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친구들을 불러다 밥을 해 먹이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이 내가 만든 요리를 즐기면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걸 보면 절로 행복해진다. 
 

 그러나 어린 시절, 나는 내가 요리를 즐긴다는 걸 몰랐다. 그 때는 정말 밥 하고, 상 차리는 일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아버지와 오빠들의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일이 너무 싫어서 학교 운동장을 빙빙 돌다가 해가 지고서야 집에 들어갔다. 그러나 아무리 늦게 들어가도 아버지는 꼭 나를 기다렸다가 저녁상을 차리게 하곤 했다. 평생을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남자로 살아온 아버지는 자기 손으로 밥을 차리는 일을 하느니 차라리 배고픔을 참았다가 늦은 저녁상을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셨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가방을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곧바로 부엌으로 들어가야만 했던 그 시절의 기억은 가끔 내 꿈의 단골메뉴로 등장하기도 했다. 남자들이 군대에 다시 끌려가는 악몽을 꾸는 것처럼.

 

 혼자 살면서 정말 좋은 점은 나 아닌 누군가의 밥상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밥 차리는 일이 더 이상 의무가 아닌 오롯한 나의 권리가 되는 순간, 나는 요리가 즐거워졌다. 밥하지 않을 자유를 얻고 나니 나는 비로소 내가 얼마나 요리 하는 일을 좋아하는지 자각하게 된 것이다.




 요즘,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서 먹이고, 그들과 함께 어울려 먹고 대화하는 시간은 내 삶의 큰 즐거움 중 하나이다.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은 귀찮지도 않느냐고 하면서 대충 시켜 먹자고 하지만 나는 내가 초대한 손님들을 위해 요리하는 게 귀찮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 요리 솜씨를 보고 주위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 요리 솜씨에 왜 혼자 사느냐? 맏며느리 감으로도 손색이 없는데…….”

 그러나, 그 말은 내 요리 솜씨의 근원이 어디서부터 온 건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요리하는 일이 의무가 아닌 삶, 요리하는 자유가 주어진 삶이 아니면 나는 솜씨를 발휘하기는커녕, 요리하는 일을 지금도 끔찍하고 징글맞은 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자유롭게 요리하면서 살아보니 요리가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 알게 된다. 요리하는 일은 꽤 창조적인 일이어서 내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는 글쓰기처럼 설레는 작업이다. 또 소통의 행복도 더불어서 만끽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일이 의무가 되는 순간 하루 세 끼 밥 차리는 일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 내가 죽어서야 끝나는 일……. 여자들에게 요리는 우리 어머니의 표현대로 참 징글맞은 일이다.




 추운 겨울 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장을 봐서 된장찌개를 끓여 놓고 마주 않는 밥상은 그 어느 부귀영화도 대신할 수 없는 행복이다. 삶에 지친 친구들을 두루 불러 모아서 해물탕과 파전 한 장으로 나누는 술상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위로이다.

 

 그러나 더 많은 시간,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나는 혼자서 밥을 먹는다. 혼자서 밥을 먹는 날, 나는 절대로 끼니를 대충 때우지 않는다. 그 어느 날 보다 정성들여서 밥상을 차린다. 밥 한 그릇과 국 한 그릇의 소박한 밥상을 오로지 나를 위해 정갈하게 차린다. 




 내가 차린 밥상을 생을 음미하듯 찬찬히 비우다 보면, 나는 내 영혼을 먹이는 어미의 심정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인 ‘나’를 먹이고 기르는 밥 한 그릇과 내 노동을 생각하다보면 감격스러움에 젖는 날도 있다. 




 나는 요리가 즐겁다. 이 사실은 요리하지 않을 자유가 주어져 있는 한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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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3-11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리하는 일, 즐거운 일이지요.
저도 아이들 먹이느라 가끔 합니다. 맛있게 먹으면 기분이 좋지요. 하하


산딸나무 2009-03-13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이 요리를 즐기시는 까닭도 아마 '가끔' 하실 자유가 있기 때문일 거에요.^^

깔깔마녀 2009-06-23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딸나무님..글...좋아요

산딸나무 2009-06-23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세상 모든 자매들이 요리의 즐거움을 되찾을 날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