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리 잘하는 남자를 좋아한다.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통통 칼질을 하고, 보글보글 끓는 찌개의 간을 맞추는 남자의 뒷모습은 내가 좋아하는 그림 가운데 하나이다.

   

 하루는 친구들과 자기가 좋아하는 취향의 남성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요리 잘하는 남자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그럼 요리사랑 사귀면 되겠네.” 한다.

 “아니, 직업적으로 요리하는 사람 말고…….”

 “그럼 취미가 요리인 남자?”

 “웬 취미? 그냥 삼시 세끼 제 밥을 제 손으로 차려먹는 남자.”

 내 대답에 친구는 고개를 갸우뚱 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연인들끼리 음식을 해서 상대를 초대하는 장면이 가끔 나온다. 자신이 한 요리를 연인에게 대접하는 자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꽤나 로맨틱한 분위기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상한 게 하나 있다. 여자들이 차린 밥상은 주로 밥과 된장찌개가 기본이 되는 일상적 요리들이다. 늦잠을 잔 남자가 주방으로 들어서면 여자는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밥을 퍼고, 된장찌개 뚜껑을 연다. 그녀가 어떤 성격과, 직업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든 그녀는 일상을 요리하는 사랑스러운 연인이다.




 그러나 남자들이 하는 요리는 우리가 집에서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다. 특별한 날, 비싼 돈을 주고 먹는 음식들, 음식의 맛 보다는 분위기를 먹는 그런 음식들이 등장한다. 스파게티, 스테이크 따위에 와인, 촛불……. 거기에 꽃을 안겨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남자들의 요리는 일상이 없다. 그들의 요리에는 늘 이벤트의 냄새가 난다.




 여자들의 요리는 일상, 남자들의 요리는 이벤트……. 아마 우리의 머리 속에는 이런 공식들이 자리 잡고 있나 보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남자는 그의 요리에서 일상의 냄새가 나는 남자다. 적어도 자기 밥상은 자기가 차릴 줄 아는 남자, 일상적으로 먹는 하루 세 끼의 밥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남자, 일터에서 자기가 직접 싼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장을 들러서 장을 보고, 가끔 연인이나 친구를 초대한 날엔 ‘오늘은 동태찌개를 끓여볼까?’ 하는 생각을 할 줄 아는 남자. 나는 그런 남자를 사랑한다.

 

 제 밥, 제 손으로 챙겨먹을 줄 모르는 사람은 평생을 남의 노동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먹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나? 그렇기에 요리하는 일은 인간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자립노동이 아닌가. 그런데 대부분의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그 즐거운 자립노동으로부터 소외당해왔다. 그리고 그것이 소외라는 의식조차 하지 못 하고 자라왔다. 평생을 제 밥상 한 번 차려보지 못한 인생이 더 근사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남자들의 뇌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러나, 내 눈엔 그런 남자들은 제 아무리 돈 잘 벌어도, 제 아무리 근사한 몸을 가져도, 제 아무리 지적이어도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가끔 우스개 소리로 ‘제 밥 제 손으로 차릴 줄 모르는 남자의 말과 글은 믿음이 안 간다.’고 한다. 제 입으로 들어가는 밥을 평생 남에게 의지해서 살아가는 주제에 인간을, 정의를, 평화를 얘기하는 남자들은 좀 우스워 보인다.  




 나는 요리를 잘하는 남자를 좋아한다. 요리하는 일이 참으로 소중한 노동이란 가치관을 지닌 남자를 좋아한다. 그 가치관을 위해서는 타인의 시선도, 남성다움도, 몇 푼의 월급도 무시할 줄 아는 남자를 좋아한다.

 혹시 주위에 그런 비혼 남성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이왕이면 시금치 무침과 된장찌개, 고기 넣지 않은 잡채를 맛있게 잘하는 남자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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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8-08-25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딸나무님 안녕하세요~ 우리 처음 뵙죠? 페이퍼를 한꺼번에 올리시니까 너무 좋잖아요.^^ 저도 요리 잘하는 남자 좋아해요. 저도(또?) 이벤트성 짙은 것보단 이렇게 동태찌개 한번 끓여봐하는 분들이 더 좋구요. 그러고보니 좀 허기지는데요~

산딸나무 2008-08-25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니에님 반갑습니다.
게으름을 이기고 오랜만에 글 올리니까 이렇게 또 새로운 인연을 뵙네요.
님의 서재에 잠깐 가봤어요.
아, 초록의 대나무들... 너무 멋있었답니다.
눈과 귀가 시원해지네요.

비로그인 2008-08-2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이벤트성의 세가지 요리를 할줄 압니다.
김밥, 햄 볶음밥, 스테이크. 하하
아이들이 좋아하지요.

오랜만입니다. 산딸나무님.
저는 쉬는 중이랍니다. 반가워요.. 산딸나무님


산딸나무 2008-08-26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휴가 때 강진 해남을 지나쳐왔는데
그때 한사님 생각이 잠깐 났어요.
 

 

  언제부터인가 나를 보고 애국자가 아니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구역질이 나도록 싫어하는 나로서는 애국자라는 말이 오히려 모욕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 될 게 없는 말이다. 그런데 그 까닭을 듣고 보니 너무 어이가 없다. 

 그들은 내가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았으니 애국자가 아니란다. 출산율이 바닥을 기고 있는 이 시대에 아이를 쑥쑥 낳아 국가 발전에 이바지해야 하는 게 국민 된 자의 도리인데 혼자서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하는 여자라서 그렇단다.




 비혼주의자로 살면서 온갖 편견들을 만나봤다. 살림이라곤 손도 까닥할 줄 모른다, 똑똑한 척하면서 제 잘난 맛에 산다, 남자한테 모질게 차인 기억이 있을지도…….

 그런데 이제는 결혼 안 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애국자가 아니라니. (정말 살다 살다 별 꼴을 다 보는군.) 처음엔 우습지도 않은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야길 진지하게 강론하는 사람들을 몇몇 만나고 나니 억울해서라도 한 마디 하고 넘어가야겠다.  

 

 나는 육 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러다보니 친구들은 우리 어머니를 종종 할머니로 착각하기도 했다. 어머니로 봐서는 자식 여섯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내 또래 친구들은 70년대 태어난 세대이다 보니 자매, 형제들이 둘, 많아봤자 셋인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국민학교를 다닐 때, 새 학년이 시작되면 늘 가정환경을 조사하는 시간이 있었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던 그 무식한 인권유린에 마음을 다치지 않은 아이가 몇이나 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길 가는 사람을 붙들고 주 몇 회 섹스를 하는지 묻는 것 보다 더 낯 뜨거운 폭력이었음에도 당시는 선생님이 묻는 대로 순순히 손을 들었다.

 

 그런데 그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부모님이 두 분 다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학교 근처에도 못 가보신 것도, 집에 냉장고가 없던 것도 아니었다. 바로 자매, 형제의 수를 묻는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자매, 형제가 하나인 사람, 둘인 사람, 셋인 사람까지 묻고는 “손 안 든 사람?”하고 덧붙였다. 그러면 보통 서넛 정도 손을 드는데, 넷이라고 대답하는 아이가 있으면 아이들은 모두 “우와!” 하며 놀란다. 그런데 내가 “여섯이요.” 하면 반 전체가 술렁인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가 학교 곳곳을 장식하던 시절이었으니, 아이들의 놀람이 무리도 아니다. 그러나 그 순간마다 나는 얼굴이 벌겋게 되고, 하루 종일 부끄러워서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당시 사람들의 인식에 아이를 많이 낳는 여자는 무식하고, 교양 없는 여자였다. 아이를 많이 낳아서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그런 반애국적인 여자가 바로 내 어머니였던 것이다.

   

 아이를 많이 낳았다는 까닭으로 내 어머니와 내가 당했던 정신적 수모가 아직도 생생한데, 그 국가가 이젠 아이를 낳지 않는 나를 보고 교양 없고 이기적인 여자 취급을 한다.

 국가는 늘 여성들의 삶을 그렇게 통제해왔다. 전쟁이 일어나서 남자가 모자라면 일터에서 일하는 씩씩한 어머니를 극찬하며 바깥으로 내몰고, 남자들의 일자리가 모자라면 조신한 현모양처의 이미지를 떠받들어 올려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게 했다. 그게 마치 여성이 누리는 최고의 행복이란 듯 꾸미면서. 




 그러고 보니, 지금 우리가 꿈꾸는 아름다운 결혼, 모범적 가정, 성실한 직장인의 모습은 어쩌면 국가와 자본이 만들어낸 매트릭스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만들어진 행복에 내 삶을 끼워 맞추며 행복하다고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매트릭스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길은? 바로 내 머리로 생각하고 내 가슴으로 꿈꾸는 일이다. 모범 답안의 행복을 거부하고 내 오감으로 체험하는 행복을 찾아서 떠나는 길, 그 길에서 찾은 삶만이 진짜 삶이다. 그것이 결혼이든, 독신이든, 아이 열을 낳아 키우는 삶이든, 낳지 않고 사는 삶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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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8-2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지금보다 더 집중했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 삶에 간섭하거나 부러워하거나 질시하거나 하기에는..
시간이 너머 아깝지요.
시간이 아니더라도 도대체 그럴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암만해도 개인주의자인 모양입니다. 하하



산딸나무 2008-08-26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주의자는 타인을 존중할 줄 알지요.
그런 의미에서 한사님은 개인주의자가 맞을 것 같은데요^^
 

  

 결혼해서 아이를 하나 낳고 무던히 살아가는 언니가 있다. 그이가 요즘 남편 때문에 많이 힘들다고 한다. 남편이 일이 너무 많아서 늘 늦게 들어온단다. 그래서 책 한 권 읽을 시간도, 자신과 대화할 시간도, 아이랑 놀아줄 시간도 없이 찌들려 산단다. 술을 마시고 늦느냐고 물으니 그건 아니란다. 절대적으로 일이 많은 직업과 너무 성실한 근무태도가 늦은 퇴근의 원인이란다.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그게 뭐가 문제냐?,며 나만 마음을 다스리면 된대요. 대한민국 남자치고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요. 근데요, 정옥씨. 나는 정말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에요. 돈을 많이 벌어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성공해줬으면 싶은 것도 아니에요. 그저 그 사람과 손잡고 걸어보고 싶어요. 같은 책을 읽고 얘기를 나누고 싶어요.”

 남편은 현재의 삶에 만족하냐고 물어보니, 그건 아니란다.

 “남편도 행복하지 않다고 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일 그만 두면 뭐 먹고 살 거냐고, 그렇게 묻는데 정말 할 말이 없데요. 내가 잘못된 걸까요? 인생이란 다 이런 건데 내가 뭘 모르고 철없이 하는 생각일까요? 그런데 나는 지금 이 삶이 너무 싫어요. 이렇게는 하루도 더 살고 싶지 않을 만큼.”

 늘 씩씩하고 당차서 여린 구석이라곤 찾아보기 힘들었던 그 언니가 말을 쏟아내면서 결국은 눈물을 보인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는 데는 그만의 까닭이 있다고 생각한다. 똘똘하고 귀여운 후배 하나는 늘 웃으면서 ‘데리고 자지도 않을 남자랑 왜 만나냐?’고 한다. 어떤 선배는 ‘돈도 안 벌어다 주는 남자랑 왜 사냐?’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나름대로 만나는 남자의 기준이 있다. 나는 편지 쓸 때 맞춤법이 틀리는 남자, 내가 사용하는 단어를 부연 설명해 줘야 할 만큼 책을 읽지 않는 남자는 안 만난다. 맞춤법이 틀리는 편지를 읽고 있노라면 마치 원고 교정볼 때처럼 머리가 아프다. 내 사유를 신나게 얘기하고 있는데 못 알아듣는 눈치면 강의하는 기분이 들어서 딱 질색이다. ‘글과 말이 안 통하는 남자를 왜 사귀냐? 시간낭비다.’고 생각하는 내가 남자를 만나는 까닭은 내 생각을 나누기 위해서이다. 




 생활공동체를 이룰 필요가 없는 나의 만남도 이렇게 합당한 까닭이 있는데, 부부가 함께 살아가기로 했다면 적어도 같이 살아야 할 까닭은 충족시켜 줘야 하지 않을까?. 결혼은 ‘함께 손을 잡고 걸으며 대화하는 남자와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여자와, 결혼은 ‘아이와 아내를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버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자가 함께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당장 헤어지라고 할 수도 없지 않나. 누구 말대로 결혼이 장난이냐?




 살다보면 이렇게 참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을 종종 만난다. 삶이 나를 속일 때…….

 그럴 땐 일단 엉엉 울고 보자. 삶이 나를 속이는 데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고? 웃기는 소리. 삶이 배신 땡기는 날에는 죽도록 울어야 한다. 억울해서 어쩔 줄 모르다가 한없이 분노하고, 절망하며 통곡하는 울음. 그런 울음을 울고 난 다음에야 문제를 해결할 기운이 생긴다.




 세상 사람들 다 그렇게 사니까 너만 마음 고쳐먹고 참으라고? 바보 같은 조언이다. 그렇게 삶이 저지르는 배신을 참고 살아가는 그들이 문제이지, 내가 문제가 아니다. 혹 그들이 그렇게 살아서 진짜 다 행복하다고 치자. 그러나 그 방식에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이 세상의 보편적 삶이 무슨 소용이 있나? 그렇게 행복해질 기회를 무시하며 문제를 덮고, 덮고 하다 보면 어느새 좋은 인생은 다 가버린다.




 문제가 생기는 건 문제가 아니다. 정말 문제가 되는 건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혹은 인식하면서도 덮어둘 때이다. 문제를, 그로 인해서 생기는 절망을 두려워하지 말자. 절망은 새로운 희망으로 가는 길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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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8-26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람과 손잡고 걸어보고 싶어요.'
자연스러운 소망입니다. 남편이거나 아빠라면 그렇게하지요.
의무감이아닌 순전히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서요.
일때문에 아내의 손을 잡아주지 못하거나, 아이와 놀지 못한다면
일할 필요가 없지요.
저는 일이라는 것이 놀기 위해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은 일, 집은 집..
일보다야 아이들과 노는 것이 백배쯤 재미있지요. 하하

'편지 쓸 때 맞춤법이 틀리는 사람'
저도 안 친합니다. 역시 대화가 힙들겠지요.
하하. 공감합니다.


산딸나무 2008-08-29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그 이야기를 하고 나니
친구들이 저한테 메일이나 편지를 잘 안 쓰는 후유증이 좀 있어요.
 

  

 나는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이 꽤 많은 편이다. 작게는 영화나 문학 작품을 선택하는 취향부터, 크게는 정치적 성향까지 다수파가 되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로서 살아간다는 건 한없이 불편한 일이다. 남들 다 읽는 베스트셀러를 거의 읽지 않으니 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얘기를 나눌 사람을 찾기 힘들고, 영화를 고르는 취향이 대중적이지 않으니 정말 좋아하는 영화를 스크린으로 보기 위해 서울까지 올라가는 일을 불사해야 한다. 또, 대구처럼 정치색이 분명한 도시에서 다툼 없이 무난하게 관계를 맺기 위해서 정치적 성향을 숨겨야 하는 경우도 꽤 있다.

 그런데, 이런 저런 소수자의 정체성 가운데 나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두 가지가 있으니, 그 하나가 ‘비혼주의자인 나’이고, 또 다른 하나가 ‘베지테리안인 나’이다.

 

 나는 육식을 전혀 하지 못한다. 어릴 때는 고기가 먹는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아서, 10대 후반부터는 내 철학과 양심에 부대낌이 덜한 식습관이란 생각이 들어서 기꺼이 베지테리안이란 정체성을 내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육식을 하지 않는다는 정말 사소하기 짝이 없는 취향 하나가 나를 얼마나 힘들게 만드는지 모른다. 외식을 하는 일이 늘 불편하다. 고를 수 있는 메뉴가 한정되어 있다보니, 밥 먹을 식당을 찾는 일부터 힘들다. 그나마 식당을 찾았다 해도 확인 절차가 남아있다. 비빔밥 하나를 시킬 때도 “고기 고명 올라가나요?” 물어야 하고, 국수를 하나 시키려고 해도 “혹시 국물로 고기육수 쓰나요?”하며 물어보아야 한다.


 허나 그런 불편함은 내 선택에 따르는 부록 같은 것이라 여기기에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회식이나, 술자리 등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이다.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가장 흔하게 먹는 것이 각종 고기인데 그걸 못 먹으니, 식사모임 자리가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사실, 나는 고깃집에 가서 밥과 깍두기, 상추. 당근, 오이로 밥 한 끼를 때워도 아무 문제가 없다. 다 좋아하는 야채들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고기도 안 먹고 무슨 재미로 사냐고 핀잔주는 사람, 일단 한 번 먹어보라고 계속 권하는 사람, 고기를 안 먹으면 단백질 섭취에 문제가 있다고 친절하게 충고하는 사람까지 모두들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으니…….

 

 비혼주의자인 나를 드러낼 때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힘들지 않은데, 왜 그리 걱정들이 많은지. 뭐 그리 궁금한 게 많고, 충고하고 싶은 게 많은지……. 정말 어떨 때는 예상 질문을 추려서 'Q&A'를 작성해 다니며 보여주고 싶을 정도다. 



 소수자로서의 삶이 좀 불편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불행하진 않다. 나만 하더라도 외식을 잘 못하는 불편함이 오히려 직접 요리하는 즐거움을 알게 했고, 혼자 사는 불안함이 건강에 더 신경 쓰게 만들었다. 그러나 다수의 잣대로 소수의 불편을 불행으로 몰아가는 시선들은 너무도 폭력적이어서, 아무리 행복한 사람도 그 폭력을 반복적으로 맞닥뜨리다 보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기 안 먹으면 힘들겠다. 뭐가 제일 힘들어요?”

 “혼자 살면 힘들죠? 어떤 게 가장 힘들어요?”

 그때마다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한 마디를 삼키느라 도를 닦는다.

 “너! 너 같이 묻는 사람! 너 같은 사람한테 일일이 대답하는 것!”


 다수의 삶이 얼마나 편하고 행복한지 경험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소수자의 삶 또한 다수파인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힘들고 불행하지 않다. 충분히 행복하다. 당신이 입만 닫아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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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8-26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일이 대답하는 것.. 하하


산딸나무 2008-08-26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게 정말 제일 피곤한 일이에요.
사람들이 왜 그리 쓸데없는 일에 궁금한 게 많은지...
 

  

 오월이 간다. 

 자연은 오월을 흐드러진 연두 빛으로 채웠다. 눈길 닿는 곳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데 이토록 아름다운 오월을 유달리 피곤하게 보낸 사람들이 있으니…….




 이혼을 하고 딸아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친구가 있다. 이혼하기까지 너무도 힘든 과정을 거쳤음에도 그는 이혼을 늘 자기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고 자부한다.

 남편과 함께 살 때는 딸아이에게 ‘엄마처럼 살지 마.’라고 했는데, 지금은 ‘네가 나만큼만 살아내면 좋겠다.’고 얘기한단다. 예전엔 자식이 자기 인생의 ‘희망’이었지만, 지금은 자기 인생의 희망은 자기 자신이고 자식은 단지 ‘기쁨’일 뿐이라고 고백한다.

 남들이 다 하니까 하는 결혼에는 별다른 철학이 필요 없었지만, 남들이 잘 안 하는 이혼을 선택하기에는 철학이 필요하더라고, 그래서 철학을 가지고 살아내는 지금의 삶이 갑절이나 더 행복하다고 하는 그는 정말 멋진 사람이다.

 가끔은 초등학생인 딸과 싸워서 삐치기도 하고, 때로는 밥벌이의 팍팍함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늘 씩씩하게 웃으며 살아간다. 

 

 또 한 친구는 나이 어린 애인과 알콩달콩 동거를 하고 있다. 결혼은 하기 싫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 합리적인 선택을 했단다. ‘일단 살아보고’가 아니라, ‘평생 이렇게’를 합의한 두 사람에게 그 가정은 결혼식이나, 혼인신고가 대체할 수 없는 그들만의 신뢰가 뒷받침되어 있다. 두 사람은 꽤 잘 어울리는 평생연인이다.




 동갑내기 남편과 아이 없이 딩크족으로 살아가는 친구도 있다. 아이가 가정을 이루는 필수조건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그는 자기 부부는 ‘아이가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아이가 없어서 행복한 사람들’이란다. 자신들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해서 현명한 선택을 한 그들의 가정에는 아이의 웃음 대신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늘 집안을 채운다.




 그런데 아이와, 애인과, 남편과 더불어 각자가 꾸민 가정에서 잘 살고 있는 그들은 5월 한 달을 참으로 피곤하게 보냈다. 왜냐하면, 역설적이게도 오월이 바로 ‘가정의 달’이기 때문이다.

 오월 내내, ‘가정의 달’ 바이러스가 온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정상적 가정’이라는 기준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불행’으로 감염시켰다. 겉으로 보기에 조금이라도 불량한 껍데기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이 즈음 특히 기승을 부리는 이 바이러스를 피할 수 없다. 독신가정의 가장이자 주부로 혼자 ‘룰루 랄라’ 신나게 살고 있는 나에게도 이 바이러스는 치명적이었다. 내  껍데기도 불량하기로 치자면 내 친구들과 어금버금하기 때문이다.




 ‘가정의 달’ 오월을 바이러스와 싸우며 피곤하게 보내고 나니, 좀 억울하다.

 도대체 정상적인 가정이 무엇이기에? 가정이란 것이 개인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라면 그 껍데기야 어떻든 구성원들이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우리 사회는 껍데기만 잘 갖추어지면 그 구성원들이 아무리 불행하게 살아도 ‘정상적’이란 딱지를 버젓이 붙여준다. 가정폭력과, 근친 성폭행, 노인학대 등이 오랫동안 묻혀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정상적 가정’이란 딱지를 떼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이제 제발 껍데기에 집착하지 말자. 행복할 수만 있다면 껍데기 따위야 아무려면 어떤가. ‘평범하고 정상적’이란 그 딱지가 과연 내 행복과 맞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더 늦기 전에 한번 생각해 보자. 자칫하다간 껍데기 보수공사에 평생을 허비할 수도 있으니.




 드디어 5월이 간다. 속이 다 시원하다. 오늘 저녁엔 기념으로 친구들을 불러 모아 술이라도 한 잔 해야겠다. 껍데기는 불량하지만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멋지게 살고 있는 사람들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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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8-26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른 알라딘으로 돌아와야 겠어요.. 산딸나무님.
나말고는 댓글 올려주는 사람이 없군요.. 하하

저는 또 쉬어야 합니다.
안녕히. 산딸나무님


산딸나무 2008-08-26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덕분에 늘 무플을 면하지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