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숲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http://thethe.fatp.org/  

  위의 홈피에 놀러 가 보세요~~ 나도 이렇게 이쁜 홈피를 만들고픈데...
  피아노의 숲, 재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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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2-31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의 숲> 참 좋죠?
오늘은 <하나다 소년사>를 읽었는데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아무래도 책을 사야겠습니다.^^;;;
 
조선 청년 안토니오 코레아, 루벤스를 만나다 - 히스토리아 001
곽차섭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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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상상
역사적 상상은 가끔, 우리가 건너와 버린 저 너머의 언덕이나 강에 대한 동경을 불러 일으켜.. 자유로운 사고를 하게끔 합니다. 비인간 별유천지인 듯한 무릉도원을 그림은 끊어져 버린 연결고리로 인하여 더 자유롭고 풍족한 사고를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생각은 나를 포함한 우리들에게 감정을 풍요롭게 하며, 이상향에 대한 동경 내지 현실에서의 적극적인 삶을 이끌어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성적이거나 과거지향적인 경우라면 현실에서 적응하지 못한 소도가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역사적 상상이 자유로운 상상이 아닌, 학문적 접근을 한다면, "상상"이라는 단어에 집착하기 보다는 역사적 고증을 통한 이음새를 잇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칫 역사적 상상이 상상에 집착되어 버린다면 그것은 허구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품새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치열한 눈으로 역사에 숨어버린 유물을 하나씩 꺼내어 징검다리를 놓은 다음, 그 사이사이에 상상을 메꾸어 넣는다면 역사적 사실 위에 지은이의 상상력이 더 해져, 사실 하나의 기록인 아닌 살아 숨쉬는 옛이야기로 다듬어 질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역사적 상상"을 상상력을 통한 역사의 복원으로 될 경우에 그것은 허구가 되어버리지만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다면 역사 기록을 더 풍요롭게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조선 청년 안토니오 코레아를 만나다
"최대한의 실증을 바탕으로 한 추론은 그에 반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한 가능성이 있는 추론이며, 허황된 공상이 아니라 증거와 증거를 잇는 역사적 상상력의 결과가 아니겠는가(114쪽)"

지은이는 조선 청년 즉 안토니오 코레아-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한복 입은 남자' 루벤스作-에 대한 역사적 상상력을 풀어갑니다.

서구와 동양-한국-은 지리 문화적 차이로 인하여 서로에 대한 접근이 많이 어려운 듯 합니다. "조선 남자Korean Man(13쪽)"에 대한 관심이 조금은 상이하기 때문입니다. 1장과 2장에 걸쳐서 서로 다른 입지에서 받아들여지는 "조선 남자"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2. 첫번째 이야기: 서양 미술사에서 본 「조선 남자」'에서는 서구의 학설을 풀어놓으면서 심한 의구심을 드러냅니다. 어느것 하나 지은이에게 "놀랍다!"라는 감탄사를 내놓지 못합니다.
'3. 두번째 이야기: 한국사 속의 안토니오'에서는 "16세기 말 일본에 왔던 이탈리아 상인 프란 체스코 카를레티아와 그의 저작 『나의 세계일주기』(54쪽)"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피렌체의 유서 깊은 상인 집안의 아들이며, 시대의 흐름 속에서 무역을 하며 은괴와 노예를 판다. 이들 부자는 무역을 하면서 어떻게 일본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조선인 노예 5명을 산다. 이런 일련의 시실은 그의 저작과 일본의 역사학자 야마구치(山口正之)-야마구치는 그의 논문을 통해 조선에 많이 알려지게 된다-를 통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더 오세영(『베니스의 개성상인』), 김성우의 기사(안토니오 코레아 1979년 기사) 등등의 이야기가 거론되지만 심한 오류를 안고 있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는 틀리다 나는 옳다
지은이는 서구와 한국에서 나타난 「조선 남자」를 비판하고, 자기 나름의 주장을 풀어나갑니다. 우선 서구와 한국에서, 왜 다른 시야가 생기는가 하는 점과 「조선 남자」는 누구인가라는 점입니다.

"그림 속의 이 인물은 정말 조선사람인가?"라는 질문에, 지은이는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다(88쪽)"고 말합니다. 하지만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추정은 가능하지 않을까는 일만의 가능성과 역사학자로서의 호기심, 서로 나뉜 두 문명을 잇는 교류자로서 지은이가 나섭니다.

①관모 : 언뜻 보기에는 드로인 속의 '방건'은 사각형이 아니라 둥근 모양인 듯도 하지만, 이는 여러해에 걸쳐 사용함으로써 각진 부분이 완화된 결과로 볼 수 있을 듯하다.(89쪽)
②철릭(天翼) : 드로잉 속의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은 무엇일까? 한국의 복식사학자들은 대체로 이를 철릭(天翼)이라 보는 데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91쪽)
③얼굴 : 코도 남방계처럼 낮지 않고 광대뼈도 약간 튀어나왔다. 다만 눈은 쌍꺼풀이 있고 둥그란 느낌이며, 분명하지 않으나 수염이 없다기보다는 짧게 깍은 것처럼 보인다. 얼굴 인상만을 보고 이 인물이 조선 사람이라고 단정짓기는 힘들다.(98쪽)
④범선 : 희미하게 그려져 있어 그 모습이 분명하지 않으나, 여러 폭의 돛을 단 대양 항해용 범선같이 보인다. 이는 그림의 주인공이 멀리서 배를 타고 온 내도인(來到人)이라는 사실을 시사하는 장치라 생각된다.(98쪽)   (강조 : 열린사회의적)

4가지로 통해, 어떠한 추론을 내세우지만 명확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있을 듯 하다"라는 가정치만 내세우고 있습니다. 더욱이  얼굴에서는 '조선 사람이라고는 단정짓기 힘들다'고 직접 적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책을 한 장 넘기면, 또다른 세상이 열립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을 종합해 볼 때, 드로잉 속의 남자는 조선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가 조선 사람이 아니라면, 말총으로 만든 방건을 쓰고 철릭을 입은 그는 어디서 왔다는 말인가? 적어도 이 그림의 인상이나 복식에서 그가 조선 사람임을 부정하는 결정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반대로 임시방편식으로 상투를 틀고 사방관을 쓴 인물, 북방계 아시아 인의 인상에다 철릭을 입고 있는 이 인물을 조선 사람이라 생각할 만한 요소는 많다.(100쪽)"

무슨 도깨비 방망이 같은 소리인지...  지은이는 제목에서 보여주 듯이, 금(線)을 그어 놓고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경우가 조합되어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방건(조선 사람만 방건을 쓴다) -> 철릭(결정적인 증거) ->얼굴(남방계가 아니기에 북방계)


이렇게 추론을 해 나가는 가정이 너무나 어슬프 보입니다. 지은이가 제시하는 증거가 결정적이지 않는데, "「조선 남자」모델이 조선 청년 안토니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116쪽)"는 자아도취적 결론을 내립니다. 제가 보기에는 어느것 하나 지은이의 말대로 "가능성", '~~듯'처럼 보이는 것들의 모음이지 명확한 증거는 없습니다. 명확한 증거 위에 역사적 상상력을 풀어놓았다면 흥미로울 수가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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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 무엇이 문제인가
신장섭.장하준 지음, 장진호 옮김 / 창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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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국제적’ 금융 기구 같은 전문 기구와 세계망을 미국 체제의 일부로 간주할 필요가 있다. 국제통화금(IMF)와 세계은행은 ‘세계적’ 이익을 대표하며, 그들의 지역구는 세계 그 자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들은 미국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 그 기원 자체가 미국의 이니셔티브,즉 1944년의 브레튼우즈(Bretton Woods) 회의에 근거하고 있다.(48쪽) ”                                    브레진스키(2000) 『거대한 체스판』, 삼인 

단기 부채의 급증으로 인하여, 외환보유고가 바닥이 나고 나라 경제는 하루 아침에 바람에 흩날리는

줄 알고, 국민들은 대대적으로 금 모으기를 했습니다. 장롱 속에 혹은 시집올 때 가져온 폐물을 내어

놓으면 국민들은 한결같이 우리나라가 큰 위협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나에게 국제통화기금(IMF)은 ‘아이엠에프시대’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며, 금 모으기 운동이라는

이미지만으로 남아 있습니다. 2000년이 지나서 어렴풋이 읽은 『거대한 체스판』에서 미국이라는

실체를 조금 아주 조금, 살짝 빗겨내어 보았지만 국제통화기금이라는 운영의 실체와 그를 통해 우리

나라가 과연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잘 알지를 못한 체, 등이 건지러워도 손이 닿지 않아 잠만

뒤 척이 듯,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우연찮게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을 읽어 보았습니다. IMF

라는 이미지만 남았으며, 그 실체는 모른 국제통화기금. 과연 우리나라와 나에게 무슨 의미인가? 브

레진스키의 충고는 경계의 대상인가 아니면 나이 많은 학자의 당부이기에 그냥 흘려 들어도 우리나

라는 아무렇지도 않은가?

 

단호하다.

책을 고를 때 나름대로의 몇 가지 바로미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출판사와 지은이에 대한 믿음, 책 머

리와 차례 그리고 가격 등… 이 가격이 어쩌면 큰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할 때도 있지만 지은이에 대

한 믿음이 생기면 쉽게 상쇄할 수가 있습니다.

 

장하준, 어쩌면 지은이의 믿음으로 인하여 맹목적으로 접어든 책일런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어가는 내내 난 커다란 딴지도 걸지 않은 체, 유치원 어린이 마냥 가만히 앉아서 “네~, 네

~”라고 대답만 하였습니다. 장하준은 『사다리 걷어차기』로 인하여 첫 만남을 가졌고 그의 시선이

신자유주의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짐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

서 우리는 1997년 금융위기 이후의 구조조정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금융위기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과거 경제체제의 문제점에 대한 분석이 잘못되었고, 따라서 그에 기초한 해결

책도 잘못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5쪽)”라고 한국어판 서문에서 단호히 밝히고 있습니다. 즉 ‘내

시선은 곱지 않으니 읽을 테면 읽어봐라!’라는 강한 자신감. 나 또한 그의 시선에 대해 곱지 않게 보

낼 수가 있는데, 지은이는 이를 충분히 설득력 있게 그려낼 수 있다는 말인가?

 

서문을 읽으므로서 지은이가 하고자 하는 전체적인 아웃트라인을 잡을 수가 있습니다. 지은이는 국

제금융통화기금을 통해 제조업의 하락. 실물투자가 일어나지 않고 자사주 매입(기업 보호) 혹은 투

기, 기업금융의 붕괴(BIS 비율을 높임으로써 기업 대출이 너무 작게 일어남, 위험부담은 감수하지 않

겠다는 금융인의 사고 확산), 신용불량자 확산 및 부동산 경기의 과열, 비정규직의 양산 및 소득분배

의 불균형으로 인하여 경제에 빨간 신호등이 들어왔다는 것이 지은이의 눈으로 거슬러진 내 시선입

니다. 지은이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큰 갈림길에 서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성장, 고실업, 소득

불균형으로 인한 악순환의 구조를 짤 것인가? 투자를 통해 기술혁신을 일어켜 세계화와 민주화를 건

설할 것인가?(두번째 추격 시스템의 부활) 과연 주식회사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차례

간혹 하는 말이지만 좋은 책은 차례를 보고도 내용이 정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음은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입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각 부분에 대한 요지와 마지막에는 요약을 합니다.

즉 들어가기 전에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기에 책 읽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민음사판)』에서 보여준 옮긴이의 고마움을, 이 책에서는 지은이를 통

해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지은이는 논점은 “알렉산더 거센크론의 분석(26쪽)”에 입각해 있습니다. 거센크론는 영국, 독일, 러

시아의 3개국에서 도출된 패러다임을 통해, 산업화를 이끌어가는 독특한 문화적 제도를 제시합니다.

“① 산업혁명을 최초로 경험한 영국에서는 민간부문에서 축적된 부가 산업금융의 주요 원천이었고,

개별 기업가(entrepreneur)들이 산업화를 이끌어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② ‘약간 뒤쳐져

있던’ 독일에서는 산업금융을 조달하고 민간부문을 조직하는 데 종합은행(universal bank)이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③ ‘매우 뒤처져 있던’ 러시아에서는 국가가 직접 금융자원을 동원하여 새로운 산업

을 창출.(29쪽)”하는 관점을 한국이라는 나라에 재적용시킨다. 즉 거센크론 이론은 이 책을 지배하

는 사상적 구심적 역할을 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지은이는 거센크론의 이론을 미국과 일본,

한국에 대입시키며, 이 속에서 한국의 자리는 러시아와 닮은 꼴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국가는 전략

산업들을 선정하고, 이러한 새로운 산업들을 건설하는 과제를 떠맡을 회사나 기업집단들을 선정하

는 한편 그들을 지원하고 보호해주었다. 이와 같은 국가-은행-재벌 연계는 한국 경제씨스템의 핵심

적 특징이 되었다.(36쪽)” 

 

지은이는 한국에서 보여지는 “국가-은행-재벌”간의 긴밀하고 보완적인 경제씨스템은 타이완이나

싱가포르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합니다. 한국의 경제씨스템이 국가 주도적 산업이였다면 타이완

이나 싱가포르는 개방적 경제씨스템을 통해서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를 끌어들인다. 이를 통해 선진

기술을 흡수하고 부채를 줄일 수가 있었으며, 관심 없거나 정부주도 산업은 집중 투자를 한다. 즉 핵

심적 선진 기술이나 마케팅에 대해서는 저발전이라는 취약적 구조를 안게 되지만 “다국적기업들이

자신의 전지구적 생산망을 지속적으로 심화하고 넓혀감에 따라, 양국은 보완적 자산들을 업그레이

드하고 다양화하여 다국적기업들이 자국 내에 남아서 확장할 수 있도록(44쪽)” 타이완이나 싱가포

르는 적과의 동침을 자기 이윤 목적 추구라는 핵심과제를 충분히 실현시키며 다국적기업과는 동업

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3장에서는 1997년 위기진행과정을 살펴보고, IMF와 한국 정부의 위기전략 및 구조조정

실패원인이 잘못되었으며, IMF 프로그램을 이행실패로 규정합니다.

 

69~78쪽에서 우선 한국의 위기 진행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은이가 보는 위기 진행과정의 징

조는 복합 다양하지만 한보의 부도사태, 삼성과 기아의 사태, “1997년 6월 타이의 바트화의 대대적

평가절화로 시작하여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로 ‘전염’(contagion)된 동남아의 경제위기(74쪽)”,

단기 대외부채-자유주의적인 금융산업 진입 허가정책, 느슨한 규제(위험노출 및 자산 대 채무 비율

과 같은 사항들에 대한),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대외차입의 자유화라는 요소들이 조합(75쪽)”- 및 환

율의 잘못된 방향 등등.. 이러한 복합적인 문제를 인한 것인데 반해 IMF에서 본 한국의 구조 문제는

①산업정책의 부재, ②도덕적 해이, ③정실주의, ④부주의, 산만한 투자(大馬不死), ⑤기업특유의 성

격을 통해 기업의 구조적 문제(79쪽~ 96쪽)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거시경제 긴축, 시

장 개방, 구조개혁(98쪽)이라는 처방을 내어놓습니다. (99쪽 한국 IMF 프로그램의 주요 구성요소 참

조) 여기에서 무엇보다 흘려 보낼 수가 없는 점이 ‘IMF 플러스’라고 불리는 “기업 부문의 구조개

혁”입니다.  IMF는 “거시경제 긴축을 통해 고금리와 긴축예산정책의 결합을 강제(98쪽)”하려 하였

지만 취소하고, 한 국가를 발가벗겨 놓고 세세히 살펴보며 노예화시켜 버립니다. “상품 및 자본시장

의 더 완전한 자유화”, “재벌구조의 구조 개혁”을 통해 스스로 자립할 의지를 철저하게 무너뜨립니

다..

 

지은이는 이러한 IMF의 시선을 곱게 보지 않으면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합니다. IMF의 프로그

램이 주요하지 않자, 그네들은 “1998년 중반부터 한국 정부가 거시경제정책을 180도 전환하여 확장

적인 케인즈주의적 정책패키지를 채택하는 것을 용인(109쪽)”합니다. 한국이 케이즈주의적 정책을

하게 된 것-금리를 내린 것-은 “전지구적 경제환경의 갑작스런 변화의 탓”-“한국에서 케인즈주의적

정책의 대담성은 1998년 하반기에 임박한 전지구적 금융붕괴를 막기 위해 G7 국가들이 추구한 ‘전

지구적 케인즈주의 정책’(global Keynesian policy)의 공세성과 관련해서만 이해될(113쪽)”수 있다

고 판단을 합니다.

 

지은이의 부실 원인

① 지은이가 보는 부실 원인은 발전국가의 쇠퇴에 있습니다. 앞서서 거세크론의 이론을 도입한 지은

이는 국가의 개입을 아주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국가의 이미지는 다음에 이야기 하겠지

만 조율사 내지 전략전술 핵심가를 원합니다. 국가가 이러한 핵심체로 거듭나지 못하고 신자유의의

등장과 함께 뒤로 물러선 것을 좋게 보지 않고 있습니다. 신자유의의 등장(국내-관료 엘리트, 재벌,

고위부르주아층, 전문가층 : 국외-미국, 선진국), 산업정책의 퇴조 및 폐색, 국가 주도의 장기적인 경

제 개발 무개념(경제개발 5개년 폐지)등을 하나의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② 금융자본의 부실 운영. 즉 김영삼 정부의 금융자유화가 잘못 설계되고,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았

다는 점입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고 바람막이를 하지 않았으니… 지은이는 금융업체들에 허가를 많

이 내어주는 것이 효율성 및 경쟁의 우선 순위내지 이윤의 증대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투자된 금융기관들이 정부 감독을 받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1993년 이후 한국에서의 금융자유화는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대규모의 자

본계정 자유화를 실행함에 따라 1997년 위기를 낳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위기의 원인이 된

것은 단지 자유화의 범위만이 아니라, 그것의 세부적 설계내용이었다. 가령 그것은 차입자들이 해외

에서 장기대출보다는 단기 대출에 계약하도록 유인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그것은 경험이 부족

한 다수의 금융회사들이 갑작스럽게 진입하여 과다한 위험감수의 가능성이 더 커졌음에도 불구하

고, 감독체계를 강화는 데 실패하여 자산과 채무 간의 불일치가 심화될 때까지 아무런 제약도 하지

않고 방치했다(129쪽)”

 

지은이는 금융위기가 정부 및 재벌의 합작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는 정부의 대책 없는 금융자유화

와 국가 능력의 쇠퇴 및 재벌들의 부주의로 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에 도취된 정부의

나 몰라라 하는 정책이 결국은 엄청난 파국을 맞이하게 된 것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

은 결론에서 더욱 명백해집니다.

 

“우리는 한국이 회복한 것은, IMF가 거시경제정책에서 급반전함으로써 한국정부가 확장적 거시 정

책을 쓸 수 있게 되고, 더 결정적으로는 공적 자금으로 은행부분의 자본구조를 재구성함으로서 은행

이 기업금융을 재개하도록 허용한 이후였음을 보여준다.(137쪽)”

 

신자유주의, 무비판적 수용의 결과

4장에서는 한국 경제에 적합하지 않은 지배구조, 금융 씨스템으로 인하여, 잘못된 방향 설정이 이

루어졌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방향은 기업구조 개혁 프로그램의 실패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은

이의 견제는 역시, 신자유주의에 대한 거부반응입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환상

내지 어떠한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견제하고 있습니다.

 

“한국정부가 금융위기 후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한가지 두드러진 특징은 정부가 ‘자유시장 경제’의

수사(修辭)에 의존한다는 점이다.(152쪽)”

 

자유시장의 원칙을 구사하기 위해서 정부는 몇 가지의 기업구조조정 프로그램을 했지만 몇 가지의

역효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① 기업구조조정 과정을 지도하는 일관적인 장기전략이 부재했으며, ②

기업구조조정을 실행하는 과정의 위험들을 고려하지 않았다. ③ 잘못 구상된 ‘거래들’을 정부가 억지

로 추지했지만 결국 성사되지 않게 되자 불필요한 비용들이 발생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152쪽

~155쪽) 기업의 공정 거래 규제, 외부회계감사법의 수정, 금융규제를 통한 재벌규제, 인수합병의 자

유화, 내부지배구조 개혁들을 통한 재벌지배 구조의 구조조정과 외국인투자 유치를 통한 정부 기업

의 껌 값으로 팔아먹기-“한국정부는 외국인 직접투자를 위기에 처한 경제의 ‘구원자’로

생각했고, 국내기관들에 보유자산을 외국인들에게 빨리 팔아치우도록 막대한 압력을 가한 반면,

외국인들에게는 다양한 재정적 유인들을 제공했던 것이다(170쪽)- 그리고 어설픈 벤처기업의

육성을 통해 투기자본금을 끌어 모아 중소기업 등의 제조업체의 유동성 위기를 겪게 함과 동시에

벤처기업의 거품을 가져왔습니다.

 

5장에서는 종합적인 결론을 내리고 대안을 내세우고자 합니다.

“구조개혁 이후 한국경제의 주목할 만한 특징은, 위험을 부담할 주요한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 씨

스템에서 주요한 주체들인 국가, 은행 혹은 대기업 중의 어느 누구도 새로운 투자프로젝트들이나 곤

란해진 기업들을 재생시키는 데 따르는 위험들을 부담할 용의나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개혁론자들

이 위험부담의 대안적 주체들로 간주했던 외국인투자나 벤처기업들은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

했고 한국경제를 위한 새로운 성장엔진이 되지 못했다(199쪽)”

 

한국 경제의 구조가 정부의 지원-은행의 협력–재벌의 견인차를 통한 움직임이라고 합니다. 즉 지은

이는 거센크론의 이론을 통해 후발국가가 선진국가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정부의 주도적 역할을 다

시 부활시키며, 이러한 비판을 책의 전반에 걸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대안으로 그가 책의 앞에서 말

한 정부의 책임 경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경제의 딜레마는 재벌구조 조정, 외국인

투자유치, 벤처기업의 육성을 통해 ‘국민경제의 궁극적인 씨스템 관리자’ 역할을 하였지만 제대로 된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런 것을 알면서도 지은이는 국가의 개입을 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번

의 쓰린 상처를 안고 다시 국가의 재활성화를 감행한다는 것은 엄청난 심적 부담과 국민들의 비판

및 세계 경제의 눈초리를 견제해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감내하고서라도 해야 된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지구화의 역설 하나는, 점점 더 많은 요소들이 이동성을 갖게 됨에 따라 국가경쟁력은 노동력이

나 국가와 같이 이동할 수 없는 자산들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고도로 전지구화

된 세계에서 한 나라의 비이동적 자산들이 충분히 매력적이 않다는 이동적 자산들이 쉽게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 나라가 가지고 있는 가장 이동성이 낮은 자산이라고 할 수 있고, 따라서 전

지구화가 진전될수록 정부의 질은 국가경쟁력을 결정짓는 데 점점 더 중요한 변수가 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가 되는 것은 정부야말로 국민경제의 궁극적인 씨스템 관리자이며, 따라서

시장에 의해 대체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204쪽 : 강조는 지은이)”

 

즉 ‘국민경제의 궁극적인 씨스템 관리자’의 충실한 역할을 하고, 다시 재벌 기업들은 좋은 점을 살려

서 두 번째 단계의 추격씨스템을 갖추어야 한다고 합니다. 재벌 기업의 강점은 70~80년대 한국 경제

의 긍정적인 면을 보고 있습니다.

 

 지은이는 IMF를 통해 정부의 대응전략을 높이 평가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정부 밖에 기댈 곳이 없다

는 딜레마를 안겨줍니다. 국가의 견제 아래 재벌의 호위호식을 한다면이라는 기우가 있지만, 정부의

확고한 원칙과 국민을 향한 철저한 고민을 병행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원칙”이 주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부가 어떠한 원칙하에서 ‘국민경제의 궁극적인 씨스템 관리자’로 설 것인가가

21세기의 화두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제는 정부가 답할 차례입니다. 두 번째 단계의 추격씨스템

을 갖추고 있는가?

 

다음은 책을 읽는 동안 떠올랐던 몇 가지 의문점을 그려 보았습니다.

 

하나, 타이완이나 싱가포르의 일들이 동아시아의 핵심 주축으로 이룰 나라에서 다시 재현된다는 생

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네들은 많은 인적 자원을 자랑하면서, 무궁무진한 잠재적 동원능력을 지니

고 있다면서 지구상에 거의 하나(?)뿐인 미국이라는 나라와 경쟁을 하려 합니다. 브레진스키의 세계

전략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틀렸다 할지라도 지금 세계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중국의 전략

은 중요합니다. 타이완이나 싱가포르는 선진기술이나 마케팅에 대한 부담을 안고서도 다국적기업들

과의 동침을 원한 것은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다릅니다. 다국적기업들을 끌어들임

과 동시에 보완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 아전인수적 관계를 형성(?)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수 많은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고서는 어떻게든 그 기술을 자국화할 궁리를 합니다. 금리의 동결이

라든가 법규의 애매모호함. 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는 저임금으로 책정된 중국의 이미지만 가지고

투자를 합니다. 과연 여기에서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중국이 세계의 제국을 꿈꾼다면 단순

히 타이완이나 싱가포르의 흉내만은 내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일본이 취하는 전략은 유효합

니다. 즉 슨 지은이의 말을 빌리자면, 신자유주의에 도취된 우리나라 기업은 아무런 방패막이 없이

중국에 무모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기업과 세계의 제국을 꿈꾸는 나라와의 싸움

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벤처열풍이니 코스닥 열풍, 오고 갈데 몰라라 하는 많은 돈들이 묻지마 중국 투자를 할 경우에 예견

되는 피해는 또 다른 IMF를 예견하는 것은 아닐까?

 

, “중화학공업은 한국에서 새로운 산업이었고, 거대규모의 자원동원과 투자의 장기 회임기간을 필

요로 했다. 다각화 정도가 높고 중앙집중적 통제를 하는 재벌구조는 이 산업에서 성공을 결정하는

데 핵심적이었다.(59쪽)”

 

위 부분은 재벌이라는 거대규모에 대한 호의적 찬사입니다. 지은이는 “1970년대에 재벌은 전체 경

제보다 더 빨리 성장을 했으며, “큰 그룹은 작은 그룹보다 더 빨리 성장’”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 중소

기업이나 경공업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습니다. 이는 거센크론의 이론에 따르면, 누군

가의 주도 세력이 있어야 하며 주도 세력에 밀려난 부 세력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단순

히 국가-산업-재벌이라는 구조가 국민적 합의에 의한 것이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물론 도덕

적 원론만을 내세운 이야기 일 수가 있지만-한국에서의 국가와 재벌간은 야합(野合) 이외에는 아니

라고 봅니다. 재벌의 뒷돈은 정치권에 들어가고, 검은 돈을 먹은 정치권은 다시 특혜를 주는 악순환

의 구조. 지은이가 보듯이 어려운 경제 침체를 선진국에 따라가기 위한 “대체전략”이였는가에 대한

점은 내게 의문입니다.

 

, IMF의 잘못된 처방은 왜인가? 모두 공부를 많이 하여 박사라는 취득을 받고 있는데… 전혀 다른

생각이 나오는가? 이는 전략적 사고가 다르지 않을까라는 솔직하지 못한 점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

다. 지은이의 수고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애정이라는 IMF는 브렌스키의 말처럼 자국의 이익 극

대화이지 세계 경제에 치명적 구조를 앓고 있는 국가에 회생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입

니다. IMF의 프로그램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하지만 너무 뻔질나게 하면

남의 눈총이 따가우니 무늬를 살짝 덮어 씌웁니다. 그것이 구조조정입니다. 하지만 한 국가의 기업

에 대해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것은 주권 침해라 하면 너무 앞서가는 것일까요?

 

외국은행의 실체를 모른 체, 신자유주의의 사탕발림에 빠진 권력엘리뜨와 재벌과 장기적인 계획없

이 금융자유화와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정부는 은행의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으로 국민의 혈세인 공

적 자금을 투입하였는데, 은행, 재벌, 국가는 그 “고마움”을 알고 있는가? “금융부문의 부실채권은

급격하게 줄었을지라도, 국민경제상의 총 부실채권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182쪽; 강조는 지은

이)” 내가 보기에는 그러하지 못하다. 아래 기사참조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4/12/03/200412030042.asp

 

, 기업의 공정 거래 규제, 외부회계감사법의 수정, 금융규제를 통한 재벌규제, 인수합병의 자유화,

내부지배구조 개혁들을 통한 재벌지배 구조의 구조조정은 신자유주의와는 평행선을 달리는 것 처럼

보이는데, 지은이는 하나같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러한 정부의 구조조정이 투

명성을 가지고 있으면 장기적인 계획을 가진 틀로 무장을 했다면 이라는 다른 면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지은이 재벌을 통한 집중, 거대 투자를 인한 국가 경제의 견인차를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

다. 하지만 재벌과 중소기업과의 관계 및 직원들간의 임금차로 인한 불평등 및 사회구조의 갈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점이 조금은 아쉽습니다. 또한 회사는 망해도 사장은 망하지 않는다

는 논리가 통하는 사회에서, 변화에 따른 경쟁을 통한 기업의 구조조정의 실현은 고개가 갸우뚱거려

지는 부분입니다.-“금융위기 전 이전에도 이미 변화의 압력에 직면하고 있었다. 금융위기 전 국내

금융규제 폐지와 개방에 따른 금융기관들의 더 ‘까다로워진’태도에 직면해서, 재벌들은 어쨌건 내부

거래상의 투명성을 개선(167쪽)”한다는 부분은 아직까지 보류하는 것이 어떨가?

 

지은이가 내세우는 대안은 정부와 기업들의 책임 경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 없

는 대책과 기업들의 자기 방만함은 IMF라는 엄청난 위험의 다리를 건넌 어제를 기억하지 못하는 단

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국가에 내릴 수 있는 처방인가? 또한 재벌 기업에 대해서는 “재벌과 중소기업

과의 관계”를 선의의 경쟁적 관계 및 협동관계로 인식하고 있으며, 갈수록 넘쳐나는 비정규직 및 파

견근로자에 대한 대안을 세우지 않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재벌 기업들의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

거나 눈 가리고 아웅하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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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사기꾼들 - 노벨상 수상자의 눈으로 본 사이비 과학
조르주 샤르파크 외 지음, 임호경 옮김 / 궁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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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에 사로잡힌 영혼을 위하여

 

한약을 짓는 친구가 있습니다. 친구가 예전에 공부를 할 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주고받았습니

다. 그 중에 한 토막,

너 한약을 지으려고 하면, 관상도 볼 줄 알아야겠다. 혹은 심리 공부를 하든가?

?

누군가 손님이 찾아온다. 필시 그는 몸이 좋지가 않을 테니, 네게 의지를 하고픈 사람이겠지. 이 부

분에서 너는 반 묵고 가는거야. 그리고 그의 얼굴에 나타난 모습을 보면 어느 정도의 병(病)을 읽어

낼 것이고, 손으로 물을 잡듯이 둥글게 둥글게, 크게 휘저으면 무엇인가 하나를 건지겠지. 걸리지 않

아도 돼. 그 부분은 얼렁뚱당 넘기는 눈치도 몇 번 하면 자연스레 몸에 베일 테니…”

ㅋㅋ

그런 면에서 한약을 짓는 사람이나 점쟁이나 별반 다름이 없지. 한약은 몸을 치료하고, 점쟁이는 마

음을 치료하니 같은 업종에 일을 하네…”

 

삐딱하게 말하는 이가 저랍니다. 친구도 세상을 어느 정도 겪을 만큼 겪었다며 웃어 넘깁니다. 이렇

게 이야기를 이끌어가게 된 계기가 하나의 단어 때문입니다.

 

우물효과

 

도서관에서 우연찮게 접한 단어, 가끔씩 언어라는 것이 사람의 사고를 변화시키거나 확장시킨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쿤의 패러다임이나 티핑 포인트(책 제목이기도 하죠), 그람시의 헤게모니, 혹

은 제가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컨텐츠가 생명이다에서 컨텐츠 등은 분명 제 사고에 한 획을 긋는

단어였습니다. 그리고 우물효과

 

“‘우물효과, 어떤 말이 애매하면 애매할수록 즉 우물의 깊이가 깊을수록 그것을 듣는 사람은

이 말 가운데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다.(29쪽) 한동안 우물효

과는 어린아이가 단어를 처음 배워서 입에 옹얼옹얼 거리듯 제 입에서 맴돌았습니다. 책을 읽지 못

하고 우물우물하다, 끝내는 책을 다 읽고 말았습니다. 『신비의 사기꾼』 책은 명확한 주제를 던져

줍니다.

 

한밤중, 광대하고도 어두운 숲 가운데 홀로 서 있는 내 수중에 어둠을 밝힐 것이라곤 조그마한 촛불

하나뿐이었다. 그때 어떤 낯선 이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너의 촛불을 꺼버려라. 그러면 더 잘 보게

될 테니. 이 조그마한 촛불, 이것이 바로 이성이다. 이것은 어쩌면 보잘것없는 도구일지 모르며,

그것 하나만으로는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촛불은 우리가 가진 것 중 가

장 귀한 것이다.(246쪽)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직 광대하고도 어두운 숲 길이며, 나를 지탱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촛불 하

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다가와 속삭입니다. 촛불을 꺼버려라고, 난 그렇게 할 수가 없습

니다. 촛불이 내가 가고픈 곳으로 인도해 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내가 가고픈 곳으로, 그러나 촛

불은 내가 보려고 하는 것 만 보여줍니다. 어두움은 너무 광대합니다. 나는 갈 곳 몰라라 합니다. 주

저앉아 버리고 싶을 때도 간혹 있습니다. 촛불 하나에 의지하기에는 내 시선이 좁아질 듯하고, 버리

기에는 나를 지탱하는 힘을 잃어버리는 듯하고

 

지은이는 말합니다. 미디어에 현혹되지 말고, 파블로프의 개가 되지 말라고!! 자기 자신을 믿으라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성찰과 세상을 여유롭게 보는 눈, 자기에의 믿음 등이 시나브로

몸 속에 녹아 있어야 할 것입니다.

 

덧붙임 : 앞서서 “스스로 덫에 걸린 두 과학자”라는 리뷰가 있는데,

이것은 이 책의 특징을 극명히 드러내는 하나의 예이다. 저러한 접근 방식은 확실히 사람들을 신비주의와

몽매주의에서 일깨워 주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모든 것을 도식화하고 확률화 함으로써 결국 그들이 가진

'기계적 이성'의 한계만 보여주고 만다. /그들은, 사람들은 믿고 싶어하는 것을 믿기 때문에 이러한 신비주

의와 몽매주의를 이용한 사기꾼들이 많으니 조심하라고 하지만, 정작 그들 스스로도 '믿고 싶어하는 것만

믿으려 하는' 오류를 결정적으로 범하고 있다.”는 문장은 이 책의 전부를 말한다고 생각됩니다. 냉철한 시선

을 지니셨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고를 때도 이 리뷰를 보고 갈등을 많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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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야스 도서관 이야기
다케우치 노리요시 지음, 도서관운동연구회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간밤에 술을 한잔 먹고 쓰려다가, 피곤한 몸 때문에 일찍 잠들어...
우리집 강아지가 집 밖을 나오지 않은 새벽에 글을 쓴다.



긴 잠을 자고도 이렇게 글을 쓰게 만드는 떨림은, 나를 이끄는 힘에 대해 동경이나 찬사는 없다. 다만 분노일뿐이다. 긴밤을 자고도, 새벽 아침에 일어나서도 나를 끌어들이는 무엇, 이 무엇에 조금 이야기를 길게 하려 합니다. 혹은 조금은 문법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두서 없을 수가 있으니... 바쁘신 분은 그냥 지나셔도 됩니다. 지금 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내 꿈 혹은 우리의 꿈 먼저 실현시킨 선생(先生)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시 면적은 약 17km이지만 현재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곳은 구 시가를 포함한 제1기 매립지 12km로, 여기에 6만5천 명이 거주하고(17쪽)' 있으며, "마을이 젊다는 것, 고학력자가 많다는 도시형 주민이라는 것, 그들이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마음에 교육.문화시설이 전혀 없다는 것. 모든 것이 도서관 육성에 알맞은 조건을 지니고(18쪽)"는 어느 어촌 마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4월 말부터 이동도서관 갱신계획, 이후 10개년 장서계획과 도서관업무 전개, 조직과 각계의 업무량, 인원요구, 작엽예정(29쪽)"을 세우고, "단순히 좋은 책을 공짜로 아이들에게 빌려주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지역의 어머니와 보모, 초.중학교의 젊은 선생들이 아동서에 대해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에 도서관으로 가볍게 발을 돌려, "도서관 직원과 상담하면 해결된다"는 말이 오가는 도서관을 실현시키려고 하였다. 말하자만 우리야스 지역의 아동도서 센터 기능을 하고자 했던 것(33쪽)"을 구현하여, "우라야스 마을에서는 급속하게 도서관 어론이 형성되었다. 개관기념으로 나누어준 노란 손가방이 어딜 가나 눈에 띄었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주부, 노인, 학생 아가씨 모두가 그것을 들고 걸어다니고 있었다. 최연장자 의원이 노란 가방을 들고 의회장에 들어오는 것도 마주쳤다.(165쪽)"


우리는 인터넷의 발달로 인하여 일본과 경제적, 시간적 격차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한 면을 강조한 것입니다. 내가 본 다른 면은 적어도 20년은 뒤쳐져 있습니다.


"『아아오베카 이야기』와 도쿄 디즈니랜드로 알려진 인구 약8만5천 명인 이 고장에 서번째 명물이 탄생했다고 말하고 있다.
우라야스 시립도서관의 도서구입비(연간)는 3년 연속 1억엔을 상회해 시민 1인당으로 환산하면 약 1,300엔이 된다.(1983년도). 1인당 도서 구입비가 네 자리 수를 넘는 것은 공공도서관이 시작된 이래 기록으로 전국 제1위, 1인당 대출권수도 처음으로 연간 10권 선을 넘어 단연 1위. 대출등록자는 이번 10월로 시민 전체의 반수를 넘고, 소중학교 학생으로는 89%에 이른다고 한다.(174쪽)"


이렇게 구축된 인프라와 이를 통한 사회적 시너지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경제적 가치를 넘어설 것이다.


아이들이, 청소년들이 놀러갈 곳이 없다고 합니다. 서울이나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은 어느 정도의 문화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만 지방은 가뭄에 콩 나듯이라는 표현조차 과담(-談)입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도서관을 놀이터라 만들어 줄 수는 없을까요? 놀이터라는 곳이 모래가 있어야 하고 철제로 된 기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또한 도서관이 책 만 있어야 된다는 곳으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도서관을 요즘 흔히 들어서는 지상복합센터로 만들면 안될까요? 저는 복합문화센터를 만들려고 마음만 먹고 있습니다. 어린이 책과 청소년들의 책이 있으며, 나무로 된 장난감이 있고 영화를 볼 수가 있고, 컴퓨터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 그리기나 운동, 자기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우선은 도서관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친근감을 가져다 주려고 합니다. 이렇게 형성된 친근함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도서관에 대한 거리감이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오래 전에, 내가 사는 곳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중에 나를 분노하게 하는 것이 시립도서관이 아이들 손 만하다는 거!! 물론 시의 입장이 어떤지는 몰라도 내 꿈에 비하면 도서관은 너무 조그맣기에 나는 어설픈 감상에 젖어 분노하곤 합니다. 그리고 시청 옆으로 줄줄이 들어서는 음식점이며 유흥업소를 보고 분노합니다. 그래서 친구한테 이런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시청 사람들이 뒷돈이나 받고, 혹은 일 끝나고 다 업소에 나가는거 아니다" 친구가 말하는 것을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마음이나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 했으니, 나의 걱정도 기우(杞憂)만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시청의 큰 강당 하나나 혹은 시청이 바라다 보이는 아주 가까운 곳에 커다라 도서관 하나를 짓었으면 하는 바람은 아직도 내겐 꿈입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시장은 미리벌의 앞날을 설계합니다.  그리고 공무원들은 아이들에게 도서관을 얼마나 아름답게 꾸미는가를 고민합니다. 물론 그들의 업무가 도서관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신경이 모자란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책이 전부인 제게, 도서관은 놀이터랍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곳.


여기까지 본론입니다. 아래는 덧붙임입니다. 참고하십시오.


내가 일본에 대해 부러운 면은, 도서관 하나에 10년 장기 계획을 세우고, 도서관을 "동네 아동도서 친절상담소"로 만들며, 그 거리는 걸어서 10분 이내에 있다는 점입니다. 서점에 나가보면 아이들의 책값이 얼마나 비싼 것인지 알것입니다. 오죽하면 어린이 책 대여점이 인기를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이는 아주 기형적인 사회구조로 인항 엉터리로 밖에 보여지지가 않습니다. 솔직히 책 대여점은 부과적인 서비스인 것입니다. 어린이 도서관이 동네방네 마다 있으며, 문턱이 낮아 누구나 드나 들 수가 있습니다. 가진 것이 많다 적다, 키가 크다 작다는 기준으로 나누지는 않습니다. 누구나 들어와서 책을 읽곤합니다. 그러면서 아이는 다른 세상을 보며, 겸손과 꿈을 조금씩 키워갑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회구조는 이러한 꿈을 그리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도서관이 어디에 있으며, 걸어서 과연 10분 거리인가라는 점은...ㅜㅜ  도서관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물리적 장소를 넘어습니다. 어릴 때의 습관이 평생을 좌지우지하며, 어릴 때 읽은 책 한권이 감동이 큰 갈림길 위에 놓는다고 할 때에,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만이 더 많은 꿈과 낭만을 그릴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어 책 한 권 사 보기 힘든 사람들은 이러한 세계조차 꿈꾸기가 힘듭니다. 그네들에게 하루하루가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힘겨움은 부모 세대에서 끊고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동네방네 도서관이 들어서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도서관은 단순히 서지 창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도서관 사서들은 동네 병원 의사처럼, 아이들에게 독서지도를 하며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책을 읽으며 어떤 사고를 한다는 것을 메모하며, 독서치료를 병행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들이 꿈을 키워주도록 많은 이야기를 듣어 줍니다. 이렇게 조금씩 세상과 소통하는 아이는 자기가 보고듣은 것 그 금(線)을 넘어서 전혀 경험하지 못한 다른 세계를 꿈꾸기도 할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들이 어디에서 놀다가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에서 벗어날 수가 있으며, 아이들이 책을 읽는 모습에 감동을 받게 될 것입니다. 즉 도서관은 부모와 아이들의 꿈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어주는 곳입니다. 또한 도서관에는 책만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지상복합센터로서 다양한 문화적 공간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책을 읽은 사람들은 기획력이 거미줄처럼 쫙 퍼집니다. 이러한 기획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도시의 작은 공간에서도 문화적 삶과 혜택을 누리며, 낭만을 이야기 할 것입니다. 노동의 힘겨움도 잠시 잊곤 하겠죠.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나 어린이 출판사는 더 좋은 책만 만들어 낼 것입니다. 좋은 책을 만들어 내기만 하면, 어느 정도의 수요(도서관)가 있기이, 팔아 먹지 못하여 안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책은 어떤 것일까라는 기쁜 사명감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출판사를 통해 좋은 책이 알려지고 다시한번 도서관의 사서로 인해 걸러지고 최종적으로 어린이나 청소년 등 책읽는이로 인해 걸러진 좋은 책만이 손에 닿을 것이기에 부모들은 나쁜 책을 읽지 않을까라는 고민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국가는 아이들이 책 읽는 모습을 보며 10년 장기 계획을 세우며 행복한 설계를 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부모들은 좋다는 어린이 집에 보내며, 자기 아이들에게 읽혀 줄 책을 삽니다. 그리고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하여 아이들에게 꿈을 키워줍니다. 하루하루가 힘든 맞벌이 부모들은 어린이 집에 아이를 보내고, 간혹 책대여점이나 일요일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보곤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같이 도서관을 간다는 것은 자기 몸이 힘든 상황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모는 무조건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합니다. 아이는 윗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배울 뿐인데... 너무 강요하기만 합니다. 누군가 경제적 자리를 매꿔줄 도우미가 필요한데 아무데도 없습니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문화적 체험을 한다는 것은 연례 행사로 한번 있는 지방축제에 나가는 것 뿐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한 나라 두 개의 국민으로 나누어져 살고 있습니다.


간혹 엉뚱한 생각을 합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이 어렸을 때 부터 책을 많이 읽은 분들이라면... 정말 책을 많이 읽은 분들이 하루하루 싸운다면 책을 던져버리거나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겠죠. 하지만 합리화를 합니다. 그네들은 책을 읽지 않고 교과서만 보았다고... 만약에 책을 많이 읽은 분들이 자리에 앉아 있다면, 그네들이 어렸을 때 맛 본 행복을 다시 물려주지 않았을까? 어릴 때 아름다운 추억이 없으니, 어린이에게 보여줄 것이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랍니다. 다음에는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나 어린이 도서관을 짓겠다는 후보자를 찍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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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의적 2004-12-03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동네 10분 거리에는 논밭논밭 밖에 없습니다. ㅜ.ㅜ 허수아비도 저 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