할까? 그리고 후에 그 경험에 대해 말할 때 돈을 받아서 폭력을 경험했다는 주장을 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세상이 그녀에게 그렇게말하기 때문에), 그녀를 아프게 하는 기쁨을 누리려고 돈을 지불한 폭행범이 덜 학대적인 걸까? - P175

성매매 여성은 자신의 피해경험에 대해 매일 침묵하며살아간다. 현대 사회의 관점이 그녀에게 재갈을 물렸고 그결과로 초래된 심리적 손상은 성매매 여성들 사이에서 흔할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다. 성매매 여성들 사이에서는 감정적으로 고된 삶이 그저 한층 더해졌을 뿐이라며 대개 질문 없이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상황에 대한 현실을 집단적으로 아주 깊이 있게검토하지는 않았다. 심리 상태에 대한 긴 토론을 하지는 않았지만, 학대라고 명명하지 않은 상태로 학대당한 느낌을 - P175

나눴다. 우리가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학대가 초래한 정신적 측면의 결과들이었다. 뼈가 부러지지 않고, 나사가 풀리지 않게 살아 있으려고 매일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현살이었다. 물론 위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이야기 나눴고,
상황을 공유했으며, 상황에 대한 생각들을 나눴지만 가장깊은 생각은 나 스스로만 간직했다. 성매매의 어떤 부분들은 빼놓고 해석하기 너무 고통스러워서 내가 알던 성매매여성들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쉴 새 없이 얘기했고 일상의 대부분과 성매매,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눴는데, 그 모든 이야기 중에 나는 한 번도 성매매 여성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재정적 어려움을 타개하면서 현실에서 겪는 다른시련들이 부수적으로 경감되었듯 성매매가 초래한 것들 중어떤 것들은 반가웠지만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행복과 같은 것이 아님을 알 테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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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에서 겪었던 최악의 경험들 중 몇몇은 아일랜드 최고급 호텔들에서였다. 실제로 특정한 사고방식을 가진어떤 유형의 성구매자를 상대할 때, 그 구매자의 풍요 속에서 함께 있으면 더 궁색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부유한 남자들은(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여성이 아무리빈틈없이 비싼 옷을 차려입고 화장을 했더라도 그곳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특권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섹스와 돈을 교환하는 관계에서는 성구매자가 지배당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고 표현하는 경우에나 겨우 구매자가 압도적인 힘으로 인식되지 않지만 앞 장에서 언급했듯이 그런 경우에서조차 구매자들은 여전히 돈을 지불하는 위치에서 비롯되는 통제력을 즐긴다. 아주 비싼 호텔이나 지극히 부유한 집에서 만났던 어떤 구매자들은 성매매여성이 만나게 되는 구매자들 중 가장 까다로운 부류였다.
실제로 그 남자들은 지불하는 돈만큼 자신들의 권한이 커진다고 느꼈다. 그 태도는 분명했다. ‘너한테 2백 파운드를 지불했어. 너는 내가 원하는 대로 뭐든지 해야 하고 그것에대해 입을 닥쳐야겠지.‘  - P151

그런 환경에서 만난 성구매자들 중에는 내가 에스코트업종에만 있었다고 추측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거리나 마사지 업소에서도 나를 자주 만날 수 있었는데, 똑같은 성매매임에도 다른 업종보다 몇 배나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다. 동시에 다른 업종의 성매매를오가며 소위 ‘양다리‘를 걸치는 수많은 여성들을 만났지만, 나처럼 모든 업종을 오갔던 여성은 많이 없었다. 내가 만났던 여성들 중 한 유형 이상의 성매매를 했던 여성들은 거의가 거리 성매매와 업소 혹은 에스코트 에이전시와 업소를겸했다. 나처럼 전 업종을 오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단순하지만, 그 다양한 경험들로 내가 알고 지내던 많은 여성들보다 성매매에 대한 더 큰 그림을 파악했다고 생각한다. - P152

볼스브리지 부유층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서 단독으로에스코트 에이전시를 운영하던 매력적인 한 아이를 알았다. 광고 비용이 2주에 350파운드였고, 월세는 한 달에 천파운드였다. 휴대폰 요금은 광고 비용보다 더 많이 나왔다.
이때는 1993년도였다(당시 아일랜드에서 휴대폰은 최신기술이었고 사업가, 마약상, 성매매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그 아이는 택시비와 ‘에스코트‘ 위상에 걸맞는 옷, 신발에많은 돈을 썼다. 몇 달 동안 빈털터리였던 적도 있었는데그럴 때조차 다른 업종의 성매매로 수입을 보충하지 않았다. "너는 거리에서 뭐 하니?"라고 그 아이는 내게 묻곤 했다. "너는 빌어먹을 이 아파트에서 뭐 하니?"라고 나는 되받아쳤다. 무의미해 보였다. 일정 기간 동안 그녀는 성매매를 하는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성매매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건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꾸리기 위해서일뿐이라고 그 아이에게 말하곤 했다. - P153

에스코트 성매매에서 만난 여성들 중에서는 업소를 경험한 여성들이 에스코트 에이전시에서만 있던 여성들보다성매매 현실에 대해 더 사실적으로 이해했다. 여성들은 공통적으로 고급 창녀 신화를 비웃었다. 그 말을 믿을 만큼어리석지 않았다.
성매매를 화려하게 묘사하는 사람들은 대게 비싼 호텔로비를 배경으로 성매매 여성을 상상한다. 최신 유행하는유명 상표 옷과 하이힐을 신고, 선명한 빨간 립스틱으로 돋보이는 외모를 한 채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을 출입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나는 최신 유행의 유명 브랜드 옷과 하이힐을신은 모습으로 여러 색상의 립스틱을 바르고 셀 수도 없이많은 호텔을 드나들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내 가슴이나 마음이 겪고 있던 걸 달라지게 하거나 신체적 경험에 어떠한 차이도 만들지 못했다. 아무것도 내 입과 가슴과 질에 - P163

실질적인 혜택이 되지 못했다. 일어나고 있는 일은 뒷골목에서 내가 치마를 들어 올리고 있던 때와 똑같았다. 성매매의 본질은 그 환경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거친 콘크리트바닥이 아닌 하얀 리넨에 엉덩이를 비빈다고 성매매가 다른 것으로 변하진 않는다. - P164

성매매 여성은 성폭력이 상존하는 환경에 놓여 있다.
성구매자들은 번번이 성폭력을 행사하는데 경험상으론 구매자들 다수가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믿고 싶어 하지않거나, 아예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 역시 성폭력을 행사한다. 폭력을 즐기지 않으면서 성매매 여성을 이용하기는 불가능하다. 성매매에서 성폭력을 행사하는 남성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그저 폭력을 사용하지 않거나 성매매에 폭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를 선호하는 남성들이 있다. 다음으로는 폭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근절하지 않는 부류이다. 또 다른 부류는 폭력이 존재한다는 걸 너무 잘 알면서 그 사실로 인해 크게 성적 즐거움을 느끼는 이들이다. 성매매 여성들은 이 마지막 부류의구매자들을 그들이 알게 모르게 분출하는 자아감 때문에구분할 수 있는데, ‘타인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주파수를 내보내지만 악을 행하는 사람은 어둡고 악한 주파수를 - P168

내보낸다" 라는 일본인 과학자이자 저자인 마사루 에모토의 글에서 잘 표현된 바 있다.
의도적으로 성폭력을 행사하려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어둡고 악한 주파수를 내뿜는다. 이 주파수와 정기적으로 접촉해보면 이를 인식하고 감지하게 된다. 이 인식 능력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았다. 심지어 붐비는 공간에서도 이 주파수를 내뿜는 사람을 느낄 수 있다. 유용한 기술이고 한 가지 이상의 방식으로 작동된다. 예를 들어 어떤여성들은 남성이 바른 의도를 가지고 실수로 어리석은 말을 했는지 아니면 그 의도에 어떤 불길함이 숨어 있는지 본질을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만, 나는 항상 구별할 수있다. 성매매 여성들은 영혼을 잠식시키는 성폭력의 진동에 거듭 노출되기 때문에 인간이 가진 자기 보호 본능으로성폭력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진화된다. 성매매 여성들에게는 다행이다. 이 구별 능력이 우리 여성들 다수를 폭력과 죽음에서 구했다고 확신한다. 나를 살린 순간들이 있었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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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글을 쓰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 순간 산문적 말더듬증을 경험하고 있다. 한 줄을 쓰고는 10분간 그저 응시한다. 적당한 길이의 문단을 써내는 작업은 고된 위업이다. 정신과 의사라면 쥐어짜낸 이 글을 분석하는데 관심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작업이 왜 힘든지알기에 분석이 필요하지는 않다. 성매매로의 유입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감이고, 그 과정을 회상하면서 잃어버린 순수함과 선함을 다시금 애도하게 된다.
기록을 견뎌내야 하는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다른 상황이지만 노숙을 하게 된 첫날 느꼈던 매우 이상한 기분들이 상기된다. 성매매 집결지에 서 있도록 강요되게끔 내 자신을 최초로 허락했을 때, 이상하고 역설적이게도 과감한 결단을 내린 듯한 기분이 샘솟았다. 가출 이후 처음으로 삶의 주도권을 쥐었다고 느꼈듯이 말이다. 몇 년 후 과거를 돌아보고 깊이 들여다본 뒤 그 감정이 주도권 상실에 대한 반작용이었음을 자각하고는 얼마나 어리석게 느꼈는지 모른다. p95. 96




읽기도 버겁다.
먹먹하다.


간밤에 내가 변했나? 가만 보자. 오늘 아침일어났을 땐 내가 그대로였나? 좀 다른 기분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치만 내가 그대로가 아니었다면, 다음 질문은 "대체 내가 누구라는거지?"인데, 아, 그거야말로 커다란 수수께끼네.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991년 8월 중순, 따뜻하고 해가 좋은 오후에 성매매여성이 되었다. 그 오후는 이후 7년간의 하루하루를 말로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바꾸어놓았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이많든 적든 그 모든 날들에 영향을 미칠 터라 그날의 경험이머릿 속에 각인된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 않다. 스물한 살이던 애인의 제안을 놓고 몇 시간 동안 갈등했는데 어느새 그제안이 갑자기 실현 가능하고 실용적으로 보이더니 심지어어떤 점들은 매력적으로까지 느껴졌다.
‘내가 저여자일 수도 있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걸할 정도로 충분히 강할지도 몰라. 잠자리가 소파일지 벤치일지도 모르는 이 방황에 끝을 낼 수 있어. 빌어먹을 음식이나 담배를 끊임없이 열망하고, 잘하지도 못하는 도둑질을 하지 않아도 될 거야. 이걸 할 수 있을 만큼 강하기만 하다면 다 끝낼 수 있어.‘ 그런 방식으로 성매매를 용기의 문제로 변형시켰고 그 후로 돌이킬 가망이 없어졌다. - P93

첫날에 대한 기억은 흩어지고 깨져 있다. 예닐곱 번 성매매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번은 남자친구에게 차에서 내렸다고 알리기 전에 다른 차에 올라탔다. 남자친구는거리 저 끝에 서 있었는데 마지막 차에서 내리자마자 다른차 한 대가 바로 내 옆에 섰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차에 올라탔다. 내가 돌아오자 남자친구는 내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을까 봐 놀라서 극도로 겁을 집어먹은 채 화가 나 있었다. 남자친구는 아마도 자신이처벌당할까 봐 더 염려했겠지만, 당시엔 순진해서 이런 행동을 배려라 해석했다.
그날 밤, 잠을 자려고 남자친구 옆에 누웠을 때,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내 안의 어떤 곳에서 눈물이 나왔다. 아프게 하는 그것을 뭐라고 부를지 몰랐다. 그날 아침 잠에서깼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으로 잠드는 느낌이었고 정확히 많은 면에서 그게 바로 일어났던 일이었다. - P95

이제 글을 쓰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 순간 산문적 말더듬증을 경험하고 있다. 한 줄을 쓰고는 10분간 그저 응시한다. 적당한 길이의 문단을 써내는 작업은 고된 위업이다. 정신과 의사라면 쥐어짜낸 이 글을 분석하는데 관심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작업이 왜 힘든지알기에 분석이 필요하지는 않다. 성매매로의 유입은 한 세 - P95

계에서 다른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감이고, 그 과정을 회상하면서 잃어버린 순수함과 선함을 다시금 애도하게 된다.
기록을 견뎌내야 하는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다른 상황이지만 노숙을 하게 된 첫날 느꼈던 매우 이상한 기분들이 상기된다. 성매매 집결지에 서 있도록 강요되게끔내 자신을 최초로 허락했을 때, 이상하고 역설적이게도 과감한 결단을 내린 듯한 기분이 샘솟았다. 가출 이후 처음으로 삶의 주도권을 쥐었다고 느꼈듯이 말이다. 몇 년 후 과거를 돌아보고 깊이 들여다본 뒤 그 감정이 주도권 상실에대한 반작용이었음을 자각하고는 얼마나 어리석게 느꼈는지 모른다. - P96

성매매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들 사이에서 성매매는 자라난 가정에서 독립하는 일반적인 나이 혹은 권장되는 나이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독립한 10대 여성들이 흔히 진입하게 되는 삶의 국면으로 널리 인식된다.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 정말 알아야 할 때는 몰랐다.
오늘날에야 깨닫게 된 중요한 점은 나의 성장 배경이어떤 극단의 상황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세상의 생리에 너무 무지해 내가 그랬듯 길을 걷다곧장 배수로로 빠지는 것만큼이나 훌륭하게 큰 성공을 이루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내가 가장자리에 얼마나 가까웠는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아주 최소한으로만 이해했다. 청소년을 위한 단기 숙소에 머물면서 내가 사회 계층 사다리의 아래쪽에 속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우한 가정 출신 청소년들이 머무는 숙소들이 기품 있는 곳은 분명 아니다. 원하던 삶과는 반대되는 모습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 - P96

실은 인지했지만 오늘의 행동이 내일의 결과로 이어진다는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이제서야 보이지만, 나는 사회 가장자리 바깥쪽 끄트머리에서 균형을 잡으려 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역경들을 마주할 가능성들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다가올 어려움들과 그런 어려움들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을 피하려고 애쓰고 명료하게 생각해야 했는데 심각한 판단 착오로 이를 몹시도 과소평가했다. 앞으로 겪게 될 역경과 궁핍을 일어날법한 일이라고 여기지 않고, 다른 일들처럼 일어날 수도 있는 일로만 여겼다. 사실, 일어날 법한 정도를 넘어섰다. 열다섯의 나는 성숙한 몸과 예쁜 얼굴을 가졌었다. 남자들이나를 성적으로 착취할 기회를 엿볼 가능성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지만 처음 노숙을 시작했을 때는 그 사실을 판연히 몰랐다. 나는 여러 상황을 예측할 분별력이 없었기에 성매매는 내게 몰래 다가올 수 있었던 적이었다. - P97

성매매 여성은 자신이 처한 환경의 본질을 이해하면서도 그 상황에 깊이 머무르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쓴다. 성매매 경험을 기록하는 동안에는 필수적으로 그 경험들에 머둘러야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런 점에서 그 경험들을 다시 살아내며 느끼는 감정들은 원경험보다 심리적 차원에서왠지 더 깊다. 더 상처가 된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느낌을 면밀히 검토하고 원경험의 유해한 요소들을 더 깊이이해할 수 있도록 내면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위협적이거나 대단히 충격적인 환경에 놓이면심리적으로 감각을 둔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충분히 입증된바 있다. 인간 악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서 ‘거짓의 사람들』에서 스콧 펙 박사는 "감정에 대한 느낌이 압도적으로 고통스럽거나 즐겁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되면, 우리는 스스로를 마비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다"라고 쓴다. - P98

때때로 가까이에 서서 담배를 건넬 때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지만 잠깐이었고, 미소가 입가에 남기도 전에 사라져버려 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같은 사람이라고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그녀의 중독은 급격히 악화되어 결국 나는 사건 이후의 그녀가 예전의 그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당시 그녀를 보며 느꼈던 공포는 내가 유입된 성매매가 엄청나게 파괴적이라고 이미 느꼈던 감각이 증폭된것임을 지금의 나는 안다. 내가 매우 두려워해야만 했던 무언가를 이해하게끔 하는 첫 실체였고, 황폐함의 실례였다.
무엇보다도 매우 슬프고, 참 딱하고, 인생이 허비됐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오히려 놀랄 법한 일이다. - P102

열다섯 살을 ‘어린이‘로 부르는 것이 가능한가? 가슴이 발달하고 클리토리스가 기능하기 시작하면 여성이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갖췄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뿐더러, 10대 초반의 아이들과 사춘기 이전의 어린이들을 향한 성적 관심을 구별 지으려 애쓰는 사람들을 항상 수상히 여겼다.
가슴과 생식기에 관해서 말하자면, 가슴은 이미 열다섯에 충분히 자랐고 클리토리스로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었지만, 나는 접힌 피부들 뒤에 있는 그것이 클리토리스인지도 몰랐고, 자위는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성인처럼 선택과 결정 들을 내릴 수 없었다. 누구든지 성인기에 도달한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성인이 되는 정말 중요한 분기점은 가슴이나 생식기가 아니다. - P111

물론, 그 모든 세월이 지나고, 엄마가 된 지금의 나는열다섯 살은 아이라는 사실을 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그러나 그 당시 아이였던 나의 이미지와 여전히 씨름한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충분히 납득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내 아이가 당시의 나와같은 나이가 되고 난 이후로 그 이미지를 외면하기 더 어려워졌다. 불가피하게 비교를 하게된다. 아들이 열다섯에 얼마나 어렸는지, 세상을 상대할 준비가 얼마나 안 됐는지를 생각한다. 얼마나 더 성장해야 하 - P111

는지, 10대의 엄포, 허세 뒤에 꼭꼭 숨어 있을 취약한 자아감을 생각해본다. 아들이 열다섯이 된 이후로 아들을 바라보면서 그 나이에 내가 하던 일들을, 성매매가 내게 한 짓들을 때때로 생각한다. 성매매로 인해 몸 안에서 느꼈던 역겨움,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고 뒤틀어놓았는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당시에 내가 얼마나 어렸는지 인정하지 않고는 나의 어린 삶이 얼마나 오염되었는지 숙고해보는 일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에 달했다.
그 사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지만 사실 내게는 냉혹한 현실만큼이나 더 깊고, 괴로운 무언가가 있다. 그런 라이프스타일에 내가 유입되고 그로 인한 영향력이 초래한 어떤 특정한 결말 때문이다. 그것은 나에게 성매매가 유일한 길이며 내가 다른 아무것에도 적합하지 않다고 믿게 했다.
삶의 모든 면이 성매매에 잠식되며 자신에 대해 더 잘알게 된다. 거짓에 잠식됐었기 때문에 그릇된 믿음을 가졌었다는 사실을 이제 나는 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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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기억이 너무도 많지만, 꼭 언급할 필요가없는 건 모두 이야기하지 않는다. 독자에게 어떻게, 왜 성매매에 유입되었는지 보여주는 데 있어 시시콜콜 묵은 이야기들을 굳이 끄집어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어린이가 겨울밤에 1그램의 무게마다 수치스럽게 느껴지던 가벼운 짐들을 손에 들고 버스정류장으로 걸어 돌아가는 이 풍경은 중요하다. 인생에서 어떻게 그리고 왜 큰 역경들을 겪지 않고 성장하기를 바랄 수 없었는지를 이해할수 있게 한다.
때때로 원통할 때면 어머니가 ‘언제까지나 나의 어머니‘라는 다른 이들의 확신에 모욕감을 느낀다. 과대망상 조현증을 가진 사람에 의해 양육되는 경험이 어떤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경건한 체 내뱉는 말일 뿐이라고 치부한다.
상한 크림에 설탕을 넣어 먹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설탕을아무리 많이 넣은들 그 크림이 상해 신맛이 나는 건 어쩔수 없다. 어머니가 항상 나의 어머니라고 하는 사람들에게화가 난다. 나는 그렇다. - P57

원만하게 무르익은 정서적 성숙도 측면에서 보자면 많은 면에서 내가 소녀였을 때 어머니도 나와 같은 소녀였고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그렇다고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더이상 서로 만나지 않는데 슬프게도 현재로서는 나에게도, 어머니에게도 그것이 최선이다. 책망으로 가득 찬 씁쓸한 감정에서는 멀어졌다. 부모를 단순히 부모로 보지 않고 사람으로 보기 시작하게 되는 때가 온다고들 하는데, 자신에게 느꼈던 연민이 부모님에게 이동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이제 부모님을 떠올리면 압도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슬픔이다. 그저 슬픔과 연민뿐이다. 어머니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느꼈을 때 놀랐다.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늘 어머니를 측은해했지만, 뼈가 부러졌을 때 팔이나 다리를 구부리지 않듯이 그저 그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었다. - P58

어린 자녀가 어머니의 행동이 자연스럽지 않음을 판단할 정도로 어머니와 거리를 두고 따르지 않기는 어렵다.

-누알라 오페레인, 
『당신은 그 누군가인가.』

성매매 유입이 부모님 탓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두 분은 아프셨지만 나쁜 분들은 아니었다. 불우한 가정환경이 성매매 유입을 조장하고, 그 환경은 때로 부모들의 도덕적 실패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내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 부모님이 내 인생 방향에 부정적으로 영향을미치는 선택들을 하셨지만 유일한 원인이지는 않았다. 당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는 다른 요인들이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정신 질환, 중독 그리고 가난이 우리 가정 내 역기능을 조장하는 근본적인 세 가지 요인이었고, 우리 부모님을 비롯해 그 어떤 부모들도 구태여 익숙해지거나 바라거나 불러들이고 싶지 않은 일련의 경험들이었다.
얼마간의 역경을 겪고 난 뒤 나름대로 괜찮게, 비교적 정서적으로 건강한 인생을 살아낸 똑똑한 자녀 다섯 명을 키워내셨으니 어머니, 아버지께서 잘못하신 일이 있었더라도 뭔가는 잘하셨음에 틀림없다. - P61

다섯 명의 아이를 둔 가정에서 겪는 가난이란 우울증을 주요 정신질환으로 길러내기에 완벽한 바탕이 되고, 우울증을 겪는 중독자는 중독성 있는 물질로 우울 증상을 완화시키려 하지만상태만 더욱 악화될 뿐이다. 가난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욕구가 생겨나고, 이 욕구는 중독을 부추기며, 정신 질환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여 취업이 어려워지고 빈곤을 고착화한다.
하루 종일 이 연결 고리를 짚어가며 어떻게 그리고 왜 이 세 가지 요소들이 서로를 배양해냈는지 상세히 밝혀낼수 있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부모님의 문제들이 수그러들줄 몰랐던 것은 당연했다. 나를 사랑했던 두 분이 미궁에빠져 허우적댔던 과거를 들여다보는 일은 가슴 아프다.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라고 화가 나서 간절하게 울부짖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현실적이고 차가운 낮은 목소리로 되돌아온다.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었다‘ 라고말이다. - P63

열네 살이 될 때까지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매일같이 학대당했다. 부모님의 고의가 아닌 질환의 결과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사실이 학대로 인한 상처를 완화시키기에는 충분치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인생 초반 14년 내내 들이닥치는 태풍을 받아들이며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거의 끊임없는 긴장 상태 속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이 있다면 언제나 그래왔던 방식으로 혼란속에서 반응하고 대응해야 하는 상황으로 옮겨가기 얼마나 쉽겠는가? 이런 방식과 이유로 성매매는 불우한 가정에서 자라지 않은 아이들보다 내게 훨씬 더 가까웠다.
그 모든 긴장감과 스트레스 요인들을 유년기에 겪었지 - P63

만 형제들 중에서 내가 운이 없는 편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대부분 어머니는 좌절감을 쏟아낼 수 있는 상대, 당신을존중해줄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 오랫동안 나는 그 위치에있었고, 내 ‘자리‘를 고수하려고 인내심와 교활함이 특이하게 섞인 불온한 요령을 터득했다. 역기능적으로 작동하는가정 내에서 정신 질환이 있는 여성을 상대로 유리한 자리를 얻어내는 건 실제로 기술이었고 나에게는 매일이 피할수 없는 연습 기회였다. - P64

인간은 지극히 구성적 동물이라서 사회적으로중요롭다는 느낌을 필요로 한다. 필요하고 쓸모있다는 느낌 외에 그 어떤 감정도 우리에게 더큰 기쁨을 줄 수 없다. 반대로, 필요 없고 쓸모없다는 느낌만큼 절망을 야기하는 감정은 없다.
-모건 스콧 펙, 『거짓의 사람들]

사람들 대부분이 ‘노숙‘이라는 단어를 온전히 이해하지못한 채 사용한다. 노숙도 성매매처럼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삶의 경험이 아니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인정이 있는 사람은 연민으로 노숙인을 동정할지 모르겠으나, 실제로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는 한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실감할 수 없다. 경솔하게 선을 그으려는 건 아니지만 노숙이란 실상 소파가 없고, 의자가 없고, 테이블이 없고, 텔레비전이 없으며, 냉장고가 없고, 밥솥이 없고, 샤워할 곳이 없고(끔찍한 상황), 침대가없는 최악의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노숙‘이라는 단어를 보면 언뜻 결여된 것이 집 한 가지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수의 개별적 결핍들 간의 결합이다. 감정적인 측면이 가장 힘들지만, 육체적인 어려움부터먼저 언급해보겠다. 육체적인 면을 말해보자면 노숙에서는극심한 피로가 가장 힘들다. 잠이 부족한데 배도 고프고, 어느 때고 계속해서 옮겨 다녀야만 하는 상황을 비롯해러 가지 요인들이 체력을 소진한다. - P79

너무 피곤한 나머지 맥도날드 매장이 아침식사 메뉴인 에그 맥머핀를 팔려고 새벽에 문을 열자마자들어갔다. 적어도 화장실 칸에 들어가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있으면 안전할 거라 생각했다. 잠이 깼고 화장실 청소를 하려고 들어온 직원에게 쫓겨나면서 노숙을 통해 겪을수 있는 절실하고도 가장 깊은 상처를 경험했다. 그건 바로 외로움이었다. 내 존재가 전혀 쓸모없다는, 모든 상황과 장소에서 내 존재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경험이었다.
노숙인은 어디를 가진 환영받지 못한다. 노숙자는 사회적의미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가치 없고 필요 없는 자라는 정체성을 지니게 된다. 사회에서 따돌림 받는 사람, 추방된 자, 외부인이며 자신과 함께 짊어지고 다녀야만 하는 그들의 몸은 어디를 가든지 침입이 되어환영받지 못한다. 그야말로 아무도 원하지 않는 존재이다.
불필요함이 신체로 구체화되었다. 모든 노숙인들이 그렇다. 피할 수 없다. - P84

노숙 경험 중 거리에서 지낸 첫날의 느낌은 가장 이상하면서도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다. 궁핍은 저항하기 힘들만큼 유혹적인 즐거움으로 가장하고 있었지만 그 즐거움은 유약한 것이었으며 견딜 수 없이 추운 한겨울의 작은 새처럼 죽어갔다. 마음속에서 빈궁을 자유로 탈바꿈했지만 그 꾀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일랜드 날씨는 끔직하게 변덕스러웠고 추웠다. 날씨가 급변해 비와 진눈깨비가 번갈아 공격하고 갑자기 나타난 해가 젖은 옷을 데우고, 다시 강철 같은 회색빛 구름이 뻥 뚫린 지붕 위로 몰려왔다.
나의 자율성은 취약했고, 내 자신은 더욱 취약했기에 그땐 자유가 빈궁으로 탈바꿈했다고 느껴졌다. 누구에게도 정확히 말할 수 없었고, 수치심 때문에 어쨌거나 그렇게 하지는 못했겠지만 뼛속 깊숙이 느꼈다. - P91

간밤에 내가 변했나? 가만 보자. 오늘 아침일어났을 땐 내가 그대로였나? 좀 다른 기분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치만 내가 그대로가 아니었다면, 다음 질문은 "대체 내가 누구라는거지?"인데, 아, 그거야말로 커다란 수수께끼네.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991년 8월 중순, 따뜻하고 해가 좋은 오후에 성매매여성이 되었다. 그 오후는 이후 7년간의 하루하루를 말로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바꾸어놓았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이많든 적든 그 모든 날들에 영향을 미칠 터라 그날의 경험이머릿 속에 각인된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 않다. 스물한 살이댄 애인의 제안을 놓고 몇 시간 동안 갈등했는데 어느새 그제안이 갑자기 실현 가능하고 실용적으로 보이더니 심지어어떤 점들은 매력적으로까지 느껴졌다.
‘내가 저 여자일 수도 있어‘ 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걸할 정도로 충분히 강할지도 몰라. 잠자리가 소파일지 벤치일지도 모르는 이 방황에 끝을 낼 수 있어. 빌어먹을 음식이나 담배를 끊임없이 열망하고, 잘하지도 못하는 도둑질을 하지 않아도 될 거야. 이걸 할 수 있을 만큼 강하기만 하다면 다 끝낼 수 있어.‘ 그런 방식으로 성매매를 용기의 문제로 변형시켰고 그 후로 돌이킬 가망이 없어졌다.
남자친구는 나처럼 노숙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성매매로 잘 알려진 벤허브 거리에서 몇 분 떨어진 인퍼머리 길가까이에 위치한 친구 집에서 숙박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됐을 시점이었다. - P93

요즘에는 거리 성매매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1991년엔거의 모든 여자아이들이 구강 성교 시 콘돔을 썼다. 콘돔을사용하는 하지 않든, 구강 성교를 해야 하는 현실이 역겨웠지만, 손과 입을 사용한 유사 성행위를 거의 매일같이 했다. 이런 상황이 2년 동안 계속되었다. 삽입 성교 성매매를하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첫날에 대한 기억은 흩어지고 깨져 있다. 예닐곱 번 성매매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번은 남자친구에게 차에서 내렸다고 알리기 전에 다른 차에 올라탔다. 남자친구는거리 저 끝에 서 있었는데 마지막차에서 내리자마자 다른차 한 대가 바로 내 옆에 섰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차에 올라탔다. 내가 돌아오자 남자친구는 내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을까 봐 놀라서 극도로 겁을 집어먹은 채 화가 나 있었다. 남자친구는 아마도 자신이처벌당할까 봐 더 염려했겠지만, 당시엔 순진해서 이런 행동을 배려라 해석했다.
그날 밤, 잠을 자려고 남자친구 옆에 누웠을 때,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내 안의 어떤 곳에서 눈물이 나왔다. 아프게 하는 그것을 뭐라고 부를지 몰랐다. 그날 아침 잠에서깼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으로 잠드는 느낌이었고 정확히많은 면에서 그게 바로 일어났던 일이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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