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 간다. 

 자연은 오월을 흐드러진 연두 빛으로 채웠다. 눈길 닿는 곳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데 이토록 아름다운 오월을 유달리 피곤하게 보낸 사람들이 있으니…….




 이혼을 하고 딸아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친구가 있다. 이혼하기까지 너무도 힘든 과정을 거쳤음에도 그는 이혼을 늘 자기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고 자부한다.

 남편과 함께 살 때는 딸아이에게 ‘엄마처럼 살지 마.’라고 했는데, 지금은 ‘네가 나만큼만 살아내면 좋겠다.’고 얘기한단다. 예전엔 자식이 자기 인생의 ‘희망’이었지만, 지금은 자기 인생의 희망은 자기 자신이고 자식은 단지 ‘기쁨’일 뿐이라고 고백한다.

 남들이 다 하니까 하는 결혼에는 별다른 철학이 필요 없었지만, 남들이 잘 안 하는 이혼을 선택하기에는 철학이 필요하더라고, 그래서 철학을 가지고 살아내는 지금의 삶이 갑절이나 더 행복하다고 하는 그는 정말 멋진 사람이다.

 가끔은 초등학생인 딸과 싸워서 삐치기도 하고, 때로는 밥벌이의 팍팍함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늘 씩씩하게 웃으며 살아간다. 

 

 또 한 친구는 나이 어린 애인과 알콩달콩 동거를 하고 있다. 결혼은 하기 싫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 합리적인 선택을 했단다. ‘일단 살아보고’가 아니라, ‘평생 이렇게’를 합의한 두 사람에게 그 가정은 결혼식이나, 혼인신고가 대체할 수 없는 그들만의 신뢰가 뒷받침되어 있다. 두 사람은 꽤 잘 어울리는 평생연인이다.




 동갑내기 남편과 아이 없이 딩크족으로 살아가는 친구도 있다. 아이가 가정을 이루는 필수조건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그는 자기 부부는 ‘아이가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아이가 없어서 행복한 사람들’이란다. 자신들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해서 현명한 선택을 한 그들의 가정에는 아이의 웃음 대신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늘 집안을 채운다.




 그런데 아이와, 애인과, 남편과 더불어 각자가 꾸민 가정에서 잘 살고 있는 그들은 5월 한 달을 참으로 피곤하게 보냈다. 왜냐하면, 역설적이게도 오월이 바로 ‘가정의 달’이기 때문이다.

 오월 내내, ‘가정의 달’ 바이러스가 온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정상적 가정’이라는 기준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불행’으로 감염시켰다. 겉으로 보기에 조금이라도 불량한 껍데기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이 즈음 특히 기승을 부리는 이 바이러스를 피할 수 없다. 독신가정의 가장이자 주부로 혼자 ‘룰루 랄라’ 신나게 살고 있는 나에게도 이 바이러스는 치명적이었다. 내  껍데기도 불량하기로 치자면 내 친구들과 어금버금하기 때문이다.




 ‘가정의 달’ 오월을 바이러스와 싸우며 피곤하게 보내고 나니, 좀 억울하다.

 도대체 정상적인 가정이 무엇이기에? 가정이란 것이 개인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라면 그 껍데기야 어떻든 구성원들이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우리 사회는 껍데기만 잘 갖추어지면 그 구성원들이 아무리 불행하게 살아도 ‘정상적’이란 딱지를 버젓이 붙여준다. 가정폭력과, 근친 성폭행, 노인학대 등이 오랫동안 묻혀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정상적 가정’이란 딱지를 떼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이제 제발 껍데기에 집착하지 말자. 행복할 수만 있다면 껍데기 따위야 아무려면 어떤가. ‘평범하고 정상적’이란 그 딱지가 과연 내 행복과 맞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더 늦기 전에 한번 생각해 보자. 자칫하다간 껍데기 보수공사에 평생을 허비할 수도 있으니.




 드디어 5월이 간다. 속이 다 시원하다. 오늘 저녁엔 기념으로 친구들을 불러 모아 술이라도 한 잔 해야겠다. 껍데기는 불량하지만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멋지게 살고 있는 사람들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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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8-26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른 알라딘으로 돌아와야 겠어요.. 산딸나무님.
나말고는 댓글 올려주는 사람이 없군요.. 하하

저는 또 쉬어야 합니다.
안녕히. 산딸나무님


산딸나무 2008-08-26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덕분에 늘 무플을 면하지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