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문학 선집 2 - 1920년대 후반~1945년 계급·민족·여성의 교차 한국 여성문학 선집 2
여성문학사연구모임 엮음 / 민음사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 여성문학 선집 2권은 1920년대 후반부터 1945년까지의 여성 문학을 다룬다. 특히 중점적 시기는 1930년대다. 


1919년 삼일운동 이후 1920년대가 되면 사회주의 사상 유입으로 독립 운동은 반제국주의, 반식민 운동으로의 성격이 강해진다. 1925년 보안법 강화, 1928년 조선공산당 해체에도 불구하고 그 흐름은 쉽게 꺾이지 않았고 계급 차별 운동 등으로 이어졌음에 주목해야 한다. 


개인, 민족, 계급은 근대문학 형성기를 특징 짓는 키워드들로서 좌와 우로 진자 운동을 하며 어떤 범주를 우선시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단편소설, 장편소설, 서정시, 서사시와 같은 근대적 양식이 본격적으로 실험되고 정착한 시기이기도 하다. …

여성문학 역시 1930년대 들어서면서 근대 초기 여성의 자각과 계몽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나 식민 현실과 교섭하면서 계급과 민족, 성 간의 교차성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 P17


1930년대는 여성문학이 식민 현실을 젠더의 시각을 통해 본격적으로 그려 낸 시기였다. 난민이나 유민이 된 여성의 고통스러운 삶을 공감과 연대의 윤리로 포착하는가 하면 남성 중심의 가족 로망스와 윤리를 내파했다. 남성 중심의 문학장이 여성에게 부과한 '여성적' 글쓰기라는 틀과 '여성성'의 개념을 영리하게 전유해 여성성, 여성적 글쓰기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해석자와 가치 부여자에 따라 유동적이고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 P34


박화성은 김명순, 나혜석, 김일엽을 잇는 제2기 신여성 작가로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여성 문제에 대한 의식은 다소 약하다고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다수의 작품에서 여성을 주인공이나 화자로 내세워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목도하고 부딪치면서 제 나름의 현실 의식을 획득해 가는 과정을 그리며 보수적 성 규범을 탈피한 여성상을 창조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록된 '추석 전야'는 노동 수탈과 성적 수탈을 함께 보여주는 소설이라 개인적으로 눈길이 많이 갔다. 


영신은 전일부터 빈부와 계급에 대한 반항심을 잔뜩 가지고 있었으며 더구나 감독의 평소 행위를 몹시 미워하던 터이라 떨리는 입술로 "그러면 당신이 왜 먼저 그따위 짓을 하느냐 말이야. 감독이면 점잖게 감독이나 하지 어린애들 머리를 잡아당기며 부인들을 건들며 그따위 못된 짓을 하니 누가 좋다고 하겠소. ... 우리는 개만도 못하게 보이오? 우리도 사람이야 사람.

주인에게 갑시다. 내가 당신이 하던 짓을 다 말하고 결단을 낼 터이니..." - 추석 전야


공장 감독은 여성 노동자를 희롱하고 이를 본 동료 영신은 분노하여 감독에게 따진다. 애당초 기본 자금이 있을 리 만무한 가난한 계급의 노동자, 그것도 여성들은 계급 차별 뿐 아니라 성차별까지 감내야 하는 현실에 내몰렸다. 이를 보면서 1960년대 가발, 1970년대 의복 공장의 노동자들의 사진이 떠올랐다. 이 때의 여성들은 가장 노릇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의 제목처럼 하필 추석이라는 시점이 절묘하다. 가족들이 모여서 화기애애해야 할 명절이지만 주인공은 사치와 여유 따위는 부릴 수가 없다. 자본주의란 이들에게 험난함의 대명사 같은 것이다. 일하다 어깨를 다친 영신은 밀린 아이의 월사금과 붉은 댕기를 사달라 조르는 아이의 마음을 내칠 수 없어 급하게 일거리를 찾는다. 

어릴 적 공과금, 급식비, 회비 등을 내지 못해서 자주 불려나간 경험이 있었다. 당시는 부모님이 너무 원망스러웠으나 나중에 내가 직접 돈을 벌어보니 부모님이 그 때 마음이 결코 편치 않았겠구나를 느끼게 되었다. 


강경애는 빈농의 딸로 태어났기에 무산 계급에 대한 차별에 대한 분노와 저항 의식이 작품에서 눈에 띤다. 식민지 시기 대표적인 여성 단체였던 근우회에도 참가했다. 결혼해서 용정으로 이주한 뒤 조선인들의 현실을 담은 소설들을 많이 발표했다. 만약 1944년 병으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해방 후 어떤 작품을 남겼을지 참 궁금하다. 


소금은 예로부터 모든 양념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식재료 중의 하나로 귀한 취급을 받아왔다. 조선의 장 문화도 소금이 없으면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당시 국경 근처에는 밀수입업자들이 목숨을 걸고 소금 거래를 위해 오갔다. 1931년 만주 사변 이후 일본은 독립운동가 색출을 위해 친일 무장 조직을 만들었고 이는 독립운동 뿐 아니라 당시 근처에 거주 중인 조선인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그는 하나하나의 메주 덩이를 들어 보며 간장이나 서너 동이 빼고 고초장이나 한 단지 담그고... 그러자면 소금이나 두어 말은 가져야지 소금... 하며 그는 무의식간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고 또다시 고향을 그리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고향서는 소금으로 이를 다 닦았건만... 달리는 데도 소금 한 줌이면 후련하게 내려갔는데 하였다. 그가 고향 있을 때는 하도 없는 것이 많으니까 소금 같은 데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는지는 모르나 이곳 온 후로는 그는 소금 때문에 남몰래 운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소금 한 말에 이원 이십 전! 농가에서는 단번에 한 말을 사 보지 못한다. 그러니 한 근 두 근 극상 많이 산대야 사오 근에 지나지 못한다. - 소금, P216 


봉염의 어머니는 소금 밀수입을 위해 뛰어든다. 스산한 가을 바람이 몹시 부는 날, 그녀는 다른 남성 밀수업자들의 대열을 따라 붙었다. 솜옷을 입은 다른 밀수업자와는 다르게 봉염 어머니는 홑옷을 입은 데다가 발가락 나온 고무신을 신은 채 걸어야 했다. 남성 밀수업자들은 여섯 말의 자루를 든다고 하길래 호기롭게 네 말을 들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움을 견딜 수 없다. 가다가 순사를 만나거나 활동가들을 만날까봐 무척 두려웠을 것이다. 일본은 1925년 보안법 행사 이후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극심한 탄압을 가했다. 소설의 결말은 당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흘러간다. 


모윤숙은 당시 친일 행위에 대한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작가다. 1940년대 조선임전보국단에 간사로 활동하면서 조선 여성을 적극 동원하는 데 앞장섰다. 해방 후에는 친미, 반공주의 입장에 뛰어들었다. 노천명도 식민지 말 친일 부역을 한 이력이 있으나 해방 후에는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두 작가는 다른 길을 걸었다. 작품적으로도 노천명은 모윤숙의 강렬함과는 다르게 감수성이 더 느껴지는 편이다. 


해여진 치마보고 간난을 슬퍼할 때

어대선지 그얼굴은 가만히나타나

깨여진창틈으로속삭입니다

너는조선의딸이아니냐고.

그리운사람있어 눈물질때면

내억개 가만히 흔드는이있어

자비한목소리로들여줍니다

인생의전부는사랑이아니라고.

- 조선의 딸, P362


산넘어지나온저촌엔

은반지를사주고싶은

고운처녀도있었건만

다음날이면 떠남을 짓는

처녀야

나는 집시의 피였다

내일은 또 어느 동네로 들어간다냐

우리들의 도구를 실은

노새의 뒤를 따라

산딸기의 이슬을 털며

길에 오르는 새벽은

구경꾼을 모으는 날나리 소리처럼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

- 남사당, P368


이들을 비롯해 송계월, 지하련 등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송계월은 짧은 삶을 살다 가서 참 안타까운 작가인데 이전에 전집을 사두었지만 아직 읽지 못해서 더는 미루지 말고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송계월도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발하는 등 계급과 여성 문제에 천착한 다양한 작품들을 남겼다. 지하련은 일제 시기 지식인의 내면에 대한 심리 묘사를 다룬 작품을 여럿 남겼다는 점이 새로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 위화 작가 등단 4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위화의 소설 <인생>을 읽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들었다고 해야 하겠지. 중국어 오디오북을 들으며 번역본으로 함께 읽었다.


어느 청년이 푸구이라는 노인을 만나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내용이다. 원어 제목은 活着(활착: 살아간다는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원어 제목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대략 1940년 후반 무렵부터 1960~1970년대 무렵까지 중국이 배경이므로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굵직한 사건들(국공내전, 문화대혁명)이 등장한다. 그러나 역사적 비중을 높게 두지는 않았다고 느꼈다. 사건은 밑밥 역할만 할 뿐이고 그걸 맞닥뜨린 개인의 역경과 감정들을 표현하는 부분에 중점을 두었다.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건을 겪게 될까. 아직 많은 시간을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나름 다채로운 삶을 살았다고 여겼다. 그러다 사회 생활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하구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을 겪어도 개인의 환경에 따라, 사건을 맞닥뜨리는 태도와 자세, 행동력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엔 빈둥거리며 놀고, 중년에는 숨어 살려고만 하더니, 노년에는 중이 되었네.

 

젊은 시절 푸구이는 노름과 여자에, 폭력까지 쓰니 비호감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이가 들고 여러 일을 겪으면서 조금씩 변화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그래도 끝까지 캐릭터를 품기는 어려움). 아내인 자전, 딸인 펑샤, 아들인 유칭이 갈수록 안쓰러워 독서하면서 계속 눈물이 나 혼났다. 보통 슬퍼도 눈물 찔끔 흘리고 마는데 펑펑 울고 말았다.


어릴 때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많다. 그래서 그 소중함을 잘 몰라 쉬이 지나쳐버리고 뒤늦게 후회를 하곤 한다. 지금 만나는 사람 중 오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학교 친구는 학교를 떠나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 각자 일이 바빠 소원해져서 헤어지고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 직장을 떠나면 그만이다(한 직장에 오래 붙어 있는 적이 거의 없다보니 더 그런 것 같기도). 결혼 여부도 변수가 된다. 친한 친구들도 각각 결혼을 하고 난 뒤에는 만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아무래도 각자 배우자에게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아이가 생기면 아이에게 시간을 할애해야 하니까. 그저 주기적으로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내 안부를 묻는 것이 다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요즘은 부고를 듣는 경우가 참 많아졌다. 


위화의 부모님이 의사 출신이라 죽음을 간접적으로 많이 봐왔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용상으로 특별한 순간보다는 일상과 평범함의 소중함에 대한 강조가 은연 중에 드러나있다. 살면서 대박을 만난 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저 내 몸 하나 누울 곳이 있고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고, 몸이 아프지 않다면 1차적으로는 다행이라 할 것이다. 물론 거기에 먹고 사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면 더 좋겠지만 이는 부가적인 사항이라 생각한다.


세월이 아무리 힘겨워도 견디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나.


<인생>을 통해서 남은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하면 폐 끼치지 않고 죽느냐, 죽을 때 내가 먼저 죽느냐, 나중에 가느냐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되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자전의 삶을 통해 얻었다. 결국 매 순간을 함께 하는 사람에게 잘 하고 논란 만들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무척 어려울 듯).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 그동안 나는 원래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는 상황에서 삶을 마감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제는 물음표가 생긴다. 내가 먼저 죽는다면 그가 살아야 할 짊도 만만치 않겠구나, 그가 먼저 죽는다면 나도 또한 그리할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살아온 세월만큼 그 그리움이 더해지지 않겠는가. 


사람도 때가 되면 익어야 하는 법이라네. 배가 다 익으면 땅으로 떨어지듯 우리도 그렇게 가야 하는 것이지.


천천히 들판은 고요 속에 잠기고, 사방이 점차 어두워지면서 노을빛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나는 이제 곧 황혼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두운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광활한 대지가 단단한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부름의 자세다. 여인이 자기 아들딸을 부르듯이, 대지가 어두운 밤을 부르듯이.


평범해서 좋았던 문장들이 꽤나 많아서 필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운명'론자는 아니다. 다만 주어진 환경이 다를 뿐이고 이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은 자신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4-07-23 0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이 본래 제목 쓴 거 보고 생각났어요 예전에 그 제목으로 나온 적 있다는 거... 그때 봤는지 ‘인생’으로 바뀌고 봤는지 잘 모르겠지만... 책을 보기는 했지만 꽤 예전에 봐서 거의 잊어버렸네요 예전에 영화로 만들어졌던 것 같아요

자기 삶을 어디로 끌고 갈지는 자신이 정해야겠지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4-07-23 17:18   좋아요 1 | URL
영화가 나온 지는 몰랐네요^^
내용만으로 보면 단조로운 이야기일수도 있는데 인물의 상황에 이입되어서인지 감정을 끌어올리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갈수록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되네요^^; 희선 님 댓글 감사합니다.
 

7장

경제적 조건의 변화와 피임법의 개발. 그리고 개인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는 사상이 뿌리내림에 따라 여성들은 남성의 영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되었으며열권 운동가들은 이대로의 진행이 곧바로 여성에게 평등한 권리와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줄 것으로 낙관하였다. - P387

많은 여성의 직업 진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의 종속은 지속되고 남성과 여성간의 진정한 대화는 열리지않았으며 여성의 대다수가 경제적 빈곤 속에 빠져 있음에 주목하여반성이 일기 시작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모성 체험을 중심으로 한 성차에 대한 재해석과 여성주의적 문화 운동에 대한 논의가 다시 제기되었다. - P388

모성적 체험과 부모-자식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온 이러한 연구가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경험의 이분화가 사고 성향의 이분화를낳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분화는 무의식적 사고 구조의 차이에서부터 구체적 관심의 차이에까지 걸쳐 나타나는데 우선 코넬, 터시웰Cornell and Thurschwell (1987)과 버틀러 Butler (1987) 등은 개체의 특성을 분리성과 차이성에서 찾는 이분법적 논리 구조가 남성 지배 체제와 밀접한 상관 관계를 갖고 있음에 주목해왔다. 그리고 이 이원론 - P390

적 사고 구조는 여성 억압뿐 아니라 자연 파괴적 세계관의 바탕이 되어왔다고 보고 궁극적으로 인간간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자연간의관계를 규정해온 이원론의 극복 가능성은 우주 질서를 유기적으로파악하고 상호 의존성을 인식해온 여성들에게서 찾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 P391

억압된 집단의 해방이란 그 집단이 지배 집단의 언어나 인식 범주를 통하지 않고 체험을 그 자체로서 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 P396

 기존 체제에 살아남기 위해서 핵심부와 주변부를 왕래하며 살아야 했던 주변인은 마치현장에서 참여 관찰을 하는 문화인류학자처럼 두 개의 세계를 경험하고 비교해볼 기회를 가지며 이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갖는다. 이로써 주변인은 기존 체제를 더욱 객관적이고 상대적으로 볼 눈을 갖게되는 것이다.  - P398

일단 여성들이 자신의 억압 상태를 인식하게된다면, 그는 이미 인간 억압을 체험적으로 느껴온 터이므로 모든 종류의 억압에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자각한 여성은 억압된존재로의 자신 속에 길러진 부정적 성향을 인지하고 극복해나감과동시에 억압당하는 집단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는 의지를 분명히 갖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여성은 또한 피지배자로서 지배자와 공존하여 살아가는 동안 지배집단이 갖지 못한 능력을 개발해왔다. 곧 자기 자신을 의심해보고 성찰하는 경향, 남의 입장에 서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감정 이입적 이해의 능력으로서 이것은 더욱 인간적이고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주요 자원이 될 수 있다. - P400

한국의 여성 운동은밖으로는 가부장적 원리의 핵심을 이루는 약육강식의 원리에 근거한 - P403

세계의 지배 질서에 안으로는 ‘민족‘과 ‘분단‘의 이름으로 저질러온온갖 비인간적 폭력과 억압에 대항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 P404

여성들이 공유하는 이상향은 약자를 보살피고 인간 관계 자체에서성취감을 느끼며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노동하며 인간의 감정을 중시하는 사회이다. 이때 기존의 거대 조직은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나눌 수 있는 규모의 공동체로 분권화되고, 인간의 개성과 이로 인해 창출되는 다양성은 최대로 존중되며 나라 예산의 가장 큰 몫은 국방비가 아니라 교육비로 쓰여질 것이다.
이는 곧 인간과 인간간의 위계 관계를 극소화하고 평등한 협동 관계를 극대화한 사회이자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사는 공동체인 것이다.
이 단계에서 여성은 출산이 원죄의 고통이나 전생의 죄의 보상 행위가 아니고 고통 후에 오는 결실이며 생명 창조의 기쁨을 만끽함과 동시에, 모성의 체험은 문화적인 것이며 따라서 남성도 나누어가질 수 있음을 깨우쳐주게 될 것이다.  - P4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6장

다른 책에서 볼 수 없는 부분

제주는 육지의 정치 권력으로부터 많은 제한을 받아왔으며 특히 중앙에서 파견된 관료 위주의 행정력과 비공식적 지도자로서의 귀양 선비들의 활동은 제주도의 삶에 무시 못할영향력을 미쳐왔다. 16세기 이후부터 1900년 전후에 걸쳐 일어난 많은 민란에서 보여주듯이 제주는 외적 권력에서 부단히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역사를 보임과 동시에 외적 권력에 아부하는 역사의 이중적면을 보이고 있다. - P308

육지가 관개 수리 사업과 가축의 힘을 토대로 한 남성 노동 중심의미작(米) 농업을 발전시켜온 반면, 제주는 생태적으로 특히 토질과강우량 등에 있어 여성 노동 중심의 밭농사 위주로 생업을 발전시켜왔던 것이다. 여기에 해변 지역에서의 잠수업이 첨가되어 제주는 명실공히 여성 노동력 위주의 생산 체계를 이루어왔다. 이것이 제주 사회가 육지와 매우 다른 문화 구조를 형성케 된 주요 기반이라 하겠다. 또한 섬이라는 지형적 변수는 제주 문화의 또 다른 독자성의 근거가 되어왔다. 대중 교통이 편리해지기 전인 최근까지 육지와의 왕래가 매우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제주는 외부에 대한 지향성과 폐쇄성을 동시에 나타내는 문화를 형성해왔다. - P309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 국가의 제주도 경제 개발 기본 방향은 3차산업 중심으로 바꾸어진다. 정부는 제주도를 국제 수준의 관광지로개발한다는 목표 아래 ‘관광 종합 개발 계획‘을 작성하고 특히 외국인 관광객의 유치로 외화 수입을 증대시키고자 하였다. 따라서 1, 2차 산업 개발을 위한 투자는 3차 산업 위주로 재편되었으며, 동시에육지부와 외국의 대규모 자본이 제주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는 제주경제의 이중 구조적 특성을 창출하였는데, 즉 국내 자본과 국외 자본을 중심으로 한 관광 서비스 산업과 제주 자본과 노동에 근거한 1차산업의 이분화가 그것이다. 한편 1970년대 이후 이루어진 급격한 경제 성장은 제주의 고등 노동력을 대거 육지로 이동시킨 결과를 초래하였다. - P310

전통적으로 일부다처제는 여성의 낮은 지위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학설이 있다. 특히 부권제 가족내의 여성의 불안한 위치와 남편의 재산을 갖기 위한 부인들간의 경쟁과 갈등 등의 주제로 일부다처제 사회에서의 무력하고 불행한 여성이 묘사되고 있다(D‘Andrade, 1966 - P328

Martin and Voorhies, 1975).
용마을의 경우, 이런 상식적 경우와는 반대의 특징을 보여준다.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이 가능하고, 또 실제로 자립하고 있는 모중심적사회에서 오히려 무력하고 불안한 남편의 위치에 대한 해결책 또는보완책으로서의 일부다처제가 장려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 P329

자주성이 또한 이 마을 여성들의 특징이다. 이들은 상부상조하지만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 P330

용마을의 유교는 윤리 체계라기보다는 남성 우위의 사상과 이를 뒷받침하는 부계 조상 제사의 복합체이다. 즉 토착화 과정에서, 유교는 윤리 체계에서 교조적 남존여비의 이데올로기로 변형.
전승되어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 P335

양편 비우세의 사회는 남녀에게 기회 균등이 이루어지는 평등의사회는 아니다. 남녀 불평등의 사회인 점에서 세계에 편재한 대부분의 남성 중심의 사회와 비슷하나, 남성 지배적이 아닌 점에서 특이하다. 이는 남녀의 세계가 분리되어 있으나 두 세계가 최소한의 자치권을 가진다는 점에서, 남성 지배적 사회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 P337

100년간의 근대화를 통하여, 특히 최근 10여 년간내, 경제적으로는 국가 주도적 자본주의 체제로의 편입으로, 사회 문화적으로는 도시화와 대중 교육 및 대중 매체의 보급에 따라 제주는급속히 육지 경제에 종속되고 육지의 지배 문화에 동화되어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제주의 경우는 기질적으로 여성들이 더욱 활달하고 ‘일‘ 중심적이어서 현대적 직업 활동에 적합한 면을 보이지만 이러한 기질과 역할의 상응성은 국가의, 그리고 육지형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일방적 규제 속에서, 그리고 제주도 문화 자체의 독특한 남성 우위이데올로기로 인하여 무시되어왔다. - P375

제주 여성들의 강한 생활력과 높은 적응력은 1970년대까지는.
지나치게 여성 노동이 강요되기는 했으나 상당히 발휘되었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바탕을 둔 체제 아래서 여성적자질은 본격적으로 억압되기 시작했으며 여성상은 왜곡되고 있다. - P3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장

남아의 남성화가 매우 문제시된 사회들은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있음을 알게 된다. 이는1) 남녀 역할의 분명한 분리2) 어머니의 아동 양육의 독점3) 남성의 역할이 갖는 사회적 비중이다. 역할의 분명한 분리란 남녀 역할이 얼마나 상호 배타적으로 규정되어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남녀의 역할 구분이 덜 엄격한 사회에서는 ‘남성다움‘이란 것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반면, 구분이 많고엄격할수록 ‘남성다움‘이 문제시된다.
두번째로 어머니의 자녀 양육의 역할이 독점적일수록, 또 그 양육기간이 길수록 남자 아이를 여성의 품에서 떼어 남자답게 만들기가힘들어진다. 다시 말하면 아들이 유아기와 아동기의 경험을 통하여어머니에의 귀속감과 애착을 강하게 가질수록 남성다움이 문제화될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이다. - P278

셋째로 남성의 역할이 갖는 사회적 비중의 문제이다. 생계 유지가거의 여성들에 의해 가능한 사회에 비해 남성의 경제·사회적 역할이 사회의 존속에 매우 중요한 경우, ‘남성다운‘ 남자를 기르는 것은심각한 사회적 과제가 된다. 이는 대개 남성이 경제적 생산이나 방어면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회이며 또한 남성간의 협력과 유대가 매우 중요한 사회이기도 하다. - P279

초도로우의 논의의 초점은 ‘모성적 성향의 재생산‘에 있다. 그는.
프로이트가 밝혀낸 대상 관계 이론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프로이트가제시한 대로 자아 발달의 과정을 무의식적 감정적 심리 구조의 차원에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초도로우가 프로이트와 크게 의견을달리하는 것은 가족을 사회 조직의 한 단위로 보았다는 점과 어린 아이의 자아 형성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를 어머니로 보았다는 점이다. - P284

‘모성적 성향의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곧 여성이어머니가 되고자 하는 것은 원초적인 모녀 밀착 관계의 회복이자 삼각 관계의 재실현을 뜻하는 것이다. 여성의 관계 중심적인 사고, 여러 가지 상황적 변수를 고려하는 복선적인 논리 성향, 상호 의존성,
그리고 감정 이입적 이해력은 여아가 유아기의 자아 형성 과정을 거치면서 습득된 특질이다.
반면에 남아는 개체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자신의 일차적인 밀착관계를 거부하여야 하였고 이 과정에서 관계의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 일차적 애착의 대상인 어머니와의 관계의 거부는 곧 일반적 관계성 및 자신 속에 잠재해 있던 모성적 성향의 억압을 의미한다. - P287

남자 어른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 남성의 성격, 가치나 행동 체계를 배우는 것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남성다워야 한다고 느끼는남아들은 남성의 역할과 서구적 이미지에 맞는 남성다움을 상상함으로써, 또한 모든 여성적인 것을 부정함으로써, 남성다움을 추구하게 - P294

되고 이러한 신분적 정체감을 통한 남성다움의 추구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리된 채 고정된 남성상을 낳게 되었다. 따라서 남성다워지고자 하는 남성은 끊임없이 "능력있고 책임감 있는 남성"이 되고자하든지 "인기있는 남성"이 되려고 애쓰게 되는데, 이런 인위적 노력은 실상 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남성다움에 자신감을 잃는 결과를 낳고 있다. 남성다움에 대해 자신을 잃은 남성들이 생김으로써 일어나는 사회적 문제는 심각하다. 주목될 현상으로 마치스모 machismo를들 수 있는데, 이것은 자신의 남성다움에 자신을 잃고 불안해진 남성들이 여성을 성적으로 정복하거나 폭력을 쓰거나 여자들이 하지 못(안)하는 무모한 짓을 함으로써 자신이 남자인 것을 과시. 과장하고수시로 확인해보는 행위를 말한다(Michaelson and Goldschmidt, 1971346). - P2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