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다르게 사는 사람들
유인경.설원태 외 지음 / 경향신문사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모르고 살아가지. 

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찾아도 두려워서 외면하고 억누르지. 

남들과 다르게, 자신의 욕망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질 테고, 두려움 없이 그 욕망을 움켜쥐는 사람도 늘어나겠지.

그런 세상이 정말 좋은 세상이겠지.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뭘 그리 고민해? 

그렇게 속삭여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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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춤추다 1
타무라 테마리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느린 삶은 즐겁다.  

신난다.  

유쾌하다. 

 

느리게 살면 모든 것이 의미가 된다.  

떨어지는 꽃잎 하나도, 튀어오른 개구리 한 마리도, 밤에 보는 달도... 

 

느리게 살아가는 거북과 인간, 모든 자연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다.  

모든 것이 느리다. 

그래서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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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를 잡아라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5
로알드 달 지음, 지혜연 옮김, 퀜틴 블레이크 그림 / 시공주니어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이란 누구에게나 축복이다.   

그리고 죽음 역시도 그 삶의 끝에 필연적으로 만나야 하는 또다른 축복이다.  

죽음을 삶의 테두리 밖으로 밀어내고 삶에 대해서 사유하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런데 우리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삶의 아름다움만을 강요한다.  

살아있음에 감격해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가라고. 

시험이니, 부모님의 잔소리니, 친구들의 왕따니, 그 따위 것에는 입 다물고 오로지 살아있으니까 고마워하면서 살라고.  

그러나 다행이도 아이들은 바보가 아니다.   

 

로알드 달의 자유로운 생각들은 나름대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나를 늘 자극한다.  

이 작품 속에 주인공은 생쥐로 변해서 인간보다 훨씬 짧은 수명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래서, 그는 행복하다. 인간아이로 오래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더.' 

그 멋진 결말이 내 뒤통수를 후려갈기면서 아이들을 바보취급하는 어른들에게 한 마디 쏘아주고 있다.   

"구질구질하게 오래오래 살아가니까 행복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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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친구들을 불러다 밥을 해 먹이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이 내가 만든 요리를 즐기면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걸 보면 절로 행복해진다. 
 

 그러나 어린 시절, 나는 내가 요리를 즐긴다는 걸 몰랐다. 그 때는 정말 밥 하고, 상 차리는 일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아버지와 오빠들의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일이 너무 싫어서 학교 운동장을 빙빙 돌다가 해가 지고서야 집에 들어갔다. 그러나 아무리 늦게 들어가도 아버지는 꼭 나를 기다렸다가 저녁상을 차리게 하곤 했다. 평생을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남자로 살아온 아버지는 자기 손으로 밥을 차리는 일을 하느니 차라리 배고픔을 참았다가 늦은 저녁상을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셨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가방을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곧바로 부엌으로 들어가야만 했던 그 시절의 기억은 가끔 내 꿈의 단골메뉴로 등장하기도 했다. 남자들이 군대에 다시 끌려가는 악몽을 꾸는 것처럼.

 

 혼자 살면서 정말 좋은 점은 나 아닌 누군가의 밥상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밥 차리는 일이 더 이상 의무가 아닌 오롯한 나의 권리가 되는 순간, 나는 요리가 즐거워졌다. 밥하지 않을 자유를 얻고 나니 나는 비로소 내가 얼마나 요리 하는 일을 좋아하는지 자각하게 된 것이다.




 요즘,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서 먹이고, 그들과 함께 어울려 먹고 대화하는 시간은 내 삶의 큰 즐거움 중 하나이다.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은 귀찮지도 않느냐고 하면서 대충 시켜 먹자고 하지만 나는 내가 초대한 손님들을 위해 요리하는 게 귀찮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 요리 솜씨를 보고 주위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 요리 솜씨에 왜 혼자 사느냐? 맏며느리 감으로도 손색이 없는데…….”

 그러나, 그 말은 내 요리 솜씨의 근원이 어디서부터 온 건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요리하는 일이 의무가 아닌 삶, 요리하는 자유가 주어진 삶이 아니면 나는 솜씨를 발휘하기는커녕, 요리하는 일을 지금도 끔찍하고 징글맞은 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자유롭게 요리하면서 살아보니 요리가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 알게 된다. 요리하는 일은 꽤 창조적인 일이어서 내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는 글쓰기처럼 설레는 작업이다. 또 소통의 행복도 더불어서 만끽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일이 의무가 되는 순간 하루 세 끼 밥 차리는 일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 내가 죽어서야 끝나는 일……. 여자들에게 요리는 우리 어머니의 표현대로 참 징글맞은 일이다.




 추운 겨울 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장을 봐서 된장찌개를 끓여 놓고 마주 않는 밥상은 그 어느 부귀영화도 대신할 수 없는 행복이다. 삶에 지친 친구들을 두루 불러 모아서 해물탕과 파전 한 장으로 나누는 술상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위로이다.

 

 그러나 더 많은 시간,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나는 혼자서 밥을 먹는다. 혼자서 밥을 먹는 날, 나는 절대로 끼니를 대충 때우지 않는다. 그 어느 날 보다 정성들여서 밥상을 차린다. 밥 한 그릇과 국 한 그릇의 소박한 밥상을 오로지 나를 위해 정갈하게 차린다. 




 내가 차린 밥상을 생을 음미하듯 찬찬히 비우다 보면, 나는 내 영혼을 먹이는 어미의 심정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인 ‘나’를 먹이고 기르는 밥 한 그릇과 내 노동을 생각하다보면 감격스러움에 젖는 날도 있다. 




 나는 요리가 즐겁다. 이 사실은 요리하지 않을 자유가 주어져 있는 한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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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3-11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리하는 일, 즐거운 일이지요.
저도 아이들 먹이느라 가끔 합니다. 맛있게 먹으면 기분이 좋지요. 하하


산딸나무 2009-03-13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이 요리를 즐기시는 까닭도 아마 '가끔' 하실 자유가 있기 때문일 거에요.^^

깔깔마녀 2009-06-23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딸나무님..글...좋아요

산딸나무 2009-06-23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세상 모든 자매들이 요리의 즐거움을 되찾을 날을 기대해봅니다.
 

 

 

 “나는 내 딸이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직 마흔도 안 된 친구가 그 얘기를 하는 순간,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사실, 그 말 자체는 그리 낯선 말이 아니다. 내 또래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어머니들에게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일 터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얘기는 우리 어머니 세대의 여성들이나 하는 흘러간 옛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 또래의 여성들이 자기 딸에게 똑같은 얘기를 하면서 살아간다는 게 너무도 의외였다.




 우리 어머니들이야 교육받지 못 하고, 일을 할 수 없었던 절대적 차별 속에서 성장한 분들이니 그 억울함을 딸에게 그렇게 하소연할 수 있다고도 인정한다. 그러나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면 비난받는 시대도 아니고, 교육을 못 받은 것도 아닌 우리들이 왜 우리 어머니들과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살아가는 걸까? 물론, 여성에게 가해지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생각하면 이 땅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일이 녹록치 않은 일이라는 건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나는 우리 세대의 그 말이 우리 어머니 세대들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다가온다.




 아주 친한 언니가 한 사람 있다. 그 언니는 도시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에서 지역운동 하는 주민 운동가이다. 남편과 이혼하고 딸아이를 혼자 키운다. 일하는 곳에서는 월급이라고 할 수도 없는 활동비를 조금 받는다. 사회적 시선으로 성공한 커리어우먼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성공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이혼녀다. 그러나 그이는 언제나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이구, 이것아. 니 애미 반만 닮아라. 나처럼 좀 멋있고 씩씩하게 살아. 니가 내 반만이라도 살아내면 내가 일어서서 박수 쳐 주마.”




 딸이 자기처럼만 살면, 아니, 그 반만이라도 살아내면 좋겠다는 그이의 말. 이보다 더 멋진 말이 또 있을까? 나는 늘 궁금했다. 그 어떤 사회적 시선에도 주눅 들지 않고, 진심으로 자기를 긍정하는 저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이십여 년 마음을 나누면서 관찰한 바로는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끝없는 노력, 그것이 바로 답이 아닐까, 싶다. 남의 판단으로 자신의 행복을 재는 쉬운 길을 마다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도 힘들 것 같아 포기해버리는 안락함을 마다하고 진정으로 내가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아서 노력해온 그이의 삶. 그게 자랑스럽지 않다면 세상에 자랑거리가 존재할 수나 있을까?




 그렇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처럼 살지 마.’라고 하기 전에 나는 왜 마음에도 들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는 수순을 밟자는 것이다. 자기를 돌아볼 시간조차 제대로 갖지 못하면서,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할 에너지를 엉뚱하게 남편과 자식에게 쏟으면서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당신을 어떻게 내조했는데.’ 따위의 감사를 강요하는 엄마들은 솔직히 질린다.

 

 이미 끝난 인생도 아니고, 아직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을 젊은 여성들이 (아니 살아갈 날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처럼 살지 말라는 얘기를 그토록 쉽게 하다니……. 내가 살아야 할 내 몫의 인생을 방기하고 다른 누구의 인생에 참견하겠다는 건가?  내 딸의 삶은 그 아이의 몫이지만, 내 삶은 여전히 내 몫이다. 




 내 딸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내가 그 애에게 거는 기대를 반만 거두자. 내 딸에게 투자하는 돈을 반만 줄이자. 내 딸에게 요구하는 치열함을 반만 기대하자. 그리고 그 반을 나 자신에게 쏟아보자. 그러면 우리도 “너도 나처럼만 살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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