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딸이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직 마흔도 안 된 친구가 그 얘기를 하는 순간,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사실, 그 말 자체는 그리 낯선 말이 아니다. 내 또래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어머니들에게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일 터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얘기는 우리 어머니 세대의 여성들이나 하는 흘러간 옛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 또래의 여성들이 자기 딸에게 똑같은 얘기를 하면서 살아간다는 게 너무도 의외였다.
우리 어머니들이야 교육받지 못 하고, 일을 할 수 없었던 절대적 차별 속에서 성장한 분들이니 그 억울함을 딸에게 그렇게 하소연할 수 있다고도 인정한다. 그러나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면 비난받는 시대도 아니고, 교육을 못 받은 것도 아닌 우리들이 왜 우리 어머니들과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살아가는 걸까? 물론, 여성에게 가해지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생각하면 이 땅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일이 녹록치 않은 일이라는 건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나는 우리 세대의 그 말이 우리 어머니 세대들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다가온다.
아주 친한 언니가 한 사람 있다. 그 언니는 도시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에서 지역운동 하는 주민 운동가이다. 남편과 이혼하고 딸아이를 혼자 키운다. 일하는 곳에서는 월급이라고 할 수도 없는 활동비를 조금 받는다. 사회적 시선으로 성공한 커리어우먼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성공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이혼녀다. 그러나 그이는 언제나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이구, 이것아. 니 애미 반만 닮아라. 나처럼 좀 멋있고 씩씩하게 살아. 니가 내 반만이라도 살아내면 내가 일어서서 박수 쳐 주마.”
딸이 자기처럼만 살면, 아니, 그 반만이라도 살아내면 좋겠다는 그이의 말. 이보다 더 멋진 말이 또 있을까? 나는 늘 궁금했다. 그 어떤 사회적 시선에도 주눅 들지 않고, 진심으로 자기를 긍정하는 저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이십여 년 마음을 나누면서 관찰한 바로는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끝없는 노력, 그것이 바로 답이 아닐까, 싶다. 남의 판단으로 자신의 행복을 재는 쉬운 길을 마다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도 힘들 것 같아 포기해버리는 안락함을 마다하고 진정으로 내가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아서 노력해온 그이의 삶. 그게 자랑스럽지 않다면 세상에 자랑거리가 존재할 수나 있을까?
그렇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처럼 살지 마.’라고 하기 전에 나는 왜 마음에도 들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는 수순을 밟자는 것이다. 자기를 돌아볼 시간조차 제대로 갖지 못하면서,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할 에너지를 엉뚱하게 남편과 자식에게 쏟으면서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당신을 어떻게 내조했는데.’ 따위의 감사를 강요하는 엄마들은 솔직히 질린다.
이미 끝난 인생도 아니고, 아직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을 젊은 여성들이 (아니 살아갈 날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처럼 살지 말라는 얘기를 그토록 쉽게 하다니……. 내가 살아야 할 내 몫의 인생을 방기하고 다른 누구의 인생에 참견하겠다는 건가? 내 딸의 삶은 그 아이의 몫이지만, 내 삶은 여전히 내 몫이다.
내 딸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내가 그 애에게 거는 기대를 반만 거두자. 내 딸에게 투자하는 돈을 반만 줄이자. 내 딸에게 요구하는 치열함을 반만 기대하자. 그리고 그 반을 나 자신에게 쏟아보자. 그러면 우리도 “너도 나처럼만 살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